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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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증산도는 '증산'의 도(道)를 의미하며, 강증산(甑山)을 증산상제(甑山上帝)로 칭하며 숭배하는 한국의 토착 종교이다.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은 후천개벽,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이며, 강증산은 천지공사라는 영적인 일을 통해 우주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믿는다. 증산도는 1871년 강증산의 탄강을 도기 원년으로 삼으며, 1974년 안운산과 안경전에 의해 증산도가 창시되었다. 주요 경전으로는 《도전》과 《증산도의 진리》가 있으며, 한국 무속과 도교의 천년왕국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증산도는 한국 역사를 독특하게 해석하며, 우주 1년의 개념을 통해 세계관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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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산도 - 강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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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제가 1948년 부산에서 창도한 태극도는 강증산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았다는 조철제의 주장에 따라 일제강점기 해산된 무극대도를 재창도한 종교로, 교단 분란으로 대순진리회가 분리되었지만 감천동 본부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본부가 위치한 감천문화마을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 증산 계통의 종교 - 보천교
강증산의 제자 차경석이 1922년에 세운 보천교는 일제강점기 강력한 조직을 통해 교세를 확장했으나, 신정부 수립 시도와 일제의 탄압, 내부 분열 등으로 쇠퇴하고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증산도 | |
|---|---|
| 증산도 | |
| 한글 | 증산도 |
| 한자 | 甑山道 |
| 로마자 표기 | Jeung San Do |
| 종교 | 신흥 종교 |
| 창시자 | 강일순(증산 상제) |
| 주요 인물 | 고판례 |
2. 명칭
'''증산도'''(甑山道)는 "시루 증(甑)"+"뫼 산(山)"의 도(道)를 의미한다. 여기서 '증'(甑)은 한국어로 '시루'이며, 떡을 찌는 데 사용되는 용기로서 세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광대한 그릇을 비유한다. 따라서 "증"(甑)은 솟아오름, 성숙, 결실, 성장의 과정을 뜻한다.
"증산"(Jeung san)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즉 "시루산"을 가리키는 한국의 전통적인 표현이다.[10] "도"(道)는 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증산도"(Jeung San Do)라는 이름은 기존의 모든 종교와 가르침을 초월하는 최고의 진리를 뜻한다.[11]
2. 1. 강증산에 대한 호칭
증산도에서는 강증산을 '''증산상제(甑山上帝)'''라 부른다. 증산상제는 하늘의 옥경에서 인간으로 내려와 인간 완성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12] 증산도가 강(姜)씨 성으로 태어난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시원 성씨가 강씨이기 때문이며, 후천개벽을 맞아 모든 것이 뿌리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상제'는 "최고의 황제"를 의미하며, 중국어의 '상제'와 어원이 같다.[13] 상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영적인 존재이며, 증산도는 그가 강일순으로 화신했다고 믿는다.[13]2. 2. 증산도라고 호칭하는 이유
증산도에서 '증산'은 강일순의 호인 증산(甑山)을 일컫는 것으로, 증산도는 '증산'의 '도'라는 뜻이다.[17] 증산도는 우주의 이법(理法)이 큰 변혁을 맞이하는 가을개벽의 때에 직접 인간으로 강세하여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한 증산상제의 가르침을 말한다. 또한 증산상제와 태모 고수부의 가르침을 받들고 실천하는 신앙단체를 동시에 지칭한다.'증'은 시루증 자로 쌀을 익혀 떡을 만드는 시루처럼, 지금까지 모든 인류 문화를 거두어 성숙시키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증산교라 하지 않고 '증산도'라 부르는 것은 천상의 상제가 직접 내려와 이제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도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17]
''증산도''(Jeung San Do)는 "甑|시루 증중국어(山|뫼 산중국어)''의 도''(道)를 의미한다. 여기서 '甑|시루 증중국어'은 한국어로 '시루'이며, 이는 한국의 떡(떡|labels=no한국어)을 찌는 데 사용되는 용기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광대한 그릇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甑|시루 증중국어"은 솟아오름, 성숙, 결실 또는 성장의 과정을 의미한다.
