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리 댄
1. 개요
스틸리 댄은 1972년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로,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가 핵심 멤버였다. 록을 기반으로 재즈, R&B,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며, 정교한 편곡과 완벽주의적인 레코딩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 후반 《Aja》, 《Gaucho》 등의 앨범으로 상업적 성공과 평론적 호평을 동시에 얻었으며, 1981년 해체 후 1993년 재결성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 월터 베커의 사망 이후에도 도널드 페이건을 중심으로 투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결성지 | 뉴욕주애넌데일온허드슨 |
|---|---|
| 장르 | 재즈 록 요트 록 소프트 록 팝 재즈 퓨전 |
| 활동 기간 | 1971년–1981년 1993년–현재 |
| 레이블 | ABC MCA 자이언트 리프라이즈 워너 브라더스 |
| 관련 활동 | 제이 앤 아메리칸스 두비 브라더스 뉴욕 록 앤 소울 리뷰 듀크스 오브 셉템버 리듬 리뷰 토토 래리 칼턴 |
| 웹사이트 | steelydan.com |
| 현재 멤버 | 도널드 페이건 with 캐서린 러셀 캐롤린 레온하트 마이클 레온하트 존 헤링턴 짐 퓨 로저 로젠버그 월트 와이스코프 키스 칼록 프레디 워싱턴 라 타냐 홀 애덤 로저스 |
| 이전 멤버 | 월터 베커 제프 백스터 데니 디아스 짐 호더 데이비드 파머 로이스 존스 마이클 맥도널드 제프 포카로 스틸리 댄 멤버 목록 참고 |
-
1993년 재결성된 음악 그룹 -
서바이버 (밴드)
서바이버는 1978년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로, 1982년 영화 《록키 3》 주제가 "Eye of the Tiger"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멤버 교체와 법적 분쟁, 보컬 지미 제이미슨의 사망 등 부침을 겪었으며 "Burning Heart", "I Can't Hold Back" 등의 대표곡이 있다. -
1993년 재결성된 음악 그룹 -
디오 (밴드)
로니 제임스 디오가 결성한 미국의 헤비 메탈 밴드 디오는 판타지 요소를 결합한 스타일과 "Rainbow in the Dark", "Holy Diver"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하며, 그의 사후에는 디오의 음악을 기리는 두 밴드가 결성되었다. -
1972년 결성된 음악 그룹 -
ABBA
ABBA는 아그네타 팰츠코그, 아니-프리드 륀그스타, 비요른 울바에우스, 베니 안데르손으로 구성된 스웨덴 팝 그룹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과 세계적인 히트곡들을 통해 1970년대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2016년 활동을 재개하여 새로운 음반 발매 및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
1972년 결성된 음악 그룹 -
더 잼
1972년 결성되어 1982년 해체된 영국의 록 밴드 더 잼은 폴 웰러를 중심으로 모드 문화와 펑크 록을 결합한 음악, 사회 비판적인 가사, 에너지 넘치는 공연으로 인기를 얻으며 "In the City", "The Eton Rifles", "Going Underground", "Town Called Malice" 등의 히트곡과 6장의 정규 앨범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
뉴욕주 출신 음악 그룹 -
디오 (밴드)
로니 제임스 디오가 결성한 미국의 헤비 메탈 밴드 디오는 판타지 요소를 결합한 스타일과 "Rainbow in the Dark", "Holy Diver"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하며, 그의 사후에는 디오의 음악을 기리는 두 밴드가 결성되었다. -
뉴욕주 출신 음악 그룹 -
엑스 앰배서더스
엑스 앰배서더스는 2009년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로, 샘 해리스, 케이시 해리스, 아담 레빈, 노아 펠드슈로 구성되었으며 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 팝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며 "Renegades", "Unsteady", "Jungle" 등의 대표곡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 역사
스틸리 댄의 역사는 여러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67년 뉴욕주 앤넌데일온허드슨에 있는 바드 칼리지에서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가 만나면서 밴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고, 여러 지역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브루클린으로 이주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제이 앤 더 아메리칸스의 투어 밴드에 합류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앨범에 곡을 수록했고, 게리 카츠의 도움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ABC 레코드의 전속 작곡가로 고용되었다.
