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윌리엄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로비 윌리엄스는 1974년 2월 13일 영국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로, 1990년 아이돌 그룹 테이크 댓의 멤버로 데뷔했다. 1995년 탈퇴 후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Angels"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2010년 테이크 댓에 잠시 재결합하기도 했으며, 2022년에는 솔로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 ''XXV''를 발매하고 솔로 아티스트 사상 최다 영국 1위 기록을 세웠다. 2023년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공개되었고, 2024년에는 자서전 뮤지컬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월드 뮤직 어워드 수상자 - 비틀즈
1960년대 영국에서 결성되어 혁신적인 음악과 문화적 현상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멤버 간의 갈등으로 1970년 해산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구성된 록 밴드가 비틀즈이다. - 월드 뮤직 어워드 수상자 - U2
U2는 197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되어 사회적, 정치적, 영적인 주제를 다루는 서정적인 가사와 독특한 기타 사운드, 혁신적인 무대 연출로 유명하며 1억 5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세계적인 록 밴드이다. - 잉글랜드의 팝 가수 - 서맨사 폭스
서맨사 폭스는 1980년대 영국의 인기 핀업 모델이자 섹스 심벌로, 1986년 "Touch Me (I Want Your Body)"로 가수 데뷔 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여러 히트곡 발표 및 영화, TV 프로그램 출연, 그리고 2003년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 후 2022년 린다 올슨과 결혼했다. - 잉글랜드의 팝 가수 - 나오미 캠벨
영국의 모델 나오미 캠벨은 15세에 데뷔하여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슈퍼모델"로 불리며 인정받았고, 모델 활동 외 앨범 발매, 작가 및 연기 활동과 더불어 패션 업계의 인종 차별 비판 및 자선 활동을 펼쳤다. - 잉글랜드의 남자 싱어송라이터 - 존 레논
존 레논은 비틀즈 멤버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솔로 활동과 평화 운동으로 20세기 대중음악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예술가이다. - 잉글랜드의 남자 싱어송라이터 - 조지 해리슨
영국의 록 음악가이자 비틀즈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던 조지 해리슨은 "조용한 비틀"로 불리며 "Something"과 같은 곡들을 작곡했고, 인도 악기 도입, 솔로 활동, 방글라데시 난민 구호 콘서트 개최, 영화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 생애
로버트 피터 윌리엄스는 1974년 2월 13일 스토크온트렌트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펍을 운영하다 포트 베일 소셜 클럽의 허가권자가 되었다.[16]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 킬케니 출신이었다.[17] 그는 스태퍼드셔주 턴스톨에 있는 세인트 마가렛 워드 가톨릭 학교를 다녔고,[18] 뮤지컬 ''올리버!''에서 아서풀 도저 역을 맡는 등 학교 연극에 참여했다.[19]
1990년, 17세 때 오디션을 통해 테이크 댓의 멤버로 데뷔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1995년에 탈퇴했으나, 1996년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엔젤스〉, 〈밀레니엄〉, 〈록 DJ〉, 〈섬씽 스투피드〉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2002년 EMI와 8000만파운드의 계약을 체결했고,[222] 영국 100대 위인에 선정되었다.[223] 2004년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224] 2006년 월드 투어는 하루 만에 160만 장의 티켓을 판매하여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었다.[225]
2010년 테이크 댓에 재합류하여 활동했으나, 2011년 다시 탈퇴하고 유니버설 뮤직으로 이적했다.[227] 2016년 소니 뮤직으로 이적했고, 2018년 FIFA 월드컵 개막식에서 공연했다.[228]
250px
2022년 솔로 활동 25주년 기념 앨범 『XXV』를 발매하여 솔로 아티스트 사상 최다 영국 1위 기록을 세웠다. 2024년에는 그의 자서전 뮤지컬 영화 『BETTER MAN/베터 맨』이 개봉될 예정이다.[230]
2. 1. 유년기
로비 윌리엄스는 1974년 2월 13일 스태퍼드셔주 스토크온트렌트에서 피터 윌리엄스와 재닛 윌리엄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누나 샐리가 있었다.[16]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 킬케니(Kilkenny) 출신이었다.[17] 로비가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누나와 함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그는 툰스털(Tunstall) 지역의 밀 힐 초등학교와 성 마거릿 워드 로마 가톨릭 학교를 다녔다.[18] 학교에서 기타와 축구에 재능을 보였고, 툰스털의 UKDDF라는 댄스 학원에 다녔으며, 포트 베일 FC에서 뛰기도 했다. 성 마거릿 워드 가톨릭 학교 재학 시절에는 여러 학교 연극에 참여했는데, 특히 뮤지컬 ''올리버!(Oliver!)''의 아서풀 도저(Artful Dodger) 역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19]
2. 2. 1990~1995: 테이크 댓