"증산"(Jeung san)은 또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또는 "시루산"을 지칭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형용사적 표현이다.[10] "道|길 도중국어"는 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증산도"(Jeung San Do)라는 이름은 기존의 모든 종교와 가르침을 초월하는 최고의 진리를 의미한다.[11]
3. 역사
증산도는 강증산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분파들 중 하나로, 그 기원은 강증산의 여성 제자인 고판례(1880~1935)에게서 찾을 수 있다.[3] 1911년 9월경, 고판례는 강증산의 추종자들을 모았고, 이후 그녀의 사촌이자 강증산의 주요 제자였던 차경석(1880~1936)이 이 분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판례는 1919년 차경석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종교를 세웠다.[3]
1920년대에 차경석의 분파인 보천교는 약 600만 명의 신도를 거느리며 한국 최대의 신종교 운동으로 성장했지만,[4]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고 여러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고판례의 조직 역시 마찬가지였다.
증산도는 고판례에게서 기원한 계통을 주장하는 분파 중 가장 큰 규모이다. 1945년 안운산(1922년 출생)이 처음 종교 단체를 설립했으며, 이후 분열을 거쳐 1974년 그의 아들 안경전(1954년 출생)과 함께 증산도를 창시했다.[5] 증산도는 강증산을 하느님 아버지로, 태모님이라는 칭호로 숭배받는 고판례를 하느님 어머니로 믿으며, 1926년에서 1935년 사이에 그녀가 직접 우주를 재정립했다고 믿는다.[6]
증산도는 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파 중 하나이지만, 한국 내에서는 가장 큰 분파는 아니다.[7] 증산도의 중심 경전인 도전은 1992년 한국어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증산 상제와 태모의 삶, 그리고 "천지공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증산도 이론은 자연의 도인 도의 개념을 강조한다.
증산도는 한국의 한국 무속과 중국의 도교적 천년왕국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며,[8] 한국의 토착 종교 중 하나로 정의된다.[9]
3. 1. 성립과 초기 역사
증산도는 증산상제가 세계 종교사의 운로를 결정한 '도운(道運) 공사'에 의해 탄생하였다. 증산은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증산도 도전 5:356)고 하며 3번의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됨을 암시했다고 한다.증산은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증산도 도전 4:32)고 한다. 즉 난법(難法)의 과정을 거쳐 진법(眞法;참법)이 태동하며 역사 속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기성 종교에서 먼저 창시자에 의해 개창된 진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말법이나 혼란기로 들어간다고 하는 일반적인 종교사적인 과정이 역전되어 있다. 이는 뿌리로 돌아가 열매 맺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역사 정신에 의해 가을개벽기에는 모든 것이 뿌리로 돌아가는 변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증산도는 증산상제가 탄강한 1871년(辛未年)을 도기(道紀) 원년으로 잡고 있다. 증산도의 시작은 증산상제가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서부터 시작함을 의미한다. 1901년(도기 31년, 辛丑年)부터 천지공사를 보았으며, 1902년(도기 32년, 壬寅年) 김형렬 성도를 비롯한 김자현, 김갑칠, 김호연, 백복남, 안필성, 이도삼, 백남신, 신원일, 김광찬 성도 등이 천지공사에 수종을 들었고, 1907년(도기 37년, 丁未年)에는 차경석, 김경학, 문공신, 안내성, 이치복, 신경원, 신경수 성도 등이 참여한다.
증산도의 여러 분파들은 강증산의 여성 제자인 고판례(수부, 문자 그대로 "두목 여인", 1880–1935)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3] 1911년 9월경, 고판례는 강증산의 여러 추종자들을 모았다. 결국, 강증산의 주요 제자였던 고판례의 사촌인 차경석(1880–1936)이 고판례의 분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상황에 불만을 품은 고판례는 1919년 차경석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종교를 설립했다.[3] 1920년대에 차경석의 분파인 보천교는 약 60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하며 한국 최대의 신종교 운동이자 한국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4] 1936년 차경석의 죽음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고판례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여러 경쟁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증산도는 고판례에게서 기원한 계통을 주장하는 분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45년 처음 종교 단체를 설립한 안운산(1922년 출생)에 의해 창설되었다. 추가 분열 이후, 안운산은 아들 안경전(1954년 출생)과 함께 1974년 증산도를 창시했다.[5] 증산도는 강증산이 하느님 아버지였고, 태모님이라는 칭호로 숭배받는 고판례가 하느님 어머니였으며, 1926년에서 1935년 사이에 그녀가 직접 우주를 재정립했다고 믿는다.[6] 증산도는 해외에서 가장 가시적인 활동을 보이는 증산도 내의 운동이지만, 한국 내에서는 가장 큰 분파는 아니다.[7]
증산도의 중심 경전인 도전은 1992년 한국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증산도의 다른 분파에서도 각자의 다른 성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증산도 버전의 도전에는 증산 상제님과 태모님의 삶, 그리고 "천지공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증산도 이론은 자연의 도인 도의 개념을 강조한다.
