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덴류급 경순양함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덴류급 경순양함은 일본 해군이 1910년대에 건조한 고속 경순양함으로, 8·4함대 계획의 일환으로 2척이 건조되었다. 덴류급은 14cm 단장포, 3연장 어뢰 발사관, 8cm 고각포 등을 탑재했으며, 일본 해군 순양함 중 최초로 올 기어드 터빈을 장착했다. 덴류급은 수뢰전대의 기함으로 운용되었으며,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다쓰타가 1944년, 덴류가 1942년에 각각 미 해군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덴류급 경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함급 개요
함명덴류급 경순양함
원어명일본어: 天龍型軽巡洋艦
로마자: Tenryū-gata keijun'yōkan
건조요코스카 해군 공창
사세보 해군 공창
운용 국가일본 제국 해군
이전 함급치쿠마급 방호순양함
이후 함급구마급 경순양함
건조 기간1917년~1919년
취역 기간1919년~1944년
총 건조 척수2척
계획 척수8척
기공1918년 3월 11일
취소 척수6척
손실 척수2척
함선 특성
함 종류경순양함
배수량기준:
만재:
길이(전체 길이)
동력110kW 110V 전기Lacroix/Wells p. 24
추진3축 브라운 커티스 기어드 터빈 엔진
10개 가몬 보일러

920톤 석유, 150톤 석탄
항속 거리@
승무원327명
무장 (1937년 7월 ~ 1940년 11월)
주포14cm/50 3년식 해군포 4문 (4x1)
부포8cm/40 3년식 해군포 1문 (1x1)
대공포93식 13mm AA 기관총 2정 (2x1)
어뢰 발사관6식 어뢰 튜브 6문 (2x3)
장갑
이미지
1921년의 덴류
1921년의 "덴류"
추가 정보
일본어 함선 이름 고찰강의 이름#日本海軍艦船名考pp.51-52,70-71

2. 건조 배경

1915년 일본 해군84함대안을 일부 수립하면서 3,500톤급 순양함 2척의 건조 계획을 포함시켰다. 이것이 덴류급 경순양함의 시작이었다. 당시 구축함터빈 기관과 중유 전소 보일러를 채택하며 점차 고속화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이들을 지휘할 수뢰전대 기함으로서 빠른 속력을 가진 경순양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다.[34]

덴류급의 기본 설계는 당시 영국 해군이 건조한 C급 경순양함을 참고했으며, 영국 해군의 아레투사급 경순양함의 개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2] 영일 동맹 관계에 따라 일본 해군과 조선 산업은 여전히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국의 기술과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2] 특히 1914년에 완성된 영국 해군의 아레투사급은 중유 전소 보일러와 현측 장갑을 갖춘 근대적인 경순양함의 시초로 평가받는다.[33] 기존의 방호순양함이 경사진 갑판 장갑과 석탄고로 방어력을 확보했던 것과 달리, 아레투사급은 장갑순양함처럼 현측에 직접 장갑을 둘렀다는 특징이 있었다. 다만 장갑 두께는 얇았기에 '경장갑순양함'으로 불리기도 했다.[33] 이 함선들은 약 30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고, 이는 근대 경순양함의 기준을 제시했다.[33]

일본 해군에서는 1912년에 준공된 지쿠마형이 터빈 기관을 채용해 속력은 향상되었으나,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방호순양함의 형태를 따르고 있었다.[33] 따라서 1917년에 기공된 덴류급은 일본 해군 최초의 근대적인 경순양함으로 평가받는다.[33] 덴류급은 배수량 5,000톤급의 지쿠마급과 1,300톤급의 가와카제급 구축함 사이의 중간 함급으로 설계되었으며, 외형상으로는 가미가제급 구축함을 확대한 경방어 선두 구축함과 유사했다.

