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상관은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에 군량을 조달하고, 호조정랑, 진산군수, 회양부사, 장단부사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그의 둘째 아들 김광찬은 김상헌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김광찬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세도 정치를 이끌었다.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김상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566년 출생 - 제임스 1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왕위를 계승하여 영국-스코틀랜드 동군연합을 이뤘으나, 의회와의 갈등, 재정 문제, 종교 문제 등 여러 난관에 직면했고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으며, 문학과 예술을 후원하고 《킹 제임스 성경》 번역을 주도하는 등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 1566년 출생 - 사나다 노부유키
    사나다 노부유키는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으로, 아버지와 함께 우에다 성을 지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중신이 되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후 가족을 구하고 영지를 계승하여 마쓰시로 번주로 번영을 이끌었다.
  • 1621년 사망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크리스토파노 알로리는 베네치아 화풍의 색채와 피렌체 화풍의 드로잉 기법을 융합한 16세기 후기 피렌체 마니에리스모 화가로, 메디치 가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며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섬세한 기법으로 유명해졌고, 대표작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딧"은 현대에도 재해석되며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 1621년 사망 - 코시모 2세 데 메디치
    코시모 2세 데 메디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후원자로 알려진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이었으나 병약하여 모후와 왕비의 영향력 아래 통치하며 대공국 쇠퇴를 초래했고 마리아 마달레나 디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서 페르디난도 2세를 낳았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음보로 관직에 오른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았고,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의 후손들이 크게 현달하여 조선 후기 정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산12-4에 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음보(蔭譜)로 관직에 진출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시 관직에 있었다. 1599년(선조 32년)에는 호조정랑으로서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파견 군대에 군량을 조달·지원하였다. 1604년(선조 37년) 다시 호조정랑에 임명되었다.

1607년(선조 40년) 진산군수로 부임하였고, 이후 회양부사, 판관 등을 역임했다. 한 달 안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하기도 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1609년(광해군 1년)에는 장단부사로 임명되어 부임했다.

2.2. 임진왜란과 군량 조달

음보로 관직에 오른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9년(선조 32년)에는 호조정랑으로서 조선을 돕기 위해 파견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조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1604년(선조 37년) 다시 호조정랑으로 임용되었으며, 1607년(선조 40년)에는 진산군수로 부임하였다. 회양부사와 판관을 거쳐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하기도 했으나,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했다. 1609년(광해군 1년)에는 장단부사로 부임했다.

2.3. 지방관 역임

음보( 蔭譜ko-Hani )로 관직에 오른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9년(선조 32년)에는 호조정랑( 戶曹正郞ko-Hani )으로서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뒤 1604년(선조 37년) 다시 호조정랑으로 임용되었다.

1607년(선조 40년)에는 진산 군수( 珍山郡守ko-Hani )로 부임하여 지방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회양 부사( 淮陽府使ko-Hani )와 판관( 判官ko-Hani )을 거쳤다. 한때 정3품 당상관으로 빠르게 승진했으나 사헌부( 司憲府ko-Hani )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했다. 1609년(광해군 1년)에는 장단 부사( 長湍府使ko-Hani )로 부임했다.

2.4. 가문의 번성과 세도 정치

김상관의 둘째 아들 김광찬(金光燦)은 삼촌인 청음 김상헌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정권을 장악했으며, 특히 조선 말기 세도정치 시기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김광찬을 시작으로 김수항, 김창집, 김제겸, 김달행, 김이중, 김조순, 김좌근, 김병기로 이어지는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의 실질적인 선조가 바로 김광찬이다.

첫째 아들 김광혁(金光爀) 또한 1612년(광해군 4년) 임자 식년사마시(壬子式年司馬試)에 진사 1등으로 합격하고, 1624년(인조 2년) 갑자 알성문과(甲子謁聖文科)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내는 등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김상관 사후에는 후손들이 크게 성공하여(현달, 顯達), 그 공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종1품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

2.5. 후손들의 번성과 정치적 영향력

둘째 아들 김광찬(金光燦)은 삼촌인 청음 김상헌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정권을 좌지우지했으며, 조선 말기 세도정치의 주역이 되었다. 김광찬에서 시작하여 김수항, 김창집, 김제겸, 김달행, 김이중, 김조순, 김좌근, 김병기로 이어지는 세도 가문의 실질적인 선조가 바로 김상관의 아들인 김광찬이다.
김상관은 사후 후손들이 크게 현달(顯達)함에 따라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이후 다시 종1품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3. 가계

(내용 없음)