1990년 윌리엄스의 어머니는 새로운 보이 밴드 멤버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그에게 밴드에 들어갈 것을 제의했다. 매니저 나이절 마틴스미스(Nigel Martin-Smith)의 입회 하에 면접을 본 날, 윌리엄스는 마크 오언을 만나 16세의 나이로 테이크 댓에 합류했다.테이크 댓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 윌리엄스는 밴드의 외향적이고 짓궂은 장난꾸러기 이미지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게리 바로우가 작사와 보컬을 주로 맡았지만, 윌리엄스는 첫 톱 10 히트곡 〈매직일까(Could It Be Magic)〉, 〈천국을 발견했어(I Found Heaven)〉, 〈모든 것이 변해〉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테이크 댓 멤버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제한과 규칙에 대해 매니저 나이절 마틴스미스와 논쟁이 벌어지면서, 윌리엄스는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코카인에도 빠졌다.[20] 여러 논쟁 끝에 윌리엄스는 1995년에 밴드 활동을 그만두었다. 1996년 2월 13일 윌리엄스의 22세 생일에 밴드는 해체되었다.[22]
2. 3. 1996~2005: 솔로 활동 초기
로비 윌리엄스는 1996년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조지 마이클의 "Freedom" 커버곡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31] 1997년에는 데뷔 앨범 《라이프 쓰루 어 렌즈》를 발표했다. 윌리엄스는 파리의 엘리제 몽마르뜨르 극장(Élysée Montmartre theatre프랑스어)에서 첫 솔로 공연을 가졌다.이 앨범의 네 번째 싱글인 〈Angels〉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윌리엄스의 대표곡이 되었다.[32] 이 곡 덕분에 앨범 판매량이 급증했고, 앨범은 영국에서만 24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33]
1998년에는 가이 챔버스와 함께 작업한 두 번째 앨범 《아이브 빈 익스펙팅 유》를 발표했다. 첫 싱글 〈Millennium〉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곡으로, 영국에서 윌리엄스의 첫 1위 싱글이 되었다.[36]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No Regrets〉, 〈She's the One〉 등의 히트곡을 냈다. 앨범은 영국에서 300만 장 가까이 판매되었고, 유럽에서는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38]
1999년, 윌리엄스는 미국 캐피틀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0년에는 세 번째 앨범 《승리할 때 노래하라》를 발표했다. 첫 싱글 〈록 DJ〉의 뮤직 비디오는 선정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여러 나라에서 히트하고 여러 상을 받았다.[41] 카일리 미노그와 함께 부른 〈Kids〉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01년에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영향을 받은 스윙 재즈 앨범 《승리할 때 춤을 추라》를 발표했다. 니콜 키드먼과 함께 부른 〈섬씽 스투피드〉는 영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01년 큰 히트곡 중 하나가 되었다.[45]
2002년, 윌리엄스는 EMI와 8000만파운드의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48] 같은 해 다섯 번째 앨범 《에스카폴로지》를 발표했고, 이 앨범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3년에는 크네브워스에서 3일 동안 37만 5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며 영국 음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를 기록했다.[49]
2004년에는 베스트 앨범 《위대한 히트곡》을 발표했고, 수록곡 〈Radio〉는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36] 2005년에는 브릿 어워드에서 "지난 25년간 최고의 싱글"로 〈Angels〉가 선정되었다.[55] 같은 해, 여섯 번째 앨범 《인텐시브 케어》를 발표하고,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남자 가수' 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월드 투어를 통해 하루 만에 160만 장의 티켓을 판매하여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56]
2. 4. 2006~2009: 음악적 변화와 침체기
2002년, 윌리엄스는 EMI와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음악 계약인 8000만 파운드 계약을 체결했다.[48] 이 계약에는 여러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레이블이 아티스트에게 더 큰 창작 통제권을 양보하고 윌리엄스를 미국 시장에 진출시키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윌리엄스는 5번째 정규 음반 작업을 시작하여 1년 동안 녹음실에서 작업했다. 이 음반은 윌리엄스에게 새로운 시대를 알렸으며, 그는 이 음반 제작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원 파인 데이", "낸스 송", 그리고 "컴 언던"은 가이 체임버스의 도움 없이 윌리엄스가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였다. 대부분의 노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되었다.이 음반의 첫 번째 싱글 "필"은 윌리엄스와 체임버스가 작곡했으며 데모로 녹음되었다. 그들이 음반 작업을 시작하여 보컬을 다시 녹음하려고 시도했을 때, 윌리엄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데모 버전을 포함시켜 첫 번째 싱글로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2002년 말에 이 싱글이 발매되었을 때,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 1위를 차지하고 많은 유럽 국가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면서 윌리엄스의 가장 큰 국제적인 히트곡이 되었다.[50] 윌리엄스의 5번째 정규 음반인 "에스카폴로지"는 2002년 말에 발매되어 전 세계 10개국 이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그러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에스카폴로지"는 2003년 말까지 영국에서 약 2백만 장이 판매되었다.[51] 2003년 8월 1일부터 3일까지 윌리엄스는 매일 12만 5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크네브워스 콘서트를 3일 연속으로 개최하여 영국 음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를 만들었다.[49]
