국민참여당
1. 개요
국민참여당은 2008년 말부터 창당이 준비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2009년 9월 24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했다. 유시민 등 참여정부 인사들과 구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창당되었으며, 당명은 당원 투표를 거쳐 '국민참여당'으로 결정되었다. 2010년 1월 17일 공식 창당 이후, 2011년 민주노동당 등과의 통합을 추진하여 통합진보당에 합류하면서 약 2년 만에 해산되었다.
| 당명 | 국민참여당 |
|---|---|
| 로마자 표기 | Gukminchamyeodang |
| 한자 표기 | 國民參與黨 |
| 창당일 | 2010년 1월 17일 |
| 해산일 | 2011년 12월 5일 |
| 해산 이유 | 통합 정당 결성 |
| 합병 정당 | 통합진보당 |
| 계승 정당 | 열린우리당 |
| 본부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마루길 36 (창전동 5-5) 동복 이세사옥 4층 |
| 웹사이트 | handypia.org |
| 지도자 | 유시민 |
|---|---|
| 이념 | 사회자유주의 자유주의 친노무현 |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 성향 | 진보주의 (대한민국) 자유주의 (대한민국) 친노무현 |
| 위치 | 중도좌파 |
| 상징색 | 노랑 |
|---|
| 국회의원 (2010년) | 0 / 299 |
|---|---|
| 광역의원 | 5 / 761 |
| 기초의원 | 24 / 2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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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
개혁국민정당
개혁국민정당은 2002년 친노 성향 정치 세력이 창당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부패 청산, 국민 통합, 참여 민주주의, 인터넷 정당을 목표로 활동했으나,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당내 갈등, 법적 문제, 정당법의 한계 등으로 2004년 해산되었다. -
유시민 -
5·15 서울역 시위
5·15 서울역 시위는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약 10만 명이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어진 대규모 시위이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직전에 발생하여 민주화 열망을 보여주었으나 신군부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
2011년 해산된 정당 -
시민통합당
시민통합당은 2011년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창당되어 김두관, 남인순, 문성근, 문재인, 이용선, 이해찬 6명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민주당, 한국노총과 합당하여 민주통합당으로 통합되었다. -
2011년 해산된 정당 -
국민민주당 (이집트)
국민민주당은 1978년 안와르 사다트가 창당한 정당으로, 이집트 정치 시스템을 장악하며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했으나, 2011년 혁명으로 해산되었다. -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정당 -
바른미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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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정당 -
새정치국민회의
새정치국민회의는 1995년 김대중을 총재로 창당되어 1996년 총선에서 제2당이 되었고,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합당하였다.
2. 창당 배경 및 과정
2008년 말부터 창당이 준비되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참여정부 인사들과 구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으며, '친노신당'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했다.
2010년 1월 17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친노파)을 중심으로 중앙당(당본부) 설립대회를 개최하여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설립대회에서는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을 대표로 선출하였다.
결성 반년 후인 6월에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실시하여 광역단체장 선거에 유시민 등 3명, 광역의회 선거에 47명(지역구) 등 다수의 후보를 내세웠다. 선거 결과 광역의회 선거에서 5명(지역구 3명 + 비례대표 2명), 기초의회 선거에서 24명(지역구 17명 + 비례대표 7명)이 당선되었지만, 야당 통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유시민은 현직인 김문수에게 5%p 이상의 차이로 패배하였다.
2011년 3월 19일 중앙당직자 선거가 실시되어 유시민이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었다. 신대표 선출 직후인 4월 27일 치러진 경상남도 김해시 乙 국회의원 재선거에 야당 통합으로 자당 후보를 내세웠지만, 전 경상남도지사인 김태호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원내 진출은 이루지 못하였다.
보궐선거 후, 참여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추진, 11월 20일 민주노동당과 참여당 및 신진보통합연대(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진보신당 탈당자들로 구성된 정치세력) 3자 통합을 선언하였다. 12월 4일 전국 당원대회에서 통합안은 90%에 가까운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다음 날 5일, 민주노동당과 통합연대 3당파의 통합이 선언되고,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발족하였다. 12월 15일, “통합진보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설 합당 방식으로 정당 등록됨에 따라, 참여당은 약 2년에 걸친 당의 역사에 막을 내렸다.
2.1. 창당준비위원회
2008년 말부터 창당이 준비되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천호선, 임찬규, 이병완 등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인사들 및 문태룡, 권태홍 등 참여정치실천연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친노신당'이란 표현이 쓰이기도 했다. 2009년 9월 24일에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창당의 시작을 알렸다.
인적 구성은 유시민 등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과 구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준비위원회의 전 단계인 주비위원회(籌備委員會)는 전국실행위원회, 당헌당규제정위원회, 정강정책제정위원회, 홍보위원회, 전략기획위원회, 조직위원회, 교육연수위원회, 대외협력위원회 등 총 9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전국실행위원회는 실질적으로 주비위원회의 업무를 총괄하는 집행부의 성격을 가진 곳으로, 16개 시·도 위원회의 위원장과 5인의 지명직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국민참여당은 11월 15일 종로 수운회관에서 창당준비위 결성식을 가졌다. 한편 국민참여당에 참여할 뜻을 밝힌 유시민은 11월 10일 입당하였다.
