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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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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헌통고》는 중국 원나라 시대의 학자 마단림이 편찬한, 역대 제도의 변천을 기록한 책이다. 24개의 고(考)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지, 화폐, 호구, 직역, 조세, 시장, 공납, 재정, 선거, 학교, 관직, 제사, 종묘, 왕실 의례, 음악, 군사, 형벌, 경서, 황제 계보, 봉건, 천문, 지리, 주변 국가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청나라 시대에는 완원이 이 책을 《자치통감》과 함께 역대 정치사와 정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으로 평가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인용되어 국가의 제도와 의례에 활용되었으며, 《동국문헌비고》 편찬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판적인 평가도 존재하며, 특히 남송 멸망 이후의 사실에 대한 서술의 독선성과 송대 전장 제도에 대한 불완전성을 지적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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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통고

2. 편찬 배경 및 과정

마단림은 《문헌통고》의 서문에서 "고금을 인용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이래 여러 신료들의 주소(奏疏), 여러 유학자들의 의론을 참고하는 것을 '헌(獻)'이라 하므로, 그 이름을 '문헌통고'라고 하였다"고 밝혔다.통전》의 내용을 기초로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상세하게 고증하여 내용을 분류하고 시대순으로 배열하였다.

3. 구성 및 내용

《문헌통고》는 전 348권에 3권을 더 붙여 24고(考)로 나누어져 있다. 전부(田賦), 전폐(錢幣), 호구(戶口) 등 19개의 고는 두우의 《통전》의 옛 사료를 많이 인용하였고, 경적(經籍), 제계(帝系), 봉건(封建), 상위(象緯), 물이(物異)의 5고를 더 추가하였다. 이 중 《경적고》(經籍考)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단림은 《문헌통고》의 서문에서 "고금을 인용하는 것을 일러 문(文)이라 하고, (唐宋) 이래 여러 신료들의 주소(奏疏), 여러 유학자들의 의론을 참고하는 것을 헌(獻)이라 하므로, 그 이름을 '문헌통고'라고 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는 《통전》의 내용을 기초로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상세하게 고증하여, 진위를 가리고, 분류별로 나누고, 시대에 따라 배열하여 비교하였다.

전서에는 「문」(文), 「헌」(獻), 「고」(考)의 3종이 있다. 「문」은 문헌의 망라와 고정(考訂)을, 「헌」은 전대 사람들의 의론에 대한 지적을, 「고」는 주로 찬자 마단림 자신의 견해를 수록하였다. 마단림의 견해는 고금을 관통하고 내용의 절충이 적절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신중한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토지 및 병역 제도에 대한 견해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남송 말기를 살았던 마단림은 남송 멸망의 한 원인을 남송 왕조의 부패로 지적하였다. 그의 송대 제도에 대한 연구는 깊이가 있었으며 송대의 전장 제도에 대해서도 기록이 특히 상세하여 송대 정치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본서의 송대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사실적이고 믿을 만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동류의 다른 저술보다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

《문헌통고》는 역대 중국 왕조의 전장 제도를 다룬 서적으로,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두 책을 함께 읽어야만 중국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헌통고》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통전》보다 실속있고, 체제 및 범례는 정초의 《통지》보다도 엄밀하며, 송대의 제도에 대해 특히 상세하게 구비되어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청대의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는 《문헌통고》를 두고 "《통전》의 간결함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사실의 상세한 첨부는 그보다 더 나으며, 정초의 《통지》도 미치지 못하는 점이다"라고 평하였다.[1]

《문헌통고》는 송나라 시대의 제도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어 『송사』의 지(志) 부분과 『송회요』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다만, 이 책이 100년 전의 영종 치세까지만 기록한 것은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송조국사』의 지 부분을 참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경적고(經籍考)」는 『군재독서지』나 『직재서록해제』를 기반으로 쓰여졌다.[1]

