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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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의 투쟁》은 아돌프 히틀러가 집필한 책으로, 원래는 《거짓, 어리석음, 그리고 비겁함에 맞선 4년 반(의 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려 했으나, 출판사 사장의 제안으로 《나의 투쟁》으로 변경되었다. 이 책은 히틀러의 자서전적 내용과 나치즘의 핵심 이념을 담고 있으며, 제1권은 유년 시절부터 나치당 창당까지의 과정을, 제2권은 나치즘의 이념, 국가관, 인종관 등을 다룬다. 특히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레벤스라움(동방 생존권) 등 히틀러의 정치적 신념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나치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료로 평가받으며, 2016년에는 비판적 주석이 달린 개정판이 출판되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의 투쟁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제목나의 투쟁
원제Mein Kampf
저자아돌프 히틀러
언어독일어
장르자서전
정치 철학
정치 선언
출판사Franz Eher Nachfolger GmbH
초판 발행일1925년 7월 18일
미디어 유형도서 (하드커버 및 페이퍼백)
페이지 수720
ISBN978-1495333347
다음 작품Zweites B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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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28년 판본
서지 정보
ISBN (1998년 Ralph Manheim 번역판)978-0395951057
dewey 분류943.086092
congress 분류DD247.H5
기타 정보
로마자 표기Mein Kampf
문자적 번역나의 투쟁
위키 소스마인 캄프 (Stackpole Sons)
참고 도서last1=Heinz
last1=Payne
Shirer
Shirer
영어 출판일 (약식)1933년 10월 13일
영어 출판일 (전체)1939년
관련 항목
관련 문서나치즘
반유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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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목

히틀러는 원래 자신의 책 제목을 Viereinhalb Jahre (des Kampfes) gegen Lüge, Dummheit und Feigheit독일어로 정하려 했다. 그러나 프란츠 에허 출판사 사장이자 히틀러의 출판사였던 막스 아만은 Mein Kampf독일어이라는 짧은 제목을 제안했다.

3. 내용

《나의 투쟁》은 크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의 음모를 다루며, 자신이 에서 반유대주의군국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빈에 오기 전까지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었고, 처음에는 유대인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반유대주의 신문을 접하면서 점차 반유대주의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나의 투쟁》은 정치철학 저서로서, 히틀러는 세계의 양대 악으로 유대인과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지목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유대인, 사회민주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한다. 그는 이들이 모두 유대인에게 봉사한다고 믿었다.

히틀러는 독일의 변혁을 위해 유대인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인종적, 사상적으로 열등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아리아인"과 민족사회주의자들을 인종적으로 우월하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존재로 보는 사상을 제시한다. 그는 독일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고 독일 민족을 대독일로 통일하며, 독일의 영토를 역사 속 최대 범위로 회복하길 원했다.

책의 서문에는 1923년 11월 9일 뮌헨의 필트헬른할레(Feldherrnhalle, 장군기념관) 앞과 육군성 안뜰에서 사망한 이들을 언급하며, 이들을 위한 공동 묘비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비국민 정부를 비판하고, 이 책을 그들에게 바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망한 이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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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이름직업
펠릭스 알파르트상인
안드레아스 바우리돌모자 장인
테오도르 카젤라은행원
빌헬름 에리히은행원
마르틴 파우스트은행원
안톤 페헨베르거자물쇠장이
오스카르 켈너상인
카를 쿤급사장
카를 라폴츠공과대학생
쿠르트 노이바우어심부름꾼
클라우스 폰 파페상인
테오도르 폰 데어 부르포텐항소법원 판사
요한 릭멜스예비역 기병 대위
막스 에르빈 폰 쇼이브너=리히터공학박사
로렌츠 리터 폰 슈트란스키기술자
빌헬름 볼프상인

3.1. 제1권: 결산

Mein Kampf독일어 제1권은 히틀러의 출생부터 나치당 창당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 에서의 생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 등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반유대주의군국주의적 성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히틀러는 빈에 오기 전까지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으며, 처음에는 유대인에 대한 태도가 관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빈에서 반유대주의 신문을 접하고, 점차 반유대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전신)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나치당 초기 단계에서 자신의 활동과 정치적 견해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사회민주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하며, 이들 모두가 유대인에게 봉사한다고 믿었다.

히틀러는 뮌헨 폭동 실패 후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에밀 모리스와 루돌프 헤스에게 Mein Kampf독일어 내용을 구술했고, 출소 후 Bernhard Stempfle독일어 등이 수정했다.

