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호
1. 개요
민상호는 1870년 서울에서 태어난 여흥 민씨 출신의 인물로, 대한제국 시기에 외교관, 관료로 활동했다. 그는 1891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외무 참의를 거쳐 여러 나라의 공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부터 친일 행위를 시작하여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7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으로 토지가 국가에 귀속될 뻔했으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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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남작 -
김가진
김가진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관료였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서얼 출신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해 개화파 관료로서 독립협회에서 활동, 을사조약에 반대하고 대한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3·1 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
조선남작 -
이항구
이항구는 대한제국 시기 관료를 지냈고 일제강점기 이왕직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으며, 《고종실록》 편찬 당시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일제 식민사관에 부역했다는 비판을 받아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명단에 포함되었고, 그의 아버지 이완용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민상호는 1870년 서울에서 여흥 민씨 출신인 민치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는 민치억의 아들이었지만 나중에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자택에서 교육을 받은 후 동문학을 다녔으며, 1885년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라 언관 벼슬을 거쳐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외교관으로 중용되었다. 박정양의 추천으로 귀국하여 내무부에 배치되었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으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의 지휘 하에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친미파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98년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민상호는 여흥 출신으로, 본래 민치억의 아들이었으나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언관 벼슬을 거쳐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박정양의 추천으로 내무부에 배치되었으며, 과거 문과에 급제한 후 수찬(修撰)으로 관직에 들어섰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 지휘 하의 일본군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친미파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98년 10월 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고,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방한 시 인천에서 영접 및 만찬 통역을 맡았다. 1900년 3월 21일 농상공부 차관, 3월 26일 통신원 총판에 임명되었다.
1908년부터 친일 관료가 되어 일본 통치하의 대만과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를 지지하는 동양협회에 가입하여 50원을 기부했다. 어니스트 베델 사망 시 동상 건립에 100원을 기부했다.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위를 수여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다. 1911년 식민 통치 공로로 25,000원을 받았고, 1912년 한국 식민화 공로 훈장을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상호 소유 토지에 대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으나, 후손들은 러일 전쟁 이전 취득 재산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대통령령 제18571호에 따라 일제강점기 한국인 협력자로 기록되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1898년에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민상호는 1870년 서울에서 여흥 민씨 출신인 민치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는 민치억의 아들이었지만 나중에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자택에서 교육을 받은 후 동문학을 다녔으며, 1885년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라 언관 벼슬을 거쳐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외교관으로 중용되었다. 박정양의 추천으로 귀국하여 내무부에 배치되었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으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의 지휘 하에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친미파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98년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2.2. 관료 생활
민상호는 여흥 출신으로, 본래 민치억의 아들이었으나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언관 벼슬을 거쳐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박정양의 추천으로 내무부에 배치되었으며, 과거 문과에 급제한 후 수찬(修撰)으로 관직에 들어섰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 지휘 하의 일본군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친미파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98년 10월 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고,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방한 시 인천에서 영접 및 만찬 통역을 맡았다. 1900년 3월 21일 농상공부 차관, 3월 26일 통신원 총판에 임명되었다.
1908년부터 친일 관료가 되어 일본 통치하의 대만과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를 지지하는 동양협회에 가입하여 50원을 기부했다. 어니스트 베델 사망 시 동상 건립에 100원을 기부했다.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위를 수여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다. 1911년 식민 통치 공로로 25,000원을 받았고, 1912년 한국 식민화 공로 훈장을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상호 소유 토지에 대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으나, 후손들은 러일 전쟁 이전 취득 재산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대통령령 제18571호에 따라 일제강점기 한국인 협력자로 기록되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1898년에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다.
2.3. 외교 활동
민상호는 1891년 과거에 급제한 뒤 외교관으로 중용되었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으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의 지휘 하에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도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민상호는 친미파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1898년 10월, 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이 인천을 방문했을 때 인천에서 그를 영접한 한국 관리 중 한 명이었으며, 만찬 통역을 맡았다. 1902년 9월 16일, 육군 부장이 되었다. 1904년 3월 9일에는 이학균을 대신하여 군법무 총장이 되었다.
2.4. 대한제국 시기 활동
민상호는 여흥 출신으로, 본래 민치억의 아들이었으나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하여 언관 벼슬,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외교관으로 중용되었으며, 1897년부터 19개월 동안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특명 전권 공사로 파견되었다.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와 함께 친미파 정치인으로 꼽혔다.
1894년 외무 참의가 되었고,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오토리 게이스케 지휘하의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일본군은 민상호가 도착하기 전에 인천을 떠났다. 1898년 10월에는 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이 인천을 방문했을 때, 민상호는 인천에서 그를 영접한 한국 관리 중 한 명이었으며, 만찬 통역을 맡았다.
1900년 3월 21일, 농상공부 차관이 되었고, 3월 26일에는 통신원 총판으로 임명되었다. 1902년 9월 16일, 육군 부장이 되었으며, 1904년 3월 9일에는 이학균을 대신하여 군법무 총장이 되었다. 강원도 관찰사, 제독국 총재, 경기도 관찰사, 1906년에는 궁내부 특진관을 역임했다. 1907년에는 규장각 지후각과 수학교(修學敎)의 원장이 되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1898년에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2.5. 친일 행적과 작위
민상호는 본래 여흥 민치억의 아들이었으나 민치덕에게 입적되었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하여 언관 벼슬, 궁내부 등에서 근무하다 외교관으로 중용되었다. 1910년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다. 1911년에는 식민 통치에 대한 공로로 25,000원을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상호 소유 토지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으나, 민상호의 후손들은 이 재산이 러일 전쟁 이전에 취득한 것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1898년 휘베르트 보스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2.6. 사망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
민상호는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다. 1912년에는 한국 식민화 공로 훈장을 받았다. 1933년 사망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남작위를 습작한 민영욱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상호 소유의 토지에 대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민상호의 후손들은 이 재산이 민상호가 러일 전쟁 전에 취득한 재산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휘베르트 보스가 1898년에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다.
2.7. 재산 환수와 소송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2. 부정적 평가
4. 상훈
* 태극훈장 3등급(1901년)
* 태극훈장 2등급(1904년)
* 한국 병합 기념장 (1912년)
* 욱일장 2급 (192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