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드레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센텐드레는 헝가리 페슈트주에 위치한 도시로, 중세 라틴어 'Sankt Andrae'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헝가리어로는 'Szentendre'라고 불린다. 마자르족 도착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지역으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인구가 감소했으나,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로 도시 경관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1872년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1888년 부다페스트와 철도가 개통되었다. 20세기 초 예술가들이 정착하면서 예술가의 도시로 발전하였고, 1967년 야외 박물관(스칸젠)이 설립되었다. 2001년 기준 헝가리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며, 부다페스트와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여러 도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으며, 예술가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요 인물들이 이 도시와 관련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헝가리의 도시 - 죄르
죄르는 헝가리 서부에 위치하여 고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켈트족,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침략을 겪으면서도 발전해 1743년 제국자유도시 지정, 19세기 중반 도나우 강 증기선 운항으로 무역 도시로 번성, 현재는 아우디 공장이 위치한 산업 도시이자 역사적 건물과 문화를 간직한 13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헝가리 서부 지역의 물류 중심지이자 경제 활동의 중추 도시이다. - 헝가리의 도시 - 에르드
에르드는 헝가리 중부 다뉴브 강 인근에 위치한 도시로, 선사시대 인류 거주 흔적이 발견되었고 오스만 제국 지배를 거쳐 1972년 이후 급성장하여 2006년 주 권한을 가진 도시로 승격되었으며, 성 미카엘 교회, 에르드 미나레트 등의 관광 명소가 있는 지방 자치 정부 도시이다.
센텐드레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 | |
공식 명칭 | 센텐드레 |
다른 이름 | 센탄드레야 (Сентандреја, Sentandreja, 세르비아어) 장크트안드레 (Sankt Andrä, 독일어) 세난드리야, 센드리야, 센드라 (Senandrija, Sendrija, Sendra, 크로아티아어) 스베티온드레이, 세논드레이 (Svätý Ondrej, Senondrej, 슬로바키아어) |
행정 구역 | |
국가 | 헝가리 |
주 | 페슈트 주 |
구 | 센텐드레 구 |
지리 | |
면적 | 43.83 km² |
인구 통계 | |
총 인구 (2021년) | 27,534명 |
인구 밀도 | 592명/km² |
식별 번호 | |
우편 번호 | 2000, 2001 |
지역 번호 | (+36) 26 |
웹사이트 |
2. 명칭
이 도시의 명칭은 처음에는 중세 라틴어로 Sanctus Andreasla (안드라스 1세 또는 성 안드레아수도원의 이름에서 유래)였다. 헝가리어로는 센텐드레 (''Szentendre'')이지만, 독일어로는 상크트 안드레 (''Sankt Andrä''), 세르비아어로는 센탄드레야 (), 슬로바키아어로는 세논드레이 (''Senondrej'')였지만, 헝가리어에서 차용한 단어임이 명백하므로 현재는 스바티 온드레이 (''Svätý Ondrej'')로 개칭되었다.
센텐드레는 마자르족이 도착하기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다. 9세기경 아르파드의 동료인 쿠르산 공이 이곳에 정착하여 폐허가 된 로마 요새를 개축하고 정착지를 재건했다.[6]
이 마을의 이름은 중세 라틴어 형태인 Sankt Andraela(성 안드레)에서 유래되었다. 센텐드레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정착했기 때문에, 언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어 이름은 Szentendrehu, 크로아티아어 이름은 Senandrijahr, 독일어 이름은 Sankt Andräde, 세르비아어 이름은 (), 슬로바키아어 이름은 Svätý Ondrejsl이다. 1146년 학생의 유언장에 처음 등장한 이 이름(Sanctus Andreasla)은 헝가리의 게저 2세에 의해 확정되었다. 12세기의 시 중심지는 현재에도 존재하는 Bükkös Brook 반대편의 성 안드레 교회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3. 역사
9세기와 10세기 사이 센텐드레의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아포르'라는 이름의 정착지가 있었는데, 이는 '개울'을 의미하며 작은 강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데라, 뷔쾨스, 외레그비즈, 스텔린 등 5개의 개울이 있었지만, 아포르가 어떤 개울과 관련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6]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인구가 크게 감소하여 17세기에는 한 가족과 그 하인들만 남았다고 한다.[7] 그러나 대터키 전쟁 이후 세르비아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오면서 도시 경관과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달마티아인들도 이주해 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오늘날 달마트 거리는 그들의 흔적을 보여준다.[6]
오스만 제국이 물러간 후, 센텐드레에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 그리스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이주해 와 헝가리인과 함께 살았다. 1720년에는 인구의 88%가 남슬라브인(대부분 세르비아인)이었다.[7] 이 시대의 번영은 바로크 양식의 주택, 지중해 분위기의 도시 건축, 교회, 자갈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72년 센텐드레는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고, 1888년에는 부다페스트와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예술가들이 센텐드레의 조용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예술가 식민지가 생겨났고, '센텐드레 학파'가 등장했다.