2004년 10월, 윌리엄스는 그의 경력을 회고하는 "위대한 히트곡"을 발매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새로운 협력자인 스티븐 더피와 함께 작업했던 새로운 트랙도 포함되어 있었다. 컴필레이션의 첫 번째 싱글인 "라디오"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로 데뷔[36]하여 윌리엄스의 여섯 번째 1위 히트곡이 되었다. 이 컴필레이션이 발매되었을 때, 영국에서 1위로 데뷔[36]했으며 영국[159]과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다.[54] "엔젤스" 발매 8년 후, 영국 대중은 이 노래를 2005 브릿 어워즈에서 "지난 25년간 최고의 싱글"로 선정했다.[55]
2004년 말 "위대한 히트곡" 홍보를 위해 남미를 순회한 후, 윌리엄스는 여섯 번째 정규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 할리우드 힐스에 있는 그의 집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스티븐 더피와 24개월에 걸쳐 공동 작곡되었다. "인텐시브 케어" 음반은 10월 9일 베를린에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국제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2005년 11월, 윌리엄스는 '최고의 남자 가수' 부문 MTV 유럽 뮤직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6년 월드 투어를 발표하면서 하루 만에 160만 장의 티켓을 판매하여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56] 윌리엄스는 2006년 4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클로즈 인카운터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유럽 투어를 마쳤을 때 250만 명이 공연을 관람했고,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 투어 후에는 300만 명으로 증가했다.[57]
2. 5. 2010~2011: 테이크 댓 재결합
2009년 3월, 윌리엄스는 테이크 댓에 다시 합류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23] 그해 9월, 윌리엄스가 뉴욕에서 테이크 댓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24] 11월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칠드런 인 니드'' 자선 콘서트에서는 여전히 따로 공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지막 곡에서 다른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윌리엄스는 게리 바로우에게 팔을 두르며 "헤이 주드"를 불렀다.2010년 7월 15일, 윌리엄스는 전 동료들과 화해하고 테이크 댓에 다시 합류했다.[226] 2010년 11월, 테이크 댓의 앨범 ''프로그레스''가 발매되어 2000년 이후 가장 빠르게 팔린 앨범이자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르게 팔린 앨범이 되었다.[25] 그룹은 프로그레스 라이브 투어로 영국 전역을 순회했는데, 여기에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8일간의 공연이 포함되었고,[26] 이후 유럽으로 투어를 이어갔다. 이 투어는 티켓 예매 전화와 웹사이트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운될 정도로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르게 매진된 투어였다.[26]

2012년 8월, 테이크 댓은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했다. 윌리엄스는 테이크 댓과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아내가 같은 시기에 출산하여 참여하지 못했다. 그룹은 4인조로 공연했다.[27]
윌리엄스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테이크 댓의 일원이었지만,[28] 그룹의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및 그에 따른 투어에는 참여하지 않고 솔로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2011년 프로그레스 투어 이후 동료들과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었고 여러 차례 그룹과 함께 공연했으며,[29] 2019년 테이크 댓 30주년을 기념하는 정규 투어에 복귀할 계획이었다.[30]
2011년 5월, 테이크 댓은 "프로그레스 투어"를 시작했다. 도중 로비의 식중독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투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10월 4일, 게리 바로우는 로비의 테이크 댓 재탈퇴를 발표했다. 하지만 1995년과 달리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테이크 댓은 남은 멤버들과 활동을 계속했다. 가리는 "로비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테이크 댓에 돌아올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2. 6. 2012~현재: 솔로 활동 지속
2010년 7월 15일, 테이크 댓에 복귀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226] 10월에는 솔로 올타임 베스트 『그레이티스트 히츠 1990-2010』이, 11월에는 『노바디 엘스』(1995년) 이후 로비가 참여한 테이크 댓의 앨범 『프로그레스』가 발표되었다.2011년 5월에는 테이크 댓으로 프로그레스 투어를 시작했다. 도중 로비의 식중독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대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10월 4일, 가리 바로우는 로비의 테이크 댓 재탈퇴를 발표했다. 하지만 1995년과 달리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테이크 댓은 남은 멤버들과 활동을 계속했다. 가리는 "로비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테이크 댓에 돌아올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유니버설 뮤직으로 이적했다.[227]
2012년 11월, 이적 후 첫 번째 앨범 『테이크 더 크라운』을 발매했다. 선행 싱글 "캔디"는 가리 바로우와 공동 작곡했으며, 테이크 댓 시절을 포함한 그의 커리어에서 14번째 영국 1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스윙 앨범 두 번째 작품 『스윙스 보스 웨이스』를 발표했다.
