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타운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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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트 타운젠드는 영국의 음악가로, 밴드 더 후의 기타리스트이자 주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1945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대 초 더 디투어스에 합류하여 음악 경력을 시작했고, 1964년 밴드명을 더 후로 변경한 후 밴드의 성공을 이끌었다. 타운젠드는 록 오페라 ''Tommy''와 ''Quadrophenia''를 작곡했으며, 1972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8년 케네디 센터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또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2012년 자서전 ''Who I Am''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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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타운젠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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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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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터 데니스 블랜드포드 타운젠드 |
출생일 | 1945년 5월 19일 |
출생지 | 치즈윅, 잉글랜드 |
활동 연도 | 1962년 – 현재 |
직업 | |
직업 | 음악가 송라이터 작가 |
악기 | 기타 보컬 키보드 |
장르 | 록 아트 록 하드 록 파워 팝 재즈 |
관련 활동 | |
소속 그룹 | 더 후 |
이전 소속 그룹 | 딥 엔드 |
협업 | 로니 레인 |
협업 | 선더클랩 뉴먼 |
레이블 | |
레이블 | Track Polydor Atlantic Atco Decca Rykodisc Warner Bros. |
개인 정보 | |
배우자 | 카렌 애슬리 (1968년 결혼, 1994년 별거) 레이철 풀러 (2016년 결혼) |
별칭 | 비주 드레인스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더 후 공식 웹사이트 |
대표 악기 | |
대표 악기 | 리켄배커 330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깁슨 SG 스페셜 깁슨 레스폴 디럭스 깁슨 J-200 |
2. 초기 생애와 교육
피트 타운젠드는 1945년 5월 19일 런던 서부 치스윅의 치스윅 병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클리프 타운젠드는 영국 공군 댄스 밴드 더 스쿼드론에어스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였고, 어머니 베티는 시드니 토치와 레스 더글라스 오케스트라의 가수였다.[121] 타운젠드 부부는 불안정한 결혼 생활을 했고, 타운젠드가 유아였을 때 둘은 헤어졌다. 그는 어머니의 할머니 엠마 데니스와 함께 살았는데, 피트는 이 시기가 토미의 줄거리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122] 2년간의 별거 후, 타운젠드의 부모는 액턴에 집을 구입하면서 재결합했다.
피트 타운젠드는 1961년 말 존 엔트위슬의 소개로 로저 달트리가 이끌던 밴드 더 디투어스(The Detours)에 합류하면서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2] 초기에는 더 섀도우즈와 더 벤처스의 기악곡, 팝과 트래드 재즈 커버곡들을 연주했다.[3] 1964년 밴드 이름을 더 후로 바꾸고, 키스 문이 드러머로 합류했다.[9][10]
타운젠드는 어린 시절 걸리버 여행기, 보물섬과 같은 모험 소설을 읽는 것을 즐겼다. 1956년 여름에는 영화 ''록 어라운드 더 클락''을 보고 로큰롤에 매료되었다.[123] 얼마 후 빌 헤일리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것이 타운젠드의 첫 콘서트였다.
11+ 시험을 통과한 후, 타운젠드는 액턴 카운티 문법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에서 큰 코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125] 그의 할머니 엠마는 1956년 크리스마스에 그의 첫 기타를 사주었다.[123] 타운젠드는 학교 친구 존 엔트위슬과 함께 전통 재즈 그룹인 컨페더레이츠를 결성했다.[124] 컨페더레이츠는 아커 빌크, 케니 볼, 로니 도네건의 곡을 커버했다. 그러나 둘 다 로큰롤의 영향을 받았고, 타운젠드는 특히 클리프 리처드의 데뷔 싱글 "무브 잇"을 존경했다.
타운젠드는 1961년 이링 예술 대학에 입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링에서 타운젠드는 미래의 롤링 스톤스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와 함께 공부했다. 타운젠드는 1964년에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133]
3. 음악 경력
더 후는 1965년 데뷔 앨범 ''My Generation''을 발표했다.[11] 타운젠드는 "I Can't Explain", "My Generation" 등 여러 히트 싱글을 작곡했다.[11] 기타 현에 오른팔을 휘두르는 "풍차" 스타일[12]과 악기 파괴 퍼포먼스로 유명해졌다.[11]
1969년에는 록 오페라 ''Tommy''를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11] 1971년에는 ''Who's Next''를 발표,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Baba O'Riley"와 "Won't Get Fooled Again"이 히트했다.[11] 1973년에는 또 다른 록 오페라 ''Quadrophenia''를 발표했다.[11]
1978년 키스 문이 사망한 이후에도[15] 밴드는 활동을 이어갔으며, 타운젠드는 1982년 더 후의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솔로 활동에 집중했다.
