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도
1. 개요
라벤나도는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는 현으로,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다. 라벤나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비잔틴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위치했던 곳으로, 1921년 파시스트 운동의 발전을 촉발하는 봉기가 일어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벤나 현에는 18개의 코무네가 있으며, 현청 소재지인 라벤나시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코무네이다. 주요 도시로는 라벤나, 파엔차, 루고, 체르비아가 있으며, 볼로냐-안코나 철도 등 여러 철도 노선과 버스, 가까운 공항을 통해 교통이 이루어진다. 또한,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공식 이름 | 라벤나 현 |
|---|---|
| 현지 이름 | 이탈리아어: Provincia di Ravenna 로마냐어: Pruvènza ed Ravèna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가 | 이탈리아 |
|---|---|
| 지역 | 에밀리아로마냐주 |
| 현도 | 라벤나 |
| 면적 | 1,858 km² |
| 인구 (2012년) | 394,543명 |
| 인구 밀도 | auto |
| ISTAT 코드 | 039 |
| 자동차 번호판 | RA |
| 코무네 수 | 18 |
|---|---|
| 대통령 | 미켈레 데 파스칼레 |
| GDP (2015년) | 총액: €120억 5800만 1인당: €30,779 |
|---|
| 시간대 | CET (+1) CEST (+2) |
|---|---|
| 우편 번호 | 48010-48015, 48017, 48018, 48020, 48022, 48024-48027, 48100 |
| 전화 지역 번호 | 0544, 0545, 0546 |
| 주요 코무네 | 파엔차 루고 체르비아 바냐카발로 |
2. 역사
라벤나는 고대 이탈리아 부족의 정착지로 시작하여 로마 공화국에 정복되었고, 이후 서로마 제국의 수도, 동고트 왕국의 수도, 비잔틴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 중심지를 거쳤다. 중세에는 롬바르드족의 침략 이후 프랑크 왕국에 의해 교황령에 기증되었으며, 잠시 독립적인 코무네 시기를 거쳐 다시 교황령과 베네치아 공화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캉브레 동맹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통일 운동 과정에서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20세기 초에는 파시즘 운동의 중요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2.1. 고대
라벤나 지역은 원래 이탈리아 북부의 부족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기원전 191년에 로마 공화국에 정복되었다. 이후 클라세 근처에 항구가 건설되었고, 아드리아 해 함대가 라벤나에 주둔하게 되었다. 서기 402년에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476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게르만족의 왕인 오도아케르와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가 차례로 라벤나를 지배했다. 그러다 540년 비잔틴 제국에 정복되었고, 비잔틴 제국은 라벤나를 라벤나 총독부의 중심지로 삼았다.
2.2. 중세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한 후, 라벤나는 게르만족 왕 오도아케르와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이후 540년 비잔틴 제국에 정복되었고, 비잔틴 제국은 라벤나를 이탈리아 통치의 거점인 라벤나 총독부의 수도로 삼았다.
라벤나는 751년 롬바르드족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로 남아 있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가 롬바르드족을 몰아내고 라벤나를 점령하였다. 피핀 3세는 756년 또는 757년에 라벤나를 교황령에 기증하였다. 라벤나는 12세기에 잠시 독립적인 코무네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교황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교황청은 1278년에 라벤나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강화하였고, 이후 교황 대리인을 통해 도시를 통치하였다. 이러한 교황령의 지배는 1441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라벤나를 점령할 때까지 이어졌다. 캉브레 동맹 전쟁 중인 1512년에는 라벤나 근처에서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교황군은 프랑스군에게 패배했지만, 프랑스군 역시 큰 피해를 입고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라벤나는 다시 교황령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상태는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2.3. 근대
캉브레 동맹 전쟁 중 1512년 라벤나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져 교황군은 패배했지만, 프랑스군은 큰 피해를 입고 이탈리아에서 물러났다. 이후 라벤나는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될 때까지 교황령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에 들어 1921년, 라벤나에서 일어난 봉기는 이 지역에서 파시즘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탈로 발보가 이끄는 파시스트 세력은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소유의 건물을 점거하거나 불태웠다. 특히 1921년 7월 29일, 발보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라벤나와 포를리 지방을 돌며 모든 사회주의 조직 본부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는 훗날 "불의 기둥"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세력이 확장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4. 현대
1921년, 라벤나에서 일어난 봉기는 이 지역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소유한 건물들은 이탈로 발보에 의해 점거되거나 불탔다. 특히 7월 29일, 발보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라벤나와 포를리 지방을 돌며 모든 사회주의 조직 본부를 불태우는 이른바 "불의 기둥"이라 불리는 공포의 밤을 자행했다. 이 사건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세력을 넓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3. 지리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동쪽에 있는 9개 현 중 하나로, 아드리아해와 접한다. 북쪽으로는 페라라현, 서쪽으로는 볼로냐 광역시, 남서쪽으로는 토스카나주의 피렌체 광역시, 남쪽으로는 포를리-체세나현과 경계를 이룬다. 현은 로마냐 지방에 속한다.
현청 소재지인 라벤나시는 현의 동부에 위치하며, 내륙으로 몇 마일 떨어져 있지만 칸디아노 운하를 통해 아드리아해와 연결된다. 라벤나시는 포를리에서 북동쪽으로 25km, 페라라에서 남동쪽으로 66km, 주도 볼로냐에서 동쪽으로 68km, 수도 로마에서 북쪽으로 282km 거리에 있다.
--
인접한 현은 다음과 같다.
4. 행정 구역
라벤나 현에는 18개의 코무네가 속해 있다. 각 코무네의 상세 정보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4.1. 주요 도시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른 거주 지역(Località abitata이탈리아어)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취락은 다음과 같다.
현 산하 최대 도시는 현청 소재지인 라벤나로, 도시 인구 약 7만 명, 주변 지역을 포함한 코무네 인구는 약 15만 명이다. 라벤나는 서로마 제국과 동고트 왕국이 수도를 두었고, 동로마 제국이 라벤나 총독령의 수부로 삼는 등 고대부터 중세 초기에 걸쳐 북이탈리아의 중요한 도시였다. 라벤나시는 이탈리아에서 로마시에 이어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코무네이기도 하며, 현 면적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파엔차는 중세 이래 도업의 중심지로 알려진 도시이다.
--
--
4.2. 코무네 목록
라벤나 현에는 18개의 코무네가 속해 있다.
--
아래 표의 인구는 2023년 1월 1일 현재이며, 면적은 2001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다.
| ISTAT 코드 | 자치체 명칭 | 이탈리아어 철자 | 면적 (km²) | 인구 |
|---|---|---|
| 039001 | 알폰시네 | {{lang|it|Alfonsine|} | } || 106.74km2 || 1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