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고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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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준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최충헌의 가노였던 김윤성의 아들이다. 최씨 정권 붕괴 후 권력을 잡았으나, 몽골과의 전쟁 지속을 주장하며 친족 등용으로 부패를 초래했다. 1258년 임연 등과 함께 최의를 살해하고 왕정복고를 이룬 공으로 교정별감이 되었고, 문하시중, 해양후에 봉해져 최충헌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1268년 개경 환도에 반대하다 양아들 임연에게 살해당했으며, 그의 사후 무신정권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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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는 최충헌의 증손자이자 최우의 손자로, 아버지 최항 사후 무신정권을 계승했지만, 김인준 등에 의해 살해당하며 최씨 무신 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김준 (고려 후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김준 |
한자 | 金俊 |
로마자 표기 | Gim Jun |
분야 | 고려 무신 |
직위 | |
재임 시작 | 1258년 |
재임 종료 | 1268년 |
이전 지도자 | 최의 |
다음 지도자 | 임연 |
생애 | |
출생 | 미상 |
사망 | 1268년 음력 12월, 강화도 정궁 편전 정당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안심 이름 미상 |
자녀 | 김대재 김용재 김석재 김애 김기 김정 |
아버지 | 김윤성 |
관직 및 지위 | |
최종 계급 | 무관 권신 정치인 |
주요 직책 | 문하시중 교정도감 해양후 |
복무 | 고려군 |
참전 | 고려-몽골 전쟁 |
교정별감 임기 | 1258년 ~ 1268년 |
2. 생애
최충헌의 가노(家奴)였던 김윤성(만적의 난에 가담하여 항쟁하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준은 중랑장 박송비의 추천으로 최우에게 신임을 얻었다. 최우의 첩과 간통한 사실이 탄로나 곤장 40대를 맞고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이후 최항을 섬겼다.[1]
1257년 최항이 죽고 그의 서자(庶子)인 최의가 집권하자 불만을 품었다. 1258년(고종 45년) 임연, 유경, 최온 등과 함께 삼별초를 이끌고 최의를 살해하고 권력을 고려 황실에 돌려주었다. 최씨 무신정권의 권력 중심인 사병 조직 도방을 없애고, 최씨 일가의 재산을 황실에 반납하여 왕정복고를 이루었다. 이로써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진 최씨 일가는 몰락했다.
최씨정권을 타도하고 황권을 회복시킨 공로로 장군, 위사공신(衛社功臣) 등이 되었다. 그 후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 비위(非違)를 규찰하고 국사를 감독했다. 이어 시중이 되고 해양후(海陽侯)에 봉해져 무인정권 최고 권력자인 교정별감 자리에 올라 최충헌에 견줄 만한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김준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최의를 제거할 때 협력했던 측근들이 떠나갔다. 1268년 고려 원종 9년 12월, 고려 원종의 몽골에 조공을 바치는 정책과 개경 환도에 반대하다가, 측근이자 양아들인 임연과 그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김준의 죽음과 함께 그의 일가는 멸문지화(滅汶摯禍)를 당했고, 측근들도 반란·내란죄로 처형당했다.
김준 사후, 임연이 1년간 정권을 이끌다 병사했고, 임연의 아들 임유무도 3개월간 정권을 잡았다가 친몽정책에 동의하는 문신들에게 살해되었다. 이로써 1170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 무신정권은 막을 내렸다.
1270년 고려 원종은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출륙환도(出陸換都)했고, 이후 고려 왕들은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시호 앞에 '충(忠)' 자를 쓰게 되었다. 원나라는 고려 황실의 정통성을 없애기 위해 황족의 딸들을 고려 임금과 혼인시켜 부마국(夫麻國)으로 전락시키고, 황제에서 왕으로 지위를 격하시키는 등 여러 수모와 굴욕을 가했다.
2011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난파선 마도 3호선에서 김준에게 보내는 진상품과 이를 확인하는 죽간이 발견되어, 생전 그의 막강한 권력을 짐작하게 한다.[1]
2. 1. 초기 생애와 최씨 정권
최충헌의 가노(家奴)였던 김윤성(만적의 난에 가담하여 항쟁하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준은 중랑장 박송비의 추천으로 최우에게 신임을 얻었다. 최우의 첩과 간통한 사실이 탄로나 곤장 40대를 맞고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이후 최항을 섬겼다.[1]2. 2. 집권과 무신정권
최충헌의 가노(家奴)였던 김윤성(만적의 난에 가담)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랑장 박송비의 추천으로 최우에게 신임을 얻었으나, 최우의 첩과 간통한 사실이 탄로나 귀양을 가기도 했다. 이후 최항을 섬겼다.1257년 최항이 죽고 그의 서자(庶子)인 최의가 집권하자 불만을 품었다. 1258년(고종 45년) 임연, 유경, 최온 등과 함께 삼별초를 이끌고 최의를 살해하고 권력을 고려 황실에 돌려주었다. 최씨 무신정권의 권력 중심인 사병 조직 도방을 없애고, 최씨 일가의 재산을 황실에 반납하여 왕정복고를 이루었다. 이로써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진 최씨 일가는 몰락했다.