이 소형 순양함 계획은 1915년에 구체화되어 1916년 회계 연도에 발주되었으며, 건조 비용은 척당 약 455만이었다. 그러나 덴류급이 완성된 직후, 일본 제국 해군 군령부는 소형 설계의 한계를 인지하게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설계 속도가 39노트에 달해 덴류급보다 훨씬 빨랐고, 미국의 신형 오마하급 순양함은 화력 면에서 덴류급을 압도했다.[3] 결국, 덴류급을 추가로 6척 건조하려던 계획은 취소되고, 대신 덴류급 설계를 확대한 중형(5,500톤급) 경순양함 건조 계획으로 대체되었다.

3. 계획 및 건조

1915년 일본 제국 해군8·8함대를 목표로 하는 전단계인 8·4함대안을 일부 수립했다.[30] 이 계획에는 3,500톤급 순양함 2척이 포함되었는데, 이것이 덴류급 경순양함이다.[30] 기본 설계는 같은 시기 영국 해군이 건조한 C급 순양함을 참고했으며[2], 어뢰 전대의 기함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외관상으로는 가미카제급 구축함의 확장형으로 볼 수도 있다. 덴류급은 구축함대의 기함으로 운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는 기존의 지쿠마급(5,000톤)과 가와카제급(1,300톤) 사이의 중간급 함종에 해당했다. 당시 다른 해군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드물었지만, 영국 해군의 아레투사급과 C급 순양함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다.[2] 당시 일본은 영일 동맹으로 영국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형 순양함 계획은 1915년에 구체화되었고, 1916년 회계 연도 예산으로 발주되었다. 제37회 제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1916년 2월 24일에 예산이 공포되었으며, 덴류급 2척은 1척당 4550000JPY의 비용으로 1916년 4월부터 1919년 3월까지의 예산으로 건조가 결정되었다.[30]

'덴류'는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다쓰타'는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었다. '다쓰타'는 1919년 3월 31일에 먼저 준공되었으나[33], '덴류'는 터빈 고장이 잦아 준공이 늦어져[28] 같은 해 11월 20일에야 완공되었다.[33]

덴류급이 완성된 직후, 일본 제국 해군 군령부는 소형 설계의 단점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일본의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설계 속도가 39노트에 달해 33노트의 덴류급보다 훨씬 빨랐고, 미국의 신형 오마하급 순양함은 화력 면에서 덴류급을 능가했다.[3] 1917년에 수립된 8·4함대 완성안에서는 당초 덴류급 6척과 신형 7,200톤급 경순양함 3척을 추가로 건조할 계획이었다.[35] 그러나 적의 순양전함과 조우했을 경우 덴류급의 속력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과 포격력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35] 이러한 이유로 7,200톤급 경순양함 계획은 중지되었고, 덴류급 추가 건조 계획 역시 변경되어 5500톤급 경순양함 9척(구마형 경순양함 5척, 나가라형 경순양함 3척, 그리고 시험함 성격의 유바리 1척[35])을 건조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35][36]

결과적으로 덴류급 경순양함은 '덴류'와 '다쓰타' 단 2척만이 건조되었다.

4. 함형

84함대안이 1915년에 일부 수립되면서, 덴류급은 그 중 3,500톤급 순양함으로 2척이 계획되었다. 기본 설계는 영국 해군이 같은 시기 제작한 C급 경순양함을 참고하였으며, 어뢰 전대의 기함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외관상으로는 경방어 선두 구축함과 유사하며, 가미가제급 구축함의 확장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덴류급 군함은 "소형"(또는 "3,500톤") 순양함으로 명명되었으며, 일본 제국 해군의 신형 1급 및 2급 구축함 함대를 신속하게 지휘하기 위해 설계되었다.[4] 유류 연소 터빈 엔진 기술의 발전과 브라운 커티스(Brown-Curtis)식 기어드 터빈 엔진을 사용하여, 이전의 지쿠마급 순양함보다 두 배 이상의 마력을 갖추고 33노트의 고속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장과 장갑 측면에서는 동시대 다른 순양함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덴류형의 무장과 장갑 배치를 나타낸 그림(미국 해군 제작).


