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1. 개요
신정일은 1938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한얼사상을 정립하여 1965년 한얼교를 창시했으며, 한온그룹 경영, 대통령 선거 출마, 동양문화신문 발간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1999년 사망 후 사리가 발견되었다. 한얼교는 신정일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문화를 포용하며, 종교, 인종, 이념 등 모든 형태의 분리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는 한얼교 창시 외에도 정치, 경제, 외교,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이라크와의 경제 협력을 통해 명예 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 한글 이름 | 신정일 |
|---|---|
| 한자 이름 | 申正一 |
| 로마자 표기 | Sin Jeong-il |
| 출생일 | 1938년 6월 13일 |
| 사망일 | 1999년 4월 5일 (향년 60세) |
| 사망 장소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정치인 |
| 학력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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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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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한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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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후보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후보 -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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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보 -
이회창
이회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판사, 최연소 대법관,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자유선진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며 강경한 보수주의적 정치 성향으로 알려졌다.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보 -
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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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대학원 동문 -
노태강
노태강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역임했으며 2017년에 임명되었다. -
경북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희용
정희용은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을 지역구로 둔 대한민국 제21대 및 제22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원 보좌진과 경상북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국민의힘 당직을 역임하고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 활동을 수행하며 재선에 성공, 현재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및 해양수산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관련 논란도 있다.
2. 생애
1938년 대구에서 출생한 신정일은 경북중학교, 서울고등학교, 경북대학교 법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한얼사상을 정립하고 한얼교를 창시했는데, 초기에는 '정일회(正一會)'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1978년 한얼교로 개칭했다. 이후 한온그룹 경영, 대통령 선거 출마, 동양문화신문 발행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전개했다.
2.1. 종교 활동: 한얼교 창시
1965년 신정일이 정각묘득을 이룬 후 한얼과 바름을 설법하며 대중 교화를 시작한 것이 한얼교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지부가 생겨났다. 1967년 대한민국 문공부로부터 정식 종교단체 사단법인 정일회로 인가받아 설립되었고, 1978년 '한교선언'을 통해 현재의 한얼교로 개명하였다.
한얼교는 깨달음과 각성에 대한 가르침인 하늘 원리에 기초하여 설립되었으며, 전통적인 종교적 예배 방식보다는 의식의 자기 해방을 추구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다문화를 포용한다.
1967년 한국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종교로 승인받은 후, 전국적인 지부의 급속한 발전으로 한얼교 신자는 최고 200만 명에 달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200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문화공보부가 발간한 «종교 단체의 현황»에 따르면 1982년에는 52만 명, 1997년에는 약 41만 명의 신자가 있었으며,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등 주요 도시에 본사를 포함하여 전국에 186개의 지부가 있었다.
2.1.1. 한얼사상
신정일은 1980년 10월 21일 '한의 원리' 선포식에서 그동안 체계화시킨 한사상을 발표했다.
"내얼이 한얼이다"라는 가르침을 전하며, 자신의 본성인 '나얼'을 깨닫고 각성하여 만물의 본성인 '한얼'과 하나 되어 진리를 실천하는 법을 설파했다. 여기서 "내얼이 한얼이다"라는 말은 "나의 참된 영적 본성은 만물의 영적 본성과 하나이다"라는 의미이다.
한얼교는 단군, 부처, 예수, 노자, 공자 등 모든 깨달은 존재들을 깨달음과 각성의 스승으로 여기며, 다양한 종교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참된 영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얼교의 목표는 종교, 인종, 이념 등 모든 형태의 분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2.2. 정치 활동: 대통령 선거 출마
1983년 6월 근로농민당(당명 변경 전 민주농민당) 명예총재로 취임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한주의 정치 선언'과 함께 '한주의 통일한국당'을 창당,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한사상을 설파하고 한주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통일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남북 평화와 민족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또다시 낙선하였다.
2.3. 경제 활동
신정일은 신기술, 신소재, 에너지 위주의 23개 계열사를 둔 한온그룹 창업주로 기업경영을 하였다. 한온그룹의 모회사인 ㈜한얼상사는 1994년 이라크 거대 유전 광구의 개발권 확보에 성공해 삼성물산, 석유개발공사, ㈜SK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간사회사로 활동했다.
한온 그룹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서 이라크에서 가장 큰 원유 광산 개발권을 획득했으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의약품을 지원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및 외교적 노력으로 이라크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명예 영사로 임명되었다.
2.4. 외교 활동
199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John F. Kennedy school Institute of Politics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중한론>이라는 남북통일의 신기능주의적 정치외교 학설을 발표했고 미국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을 포함 세계적으로 여러 중요 정치인사들과 회담했다. 남북한 군사적 완충지대에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중립국가를 공동 운영하여 정치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며 통일을 촉진하자는 <중한론>은 당시에는 큰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나 신정일 타계 후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이 이뤄지며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대한민국의 석유자원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이라크와의 경제협력과 민간외교 차원에서 이뤄진 의료지원과 인도주의적 외교활동의 결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이라크와 한국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총명예영사로 임명되었다.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10년 전부터 이미 중국과의 우호관계의 초석을 다져왔고 백두산에 그 업적을 기리는 산문 공덕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그 외 스웨덴, 프랑스, 브리아티아, 러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등 여러 국가와 주요 인사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펼쳤다.
2.5. 기타 활동
신정일은 1997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포드대학 Harris Manchester Foundation Fellow로 임명되었다.
그는 한얼교와 함께 한사상연구소를 설립하고, 1971년 도서출판 정화사 대표, 1993년 <동양문화신문> 발행인, 1998년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우슈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의료법인 설립 등 사회, 체육,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은 한얼사상과 철학이 종교적 신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새로운 정신문화와 인류 의식 진화의 초석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6. 사망
신정일은 1999년 4월 5일에 사망하였다. 열반 후 유골에서 여러 과의 진신사리와 최초의 진모사리, 28과의 치사리가 발견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례없는 수의 '사리' (계율을 잘 지킨 승려나 부처의 화장된 유골에서 발견되는 신성한 결정체)가 발견되었으며,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 승려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목격했다. 한얼교는 창립자 추모식에서 '사리'를 전시해왔다."
2015년 한얼교는 창교 50년을 맞이하여 창시자 신정일의 사리 친견과 한얼말씀 판각본을 전시하는 공식 행사를 가졌으며, 한얼교 본원 재건립을 통해 반백년 역사를 기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