3. 1. 24고 (考) 목록

고(考)권수내용비고
전부고7권(권1~7)토지 제도토지 제도론
전폐고2권(권8~9)화폐 제도통화론
호구고2권(권10~11)호구 및 인구 제도인구 호적론
직역고2권(권12~13)관리들의 역(役) 제도관료 제도론
정확고6권(권14~19)조세 제도각종 세제론
시적고2권(권20~21)시장 및 곡물 거래시장 통제론
토공고1권(권22)지방 특산물 공납각지 특산론
국용고5권(권23~27)국가 재정물자 수송론
선거고12권(권28~39)관리 선발 제도관료 임용론
학교고7권(권40~46)교육 제도태학 등 학교 제도론
직관고21권(권47~67)관직 제도
교사고22권(권68~89)국가 제사국가 제사론
종묘고15권(권90~105)종묘 제사조상 제사론
왕례고22권(권106~127)왕실 의례왕자 전례론
악고20권(권128~149)음악음악 제도론
병고13권(권149~161)군사 제도군사 제도론
형고12권(권162~173)형벌 제도형벌 제도론
경적고76권(권174~249)경서 및 서적고전 서적론
제계고10권(권250~259)황제 계보황제 계보론
봉건고18권(권260~277)봉건 제도봉건 제도론
상위고17권(권278~294)천문 현상천문 관측론
물이고20권(권295~314)기이한 자연 현상괴기 현상론
여지고9권(권315~323)지리국내 지리론
사예고25권(권324~348)주변 국가 및 민족외국 지리론


4. 평가 및 영향

《문헌통고》는 역대 중국 왕조의 전장 제도를 다룬 서적으로,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자치통감》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문헌통고》는 제도와 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중국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하다.[1] 《문헌통고》는 《통전》보다 자료가 충실하고, 《통지》보다 체계가 엄밀하며, 특히 송나라 제도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마단림은 《문헌통고》 서문에서 "고금을 인용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이래 여러 신료들의 주소(奏疏)와 유학자들의 의론을 참고하는 것을 헌(獻)이라 하므로, 그 이름을 '문헌통고'라고 하였다"라고 밝혔다. 마단림은 남송 멸망의 원인을 남송 왕조의 부패로 보았으며, 송대 전장 제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통해 송대 정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나라의 《사고전서총목제요》는 《문헌통고》에 대해 "《통전》의 간결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을 상세히 덧붙인 점은 《통지》보다 낫다"라고 평가했다.[2] 청나라 말기 고증학자 완원은 《자치통감》과 《문헌통고》를 함께 읽으면 역대 정치사와 정전(政典)에 통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원나라 인종 연우 6년(1319년)에 이 책이 널리 퍼진 후, 원대 사람들은 《문헌통고》에 대해 "다스림의 도리에 관련된 것을 모두 구분하여 정리하였고, 질서정연하며, 치국안민(治國安民)에 유용한 학문"이라고 평가했다.

《사고전서총목제요》는 《문헌통고》의 분석적인 내용과 《송사》에서 부족한 송대 제도 관련 내용을 높이 평가했지만, 남송 멸망 이후 사실에 대한 찬자의 독선적인 서술과 원과 송의 대립 시점을 다루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록을 끊은 점을 비판했다.

《문헌통고》는 두우의 《통전》을 본보기로 삼았지만, 고증이 정확하고 송나라 시대 제도를 자세히 다루어 《송사》의 지(志) 부분과 《송회요》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정서(政書)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 단, 이 책이 영종 치세까지만 기록된 것은 소실된 『송조국사』의 지 부분을 참고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4. 1. 한국에의 영향

조선 문종 1년에 완성된 《고려사》에서는 서경(평양)의 연혁을 소개하면서 《문헌통고》를 인용, 서경의 대성산은 《문헌통고》에 언급된 평양성 동북쪽에 위치한 노양산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성균관의 건립[2]이나 태종 당시 태상왕이었던 태조의 장례 절차에 대해서 《문헌통고》를 참조하고,[3] 기상 관측이나 천문상의 이변에 대해서 《문헌통고》를 참조해 대처 방법을 의논한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 왕조는 국가의 주요 제사나 장례, 천문 및 기상 이변에 관해 《문헌통고》를 참고해 대처하였으며, 영조 때에는 《문헌통고》의 구성을 모방해서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기도 하였다.[4]

5. 비판

사고전서총목제요는 《문헌통고》에 대해 꽤 많은 비난을 하면서도, 조목별로 자세히 분석하여 유형별로 고찰할 수 있게 하고, 송대 제도에 관해서는 《송사》에서 미처 갖추지 못한 부분들을 수록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문헌통고》의 언어는 고금을 절충적으로 꿰뚫어 보고 있으며, 《통전》의 간결함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부실한 부분을 상세하게 갖춘 것은 정초의 《통지》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후대 인물들은 《문헌통고》가 남송 멸망 이후의 사실에 관해 찬자의 말이 독선적이라고 평가하였으며, 특히 과 송의 대립 시점을 다루지 않으려고 굳이 가정 5년(1212년)에서 기록을 끊음으로써 송대 전장 제도에 대한 서술이 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다.[1]

참조

[1] 서적 고려사
[2] 서적 태종실록 1406-03-14
[3] 서적 태종실록 1408-05-24
[4] 서적 영조실록 176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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