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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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감》은 북송의 범조우가 편찬한 역사서로, 당나라의 흥망성쇠를 분석하고 군신 간의 관계에 주목하여 득실을 논평한 책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당나라 역사를 다루며, 당 고조부터 당 애제까지 20명의 황제 항목 아래 득정과 실정을 평가했다. 《당감》은 《자치통감》과 비교하여 당 태종과 당 고조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를 보이며, 정이, 주희 등 후대 학자들에게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남송 효종 때의 절강각본이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전해지며, 여조겸은 《당감》에 주석을 더하여 《동래선생음주당감》을 편찬했다.

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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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감》의 저술 배경 및 목적

범조우는 사마광을 도와 《자치통감》의 당대오대 십국 부분을 편찬했으며, 당나라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역사 이론의 형식으로 집필한 것이 《당감》이다.

《당감》은 철종 원우 원년(1086년)에 완성되었다. 당 왕조의 창업자인 고조에서 시작해 당의 마지막 황제인 애제(소선제)로 끝나고 있다. 《당감》은 고조부터 애제까지 총 20명 황제 항목 아래 《자치통감》 본문의 기사를 게시하고, 군신간의 대응에 관해 ‘신 조우가 말하건대'(臣祖禹曰)로 시작하는 문장 형식으로 득정(得政)과 실정(失政)을 논평하였으며, 그 분량은 총 71개의 득정, 215개의 실정으로 나눌 수 있다.

범조우는 대외적으로 무력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 태종 시기 사방으로의 정벌전을 두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하고, 헌종무종(득정 4건·실정 1건) 시기에 득이 실보다 많았던 것은 능력 있는 재상을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2.1. 사마광과의 협력과 《자치통감》 편찬

범조우는 조서를 받들어 사마광과 함께 《자치통감》 편찬에 참여했으며, 당나라 역사 부분을 나누어 맡아 그 흥망성쇠와 치란(治亂)에 대해 고찰했다. 《자치통감》의 기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마광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당 왕조 개창의 공로 대부분을 태종에게 돌렸지만, 범조우는 《당감》 권1 '당고조'에서 “태종은 야망과 재능이 있었지만 의리를 몰랐다”라며 태종을 비판했다. 반면 고조가 유문정을 사신으로 보내어 돌궐과 화친을 맺은 것 등을 칭찬하며, 당 왕조 개창의 진정한 공로자는 창업자인 당 고조 이연 자신이라고 보았다. 중국 학자들은 범조우의 《당감》과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비교하여 44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다.

2.2. 당나라 역사에 대한 독자적인 관점

범조우는 사마광과 함께 《자치통감》 편찬에 참여했지만, 당나라 역사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태종고조에 대한 평가에서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당나라 건국의 공로 대부분을 태종에게 돌렸지만, 범조우는 《당감》 권1 '당고조'에서 "태종은 야망과 재능이 있었지만 의리를 몰랐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태종이 아버지를 죄에 빠뜨리고 군사를 일으켜 협박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고조가 유문정을 보내 돌궐과 화친을 맺은 것 등을 칭찬하며, 당나라 건국의 진정한 공로자는 고조라고 주장했다. 중국 학자들은 《당감》과 《자치통감》(중화서국본)을 비교하여 이러한 44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다.

정이는 《당감》을 "삼대 이후로 이런 의론은 없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주자는 《주자어류》에서 《당감》의 의론이 부실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자는 말년에 《당감》을 여러 번 읽고 자신의 비평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했으며, 《자치통감강목》에 범조우의 관점을 반영했다.

3. 《당감》의 내용 및 구성

《당감》은 사마광을 도와 《자치통감》의 당대오대 십국 부분을 편찬했던 범조우가 당나라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역사 이론의 형식으로 집필한 책이다. 철종 원우 원년(1086년)에 완성되었다. 고조부터 애제(소선제)까지 총 20명의 황제 항목 아래 《자치통감》 본문의 기사를 싣고, '신 조우가 말하건대'(臣祖禹曰)라는 문장 형식으로 정치적 득실을 논평했다.

3.1. 정치적 득실 평가

범조우는 '신 조우가 말하건대(臣祖禹曰)'라는 형식으로 각 황제 시대의 정치적 득실을 평가하였다. 득정(得政)과 실정(失政)으로 나누어 평가했으며, 실정의 사례가 더 많다. 총 71개의 득정과 215개의 실정이 있었다.

범조우는 대외적으로 무력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 태종 시기 사방으로의 정벌전을 두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헌종무종 시기에 득이 실보다 많았던 것은 능력 있는 재상을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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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득정실정
태종26건28건
덕종3건50건
현종7건33건
헌종19건10건
무종4건1건


중종, 예종, 순종, 목종, 선종, 의종, 희종, 소종, 소선제 시기는 득정에 관한 평가가 없다. 범조우는 당 덕종에 대해서 평가하면서 "당 덕종은 성정이 본래 시기심이 많아서 소인배가 쉬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했다.

