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와 레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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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이다. 이들은 트로이 전쟁 영웅 아이네아스의 후손인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에게서 낳은 아들로, 아물리우스에 의해 테베레 강에 버려졌으나 늑대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여 로마를 건설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 신화는 여러 문헌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지며, 로마의 정체성과 상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 왔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었으며, 영화와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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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와 레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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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와 레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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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 알바롱가 |
사망 | 로물루스: 불명 (전설에 따르면 신격화) 레무스: 기원전 753년경 (로물루스에게 살해) |
성별 | 남성 |
국적 | 고대 로마 |
가족 | |
아버지 | 마르스 (전통적 설화) 헤라클레스 (일부 설화) |
어머니 | 레아 실비아 |
할아버지 | 누미토르 (외할아버지) |
삼촌 | 아물리우스 (외삼촌) |
관련 인물 | 파우스툴루스 (양아버지) 아카 라렌티아 (양어머니) |
로마 건국 신화 | |
주요 사건 | 출생과 양육 로마 건국 형제 살해 (레무스) |
관련 신화 | 로마 건국 신화 |
관련 장소 | 팔라티노 언덕 폰테 로토 다리 피쿠스 루미날리스 (신성한 무화과나무) |
문화적 중요성 | |
상징 | 늑대젖 로마 건국 |
예술적 표현 | 조각상 회화 문학 작품 |
전설 | 로마 건국 신격화된 로물루스 |
관련 인물 | 로마인 유럽인 서구인 |
기타 정보 | |
로마자 표기 | Romulus (로물루스) Remus (레무스) |
2. 로물루스와 레무스 탄생 설화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그의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 신이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
아물리우스 왕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를 자신의 통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티베르 강 기슭에 버려졌다. 그들은 강의 신 티베리누스에 의해 구조되었고, 훗날 로마가 세워질 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쌍둥이는 루페르칼로 알려진 동굴에서 암컷 늑대에게 젖을 먹었다.[4] 결국 그들은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입양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른 채 양떼를 돌보며 자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어 많은 지지자들을 모았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젊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에 휘말렸다. 그 결과, 레무스는 포로로 잡혀 알바 롱가로 끌려갔다. 그의 할아버지와 왕 모두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의심했다. 한편 로물루스는 그의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조직하고 도시를 위해 도움을 구하며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힘을 합쳐 그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아물리우스는 죽었고 누미토르는 알바의 왕으로 복위되었다. 쌍둥이는 스스로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일곱 언덕 지역으로 돌아온 후, 그들은 도시를 건설할 언덕을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로물루스는 루페르칼 위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선호했고,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분쟁을 해결할 수 없었던 그들은 점술 대결을 통해 신들의 승인을 구하기로 합의했다. 레무스는 6마리의 상서로운 새를 보았지만, 로물루스는 12마리를 보았고 신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논쟁했고,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새로운 도시를 모욕했으며, 결국 로물루스 또는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에게 살해되었다.[5] 로물루스는 그 후 로마 도시, 그 제도, 정부, 군대, 종교 전통을 세웠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초대 왕으로 통치했다.
2. 1. 가계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후손은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한 알바 롱가라는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다.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형제는 씨족의 상속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동생인 아물리우스는 형의 장자권을 무시하고 무력을 써서 씨족의 우두머리가 된 후, 형의 딸 레아 실비아(일리아)를 베스타 신전의 사제로 삼아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써 누미토르 가계의 씨를 말리려고 하였다.[2] 베스타 신전의 제사장은 성직자라는 종교적 위치 덕분에 사회에서 존경받았지만, 평생 동정과 신전의 불을 지킬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그의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 신이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
2. 2. 레아 실비아와 마르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후손은 로마 남동쪽에 있는 알바 롱가에 정착했다.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형제는 상속권을 두고 다투었다. 동생 아물리우스는 형의 장자권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씨족의 우두머리가 된 후, 형의 딸 레아 실비아를 베스타 신전의 사제로 삼아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써 누미토르 가계의 대를 끊으려 했다. 베스타 신전의 제사장은 성직자라는 종교적 위치 덕분에 사회에서 존경받았지만, 평생 동정과 신전의 불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2]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 신이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
3. 운명
파우스툴루스는 아물리우스의 명에 따라 갓난아이들을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강에 띄워 보냈다. 한편 실비아는 비탄에 잠겨 테베레 강에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을 실은 바구니는 얼마 후 강가로 떠밀려 멈췄다. 때마침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늑대 어미는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으며, 딱따구리가 다른 먹을 것을 날아 주었다고 한다.[38] 다른 전설에 따르면 파우스툴루스는 그의 아내 라렌티아와 함께 아물리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몰래 자신의 집에서 쌍둥이를 양육하였다고도 한다.