덴류급의 함형은 동시대에 계획된 강풍형 구축함(또는 이소카제형 구축함[33])과 비슷하며[34], 구축함 함형을 확대한 형태이다[33]. 설계에 있어서도 순양함이 아닌 대형 구축함을 표준으로 각 부분이 계획되었다[37]. 선체는 폭에 대한 길이의 비율이 높고(11.28:1) 선수 갑판이 솟아 있는, 확대된 구축함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본 계획 번호는 '''C33'''이며, 설계는 가와이 사다지가 담당했다[38].

4. 1. 선체

선체 형상은 함수 건현만 높은 단선루형 선체이다.[33] 선루의 길이는 약 39.32m (39.32m)였다.[51] 함수에는 스푼형이 채용되었다.[39] 선체는 폭 대비 길이 비율(11.28:1)이 높고 선수 갑판이 솟아 있어, 확대된 구축함과 유사한 모습을 가졌다.

1번 포탑은 선수 갑판에 위치했고, 그 뒤로 마스트가 있는 짧은 3층 타워 상부 구조물과 2번 포탑이 이어졌다. 이어서 선체 중앙선에는 3연장 어뢰 발사기를 수용하는 계단형 선체, 3개의 낮은 굴뚝 기반을 형성하는 좁은 중앙부 상부 구조물, 후방 3연장 어뢰 발사기, 그리고 3번 및 4번 포탑 순서로 배치되었다.

선체의 장갑 보호는 약했으며, 주로 동시대 미국 해군 구축함에서 사용되는 102mm 함포에 대한 방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4. 2. 의장

덴류급의 함체 구조는 선수 갑판 위에 주포인 14cm 포 1번 포탑을 단장 포가로 탑재하고, 그 뒤로 노천 조타 함교와 단각의 전부 마스트가 위치했다. 이어서 뒤쪽을 향해 2번 주포 포탑이 배치되었고, 이 지점에서 선수루가 끝났다.[33] 갑판이 한 단 내려간 중앙부에는 3개의 굴뚝 앞뒤로 53.3cm 6식 3연장 어뢰 발사관이 각각 1기씩, 총 2기(어뢰 6문)가 배치되었다.[33] 이는 일본 해군 함선 중 3연장 어뢰 발사관을 처음으로 채용한 사례였다. 재장전용 어뢰는 탑재되지 않았다. 굴뚝 주변에는 통풍통이 설치되었고, 양 현측에는 함재정 보관소가 마련되었다. 함재정은 2개 1조의 보트 데이빗이 각 현에 3조씩, 총 6조로 운용되었다. 후방 어뢰 발사관 뒤쪽에는 상부 구조물이 설치되었고, 후부 마스트와 후부 함교를 중심으로 3번과 4번 주포 포탑이 각각 1기씩 배치되었다.[40] 후부 갑판 위에는 8cm 고각포 1문이 단장 포가 형태로 설치되었고[40], 후갑판에는 기뢰 부설용 궤도도 마련되었다.[28]

주포로는 이세급 전함의 부포로도 사용된 14cm 50구경장 함포 4문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 포들은 모두 선체 중심선상에 단장 포가 형태로 배치되어 사격 가능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함선 정면이나 후방의 목표물에 대해서는 단 1문의 포만 조준할 수 있는 약점이 있었다. 탄약 공급은 완전히 수동 방식이었다. 최하층 갑판(함포 4개 층 아래)에 탄약고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함교 아래의 1번과 2번 포탑 사이에, 다른 하나는 3번 포탑 아래에 위치했으며, 양탄기(버킷 체인 호이스트)를 통해 탄약을 끌어올렸다. 장전과 조준 역시 수동으로 이루어졌다.[5] 사격 통제를 위해 13식 사격지휘장치가 함교 위에 설치되었고, 2.5m 거리측정기 2대가 각각 나침반 함교와 3번 포탑 바로 앞에 장착되었다.[5]

설계 당시부터 대함 항공 공격의 위협이 점차 인식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포를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대공 무장으로는 다목적 8cm 40구경장 고각포 1문과 6.5mm 기관총 2정만이 탑재되었다.