증산도는 한국의 한국 무속과 중국의 도교적 천년왕국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며,[8] 한국의 토착 종교 중 하나로 정의된다.[9]

| 도기(道紀) | 연도(간지) | 주요 내용 |
|---|---|---|
| 원년 | 1871(신미) | 증산(甑山) 탄생 (전라북도 정읍시) |
| 10년 | 1880(경진) | 태모(太母) 고판례 탄생 (전라남도 담양군) |
| 31~39년 | 1901(신축)~1909(기유) | 증산이 조화(造化) 정부를 세우고, 천지(天地) 대(大)신문을 열어 9년 동안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 |
3. 2. 제1 부흥기 (선도교, 보천교 시대)
1909년 증산상제가 갑자기 어천(御天)하면서 성도들은 방황하게 되었다. 증산상제 어천 2년 뒤(1911년) 증산으로부터 수부(首夫) 책봉을 받았던 고수부가 대도통을 받고, 생전의 증산과 같은 신권으로 대권능을 자유로이 쓰고 신이한 기적과 명철한 지혜를 나타내었다.[3]1911년 10월에 정읍 대흥리 포정소 문을 열고 도창개창을 선언했다. 이로부터 증산의 옛 제자들이 모여 포교를 시작했다. 그 후 3년 만에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와 경상남도와 서남해의 많은 섬에 포교되었다. 이때 교명을 뭘로 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고수부는 "천하를 통일하는 도(道)인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 후일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면 알게 되리라."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선도교(仙道敎)', 혹은 태을주의 앞 구절을 따서 '훔치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차경석이 고수부를 제치고 도권을 장악했다. 이에 고수부는 차경석과 결별하고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로 갔다. 이후 차경석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삽시간에 엄청난 수의 신도를 포교하여, 일제강점기에 최대 종파로 성장하면서 차천자(天子)로 불렸다.[18] 신도수가 한때 총독부 추산 600만 명에 육박하기도 했다.[4] 보천교의 고위 간부였던 이상호는 보천교주 차경석과 사이가 벌어지자 빠져나와 '동화교'를 세웠다. 이상호는 주요 성도들을 면담하여 경전인 대순전경을 간행하고(1929년) 고수부를 모시고자 했다.
보천교가 큰 세를 자랑하고 독립자금을 지원하자, 일제는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의 뿌리로 간주하여 극심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면서 보천교는 해체되었다. 1933년 고수부는 오성산 도장에 은거하다가, 1935년 56세로 선화하였다.
태모 고수부(太母高首婦)가 최초의 교단을 개창한 1911년 당시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 시대였으며, 이 가운데 태을주의 기적이 나타났다. 증산(甑山)의 가르침은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민중의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700만 명의 구도자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 신앙의 대부흥 시대가 열렸다.