타운젠드는 더 후 외에도 솔로 활동으로 ''후 케임 퍼스트''(1972), ''엠프티 글라스''(1980) 등을 발표했다.[33] 1990년대 중반부터 더 후 멤버들과 투어를 진행했으며, 2006년에는 더 후의 새 앨범 ''Endless Wire''를 발매했다.[41]
더 후는 2010년 슈퍼볼 XLIV 하프타임 쇼,[42] 2012년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했다.[43] 2019년에는 새 앨범 ''Who''를 발매했다.[45]
타운젠드는 록 기타에서 피드백 개발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는 그를 피드백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27]
3. 1. 1961–1964: 더 디투어스
1961년 말, 존 엔트위슬의 소개로 로저 달트리가 이끌던 스키플/로큰롤 밴드인 더 디투어스(The Detours)에 합류했다.[2] 초기에는 더 섀도우즈와 더 벤처스의 기악곡, 팝과 트래드 재즈 커버곡들을 연주했다.[3] 밴드의 초기 라인업은 리듬 기타에 로저 달트리, 리드 기타에 타운젠드, 베이스에 엔트위슬, 드럼에 더그 샌덤, 보컬에 콜린 도슨으로 구성되었다.[4] 달트리는 그룹의 리더 역할을 했으며, 타운젠드에 따르면 "그가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5]
1962년, 도슨이 달트리와의 잦은 다툼으로 탈퇴하면서 달트리가 리드 보컬을 맡게 되었다.[6] 그 결과, 타운젠드는 엔트위슬의 격려에 힘입어 밴드의 유일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7] 1964년 2월, 밴드는 같은 이름의 다른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밴드명을 변경해야 했다.[8] 타운젠드의 룸메이트였던 리처드 반스가 "더 후(The Who)"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달트리는 이 이름을 선택했다.[9]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머 더그 샌덤이 키스 문으로 교체되었다.[10]
3. 2. 1964–1982: 더 후
더그 샌덤이 키스 문으로 교체된 후, 밴드는 모드 홍보 담당자 피터 미든에 의해 하이 넘버스(High Numbers)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싱글("I'm the Face/Zoot Suit") 발표 후 더 후로 돌아갔다.[11] 1964년 레일웨이 선술집 공연 중 타운젠드는 실수로 기타를 부러뜨리며 악기 파괴를 시작했고, 이는 더 후의 라이브 쇼의 정기적인 부분이 되었다.[11]
램버트의 도움으로 더 후는 미국 레코드 프로듀서 셸 털미와 계약을 맺었다. 타운젠드는 더 킹크스와 비슷하게 들리도록 의도한 "I Can't Explain"을 썼고, 1965년 1월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에서 8위에 올랐다.[11] 타운젠드와 달트리가 공동 참여한 "Anyway, Anyhow, Anywhere" 역시 영국에서 10위 안에 들었다.[11] 세 번째 싱글 "My Generation"은 11월에 발매되어 영국 차트 2위에 올랐고, 더 후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타운젠드는 데이비드 프리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과 "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라는 가사가 "사회에서 자리를 찾으려는 시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11]
더 후의 데뷔 앨범 ''My Generation''(미국에서는 ''The Who Sings My Generation'')은 1965년 말에 발매되었으며, 타운젠드가 작곡한 오리지널 곡과 제임스 브라운의 커버곡이 수록되었다.[11] 타운젠드는 "Pictures of Lily", "Substitute", "I'm a Boy", "Happy Jack" 등 여러 성공적인 싱글을 썼다.[11] 램버트는 타운젠드에게 더 긴 곡을 쓰도록 권했고, 그 결과 "A Quick One, While He's Away"가 탄생했다. 이 앨범은 ''A Quick One''[11]로 제목이 변경되었으며, 1966년 12월 발매와 동시에 차트 4위에 올랐다.[11] 타운젠드는 기타 현에 오른팔을 휘두르는 스타일은 마치 풍차의 날개와 비슷했다.[12] 그는 롤링 스톤스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쇼 전에 워밍업하는 것을 본 후 이 스타일을 개발했다.[12]
더 후는 1967년 3월 22일 첫 미국 투어를 시작했다.[11] 타운젠드는 호텔 스위트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문만큼 심하지는 않았다.[11] 그는 LSD를 실험하기 시작했지만, 6월 18일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이후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11] 12월에 발매된 다음 앨범은 해적 라디오를 기반으로 한 컨셉 앨범인 ''The Who Sell Out''이었고, 더 후의 가장 큰 미국 싱글인 "I Can See for Miles"가 수록되었다.[11] "I Can See for Miles"가 미국 차트에서 9위에 올랐지만, 타운젠드는 자신이 이때까지 쓴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큰 히트를 치지 못했다는 것에 놀랐다.[11]
1968년에 타운젠드는 메헤르 바바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11] 그는 음악적으로 감각을 경험할 청각 장애, 벙어리, 맹인 소년에 대한 음악 작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11] 그 결과는 1969년 5월 23일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둔 록 오페라 ''Tommy''가 되었다. ''Tommy''를 지원하기 위해 더 후는 8월 17일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을 포함한 투어를 시작했다. 더 후가 연주하는 동안 Yippie 리더 애비 호프만이 무대에 뛰어들어 존 싱클레어의 체포에 대해 항의했다. 타운젠드는 즉시 기타로 그를 무대에서 밀어내며 "내 망할 무대에서 꺼져!"라고 소리쳤다.[11]
1970년에 더 후는 ''Live at Leeds''를 발매했는데, 여러 음악 평론가들은 이 앨범을 역대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꼽았다.[13] 타운젠드는 또 다른 록 오페라를 위한 곡을 쓰기 시작했다. ''Lifehouse''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는 음악가와 그의 청중의 관계를 상징하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로 설계되었다.[11]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복잡한 줄거리에 혼란스러워했고, 단순히 또 다른 앨범을 원했다. 타운젠드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가 신경 쇠약을 겪은 후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11] ''Lifehouse''를 위해 의도된 곡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스튜디오 앨범인 ''Who's Next''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영국에서 1위에 올랐고, 신디사이저를 선구적으로 사용한 "Baba O'Riley"와 "Won't Get Fooled Again"이라는 두 개의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11] 특히 "Baba O'Riley"는 타운젠드가 당시 자신의 두 영웅인 메헤르 바바와 작곡가 테리 라일리에게 바치는 노래로 쓰여졌다.[14]