선체 장갑 방어력은 약한 편으로, 주로 동시대 미국 해군 구축함이 사용하는 102mm 함포에 대한 방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4. 3. 포격 병장

일본 해군 순양함으로는 처음으로 주포에 3년식 14cm 포를 장비했다.[28] 이는 이세형 전함의 부포로도 사용된 함포였다. 기존의 15cm 포는 포탄이 무거워 일본인의 체격으로는 연속 발사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42], 전함의 부포로 이세형부터 14cm 포가 채용되었고[41], 덴류급을 시작으로 구마급 등 이후 건조된 경순양함 주포의 표준이 되었다.[41]

주포 4문은 모두 함의 중심선상에 단장으로 배치되었으며, 높이는 상갑판에서 1갑판 높은 위치에 두었다.[43]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사격 각도를 제한하여, 함선의 정면 또는 후방의 표적에 대해서는 단 한 문의 함포로만 사격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탄약 공급과 장전, 조준은 모두 수동으로 이루어졌다.[5] 사격 지휘소는 전부 마스트 중단에 위치했으며[28], 13식 사격 통제 장치가 함교 위에 장착되었고, 2.5m 거리 측정기 2대가 사용되었다.[5] 전반적으로 덴류급의 포격 능력은 동시대 다른 국가의 순양함에 비해 약했다.

고사포로는 8cm/40 3식 함포 1문을 장비했는데, 이는 일본 해군 순양함으로는 처음으로 준공 시부터 장비된 것이다.[28] 하지만 대공포를 추가로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기총으로는 3년식 기총 2정을 장비했다.[24]

4. 4. 어뢰 병장

일본 제국 해군 순양함으로서는 처음으로 6년식 53cm 3연장 어뢰 발사관 2기를 장비했다.[28] 이는 이전 함급인 지쿠마급이 46cm 고정 발사관 3문을 사용했던 것과 비교된다.[44] 2기의 발사관은 선체 중심선상에 배치되었으며, 초기에는 발사 시 기어와 랙을 이용해 좌우로 약간 이동하는 방식이었다.[28] 하지만 이 방식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어, 1932년부터 1933년경에 발사관의 장착 위치를 높이고 좌우 이동 기능은 폐지되었다.[28] 재장전용 어뢰는 탑재되지 않았다.

4. 5. 기뢰

후갑판에 기뢰 투하 궤도 2조를 장비했다.[28] 이는 1호 기뢰(연쇄 기뢰)를 부설하기 위한 것으로, 88함대 계획에 따라 건조된 경순양함과 구축함에 표준으로 장비된 무장이었다.[45]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1호 기뢰의 사용은 중지되었지만, 투하 궤도는 그대로 남겨졌다.[45] 실제로 기뢰를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덴류는 태평양 전쟁 중 기뢰 부설 명령을 받고 기뢰를 싣기도 했으나, 공습으로 함체가 손상되어 실제 부설 작전은 중지되었다.[46]

4. 6. 기관

덴류급은 일본 제국 해군의 신형 구축함 함대를 이끌 기함으로 설계되었으며, 기관 성능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4] 당시 발전된 유류 연소 터빈 엔진 기술과 브라운 커티스(Brown-Curtis)식 기어드 터빈 엔진을 채택하여, 이전의 지쿠마급 방호순양함보다 두 배 이상의 마력을 확보했고 33kn의 고속을 낼 수 있었다. 총 3세트의 터빈이 탑재되었으며, 10기의 보일러가 3개의 보일러실에 나뉘어 설치되었다. 초기에는 10기의 보일러 중 2기가 석탄과 중유를 함께 사용하는 혼소 방식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에 모두 중유 전용으로 개조되었다.