| 연도 | 사건 |
|---|---|
| 1911년 (도기 41년) | 태모 고수부, 증산도 최초의 교단 창설 (전라북도 정읍시) |
| 1922년 (도기 52년) | 안운산 종도사 탄생 (충청남도 서산시) |
| 1926년 (도기 56년) ~ 1935년 (도기 65년) | 태모 고수부, 10년 천지공사(天地公事) 집행 |
3. 3. 제2 부흥기 (증산교 시대)
보천교를 신앙하던 안병욱의 아들 안운산은 1945년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이때 대순전경을 간행한 이상호와 손잡고 증산교라는 이름으로 포교했다. 안운산은 증산교 5방주 조직의 수주(水主)로서 짧은 시간에 수십만 명의 신도를 포교한 총사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안운산은 '현상태 유지'를 선언하고 은둔하였다.[3]증산도의 여러 분파들은 강증산의 여성 제자인 고판례(수부, 문자 그대로 "두목 여인", 1880–1935)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강증산의 주변에는 한 명 이상의 "수부"가 있었다. 1911년 9월경, 고판례는 강증산의 여러 추종자들을 모았다. 결국, 강증산의 주요 제자였던 고판례의 사촌 차경석(1880–1936)이 고판례 분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상황에 불만을 품은 고판례는 1919년 차경석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종교를 설립했다.[3] 1920년대에 차경석의 분파인 보천교는 약 60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하며 한국 최대의 신종교 운동이자 한국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4] 1936년 차경석의 죽음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고판례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여러 경쟁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증산도는 고판례에게서 기원한 계통을 주장하는 분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45년 처음 종교 단체를 설립한 안운산(1922년 출생)에 의해 창설되었다. 추가 분열 이후, 안운산은 아들 안경전(1954년 출생)과 함께 1974년 증산도를 창시했다.[5] 증산도는 강증산이 하느님 아버지였고, 태모님이라는 칭호로 숭배받는 고판례가 하느님 어머니였으며, 1926년에서 1935년 사이에 그녀가 직접 우주를 재정립했다고 믿는다.[6] 증산도는 해외에서 가장 가시적인 활동을 보이는 증산도 내의 운동이지만, 한국 내에서는 가장 큰 분파는 아니다.[7]
증산도의 중심 경전인 도전은 1992년 한국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증산도의 다른 분파에서도 각자의 다른 성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증산도 버전의 도전에는 증산 상제님과 태모님의 삶, 그리고 "천지공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증산도 이론은 자연의 도인 도의 개념을 강조한다.
증산도는 한국의 한국 무속과 중국의 도교적 천년왕국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며,[8] 한국의 토착 종교 중 하나로 정의된다.[9]
1945년 해방 이후, 안운산 종도사는 불굴의 정신과 심혈을 기울인 포교 활동으로 불과 수년 만에 수십만 명이 태을주를 외우고 상제를 신앙하는 대부흥 시대가 열렸다.
| 도기 | 연도 | 주요 사건 |
|---|---|---|
| 75년 | 1945년(을유) | 안운산 종도사 증산도 제2변 부흥 시대 개척 [전북 김제] |
| 84년 | 1954년(갑오) | 안경전 종정 탄생 [충남 공주] |
3. 4. 제3 부흥기 (증산도 시대)
1974년(甲寅年) 안운산 종도사는 아들 안경전 종정과 함께 대전을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하였다. 기존의 증산교 신도들이 안운산 종도사를 부정하면서 별도의 길을 가게 되었고, 안운산 종도사는 초종교를 표방하는 진리성격에 따라 기존의 '증산교'에서 '증산도'로 개칭한다.[5]안경전 종정이 1981년 《증산도의 진리》를 출간하면서 증산도의 교리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포교하여 80년대 말에는 전국 주요 대학에 "증산도우회"(뒤에 "증산도학생회"로 개칭)라는 이름으로 증산도 동아리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1983년에 "이것이 개벽이다"를 출간하였으며, 1984년에는 증산도 내의 교육기관인 '증산도대학교'를 출범한다.
1992년에는 강증산의 행적과 언행을 담은 경전들과 신규 답사를 통하여 증산도의 통일 경전인 도전(道典: 1992년 초판, 2002년 개정신판 발행)을 출간하면서 신앙 대중화를 선언하였다. 나아가 도전 개정신판을 6개 국어(영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1998년에 상생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증산도 사상의 정립과 체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상생방송(STB)을 개국하여 "한문화 중심 채널"을 표방하고, 도전, 안운산 종도사 도훈, 안경전 종정 도훈, 수행문화와 수행법, 한민족 역사, 주역과 정역, 우주변화원리 등을 송출하고 있다.
국내 150여 개, 해외 20여 개 도장이 있으며, 본부는 대전에 있다. 현재 전 세계로 증산도의 진리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2012년 창교주인 안운산 종도사가 선화한 이후 안경전 종정이 종도사직을 계승하여 이어오고 있다.