1970년대까지 센텐드레는 인구 4천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이후 주변 지역과 합쳐지면서 크게 성장했다. 2010년에는 인구가 25,000명에 달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과일 재배와 정원 가꾸기는 거의 사라졌다.
1967년 설립된 헝가리 야외 박물관(스칸젠)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헝가리 বিভিন্ন 계층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곳으로, 2009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박물관 철도 노선이 건설되었다. 이곳은 넷플릭스 드라마 위쳐 (TV 시리즈)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1]
16세기에 센텐드레는 헝가리 내 세르비아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중세 시대부터 불가리아인들도 이주해 왔다. 1690년에는 센텐드레가 '볼가리야'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치프로프치 출신 이주민들이 많아 '치프로프치 교회'가 세워지기도 했다.[6]
3. 1. 고대-중세
센텐드레가 오늘날 위치한 지역은 마자르족이 도착했을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9세기에 아르파드의 동료인 쿠르산 공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폐허가 된 로마 요새를 개축하고 로마 건물 잔해 위에 정착지를 재건했다.[6]
9세기와 10세기 사이의 센텐드레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에 아푸리그라는 정착지가 있었다고 한다. "아포르"라는 단어는 "개울"을 의미하며, 따라서 정착지는 작은 강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 측량 지도를 바탕으로 이 지역에는 데라, 뷔쾨스, 외레그비즈, 스텔린 등 5개의 개울이 있었다. 아포르가 어떤 개울과 동일시될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6]
대터키 전쟁 동안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헝가리로 이주하라는 초청을 받았다. 이 초청으로 인해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센텐드레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르비아인들은 도시 경관과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도심의 건물들은 건축에서 이러한 세르비아의 영향을 보존하려 노력했지만, 실제로 이 건물들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17세기 말의 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도심에는 다른 건물들이 있었다.[6]
달마티아인들의 이주도 상당했다. 달마티아 가족들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오늘날 달마트 거리는 그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이 거리는 원래 달마티아인들의 후손들만 거주했다. 이 후손들은 현재 도시 전역에 거주하고 있다.[6]
3. 2. 오스만 제국 시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센텐드레는 인구가 크게 줄었다. 17세기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한 가족과 그들의 하인들만 남아 있었다.[7]
대터키 전쟁 동안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헝가리로 이주하라는 초청을 받았다. 이 초청으로 인해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센텐드레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르비아인들은 도시 경관과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달마티아 가족들도 이주해 왔는데, 이들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오늘날 달마트 거리는 그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이 거리는 원래 달마티아인들의 후손들만 거주했다.[6]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에서 축출된 후, 외국인 정착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번영의 증거는 주택의 바로크 양식, 도시 건축의 지중해 분위기, 교회, 자갈길, 좁은 골목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면서, 센텐드레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다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 그리스인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헝가리인 근처에 거주했다. 1720년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88%가 남슬라브인(대부분 세르비아인)이었다.
