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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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숭배는 특정 대상에 대한 존경, 헌신, 숭앙을 표현하는 행위 또는 신념 체계를 의미한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자연, 하늘, 일월성신, 고산대천, 동물, 식물, 수목, 암석, 신명, 영혼, 정령 등을 숭배했으며, 이러한 숭배는 민간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민간 신앙은 생기, 풍수, 음양오행, 도참, 천지개벽, 심령개벽 신앙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또한,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시크교, 위카, 조로아스터교 등 외래 종교에서도 숭배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적 숭배 외에도 브랜드, 스포츠 팀, 유명인 등에 대한 숭배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민간 신앙에서 '영(靈)'은 밝고 견고하며 보이지 않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 '생령(生靈)'과 '사령(死靈)'으로 나뉜다. 생령은 살아 있는 사람 속에 있는 영을, 사령은 죽은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사령은 육체가 죽으면 현세에서 떠돌아다니거나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믿어진다.
2. 한국의 전통 숭배
2. 1. 자연 숭배
고대 한국 사회에서 하늘(天), 해와 달, 별(日月星辰), 산, 물 등 자연물은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이러한 자연 숭배는 한국인의 세계관과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하늘 숭배 ===
'천(天)'은 고대(高大)하고 원유(遠幽)한 거리와 그 불변성(不變性)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신성(信誠)의 대상이 되어 있다. 신성의 대상이 되면 거리감각 때문에 사람과 혼합될 수 없으며 사람과 통할 수 없는 천기(天機)를 가진 존재가 된다. 그 천기는 첫째로, "하늘이 낳으신바 알이 화하여 성군(聖君)이 되니…"이나 "금색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그 궤짝을 열어 보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했다는 설화에도 보이듯이 민중에게 있어서 인간생명을 간직하고 그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또 천은 단군신화가 보여주듯이 농사·생명·형벌·선악이나 인간 360여 일들을 모두 주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저히 침해할 수 없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런 신성이 사람들에게 침해당할 때에 기상의 변화나 동물·조류 등의 갑작스러운 출현 등 이변적(異變的)인 방법을 써서 사람들의 자책을 바란다. 이런 천이기는 하나 지성(至誠)에 감천(感天)하는 천(天)이다. 덕을 쌓거나 치성을 다하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또 천은 도교나 불교와 같은 외래 종교신앙의 영향을 받아 36천이니 33천이니 하거나 혹은 상천(上天)·중천(中天)·하천(下天)이라 하여 계층화된다.
=== 일월성신 숭배 ===
궂은 것을 기피하고 양달진 것을 찾는 마음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월성신에 투사되어 그것들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일월성신은 '둥근 해를 품에 품어 성종의 어머니 한씨가 성종을 잉태하였다'는 기록에 보이는 바와 같이 수태하는 주력(呪力)을 갖고 있으며, 무경(巫經)에서는 일월성신의 빛을 간직한 사람은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연중(年中)에 하는 일에 실패를 보지 않는다. 무당은 일월명도(日月明圖)란 신경(神鏡)을 갖고 있는데 태아의 이목구비를 그 거울로써 조정하여 바르게 한다. 아이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일월명도의 신경이 잘못 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이목구비는 일월성신 중의 별성신(別星神)에게 부탁하여 그 들고 있는 신경을 다시 비춰 주면 조정된다. 그것을 빌기 위해서 새벽 해가 뜨기 전에 하늘 별을 향해서 정화수를 떠놓고 경배한다. 그리고 아들의 장수(長壽)를 위해서 어머니는 신장(神將)에게 '일월성신 소림(昭臨)하여 연년(延年) 익수다호년(益壽多好年)'이라고 말하면서 빈다. 일월(日月)은 성신(聖神)인데 모두 남자이며, 일신(日神)의 비(妃)를 일아지씨(日阿只氏), 월신의 비를 월아지씨(月阿只氏)라고 부른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때 동해에 연오랑(延烏郞)·세오녀(細烏女)의 부부가 있었는데 일(日)의 정(精)과 월(月)의 정이었다. 이들이 없으면 세계는 암흑이 되었다. 또 햇빛은 수태(受胎)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고구려의 유화(柳花)라는 여인은 방에 갇힌 몸인데도 햇빛이 들어와서 여인이 피하면 피하는 곳을 따라가 비추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잉태케 하여 알을 낳게 하였는데 그 알 속에서 주몽(朱夢)이라는 활을 잘 쏘는 아이가 출생하였다. 강원도의 옛 풍속에 후산(後産)이 없을 때는 콩(大豆) 한 알을 두 개로 잘라 한 쪽에 일(日)자를 쓰고 또 한 쪽에 월(月)자를 쓴 다음 그 콩을 산부(産婦)에게 먹이면 후산을 한다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일월의 결합에 의해서 주력(呪力)을 전도(傳導)하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고려조는 태일성(太一星)·토요성(土曜星)·남북두성과 12궁성(十二宮星)에 초제(醮祭)를 올렸다. 이와 같이 별은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졌다.
=== 고산대천 숭배 ===
옛 기록에 의하면 높은 산은 태령산(胎靈山)으로서 민간에게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신산(神山)으로 불린다. 산에는 수혈(隧穴)이 있는데, 강화도 마니산에 혈구(穴口)가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도 신을 맞이하는 수혈이 있다고 한다. 신산(神山)의 동쪽 양달에는 구멍이 있어서 산신이 내려왔다 하늘로 올라간다. 평양의 기린굴도 산신이 내리는 것을 맞이하는 곳이다. 묘향산의 금강굴, 의성에 있는 성산(聖山)의 빙혈(氷穴) 등은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이자 산신의 거처이다. 경주 석굴암도 본래 부부봉(夫婦峰)의 석굴로서 좌우의 산줄기가 땅에 이르러 서로 맞닿는 곳에 굴이 있다.
고산(高山)은 노고(老姑)·성모(聖母)·신모(神母)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여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지리산에 천왕봉성모(天王峰聖母), 경주의 서술성모(西述聖母)·치술성모나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등이 있다. 산이 여성으로 상징되는 것은 민간신앙에서 산이 하나의 젖(乳房)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산 중에서 다섯 산을 골라 신산으로 믿기도 하였다.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중앙의 삼각산, 서쪽의 송악산, 북의 장백산 등 5악(五嶽)이 신산이었고, 오늘날에도 한 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있는 다섯 산을 신산으로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 또 3산(三山), 즉 백두산·지리산·한라산이 신산이다. 이 3산의 와전으로인지 신산을 산신(産神)이라 하여 아이를 베풀어 주는 산으로 삼기도 한다.
신라 경종 때에 3산 5악신(三山五嶽神)에 제(祭)하였다. 3산신으로 중국식에 따라 봉래산·방장산·영주산을 정하고, 5악신으로서는 동쪽은 토함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은 북악(北岳:大岳)으로 정했다. 고려는 덕적산·백악산·송악산·목멱산의 산신에 매년 춘추에 봄 가을에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제사했다. 이조에 와서는 4악신(岳神)으로서 지리산·삼각산·송악산·미백산이 정해졌다. 나라에서 제사한 치악산·죽령·주흘산·금성산·우이산·마니산·한라산·감악산·백두산·의관령 등에 단을 만들고 사흘 동안 사당을 짓고 신위(神位)를 두었다. 신좌(神座)는 북남향으로 하고 중춘·중추로 두 번 나라에서 백성의 한재·수재·병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각 주읍에 진산(鎭山)을 정하고 산신당을 지어 진호신(鎭護神)을 모시고 춘추와 정초에 제사하였다. 개성의 덕물산(德物山)과 나주의 금성산(錦城山)은 남자신이 좌정(座定)하고 있기 때문에 토민(土民)들은 민간에게 처녀를 구하여 산신에게 공헌(貢獻)하는 향풍(鄕風)이 있었다. 처녀를 신령과 교구케 해서 산신을 위안하고 그 덕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신산(神山)에 신인(新人)이 있어서 신인끼리 서로 날아서 왕래하거나 산신령이 산꼭대기에서 춤을 추거나 또는 산신·지백·급간이 나타나서 산신가를 부르기도 했다. 산신은 때때로 왕장(王將)이나 영웅 또는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인격화되거나, 때로는 호랑이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산신당 내에 모셔지고 있는 신위는 도포를 입고 범을 타고 있거나 깔고 앉아 있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의 화상(畵像)이다. 범도 산군(山君)이란 이명(異名)을 갖고 있으며 산신의 사자(使者)로 알려지고 산신도 된다.