이후 일곱 언덕 지역으로 돌아온 쌍둥이는 도시를 건설할 언덕을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로물루스는 루페르칼 위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점술 대결을 통해 신들의 승인을 구하기로 했으나, 레무스는 6마리, 로물루스는 12마리의 상서로운 새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결과에 대해 논쟁했다.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새로운 도시를 모욕했고, 결국 로물루스 또는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에게 살해되었다.[5] 로물루스는 그 후 로마 도시, 제도, 정부, 군대, 종교 전통을 세웠고, 여러 해 동안 초대 왕으로 통치했다.
3. 1. 성장과 복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의 일곱 언덕 근처에 있던 고대 라틴 도시들 중 하나인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이리아라고도 알려짐)[2]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그의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 신이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아물리우스 왕은 그들을 자신의 통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죽으라고 티베르 강 기슭에 버려졌다. 그들은 강의 신 티베리누스에 의해 구조되었고, 미래 로마의 장소에서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쌍둥이는 현재 루페르칼로 알려진 동굴에서 암컷 늑대에게 젖을 먹였다.[4] 결국 그들은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입양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른 채 양떼를 돌보며 자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자연스러운 지도자가 되었고, 공동체로부터 많은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들이 젊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의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에 휘말렸다. 그 결과, 레무스는 포로로 잡혀 알바 롱가로 끌려갔다. 그의 할아버지와 왕 모두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의심했다. 한편 로물루스는 그의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조직하고 도시를 위해 도움을 구하며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힘을 합쳐 그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아물리우스는 죽었고 누미토르는 알바의 왕으로 복위되었다. 쌍둥이는 스스로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4. 로마 건국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의 일곱 언덕 근처에 있던 고대 라틴 도시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일리아라고도 알려짐)[2]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그의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신 마르스가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
아물리우스 왕은 그들을 자신의 통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죽으라고 티베르 강 기슭에 버려졌다. 그들은 강의 신 티베리누스에 의해 구조되었고, 미래 로마의 장소에서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쌍둥이는 현재 루페르칼로 알려진 동굴에서 암컷 늑대에게 젖을 먹였다.[4] 결국 그들은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입양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른 채 양떼를 돌보며 자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자연스러운 지도자가 되었고, 공동체로부터 많은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들이 젊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의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에 휘말렸다. 그 결과, 레무스는 포로로 잡혀 알바 롱가로 끌려갔다. 그의 할아버지와 왕 모두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의심했다. 한편 로물루스는 그의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조직하고 도시를 위해 도움을 구하며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힘을 합쳐 그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아물리우스는 죽었고 누미토르는 알바의 왕으로 복위되었다. 쌍둥이는 스스로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4. 1. 도시 건설 장소 갈등
일곱 언덕 지역으로 돌아온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도시를 건설할 언덕을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로물루스는 루페르칼 위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선호했고,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분쟁을 해결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점술 대결을 통해 신들의 승인을 구하기로 합의했다. 레무스는 6마리의 상서로운 새를 보았지만, 로물루스는 12마리를 보았고 신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결과에 대해 논쟁했고,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새로운 도시를 모욕했으며, 결국 로물루스 또는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에게 살해되었다.