3.1. 가계도

* 조부 : 김생해(金生海, 1512 ~ 1558)
* 조모 : 이연환(李連環, 1510 ~ ?)
부친 : 김극효(金克孝, 1542 ~ 1618)
* 외조부 : 정유길(鄭惟吉, 1515 ~ 1588)
* 외조모 : 원대은개(元大隱介, 1514 ~ ?)
모친 : 정말정(鄭末貞, 1542 ~ ?)
* : 김상용(金尙容, 1561 ~ 1637)
* 본인 : 김상관(金尙寬, 1566 ~ 1621)
* 남동생 : 김상건(金尙蹇, 1567 ~ ?)
* 남동생 :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 - 큰아버지 김대효(金大孝)의 양자로 출계
* 남동생 : 김상복(金尙宓, 1573 ~ 1652)
* 정부인 : 남응정(南應井)의 딸 의령 남씨
적장녀 : 김유순(金柔順, 1587 ~ ?)
사위 : 연일 정씨 정홍택(鄭弘澤)
* 외손자 : 정보한(鄭輔漢, 1608 ~ ?)
* 외손자 : 정영한(鄭榮漢, 1610 ~ ?)
적장남 : 김광혁(金光爀, 1590 ~ 1643)
며느리 : 동중추(同中樞) 김존경(金存敬)의 딸 광산 김씨
* 손녀 : 성주 이씨 이빈(李忄+賓)의 처(1616 ~ ?)
* 손녀 : 김무일(金無一, 1620 ~ ?)
* 손녀 : 김애(金愛, 1628 ~ ?)
적차남 : 김광찬(金光燦, 1597 ~ 1668) - 작은아버지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출계
적차녀 : 김종순(金終順, 1594 ~ ?)
사위 : 진주 류씨 류시정(柳時定, 1596 ~ 1658)
* 외손녀 : 류혜애(柳惠愛, 1614 ~ ?)
* 외손자 : 류연(柳㝚, 1621 ~ ?)
* 외손녀 : 류혜숙(柳惠叔, 1627 ~ ?)
* 양첩 : 해생(海生)
서장남 : 김광업(金光㸁, 1603 ~ ?)
며느리 : 군수(郡守) 증 참판(贈 參判) 류춘발(柳春發)의 딸
며느리 : 군수(郡守) 허천경(許天慶)의 딸
서차남 : 김광적(金光熵, 1610 ~ 1673)
며느리 : 류옥(柳沃)의 딸
* 손자 : 김수억(金壽億, 1632 ~ ?)
며느리 : 민대남(閔大男)의 딸
* 손자 : 김수만(金壽萬, 1646 ~ ?) - 큰아버지 김광한(金光㸁)의 양자로 출계
* 손녀 : 김차응(金次應, 1648 ~ ?)
* 손자 : 김수천(金壽千, 1651 ~ 1724)
* 손자 : 김수백(金壽百, 1653 ~ ?)
* 손녀 : 김우응(金又應, 1659 ~ ?)
* 손자 : 김수기(金壽期, 1662 ~ 1694)
며느리(양첩) : 진이(珍伊)
* 서손자 : 김수하(金壽河, 1665 ~ ?)
서3남 : 김광료(金光炓, 1614 ~ ?)
며느리 : 판서(判書) 이명(李溟)의 서녀 전주 이씨
* 손녀 : 김숙일(金淑一, 1635 ~ ?)
* 손녀 : 김계애(金季愛, 1662 ~ ?)
며느리 : 현감(縣監) 증 참의(贈 參議) 이경선(李慶善)의 딸
* 손자 : 김수최(金壽最, 1655 ~ ?)
* 손녀 : 김종애(金終愛, 1666 ~ ?)
* 손녀 : 김소애(金小愛, 1670 ~ ?)
* 측실 : 이름 미상
서장녀 : 김신순(金申順, 1608 ~ ?)
사위 : 청해 이씨 이시로(李時老)
* 외손녀 : 이일애(李一愛, 1629 ~ ?)
* 외손녀 : 이이애(李二愛, 1632 ~ ?)
* 외손녀 : 이삼애(李三愛, 1635 ~ ?)
* 외손녀 : 이사애(李四愛, 1638 ~ ?)
* 외손녀 : 이오애(李五愛, 1641 ~ ?)
* 외손녀 : 이육애(李六愛, 1644 ~ ?)
* 외손녀 : 이칠애(李七愛, 1647 ~ ?)
서차녀 : 김갑순(金甲順, 1614 ~ ?)
사위 : 함평 이씨 주부(主簿) 이시양(李時陽)
* 외손녀 : 이망희(李望喜, 1631 ~ ?)
* 외손자 : 이지영(李之英, 1636 ~ ?)
* 외손녀 : 이차희(李次喜, 1641 ~ ?)
* 외손녀 : 이말희(李末喜, 1647 ~ ?)
* 외손자 : 이지형(李之馨, 165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