1972년 데뷔 앨범 《Can't Buy a Thrill》을 발표하고, 싱글 〈Do It Again〉이 미국에서 6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었다. 1973년에는 2집 《엑스터시》, 1974년에는 3집 《프레첼 로직》을 발표했다. 〈Rikki Don't Lose That Number〉는 미국에서 4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라이브 활동에 대한 멤버 간의 갈등과 밴드의 연주력 차이로 인해 1974년 라이브 활동을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틸리 댄은 세션 뮤지션들을 적극 기용하며 더욱 정교한 사운드를 추구했다. 1975년 4집 《Katy Lied》, 1976년 5집 《The Royal Scam》, 1977년 6집 《Aja》를 발매하며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Aja》는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고,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80년에는 7집 《Gaucho》를 발매했다.
1981년 6월, 스틸리 댄은 해체되었고, 베커는 마우이로 이주, 페이건은 솔로 앨범 The Nightfly를 발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차이나 크라이시스와 로지 벨라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협업을 이어갔다.
1993년 월터 베커가 도널드 페이건의 솔로 앨범 《Kamakiriad》를 프로듀싱하면서 재결성되었고, 투어와 라이브 앨범 《Alive in America》 발매, 2000년 정규 앨범 《Two Against Nature》, 2003년 정규 앨범 《Everything Must Go》를 발매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Two Against Nature》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7년 9월 3일 월터 베커가 식도암으로 사망했지만, 도널드 페이건은 밴드 활동을 지속하며 스틸리 댄의 음악을 이어가고 있다.
2.1. 결성 이전 (1967-1971)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는 1967년 뉴욕주 앤넌데일온허드슨에 있는 바드 칼리지에서 만났다. 페이건은 베커가 일렉트릭 기타를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그에게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다. 둘은 비슷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돈 파겐 재즈 트리오, 배드 록 그룹, 레더 카나리 등의 지역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레더 카나리에는 훗날 코미디 스타가 된 체비 체이스가 드럼 연주자로 참여했다.
1969년 파겐이 졸업한 후, 둘은 브루클린으로 이사하여 미드타운 맨해튼의 브릴 빌딩에서 자신들의 곡을 팔려고 했다. 케니 밴스(제이 앤 더 아메리칸스)가 그들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고, 저예산 영화 You've Got to Walk It Like You Talk It or You'll Lose That Beat의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베커와 파겐은 약 1년 반 동안 제이 앤 더 아메리칸스의 투어 밴드에 합류했다. 이 그룹의 리드 싱어인 제이 블랙은 베커와 파겐을 "록큰롤계의 맨슨과 스타크웨더"라고 불렀다. (\[\[찰스 맨슨]]과 찰스 스타크웨더는 묻지마 살인범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971년 그녀의 앨범 Barbra Joan Streisand에 그들의 곡 "I Mean to Shine"을 수록했다. 이후 게리 카츠가 ABC 레코드의 전속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베커와 파겐을 전속 작곡가로 고용했고,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2.2. 결성 및 초기 활동 (1972-1974)
1972년 데뷔 앨범 《Can't Buy a Thrill》을 발표했으며, 여기서 싱글로 발매된 〈Do It Again〉은 미국에서 6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프로 뮤지션으로서 라이브 활동은 필수적이었지만,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원했던 베커와 페이건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라이브를 싫어했다. 이는 곧 다른 멤버들과의 갈등을 낳았고, 작품을 거듭할수록 이상으로 하는 사운드와 밴드의 연주력 차이가 분명해지자, 멤버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외부 스튜디오 뮤지션을 적극 기용하면서 밴드로서의 일체감은 사라져 갔다.
1973년에는 2집 앨범 《엑스터시》를 발표했다.
1974년에는 3집 앨범 《프레첼 로직》을 발표, 여기서 싱글 컷된 〈Rikki Don't Lose That Number〉는 미국에서 4위를 기록하며 스틸리 댄의 싱글 중 최대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미 이때 밴드 형태는 붕괴 직전이었으며, 같은 해에 제프 벅스터와 짐 호더는 해고되었고, 라이브 활동을 중단했다(데이비드 파머는 이미 해고된 상태였다). 이 해의 라이브에는 마이클 맥도널드와 제프 포카로가 투어 멤버로 참가했다.
2.3. 스튜디오 중심 활동 및 전성기 (1974-1980)
1974년, 스틸리 댄은 잦은 투어와 멤버 간의 갈등으로 인해 라이브 활동을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션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추구했다.
1975년에는 4집 《Katy Lied》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제프 포카로, 데이비드 페이치, 마이클 맥도널드는 물론 엘리엇 랜달, 필 우즈, 윌튼 펠더, 빅터 펠드먼, 마이클 오마티안, 래리 칼튼 등 다양한 세션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Black Friday〉와 〈Bad Sneakers〉의 인기에 힘입어 골드를 기록했지만, 밴드 멤버들은 앨범의 사운드에 불만을 품었다.