타운젠드는 1973년에 또 다른 록 오페라를 위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초 영국에서 모드 하위 문화와 로커의 충돌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11] ''Quadrophenia''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타운젠드가 완전히 쓴 유일한 더 후 앨범이었으며, 그는 램버트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기도 했다.[11] 11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2위에 오르면서 대서양 횡단 성공을 거두었다.[11] ''NME'' 평론가 찰스 샤르 머레이는 이 앨범을 "최고의 더 후"이자 "올해 가장 보람 있는 음악적 경험"이라고 불렀다.[11] 투어에서 밴드는 사전 녹음된 백킹 테이프에 맞춰 앨범을 연주하여 많은 마찰을 일으켰다. 뉴캐슬에서 열린 공연에서 테이프가 고장났고, 타운젠드는 음향 담당자 밥 프리든을 무대 위로 끌고 가서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앰프를 모두 걷어차서 고장난 테이프를 부분적으로 파괴했다.[11] 1974년 4월 14일, 타운젠드는 런던 커뮤니티 센터 기금 모금을 위한 자선 공연을 했다.[11]
''토미''의 영화 버전은 켄 러셀이 감독했고, 로저 달트리가 타이틀 롤을, 앤 마그렛이 그의 어머니를, 올리버 리드가 그의 의붓아버지를, 티나 터너, 엘튼 존, 에릭 클랩튼을 비롯한 다른 록 거물들이 카메오로 출연했으며, 1975년 3월 18일에 초연되었다.[11] 타운젠드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고 각색한 공로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11] ''The Who by Numbers''는 그해 11월에 발매되었고 영국에서 7위, 미국에서 8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종종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내성적인 노래를 특징으로 했다. 이 앨범은 타운젠드가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운 후 작곡한 "Squeeze Box"라는 히트 싱글을 배출했다.[11] 1976년 투어 후 타운젠드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1년 동안 밴드를 떠났다.[11]
더 후는 두 명의 오리지널 멤버(1978년 키스 문과 2002년 존 엔트위슬)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활동하고 있다.[15][16] 더 후는 21세기에 들어서도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공연을 계속하고 있으며, 2001년 뉴욕시 콘서트[19], 2004년 와이트 섬 축제[20], 2005년 라이브 8[21], 2007년[22]과 2015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23]에서 호평을 받은 공연을 펼쳤다.
타운젠드는 100곡이 넘는 곡을 써서 밴드의 11개의 정규 앨범에 실린 이 그룹의 주요 작곡가이자 리더로 남았다. 그의 창작물 중에는 록 오페라 ''Quadrophenia''가 있다. 타운젠드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앨범 길이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시도했으며 록 오페라 형식과 관련되어 있다. 많은 스튜디오 녹음에는 피아노나 키보드를 연주하는 타운젠드가 등장하지만, 키보드가 많은 트랙에는 니키 홉킨스, 존 번드릭, 크리스 스테인턴과 같은 게스트 아티스트가 스튜디오에 점점 더 많이 참여했다.[24]
타운젠드는 록 기타에서 피드백 개발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딥 퍼플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는 피드백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피트 타운젠드가 확실히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미 페이지는 기타 피드백의 개발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피드백을 실제로 누가 먼저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이 슬래시,[27] 알렉스 라이프슨,[28] 및 스티브 존스를 포함하여 타운젠드를 자신들의 영향으로 언급했다.[29]
1978년 키스 문의 사망 이후에도 밴드는 활동을 이어갔지만, 타운젠드는 점차 솔로 활동에 집중했다. 1982년 더 후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3. 3. 1972–현재: 솔로 경력
타운젠드는 더 후 활동 외에도 솔로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활동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메허 바바의 가르침을 담은 앨범 ''해피 버스데이'', ''아이 엠'', ''사랑으로''를 녹음했다.[31][32] 이러한 앨범들의 불법 복제에 대응하여 1972년 자신의 곡들과 로니 레인과의 협업곡 "Evolution"을 담은 첫 솔로 앨범 ''후 케임 퍼스트''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어쿠스틱 기타 실력을 선보이며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다.[33][34]
1977년에는 더 페이시스의 베이시스트이자 동료 메허 바바 신봉자인 로니 레인과 함께 듀엣 앨범 ''러프 믹스''를 발매했다.[35] 1979년에는 11세 소녀 앤젤라 포터의 "Peppermint Lump"를 프로듀싱하고 기타를 연주했다.
1970년대에는 여러 차례 솔로 공연을 했는데, 그중 두 번은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1973년 1월 에릭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31]와 1979년 12월 폴 매카트니가 후원한 캄푸치아 국민을 위한 콘서트였다.[32]
키스 문 사망 이후, 타운젠드는 1980년 ''엠프티 글라스''를 발매하여 솔로 활동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 앨범에는 톱 10 싱글 "렛 마이 러브 오픈 더 도어"와 "어 리틀 이즈 이너프", "러프 보이즈" 등이 수록되었다. 1982년에는 ''올 더 베스트 카우보이스 해브 차이니즈 아이즈''를 발매했고, 이 앨범에는 인기 라디오 트랙 "슬릿 스커트"가 수록되었다.[33][34]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는 ''화이트 시티: 소설''(1985), ''아이언 맨: 뮤지컬''(1989), ''사이코데렐릭트''(1993) 등 스토리 기반 앨범을 발매했다. 데이비드 길모어, 존 보넘, 로니 레인 등과 함께 폴 매카트니의 "락케스트라" 세션에서 행크 마빈과 연주하기도 했다.[35]
타운젠드는 슈퍼그룹 딥 엔드와 함께 콘서트 앨범을 여러 개 녹음했다. 딥 엔드에는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가 참여했으며, 약물 중독자를 지원하는 자선 단체를 위해 세 번의 콘서트와 ''더 튜브'' 세션을 통해 모금 활동을 했다.[36] 1993년에는 데스 맥아너프와 함께 ''토미''를 브로드웨이로 각색하고, ''아이언 맨''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을 제작했다. 맥아너프와 타운젠드는 휴즈의 책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를 공동 제작했다.