3. 3. 오스만 제국 이후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센텐드레는 인구가 크게 줄었다. 17세기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한 가족과 그들의 하인들만 남아 있었다.[7]
오스만 제국이 물러간 후, 외국인 정착민들이 센텐드레로 이주했다. 주택의 바로크 양식, 도시 건축의 지중해 분위기, 교회, 자갈길, 좁은 골목길 등에서 이 시대의 번영을 엿볼 수 있다. 대터키 전쟁 동안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헝가리로 이주하라는 초청을 받았고,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센텐드레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도시 경관과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도심 건물들은 이러한 세르비아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지만, 17세기 말 지도에는 당시 도심에 다른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6]
달마티아인들도 상당수 이주해 왔다. 달마티아 가족들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달마트 거리는 오늘날까지 그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도 이 거리에는 달마티아인들의 후손들만 거주했으며, 현재는 도시 전역에 퍼져 살고 있다.
오스만 제국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했지만, 1690년대부터 인구는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1872년에는 마을의 특징이 다시 나타나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공공 행정 및 사업체는 도시의 모든 특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센텐드레는 1872년에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1888년에는 센텐드레와 부다페스트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20세기 초, 예술가들은 센텐드레의 조용한 지방 생활에 매료되었다. 1929년에는 센텐드레 예술가 식민지가 생겨났고, 소위 센텐드레 학파가 이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200명 이상의 미술 및 응용 미술가, 작가, 시인, 음악가, 배우들이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센텐드레는 인구 4천 명을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당시 도시는 도심과 돈키 산의 두 부분으로만 구성되었으며, 후자는 20세기 초에 주거 지역이 되었다. 이 두 지역은 11번 도로로 센텐드레의 다른 모든 지역과 분리되어 있었다.
역사적인 시가지 주변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작은 정착지들이 도시와 합쳐졌다. 이 중 일부는 오늘날 센텐드레의 전통적인 도시 지역이 되었다. (예: 이즈베그, 데레츠케) 센텐드레에는 녹지대도 포함되어 있다. (예: 판노니이텔레프, 퓌슈푀크마요르, 피슈마니, "사르바스헤지") 1970년대 말 대규모 도심 합병으로 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21세기 초, 이 지역은 완전히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고, 이전의 작은 도시는 2010년에 25,000명의 인구를 달성했다. 이러한 도시의 확장은 센텐드레에서 전통적인 과일 재배 및 정원 가꾸기를 사실상 종식시켰다.
1967년에 설립된 헝가리 야외 박물관(스칸젠)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계층의 실내 가구 및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 이 박물관에는 2009년에 건설된 유럽에서 가장 긴 박물관 철도 노선이 있다. 이 박물관은 헝가리와 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넷플릭스의 위쳐 (TV 시리즈) (2019)는 박물관 부지를 사용하여 캐릭터 예니퍼의 고향 마을을 묘사했으며, 풍차가 있는 지역에서 주인공 시리의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1]
16세기 센텐드레는 헝가리 내 세르비아인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당시 8개의 세르비아 정교회 교회와 3개의 예배당이 있었던 반면, 로마 가톨릭과 복음주의 교회는 각각 하나뿐이었다. 세르비아 정교회는 이 지역을 부다 교구로 삼았다. 센텐드레와 주변 마을에는 중세 이후 불가리아인도 이주해 왔다. 1690년 세르비아인 교사들은 센텐드레가 볼가리야(Bolgarija)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치프로프치 이주민이 많아 치프로프치 교회(Csiprovacska templom)라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세워졌다. 시내 지명에도 불가리아인의 흔적이 남아있다.[6]
18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면서, 센텐드레에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 그리스인이 이주하여 헝가리인 근처에 거주했다. 1720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88%가 남슬라브인(대부분 세르비아인)이었다.[7] 오늘날 도시의 교회와 골목길에 남아있는 바로크 건축에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4. 19세기 이후
대터키 전쟁 동안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헝가리로 이주하라는 초청을 받았다. 이 초청으로 인해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센텐드레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르비아인들은 도시 경관과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도심의 건물들은 건축에서 이러한 세르비아의 영향을 보존하려 노력했지만, 실제로 이 건물들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17세기 말의 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도심에는 다른 건물들이 있었다.[6]