1976년에는 5집 《The Royal Scam》을 발매했다. 래리 칼튼의 기타 연주와 버나드 퍼디의 드럼 연주가 돋보이는 이 앨범은 미국에서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영국에서는 싱글 〈Haitian Divorce〉(Top 20)의 인기에 힘입어 스틸리 댄의 첫 번째 주요 히트곡이 되었다.
1977년에는 6집 《Aja》를 발매하여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 이 앨범은 발매 3주 만에 미국 차트 5위 안에 들었고, "최우수 엔지니어링 레코딩 - 비클래식" 부문에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최초의 미국 LP 중 하나가 되었다. 마이클 맥도널드의 백 보컬이 참여한 〈Peg〉(11위)를 시작으로, 〈Josie〉(26위)와 〈Deacon Blues〉(19위)가 연이어 히트했다. 《Aja》에는 래리 칼튼, 리 리테너, 척 레인, 웨인 쇼터, 피트 크리스틀립, 톰 스콧, 스티브 개드, 릭 마로타, 버나드 퍼디, 조 샘플, 빅터 펠드먼, 마이클 오마티안 등 재즈 및 퓨전 거장들이 참여했다.
Aja의 성공 이후, 베커와 페이겐은 영화 FM의 주제가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주제가는 히트하여 스틸리 댄은 또 다른 엔지니어링 그래미상을 받았다.
1980년에는 7집 《Gaucho》를 발매했다. 앨범 제작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Hey Nineteen〉(1981년 초 팝 차트 10위)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성공을 이어갔다. 〈Time Out of Mind〉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러가 참여)는 봄에 중간 정도의 히트를 기록했다. 로저 니콜스는 이 음반 작업으로 세 번째 엔지니어링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2.4. 해체 및 솔로 활동 (1981-1993)
스틸리 댄은 1981년 6월에 해체되었다. 베커는 마우이로 이주하여 "아보카도 농부이자 자칭 동시대 비평가"가 되었다. 그는 경력 대부분 동안 사용했던 마약을 끊었다. 한편, 페이건은 솔로 앨범 The Nightfly(1982)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20위 안에 드는 히트곡 "I.G.Y. (What a Beautiful World)"를 만들어냈다. 이 앨범은 3M제 32트랙 디지털 멀티트랙 레코더를 사용한 음향 면의 퀄리티도 절찬을 받아 한때 PA 엔지니어의 사운드 체크 정석이 될 정도로 "소리가 좋은 앨범"이라고 불렸다.
1988년 페이건은 밝은 불빛, 큰 도시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사운드트랙을 위한 노래를 썼지만, 그 외에는 거의 녹음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베커처럼 다른 아티스트들을 위해 프로듀싱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베커가 스틸리 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영국의 소피스티-팝 그룹 차이나 크라이시스를 위해 프로듀싱한 두 개의 앨범이었다. 베커는 이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인 1985년의 Flaunt the Imperfection에서 차이나 크라이시스의 공식 멤버로 등재되어 있으며, 두 번째 앨범인 1989년의 Diary of a Hollow Horse에서는 프로듀서로만 등재되어 있다.
1986년 베커와 페이건은 게리 카츠가 프로듀싱한 전직 모델 로지 벨라의 앨범 Zazu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1986년과 1987년 사이에 우정을 다시 불태우며 작곡 세션을 가졌지만, 그 결과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1991년 10월 23일, 베커는 페이건과 프로듀서 겸 가수 리비 타이투스 (오랫동안 더 밴드의 레본 헬름의 파트너였으며, 나중에 페이건의 아내가 됨)가 공동 설립한 뉴욕 록 앤 소울 리뷰의 콘서트에 참석하여 즉흥적으로 그룹과 함께 공연했다.
1993년에 베커는 페이건의 두 번째 솔로 앨범 Kamakiriad를 프로듀싱했다. 페이건은 이 앨범을 The Nightfly의 속편으로 구상했다.