''음악을 들은 소년''은 2007년 7월 바사 칼리지에서 데뷔했다.[37]
2017년 9월, 타운젠드는 빌리 아이돌, 알피 보 등과 함께 "클래식 쿼드로페니아" 미국 투어를 시작했다.[38][39]
1990년대 중반부터 타운젠드는 더 후 멤버들과 투어를 진행했으며, 2002년에는 존 엔트위슬 사망에도 불구하고 투어를 계속했다.[40]
2006년 2월, 더 후의 월드 투어가 발표되었다. 타운젠드는 2005년 9월부터 자전적 소설 ''음악을 들은 소년''을 블로그에 연재했다.[41] 2006년 10월 더 후는 24년 만의 앨범 ''Endless Wire''를 발매했다.
더 후는 2010년 슈퍼볼 XLIV 하프타임 쇼와 2012년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했다.[42][43]
2018년 3월, 타운젠드는 새로운 더 후 앨범에 로저 달트리와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 수록될 것이라고 말했다.[44] 이 앨범 ''Who''는 2019년 12월 6일에 발매되었다.[45]
3. 4. 1996–현재: 더 후 재결성
1990년대 중반부터 타운젠드는 더 후의 생존 멤버들과 함께 여러 투어에 참여했으며, 2002년 존 엔트위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투어를 계속했다.[40]
2006년에는 1982년 이후 24년 만의 새 앨범 ''Endless Wire''를 발매했다. 2005년 9월부터는 자전적 소설 ''음악을 들은 소년''을 블로그에 연재 형식으로 게재했다.[41]
더 후는 2010년 2월 7일 슈퍼볼 XLIV 하프타임 쇼에서 "Pinball Wizard", "Who Are You", "Baba O'Riley", "See Me, Feel Me", "Won't Get Fooled Again"을 메들리로 연주했다.[42] 2012년에는 록 오페라 ''쿼드로페니아'' 투어를 진행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Baba O'Riley", "See Me, Feel Me", "My Generation"을 메들리로 연주하며 마지막 공연을 장식했다.[43]
2018년 3월 22일, 타운젠드는 로저 달트리와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 수록될 새로운 더 후 앨범에 대해 언급했다.[44] 이 앨범은 ''Who''라는 제목으로 2019년 12월 6일에 발매되었으며, 이는 2인조 밴드로서 두 번째 앨범이자 13년 만의 앨범이었다.[45]
4. 미완성 작품
"The Age of Anxiety"(이전 제목 "Floss the Musical")는 피트 타운젠드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작품으로, 예술 설치물, 소설, 오페라 등으로 구상되었다.[46][47][52][76] 이 뮤지컬은 최소 2009년부터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2011년에 초연될 것으로 예상되었다.[48] 2012년 1월 24일, 타운젠드는 자신의 모든 과거 작품과, 만약 완성된다면 ''Floss The Musical''을 포함한 미래 작품의 권리를 판매했다.[49][50] 그는 2010년 2월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요약했다.[51] 2019년 3월, ''The Age of Anxiety''라는 제목의 작품이 소설로 출판될 예정이며, 이후 오페라로도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76]
5. 음악적 영향
타운젠드는 이링 예술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톰 라이트가 소장한 방대한 음반 컬렉션을 통해 하울링 울프, 존 리 후커, 보 디들리, 부커 T. & 더 MGs, 리틀 월터, 척 베리 등 R&B 및 로큰롤 아티스트의 음악을 접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공연 중 첼로를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첼리스트 말콤 세실과 자동 파괴 예술의 선구자 구스타프 메츠거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타운젠드는 "파괴는 음악에 맞춰졌을 때 예술이 된다"며, 기타 파괴 퍼포먼스가 단순한 젊은이의 불안 표출이 아닌, 음악을 통한 아이디어 전달 수단임을 강조했다.[55] 그는 로비 바쇼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56]
헨리 퍼셀은 타운젠드에게 "작곡가로서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타운젠드는 퍼셀이 자주 사용하던 서스펜션 코드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는 "The Kids Are Alright", "I'm a Boy" 등 더 후의 곡들에서 나타난다.[165]
타운젠드는 기타리스트임에도 자신의 기타 솔로를 부각하는 곡을 드물게 썼으며, 기타 솔로가 아예 없는 곡도 많다. 그는 "드럼과 베이스가 리드 악기가 되고, 기타가 리듬 악기가 되는, 입장이 역전된 것이 더 후의 유일함이었다"라고 설명한다.[135]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무대에서는 피드백 주법을 빈번하게 시도했다. 타운젠드는 자신이 피드백 주법의 창시자라고 자부하며, "그 칭호가 비틀즈나 야드버즈에게 주어지는 것에 실망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66]
6. 사용 장비
타운젠드는 솔로 활동과 더 후(The Who) 활동을 통틀어 다양한 기타를 연주했다. 주로 펜더, 깁슨, 리켄배커 모델을 사용했다.[61] 길드,[57] 타카미네,[58] 깁슨 J-200 어쿠스틱 모델도 사용했으며, J-200은 "핀볼 위저드"와 같은 곡에서 그의 시그니처 어쿠스틱 사운드를 냈다.[59]
더 후 초기에는 주로 에밀 그림쇼 SS 드 럭스와 6현 및 12현 리켄배커 세미 할로우 일렉트릭 기타(특히 f-홀이 있는 로즈-모리스 UK 수입 모델)를 연주했다.[60] 1960년대 후반에는 깁슨 SG 스페셜 모델을 거의 독점적으로 연주했다. 그는 1969년과 1970년에 우드스톡[63] 및 와이트 섬 공연과 1970년 ''라이브 앳 리즈'' 공연에서 이 기타를 사용했다.