물은 강이나 바다·연못·우물과 상통되어서 숭배되었고 오늘날도 역시 숭신(崇信)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은 물귀신 또는 수구 혹은 수옹(水翁)으로 호칭되는 외에 용왕·용신·용궁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물은 생명수로서 위력과 주력을 갖는데 특히 약수가 그렇다. 여름이나 가을에 약수터에서 약수(신수라고 부름)로써 쌀을 씻어서 제솥(祭釜)에 넣어 마시고 음식을 수구에 바치며 치병장수(治病長壽)를 기원한다. 무격(巫覡)에서의 무조전설 중에 바리공주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공주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약수를 구하여 위독한 병에 걸린 부왕과 어머니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병으로부터 구제하였다. 치병으로서의 물은 오늘날 정화수(井華水)신앙을 일으켰다. 또 물은 아기를 저장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양수로 믿어지기도 했다.
물과 관련이 있는 강물은 때로는 재앙을 떨어버리는 불계의 주력을 갖는다. 박혁거세의 비(妃)가 된 알영이 계룡(鷄龍)의 옆구리로부터 나올 때 닭부리의 입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멱을 감기니 부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 가을 발천(撥川)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계로서의 강물은, 단오날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부인은 일 년 내내 재앙을 피하는 등 주력(呪力)을 준다. 웅진·덕진·압록강·두만강은 생명을 주는 물이고 재앙을 떨어주는 물이었다. 물은 또 비와 관련이 있어서 대천(大川)이나 연못이 기우제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이조 때에는 물과 관련이 있는 신으로서 천신(天神)·3해신(三海神)·7독신(七瀆神)이 있었다. 그리고 물에는 용왕이 있었다. 백제의 무왕은 어머니가 남지(南池)에서 살고 있을 때 지룡(池龍)과 교구해서 낳은 아들이다. 신라의 탈해왕도 용왕과 교구한 동해여국(東海女國)의 여신의 아들이었다.
오늘날 물은 신흥종교에서 생명수로 믿어지고 음복(飮福)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주력으로 신봉된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물로 세례를 주어 속죄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도 한다. 어부들이 출범(出帆)에 앞서 바다의 용왕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해안 도서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인데 바다는 용왕의 지배세계로 되어 있다.
2. 1. 1. 하늘 숭배
'천(天)'은 고대(高大)하고 원유(遠幽)한 거리와 그 불변성(不變性)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신성(信誠)의 대상이 되어 있다. 신성의 대상이 되면 거리감각 때문에 사람과 혼합될 수 없으며 사람과 통할 수 없는 천기(天機)를 가진 존재가 된다. 그 천기는 첫째로, "하늘이 낳으신바 알이 화하여 성군(聖君)이 되니…"이나 "금색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그 궤짝을 열어 보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했다는 설화에도 보이듯이 민중에게 있어서 인간생명을 간직하고 그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또 천은 단군신화가 보여주듯이 농사·생명·형벌·선악이나 인간 360여 일들을 모두 주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저히 침해할 수 없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런 신성이 사람들에게 침해당할 때에 기상의 변화나 동물·조류 등의 갑작스러운 출현 등 이변적(異變的)인 방법을 써서 사람들의 자책을 바란다. 이런 천이기는 하나 지성(至誠)에 감천(感天)하는 천(天)이다. 덕을 쌓거나 치성을 다하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또 천은 도교나 불교와 같은 외래 종교신앙의 영향을 받아 36천이니 33천이니 하거나 혹은 상천(上天)·중천(中天)·하천(下天)이라 하여 계층화된다.
2. 1. 2. 일월성신 숭배
궂은 것을 기피하고 양달진 것을 찾는 마음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월성신에 투사되어 그것들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일월성신은 '둥근 해를 품에 품어 성종의 어머니 한씨가 성종을 잉태하였다'는 기록에 보이는 바와 같이 수태하는 주력(呪力)을 갖고 있으며, 무경(巫經)에서는 일월성신의 빛을 간직한 사람은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연중(年中)에 하는 일에 실패를 보지 않는다. 무당은 일월명도(日月明圖)란 신경(神鏡)을 갖고 있는데 태아의 이목구비를 그 거울로써 조정하여 바르게 한다. 아이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일월명도의 신경이 잘못 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이목구비는 일월성신 중의 별성신(別星神)에게 부탁하여 그 들고 있는 신경을 다시 비춰 주면 조정된다. 그것을 빌기 위해서 새벽 해가 뜨기 전에 하늘 별을 향해서 정화수를 떠놓고 경배한다. 그리고 아들의 장수(長壽)를 위해서 어머니는 신장(神將)에게 '일월성신 소림(昭臨)하여 연년(延年) 익수다호년(益壽多好年)'이라고 말하면서 빈다. 일월(日月)은 성신(聖神)인데 모두 남자이며, 일신(日神)의 비(妃)를 일아지씨(日阿只氏), 월신의 비를 월아지씨(月阿只氏)라고 부른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때 동해에 연오랑(延烏郞)·세오녀(細烏女)의 부부가 있었는데 일(日)의 정(精)과 월(月)의 정이었다. 이들이 없으면 세계는 암흑이 되었다. 또 햇빛은 수태(受胎)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고구려의 유화(柳花)라는 여인은 방에 갇힌 몸인데도 햇빛이 들어와서 여인이 피하면 피하는 곳을 따라가 비추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잉태케 하여 알을 낳게 하였는데 그 알 속에서 주몽(朱夢)이라는 활을 잘 쏘는 아이가 출생하였다. 강원도의 옛 풍속에 후산(後産)이 없을 때는 콩(大豆) 한 알을 두 개로 잘라 한 쪽에 일(日)자를 쓰고 또 한 쪽에 월(月)자를 쓴 다음 그 콩을 산부(産婦)에게 먹이면 후산을 한다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일월의 결합에 의해서 주력(呪力)을 전도(傳導)하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고려조는 태일성(太一星)·토요성(土曜星)·남북두성과 12궁성(十二宮星)에 초제(醮祭)를 올렸다. 이와 같이 별은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졌다.
2. 1. 3. 고산대천 숭배
옛 기록에 의하면 높은 산은 태령산(胎靈山)으로서 민간에게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신산(神山)으로 불린다. 산에는 수혈(隧穴)이 있는데, 강화도 마니산에 혈구(穴口)가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도 신을 맞이하는 수혈이 있다고 한다. 신산(神山)의 동쪽 양달에는 구멍이 있어서 산신이 내려왔다 하늘로 올라간다. 평양의 기린굴도 산신이 내리는 것을 맞이하는 곳이다. 묘향산의 금강굴, 의성에 있는 성산(聖山)의 빙혈(氷穴) 등은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이자 산신의 거처이다. 경주 석굴암도 본래 부부봉(夫婦峰)의 석굴로서 좌우의 산줄기가 땅에 이르러 서로 맞닿는 곳에 굴이 있다.
고산(高山)은 노고(老姑)·성모(聖母)·신모(神母)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여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지리산에 천왕봉성모(天王峰聖母), 경주의 서술성모(西述聖母)·치술성모나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등이 있다. 산이 여성으로 상징되는 것은 민간신앙에서 산이 하나의 젖(乳房)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산 중에서 다섯 산을 골라 신산으로 믿기도 하였다.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중앙의 삼각산, 서쪽의 송악산, 북의 장백산 등 5악(五嶽)이 신산이었고, 오늘날에도 한 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있는 다섯 산을 신산으로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 또 3산(三山), 즉 백두산·지리산·한라산이 신산이다. 이 3산의 와전으로인지 신산을 산신(産神)이라 하여 아이를 베풀어 주는 산으로 삼기도 한다.
신라 경종 때에 3산 5악신(三山五嶽神)에 제(祭)하였다. 3산신으로 중국식에 따라 봉래산·방장산·영주산을 정하고, 5악신으로서는 동쪽은 토함산, 남은 지리산, 서는 계룡산, 북은 태백산, 중은 북악(北岳:大岳)으로 정했다. 고려는 덕적산·백악산·송악산·목멱산의 산신에 매년 춘추에 봄 가을에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제사했다. 이조에 와서는 4악신(岳神)으로서 지리산·삼각산·송악산·미백산이 정해졌다. 나라에서 제사한 치악산·죽령·주흘산·금성산·우이산·마니산·한라산·감악산·백두산·의관령 등에 단을 만들고 사흘 동안 사당을 짓고 신위(神位)를 두었다. 신좌(神座)는 북남향으로 하고 중춘·중추로 두 번 나라에서 백성의 한재·수재·병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각 주읍에 진산(鎭山)을 정하고 산신당을 지어 진호신(鎭護神)을 모시고 춘추와 정초에 제사하였다. 개성의 덕물산(德物山)과 나주의 금성산(錦城山)은 남자신이 좌정(座定)하고 있기 때문에 토민(土民)들은 민간에게 처녀를 구하여 산신에게 공헌(貢獻)하는 향풍(鄕風)이 있었다. 처녀를 신령과 교구케 해서 산신을 위안하고 그 덕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신산(神山)에 신인(新人)이 있어서 신인끼리 서로 날아서 왕래하거나 산신령이 산꼭대기에서 춤을 추거나 또는 산신·지백·급간이 나타나서 산신가를 부르기도 했다. 산신은 때때로 왕장(王將)이나 영웅 또는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인격화되거나, 때로는 호랑이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산신당 내에 모셔지고 있는 신위는 도포를 입고 범을 타고 있거나 깔고 앉아 있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의 화상(畵像)이다. 범도 산군(山君)이란 이명(異名)을 갖고 있으며 산신의 사자(使者)로 알려지고 산신도 된다.