4. 7. 장갑

선체의 장갑 보호는 약했으며, 주로 동시대 미국 해군 구축함에서 사용되는 102mm 무기에 대한 방어를 위해 설계되었다.[51]

선측 장갑은 상갑판 선측에서 하부로 높이 약 4.27m이며, 이 중 약 0.76m가 수선 아래에 위치한다.[51] 상부의 높이 약 1.45m 부분은 전후 폭 약 58.52m에 걸쳐 내측, 외측 모두 25.4mm HT강으로 총 50.8mm 두께였으며, 나머지 하부 약 2.82m는 전후 폭 약 56.39m로 내측 25.4mm HT강, 외측 38.1mm HT강으로 총 63.5mm의 두께였다.[51]

수평 장갑은 상갑판에 있으며 선측에서 약 1.28m까지가 25.4mm HT강, 그보다 내측이 22.23mm HT강이었다.[51] 함교 주변은 50.8mm HT강이었다.[51]

4. 8. 기타

2척에는 수뢰전대 기함 설비가 설치되었다[34].

5. 함형의 변천

덴류급은 함선 크기가 작아 대대적인 개장의 여지가 적었으며, 건조 이후 몇 차례의 개장을 거쳤다.[52]

5. 1. 준공 후 개장

덴류급은 함선 크기가 작아 대대적인 개장의 여지가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 건조 당시의 모습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52]

준공 직후에는 방위 측정실과 공중선을 3번 포 바로 앞에 설치했다.[28] 이후 1930년(덴류)과 1933년(다쓰타)에 함교 상부 구조를 개조했는데, 기존의 캔버스 측면을 강철판으로 교체하고 안정성 향상을 위해 마스트 높이를 낮추었다. 이때 마스트는 삼각식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사격 지휘소의 진동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28] 노출되어 있던 나침반 함교 역시 측면을 강철제 고정 방호벽으로 변경하여 방호력을 높였다.[28] 이러한 함교 개조 공사는 "덴류"는 1930년경,[28] "다쓰타"는 1935년경에 이루어졌다.[53] 1936년에는 파편에 대한 방어력 강화를 위해 함교에 강철판을 추가로 덧대었다. 이 외에도 나침반 함교 천장의 고정화, 방위 측정 공중선 교체 등이 태평양 전쟁 발발 전까지 이루어졌다.[52]

1930년대에 촬영된 "덴류". 마스트가 삼각 마스트로 변경되었다.


무장 면에서는 1937년경 1번 연돌 바로 앞 양쪽 현에 93식 13mm 단장 기총을 1정씩, 총 2정을 증설했다.[52] 1940년에는 이 13mm 기총을 96식 25mm 2연장 대공포 2문으로 교체했으며, 이 시기에 8 cm/40 3년식 해군포는 제거되었다.

두 함선 모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2선급 전력으로 평가되었기에 전시 개조는 제한적이었다. 1942년 2월 트루크에서 96식 25mm 2연장 포좌 2문이 추가되었고, "다쓰타"는 1943년 8월 개장에서 96식 2연장 포좌를 총 5문으로 늘렸다.

5. 2. 태평양 전쟁 시 기총 증비

개전 당시 덴류급 경순양함의 기총은 13mm 단장 기총 2정, 3년식 6.5mm 기총 2정, 96식 경기관총(2정 추정) 등이었다.[54] 그러나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 웨이크섬 공략 작전에서 일본 해군의 구축함 키사라기가 항공기 공격으로 침몰하는 등 대공 화력의 빈약함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덴류급에서도 대공 기총 증강이 이루어졌다. 1942년 2월, 트루크 정박 중에 기존의 13mm 단장 기총 2정과 예포 2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5mm 연장 기총 2기(총 4문)를 1번 굴뚝 바로 앞의 기총대에 좌우 각 1기씩 설치했다.[55]

같은 해 6월에는 마이즈루에 귀항하여 추가 공사를 진행했다. 3번 굴뚝 후방, 2번 어뢰 발사관 바로 앞의 좌우 현측에 기총대를 새로 설치하고 25mm 연장 기총 2기를 증설했다.[56] 이 기총대 설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앞쪽에 있던 통선(소형 보트) 2척을 육상으로 내리고, 후방의 커터와 내연정은 앞쪽으로 위치를 옮긴 것으로 사진을 통해 확인된다.[56] 이 개장 과정에서 함교 위에 있던 탐조등을 1번과 2번 굴뚝 사이로 옮기고, 전부 마스트의 윗부분을 짧게 줄이는 작업도 이루어졌다.[56] 또한, 덴류는 이때 현외 전로를 장착했다[56](다쓰타는 개전 시점에 이미 장착되어 있었다).