1970년에 깁슨이 SG 스페셜의 디자인을 변경하자, 그는 다른 기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대부분 동안 깁슨 레스폴 디럭스를 사용했으며, 일부는 미니 험버커 픽업만 두 개, 다른 일부는 "중간 위치"에 세 번째 픽업(디마지오 슈퍼디스토션 / 듀얼 사운드)으로 개조되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종종 '59 그레치 6120 기타(조 월시에게서 받음)를 연주했는데,[62] 특히 ''후즈 넥스트''와 ''쿼드로페니아''에서 두드러졌다.[64]
1980년대에는 주로 셰크터 및 여러 루시어가 제작한 펜더, 리켄배커 및 텔레캐스터 스타일 모델을 사용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스튜디오와 투어에서 레이스 센서 픽업을 장착한 펜더 에릭 클랩튼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했다.[62] 그의 일부 스트라토캐스터는 어쿠스틱 기타 톤 시뮬레이션을 위해 피시맨 파워브릿지 피에조 픽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기타 브릿지 뒤 추가 볼륨 컨트롤로 제어된다.
깁슨 피트 타운젠드 시그니처 기타에는 피트 타운젠드 SG, 피트 타운젠드 J-200, 세 가지 다른 피트 타운젠드 레스폴 디럭스 등이 있다. SG는 피트 타운젠드 한정판 모델로 명확하게 표시되었으며, 타운젠드 본인이 서명한 특별 케이스와 진품 인증서가 함께 제공되었다. 모델 1998의 피트 타운젠드 시그니처 리켄배커 한정판 기타는 1987년 7월부터 1988년 3월 사이에 제작된 250대의 기타를 특징으로 했으며, 리켄배커 CEO 존 홀에 따르면 심각한 광고를 하기 전에 전체 제품이 매진되었다.
그는 깁슨 ES-335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드 록 카페에 기증했다. 1967년 후반 경에는 깁슨 EDS-1275 더블 넥을 매우 짧게 사용했고, ''토미''의 스튜디오 세션에서 12현 기타 파트를 위해 하모니 소버린 H1270[66]과 펜더 일렉트릭 XII를 모두 사용했다. 1967년과 1968년[67]에는 무대에서, 그리고 ''토미'' 스튜디오에서 펜더 재즈마스터를 가끔 사용했다.
피트 타운젠드는 복스,[68] 셀머, 펜더, 마샬, 하이와트 등 다양한 앰프를 사용했으며,[69] 40여 년 동안 대부분 하이와트 앰프를 사용했다. ''후즈 넥스트'' 제작 시에는 트위드 펜더 밴드마스터 앰프(1970년 조 월시에게서 받음)를 사용했으며, ''쿼드로페니아''와 ''더 후 바이 넘버스''에서도 사용했다. ''페이스 댄스''와 공동 앨범 ''러프 믹스'' 녹음 시에는 스튜디오에서 피비 빈티지 4×10 앰프를 사용했다. 1989년부터 그의 장비는 4개의 펜더 바이브로-킹 스택과 하이와트 헤드, 2개의 주문 제작된 2×12인치 하이와트/메사 부기 스피커 캐비닛으로 구성되었다. 2006년부터는 3개의 바이브로-킹 스택만 사용하며, 그 중 하나는 백업용이다.
타운젠드는 록 음악계에서 "마샬 스택"으로 널리 알려진 앰프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높이가 거의 6피트에 달하는 하우징에 12인치 스피커 8개가 들어있는 여러 개의 스피커 캐비닛을 주문했는데, 캐비닛 상단 절반이 약간 위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쉽게 옮기기에 너무 무거웠고, 짐 마샬은 타운젠드의 제안에 따라 거대한 스피커 캐비닛을 반으로 잘랐으며, 각 캐비닛에는 12인치 스피커 4개가 들어 있었다. 캐비닛 중 하나는 스피커 배플의 절반이 위로 기울어져 있었고 마샬은 이 두 캐비닛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타운젠드는 여러 더 후의 곡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그는 ''후즈 넥스트''에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접했던 ARP 2600 모델을 사용했다.[72] 그는 "신시사이저는 오케스트라, 프렌치 호른, 현악기 소리 등 제 손에 없는 것을 제 손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73] 타운젠드가 언급한 신스에는 EMS VCS3와 ARP 2600이 포함되었으며, 일부는 로우레이 TBO 버크셔 오르간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의 현재 홈 스튜디오 사진에는 ARP 2500도 보인다. 1980년대 후반부터 타운젠드는 키보드 작곡, 특히 솔로 앨범과 프로젝트에 싱클라비어 디지털 오디오 시스템을 주로 사용해왔다.
7. 문학 활동
타운젠드는 30년 이상 신문 및 잡지 기사, 서평, 에세이, 책, 각본을 쓰면서 문학계에 광범위하게 참여해 왔다.
1970년 8월, 영국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피트 타운젠드 페이지"라는 칼럼을 매달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 칼럼은 미디어, 미국 콘서트 홀 및 공공 주소 시스템의 상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타운젠드의 관점을 제공했으며, ''Lifehouse'' 프로젝트의 발전 과정에서 타운젠드의 사고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타운젠드는 또한 잡지 ''롤링 스톤''에 세 개의 에세이를 썼다. 1970년 11월에 실린 "나는 메헤르 바바를 사랑한다"는 타운젠드의 정신적 성향을 묘사했다. 1971년 12월에는 The Who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은 이름의 "Meaty, Beaty, Big and Bouncy"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977년 11월에는 세 번째 기사 "펑크가 대모를 만나다"가 실렸다.
1977년, 타운젠드는 어린이 책, 음악 책 및 메헤르 바바 관련 출판물을 전문으로 하는 Eel Pie Publishing을 설립했다. 그는 또한 런던에 The Who의 노래에서 이름을 딴 Magic Bus라는 서점을 열었다. 타운젠드와 그의 예술 학교 친구 리처드 반스가 쓴, 타운젠드의 1969년 록 오페라 제작과 1975년 켄 러셀 감독의 영화 제작에 관한 책 ''The Story of Tommy''는 같은 해 Eel Pie에서 출판되었다.