달마티아인들의 이주도 상당했다. 달마티아 가족들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오늘날 달마트 거리는 그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이 거리는 원래 달마티아인들의 후손들만 거주했다. 이 후손들은 현재 도시 전역에 거주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의 인구를 감소시켰지만, 1690년대부터 인구는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1872년에는 마을과 같은 특징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여 마을과 같은 특징을 압도하게 되었다. 공공 행정 및 사업체는 도시가 갖는 모든 특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센텐드레는 1872년에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다. 1888년에는 센텐드레와 부다페스트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도시의 조용한 지방 생활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1929년에는 센텐드레 예술가 식민지가 생겨났다. 소위 센텐드레 학파가 이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200명 이상의 미술 및 응용 미술가, 작가, 시인, 음악가, 배우들이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는 1970년대까지 작은 마을이었으며, 인구는 4천 명을 넘지 않았다. 당시 도시는 도심과 돈키 산의 두 부분으로만 구성되었으며, 후자는 20세기 초에 생활 공간이 되었다. 이 두 지역은 11번 도로로 센텐드레의 다른 모든 지역과 분리되어 있다.
역사적인 시가지 주변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작은 정착지들이 도시와 합쳐졌으며, 이 중 일부는 오늘날 센텐드레의 전통적인 도시 지역, 예를 들어 이즈베그와 데레츠케이다. 센텐드레에는 녹지대도 포함되어 있으며, 판노니이텔레프, 퓌슈푀크마요르, 피슈마니, "사르바스헤지"가 있다. 1970년대 말 대규모 도심 합병으로 인해 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이 상당히 확대되었다. 21세기 초가 되면서 이 지역은 완전히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고, 이전의 작은 도시는 2010년에 25,000명의 인구를 달성했다. 이러한 도시의 확장은 센텐드레에서 전통적인 과일 재배 및 정원 가꾸기를 사실상 종식시켰다.
1967년에 설립된 헝가리 야외 박물관(스칸젠)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그룹의 실내 가구 및 생활 방식을 포함하여 마을 및 도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보여준다. 이 박물관에는 2009년에 건설된 유럽에서 가장 긴 박물관 철도 노선이 포함되어 있다.
위쳐 (TV 시리즈) (넷플릭스, 2019)는 박물관 부지를 사용하여 캐릭터 예니퍼의 원래 고향인 마을을 묘사했으며, 이 장소는 풍차가 있는 지역에 있던 주인공 시리의 장면에도 사용되었다.[1]
18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면서, 센텐드레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다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 그리스인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헝가리인 근처에 거주했다. 1720년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88%가 남슬라브인(대부분 세르비아인)이었다.[7] 오늘날에는 도시의 교회와 골목길에 남아있는 바로크 건축에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5. 20세기 이후
대터키 전쟁 동안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헝가리로 이주하라는 초청을 받았다. 이 초청으로 인해 1690년 세르비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센텐드레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르비아인들은 도시 경관과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도심의 건물들은 건축에서 이러한 세르비아의 영향을 보존하려 노력했지만, 실제로 이 건물들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17세기 말의 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도심에는 다른 건물들이 있었다.[6]
달마티아인들의 이주도 상당했다. 달마티아 가족들은 돈키 산에 정착했으며, 오늘날 달마트 거리는 그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1980년대에도 이 거리는 원래 달마티아인들의 후손들만 거주했다. 이 후손들은 현재 도시 전역에 거주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의 인구를 감소시켰지만, 1690년대부터 인구는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1872년에는 마을과 같은 특징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여 마을과 같은 특징을 압도하게 되었다. 공공 행정 및 사업체는 도시가 갖는 모든 특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센텐드레는 1872년에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다. 1888년에는 센텐드레와 부다페스트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도시의 조용한 지방 생활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1929년에는 센텐드레 예술가 식민지가 생겨났다. 소위 센텐드레 학파가 이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200명 이상의 미술 및 응용 미술가, 작가, 시인, 음악가, 배우들이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센텐드레는 인구가 4천 명을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으며, 도심과 돈키 산의 두 부분으로만 구성되었다. 돈키 산은 20세기 초에 생활 공간이 되었다. 이 두 지역은 11번 도로로 센텐드레의 다른 모든 지역과 분리되어 있었다.