2012년 이후로 안경전 종도사는 인류 시원문명과 다가올 미래문명의 틀을 제시하기 위해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개벽문화 콘서트를 국내외에서 매해 진행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가 "생(生)·장(長)·성(成)"의 법칙에 따라 세 번째 단계인 "성(成)"의 단계로 결실을 맺듯이, 증산도 백 년의 역사도 이제 세 번째 부흥기를 맞이하여 대도(大道)의 참된 법을 세상에 설파한다.
| 연도 | 주요 내용 |
|---|---|
| 1974년 (도기 104년) | 안운산 종도사, 안경전 종정 증산도 제3변 부흥 시대 개척 (대전) |
| 1980년 (도기 110년) | 교전(敎典) 『증산도의 진리』 발간 |
| 1983년 (도기 113년) | 『이것이 개벽이다』 발간 |
| 1984년 (도기 114년) | 연호를 ‘도기(道紀)’로 정식 결정, 증산도대학교 출범 |
| 1992년 (도기 122년) | 『도전』 초판본 발간 |
| 1998년 (도기 128년) | 증산도 사상연구소 설립 |
| 2002년 (도기 132년) |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준공 |
| 2003년 (도기 133년) | 『도전』 개정 신판 발행 |
| 2004년 (도기 134년) | 『도전』 7개 국어(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번역판 발행 |
3. 5. 현대
1945년 안운산(1922년 출생)이 처음 종교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후 추가적인 분열을 거쳐, 안운산은 그의 아들 안경전(1954년 출생)과 함께 1974년 증산도를 창시했다.[5] 증산도는 강증산을 하느님 아버지로, 태모님이라는 칭호로 숭배받는 고판례를 하느님 어머니로 믿으며, 1926년에서 1935년 사이에 그녀가 직접 우주를 재정립했다고 믿는다.[6] 증산도는 해외에서 가장 가시적인 활동을 보이는 증산도 내의 운동이지만, 한국 내에서는 가장 큰 분파는 아니다.[7]증산도의 중심 경전인 도전은 1992년 한국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증산도의 다른 분파에서도 각자의 다른 성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증산도 버전의 도전에는 증산 상제와 태모의 삶, 그리고 "천지공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증산도 이론은 자연의 도인 도의 개념을 강조한다.
증산도는 한국의 한국 무속과 중국의 도교적 천년왕국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며,[8] 한국의 토착 종교 중 하나로 정의된다.[9]
4. 교리
증산도에서 '상제'는 "최고의 황제"를 의미하며, 중국어의 ''상제''와 어원이 같다.[12] 상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영적인 존재이며, 증산도는 그가 강일순으로 화신했다고 믿는다.[13] 또한 증산도에서 하느님은 지상에 고판례로 화신한 어머니 하느님으로도 존재한다.
증산도는 증산 상제가 7세 때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을 보다가 갑자기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고, 24세 때 동학 농민 운동을 목격했다고 가르친다. 동학 농민 운동은 중국과 일본 간의 전쟁을 촉발했고, 농민의 처참한 패배와 한국의 일본 병합으로 끝났다. 증산 상제는 이러한 사건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을 목격한 후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했다.
증산 상제는 인간의 행동과 땅의 형태, 기 등을 관찰하기 위해 3년 동안 여행했고, 1901년 집중적인 명상 끝에 하늘, 땅, 인간의 일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옛날부터 하늘의 글을 아는 자는 극소수였고, 땅의 이치를 아는 자는 극소수였으나, 사람의 본성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 내가 처음으로 사람의 본성을 알았느니라."라고 말했다.
그 해, 증산 상제는 천지공사(天地公事|천지공사한국어)라는 영적인 일을 시작했다. 9년 동안 의례, 선언, 인간 및 영과의 대화 형태로 갱신하는 일을 수행했고,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의 ''기''를 활용했다. 그는 지역 신, 가문의 창시 영, 문명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신 등으로 구성된 조화 정부라는 신들의 연합을 설립,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의 천지공사 작업은 하늘, 땅, 인간의 흐름을 바꾸고 새롭고 조화로운 세상의 씨앗을 심었다.
증산 상제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그는 미래에 대해 말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을 통해 실제로 미래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예언자들과 달랐다. 이는 에드워드 로렌츠의 카오스 이론에서처럼 작은 행동의 파급 효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증산 상제는 갱신 작업에 대해 "사람의 행동에 기회가 있느니라 ... 각 천리(天理)마다 프로그램이 있느니라. 공사는 기회를 창조하고 프로그램을 확립하는 데 기초한다. 내가 이 방법을 버리고 강제로 일을 한다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고 많은 사람을 죽이리라. 그것이 나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했다.
