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엄씨
1. 개요
귀인 엄씨는 조선 성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영월이며 본명은 은소사 또는 은소이이다. 중전 윤씨 폐위에 관여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받았으며, 갑자사화 때 정씨와 함께 처형당했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신분이 회복되어 귀인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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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산군 -
중종반정
중종반정은 1506년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이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하여 일으킨 정변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왕권 약화, 붕당 정치 심화 등 조선 정치에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 -
조선 연산군 -
폐비 윤씨
조선 성종의 왕비였던 폐비 윤씨는 질투심과 후궁을 해하려 했다는 의혹 등으로 폐위되어 사사되었으며, 그녀의 죽음은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어 조선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나씨 (중종)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는 나주 나씨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26세에 출산 중 사망하여 경빈 박씨와의 관계 속에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묘는 이천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방씨
숙의 방씨는 철종의 후궁으로 두 딸을 낳았으나 모두 요절하였고, 사후 조귀인의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묘는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 해당 묘역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드라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
영월 엄씨 -
엄현경
엄현경은 2005년 '레인보우 로망스'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드라마 '두 번째 남편'을 통해 만난 차서원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으며, 드라마와 예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KBS와 MBC 연기대상에서 수상하였다. -
영월 엄씨 -
엄기영
엄기영은 MBC 기자, 앵커, 사장을 역임하며 대중적 신뢰를 얻었으나, 정치 입문 후 낙선했고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
영월을 본관으로 하는 엄씨의 이름은 은소사(銀召史) 또는 은소이(銀召伊)이다. 엄산수의 딸로 태어났으며, 실록의 1504년(연산군 10년) 음력 3월 27일 기록에 따르면, 언니 금소사(金召史)는 왕족인 단계부정의 아내가 되었고, 여동생 말금(末今)이 있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엄씨는 양반가의 적출(嫡出)로 추정된다.
엄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처음에는 정3품 소용(昭容)이었다가, 후에 종2품 숙의(淑儀)를 거쳐 종1품 귀인(貴人)으로 진봉되었다.
귀인 정씨와 함께 중전 윤씨를 모함하여 폐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 때문에 연산군은 그녀와 정씨를 극도로 미워하였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1504년 음력 3월 20일 밤, 창경궁 뒷뜰에 엄씨와 정씨를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였고, 그 시체는 찢겨 젓갈로 만들어져 아무데나 뿌려졌다.
엄씨의 가족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였고, 유일한 소생인 공신옹주는 폐서인이 된 후 유배되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중종 즉위 후, 엄씨와 그 가족들, 공신옹주는 모두 복위되었다. 공신옹주는 유배 중에도 남편의 신주를 품고 가 제사를 지낸 절의를 인정받아 곡식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2.1. 초기 생애
엄씨는 흔히 출생년도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략적인 해는 추정할 수 있다. 엄씨의 아버지 엄산수의 차남 엄회는 1455년생이고, 삼남 엄계는 1456년생이다. 그런데 엄회는 소용 엄씨의 오빠[兄]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엄산수의 정실부인 남양 홍씨 소생이므로, 엄씨는 빨라도 1457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또한 엄씨의 친언니 엄금소사가 1457년 이후에 태어났으므로, 엄씨의 생년은 1458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엄씨가 정확히 언제 후궁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처음으로 사료에 등장한 것은 1477년 음력 3월 20일의 기록이다. 따라서 1477년 이전에 이미 후궁이 된 것으로 보이나, 만약 1477년에 후궁이 되었다 해도 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을 것이다. 그 후 1481년 3월 11일에 딸 공신옹주를 낳았다.(성종대왕 왕녀 태지석)
엄씨가 1481년에 공신옹주를 낳았다면, 늦어도 1466년 이전에는 태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1477년의 기록을 보면, 엄씨와 정씨는 폐비 윤씨의 투기를 받을 정도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는데, 21살의 성종이 12살밖에 되지 않은 엄씨를 총애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엄씨의 생년은 오차 없이 넓게 추정하면 1458년에서 1466년 사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늦어도 1462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성종의 다른 부인들과의 나이 차이를 보면, 1456년생인 공혜왕후, 1455년생인 폐비 윤씨보다는 나이가 적고, 1471년생인 숙의 권씨보다는 나이가 많다. 또 1462년생인 정현왕후와는 또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현왕후와 엄씨의 첫 출산 연도도 비슷하다. 엄씨와 가장 친밀했던 것으로 보이는 귀인 정씨와도 나이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귀인 정씨가 먼저 임신(1477년)했던 것을 보면 귀인 정씨가 약간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성종의 후궁들의 나이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들의 나이가 '귀인 정씨-소용 엄씨-숙의 권씨-정현왕후' 순이며, 정귀인과 엄소용이 성종보다 연상이라는 언급을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엄산수의 딸로 태어났으며, 언니와 여동생이 있었다. 언니는 왕족 중 한 명인 단계부정 이린(李潾)에게 시집갔고, 여동생은 말금(末今)이라는 이름으로 허칙동(許則同)의 아내가 되었다.
