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주
1. 개요
대군주는 1895년 조선에서 국왕의 칭호로 사용된 명칭이다. 조선은 청나라와의 종속 관계를 종료하고 자주국임을 선포하며, 국왕의 격식을 황제에 준하는 것으로 격상시키면서 이 칭호를 사용했다. '대군주 폐하' 등의 존칭이 사용되었으며,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고종의 황제 즉위와 함께 폐지되었다. 또한, 서양의 왕을 지칭하는 번역어로 사용되었으며, 현대 한국어에서는 영어 'overlord'의 번역어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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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
정조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 실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47세에 사망하여 건릉에 안장되었다. -
조선 국왕 -
태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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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직과 칭호 -
관찰사
관찰사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지방 행정 감찰관직으로, 당나라 채방처치사에서 시작되어 관찰처치사로 개칭되며 명칭이 유래되었고, 한국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정착하여 각 도에 파견된 종2품 문관직으로 지방 행정 전반에 걸쳐 권한을 행사했다. -
한국의 관직과 칭호 -
집사
집사는 대저택에서 고용주를 보좌하고 가사를 관리하는 직업으로, 역사적으로 집사관이라는 관직이나 하인 계급의 우두머리 역할에서 유래했으며, 현대에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해지고 대중문화에도 묘사된다. -
왕족 칭호 -
카이저
카이저는 로마 황제 칭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독일어 단어로 황제를 의미하며,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 제국 군주의 칭호로 사용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고 수준을 나타내는 접두사로, 일본 천황 지칭, 제왕절개의 어원으로도 쓰인다. -
왕족 칭호 -
차트라파티
차트라파티는 인도 마라타 제국의 군주들이 사용한 "황제", "왕", "지도자"를 의미하는 칭호로, 시바지 1세가 마라타 제국 건국 시 처음 사용한 이후 그의 후계자들이 계승하였으며, 현재는 우다얀라제 보살레가 칭호를 이어받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1894년 7월, 조선 정부는 개국 기년을 선포하여 청나라의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였다. 1895년 1월 7일(고종 31년 음력 12월 12일)에는 홍범 14조를 발표하여 청과의 종번(宗藩) 관계를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대군주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1. 대군주 칭호 도입
1894년 7월 조선 정부는 개국 기년을 선포하여 기존에 대외적으로 썼던 청나라의 연호나 국내에서 사용해 왔던 명나라의 숭정 연호를 대신하게 하여 중국 왕조에 종속되지 않은 완전한 자주국임을 나타내려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1895년 1월 7일(고종 31년 음력 12월 12일) 〈홍범 14조〉를 발표하면서 중국과의 종·번(宗藩) 관계를 끝낸다고 선포하고 '대군주'라는 칭호를 쓰게 되었다. 이로써 국왕과 관계된 각종 격식을 제후왕이 아닌 황제에 준하는 것으로 바꾸되 칭호만 황제보다 낮은 형태가 되었다. '대군주 폐하', '왕태후 폐하', '왕후 폐하', '왕태자 전하', '왕태자비 전하' 같은 칭호와 호칭이 도입되었다. 또 '전문(箋文)'은 '표문(表文)'으로 격상되었고, '과인(寡人)'은 '짐(朕)'으로, 대군주의 명령은 황제와 마찬가지로 '칙(勅·敕)'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사실 이런 대군주 칭호의 도입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정변 세력이 시행하고자 했던 것과 대동소이했다.
조선이 대군주라는 칭호를 새로 도입했지만 서양의 언어로 번역할 때는 변동이 없이 이전과 동일한 단어(king영어)로 번역되었다.
3. 번역어로서의 활용
대군주는 서양의 왕(king영어)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조오수호통상조약에서는 조선의 국왕을 '대조선국 대군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