1942년 12월 덴류가 침몰한 후, 남은 다쓰타는 1943년 1월 마이즈루에 귀항하여 3월까지 수리 공사를 받았다.[57] 이때 함교에 장비되어 있던 3년식 6.5mm 기총 2정을 7.7mm 단장 기총 2정으로 교체했다는 승무원의 증언이 있다.[57]

6. 방공 순양함 개조 (미실현)

영국 해군은 1936년부터 C급 경순양함의 주포를 모두 고사포로 교체하여 방공순양함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58] 이러한 영국의 움직임에 주목한 일본 제국 해군 역시 1935년(쇼와 10년)경부터 방공 순양함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58] 이 과정에서 덴류급 또한 방공 순양함으로 개조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며, 몇 가지 구체적인 계획안이 제시되었다.[58]

초기 검토안(1935-1936년) 중 하나는 8문의 127 mm 연장포, 8문의 25mm 포, 그리고 4기의 폭뢰 발사기를 이용해 36개의 폭뢰를 탑재하는 대공/대잠 플랫폼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이 안에는 연돌을 하나로 통합하는 재설계도 포함되었다. 또 다른 검토안에서는 무장으로 12.7cm 연장 고사포 4기(총 8문), 25mm 3연장 기총 4기(총 12문), 94식 고사 장치 2기, 93식 폭뢰 투사기 1기, 94식 폭뢰 투사기 1기, 폭뢰 투하대 4기, 폭뢰 36개, 약연막 발생 장치 등을 장비하는 것을 고려했다.[58] 이 외에도 중유 혼소 보일러를 중유 전용으로 개조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58]

1937 회계 연도에 개조를 위한 자금 지원이 승인되었으나, 당시 일본 내 조선소의 건조 능력 부족 문제로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 1938년부터 1939년 사이에 8문의 98식 76.2 mm포를 탑재하는 안으로 계획이 다시 검토되었지만, 이마저도 아키즈키급 구축함 건조 계획으로 대체되면서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 비록 마루 3 계획 당시 개조 비용 요구가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 덴류급 개조 예산은 포함되지 않아 개조는 실현되지 못했다.[58] 군령부는 "쇼와 14년도 제국 해군 작전 계획 및 동 전시 편제"에서 쇼와 천황(대원수)에게 "덴류와 류타는 방공함으로 개조할 예정이므로 제1전대에 편입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지만[59], 이 역시 계획에 그쳤다.

이러한 덴류급의 방공 순양함 개조 계획 검토안에 대한 상세 내용은 후쿠이 시즈오 기술 소좌 등이 남긴 개인적인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7. 함력

덴류급 경순양함 2척은 1928년(쇼와 3년)까지 수뢰전대 기함을 맡았으나, 이후 5,500톤형 경순양함이나 유바리에게 기함 자리를 넘겨주고 중국 방면 경비 임무 등에 투입되었다.[52] "다쓰타"는 1943년(쇼와 18년)에 훈련 부대인 제11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57]

1940년(쇼와 15년) 11월 15일, 일본 해군은 제4함대 소속으로 순양함 3척(카시마[61], 덴류, 다쓰타)으로 구성된 제18전대를 편성했다. 이전 제18전대는 경순양함 다마[60]와 장갑순양함 도키와로 구성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인 1941년(쇼와 16년) 12월 1일, "카시마"가 제4함대 독립 기함이 되면서[61] 제18전대는 덴류급 2척(덴류, 다쓰타)만으로 재편되었다. 제18전대는 남양부대에 소속되어 전쟁 초기 웨이크 섬 공략 작전에 참가했으며, 이후 라에·사라모아 공략 등 남동 방면 공략 작전을 지원했다.[52]