2.5. 재결성 및 활동 재개 (1993-2017)
1993년, 도널드 페이건의 솔로 앨범 《Kamakiriad》를 월터 베커가 프로듀싱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재결성한 스틸리 댄은 투어를 시작했고, 1995년에는 이 투어의 녹음본을 모아 라이브 앨범 《Alive in America》를 발매했다. 2000년에는 20년 만에 스틸리 댄 명의의 정규 앨범 《Two Against Nature》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4개 부문을 수상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에는 정규 앨범 《Everything Must Go》를 발매했고, 이후로도 스틸리 댄은 꾸준히 투어와 공연을 이어갔다.
2.6. 월터 베커 사망 이후 (2017-현재)
2017년 9월 3일, Walter Becker영어가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델리아에 따르면, 암은 매년 받던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으나, 급격히 진행되어 발견 후 4개월도 안 되어 사망했다. 도널드 페이건은 추도 성명에서 대학 시절부터 오랜 친구이자 밴드 동료였던 베커를 회상하며, 스틸리 댄의 음악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베커 사망 후, 페이건은 밴드 활동을 지속했다. 베커 사후 첫 투어는 2017년 10월 13일, 오클라호마주 터커빌 공연에서 시작했으며, 두비 브라더스와의 합동 공연을 영국에서 3회 개최했다.
2019년 가을, 미국 동해안 투어에서 『건물 속의 녹턴』, 『아자』, 『가우초』, 『나이트플라이』 앨범 전곡을 재현하는 공연을 했다.
3. 음악 스타일 및 특징
스틸리 댄의 음악은 록을 기반으로 재즈, R&B,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것이 특징이다. 정교한 편곡과 연주, 특히 혼 섹션을 활용하며, 트롬본, 트럼펫, 색소폰을 주로 사용하고 플루트, 클라리넷도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객원 편곡자를 기용했고, 후기에는 페이건이 편곡을 맡았다.
래리 칼턴, 리 리테너, 척 레인, 웨인 쇼터, 피트 크리스틀립, 톰 스콧, 스티브 개드, 릭 마로타, 버나드 퍼디, 조 샘플, 빅터 펠드먼, 마이클 오마티안 등 스튜디오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완벽주의적인 레코딩을 추구했다.
마이클 맥도널드가 참여한 곡 외에는 거의 항상 소울의 영향을 받은 여성 코러스가 백 보컬을 맡았다. 베네타 필즈, 셜리 매튜스, 클라이디 킹이 대표적인 백 보컬 트리오였다.
"뮤 메이저" 코드를 비롯한 독특한 코드 진행과 화성을 사용하는데, 베커는 1989년 인터뷰에서 메이저 코드를 "재즈 코드"로 만들지 않으면서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이 코드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가사는 냉소적이고 난해하며, 종종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마약, 성 (性), 범죄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또한, 미묘하고 암호화된 레퍼런스, 특이한 속어 표현, 다양한 "말장난"을 사용한다.
4. 구성원
스틸리 댄은 1972년부터 활동한 미국의 록 밴드로,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잦은 멤버 교체를 겪었지만, 페이건과 베커는 밴드의 핵심으로 활동하며 스틸리 댄의 음악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1974년까지 데이비드 파머(보컬), 데니 디아스(기타), 제프 벅스터(기타), 짐 호더(드럼, 보컬) 등이 초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로이스 존스(보컬), 마이클 맥도날드(키보드), 제프 포카로(드럼) 등이 잠시 밴드를 거쳐갔다.
2017년 월터 베커가 식도암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도널드 페이건은 현재까지 유일한 원년 멤버로 남아 밴드를 이끌고 있다. 베커의 사망 이후, 페이건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스틸리 댄 밴드와 함께 우리가 함께 만든 음악을 계속 살려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스틸리 댄은 도널드 페이건을 중심으로, 여러 투어 연주자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4.1. 현재 구성원
* 도널드 페이건 – 리드 보컬, 키보드 (1972년–1981년, 1993년–현재)
현재 투어 연주자
| 이름 | 악기 | 활동 기간 |
|---|---|---|
| 캐서린 러셀 | 백 보컬 | 1993년–1996년, 2008년–2013년, 2018년–현재 |
| 캐롤린 레온하트 | 백 보컬 | 1996년–현재 |
| 마이클 레온하트 | 트럼펫, 관악기 편곡 | 1996년–현재 |
| 존 헤링턴 | 기타, 백 보컬, 음악 감독 | 1999년–현재 |
| 짐 퓨 | 트롬본 | 2000년–현재 |
| 로저 로젠버그 | 바리톤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 2000년–현재 |
| 월트 와이스코프 | 테너 색소폰 | 2002년–현재 |
| 키스 칼록 | 드럼, 퍼커션 | 2003년–현재 |
| 프레디 워싱턴 | 베이스 | 2006년–현재 |
| 라 타냐 홀 | 백 보컬 | 2018년–현재 |
| 애덤 로저스 | 기타 | 2022년–현재 |
4.2. 이전 구성원
* 제프 벅스터 – 기타 (1972년–1974년)
* 데니 디아스 – 기타 (1972년–1974년)
* 짐 호더 – 드럼, 보컬 (1972년–1974년) ※1990년 사망.