1983년 7월, 타운젠드는 런던 출판사 Faber and Faber의 인수 편집자로 자리를 잡았다.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로는 애니멀스의 리드 싱어 에릭 버든의 자서전, 찰스 셰어 머레이의 수상작 ''Crosstown Traffic: Jimi Hendrix and Post-War Pop'', 브라이언 이노와 러셀 밀스의 ''More Dark Than Shark''를 편집하고 찰스 왕세자와 그의 연설집을 공동 작업했다. 타운젠드는 데이브 리머의 ''Like Punk Never Happened''를 의뢰했고, 급진적인 극작가 스티븐 버코프의 의뢰 편집자였다.
Faber and Faber에 합류한 지 2년 후, 타운젠드는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1985년 5월에 발행된 ''Horse's Neck''는 1979년에서 1984년 사이에 쓴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어린 시절, 스타덤, 영성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Faber and Faber에서의 그의 직책으로 인해 타운젠드는 ''파리 대왕''의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골딩 경과 영국 계관 시인 테드 휴스와 친분을 쌓았다. 휴스와의 그의 우정은 6년 후, 1989년에 발매된 ''The Iron Man: The Musical by Pete Townshend''로 휴스의 어린이 이야기 ''The Iron Man''의 타운젠드식 음악 해석으로 이어졌다.
타운젠드는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개의 각본을 썼으며, 그중에는 그의 찾기 힘든 ''Lifehouse'' 프로젝트의 수많은 초고가 있었는데, 그중 마지막은 라디오 극작가 제프 영과 공동으로 작성되어 1999년에 출판되었다. 1978년, 타운젠드는 런던 위켄드 텔레비전에서 의뢰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연극 ''Fish Shop''의 각본을 썼고, 1984년 중반에는 단편 영화로 이어진 ''White City: A Novel''의 각본을 썼다.
1989년 타운젠드는 ''Ray High & The Glass Household''라는 소설 작업을 시작했고, 그 초고는 나중에 그의 편집자에게 제출되었다. 원래 소설은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의 요소는 타운젠드의 1993년 솔로 앨범 ''Psychoderelict''에 사용되었다. 1993년, 타운젠드는 그의 록 오페라의 수상 경력에 빛나는 브로드웨이 극장 버전의 개발 연대기인 또 다른 책 ''The Who's Tommy''를 저술했다.
2000년에 그의 개인 웹사이트와 상업 사이트 Eelpie.com이 개설되면서 타운젠드는 문학 작품을 위한 또 다른 출구를 얻었다. (Eelpie.com은 2010년에 폐쇄되었다.) 타운젠드의 여러 에세이가 온라인에 게시되었는데, 2001년의 "Meher Baba—The Silent Master: My Own Silence"와 이듬해의 아동 포르노 산업에 대한 비난인 "A ''Different'' Bomb"가 포함된다.
2005년 9월, 타운젠드는 같은 이름의 뮤지컬을 위한 배경으로 온라인에 소설 ''The Boy Who Heard Music''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완결될 때까지 매주 한 챕터씩 게시했고, 소설은 그의 웹사이트에서 몇 달 동안 읽을 수 있었다. ''Psychoderelict''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Lifehouse''와 ''Ray High & The Glass Household''의 또 다른 확장판이었다.
1997년 타운젠드는 Little, Brown and Company와 계약을 맺고 자서전을 쓰기로 했는데, 제목은 ''Pete Townshend: Who He?''로 알려졌다. 타운젠드의 창의적인 변덕과 개념적 책략은 래리 데이비드 스미스에 의해 그의 책 ''The Minstrel's Dilemma'' (Praeger 1999)에 기록되었다. 오랜 지연 끝에 타운젠드의 자서전 ''Who I Am''은 2012년 10월 8일에 발매되었다.[74] 이 책은 2012년 10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5위 안에 들었다.[75]
2019년 3월 5일, 타운젠드는 그의 데뷔 소설 ''The Age of Anxiety''가 2019년 11월 5일 Hodder & Stoughton의 임프린트 Coronet에서 출판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타운젠드는 이 작품을 "편집증적 천재성과 창의성의 암흑 예술에 대한 확장된 명상"이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는 현재 개발 중인 오페라와 미술 전시회가 함께 할 예정이다.[76]
'''출판 목록'''
출판 연도 | 제목 | 종류 | 비고 |
---|---|---|---|
1977 | 토미 이야기 | 논픽션 | 리처드 반스 공저 |
1985 | '호스 넥'' | 단편 소설 모음 | |
1993 | 'The Whos Tommy'' | 논픽션 | |
2004 | 더 후: 맥시멈 R&B | 논픽션 | 리처드 반스 공저 |
2012 | 후 아이 엠 | 자서전 | |
2019 | 불안의 시대 | 소설 |
8. 정신세계
1967년, 타운젠드는 인도의 영적 지도자인 메헤르 바바의 가르침에 심취하게 되었다.[77] 앨범 《토미》의 아트워크를 담당했던 디자이너 마이크 매키너니로부터 바바에 대한 책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206] 타운젠드는 그 책을 읽고 바바와 자신의 우주관이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곧바로 신자가 되었다.[206] 그는 "바바의 가르침은 내 생각에 딱 맞았다. 당시 의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바바의 가르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207]
바바의 가르침은 타운젠드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타운젠드는 "바바를 만난 것으로 나 자신이 변했고, 밴드 전체도 변했다"고 인정하고 있다.[206] 더 후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토미》는 바바의 가르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앨범에는 "아바타"로서 바바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78] 1969년 1월 31일, 타운젠트가 《토미》를 제작하던 중 바바가 사망하여, 타운젠트는 생전의 바바를 만나지 못했다.[209]
타운젠드는 바바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며, 바바가 마리화나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단호하게 끊었다.[208] 그는 바바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모든 환각제 사용을 반대한다고 밝혀, 반문화적 신뢰도를 가진 최초의 록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79] 바바의 사후에도 신자들 사이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는 등, 타운젠트는 현재까지 바바에 대한 귀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신념과는 별개로, 타운젠드는 약물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코카인에 중독되어 과다 복용으로 소생술을 받아야 했으며,[80] 1982년 1월까지 처방약과 헤로인 의존성을 끊기 위한 도움을 받아야 했다.[81]
9. 개인사
타운젠드는 미술 학교에서 영화 작곡가 에드윈 애슬리의 딸인 카렌 애슬리와 1968년 5월 20일에 결혼하여 템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런던 남서부 외곽의 트위크넘에 있는 침실 3개짜리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정원 칼럼니스트인 엠마 타운젠드 (1969년 출생), 영화 제작에 종사하는 아민타 (1971년 출생), 그리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조셉 (1989년 출생)이다.[82]