[5] 이후 로물루스는 로마 도시, 제도, 정부, 군대, 종교 전통을 세웠고, 여러 해 동안 초대 왕으로 통치했다.4. 2. 점술 대결과 레무스의 죽음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도시를 건설할 언덕을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로물루스는 루페르칼 위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선호했고,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분쟁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점술 대결을 통해 신들의 승인을 구하기로 합의했다. 레무스는 6마리의 상서로운 새를 보았지만, 로물루스는 12마리를 보았고 신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논쟁했고,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새로운 도시를 모욕했으며, 결국 로물루스 또는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되었다.[5] 이후 로물루스는 로마 도시, 그 제도, 정부, 군대, 종교 전통을 세웠으며, 여러 해 동안 초대 왕으로 통치했다.4. 3. 로마 건국과 통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의 일곱 언덕 근처에 있던 여러 고대 라틴 도시들 중 하나인 알바 롱가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이리아라고도 알려짐)[2]는 베스타 처녀이자 전임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는데, 누미토르는 그의 형제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어떤 자료에서는 레아 실비아가 신 마르스가 그를 위해 봉헌된 신성한 숲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임신했다고 한다.[3]아물리우스 왕은 그들을 자신의 통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죽으라고 티베르 강 기슭에 버려졌다. 그들은 강의 신 티베리누스에 의해 구조되었고, 미래 로마의 장소에서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쌍둥이는 현재 루페르칼로 알려진 동굴에서 암컷 늑대에게 젖을 먹였다.[4] 결국 그들은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입양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른 채 양떼를 돌보며 자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자연스러운 지도자가 되었고, 공동체로부터 많은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들이 젊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의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에 휘말렸다. 그 결과, 레무스는 포로로 잡혀 알바 롱가로 끌려갔다. 그의 할아버지와 왕 모두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의심했다. 한편 로물루스는 그의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조직하고 도시를 위해 도움을 구하며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와 힘을 합쳐 그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아물리우스는 죽었고 누미토르는 알바의 왕으로 복위되었다. 쌍둥이는 스스로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일곱 언덕 지역으로 돌아온 후, 그들은 도시를 건설할 언덕을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로물루스는 루페르칼 위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선호했고,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그들이 분쟁을 해결할 수 없자, 그들은 점술 대결을 통해 신들의 승인을 구하기로 합의했다. 레무스는 6마리의 상서로운 새를 보았지만, 로물루스는 12마리를 보았고 신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논쟁했고,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새로운 도시를 모욕했고, 로물루스 또는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되었다.[5] 로물루스는 그 후 로마 도시, 그 제도, 정부, 군대, 종교 전통을 세웠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초대 왕으로 통치했다.
5. 로마 건국 신화의 다양한 해석
로마 건국 신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다. 신화의 요소들이 로마 자체의 이탈리아 기원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기원을 밝히는 것은 고전학자들에게 어려운 과제이다.[6]
로마 역사가들은 건국 시기를 기원전 753년경으로 추정했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세기 후반의 것이다.[7] "완전한"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8] 신화의 줄거리와 어조는 출처의 상황, 취향, 당대 로마의 정치와 적절성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았다.[9] 쌍둥이 신화가 로마 신화의 원래 부분인지, 아니면 후대에 발전된 것인지도 논쟁거리이다.
여러 자료들은 종종 서로 모순된다.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 타키투스의 역사,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7][10][11]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의 저술은 리비우스의 『로마사』,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의 『로마 고대사』, 플루타르코스의 『로물루스의 일생』의 초기 부분에 권위 있는 자료가 되었다.[12] 이 세 작품은 가장 널리 읽히는 버전 중 하나이며, 모두 루퍼칼과 형제 살해 이야기는 쌍둥이의 혈통, 아이네이아스와의 관계, 아물리우스의 폐위 이야기에 가려진다. 플루타르코스는 서술의 거의 절반을 삼촌의 전복에 할애한다.