최씨정권을 타도하고 황권을 회복시킨 공로로 장군, 위사공신(衛社功臣) 등이 되었다. 그 후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 비위(非違)를 규찰하고 국사를 감독했다. 이어 시중이 되고 해양후(海陽侯)에 봉해져 무인정권 최고 권력자인 교정별감 자리에 올라 최충헌에 견줄 만한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김준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최의를 제거할 때 협력했던 측근들이 떠나갔다. 1268년 고려 원종 9년 12월, 고려 원종의 몽골에 조공을 바치는 정책과 개경 환도에 반대하다가, 측근이자 양아들인 임연과 그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김준의 죽음과 함께 그의 일가는 멸문지화(滅汶摯禍)를 당했고, 측근들도 반란·내란죄로 처형당했다.
김준 사후, 임연이 1년간 정권을 이끌다 병사했고, 임연의 아들 임유무도 3개월간 정권을 잡았다가 친몽정책에 동의하는 문신들에게 살해되었다. 이로써 1170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 무신정권은 막을 내렸다.
2. 3. 대몽 항쟁과 최후
1258년(고종 45년) 임연, 유경, 최온 등과 함께 삼별초를 앞세워 최의를 죽이고 그 권력을 고려 황실에 되돌려주었다.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 조직인 도방을 혁파하고, 최씨 일가의 모든 재산을 황실에 반납하여, 최충헌부터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지는 4대 최씨 정권은 몰락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1]김준은 최씨 정권을 타도하고 황권을 회복시킨 공으로 장군, 위사공신(衛社功臣) 등에 올랐다. 이후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 비위(非違)를 규찰하고 국사를 감독했으며, 시중, 해양후(海陽侯)에 봉해졌다. 무인정권 최고 권력자인 교정별감에 취임하여 최충헌에 비견되는 권세와 위세를 누렸다.[1]
그러나 김준이 과격하게 행동하면서 최의를 제거할 때 협조했던 측근들이 등을 돌렸고, 1268년 (고려 원종 9년) 12월 고려 원종의 몽골제국 조공 및 개경 환도 정책에 반대하다가, 측근이자 양아들인 임연과 그 세력에게 살해당했다. 김준 일가는 멸문지화(滅汶摯禍)를 당했고, 측근들도 반란·내란죄로 처형되었다.[1]
3. 가계
관계 | 이름 |
---|---|
아버지 | 김윤성 |
어머니 | 미상 |
동생 | 김승준 (? ~ 1268) (후에 김충으로 개명) |
부인 | 안심 |
장남 | 김대재 (? ~ 1268) |
차남 | 김용재 (? ~ 1268) (후에 김주로 개명) |
삼남 | 김석재 (? ~ 1262) |
후처 | 미상 |
아들 | 김애 (? ~ 1268) |
아들 | 김기 (? ~ 1268) |
아들 | 김정 (? ~ 1268) |
양아들 | 임연 (제10대 무신정권 집권자) |
양손자 | 임유무 (제11대 무신정권 집권자) |
4. 평가
4. 1. 긍정적 평가
김준은 풍채가 늠름하고 성품이 관대하며 아랫사람과 윗사람에게 공손하였다. 활쏘기에 능숙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그는 호협한 젊은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겼으나, 집안 살림에는 소홀하여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다.[1]4. 2. 부정적 평가
김준의 처음 이름은 김인준이며, 그의 아버지 김윤성은 본래 천한 신분으로 상전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 투신하여 종노릇을 하였다. 김준은 풍채가 늠름하고 천성이 관대하며 아랫사람과 윗사람에게 공손하였다. 궁술에 능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인심을 얻었으나, 집에는 재산이 없었다. 술수를 하는 도사가 그를 보고 훗날 국권을 쥘 것이라고 예언하였다.[1]4. 3. 종합적 평가
김준의 처음 이름은 김인준(金仁俊)이며, 그의 아버지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천한 노비였다. 김윤성은 상전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 투신하여 종노릇을 하던 중 김준과 김승준(金承俊)을 낳았다. 김준은 풍채가 좋고 성격이 관대하며 아랫사람과 윗사람에게 공손하였다. 또한 활쏘기에 능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인심을 얻었다. 그는 호협한 젊은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재산을 탕진했다. 어느 날, 술수를 하는 도사가 그를 보고 "훗날 반드시 국권을 쥐고 나라를 통째로 거머쥘 것이다"라고 예언했다.[1]5. 등장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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