1942년(쇼와 17년) 7월 14일 제8함대가 신설되자 제18전대는 제8함대로 편입되었다. "덴류"는 제1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으며, 이후 두 척 모두 라비 전투와 과달카날 전투에 투입되었다.[52] "덴류"는 11월 중순 제3차 솔로몬 해전에도 참가한 후, 뉴기니 방면 수송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12월 18일 미국 잠수함 앨버코어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덴류" 침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24일 제18전대는 해산되었다.[62] 살아남은 "다쓰타"는 일본 본토로 귀환하여 마이즈루 해군 공창에서 수리를 받았다. 1943년(쇼와 18년) 4월 1일에는 훈련 부대인 제11수뢰전대가 편성되자 그 기함을 맡았다. 1944년(쇼와 19년) 3월, 송 수송 작전에 참여하던 중 "다쓰타"는 미국 잠수함 샌드 랜스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52]

8. 동형함



덴류급에는 2척의 함선이 건조되었으며, 두 척 모두 태평양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8. 1. 덴류



덴류(天龍)는 가칭 "제1호 소형 순양함"으로 불렸다.[38] 1917년 5월 17일 요코스카 해군 공창에서 기공하여[38] 1918년 3월 11일 진수되었고,[11] 1919년 11월 20일 준공되었다.[11]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에는 시베리아 출병에 참여하고 양쯔강 순찰 임무를 수행했으며, 중국 해안에서 일본군의 상륙 작전을 지원했다.[6]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웨이크 섬 전투에 참전했으며, 솔로몬 제도, 뉴기니, 툴라기 침공 작전에도 투입되었다.[6] 사보 섬 해전에서는 덴류가 발사한 어뢰 2발이 미국 순양함 USS 퀸시(CA-39)를 격침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6]

이후 과달카날 해전에도 참전했으나,[6] 1942년 12월 18일 미국 잠수함 USS 앨버코어(SS-218)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38][6] 1943년 2월 1일 함선 목록에서 제적되었다.[64]

8. 2. 다쓰타

龍田|다쓰타일본어[9][63]는 가칭 "제2호 소형 순양함"으로 불렸다.[38] 1917년 7월 24일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기공하여[11] 1918년 5월 29일 진수하였고,[11] 1919년 3월 31일에 준공되었다.[11][7]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시베리아 출병에 참여했으며, 중국 해안에 일본군 상륙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7]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웨이크 섬 전투와 솔로몬 제도, 뉴기니, 툴라기 침공 등에 참전했다.[7] 1943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본 본토 해역에서 훈련 임무를 수행했다.[7]

1944년 3월 13일, 사이판으로 향하던 중 하치조지마 북북동쪽 40nmi 해역에서 미국 해군 잠수함 USS 샌드 랜스(SS-381)에 의해 격침되었다.[7][38] ''다쓰타''는 1944년 5월 10일 함선 목록에서 제적되었다.[7][65]