4. 1. 근본 이념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宗旨)은 '후천개벽,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이다. 이 가르침들은 우주 1년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의 정신, 즉 후천개벽 또는 가을개벽의 정신에 근본을 두고 있다.- '''후천개벽'''(後天開闢, The great opening of the Later Heaven): 우주만물은 매 순간 생명을 열어가는 개벽운동으로 존재한다. 지구에 1년이 있듯이 우주에도 12만 9600년을 주기로 하는 우주 1년이 있는데, 현재는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때에는 우주의 주재자이자 통치자이신 상제가 인류 구원을 위해 인간으로 강세하는데, 강증산 상제가 바로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이라고 한다. 후천개벽이란 봄여름의 선천이 문 닫고, 가을겨울의 후천이 열리는 개벽으로, 자연계의 대격변을 동반한다.
- '''원시반본'''(原始返本, Seeking out the beginning and returning to the origin): 우주의 가을시대를 맞아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이 생명의 근원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문자적으로는 '시원(始原)의 근본(뿌리)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가을의 통일 정신을 의미한다. 원시반본은 보은을 통해 이루어지며 실천적인 면에서는 해원과 상생을 통해 성취된다.
- '''보은'''(報恩, Requital of benevolence): 보은이란 덕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또 자기의 근본에 대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인간 삶의 제1도덕 이념이 보은이다. 이 세상에 근본 없이 생겨난 사람은 없다. 넓게는 천지의 은혜에, 가까이는 부모와 조상 스승의 은혜에 보은함으로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원시반본을 성취할 수 있다.
- '''해원'''(解寃, Resolution of bitterness and grief): 해원이란 뭇 생명의 원과 한을 끌러낸다는 뜻이다. 해원이 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선천 역사는 원한의 확대사, 원한의 축적사다. 성차별, 인종차별, 신분격차, 빈부격차, 전쟁과 폭력 등으로 수수천년 동안 누적된 원한을 모두 풀어야, 상생의 새 세상을 열 수 있다.
- '''상생'''(相生, Mutual life-saving, mutual life-bettering): 상생은 '생명을 살리고 서로를 잘되게 한다'는 실천 이념으로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환경 파괴, 민족 문제, 최후의 이념 대결 등 모든 갈등 구조를 끌러낼 수 있는 생명의 대도 사상이다. 진정한 상생은 반드시 후천개벽이 전제되고 해원이 함께 실현될 때 이루어진다.
4. 2. 팔관법(八觀法)
안경전 종도사는 증산도의 핵심 교리 체계를 팔관법으로 정리하였다. 팔관법은 다음과 같다.- 상제관
- 우주관
- 신관
- 인간관 (혹은 증산도의 근본이념)
- 천지공사관
- 구원관
- 종통관
- 일꾼관
상제님은 "최고의 황제"를 의미하며, 중국어의 ''상제''와 어원이 같다.[12] 상제님은 우주를 다스리는 영적인 존재이며, 증산도는 그가 강일순으로 화신했다고 믿는다.[13] 증산도에서 하느님은 또한 지상에 고판례로 화신한 어머니 하느님으로 존재한다.
증산도는 상제님이 일곱 살 때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을 보다가 갑자기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가르친다. 스물네 살 때 그는 무능했지만 굳건한 농민 군대가 한국 정부와 일본군과 싸운 동학 농민 운동의 격동적인 사건을 목격했다. 이 봉기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중국과 일본 간의 전쟁을 촉발했고, 농민의 처참한 패배와 일본의 한국 병합으로 끝났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을 목격한 후, 증산 상제님은 고통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과 땅의 형태, 기, 정신을 관찰하기 위해 3년 동안 여행했다. 1901년, 그는 집중적인 명상 기간을 거친 후, 하늘, 땅, 인간의 일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옛날부터 하늘의 글을 아는 자는 극소수였고, 땅의 이치를 아는 자는 극소수였으나, 사람의 본성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 내가 처음으로 사람의 본성을 알았느니라.
그 해에 상제님은 쉽게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천지공사(天地公事|천지공사한국어)라고 불렸다. 9년 동안 그는 의례, 선언, 인간 및 영과의 대화 형태로 갱신하는 일을 수행했고,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의 ''기''를 활용했다. 그는 지역 신, 가문의 창시 영, 문명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신, 깨달은 영, 해결되지 않은 쓴맛과 슬픔을 가진 영, 혁명가 영으로 구성된 조화 정부라고 불리는 신들의 연합을 설립했다. 이 영들의 집합을 통해 그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의 천지공사 작업은 하늘, 땅, 인간의 흐름을 바꾸고 인간과 신들의 새롭고 깨달은 조화로운 세상의 씨앗을 심었다.