물은 강이나 바다·연못·우물과 상통되어서 숭배되었고 오늘날도 역시 숭신(崇信)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은 물귀신 또는 수구 혹은 수옹(水翁)으로 호칭되는 외에 용왕·용신·용궁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물은 생명수로서 위력과 주력을 갖는데 특히 약수가 그렇다. 여름이나 가을에 약수터에서 약수(신수라고 부름)로써 쌀을 씻어서 제솥(祭釜)에 넣어 마시고 음식을 수구에 바치며 치병장수(治病長壽)를 기원한다. 무격(巫覡)에서의 무조전설 중에 바리공주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공주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약수를 구하여 위독한 병에 걸린 부왕과 어머니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병으로부터 구제하였다. 치병으로서의 물은 오늘날 정화수(井華水)신앙을 일으켰다. 또 물은 아기를 저장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양수로 믿어지기도 했다.
물과 관련이 있는 강물은 때로는 재앙을 떨어버리는 불계의 주력을 갖는다. 박혁거세의 비(妃)가 된 알영이 계룡(鷄龍)의 옆구리로부터 나올 때 닭부리의 입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멱을 감기니 부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 가을 발천(撥川)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계로서의 강물은, 단오날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부인은 일 년 내내 재앙을 피하는 등 주력(呪力)을 준다. 웅진·덕진·압록강·두만강은 생명을 주는 물이고 재앙을 떨어주는 물이었다. 물은 또 비와 관련이 있어서 대천(大川)이나 연못이 기우제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이조 때에는 물과 관련이 있는 신으로서 천신(天神)·3해신(三海神)·7독신(七瀆神)이 있었다. 그리고 물에는 용왕이 있었다. 백제의 무왕은 어머니가 남지(南池)에서 살고 있을 때 지룡(池龍)과 교구해서 낳은 아들이다. 신라의 탈해왕도 용왕과 교구한 동해여국(東海女國)의 여신의 아들이었다.
오늘날 물은 신흥종교에서 생명수로 믿어지고 음복(飮福)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주력으로 신봉된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물로 세례를 주어 속죄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어부들이 출범(出帆)에 앞서 바다의 용왕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해안 도서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인데 바다는 용왕의 지배세계로 되어 있다.
2. 2. 동물 숭배
동물 중에서 곰, 범, 뱀, 용, 지렁이, 말, 닭은 남녀와 똑같은 성력(性力)의 존재로 여겨졌다. 이것들이 다른 동물보다 호색적이고 정력이 강한 탓인지 그 특수한 힘은 민간신앙자들에게 창생력(創生力)으로 비춰졌다. 곰은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 있듯이 사람으로 화해서 아이를 낳았고, 범도 '금현감호(金現感虎)' 설화에서와 같이 여성으로서의 창생력을 가진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서울 인왕산의 신은 호랑이로 상징되는데 그 호랑이는 임진왜란 때에 서산대사로 변신하여 왜적을 막았던 인신(人身)이기도 했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견훤은 광주 북촌에 살고 있던 여성이 밤마다 지렁이와 함께 자고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었다. 지렁이의 모양이 남자의 음경과 비슷하기에 성력적인 것이며 영물(靈物)로 간주된다는 설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2. 3. 식물 숭배
쑥, 마늘, 콩, 창포와 같은 특정 식물들은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쑥과 마늘은 단군 신화에서 곰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생명의 식물로 나타나며, 쑥은 단오에 쑥범을 만드는 데 쓰여 악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다. 창포 또한 질병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콩은 동지에 대문에 뿌려 악귀를 막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동쪽에서 자란 복숭아나무 가지는 악귀를 쫓는 데 사용되어 오늘날에도 무당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악귀를 쫓을 때 사용한다. 익모초는 약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걸어 놓으면 대추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는 주술적인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향과 차는 인간을 신선으로 만드는 약초로 여겨졌다.
2. 4. 수목 숭배
오래된 나무는 마을을 지키고 악귀를 막는 신목(神木)으로 숭배되었으며, 생명력과 수태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는 신목으로서 마을을 보호하고 악귀의 침입을 막는다. 서울 성북구 신흥사 입구의 늙은 나무에는 찢어진 여자의 속옷 헝겊이나 앞치마 조각에 밥을 말아 싼 것이 걸려 있는데, 이 나무에 빌면 아이를 낳거나 아이의 수명을 보장받는다고 믿었다.
수목은 생명 유지력과 수태시키는 힘 때문에 남성으로 상징되며, 곧게 뻗은 외모는 남근이 발기한 모양과 비슷하게 의인화된다. 민간신앙에서 수목은 수정(授精)적인 생명체로 여겨진다. 지팡이 역시 나무와 같이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 남근의 수정으로 신앙되며, 뚫고 들어가는 힘, 병마를 쫓고 생명을 복귀하는 창생력(創生力)을 가진다. 궤는 여성의 음문을 상징하며 남근을 담는 그릇으로, 그 내부는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삼국유사》에는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는 기록과 사금갑(射琴匣)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남녀 합일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목(堂木)·성황목(城隍木)이나 무당이 사용하는 신대(神竿)도 모두 나뭇가지이다. 이로운 성목(聖木)도 있지만, 오얏꽃처럼 재앙을 몰고 오는 흑주력(黑呪力)을 가진 나무도 있었다. 흑주력을 막기 위해 문 바깥 양쪽에 황토를 쌓고 소나무 가지를 세워 기도를 올리거나, 마누라(痘神)가 들어오지 못하게 소나무 가지를 세우는 신앙도 있었다. 무당굿에서 성조맞이를 할 때 소나무 가지를 세워 성조신의 강림을 기대하기도 한다.
신간(神竿)은 보통 소나무로 만들지만, 소나무 뿌리를 사용한 천하대장군처럼 다른 나무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신이다. 성황목·귀신목·고사목은 당목(堂木)으로 통칭되는 성수(聖樹)이며, 제주도의 서귀포와 신효리의 이렛당(七日堂)은 신수(神藪) 또는 총사(叢祠)라고 불리는 성림(聖林)이다. 소나무나 대나무는 수령(樹齡)이 길고 상록(常綠)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장수를 뜻한다. 신라는 계림과 나정의 숲으로 인해 국호가 계림(鷄林)·구림(鳩林)·시림(始林) 등으로 불렸으며, 단군신화에 나오는 박달나무도 신목이다. 수목숭배는 오늘날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 5. 암석 숭배
특정한 형태의 바위는 아이를 낳게 하거나, 장수를 기원하는 등 다양한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음순(陰脣) 모양의 바위는 아이를 낳게 하는 바위로 신앙되었으며, 지방에 따라 기자바위(祈子岩), 건들바위, 사망바위, 아들바위, 딸바위, 옥동자바위 등으로 불렸다. 장군바위, 마당바위 등은 출산암(出産岩)으로, 아이들의 수명이 바위와 같이 단단하고 길다는 의미가 부여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이름으로 돌쇠, 수바우, 암이(岩伊) 등이 별명으로 쓰이기도 했다.
상사바위(想思岩)는 사람들에게 연정을 일으키는 바위이고, 고바우도 그러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성기암(性器岩)으로는 처자바위, 처녀바위가 있는데, 그 속에 아이가 될 정(精)이 거처하는 것으로 신앙되었다. 쌀바위, 쌀 나오는 구멍, 돌샘(石泉) 등은 사물의 생산과 관계되는 바위로, 바위 구멍에서 쌀이 나오는 것으로 믿어졌다. 사모바위와 할미바위는 그릇을, 베틀바위는 베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바위로 여겨졌다.