현대 학계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로마 건국 신화에 대한 누적적인 상세화 및 후대 해석으로 접근한다. 특정 버전과 종합본은 로마 역사가들에 의해 공식 역사로 제시되어 모순과 변형이 제거되었고, 로마 도덕과 관련하여 당대의 발전, 족보 및 행동을 정당화했다. 다른 서술은 대중적 또는 민속적 전통을 나타내며, 일부는 목적과 의미를 알 수 없다. 와이즈먼은 이를 모두 문제가 많은 기초와 초기 역사의 신화학으로 요약한다.[20][21]
현대 학계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역사적 실존을 포함하여 로마 건국 신화의 특정 버전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28] 파비우스 픽토르(Fabius Pictor)부터 시작하여 기록된 자료들은 어느 정도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도시의 역사를 반영했을 것이다.[29] 고고학자 안드레아 카란디니(Andrea Carandini)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는 극소수의 현대 학자 중 한 명이며, 팔라티노 언덕 북쪽 사면의 고대 성벽을 기원전 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로물루스의 성벽(Murus Romuli)"이라고 명명한다.[30][31]
5. 1. 주요 사료
로마 건국 신화의 기원은 로마 자체의 이탈리아 기원인지, 헬레니즘의 영향인지는 논쟁거리였다. 그 요소를 밝히는 것은 고전학자들을 당혹하게 했다.[6] 로마 역사가들은 건국을 기원전 753년경으로 추정했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세기 후반의 것이다.[7]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8]이야기의 줄거리와 어조는 당대 로마의 정치와 적절성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았다.[9] 쌍둥이 신화가 로마 신화의 원래 부분인지 아니면 후대의 발전인지는 논쟁의 주제이다. 자료들은 종종 서로 모순된다. 여기에는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 타키투스의 역사와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작품이 포함된다.[7][10][11]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의 저술은 리비우스의 『로마사』,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의 『로마 고대사』, 플루타르코스의 『로물루스의 일생』의 초기 부분에 권위 있는 자료가 되었다.[12] 이 세 작품은 신화의 가장 널리 읽히는 버전이다. 세 작품 모두에서 루퍼칼과 형제 살해 이야기는 쌍둥이의 혈통과 아이네이아스와의 관계, 아물리우스의 폐위 이야기에 가려진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서술의 거의 절반을 삼촌의 전복에 할애한다.
- '''디오니시우스'''는 픽토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토 대왕, 루키우스 킨키우스 알리멘투스의 역사서들을 인용한다. 디오니시우스의 로마 역사 첫 번째 권에서는 235페이지(71장)까지 레무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알바 롱가에서의 그들의 탄생 배경에 대해 8장을 더 논한 후, 그는 총 9장(79~87장)을 이 이야기에 할애한다. 그 대부분은 아물리우스와의 갈등을 논하는 데 사용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의한 도시 건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와 쌍둥이의 혈통과 부모에 대해 티베르 강에 버려진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8장을 더 논한다. 그는 79장의 대부분을 야생에서의 생존에 대해 논한다. 그런 다음 79장의 끝부터 84장까지는 아물리우스와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84장에서는 그들의 비환상적인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295장은 점복술에 관한 내용이며, 85~86장과 87~88장은 형제 살해에 관한 내용이다.
- '''리위우스'''는 저서 1권 4, 5, 6장에서 이 신화를 논한다. 7쪽 부모, 8쪽 생존, 8쪽 소년 시절, 9-10쪽 아물리우스와의 싸움, 11쪽(서두만) 점복과 형제 살해.

- '''플루타르코스'''는 『로물루스의 일생』 2장부터 10장까지에서 이 전설을 이야기한다. 그는 전체 서술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아물리우스와의 갈등에 할애한다.