3.2. 제2권: 국가사회주의 운동

나치즘의 핵심 이념, 국가관, 인종관을 제시한다. 선전과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격대(SA)의 역할과 조직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조합 문제, 전후 독일의 외교 정책, 동방 정책 등을 다룬다. 특히,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 제1장: 철학과 당
* 제2장: 국가
* 제3장: 의제와 시민
* 제4장: 민족 국가의 특징과 개념
* 제5장: 철학과 조직
* 제6장: 초기 투쟁 - 구어의 중요성
* 제7장: 붉은 전선 전투원 동맹과의 투쟁
* 제8장: 강자는 최강으로 고독하다
* 제9장: 돌격대의 수단과 조직에 관한 기본 개념
* 제10장: 가면으로서의 연방제
* 제11장: 선전과 조직
* 제12장: 노동조합 문제
* 제13장: 전후 독일 동맹 정책
* 제14장: 서구의 지도 또는 서구의 정책
* 제15장: 긴급 방위의 권리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 수법, 군중 심리에 대한 고찰과 선전 노하우를 기록했다. 전쟁이나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논하며 자신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현저한 것은 인종주의적 관점으로, 세계는 여러 인종이 패권을 다투고 있다는 나치즘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모든 반독일적인 것의 창조자로 유대인을 규정하고 반유대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유대인은 세계의 페스트”이며 “가장 강력한 투쟁 수단”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책 속에는 “이들 1만 3천 명 또는 1만 5천 명의 히브리 민족 파괴자들을 한꺼번에 독가스에 넣었다면, 전선에서의 수백만 명의 희생도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묘사가 존재한다. 또한 “경제만을 추구하는 것은 민족의 타락이다”, “세상에 무력에 의하지 않고 경제에 의해 건설된 국가는 없다”라고 하며, 경제 편중이 독일 제국의 패배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외교 정책에서 프랑스 공화국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의 동맹을 “멸망에 빠진다”라고 비판하며, “모스크바 정권은 바로 그 유대인이다”라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동맹을 맺어야 할 상대로 영국이탈리아를 지목한다.

독일이 국가 이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역 확대, 식민지 획득,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복을 통한 동쪽 영토 확장의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앞의 두 가지는 영국과의 대결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것은 동쪽에서의 생존권 (Lebensraum독일어) 획득을 위한 유럽에서의 동방 진출 (동방 생존권)을 표명한 것이며, 후일 독소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3. 인종주의

히틀러는 인종 간의 위계질서를 설정하고, 아리아인을 최상위 인종으로, 유대인을 최하위 인종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유대인을 "세계의 페스트", "민족 파괴자" 등으로 묘사하며,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중의 국민화는 우리 민족 혼을 사로잡기 위해서 모든 적극적인 투쟁을 함으로써 국제적인 대중의 독살자를 없애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성공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전쟁 개시 때, 그리고 전쟁 중에서도 모든 직업을 가진 우리 최량(最良)의 독일 노동자 수십만이 전쟁터에서 당했던 것과 같이 이들 1만 2000이나 1만 5000의 헤브라이인 민족 파괴자들이 한 번 독가스 속에 집어던져지게 되었더라면 전선에서의 수백만의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는 않았으리라"고 주장하였다.

히틀러는 더 열등한 것의 제거는 그것의 보호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더 강한 것의 지배와 본질성의 보존을 위해 더 열등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관점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절멸하기로 결정한 정확한 시점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1930년대 중반 이전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3.4. 레벤스라움 (동방 생존권)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역사적 사명"으로 동쪽에서 [[레벤스라움]]독일어(생활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국가의 형성이 슬라브족의 능력이 아니라, "열등한 인종" 내 게르만족 요소의 국가 형성 활동의 예라고 믿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동쪽으로의 팽창을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 그래서 우리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 전전쟁 시대의 외교 정책 경향에 선을 긋는다. 우리는 600년 전에 중단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남쪽과 서쪽으로의 끝없는 독일의 이동을 멈추고 동쪽 땅을 향한 시선을 돌린다. 마침내 우리는 전쟁 이전 시대의 식민지 및 상업 정책을 중단하고 미래의 토지 정책으로 전환한다.
>
> 오늘날 유럽에서 토지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주로 러시아와 그 속국인 국경 국가들만을 염두에 둘 수 있다.