서울 인왕산의 부부바위(선돌:立石)는 아이를 주는 바위로, 제주시 외곽 동서 양쪽에 있는 미륵 돌 상(像)은 아이를 낳게 하는 바위로 신봉된다. 부석사 내의 부석도 출산을 베푸는 바위이다.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자하문 밖)에는 붙임바위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고 돌을 던져 바위에 얹히게 하거나 바위 위를 콩콩 찍어서 구멍을 내어 소원을 빌었다. 뾰족한 돌이 바위벽에 올라앉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암석 숭배는 고대로부터 계승되어 오는 관습이며, 신라 금어산에 산아당(産兒堂)이 있었고, 국토에 해를 끼쳤다는 표암(瓢巖)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2. 6. 신명 숭배
신명(神明)은 인간사에 관여하는 다양한 신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신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천왕은 하늘에서 태백산 마루 단목 아래에 내려와 인간의 일 360여 사를 모두 주관했고, 곰을 인간으로 변하게 하고 사람으로 변한 곰과 합환(合歡)해서 아들을 낳았다. 성종실록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세 사람, 즉 환인, 환웅, 단군을 모두 천왕(天王)으로 칭했다. 천제(天帝)가 북부여의 흘승골성(訖升骨城)에 5용차(龍車)를 타고 내려와서 도읍을 세우고 스스로 해모수라 하였다. 그 뒤에 해모수는 상제(上帝)의 어명에 의해서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이 기록에 의하면 상제가 땅에 보낸 자가 천제이고 천제는 곧 땅의 왕이다. 상제란 용어는 중국의 상탕(商湯) 때에 쓰인 황상제(皇上帝)가 있고 주대에 들어와서는 호천상제(昊天上帝)라 하였으며 한대(漢代) 초에 단지 상제라 하고 상제를 태을(太乙)이라고도 부르며 나중에 황천상제(皇天上帝)라고도 했었는데 그 상제가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제사자를 삼한(三韓)에서 천군(天君)이라 하고 상제를 천신(天神)이라고 일컬었다. 그 천신이 백제에서는 한(漢)나라 초기와 같이 황천상제라고 불리었다. 이 황천상제의 칭호는 가락국에서도 쓰였다. 그런데 상제에 제사를 올리던 천군이 제사를 받는 대상이 되어 산정(山頂)의 신사(神祠)에 좌정(座定)한다. 이것을 천왕 또는 선왕(仙王)이라고 부른다. 이런 성격의 신이 곧 부족의 조신(祖神)들이다. 고구려의 부여신(夫餘神)이니 등고신(登高神)이니 하는 신(神)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그리고 이런 부족의 조신은 거의 모두가 목제(木製)로 된 우상신(偶像神)이라는 것이 조신의 특징이다. 오늘날 민간에서의 신이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신이다.
별신은 상제에까지 오를 수 없는 층의 신령들이다. 말하자면 주신(主神)에 대한 분신(分神)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가택신에 성주신·제석신·성조신·토주신·조상신·조왕신·업왕(業王)신이 있는 따위이다. 이런 별신에 속하는 것으로서 방백신(方伯神)·사방대력신(四方大力神)·방위의 6신 등이 있다.
고구려 보장왕 때 사람들은 신인을 믿었는데, 마령(馬嶺) 꼭대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백제에서는 이 신인이 아침 저녁으로 산과 산 사이를 날아다닌다고 믿었다.
2. 6. 1. 천왕
천왕은 하늘에서 태백산 마루 단목 아래에 내려와서 인간의 일 360여 사를 모두 주관했고, 곰을 인간으로 변하게 하고 사람으로 변한 곰과 합환(合歡)해서 아들을 낳았다. 성종실록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세 사람, 즉 환인, 환웅, 단군을 모두 천왕(天王)으로 칭했다. 천제(天帝)가 북부여의 흘승골성(訖升骨城)에 5용차(龍車)를 타고 내려와서 도읍을 세우고 스스로 해모수라 하였다. 그 뒤에 해모수는 상제(上帝)의 어명에 의해서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이 기록에 의하면 상제가 땅에 보낸 자가 천제이고 천제는 곧 땅의 왕이다. 상제란 용어는 중국의 상탕(商湯) 때에 쓰인 황상제(皇上帝)가 있고 주대에 들어와서는 호천상제(昊天上帝)라 하였으며 한대(漢代) 초에 단지 상제라 하고 상제를 태을(太乙)이라고도 부르며 나중에 황천상제(皇天上帝)라고도 했었는데 그 상제가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제사자를 삼한(三韓)에서 천군(天君)이라 하고 상제를 천신(天神)이라고 일컬었다. 그 천신이 백제에서는 한(漢)나라 초기와 같이 황천상제라고 불리었다. 이 황천상제의 칭호는 가락국에서도 쓰였다. 그런데 상제에 제사를 올리던 천군이 제사를 받는 대상이 되어 산정(山頂)의 신사(神祠)에 좌정(座定)한다. 이것을 천왕 또는 선왕(仙王)이라고 부른다. 이런 성격의 신이 곧 부족의 조신(祖神)들이다. 고구려의 부여신(夫餘神)이니 등고신(登高神)이니 하는 신(神)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그리고 이런 부족의 조신은 거의 모두가 목제(木製)로 된 우상신(偶像神)이라는 것이 조신의 특징이다. 오늘날 민간에서의 신이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신이다.
2. 6. 2. 별신
이것은 상제에까지 오를 수 없는 층의 신령들이다. 말하자면 주신(主神)에 대한 분신(分神)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가택신에 성주신·제석신·성조신·토주신·조상신·조왕신·업왕(業王)신이 있는 따위이다. 이런 별신에 속하는 것으로서 방백신(方伯神)·사방대력신(四方大力神)·방위의 6신 등이 있다.
2. 6. 3. 신인
고구려 보장왕 때 사람들은 신인을 믿었는데, 마령(馬嶺) 꼭대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백제에서는 이 신인이 아침 저녁으로 산과 산 사이를 날아다닌다고 믿었다.
3. 영혼 숭배
영은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하며, 죽은 후에도 현세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여겨졌다. 영은 혼신(魂身)을 가지고 있으며, 살아생전의 모습과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생전에 품었던 원한도 간직한다. 이러한 영은 조상 숭배와 같이 제(祭)를 통해 달래고, 그 원을 풀어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김유신 장군이 죽어서 위령(慰靈)이 된 것처럼, 영은 생존 시의 모습과 지위를 지니게 되며, 영웅적인 권세를 가진 사령은 적을 물리칠 수도 있다고 믿어졌다.
3. 1. 생령과 사령
3. 2. 영혼의 거처와 제사
4. 정령 숭배
정령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정령은 자신이 깃든 곳에서 떠나 행동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어졌다. 따라서 정령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으면 재앙이나 질병을 일으킨 정령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雪)은 오곡의 정(精)'이라는 말처럼, 농촌에서는 눈을 옹기에 담아 땅에 묻고, 씨앗을 눈 녹인 물에 담갔다가 말려 뿌리면 풍년이 든다는 설정신앙(雪精信仰)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은 한 사물에 깃들어 존재하며, 그 사물이 소멸하면 정령도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정령 숭배는 넓은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5. 귀신
귀신은 형체가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장난을 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귀신은 허리 이하가 장지(張紙) 옷이고 발은 말라 여위어서 마치 아교와 같고 뼈만 남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죽을 신세를 지닌 것이고 신명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세력이 약한 존재이다. 힘센 사람이 노려보면 점점 작아져서 없어지는 존재이며, 사람이 주는 음식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 그 중에는 짓궂은 귀신도 있다. 귀신은 낮에는 공중에 떠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궂은 곳을 찾아 몸을 쉬기도 하는데, 주로 오래된 고목(古木)이 귀신의 거처가 된다. 인가(人家)를 찾아들 때는 귀신이 싫어하는 소금이나 콩을 뿌려 쫓아내기도 한다. 귀신은 덤불 숲, 땅 속, 못, 우물가 등 궂은 곳 어디에나 드나들 수 있다.
6. 민간 신앙
6. 1. 생기 신앙
생기신앙은 땅 속에 흐르는 생기(生氣)에 의뢰하여 그 힘으로 일상생활의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얻으려는 민간신앙이다. 생기란 천지만물을 생육(生育)하는 힘이고, 이 생기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차별이 생긴다고 믿었다. 기(氣) 관념은 유가(儒家)의 이기(理氣)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나, 그 이전에는 땅의 마나(mana)적 힘, 즉 지력(地力)에 대한 신앙이 있었고, 이것이 생기신앙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땅은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땅은 사람이 죽은 뒤 흙으로 돌아가는 곳이자 생명(또는 생산)을 제공하는 재료였다. 땅의 힘(地力)에 대한 신앙은 정착지를 바꾸거나 토지를 개량하려는 관념으로 이어졌고,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신력(神力)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천신(天神)에 대한 사직신(社稷神) 관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관념에 따라 만물을 조작하는 생기가 땅 속에 흐르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흐름에 따라 땅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생기가 모인 곳은 좋은 땅이 되어 사람의 운명에 좋은 영향을 주고, 나쁜 땅은 반대의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좋은 땅의 형태와 나쁜 땅을 좋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생기는 만물을 조성하므로, 만물은 생기를 받아 존재하며, 이를 감응(感應)이라고 한다. 이 감응은 땅과 만물, 만물과 만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감응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천지에 충만한 기(氣)의 정(精)이 생기이고, 인간도 생기의 한 현상이다. 인간의 기가 응집(凝集)한 것이 뼈인데, 부모의 뼈는 천지의 기의 정인 생기와 감응하고, 자손의 뼈와도 서로 감응한다고 보았다. 생기신앙에는 풍수설·음양오행설이 포함된다.
