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김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2. 역사
김제 김씨의 시조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으로,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공양왕 말기인 1391년(공양왕 2년) 경주 김씨인 계림군 김균의 가신(家臣)이었다. 김균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김정걸은 이후 문화 류씨인 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인 이첨의 집사 등을 지내며 10년간 세 집안의 가신 생활을 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과 한성 생활을 거친 유생으로, 1402년(태종 2년) 태종에 의해 '''김제군'''(金堤君)에 봉해졌다. 이후 김정걸의 자녀들 중 장남은 한성에 정착하고 차남은 전라도 김제에 남으면서 후손들이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
2. 1. 시조 및 관향
김제 김씨의 시조(始祖)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으로,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공양왕 말기인 1391년(공양왕 2년) 경주 김씨인 계림군 김균의 가신(家臣)이었다. 김균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기도 하였다. 김정걸은 이후 문화 류씨인 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인 이첨의 집사 등을 지내며 10년간 세 집안의 가신 생활을 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과 한성 생활을 거친 유생으로, 1402년(태종 2년) 태종에 의해 '''김제군'''(金堤君)에 봉해졌다. 이후 김정걸의 자녀들 중 장남은 한성에 정착하고 차남은 전라도 김제에 남으면서 후손들이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
2. 1. 1. 시조 김천서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大安君 金殷說)의 서얼 현손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2. 2. 고려 말 조선 초
김제 김씨 시조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4대손)으로, 1184년(고려 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1188년(명종 18년) 월성부원군에 봉해졌다.[1] 1191년(명종 21년) 은퇴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약 200여 년 후,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고려 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경주 김씨 계림군 김균을 섬겼다. 조선 건국 이후 김균이 개국공신에 오르자 김정걸은 그의 가신이 되었다. 이후 문화 류씨 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 이첨의 가내 집사를 역임했다. 김정걸은 전라도 김제 출신으로 개경과 한성에서 생활했다. 1402년(태종 2년) 태종은 김정걸을 '''김제군'''(金堤君)에 봉했다.[1] 이후 김정걸의 후손들은 김제를 본관으로 삼아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었다.
2. 2. 1. 김정걸의 가계와 초기 활동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경주 김씨 계림군 김균(鷄林君 金稛, 1341년생~1398년졸)의 가신(家臣)이었다.[1] 김균이 개국삼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책록되면서, 1391년(공양왕 2년)부터 1394년(태조 2년)까지 3년 동안 김균의 가내 내신(家內 內臣)을 지냈다.이후 1394년(태조 2년)부터 2년간 문화 유씨 유양(柳亮, 1354년생~1416년졸)의 아들들인 유근(柳謹)과 유경생(柳京生) 형제의 문사(文師, 글스승)를 지냈다.[1]
1396년(태조 4년)부터 1401년(태종 1년)까지 5년간 신평 이씨 이첨 (李詹, 1345년생~1405년졸)의 가내 집사(家內 執事)를 맡았다.[1]
2. 2. 2. 조선 개국과 김정걸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조선 개국 공신인 계림군 김균(1341년생~1398년졸)을 섬겼다. 김균은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책록되었고,[1] 김정걸은 1391년부터 1394년까지 그의 가신(家臣)으로 있었다.이후 김정걸은 문화 류씨 유양(1354년생~1416년졸)의 차남과 삼남인 유근과 유경생 형제의 글선생을 2년간(1394~1396) 맡았고, 신평 이씨 이첨(1345년생~1405년졸)의 가내 집사(1396~1401)를 5년 동안 맡았다. 이로써 김정걸은 1391년부터 1401년까지 경주 김씨, 문화 류씨, 신평 이씨 세 집안의 가신으로 있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에서 3년(1390~1393), 한성에서 10년(1393~1403) 생활을 한 유생이었다. 1402년(태종 2년) 태종은 그를 '''김제군'''(金堤君)에 봉했다.[1] 김정걸의 장남 김병두(1373년(공민왕 22년)생~1435년(세종 17년)졸.)는 아버지를 따라 한성부에 정착했고, 차남 김부날(1377년(우왕 3년)생~1446년(세종 28년)졸.)은 고향 전라도 김제에 남았다. 이후 후손들은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1]
2. 3. 조선시대
조선시대 김제 김씨는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3. 주요 인물
3. 1. 역사 속 인물
3. 2. 현대 인물
'''김강정'''(金康正, 1943~2021): MBC 뉴스 보도 기자 출신으로, 제2대 iMBC 대표이사 사장(재임: 2001년 8월 9일~2002년 3월 18일)을 지낸 언론인이다.[2]
4. 인구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김제 김씨는 1,594가구, 5,220명이다.
참조
[1]
문서
1196년 고려 시대 수도 개경을 떠난 후 전라도 김제 정착
[2]
문서
1562년(조선 명종 17년)에 조선 전라도 김제 생으로, 아버지 김병익(金炳瀷)과 어머니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 사이에서 2남 3녀(5남매) 중 막내(차남)로 출생하여 1565년(조선 명종 20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1568년(조선 선조 1년)에 불교 승려로 출가 후 1612년(조선 광해군 4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라도 완주 대원사(완주군)(全羅道 完州 大院寺)에서 머무름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