3.2. 주요 황제에 대한 평가

범조우는 《당감》에서 당나라 황제들의 정치적 득실을 평가했다. 주요 황제들의 통치 기간과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평가를 내렸다. 범조우의 평가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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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득정실정평가 요약
태종26건28건대외 무력 사용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평가.
덕종3건50건성정이 시기심이 많아 소인배가 득세하기 쉬웠다고 평가.
현종7건33건
헌종19건10건헌종과 무종 시기(득정 4건, 실정 1건)는 능력 있는 재상 임명으로 득이 실보다 많았다고 평가.


중종, 예종, 순종, 목종, 선종, 의종, 희종, 소종, 소선제 시기는 득정에 관한 평가가 없다.

4. 《당감》과 《자치통감》의 비교

범조우는 자신이 쓴 서문에서 "조를 받들어 광(사마광)과 함께 《자치통감》을 편찬하였는데, 당의 역사 부분을 나누어 맡으면서 그 흥폐와 치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라고 썼다. 《당감》은 《자치통감》의 기사를 기본으로 하고 범조우 자신도 《자치통감》 편찬에 참여했지만, 사마광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다.

정이는 《당감》을 두고 "삼대 이후로 이런 의론은 없었다"라고 평했다. 주자는 《주자어류》에서 《당감》에 대해 "의론이 부실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했고, "의론의 대강은 좋지만 의론할 부분이 많다"며 범조우의 의론을 "대부분 그 입구만 스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다만 주자는 말년에 《당감》을 여러 차례 읽고 칭찬하며 "자신의 비평이 잘못되었다"고 시인했으며, 《자치통감강목》에도 그의 관점이 반영되었다.

4.1. 당 태종과 당 고조에 대한 평가 차이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당 왕조 개창의 공로 대부분을 태종에게 돌렸다. 반면 범조우는 《당감》 권1 '당고조'에서 "태종은 야망과 재능이 있었지만 의리를 몰랐다"라는 제목으로 이세민을 비판하며, 당 고조 이연이 유문정을 사신으로 보내 돌궐과 화친을 맺은 것 등을 칭찬했다. 그는 당 왕조 개창의 진정한 공로자는 창업자인 당 고조 이연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학자들은 범조우의 《당감》과 사마광의 《자치통감》(중화서국본)을 비교하여 이러한 44가지 차이점을 나열하였다.

4.2. 기타 차이점

중국 학자들은 《당감》과 《자치통감》을 비교하여 44가지 차이점을 제시하였다.

5. 《당감》에 대한 후대의 평가

범조우는 후세 학자들에게 당감공(唐鑑公)으로 존경받았다. 채조(蔡绦)는 《철위산총담》(铁围山丛谈)에서 "범조우의 아들 범온(范溫)이 대상국사(大相國寺)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보고 ‘당감의 아들'이라 불렀다"라고 기록했다. 정이는 《당감》에 대해 "삼대 이후로 이런 의론은 없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면 주자는 《주자어류》에서 "의론이 부실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고, 《당감》에 대해 "의론의 대강은 좋지만 의론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주자는 말년에 《당감》을 여러 번 읽고 칭찬하며 자신의 비평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5.1. 정이와 주희의 평가

정이는 《당감》을 두고 "삼대 이후로 이런 의론은 없었다"고 평가하였다. 반면 주자는 《주자어류》에서 "의론이 부실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하였고, 《당감》에 대해 "의론의 대강은 좋지만 의론할 부분이 많다"고 하였다. 또한 범조우의 의론을 "대부분 그 입구만 스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자는 말년에 《당감》을 여러 차례 읽고 칭찬하며 "자신의 비평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였으며, 《자치통감강목》에도 범조우의 관점을 반영하였다.

5.2. 송 고종, 홍무제, 가경제의 평가

송 고종은 범조우의 《당감》을 칭찬하며 "《자치통감》을 읽으면 사마광이 재상의 도량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고, 《당감》을 읽으면 범조우의 간언 방법을 알 수 있다"(讀唐鑒, 知范祖禹有臺諫手段중국어)고 하였다. 명나라 홍무제(태조)는 "옥비를 버려도 《당감》은 못 버린다"(宁舍玉妃, 不舍唐鉴중국어)고 평했고, 청나라 가경제(인종)은 "범조옥이 지은 《당견》 한 권은 한 시대의 사적을 서술하고 그 장단점을 고찰한 책이다. 그 논증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호평하며, 《당감》의 체제를 모방하여 《명감》(明鑑)을 편찬하게 하였다.

6. 《당감》의 판본

상하이 도서관(上海圖書館)이 보관하고 있는 남송 효종(孝宗) 때의 절강각본(浙江刻本, 12권본)이 가장 오래된 판본이며, 1984년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그 영인판을 출판하였다. 명(明) 홍치 10년(1497년)의 간본(刊本)은 누락된 부분이 많다.

7. 《동래선생음주당감》(東萊先生音註唐鑑)

여조겸은 《당감》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확장하여 총 24권으로 만들었다. 이는 여조겸의 호를 따서 《동래선생음주당감》(東萊先生音註唐鑑)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