6. 2. 풍수 신앙
풍수설은 분묘, 사찰, 도관, 주거 마을 또는 도성(都城)을 축조하는 데 있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지상(地相)을 생각하는 데에 신앙의 중심이 있다. 이것을 감여(堪輿)라 하고 감(堪)은 천도(天道), 여(轝)는 지도(地道) 또는 지리(地理)라고 하며, 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사람을 감여가·지리가·음양가·풍수가라고 한다. 풍수의 목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도 외의 후생(厚生)의 요구에 의해 생기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인간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내면적인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기에 의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리하여 생기를 받으려고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생겨났다.장풍득수는 풍수지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형으로, 산과 물의 조화를 통해 생기가 모이는 곳을 의미한다. 이러한 땅을 국(局)이라 하고, 국을 구성하는 필수 조건으로 사신사(四神砂)가 있다. 사신사는 북쪽의 현무(玄武), 남쪽의 주작(朱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를 의미하며, 산과 물의 형세가 알맞아야 한다. 즉, 북쪽에 주산(來龍)이 있고, 이 산 양쪽에 청룡과 백호 형의 산줄기가 있으며, 남쪽에 북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기를 멈추게 하는 주작의 강물이 있고, 이 강물의 안팎에도 적당한 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형이 장풍득수의 국을 구성하는 기본 조건이다.
서울은 현무인 백악산(白岳山), 청룡(동쪽의 산)인 낙타산(駱馱山), 백호(서쪽의 산)인 인왕산(仁旺山)이 있고, 남쪽의 주작인 강으로는 한강이 있으며, 그 앞에 남산(南山)이 있고 그 뒤에는 관악산(冠岳山)이 있는 장풍득수의 땅이며 명당이다.
설심부는 집터나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지가서(地家書)에는 민족이 멸하고 한 집안이 망하는 것은 모두 산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물이 곧지 못하여 이리저리 굽이치기 때문이라는 문구가 있다. 풍수신앙가들은 이 문구를 그대로 믿고, 장풍득수의 땅 자리를 찾아다니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집터가 나쁘다 하여 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곤 한다. 풍수신앙가들이 가장 싫어하고 기피하는 땅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인마(人馬)의 왕래가 끊임없는 시끄러운 곳(路鉗)과 동네의 멀고 가까운 또는 가늘고 큰 개울이 한데 모여 흘러 내려가는 곳(水鉗)과 마을 양편 쪽의 산이 합쳐 있는 골짜기(山鉗)의 세 지형의 땅이다. 이런 땅은 사람 목에 칼을 씌울 악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6. 2. 1. 장풍득수
장풍득수는 풍수지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형으로, 산과 물의 조화를 통해 생기가 모이는 곳을 의미한다. 이러한 땅을 국(局)이라 하고, 국을 구성하는 필수 조건으로 사신사(四神砂)가 있다. 사신사는 북쪽의 현무(玄武), 남쪽의 주작(朱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를 의미하며, 산과 물의 형세가 알맞아야 한다. 즉, 북쪽에 주산(來龍)이 있고, 이 산 양쪽에 청룡과 백호 형의 산줄기가 있으며, 남쪽에 북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기를 멈추게 하는 주작의 강물이 있고, 이 강물의 안팎에도 적당한 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형이 장풍득수의 국을 구성하는 기본 조건이다.서울은 현무인 백악산(白岳山), 청룡(동쪽의 산)인 낙타산(駱馱山), 백호(서쪽의 산)인 인왕산(仁旺山)이 있고, 남쪽의 주작인 강으로는 한강이 있으며, 그 앞에 남산(南山)이 있고 그 뒤에는 관악산(冠岳山)이 있는 장풍득수의 땅이며 명당이다.
6. 2. 2. 설심부
설심부는 집터나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지가서(地家書)에는 민족이 멸하고 한 집안이 망하는 것은 모두 산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물이 곧지 못하여 이리저리 굽이치기 때문이라는 문구가 있다. 풍수신앙가들은 이 문구를 그대로 믿고, 장풍득수의 땅 자리를 찾아다니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집터가 나쁘다 하여 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곤 한다. 풍수신앙가들이 가장 싫어하고 기피하는 땅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인마(人馬)의 왕래가 끊임없는 시끄러운 곳(路鉗)과 동네의 멀고 가까운 또는 가늘고 큰 개울이 한데 모여 흘러 내려가는 곳(水鉗)과 마을 양편 쪽의 산이 합쳐 있는 골짜기(山鉗)의 세 지형의 땅이다. 이런 땅은 사람 목에 칼을 씌울 악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6. 3. 음양·오행 신앙
음양·오행신앙의 근본은 음양설에 두고 있는데, 이 설은 하늘과 땅의 변역(變易)을 설명하는 자연의 발전법칙이나 발전원리를 논하는 것이다. 오행설은 하늘과 땅의 원소(元素)나 내용면의 원리를 따져 어떤 것에 의해서 천지가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변역은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은 실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설은 천지의 현상을 형식적으로 논하고, 오행설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협조되어서 형식적 내용을 갖춘 천지운행의 원리가 설명된다. 이 설에 의하면 천지는 음양의 변역, 즉 증진감퇴(增進減退)의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 증진하는 것이 양(陽)이고 감퇴하는 것이 음(陰)이다. 그런데 음과 양이 서로 협조하여 갈 때에 천지는 옳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음과 양의 협조를 충화(沖和)라고 하며 그러한 곳이 생기가 충실한 길지(吉地)이다. 산수에 적용하면 산은 음이고 수(水)는 양이다. 그러므로 음인 산의 세찬 내리받이 기운을 조용한 양인 물이 막으면 그곳에 음과 양의 충화가 나타나고 거기에 생기가 활동한다는 것이다. 양이 오면 음이 받고, 음이 오면 양이 받는 국(局)을 이루느냐의 여부에 따라 길과 흉은 나뉜다. 이 음양설은 남녀간의 궁합에도 적용된다.6. 4. 도참·신도 신앙
도참은 미래를 예언하는 비결로, 국가의 운명이나 개인의 길흉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길지(吉地)도 오래되면 생기가 쇠망해지므로 다른 길지를 택해야 한다는 도참신앙이 중세 고려 왕조 때 유행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서울의 지세가 노쇠함에 따라 왕기(王氣)도 따라서 잃어가게 되었으므로 한양을 버리고 교하(파주군)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편 국도가 쇠한다 하여 그것을 보강하기 위하여 국도 외의 다른 명당자리에 궁을 짓고, 왕이 가끔 머물면 국도의 지덕(地德)이 보강되고 국운이 연장된다는 신앙이 유행되어 고려조에는 삼소(三蘇)·삼경(三京) 제도가 있었다. 이런 신앙과 연관되어 신도(新都)신앙이 생겼고 오늘날에도 일부 신흥종교나 민간신앙도들에 계승되어 있다. 신도 신앙은 국운을 개역(改易)하려는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왕(國王)의 운수는 일정한 연수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기의 말기에는 역세(易世)할 인물이 신도(新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6. 5. 천지개벽 신앙
풍수·도참신앙과 관련해서 천지개벽신앙이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왔다. 이것은 역수(曆數)사상을 토대로 신명관(神明觀)과 혼합한 신앙이다. 이 신앙의 공통된 줄거리는 산천의 영기(靈氣)가 순차적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렇게 영기가 옮아가고 왕이 바뀔 때마다 전례 없는 천지이변과 병화민요(兵火民擾) 등의 화란(禍亂)이 닥친다는 것으로 그때 그 화란에서 벗어나 남게 될 방도를 찾는다. 그 말세적 이변상(異變相)은 검은 구름이 3일 동안 진동하고 혜성(慧星)이 머리에서 나와 북두성에 들어갔다가 자미(紫微)와 두미(斗尾)에 옮겨지고 두성(斗星)에 이르렀다가 남두(南斗)에 가서 끝나는 하늘의 이변으로 나타나며, 왕궁이나 책우(冊宇) 등이 불타서 상하 국민들이 걱정하고 동요하여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예절이 사라지며 재산이 소멸된다. 또 곳곳에 사람이 죽은 시체가 산과 같이 쌓이고 길가에 사람의 그림자가 없으며, 닭이나 개의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유혈이 강을 이룬다. 말세에는 백성들이 나무껍질을 먹고 연명하며 반년에 인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또한 자연은 강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다. 이런 것 등이 말세때의 이변이다. 이런 때를 당해서는 부귀나 벼슬에 대한 집념을 버리고 피난처인 십승지(十勝地)를 찾아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옷을 짜서 입으면서 가난을 참고 견디어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 목숨을 건진다고 하며 때가 와서 개벽이 된 후에는 태평시운(泰平時運)이 계속된다고 한다. 이 천지개벽신앙에 신인신앙이 겹쳐져서 말세가 되고 후천(後天)세계가 열리려는 무렵에 하늘 사람 정도령(正道令)이 나타나서 새로운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고 하는데 그러한 개벽의 시기는 천지(天地)·일월(日月)이 합덕(合德, 또는 合宮으로 표현함)하여 음과 양이 완전히 조화일치될 때이다. 이 일치의 세계가 우주의 최후 목적을 이룩한 세계이며 빈한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6. 6. 심령개벽 신앙
심령개벽은 인간의 내적 개벽을 통해 신세계가 열린다는 신앙이다. 각자가 정련(精鍊)을 쌓아 인간의 본바탕인 정심(正心)을 길렀을 때 안으로 신명(神明)이 열려 신명과 감응 감통한다는 것이다. 그 정련을 쌓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례적(儀禮的)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되는 날에 선천(先天)은 후천(後天)으로 개벽된다고 한다. 이는 개벽신앙과 관련이 있다.7. 외래 종교의 숭배
힌두교에서의 숭배는 영적, 물질적 발전을 돕기 위해 더 높은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포함하며, 동시에 과학이자 예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박티'' 또는 헌신적인 사랑의 감정이 불러일으켜진다. 이 용어는 힌두교에서 핵심적인 용어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영어로의 직접적인 번역은 어렵다. 숭배는 공동체 집단, 지리 및 언어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숭배 대상이나 헌신의 대상에 대한 사랑과 사랑받는 느낌이 있다. 숭배는 예배 장소에 국한되지 않으며, 개인적인 성찰, 예술 형태 및 집단을 포함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거나, 수행자가 더 높은 존재로 진화하도록 돕기 위해 몸, 마음, 정신을 통합하기 위해 숭배를 수행한다.[9]
불교에서의 숭배는 방편의 교리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를 띨 수 있다. 숭배는 불교에서 구루 요가, 만다라, 탕카, 얀트라 요가, 소림사의 무술 승려들의 수련, 판차미리타, 진언 암송, 다도, 가나차크라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2] 불교 신앙은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의 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미얀마 사사나 위원회 대변인에 따르면, 불교 영적 수행에 대한 헌신은 삼보에 대한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 열망을 추구하기 위해 의례를 사용한다. 불교에서 푸자(pūjāsa, pūjāpi)는 "존경, 숭배, 헌신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2] 푸자의 행위에는 절하기, 공양하기, 염불하기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헌신적인 행위는 일반적으로 매일 집에서 (아침, 저녁 또는 둘 다) 행해지며, 사찰에서 공동 축제와 우포사타 날에도 행해진다.