- 서기 1세기 초 '''오비디우스'''가 지은 서사시인 『파스티(Fasti)』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담겨 있다. 특히, 레무스의 유령이 파우스툴루스(Faustulus)와 그의 아내(시인은 그녀를 "악카(Acca)"라고 부른다)에게 나타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사』는 여러 주석서의 단편들로만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상당히 완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 기록에는 알바 롱가의 왕이 두 소년을 추방한 이유로 누미토르의 아들이 아물리우스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같은 장소에 훨씬 이전에 다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있었고, 또 다른 로마가 건설되었다는 내용도 언급되어 있다.[13] 이 저서에는 이야기의 여러 가지 버전이 담겨 있다. 한 버전에는 숲 속에 버려졌던 시절, 딱따구리가 소년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물리우스와의 갈등에 대한 한 기록에서는 레무스의 체포가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로물루스는 자신의 진짜 정체와 알바 왕의 손에 자신과 가족이 당한 범죄에 대해 듣자마자 단순히 그 복수를 하기로 결정했다.[14]

'''그 외 사료:'''
- 엔니우스의 ''연대기''
- 앱피아누스의 ''로마사'' 제1권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15]
-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역사 도서관''
- 카토 대장의 ''기원''
-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16]
-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Quintus Fabius Pictor)
- 디오클레스(Diocles of Peparethus)
-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Lucius Calpurnius Piso Frugi (consul 133 BC))
- 퀸투스 엘리우스 투베로(Quintus Aelius Tubero (jurist))
- 마르쿠스 옥타비우스
- 리키니우스 마케르(Licinius Macer)
- 벤노니우스
- 유바 2세(Juba II)[17]
5. 2. 역사적 배경과 논쟁
로마 건국 신화의 다양한 요소들의 기원은 지속적인 논쟁거리이다. 이는 로마인 자신의 이탈리아 기원에서 유래했거나, 나중에 포함된 헬레니즘적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 원초적인 요소들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지금까지 고전학자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6] 로마 역사가들은 로마의 건국을 기원전 753년경으로 추정했지만, 이 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세기 후반의 것이다.[7] "완전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리고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8]일부 요소는 다른 요소보다 더 일찍 증명되었고, 이야기의 줄거리와 어조는 각 출처의 상황과 취향뿐만 아니라 당대 로마의 정치와 적절성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았다.[9] 쌍둥이의 신화가 로마 신화의 원래 부분이었는지 아니면 후대의 발전인지는 지속적인 논쟁의 주제이다. 자료들은 종종 서로 모순된다. 여기에는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 타키투스의 역사와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작품이 포함된다.[7][10][11]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의 저술은 리비우스의 『로마사』,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의 『로마 고대사』, 플루타르코스의 『로물루스의 일생』의 초기 부분에 권위 있는 자료가 되었다.[12] 이 세 작품은 신화의 가장 널리 읽히는 버전 중 하나였다. 세 작품 모두에서 루퍼칼과 형제 살해 이야기는 쌍둥이의 혈통과 아이네이아스와의 관계, 아물리우스의 폐위 이야기에 가려진다. 후자가 서술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서술의 거의 절반을 삼촌의 전복에 할애한다.
현대 학계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관한 여러 알려진 이야기를 로마 건국 신화에 대한 누적적인 상세화 및 후대 해석으로 접근한다. 특정 버전과 종합본은 로마 역사가들에 의해 권위 있는 공식 역사로 제시되어 모순과 어수선한 변형이 제거되었고, 로마 도덕과 관련하여 당대의 발전, 족보 및 행동을 정당화했다. 다른 서술은 대중적 또는 민속적 전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그중 일부는 목적과 의미를 알 수 없다. 와이즈먼은 이를 모두 유난히 문제가 많은 기초와 초기 역사의 신화학으로 요약한다.[20][21]
리비우스, 디오니시우스, 플루타르코스의 세 가지 정설적인 기록은 로마 건국 신화 연구의 광범위한 문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지만 각각의 목적에 따라 선택적이다. 리비우스의 기록은 당대 로마 전통의 목적과 도덕성을 정당화하는 존엄한 안내서이다. 디오니시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외부인으로서 동일한 주제에 접근하며, 리비우스가 언급하지 않은 창립 전통을 포함하는데, 이는 공통된 출처를 찾을 수 없으며 특정 지역, 사회 계급 또는 구전 전통에 특유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22][23] 후기 로마 제국 시대의 로마 문서인 ''로마 족의 기원''은 로마 건국 신화의 많은 "다소 기이한" 종종 모순되는 변형에 전념하며, 레무스가 로마에서 5마일 떨어진 레무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의 형 로물루스보다 오래 살았다는 버전도 포함된다.[24][25]
로마 역사가들과 로마 전통은 대부분의 로마 제도를 로물루스에게 추적했다. 그는 로마의 군대, 권리와 법률 체계, 국가 종교와 정부, 그리고 모든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활동의 기반이 된 후원 관계 체계를 창설한 것으로 여겨졌다.[26] 현실적으로 이러한 발전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을 것이다. 어떤 것은 훨씬 오래되었고 다른 것들은 훨씬 최근의 것이었다. 대부분의 로마인들에게 전설과 그 중심 인물들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로마의 신성한 지형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쌍둥이가 암캐에게 젖을 먹였다는 루퍼칼을 방문하거나, "''양치기 오두막''"에서 신격화된 로물루스-퀴리누스에게 예배를 드리거나, 무대에서 그것을 보거나, 단순히 파스티를 읽을 수 있었다.