2.2. 당명 결정
언론에 의해 '친노신당'으로 불리며 '(가칭)국민참여정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창당준비위원회는 당원들을 대상으로 당명을 공모하였다. 응모된 당명 총 111개 중 '국민참여당', '참여복지당', '사람사는세상', '새벽을여는사람들', '함께걷는사람들' 등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열린우리당'도 있었다. 이 중 두 차례의 당원 투표를 거쳐 2위인 '사람사는세상'을 누르고 '국민참여당'이 1위로 최종 선정되었다.
2.3. 공식 창당
국민참여당은 2010년 1월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당원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창당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재정 대표 및 이백만, 김충환, 김영대, 오옥만, 천호선 등 5인의 최고위원을 선출하였다. 정책위원장으로는 노항래, 사무총장으로는 권태홍이 지명되었다.
참여당은 당 결성에 대한 선언문에서 "노무현 정신 계승"과 "지역주의 극복과 시민주권"을 내걸고 6대 강령을 제시하였다.
3. 주요 정책 및 활동
국민참여당은 창당 선언문에서 "노무현 정신 계승", "지역주의 극복과 시민주권"을 내걸고 다음과 같은 6대 강령을 제시하였다.
*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주권
* 지역주의 정치 극복과 개방적 정치 연합
* 사람 중심의 사회 투자
* 균형 발전과 사회 통합
* 한반도 평화 번영과 통일 시대 준비
* 미래를 준비하는 녹색 생태 사회
이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참여하였고, 2011년 재보궐선거 이후에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을 추진하여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한 뒤 해산되었다.
3.2.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실시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는 노무현 정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등 3명, 광역의회 선거에는 47명(지역구) 등 다수의 후보를 내세웠다. 선거 결과 광역의회에서 5명(지역구 3명, 비례대표 2명), 기초의회에서 24명(지역구 17명, 비례대표 7명)이 당선되었지만, 야당 통합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유시민은 현직 김문수 후보에게 5%p 이상의 차이로 패배했다.
3.3. 2011년 재보궐선거
2011년 4월 27일 경상남도 김해시 乙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참여당은 야당 통합 후보를 내세웠으나, 전 경상남도지사 김태호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원내 진출에 실패하였다.
4. 정당 문화
국민참여당은 개혁국민정당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개혁국민정당이 온라인 인터넷 정당을 표방했듯, 국민참여당도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통한 당원의 폭넓은 참여를 기반으로 한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했다. 이것은 개혁국민정당이나 열린우리당과 맥을 같이한다. 또한 당원의 70% 정도가 정당활동 경력이 없는 일반 시민으로서, 당 운영은 당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참여가 바탕이 되었다.
5. 해산 및 통합진보당 합류
2011년, 국민참여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11월 20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진보신당 탈당파로 구성된 신진보통합연대의 3자 통합이 선언되었다. 12월 5일, 3당파의 통합 선언으로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발족하였다. 12월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합진보당"이 신설 합당 방식으로 정당 등록됨에 따라, 국민참여당은 약 2년간의 당 역사를 마감하였다.
5.1. 통합진보당 창당
2011년 12월 4일, 국민참여당은 임시전국당원대회를 열어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통합연대) 등과의 통합 안건을 89.33%의 찬성률로 의결하였다. 전체 주권 당원 8763명 중 6765명(77.2%)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6043명이 찬성하였다. 투표는 온라인, ARS, 모바일, 시·도당 현장 투표, 중앙당 현장투표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국민참여당은 창당 23개월 만에 해체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이 발생하자, 참여계 인사들은 부정 경선에 연루된 일부(오옥만 등)를 제외하고 진보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5.2. 통합진보당 이후
2011년 12월 4일, 국민참여당은 임시전국당원대회를 열어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통합연대)와의 통합 안건을 의결했다. 전체 주권 당원 8763명 중 6765명(77.2%)이 투표에 참여했고, 6043명(89.33%)이 찬성했다. 이로써 국민참여당은 창당 23개월 만에 해체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이후 참여계 인사들은 부정경선을 저지른 일부(오옥만 등)를 제외하고 진보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6. 역대 지도부
7. 주요 선거 기록
| 선거명 | 선거일 | 후보 | 광역단체장 득표수 (득표율) | 기초단체장 득표수 (득표율) | 지역구 광역의원 득표수 (득표율) | 비례대표 광역의원 득표수 (득표율) | 지역구 기초의원 득표수 (득표율) | 비례대표 기초의원 득표수 (득표율) |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010년 6월 2일 | 유시민 외 2명 | - | - | - | - | - | |||||
| 4·27 재보궐선거 | 2011년 4월 27일 | - | - | - | - | - | - | |
| 총계 | - | - | - | 5석 (지역구 3석 + 비례대표 2석) | - | 24석 (지역구 17석 + 비례대표 7석) |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회 선거에서 5명(지역구 3명, 비례대표 2명), 기초의회 선거에서 24명(지역구 17명, 비례대표 7명)이 당선되었다.
* 4·27 재보궐선거 경상남도 김해시 乙 국회의원 재선거에 야당 통합으로 후보를 내세웠지만, 김태호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원내 진출은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