불교 명상(samādhi)은 불교에서 숭배의 핵심 형태이다. 이 수행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팔정도의 세 번째 단계에 집중한다. 명상은 자기 인식과 마음과 정신의 탐구를 증진시킨다. 전통적으로 불교 명상은 사마타 (자신을 멈추고 진정시키는 행위)와 vipasyana (내면을 명확하게 바라보기)를 결합하여 완전한 마음과 몸의 경험을 창출해 왔다. 일상적인 활동을 멈추고 단순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은 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열리고 확장될 수 있다. 위파사나 단계를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음 챙김 명상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생각과 외부 대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추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평화롭게 그 생각을 붙잡도록 가르친다. 비록 전통적인 불교 신앙에서 깨달음이 명상의 최종적인 목표이지만,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개인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순환에 가깝다. 예를 들어, 명상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친절로 이어지며, 친절은 평화로 이어진다.[3]
기독교에서, 교회 예배는 공동체의 공식적인 예배 시간으로, 주로 일요일에 (또는 안식일 준수 교파에 속하는 교회에서는 토요일에) 거행된다.[2] 교회 예배는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성경)을 배우고 그들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 함께 모이는 자리이다. "교회 예배"에서 "교회"는 예배가 거행되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 예배는 하느님께 드리는 존경과 경의이다. 신약 성경은 예배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배하다"라는 뜻의 단어 ''프로스쿠네오''는 (신이나 왕에게) 몸을 굽혀 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2]
'''미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성한 예배의 중심적인 행위이다.[4] 로마 가톨릭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기독교 전례의 일부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영적 수행의 일부인 "경건의 외부적인 실천"이다.[2]
성공회 신앙은 성공회 기독교인들이 하느님과의 영적 성장과 교제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 기도와 실천이다.
기독교에서의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봉사 행위 및 의례 일반과 같은 간접적인 행위를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교회에서의 의례 일반을 가리킨다. 교파에 따라 약간의 어의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의 공기도 (예배) 전반을 "미사"라고 부르는 사례가 종종 보이지만, "미사"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 의식을 가리키는 어휘이며, 기독교의 예배 일반을 통틀어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의례 용어의 교파별 대응표 | |||||
교파 | 개신교 | 성공회 | 로마 가톨릭교회 | 정교회 | 구세군 |
기도・의례의 총칭 | 예배 | 예배 | 전례 | 성신예배 | 성별회 |
라틴어: 사크라멘툼 그리스어: 미스티리온 | 성례 | 성찬 | 성사 | 신비 | 성례전 |
주의 만찬에서 유래한 기도・의례 | 성찬식 주의 만찬 | 성찬식 | 미사 | 성체 예식 | (행하지 않음) |
위 표에 나오는 용어는 교파별로 크고 작은 개념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으며, 대응하는 어구끼리 일대일로 대응하여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정교회에서는 성신예배를 가리키지만, 가톨릭 교회와 달리 공기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 (사기도)도 정교회의 성신예배에 포함된다.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보통 전례를 가리키지만, 개인적인 기도・행위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전례와 구분된다.
- 개신교 교회에서는 공동 예배, 가정 예배, 개인 예배 (디보션)가 예배라고 불리지만, 대부분은 주일의 공동 예배를 가리켜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 정교회는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라트리아'', 라틴어 ''adoratio'', 그리스어 ''latreia'', ''[λατρεία]'')와 성인에게 드리는 '''공경'''(''둘리아'', 라틴어 ''veneratio'', 그리스어 ''douleia'' ''[δουλεία]'')을 구분한다.[7] 경배는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한다.[7] 공경의 외적 행위는 숭배와 유사해 보이지만, 대상과 의도에서 차이가 있다.[7]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민간 신앙에서 이러한 구분을 항상 지키는지 의문을 제기한다.[7]
영어 단어 "worship"은 경배와 공경 모두를 지칭할 수 있어 양의성을 띤다.[7] 가톨릭에서는 "worship"을 경배가 아닌 마리아와 성인에게 드리는 공경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7]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는 "" (라트레이아)를 유일한 신성에 대한 '''숭배'''('''예배'''), "" (프로스키니시스)를 성인이나 성상 등의 거룩한 피조물에 대한 '''공경'''(崇敬)으로 구분하게 되었다.[19]
정통 유대교와 정통 수니 이슬람교는 공경을 기도와 동일하게 간주하며,[7] 정통 유대교 (일부 하시디즘 관행은 예외), 정통 수니 이슬람교,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는 성인이나 천사에 대한 공경을 우상 숭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금지한다.[7] 여호와의 증인은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국가 숭배이자 우상 숭배로 간주한다.[8]

이슬람에서 숭배는 의례적인 헌신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해지는 행위를 의미한다. 숭배에는 이슬람의 5가지 기둥에 포함된 것으로, 주로 하루에 다섯 번 의례적인 기도를 드리는 '살라트'가 있다.
무하마드 아사드에 따르면, Q51:56에 대한 꾸란의 메시지 번역의 주석에서,
따라서 모든 합리적 존재의 창조의 가장 내밀한 목적은 알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그분의 뜻과 계획에 대해 인식하는 모든 것에 기꺼이 순응하려는 의식적인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꾸란이 "숭배"라고 묘사하는 것에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과 의지의 이중적인 개념입니다. 다음 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적인 부름은 스스로 충분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창조주의 어떤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숭배자의 내면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 설계된 것입니다. 숭배자는 전반적인 창조적 의지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행위를 통해 그 의지를 더 잘 이해하고, 따라서 알라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10]
이슬람 세계에서 '숭배'라는 단어는 (문자적 의미의 '숭배'라는 맥락에서) 대상이나 행위를 지칭하며 알라만을 지칭하지 않을 경우 사용이 금지된다.[11]
'''예배'''(살라트)는 카바 방향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슬람교의 오행 중 하나이다.