* 데이비드 팔머 – 보컬 (1972년–1973년)
* 로이스 존스 – 보컬 (1973년, 1974년)
* 마이클 맥도날드 – 키보드 (1974년)
* 제프 포카로 – 드럼 (1974년) ※1992년 사망.
4.3. 현재 투어 연주자
| 이름 | 악기 | 활동 기간 |
|---|---|---|
| 캐서린 러셀 | 백 보컬 | |
| 캐롤린 레온하트 | 백 보컬 | |
| 마이클 레온하트 | 트럼펫, 관악기 편곡 | |
| 존 헤링턴 | 기타, 백 보컬, 음악 감독 | |
| 짐 퓨 | 트롬본 | |
| 로저 로젠버그 | 바리톤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 | |
| 월트 와이스코프 | 테너 색소폰 | |
| 키스 칼록 | 드럼, 퍼커션 | |
| 프레디 워싱턴 | 베이스 | |
| 라 타냐 홀 | 백 보컬 | |
| 애덤 로저스 | 기타 |
5. 음반 목록
스틸리 댄은 1972년 데뷔 앨범 Can't Buy a Thrill을 발매한 이후, 2003년 Everything Must Go까지 총 9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2000년에는 20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인 Two Against Nature를 발매하여 그래미 상 4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3년에 발매된 Everything Must Go는 라이브 느낌을 담아내려 노력했으며, 이전 작품들과 달리 세션 뮤지션의 참여가 적었다.
스틸리 댄의 앨범들은 '따뜻하고' '건조한' 프로덕션 사운드와, 에코 및 잔향의 절제된 사용으로 특징지어진다.
5.1. 정규 음반
* Can't Buy a Thrill (1972)
* Countdown to Ecstasy (1973)
* Pretzel Logic (1974)
* Katy Lied (1975)
* The Royal Scam (1976)
* Aja (1977)
* Gaucho (1980)
* Two Against Nature (2000)
* Everything Must Go (2003)
5.2. 라이브 음반
* Alive in America (Giant, 1995년) ※1994년 8월 ~ 9월 녹음, US #40
* Two Against Nature - Steely Dan's Plush TV Jazz-Rock Party In Sensuous Surround Sound (2000년) ※VHS, DVD-Video
* Northeast Corridor: Steely Dan Live! (Universal Music, 2021년)
5.3. 컴필레이션 음반
| 제목 | 발매일 | 비고 |
|---|---|---|
| Greatest Hits | 1978년 | 미국 #30 |
| Steely Dan | 1978년 | 일본 한정판 |
| Gold | 1982년 | 미국 #115 |
| A Decade of Steely Dan | 1985년 | |
| The Very Best of Steely Dan: Reelin' In the Years | 1985년 | |
| Remastered: The Best of Steely Dan – Then and Now | 1993년 | |
| Citizen Steely Dan | 1993년 | 박스 세트 |
| Showbiz Kids: The Steely Dan Story, 1972–1980 | 2000년 | |
| Steely Dan: The Definitive Collection | 2006년 | 미국 #92 |
| 20th Century Masters –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Steely Dan | 2007년 |
6. 영향 및 평가
스틸리 댄은 1970년대 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로, 재즈와 록의 융합을 시도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과 높은 수준의 연주 실력은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2000년에 발매된 앨범 투 어게인스트 네이처(Two Against Nature)는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4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들의 음악적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이 앨범은 에미넴(Eminem)의 더 마셜 매더스 LP(The Marshall Mathers LP)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키드 A(Kid A)와 같은 쟁쟁한 앨범들을 제치고 수상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2001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록 음악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스틸리 댄의 가사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이야기나 상황에 참여하는 허구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이들의 가사는 종종 수수께끼 같아서, 반복해서 들으며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해독하고 가사 속 레퍼런스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유도한다. 재즈는 반복되는 주제이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얻은 "Home at Last"(Aja 앨범 수록)와 같이, 수많은 영화, 텔레비전, 문학적 레퍼런스와 암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