2.2. 후궁 생활과 폐비 윤씨 사건
영월 엄씨는 소용(昭容)으로 입궁하여, 후에 종2품 숙의(淑儀)를 거쳐 종1품 귀인(貴人)에 올랐다.
그녀는 성종의 또 다른 후궁인 귀인 정씨와 함께 중전 윤씨를 모함하여 폐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때문에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의 폐위와 죽음에 대한 원한으로 그녀와 정씨를 극도로 미워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은 음력 3월 20일 밤 창경궁 뜰에 엄씨와 정씨를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였다. 정씨의 아들들인 안양군(이㤚한국어)과 봉안군(이㦀한국어)에게 몽둥이로 두 사람이 숨질 때까지 때리게 하였다. 시체는 찢겨 젓갈로 만들어져 산과 들에 흩뿌려졌다.
엄씨의 아버지 엄산수는 80세가 넘어 연좌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1504년 음력 4월에 참수되었고, 엄씨의 유일한 소생인 공신옹주(恭愼翁主)는 폐서인이 된 후 아산으로 유배되었다. 세 명의 오빠들 또한 유배형에 처해진 후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
중종반정으로 중종 즉위 후, 엄씨와 그 가족들, 공신옹주는 모두 복위되었으며, 공신옹주는 유배 시 남편의 신주를 품고 가 제사를 지내어 그 절의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곡식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2.3. 갑자사화와 죽음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폐위와 죽음이 정씨와 엄씨 때문이라고 원망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음력 3월 20일 밤,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켜 창경궁 뒷뜰에 엄씨와 정씨를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였다. 정씨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안군에게 몽둥이로 두 사람이 숨질 때까지 때리게 하였다. 엄씨가 죽은 뒤 그 시체는 찢겨 젓갈로 만들어졌고, 연산군은 그것을 아무데나 뿌려버리도록 지시하였다.
엄씨의 가족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였으며, 아버지 엄산수는 80세가 넘은 고령자여서 연좌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4월 참수형에 처해졌다. 세 명의 오빠들 또한 유배형에 처해진 후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소생인 공신옹주는 폐서인이 된 후 아산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중종 즉위 후 엄씨와 그 가족들, 공신옹주는 모두 복위되었으며, 공신옹주는 유배 시 남편의 신주를 품고 가 제사를 지내어 그 절의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곡식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2.4. 사후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폐위와 죽음이 정씨와 귀인 엄씨 때문이라고 원망하였다. 1504년 (연산군 10년) 음력 3월 20일 밤, 연산군은 창경궁 뒷뜰에 엄씨와 정씨를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였다. 정씨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안군에게 몽둥이로 두 사람이 숨질 때까지 때리게 하였다. 시체는 찢겨 젓갈로 만들어져 산과 들에 흩뿌려졌다.
아버지 엄산수는 80세가 넘어 연좌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같은 해 4월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딸 공신옹주는 아산으로 유배되었다. 세 명의 오빠들 또한 유배형에 처해진 후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
중종 즉위 후 중종반정으로 엄씨와 그 가족들, 공신옹주는 모두 복위되었으며, 공신옹주는 유배 시 남편의 신주를 품고 가 제사를 지내어 절의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곡식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귀인으로 추증되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및 추가 정보 |
|---|---|
| 증조부 | 엄유온 (嚴有溫, 조선개국원종공신, 삼군도총제부 좌군동지총제) |
| 조부 | 엄극인 (진사, 이조판서 최부의 사위) |
| 아버지 | 엄산수 (嚴山壽, 1423년-1504년, 사직, 경기도 파주, 갑자사화 참형) |
| 어머니 | 남양 홍씨 |
| 숙부 | 엄송수 (세종 식년시 생원, 세조 춘장시 병과, 교리, 허업의 사위) |
| 숙부 | 엄강수 (세종 식년시 생원) |
| 오빠 | 엄훈 (선공감봉사, 경기도 이천으로 피신) |
| 오빠 | 엄회 (금천현감, 증공조참의, 갑자사화 참형) |
| 오빠 | 엄계 (증공조참의, 갑자사화 참형) |
| 부군 | 성종 (成宗, 1457년-1494년, 재위:1469년-1494년) |
| 딸 | 공신옹주 (恭愼翁主, 1481 ~ 1549) - 한명회의 손자 한경침에게 하가 |
| 조카 | 엄용순(嚴用順, 엄훈의 아들, 사마시, 갑자사화에 생존, 경기도 이천 육괴정), 엄용공(嚴用恭), 엄용홍(嚴用弘), 엄용관(嚴用寬) |
| 조카 | 엄한백(嚴漢伯), 엄한경(嚴漢卿), 엄한우(嚴漢友), 엄한붕(嚴漢朋) |
| 언니 | 이린실 |
| 여동생 | 엄말금 (허측 동실) |
| 기타 | 형 3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