참조

[1] 서적 Lacroix/Wells p. 24
[2] 서적 Friedman, p. 237
[3] 서적 Stille, Imperial Japanese Navy Light Cruisers 1941-45, pp. 12-15.
[4] 서적 Lacroix and Wells, Japanese Cruisers of the Pacific War, p. 18.
[5] 서적 Lacroix/Wells p. 25
[6] 웹사이트 Tenryu Tabular Record of Movement http://www.combinedf[...]
[7] 웹사이트 Tatsuta Tabular Record of Movement http://www.combinedf[...]
[8] 문서 "[[#海軍艦艇史2]]p.217、No.2383の画像説明"
[9] 문서 "[[#海軍制度沿革8(1971)]]pp.88-92、大正15年11月29日内令第238号"
[10] 문서 "[[#日本海軍艦船名考]]pp.51-52,70-71"
[11] 문서 "[[#海軍制度沿革11-2(1972)]]pp.1057-1087、昭和3年2月14日(内令43)艦船要目公表範囲、うちpp.1060-1061。"
[12]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3では基準排水量の欄に3,500の記入があるが、常備の間違いと思われる。"
[13] 문서 "[[#海軍造船技術概要(1987)]]上巻p.306"
[14] 문서 "[[#軍艦基本計画資料]]Sheet3"
[15] 문서 "[[#昭和造船史1]]pp.782-783、附表第2 艦艇要目表 4.巡洋艦要目表(1/2)では常備3,948トンとしている。"
[16]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1、但しページ数が振っていないので戦後複写版と同じく表紙の次を1ページとして数えている(以下同様)。"
[17] 문서 "[[#海軍制度沿革11-2(1972)]]pp.1051-1052、建造中の艦船要目に関する件。大正8年9月5日(官房第3097号)。"
[18]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17"
[19] 문서 "[[#海軍造船技術概要(1987)]]下巻p.1689"
[20] 문서 "[[#昭和造船史1]]pp.782-783、附表第2 艦艇要目表 4.巡洋艦要目表(1/2)"
[21] 문서 "[[#軍艦基本計画資料]]Sheet32"
[22]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21、士官14人、特務士官11人、准士官7人、下士官77人、兵225人。戦後複写版では下士官79名で計336名になっている。"
[23] 문서 "[[#海軍制度沿革10-1(1972)]]p.573、大正7年6月22日付内令第203号「第45表の2 二等巡洋艦定員表 其3」。將校、機關將校、將校相當官26人、特務士官准士官7人、下士77人、兵227人。\n{{要検証|date=2017-03|大正8年3月5日付 海軍内令 第53号改正、海軍定員令「第46表 二等巡洋艦定員表 其3」。}}" 2017-03-01
[24]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3"
[25]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5"
[26]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11"
[27] 문서 "[[#JapaneseCruisers]]p.20,Drawing 1.6. Tenryu Class, Midship Section.によると上甲板の防御は40lb(25.4mm)HT鋼と35lb(22.2mm)HT鋼の2種類。"
[28]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p.15"
[29] 문서 "[[#一般計画要領書(二等巡洋艦)]]p.23"
[30] 문서 "[[#戦史叢書31海軍軍戦備1]]pp.246-248"
[31] 문서 "[[#日本巡洋艦物語]]p.297"
[32] 문서 "[[#日本巡洋艦史(2011)]]p.79"
[33]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p.14"
[34] 문서 "[[#海軍造船技術概要(1987)]]上巻p.298"
[35] 문서 "[[#海軍造船技術概要(1987)]]上巻p.302"
[36] 문서 戦史叢書31海軍軍戦備1
[37] 문서 T4公文備考巻58/雑款
[38] 문서 日本巡洋艦史(2011)
[39] 문서 写真日本の軍艦第8巻
[40]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
[41] 문서 日本軽巡の主砲 安式から14cm砲の採用まで 梅野和夫
[42] 문서 伊勢型に装備された一四センチ副砲 鈴木範樹
[43]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
[44] 문서 日本海軍巡洋艦要目表 I 新造時〔その1〕 明治期の防護巡洋艦ほか 阿部安雄
[45] 문서 一号連繋機雷とその装備法 阿部安雄
[46] 문서 田村2005天龍型
[47] 문서 T8公文備考巻18/軍艦龍田、天竜製造一件(1)
[48] 문서 海軍造船技術概要(1987)
[49] 문서 JapaneseCruisers
[50] 문서 JapaneseCruisers
[51] 문서 JapaneseCruisers
[52]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
[53] 문서 東・石橋(1990)天龍型
[54] 문서 田村2005天龍型
[55] 문서 田村2005天龍型
[56] 문서 田村2005天龍型
[57] 문서 田村2005天龍型
[58] 문서 実現しなかった軽巡の改造計画 ◇天龍型の防空巡洋艦改造計画◇ 阿部安雄
[59] 문서 昭和14年度海軍御説明
[60] 문서 写真日本の軍艦第8巻
[61] 문서 写真日本の軍艦第9巻
[62] 간행물 昭和17年12月25日(発令12月24日付)海軍辞令公報(部内限)第1020号 p.46 https://www.jacar.ar[...]
[63] 문서 海軍制度沿革8(1971)
[64] 문서 S18.1-4内令1巻/昭和18年2月(1)
[65] 문서 自S19.1至19.7内令/昭和19年5月(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