전설 전체는 로마의 자기 인식, 기원 및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다. 현대 학계에서는, 특히 레무스의 죽음 방식에서 모든 건국 신화 중 가장 복잡하고 문제가 많은 것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고대 역사가들은 로물루스가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는 데 의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이름이 로마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역어형성이라고 믿는다. 레무스의 이름과 역할에 대한 근거는 고대와 현대의 추측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이 신화는 공화정 말기와 초기 제국 시대에 "공식적인" 연대순 버전과 같은 것으로 완전히 발전되었으며, 로마 역사가들은 도시의 건설을 기원전 758년과 728년 사이로 추정했고, 플루타르코스는 쌍둥이의 출생 연도를 기원전 771년으로 계산했다. 반신적인 트로이 왕자 아이네이아스에게 로물루스의 먼 조상을 부여한 전통은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로물루스는 로마 최초의 제국 왕조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광범위한 신화적 서술에 대한 가능한 역사적 근거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27] 신성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는 암캐의 이미지는 도시와 그 건국 전설의 상징적인 표현이 되었으며,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고대 신화의 야생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로 만들었다.
현대 학계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역사적 실존을 포함하여 로마 건국 신화의 어떤 특정한 버전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28] 파비우스 픽토르(Fabius Pictor)부터 시작하여 기록된 자료들은 어느 정도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도시의 역사를 반영했을 것이다.[29] 고고학자 안드레아 카란디니(Andrea Carandini)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는 극소수의 현대 학자 중 한 명이며, 팔라티노 언덕 북쪽 사면의 고대 성벽을 기원전 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로물루스의 성벽(Murus Romuli)"이라고 명명한다.[30][31]
6. 로마 건국 신화의 의의와 영향
로물루스와 레무스 신화는 로마의 정체성과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으며, 후대에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고 상세화되었다. 리비우스, 디오니시우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은 주요 연구 자료이지만, 각자의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술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22][23]
로마인들은 로마의 제도, 군대, 법률, 종교, 후원 관계 등이 대부분 로물루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다.[26] 그러나 현대 학계에서는 레무스의 죽음을 포함한 신화의 여러 부분이 복잡하고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본다. 고대 역사가들은 로물루스가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믿었지만, 현대 학자들은 '로마'에서 '로물루스'라는 이름이 역어형성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신화는 공화정 말기와 초기 제국 시대에 "공식적인" 연대순으로 발전했으며, 로마 역사가들은 도시 건설을 기원전 758년에서 728년 사이로 추정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쌍둥이의 출생 연도를 기원전 771년으로 계산했다. 트로이 왕자 아이네이아스를 로물루스의 조상으로 설정하고, 로물루스를 로마 최초의 제국 왕조의 직계 조상으로 만드는 전통도 추가되었다.
신성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는 암캐의 이미지는 도시와 건국 전설의 상징이 되었으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고대 신화의 야생아 중 가장 유명하다.
6. 1. 로마의 정체성과 상징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는 로마 건국 신화에 대한 후대의 해석과 상세화로, 로마의 정체성과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다. 리비우스, 디오니시우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은 로마 건국 신화 연구의 주요 자료이지만, 각각의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술되어 있다.[22][23]로마인들은 로마의 제도, 군대, 권리와 법률 체계, 국가 종교와 정부, 후원 관계 체계가 대부분 로물루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다.[26]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일부는 로물루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것이거나 이후의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전설은 로마의 신성한 지형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쌍둥이가 젖을 먹었다는 루퍼칼이나 "양치기 오두막"과 같은 장소는 그 증거로 여겨졌다.