역사적인 시가지 주변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작은 정착지들이 도시와 합쳐졌으며, 이 중 일부는 오늘날 센텐드레의 전통적인 도시 지역, 예를 들어 이즈베그와 데레츠케이다. 센텐드레에는 녹지대도 포함되어 있으며, 판노니이텔레프, 퓌슈푀크마요르, 피슈마니, "사르바스헤지"가 있다. 1970년대 말 대규모 도심 합병으로 인해 도시의 인구 밀집 지역이 상당히 확대되었다. 21세기 초가 되면서 이 지역은 완전히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고, 이전의 작은 도시는 2010년에 25,000명의 인구를 달성했다. 이러한 도시의 확장은 센텐드레에서 전통적인 과일 재배 및 정원 가꾸기를 사실상 종식시켰다.
1967년에 설립된 헝가리 야외 박물관(스칸젠)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마을 및 도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실내 가구 및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 이 박물관에는 2009년에 건설된 유럽에서 가장 긴 박물관 철도 노선이 포함되어 있다.
위쳐 (TV 시리즈) (넷플릭스, 2019)는 박물관 부지를 사용하여 캐릭터 예니퍼의 원래 고향인 마을을 묘사했으며, 이 장소는 풍차가 있는 지역에 있던 주인공 시리의 장면에도 사용되었다.[1]
4. 문화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 바로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많은 박물관, 화랑,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경관과 편리한 철도, 선박 접근성으로 부다페스트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많은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이러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2][3]
4. 1. 미술관 및 갤러리
센텐드레는 20세기 초부터 여러 세대의 헝가리 예술가들의 고향이었다. 센텐드레 예술가 콜로니는 도시 북부에서 활동했다.시각 예술의 풍부한 전통을 대표하는 많은 박물관과 현대 갤러리가 있다.
; 미술관 목록
- 마르기트 안나 - 임레 아모스 컬렉션
- 제뇌 바르차이 컬렉션
- 벨라 초벨 박물관
- 카로이 페렌치 박물관, 헝가리 모더니즘의 창시자와 그의 가족에게 헌정됨
- 야노스 크메티 박물관
- 마르기트 코바치 도자기 컬렉션
- 라요스 바이다 박물관
- 센텐드레 갤러리
- 예술가 콜로니 갤러리
- 아트밀[2]
; 현대 갤러리 목록
4. 2. 헝가리 야외 박물관 (스칸젠)
5. 인구
18세기 센텐드레는 세르비아인이 다수였으나, 19세기에는 출산율 저하로 인해 소수 민족으로 감소했다.[10] 이후 독일인이 증가했지만, 19세기 말부터 헝가리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다른 민족들은 동화되거나 소수 민족으로 남게 되었다.
연도 | 인구 |
---|---|
1870 | 4,683 |
1880 | 4,229 |
1890 | 4,260 |
1900 | 4,822 |
1910 | 5,673 |
1920 | 5,877 |
1930 | 7,210 |
1941 | 9,651 |
1949 | 9,283 |
1960 | 10,466 |
1970 | 13,008 |
1980 | 16,901 |
1990 | 19,351 |
2001 | 22,747 |
2011 | 25,963 |
오늘날 센텐드레에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독일, 폴란드인 소수 민족 자치 정부가 활동하고 있다.