히틀러는 슬라브족의 독일화에 반대하며, 오스트리아 슬라브족의 독일화 시도를 비판했다. 그는 "열등"한 "외국 인종"이 독일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독일이 국가 이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역 확대, 식민지 획득,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복을 통한 동쪽 영토 확장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처음 두 가지는 영국과의 대결을 야기하므로, 소련을 정복하여 동방에서 Lebensraum독일어(생존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훗날 독소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4. 집필 배경

Mein Kampf독일어아돌프 히틀러가 1925년과 1926년에 출판한 자서전이자 정치 선언서이다. 히틀러는 1923년 11월 뮌헨 폭동 실패 후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란츠베르크 감옥 관리자는 "그(히틀러)는 이 책이 많은 판을 거듭하여 그의 재정적 채무와 법정 비용 지불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고 기록했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을 널리 알리고, 나치당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책에서 히틀러는 독일 문제의 책임을 바이마르 공화국 국가의회, 유대인,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돌리며, 그들을 비난한다. 그는 의회의 성격 자체가 부패했고, 의원들은 책임을 갖지 않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은 의회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히틀러는 1924년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되었던 에밀 모리스에게, 나중에 루돌프 헤스에게 구술했다. 출옥 후, 벨른하르트 슈템프플레(Bernhard Stempfle), 기자 요제프 체르니(Josef Czerny) 등이 수정했지만, 서술이 엉성하고 반복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1925년 발행된 초판(독일 역사 박물관 소장)
1925년 발행된 초판(독일 역사 박물관 소장)

4.1. 2016년 비판본

1945년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뒤, 독일 바이에른주 정부가 《나의 투쟁》의 저작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공식 거주지가 뮌헨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 퍼블릭 도메인이 된다. 2015년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2016년 1월, 뮌헨 현대사 연구소는 비판적인 주석을 단 《나의 투쟁》 비판본을 출간했다.

2010년 2월 3일, 뮌헨의 현대사 연구소(IfZ)는 교육 목적으로 주석이 달린 개정판을 2015년에 재출판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재무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반대했다.

재출판된 책이 나치 선전물로 금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바이에른 주 정부는 나치 이데올로기 유포는 여전히 금지되며 처벌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과학부 장관은 비판적 판본을 지지했다.

2013년 12월 12일, 바이에른 주 정부는 주석 판본에 대한 재정 지원을 취소했다. 그러나 IfZ는 저작권 만료 후 출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5년, 영국 유대인 대표회의 부회장은 재출판의 학문적, 교육적 가치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주석이 달린 《나의 투쟁》 비판본은 독일에서 출판되어 몇 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2권으로 구성된 이 판본은 약 3,500개의 주석을 포함하여 거의 2,000페이지에 달했다. Gerhard Weinberg에 따르면, 주석에는 장이 언제 쓰였는지에 대한 정보와 주장에 대한 논평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출판은 독일에서 공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유대인 단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서점은 이 책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7년 1월까지 독일 주석판은 8만 5천 부 이상 판매되었다.

Gerhard Weinberg은 주석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2012년부터 뮌헨의 현대사 연구소(IfZ)는 네오나치즘 추종자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에게 악용되지 않도록 학술적인 주석을 붙인 《나의 투쟁》 재발간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2013년 바이에른 주 정부는 출판을 중단하고 현대사 연구소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으며, 주석을 달았더라도 출판하는 자는 공중 폭동죄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1월 24일 주 정부는 학술적인 주석을 붙인 발행을 허용하는 방침으로 전환했다.

2016년 1월 8일, 주석이 달린 《나의 투쟁》이 현대사 연구소에서 상하 2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다. 전후 처음으로 독일어로 쓰인 해당 서적이 공식적으로 출판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해금 후 해당 서적은 독일 아마존(Amazon.co.de)에서 초판 4,000부가 수 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1년 동안 약 85,000부가 팔리는 예상치 못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판매가 "네오나치즘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중립적인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재발행을 지지하고 있다.

5. 현대적 의의

나의 투쟁독일어(Mein Kampf)은 나치즘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어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극단적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 책을 "지루한 연구서"이자 "진부"하다고 평가했으나, 윈스턴 처칠은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한 책"이라고 언급했다. 케네스 버크는 이 책에 공격적인 의도를 가진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나의 투쟁독일어일제강점기의 경험과 분단 현실을 고려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대상이다. 이 책은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2016년 독일 교원조합은 주석을 단 나의 투쟁독일어을 수업 교재로 활용하여 정치적 배타주의에 대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독일 유대인 단체는 이에 반대하며, 교재 사용이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사회민주당은 유능한 교사를 통해 선전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현대 교육의 사명이며, 대중영합주의가 대두하는 현재 나의 투쟁독일어을 교재로 활용하여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독일 교원조합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