예배 방법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평소에는 가정 등에서 개인적으로 해도 되지만, 이슬람의 축일인 금요일에는 5번 중 한 번의 낮 예배는 모스크에 모여 다 함께 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의 예배를 드린다. 각 예배의 대략적인 시간대는 1번째는 새벽, 2번째는 해가 뜬 후, 3번째는 그림자가 자신의 키와 같아질 때까지(정오), 4번째는 해 질 녘부터 해가 없어질 때까지, 마지막은 밤이다. 예배가 시작되는 시간은 무아진이라고 불리는 사람에 의해 알려지는데, 이를 아잔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모스크의 첨탑(미나렛)에 올라 그 위에서 아잔이 행해졌지만, 현재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유대교에서 하느님에 대한 숭배는 ''아보다트 하셰ם''(Avodat Hashem)이라고 불린다.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그곳에서 거행된 의례가 유대교 숭배의 가장 중요한 행위로 여겨졌다.[12] 하지만 가장 흔한 형태의 숭배는 기도였으며, 현재도 그렇다. 그 외의 숭배 형태로는 적절한 의도를 가지고 유월절 만찬을 행하고 4가지 식물을 흔드는 것과 같은 규정된 의식의 거행,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유대교 명상 등이 있다.
유대교 자료에서도 적절한 모든 일상 활동을 하느님에 대한 숭배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념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분실된 물건을 돌려주는 것과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있다.
유대 율법전서(오라흐 하임, 231장)은 이 아이디어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잠언 (3:6), "네 모든 길에서 그를 알라" (히브리어: בכל דרכיך דעהו (''b'chol d'rachecha dei'eihu''))를 인용한다.
시크교에서 숭배는 구루 그란트 사히브 이후에 이루어진다. 시크교도는 "하나의 창조주", "경이로운 스승"(와헤구루/ਵਾਹਿਗੁਰੂpa), 또는 "어둠의 파괴자"로 알려진 유일신, 즉 하느님을 숭배한다.
위카의 숭배는 일반적으로 보름달 또는 초승달 동안에 이루어진다.[13] 이러한 의식은 에스밧이라고 불리며, 수행자들이 에너지를 담고 신성한 공간을 형성하거나 마법적 보호 형태를 제공한다고 믿는 마법 원을 포함할 수 있다.[13]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도는 의무이자 숭배의 하나이다. 기도는 종교적 계명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아후라 마즈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수행된다.
7. 1. 불교
불교에서의 숭배는 방편의 교리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를 띨 수 있다. 숭배는 불교에서 구루 요가, 만다라, 탕카, 얀트라 요가, 소림사의 무술 승려들의 수련, 판차미리타, 진언 암송, 다도, 가나차크라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2] 불교 신앙은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의 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미얀마 사사나 위원회 대변인에 따르면, 불교 영적 수행에 대한 헌신은 삼보에 대한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 열망을 추구하기 위해 의례를 사용한다. 불교에서 푸자(pūjāsa, pūjāpi)는 "존경, 숭배, 헌신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2] 푸자의 행위에는 절하기, 공양하기, 염불하기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헌신적인 행위는 일반적으로 매일 집에서 (아침, 저녁 또는 둘 다) 행해지며, 사찰에서 공동 축제와 우포사타 날에도 행해진다.불교 명상(samādhi)은 불교에서 숭배의 핵심 형태이다. 이 수행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팔정도의 세 번째 단계에 집중한다. 명상은 자기 인식과 마음과 정신의 탐구를 증진시킨다. 전통적으로 불교 명상은 사마타 (자신을 멈추고 진정시키는 행위)와 vipasyana (내면을 명확하게 바라보기)를 결합하여 완전한 마음과 몸의 경험을 창출해 왔다. 일상적인 활동을 멈추고 단순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은 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열리고 확장될 수 있다. 위파사나 단계를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음 챙김 명상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생각과 외부 대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추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평화롭게 그 생각을 붙잡도록 가르친다. 비록 전통적인 불교 신앙에서 깨달음이 명상의 최종적인 목표이지만,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개인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순환에 가깝다. 예를 들어, 명상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친절로 이어지며, 친절은 평화로 이어진다.[3]
7. 1. 1. 불교의 다양한 숭배 형태
불교에서의 숭배는 방편의 교리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를 띨 수 있다. 숭배는 불교에서 구루 요가, 만다라, 탕카, 얀트라 요가, 소림사의 무술 승려들의 수련, 판차미리타, 진언 암송, 다도, 가나차크라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2] 불교 신앙은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의 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미얀마 사사나 위원회 대변인에 따르면, 불교 영적 수행에 대한 헌신은 삼보에 대한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 열망을 추구하기 위해 의례를 사용한다. 불교에서 푸자(산스크리트어 & 팔리어: pūjā)는 "존경, 숭배, 헌신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2] 푸자의 행위에는 절하기, 공양하기, 염불하기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헌신적인 행위는 일반적으로 매일 집에서 (아침, 저녁 또는 둘 다) 행해지며, 사찰에서 공동 축제와 우포사타 날에도 행해진다.불교 명상(samādhi)은 불교에서 숭배의 핵심 형태이다. 이 수행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팔정도의 세 번째 단계에 집중한다. 명상은 자기 인식과 마음과 정신의 탐구를 증진시킨다. 전통적으로 불교 명상은 사마타 (자신을 멈추고 진정시키는 행위)와 vipasyana (내면을 명확하게 바라보기)를 결합하여 완전한 마음과 몸의 경험을 창출해 왔다. 일상적인 활동을 멈추고 단순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은 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열리고 확장될 수 있다. 위파사나 단계를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음 챙김 명상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생각과 외부 대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추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평화롭게 그 생각을 붙잡도록 가르친다. 비록 전통적인 불교 신앙에서 깨달음이 명상의 최종적인 목표이지만,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개인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순환에 가깝다. 예를 들어, 명상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친절로 이어지며, 친절은 평화로 이어진다.[3]
7. 1. 2. 불교 명상
명상은 불교 숭배의 핵심적인 형태이며, 자기 성찰과 마음의 평화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7. 2. 기독교
기독교에서, 교회 예배는 공동체의 공식적인 예배 시간으로, 주로 일요일에 (또는 안식일 준수 교파에 속하는 교회에서는 토요일에) 거행된다.[2] 교회 예배는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성경)을 배우고 그들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 함께 모이는 자리이다. "교회 예배"에서 "교회"는 예배가 거행되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 예배는 하느님께 드리는 존경과 경의이다. 신약 성경은 예배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배하다"라는 뜻의 단어 ''프로스쿠네오''는 (신이나 왕에게) 몸을 굽혀 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2]'''미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성한 예배의 중심적인 행위이다.[4] 로마 가톨릭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기독교 전례의 일부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영적 수행의 일부인 "경건의 외부적인 실천"이다.[2]
성공회 신앙은 성공회 기독교인들이 하느님과의 영적 성장과 교제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 기도와 실천이다.
기독교에서의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봉사 행위 및 의례 일반과 같은 간접적인 행위를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교회에서의 의례 일반을 가리킨다. 교파에 따라 약간의 어의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의 공기도 (예배) 전반을 "미사"라고 부르는 사례가 종종 보이지만, "미사"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 의식을 가리키는 어휘이며, 기독교의 예배 일반을 통틀어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의례 용어의 교파별 대응표 | |||||
교파 | 개신교 | 성공회 | 로마 가톨릭교회 | 정교회 | 구세군 |
기도・의례의 총칭 | 예배 | 예배 | 전례 | 성신예배 | 성별회 |
라틴어: 사크라멘툼 그리스어: 미스티리온 | 성례 | 성찬 | 성사 | 신비 | 성례전 |
주의 만찬에서 유래한 기도・의례 | 성찬식 주의 만찬 | 성찬식 | 미사 | 성체 예식 | (행하지 않음) |
위 표에 나오는 용어는 교파별로 크고 작은 개념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으며, 대응하는 어구끼리 일대일로 대응하여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정교회에서는 성신예배를 가리키지만, 가톨릭 교회와 달리 공기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 (사기도)도 정교회의 성신예배에 포함된다.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보통 전례를 가리키지만, 개인적인 기도・행위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전례와 구분된다.
- 개신교 교회에서는 공동 예배, 가정 예배, 개인 예배 (디보션)가 예배라고 불리지만, 대부분은 주일의 공동 예배를 가리켜 말한다.
7. 2. 1. 기독교 예배의 다양한 형태
기독교에서, 교회 예배는 공동체의 공식적인 예배 시간으로, 주로 일요일에 (또는 안식일 준수 교파에 속하는 교회에서는 토요일에) 거행된다.[2] 교회 예배는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성경)을 배우고 그들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 함께 모이는 자리이다. "교회 예배"에서 "교회"는 예배가 거행되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 예배는 하느님께 드리는 존경과 경의이다. 신약 성경은 예배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배하다"라는 뜻의 단어 ''프로스쿠네오''는 (신이나 왕에게) 몸을 굽혀 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2]'''미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성한 예배의 중심적인 행위이다.[4] 로마 가톨릭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기독교 전례의 일부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영적 수행의 일부인 "경건의 외부적인 실천"이다.[2]
성공회 신앙은 성공회 기독교인들이 하느님과의 영적 성장과 교제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 기도와 실천이다.
