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원
1. 개요
서필원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만죽헌 서익의 증손이다. 1633년 진사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이조 좌랑, 평안도어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효종 대에는 대사간, 전라감사 등을 거쳐 대동법 시행에 기여했으며, 현종 대에는 함경도 관찰사로 목면 재배를 권장하고 육진의 폐단을 개혁했다. 1668년 형조 판서, 1671년 병조 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정의이다. 저서로는 문집인 《육곡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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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출생 -
김익겸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나라에 항거하다 분신자결한 김익겸은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고 충렬사에 제향되었으며,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와 소설가 김만중의 아버지이다. -
1614년 출생 -
존 릴번
존 릴번은 "자유민 존"으로 불리며 잉글랜드 내전 당시 의회파로 활동한 17세기 급진주의 정치 사상가이자 평등주의자로, 언론과 종교의 자유, 법 앞의 평등, 성인 남성의 선거권 등 "자유민의 권리"를 옹호하며 여러 차례 투옥과 망명을 겪었고 그의 사상은 미국 헌법 수정 제5조와 미란다 원칙에 영향을 주었다. -
1671년 사망 -
레 현종 (20대)
레 현종은 후 레 왕조의 20대 황제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권신의 영향력 아래 청나라와의 외교 관계 수립, 기독교 금지, 도량형 제정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
1671년 사망 -
앤 하이드
앤 하이드는 평민 출신으로 요크 공 제임스의 첫 번째 부인이 되어 메리 2세와 앤 여왕을 낳았고, 가톨릭으로 개종 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서필원은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의 증손으로, 조선의 문신이다. 인조 때 진사시에 급제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효종 때 홍문관부수찬,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서원의 폐단을 보고하고 개혁을 청했다. 대사간, 승지를 거쳐 전라도전라감사가 되어 대동법 시행에 찬동하였다. 현종 때 병조참의, 대사성,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강화유수, 형조 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정의(貞毅)이다.
2.1. 관직 생활
1633년(인조 11년) 진사시에 급제하여 1643년(인조 21년) 창릉참봉, 사옹원봉사가 되었다. 1648년(인조 26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관을 거쳐 예문관검열, 설서 등을 역임했고, 통훈대부 행 사간원 정언 겸 춘추관 기사관으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54년(효종 5년) 홍문관부수찬,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평안도어사를 역임하였다.
1656년(효종 7년) 수찬, 사헌부지평, 홍문관교리, 이조정랑 등을 지내고,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서원의 폐단을 보고하고 그 개혁을 청하였다.
1657년(효종 8년) 대사간, 1658년(효종 9년) 승지를 거쳐 전라도전라감사가 되어서 대동법 시행에 찬동하여 전남도대동사목(全南道大同事目)을 반포하였다.
현종 초에 병조참의, 승지, 대사성, 예조참의, 이조참의 등을 거쳐, 1663년(현종 4년) 대사간, 승지,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목면 재배를 권장하고 구휼 사업에 힘쓰기도 하였다. 특히 육진혁막제조(六鎭革瘼諸條)를 올려 그 지방의 폐단을 개혁하는 데 앞장섰다.
1665년(현종 6년) 강화유수를 역임하고, 1668년(현종 9년) 자헌대부에 승진하여 형조 판서가 되었다. 1671년(현종 12년)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3. 저서
서필원의 저서로 문집 《육곡유고(六谷遺稿)》가 전해진다.
3.1. 《육곡유고(六谷遺稿)》
서필원의 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