1994년, 타운젠드는 아내와 별거했다. 이후 편곡자이자 음악가인 레이첼 풀러와 연애 관계를 맺고 2016년에 비밀리에 결혼했다. 타운젠드는 영국 런던 리치먼드에 있는 더 위크에 살았지만, 2021년 8월에 1500만파운드 이상에 그 집을 팔았다.[83] 그는 또한 서리 처트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옥스퍼드셔에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재산인 애시다운 하우스의 일부를 임대했다.[84] ''더 선데이 타임스'' 부자 리스트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그의 자산은 4000만파운드의 가치가 있었다.[85]
1989년, 라디오 진행자 티모시 화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타운젠드는 자신의 양성애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0년 스튜디오 앨범 ''Empty Glass''에 수록된 "Rough Boys"라는 곡을 언급하며 "커밍아웃이며, 내가 동성애적인 삶을 살았고, 동성애적인 섹스가 무엇인지 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86] 1994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는 "'Rough Boys'가 동성애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인터뷰를 했고, 거기서 나의 '동성애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실제로는 내가 가진 동성애 친구들에 관한 것이었다. 인터뷰어는 점을 찍고 선을 그어 이것이 커밍아웃이라고 추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87] 이후 2012년 자서전 ''Who I Am''에서 타운젠드는 자신이 "아마도 양성애자"라고 썼다.[88] 그는 또한 롤링 스톤스의 리드 보컬리스트인 믹 재거에게 성적으로 끌렸다고 밝히기도 했다.[88]
2002년부터 2003년까지 타운젠드는 아동 성적 학대 이미지에 대한 대규모 수사인 오퍼레이션 오어의 일환으로 런던 경찰청(더 메트)으로부터 경찰 경고를 받았다. 런던 경찰청은 "타운젠드 씨가 다운로드된 아동 학대 이미지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타운젠드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아동 성적 학대 이미지 웹사이트에 접속했음을 인정한 후, 2003년부터 5년 동안 성범죄자 등록 대상이었다.[89][90] 그는 아동 성적 학대에 반대하는 캠페인, 구체적으로는 영국 은행이 소아성애자 조직의 수익을 전달하는 데 공모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 목적으로 해당 이미지에 접속했다고 주장했다.[91][92] 당국은 타운젠드가 접속한 웹사이트에 아동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고, 그의 개인 컴퓨터에서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93]
타운젠드는 부분적인 난청과 이명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장기간의 시끄러운 음악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더 후는 라이브 공연에서 매우 시끄러운 밴드로 알려져 있었는데, 일례로 1976년 5월 31일 찰턴 애슬레틱 축구 클럽에서 열린 더 후의 콘서트에서는 무대에서 32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음량 수준이 126데시벨로 측정되어 기네스 세계 기록에 "역대 가장 시끄러운 콘서트"로 등재되었다. 타운젠드는 1967년 더 후가 출연한 ''스머더스 브라더스 코미디 아워''에서 키스 문의 드럼 세트가 폭발한 것도 청력 손실의 원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94]
1989년, 타운젠드는 비영리 청각 옹호 단체인 H.E.A.R. (Hearing Education and Awareness for Rockers)의 설립을 위한 초기 자금을 지원했다. 2010년 슈퍼볼 XLIV 하프타임 쇼에서 더 후가 공연한 후, 타운젠드는 이명이 심해져 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롤링 스톤''에 "만약 청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쇼를 연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난'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닐 영은 그에게 청각학자를 소개해 이어 모니터를 사용하도록 권했고, 2010년 봄 투어 일정을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운젠드는 2010년 3월 30일 런던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에서 이 장치를 사용하여 더 후와 함께 공연을 계속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95]
2011년 3월, 로저 달트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타운젠드가 최근 점진적이지만 심각한 청력 손실을 겪었으며, 남아있는 청력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트는 청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이명이 아니라 악화되고 있으며, 실제로 청력을 잃을까 봐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2011년 7월, 타운젠드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2008년 12월 indigO2에서 피드백으로 인한 공포를 겪은 후, 나는 청각을 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청력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아졌습니다. 제 스튜디오에는 곧 출시될 쿼드로페니아 릴리스 작업에 도움이 되는 컴퓨터 시스템이 있습니다. 저는 젊은 법의학 엔지니어와 마스터링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 제 범위 밖인 고주파수를 정리했습니다. 동일한 컴퓨터 시스템은 무대에서도 훌륭하게 작동하며, 더 후가 슈퍼볼에서 공연하고 2010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 TCT를 위해 쿼드로페니아를 공연할 때 완벽했습니다. 저는 66세이고, 완벽한 청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시끄러운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러 가면 이명이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10. 정치적 견해
1998년, 타운젠드는 영국 노동당에 가장 많은 개인 재정 기부를 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96] 그는 1961년 미술 학교에 다닐 때 영국 청년 공산주의 연맹에 가입했으며, 1966년 "Trend" 모집 캠페인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1974년 ''펜트하우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은 공산주의이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보상을 잘 받는 자본가임을 인식한다고 말했다.[98]
2012년 ABC와의 인터뷰에서 타운젠드는 자신을 농담조로 "약간의 신보수주의자"라고 묘사하며, "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력이라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필요가 없잖아요. 여러분이 처리하세요."라고 말했다.[99]
2019년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타운젠드는 자신이 유럽 연합 잔류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저는 잔류론자이고, [로저 달트리]는 탈퇴론자입니다. 저는 신을 믿고, 그는 안 믿어요."라고 말했다.[100]