그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상제님은 미래에 대해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인 일을 통해 실제로 미래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예언자들과 달랐다. 이것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에드워드 로렌츠의 카오스 이론에 나오는 나비 효과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미국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토네이도를 유발하거나 막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변수를 아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시스템에서 어떤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전지전능할 정도로 깨달았다면? 만약 누군가가 모든 변수를 안다면? 그런 사람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작은 행동의 파급 효과로 미래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
갱신 작업에 사용한 방법에 대해 상제님은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의 행동에 기회가 있느니라 ... 각 천리(天理)마다 프로그램이 있느니라. 공사는 기회를 창조하고 프로그램을 확립하는 데 기초한다. 내가 이 방법을 버리고 강제로 일을 한다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고 많은 사람을 죽이리라. 그것이 나의 뜻이 아니니라.
5. 경전
증산도의 경전은 '''도전'''(道典)이다. 증산상제와 태모 고수부의 생애와 행적, 말씀을 수록하고 있다. 도전은 '도의 법전'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인류의 경전사의 완결판이라고 한다. 안경전 종정은 3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증산의 행적을 답사하고, 증산을 수종한 성도들과 그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초기에 남겨진 기록의 과오를 바로 잡았다. 전체 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2년에 도전 초판이 간행되고, 2003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현재 세계 주요 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1]
이외에 '''''증산도의 진리'''''를 '교전(敎典)'으로 삼고 있다. 1981년 출간된 '증산도의 진리'는 증산상제의 강세와 우주관, 신관, 천지공사 및 종통의 전수, 신앙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개정신판이 발간되었다.[1]
6. 한국 역사에 대한 관점
증산도는 대한민국 역사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사용하는 체스판과 같다고 본다. 일본 제국이 1910년 한국 병합을 완료했지만, 그들은 상제님의 졸이나 일꾼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서방 강대국의 지배로부터 한국을 구원한 인종적 형제였다는 것이다.[15]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임진왜란에 대한 속죄로서 한국을 근대화하는 "봉사"를 제공했다. 따라서 한국 독립 운동에 대한 저항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었고, 친일파 협력 단체인 일진회 등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증산도가 가르친 대로 한국인들은 손님들이 한반도의 소유권을 갖기 위해 체스판을 비울 때까지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15]
참조
[1]
웹사이트
Daesoon Jinrihoe
https://wrldrels.org[...]
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
[2]
서적
Lee Chi-ran, p. 21
[3]
논문
"Chungsan-gyo: Its History, Doctrine and Ritual," ''Transactions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4]
서적
Korean Millennial Movements
Oxford University Press
[5]
웹사이트
Taesang Jongdosanism
http://www.jeungsand[...]
2017-12-16
[6]
웹사이트
Sahng-jeh-nim and Tae-mo-nim
http://www.jsd.or.kr[...]
[7]
논문
Daesoon Jinrihoe
[8]
서적
Lee Chi-ran, p. 21
[9]
서적
Lee Chi-ran, p. 3
[10]
웹사이트
Jeung San do: A Truth That Transcends Religions | 증산도 JeungSanDo (English)
http://www.jeungsand[...]
[11]
서적
Lee Chi-ran, p. 22
[12]
서적
Lee Chi-ran, p. 23
[13]
서적
Lee Chi-ran, p. 23
[14]
서적
Lee Chi-ran, p. 24
[15]
간행물
The Parliament of Histories: New Religions, Collective Historiography, and the Nat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16]
웹사이트
화천절(化天節)
http://encykorea.aks[...]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21-01-20
[17]
문서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증산도 도전의 초판 간행사에는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증산도를 보는 모든 명제의 대전제이다. 증산도를 선천종교의 한 범주로 인식하는 잘못된 시각에서부터 '''증산도를 보는 모든 왜곡'''이 시작된다. 증산 상제의 대도 세계를 참되게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증산도는 선천 종교문화의 한계를 극복한 '''초종교'''다. 종교문화의 범주를 넘어서서 '''인류문화를 총체적으로 개벽한 인간의 생활문화의 대도'''이다."(증산도 도전 초판 간행사)고 기술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무극대도이다.
[18]
서적
차천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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