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영 (18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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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태영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191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시베리아 출병에 참여했으며, 1950년 한국 전쟁 중 전라북도 편성관구사령관으로 해임되었다. 1952년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부산 정치 파동 당시 계엄령을 요청하기도 했다. 1959년 사망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신태영 (1891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신태영
한자 표기申泰英
로마자 표기Sin Tae-yeong
출생일1891년 2월 1일
사망일1959년 4월 8일
출생지조선 한성부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묘소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2묘역 3호
가족 관계
본관평산
자녀신응균(장남)
신철균(차남)
신박균(삼남)
경력
소속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최종 계급중좌 (일본 육군)
중장 (한국 육군)
주요 보직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군 복무
복무 기간일본 제국 육군 (1912년 ~ 1945년)
대한민국 육군 (1948년 ~ 1952년)
참전1918년 일본의 시베리아 간섭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지휘대한민국 육군본부
전라북도 편성관구
민병대사령부
근무일본 조선군 제19사단
일본 조선군 제20사단
종교
종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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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한성부에서 태어나, 14세 때에 대한제국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제국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 출병에 참가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일본 제국 육군 중좌였다.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경성일보에 기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고, 한국 전쟁 중 전라북도 편성관구사령관을 맡았으나 신성모와의 갈등으로 해임되었다. 이후 복직하여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1959년 사망하여 국립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되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1912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5월 28일 제26기로 졸업하였다. 졸업 동기 중 한국인은 후에 일본군 중장을 지낸 홍사익을 비롯하여 지청천, 이응준, 조철호 등 13명이었다. 견습사관을 거쳐 같은 해 12월 25일, 소위로 임관했다.

1918년 7월 29일, 보병 중위가 되었다. 같은 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일본이 군을 파병한 ‘시베리아 출병’ 당시, 신태영은 북만주 이북에 파견된 일본군 연대 소속 장교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가했다.

1925년 3월 18일, 보병 대위가 되었다. 1927년 12월 16일, 보병 제74연대 중대장이 되었다. 1929년, 육군보병학교 전술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보병 제74연대 부속이 되었다.

1933년 8월 1일, 보병 소령으로 진급했다. 1934년 8월 1일, 보병 제80연대 부속이 되었고, 대전공립중학교 배속 장교가 되었다.

1935년 7월 30일, 제18차 만주사변 논공행상으로 욱일장 4등을 수여받았다.

1938년, 보병 중좌로 진급했다. 같은 해,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7월, 용산역장 사령관을 역임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 육군 중좌였다. 1943년 3월 1일, 예비역 편입되었고, 특히 같은 해 무렵에는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에 참여해 병력 동원의 선전, 선동에 협력했다. 1943년 11월 17일,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발표한 ‘잡아라 철의 신념,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제목의 수기에서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 대화민족과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개척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자신의 첫 출진의 목표가 “야스쿠니 신사(안장)”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1944년 4월 20일, 해주 육군 병사부 부원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3일, 해주 육군 병사부 과장이 되었다.

2.2. 광복 이후 활동

광복 후 육사 동기생 대부분이 남조선국방경비대에 참여하였으나, 신태영은 근신하는 뜻으로 군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진 이후 자진 입대, 1948년 11월 대령 계급과 함께 육군본부 행정참모부장 겸 국방부 제1국장이 되었다.

1949년 준장으로 진급, 호국군 참모부장이 되었으며, 1949년 10월 소장으로 진급과 함께 제3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으나 재임 기간 7개월 만인 1950년 4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국방부 수뇌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고, 정세 판단에서도 미국 고문관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전라북도 편성관구사령관으로서 이 지역의 방어에 임하였으나, 당시 국방장관 신성모와 작전상 의견 충돌을 빚어 1950년 7월 해임되었다. 1952년 1월 복직되면서 곧 중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개월 후인 1952년 3월, 육군 중장 예편과 동시에 국방부 장관이 되어 휴전 협정이 성립되기 직전까지 1년 3개월간 재임하였다. 같은 해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대한 제대장병보도회 회장)도 지냈다.

1959년 사망하여 국립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되었다.

3.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을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신태영이 포함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신태영을 "국가 공인 친일파"로 규정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30여 년 동안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시베리아 출병에 참가했다.
* 중등학교 군사 교육(교련)을 담당하는 군사 교관(배속 장교)으로 근무했다.
* 전시 후방 병참을 위한 용산정거장 사령관을 역임했다.
* 병력 동원과 군사 훈련을 주도한 해주 육군병사부 과장으로 복무했다.
* 강연회 등에 참가하여 조선인 병력 동원 등을 선전·선동하며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4. 평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신태영을 "국가 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4.1. 부정적 평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을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신태영이 포함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신태영을 "국가 공인 친일파"로 규정하며, 그 이유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30여 년 동안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시베리아 간섭 전쟁(시베리아 출병)에 참가하고, 중등학교 군사 교육(교련) 담당 군사 교관(배속 장교), 전시 후방 병참을 위한 용산정거장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병력 동원과 군사 훈련을 주도한 해주 육군병사부 과장으로 복무"한 점과 "강연회 등에 참가하여 조선인 병력 동원 등을 선전·선동하며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