11. 자선 활동
피트 타운젠드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더 후(The Who)와 함께 활동하면서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자선 단체와 박애적 노력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
1968년, 타운젠드는 자신의 전 워더 스트리트 아파트를 메허 바바 협회에 기증했다.[211] 1969년과 1972년에는 런던에 기반을 둔 바바 협회를 위해 두 개의 한정판 앨범, ''해피 버스데이''와 ''아이 엠''을 제작했다. 1976년에는 또 다른 한정판인 ''사랑으로''가 발매되었다. 2000년에는 세 개의 한정판 모두를 CD로 묶어 놓은 한정판 박스 세트인 ''아바타''가 발매되었으며, 모든 수익금은 인도에 있는 아바타 메허 바바 트러스트에 기증되어 진료소, 학교, 병원 및 순례 센터에 자금을 제공했다. 1976년 7월, 타운젠드는 바바 추종자들을 위한 런던 활동 센터인 메허 바바 오세아닉을 열었는데, 이곳에는 영화 더빙 및 편집 시설, 영화관, 녹음실이 갖춰져 있었다.[211]
타운젠드는 아동 복지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1992년 샌디에이고의 라 호야 플레이하우스에서 무대 버전 ''토미''를 프로듀스하여 수익을 자폐증, 지적 장애 아동을 위한 복지 사업 재단에 기부했다.[157] 1995년에는 폴 사이먼이 주최하는 어린이를 위한 구급차와 구급대의 의연금 모금 콘서트에 출연했다.[212] 1997년부터는 학대받은 어린이를 구제하는 자선 단체 메리빌 아카데미에 협력하여, 2002년까지 이 단체를 위한 자선 라이브를 열었으며, 1999년에는 라이브 앨범 ''Pete Townshend Live : A Benefit for Maryville Academy''를 발표하여 수익을 동 단체에 기부했다.[157] 로저 달트리가 명예 고문으로 있는 소아 암 구제 단체 '''틴에이지 캔서 트러스트'''에도 협력하며, 더 후로서 이 단체를 위한 자선 라이브에 참여했다. 2011년에는 달트리와 함께 로널드 레이건 UCLA 의료 센터에 협력하여, 젊은 층의 암 환자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 “''UCLA Daltrey / Townshend Teen and Young Adult Cancer Program''”을 개설했으며, 11월 5일에는 이를 위한 자선 라이브 및 경매가 열렸고, 로버트 플랜트,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도 출연했다.[213] 2024년, 타운젠드는 마크 노플러의 "고잉 홈: 로컬 히어로 테마" 재발매에 기타 연주로 참여하여 청소년 암 신탁을 도왔다.
타운젠드는 약물 재활을 옹호해 왔다. 1979년 초 The Who의 두 차례 콘서트는 서섹스에 있는 패터슨의 파르마콘 클리닉을 위해 2만 파운드를 모금했다.[104] 1985년 브릭스턴 아카데미에서 Double-O Charities를 위해 두 차례 자선 공연을 했다.[105]
1979년 타운젠드는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를 위해 ''시크릿 폴리스맨스 볼''에서 세 곡을 공연했다.[106] 타운젠드의 앰네스티에 대한 헌신에 영감을 받아 피터 가브리엘, 브루스 스프링스틴, 데이비드 길모어, U2의 리드 싱어 보노 등이 ''시크릿 폴리스맨스 볼'' 공연 및 다른 자선 행사를 통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을 지원하게 되었다.[108]
12. 수상 및 명예
연도 | 상 |
---|---|
1983 | 브릿 어워드 공로상 |
1990 |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85] |
1991 | Q 어워드 공로상 |
1991 | 국제 록 어워드 리빙 레전드상 |
1993 | 토니상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 (더 후의 토미) (공동 수상) |
1994 | 그래미상 최우수 뮤지컬 쇼 앨범 (더 후의 토미 작곡가 및 작사가) |
1998 | Q 어워드 송라이터상 |
2001 |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85] |
2001 | 아이보 노벨로 어워드 평생 공로상 |
2005 |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85] |
2007 | 사우스 뱅크 쇼 어워드 평생 공로상 |
2008 | 케네디 센터상[85] |
2008 | MOJO 어워드 명예의 전당 |
2008 | MOJO 어워드 클래식 송라이터 |
2010 | 웨스트 런던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
2011 | 클래식 록 롤 오브 아너 어워드 클래식 앨범상 (쿼드로페니아) |
2013 | TEC 어워드 레스 폴상 |
2015 | 스티비 레이 본 어워드 |
2016 | 조지 & 아이라 거슈윈 어워드 평생 음악 공로상 |
2019 |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어치브먼트 골든 플레이트 어워드 (로저 달트리와 함께, 피터 가브리엘 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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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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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ザ・フーのロジャー・ダルトリー、児童ポルノ捜査は“魔女狩り”と英国政府を非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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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フー・アイ・ア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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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ピート・タウンゼント、児童ポルノで不起訴となるも警察から警告、性犯罪者リスト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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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ザ・フー、ピート・タウンゼントの渡米をめぐり、親に警告書が配布される | The Who | BARKS音楽ニュ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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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ピート・タウンゼント、小児性愛を否定。児童ポルノは自伝の下調べが目的と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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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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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児童ポルノ疑惑のピート・タウンゼント、身の潔白を示す証拠が見つか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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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Operation Ore flawed by fraud | Technology |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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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ardian
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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