기독교에서의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봉사 행위 및 의례 일반과 같은 간접적인 행위를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교회에서의 의례 일반을 가리킨다. 교파에 따라 약간의 어의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의 공기도 (예배) 전반을 "미사"라고 부르는 사례가 종종 보이지만, "미사"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 의식을 가리키는 어휘이며, 기독교의 예배 일반을 통틀어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의례 용어의 교파별 대응표 | |||||
교파 | 개신교 | 성공회 | 로마 가톨릭교회 | 정교회 | 구세군 |
기도・의례의 총칭 | 예배 | 예배 | 전례 | 성신예배 | 성별회 |
라틴어: 사크라멘툼 그리스어: 미스티리온 | 성례 | 성찬 | 성사 | 신비 | 성례전 |
주의 만찬에서 유래한 기도・의례 | 성찬식 주의 만찬 | 성찬식 | 미사 | 성체 예식 | (행하지 않음) |
위 표에 나오는 용어는 교파별로 크고 작은 개념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으며, 대응하는 어구끼리 일대일로 대응하여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정교회에서는 성신예배를 가리키지만, 가톨릭 교회와 달리 공기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 (사기도)도 정교회의 성신예배에 포함된다.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보통 전례를 가리키지만, 개인적인 기도・행위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전례와 구분된다.
- 개신교 교회에서는 공동 예배, 가정 예배, 개인 예배 (디보션)가 예배라고 불리지만, 대부분은 주일의 공동 예배를 가리켜 말한다.
7. 2. 2. 경배와 공경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 정교회는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라트리아'', 라틴어 ''adoratio'', 그리스어 ''latreia'', ''[λατρεία]'')와 성인에게 드리는 '''공경'''(''둘리아'', 라틴어 ''veneratio'', 그리스어 ''douleia'' ''[δουλεία]'')을 구분한다.[7] 경배는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한다.[7] 공경의 외적 행위는 숭배와 유사해 보이지만, 대상과 의도에서 차이가 있다.[7]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민간 신앙에서 이러한 구분을 항상 지키는지 의문을 제기한다.[7]영어 단어 "worship"은 경배와 공경 모두를 지칭할 수 있어 양의성을 띤다.[7] 가톨릭에서는 "worship"을 경배가 아닌 마리아와 성인에게 드리는 공경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7]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는 "" (라트레이아)를 유일한 신성에 대한 '''숭배'''('''예배'''), "" (프로스키니시스)를 성인이나 성상 등의 거룩한 피조물에 대한 '''공경'''(崇敬)으로 구분하게 되었다.[19]
정통 유대교와 정통 수니 이슬람교는 공경을 기도와 동일하게 간주하며,[7] 정통 유대교 (일부 하시디즘 관행은 예외), 정통 수니 이슬람교,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는 성인이나 천사에 대한 공경을 우상 숭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금지한다.[7] 여호와의 증인은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국가 숭배이자 우상 숭배로 간주한다.[8]
7. 3. 이슬람교
이슬람에서 숭배는 의례적인 헌신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해지는 행위를 의미한다. 숭배에는 이슬람의 5가지 기둥에 포함된 것으로, 주로 하루에 다섯 번 의례적인 기도를 드리는 '살라트'가 있다.
무하마드 아사드에 따르면, Q51:56에 대한 꾸란의 메시지 번역의 주석에서,
"따라서 모든 합리적 존재의 창조의 가장 내밀한 목적은 알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그분의 뜻과 계획에 대해 인식하는 모든 것에 기꺼이 순응하려는 의식적인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꾸란이 "숭배"라고 묘사하는 것에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과 의지의 이중적인 개념입니다. 다음 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적인 부름은 스스로 충분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창조주의 어떤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숭배자의 내면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 설계된 것입니다. 숭배자는 전반적인 창조적 의지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행위를 통해 그 의지를 더 잘 이해하고, 따라서 알라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10]
이슬람 세계에서 '숭배'라는 단어는 (문자적 의미의 '숭배'라는 맥락에서) 대상이나 행위를 지칭하며 알라만을 지칭하지 않을 경우 사용이 금지된다.[11]
'''예배'''(살라트)는 카바 방향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슬람교의 오행 중 하나이다.
예배 방법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평소에는 가정 등에서 개인적으로 해도 되지만, 이슬람의 축일인 금요일에는 5번 중 한 번의 낮 예배는 모스크에 모여 다 함께 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의 예배를 드린다. 각 예배의 대략적인 시간대는 1번째는 새벽, 2번째는 해가 뜬 후, 3번째는 그림자가 자신의 키와 같아질 때까지(정오), 4번째는 해 질 녘부터 해가 없어질 때까지, 마지막은 밤이다. 예배가 시작되는 시간은 무아진이라고 불리는 사람에 의해 알려지는데, 이를 아잔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모스크의 첨탑(미나렛)에 올라 그 위에서 아잔이 행해졌지만, 현재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7. 3. 1. 이슬람교 예배의 특징
이슬람에서 숭배는 의례적인 헌신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해지는 행위를 의미한다. 숭배에는 이슬람의 5가지 기둥에 포함된 것으로, 주로 하루에 다섯 번 의례적인 기도를 드리는 '살라트'가 있다.
무하마드 아사드에 따르면, Q51:56에 대한 꾸란의 메시지 번역의 주석에서,
따라서 모든 합리적 존재의 창조의 가장 내밀한 목적은 알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그분의 뜻과 계획에 대해 인식하는 모든 것에 기꺼이 순응하려는 의식적인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꾸란이 "숭배"라고 묘사하는 것에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과 의지의 이중적인 개념입니다. 다음 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적인 부름은 스스로 충분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창조주의 어떤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숭배자의 내면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 설계된 것입니다. 숭배자는 전반적인 창조적 의지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행위를 통해 그 의지를 더 잘 이해하고, 따라서 알라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10]
이슬람 세계에서 '숭배'라는 단어는 (문자적 의미의 '숭배'라는 맥락에서) 대상이나 행위를 지칭하며 알라만을 지칭하지 않을 경우 사용이 금지된다.[11]
'''예배'''(살라 혹은 살라트)는 카바 방향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슬람교의 오행 중 하나이다.
예배 방법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평소에는 가정 등에서 개인적으로 해도 되지만, 이슬람의 축일인 금요일에는 5번 중 한 번의 낮 예배는 모스크에 모여 다 함께 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의 예배를 드린다. 각 예배의 대략적인 시간대는 1번째는 새벽, 2번째는 해가 뜬 후, 3번째는 그림자가 자신의 키와 같아질 때까지(정오), 4번째는 해 질 녘부터 해가 없어질 때까지, 마지막은 밤이다. 예배가 시작되는 시간은 무아진이라고 불리는 사람에 의해 알려지는데, 이를 아잔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모스크의 첨탑(미나렛)에 올라 그 위에서 아잔이 행해졌지만, 현재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7. 4. 유대교
유대교에서 하느님에 대한 숭배는 ''아보다트 하셰ם''(Avodat Hashem)이라고 불린다.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그곳에서 거행된 의례가 유대교 숭배의 가장 중요한 행위로 여겨졌다.[12] 하지만 가장 흔한 형태의 숭배는 기도였으며, 현재도 그렇다. 그 외의 숭배 형태로는 적절한 의도를 가지고 유월절 만찬을 행하고 4가지 식물을 흔드는 것과 같은 규정된 의식의 거행,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유대교 명상 등이 있다.유대교 자료에서도 적절한 모든 일상 활동을 하느님에 대한 숭배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념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분실된 물건을 돌려주는 것과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있다.
유대 율법전서(오라흐 하임, 231장)은 이 아이디어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잠언 (3:6), "네 모든 길에서 그를 알라" (히브리어: בכל דרכיך דעהו (''b'chol d'rachecha dei'eihu''))를 인용한다.
7. 5. 시크교
시크교에서 숭배는 구루 그란트 사히브 이후에 이루어진다. 시크교도는 "하나의 창조주", "경이로운 스승"(와헤구루/ਵਾਹਿਗੁਰੂpa), 또는 "어둠의 파괴자"로 알려진 유일신, 즉 하느님을 숭배한다.7. 6. 위카
위카의 숭배는 일반적으로 보름달 또는 초승달 동안에 이루어진다.[13] 이러한 의식은 에스밧이라고 불리며, 수행자들이 에너지를 담고 신성한 공간을 형성하거나 마법적 보호 형태를 제공한다고 믿는 마법 원을 포함할 수 있다.[13]7. 7.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도는 의무이자 숭배의 하나이다. 기도는 종교적 계명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아후라 마즈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수행된다.8. 현대 사회의 숭배
현대 사회와 사회학에서 일부 작가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단순히 인정된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그 대신) 소비재 브랜드[14], 스포츠 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연예인)을 숭배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15] 따라서 사회학은 이러한 주장을 확장하여 종교 밖에서 숭배는 사회가 자체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보존하는 형태로, 스스로를 숭배하는 과정이라고 제안한다.[16]
9.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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