5. 1. 민족 구성 (2001년)
2001년 센텐드레의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4]- 헝가리인 - 92.3%
- 독일인 - 1%
- 슬로바키아인 - 0.6%
- 로마인 - 0.5%
- 세르비아인 - 0.4%
- 기타 - 1%
- 무응답, 불명 - 4.2%
18세기 센텐드레는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19세기에는 한 자녀 가족 모델의 영향으로 소수 민족으로 감소했다.[4] 민족 독일인도 세르비아 공동체를 따라 감소했다. 19세기 말에는 빠르게 증가하는 헝가리인이 지배적인 민족 집단이 되었고, 동화된 독일인과 남아있는 세르비아인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센텐드레에는 22,747명의 주민이 있었는데, 그 중 21,001명이 헝가리인, 225명이 독일인, 100명만이 세르비아인이었다.[4]
5. 2. 종교 분포 (2001년)
6. 교통
센텐드레는 1888년에 개통된 BHÉV 철도의 5호선으로 부다페스트와 연결된다. 이 전철 노선은 센텐드레와 Batthyány 광장 지하철역(부다페스트) 사이를 Békásmegyer를 경유하여 자주 운행한다.
7. 국제 관계
센텐드레는 여러 나라의 도시들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5]
7. 1. 자매 도시
센텐드레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5]국가 | 도시 |
---|---|
프랑스 | 바르비종 |
영국 | 고드만체스터 |
베트남 | 호이안 |
영국 | 헌팅던 |
세르비아 | 크루셰바츠 |
프랑스 | 살롱드프로방스 |
크로아티아 | 스타리 그라드 |
루마니아 | 터르구세쿠이에스크 |
핀란드 | 우시카우푸키 |
독일 | 베르트하임 |
루마니아 | 잘러우 |
폴란드 | 칼리시[11] |
8. 주요 인물
이름 | 설명 |
---|---|
벌라 아파티 아브카로비치 | 세르비아 출신의 헝가리 화가로, 센텐드레에서 거주하며 작업했다. |
요반 아바쿠모비치 | 계몽 시대인 1748년 센텐드레에서 태어났으며, 세르비아어 방언으로 시를 썼다. |
야코프 이그냐토비치 | 19세기 세르비아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 |
이슈트반 레괴시 | 헝가리 화가이자 예술가. |
가브릴 스테파노비치 벤클로비치 | 18세기 초 세르비아 시인이자 교회 성상 화가. |
카티 울프 | 2011년 유로비전 헝가리 대표. |
바토리 졸탄 | 파이브 핑거 데스 펀치의 기타리스트. |
비켄티예 요바노비치 | |
에브겐 듀므카 | |
보즈다 옐레나 | |
아바쿰 아바쿠모비치 | |
시마 이그냐토비치 | |
파블레 소프리치 | |
베라 아파치 아브칼로비치 | 세르비아계 헝가리인으로 센텐드레에 거주하며 생활했다. |
참조
[1]
웹사이트
The Witcher Filming Locations Guide: Where was The Witcher filmed?
https://www.atlasofw[...]
Atlas of Wonders
2019-12-26
[2]
웹사이트
Szentendrei Kulturális Központ
http://www.szentendr[...]
2017-10-19
[3]
웹사이트
Gandalf.interpont.hu
http://www.artunio.h[...]
2008-01-23
[4]
웹사이트
Illyés Gyula Pusztulás - Népesedési honlap
http://nepesedes.hu/[...]
2017-10-19
[5]
웹사이트
Testvérvárosaink
https://szentendre.h[...]
Szentendre
2024-06-04
[6]
서적
Die Čiprovecer in Ungarn
ELTE Szláv Intézet
[7]
문서
Dr. Dušan J. Popović, Srbi u Vojvodini, knjiga 2, Novi Sad, 1990.
[8]
링크
http://www.szentendr[...]
2023-01
[9]
링크
http://www.artunio.h[...]
2023-01
[10]
웹사이트
Illyés Gyula: Pusztulás ("Dissolution"), 1933
http://nepesedes.hu/[...]
[11]
웹사이트
Kalisz Official Website - Twin Towns
http://www.kalisz.pl[...]
Urząd Miejski Kalisz
2008-11-2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