2016년, 소니 뮤직으로 이적하여 앨범 『더 헤비 엔터테인먼트 쇼』를 발매했다. 솔로 12번째 영국 1위를 차지하며 마돈나와 기록이 같아졌다.
2018년, FIFA 월드컵 개막식에 출연하여 여러 히트곡을 불렀지만, 그 과정에서 중지손가락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228]
2019년, 아내 아이다와 함께 『X 팩터』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229] 같은 해 첫 크리스마스 앨범 『더 크리스마스 프레젠트』를 발매했고, 이 앨범 역시 영국 1위를 기록하며 엘비스 프레슬리와 기록이 같아졌다.
2022년부터 팀 메트칼프와 플린 프랜시스와 함께 ''Lufthaus''로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솔로 활동 25주년을 기념하는 셀프 커버 앨범 『XXV』를 발매했고, 솔로 14번째 영국 1위를 기록하며 솔로 아티스트 사상 최다 기록을 세웠다.
2023년, 넷플릭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는 테이크 댓 시절을 포함한 그의 경력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024년 12월부터 자서전 뮤지컬 영화 『BETTER MAN/베터 맨』이 공개된다.[230] 『위대한 쇼맨』을 히트시킨 마이클 그레이시가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로비를 CGI 원숭이로 그리는 획기적인 기법을 채택했다. 로비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자신의 모습을 원숭이에 비유했고, 그레이시 감독은 로비를 "우리가 보고 있는 로비의 모습이 아니라, 로비가 본 자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231] 영화는 2024년 크리스마스부터 일부 제한된 극장에서 상영된 후, 2025년 1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개봉된다.
3. 사생활
로버트 피터 윌리엄스는 1974년 2월 13일 스토크온트렌트에서 재닛과 피터 윌리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버슬럼에 있는 레드 라이언이라는 펍을 운영하다가 포트 베일 소셜 클럽의 허가권자가 되었다.[16]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 킬케니 출신이었다.[17] 윌리엄스는 스태퍼드셔주 턴스톨에 있는 세인트 마가렛 워드 가톨릭 학교를 다녔고,[18] 여러 학교 연극에 참여했는데, 특히 뮤지컬 ''올리버!''의 아서풀 도저 역할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19]
2010년 8월 7일, 터키계 미국인 배우 아이다 필드와 결혼했으며,[68]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3. 1. 건강 문제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로비 윌리엄스의 건강 문제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3. 2. 인간 관계
윌리엄스는 2010년 8월 7일 터키계 미국인 배우 아이다 필드와 결혼했으며,[68]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3. 3. 기타
로버트 피터 윌리엄스는 1974년 2월 13일 스토크온트렌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펍을 운영하다가 포트 베일 소셜 클럽의 허가권자가 되었다.[16]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 킬케니 출신이었다.[17] 윌리엄스는 스태퍼드셔주 턴스톨에 있는 세인트 마가렛 워드 가톨릭 학교를 다녔고,[18] 여러 학교 연극에 참여했는데, 특히 뮤지컬 ''올리버!''의 아서풀 도저 역할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19]
4. 사회 활동
로비 윌리엄스는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해 왔다.
2018년 6월 14일, 윌리엄스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FIFA 월드컵 개막식에서 공연했다.[85] 윌리엄스는 "렛 미 엔터테인 유"와 "필"을 부른 후 러시아 소프라노 아이다 가리풀리나와 함께 "엔젤스"를 듀엣으로 불렀다.[85][86] 윌리엄스는 이후 "록 DJ"로 앙코르 공연을 했는데, 이때 그는 중지손가락을 보였다.[87] 미국의 폭스 방송은 생방송으로 방영한 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87] 영국의 ITV는 앙코르 공연 전에 방송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방영되지 않았다.[87]
2022년 11월, 윌리엄스는 카타르의 FIFA 월드컵 2022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카타르에서 공연했다. 그의 출연은 카타르의 인권 침해와 엄격한 LGBT 법률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110][111][112] 비판에 대해 윌리엄스는 "나는 어디에서든 인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는다 [...] 우리가 어디에서든 인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투어가 될 것이다. 나는 내 부엌에서도 공연할 수 없을 것이다 [...] '카타르 반대'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들은 중국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 거기에는 우리가 이곳에서 그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위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아무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113]
5. 음반 목록
로비 윌리엄스는 솔로 활동과 테이크 댓 멤버로서 활동하며 다양한 음반을 발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