현대 학계에서는 레무스의 죽음 방식을 포함하여 건국 신화의 여러 부분이 복잡하고 문제가 많은 것으로 간주된다. 고대 역사가들은 로물루스가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고 믿었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로마'라는 이름에서 '로물루스'라는 이름이 역어형성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신화는 공화정 말기와 초기 제국 시대에 "공식적인" 연대순 버전으로 발전했으며, 로마 역사가들은 도시 건설을 기원전 758년에서 728년 사이로 추정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쌍둥이의 출생 연도를 기원전 771년으로 계산했다. 또한, 트로이 왕자 아이네이아스를 로물루스의 조상으로 설정하고, 로물루스를 로마 최초의 제국 왕조의 직계 조상으로 만드는 전통이 추가되었다.
신성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는 암캐의 이미지는 도시와 건국 전설의 상징이 되었으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고대 신화의 야생아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
고대 로마의 쌍둥이 형제 그림은 목동, 암캐, 무화과나무 아래의 쌍둥이, 한두 마리의 새(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또는 두 명의 목동, 암캐, 동굴 속의 쌍둥이, 드물게 무화과나무, 새는 전혀 없는 경우(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등 특정한 상징적인 전통을 따랐다.
쌍둥이와 암캐는 로마에서 주조된 초기 은화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32]
프랑크 상자는 7세기 초 앵글로색슨 시대의 상아 상자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두 마리의 늑대, 숲, 네 명의 무릎 꿇은 전사들과 함께 묘사한다. 이는 쌍둥이를 항해를 돕는 디오스쿠리로 해석하거나, 전쟁의 신을 조상으로 둔 존재로서 전쟁터로 가는 길을 돕는 자로 해석할 수 있다.[33]
6. 2. 예술 작품의 소재
고대 로마의 쌍둥이 형제를 묘사한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전설에 따라 특정한 상징적인 전통을 따랐다. 목동, 암캐, 무화과나무 아래의 쌍둥이, 그리고 한두 마리의 새를 보여주는 경우(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가 있거나, 두 명의 목동, 암캐, 동굴 속의 쌍둥이, 드물게 무화과나무, 그리고 새는 전혀 없는 경우(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가 있었다.[32]쌍둥이와 암캐는 로마에서 주조된 가장 초기의 은화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32]
프랑크 상자는 앵글로색슨 시대의 상아 상자(7세기 초)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특이한 배경으로 보여준다. 암캐 대신 두 마리의 늑대, 나무 한 그루나 동굴 대신 숲, 한두 명의 몸짓하는 목동 대신 네 명의 무릎 꿇은 전사들이 등장한다. 한 해석에 따르면, 룬 문자 비문("고향에서 멀리")에서 나타나듯이, 쌍둥이들은 여기서 항해를 돕는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와 같은 ''디오스쿠리''로 언급된다. 로마의 전쟁의 신을 조상으로 둔 그들은 전쟁터로 가는 길을 돕는 자로 여겨졌다. 조각가는 그들을 게르만 신성한 숲으로 옮겨놓고, 오딘의 두 번째 늑대를 그들과 함께 배치했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다른 다섯 개의 그림과 함께 전사 왕의 운명과 운을 의미하는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했다.[33]

이 신화는 수 세기 동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마르스에 의한 레아 실비아의 강간과 암컷 늑대가 쌍둥이를 젖 먹이는 장면이 주목을 받았다.
16세기 후반, 볼로냐의 부유한 마냐니(Magnani) 가문은 로마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예술 작품을 의뢰했다. 작품에 참여한 예술가들 중에는 가브리엘레 피오리니(Gabriele Fiorini)가 제작한 헤라클레스와 쌍둥이 아기상이 있는데, 여기에는 후원자인 마냐니 가문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카라치 형제(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아고스티노 카라치(Agostino Carracci))가 그린 ''로마 건국의 역사''로 알려진 정교한 프레스코화 연작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로지아'는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가 15세기에 그린 미완성 프레스코화로, 트린치 궁전(Palazzo Trinci)에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전설의 여러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6. 3. 현대 문화 속 로물루스와 레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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