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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루블료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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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감독한 1966년의 소련 영화로, 15세기 러시아의 성상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을 다룬다. 영화는 루블료프의 예술, 종교적 신념, 그리고 몽골-타타르의 침략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겪는 고뇌를 묘사한다. 아나톨리 솔로니친이 루블료프 역을 맡았으며, 이반 라피코프, 니콜라이 그린코, 니콜라이 세르게예프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검열과 논란을 겪었지만, 칸 영화제에서 FIPRESCI 상을 수상하며 비평적인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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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루블료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연극 개봉 포스터
연극 개봉 포스터
감독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제작자타마라 오고로드니코바
각본안드레이 콘찰롭스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출연아나톨리 솔로니친
이반 라피코프
니콜라이 그린코
니콜라이 세르게예프
이르마 라우슈
니콜라이 부를랴예프
롤란 븨코프
볼로트 베이셰날리예프
음악뱌체슬라프 오브친니코프
촬영바딤 유소프
편집류드밀라 페이ጊ노바
타티야나 예고리체바
올가 셰프쿠넨코
제작사모스필름
배급사도호
개봉일
1974년 12월 7일
상영 시간205분 (최초 편집본)
183분 (최종 편집본)
언어러시아어
타타르어
이탈리아어
제작비130만 루블
외부 링크
칸 영화제칸 영화제: 안드레이 루블료프
BFI안드레이 루블료프 (1966)
비평가 탑 100
감독 탑 100

2. 등장인물


  • 아나톨리 솔로니친: 안드레이 루블료프
  • 이반 라피코프: 키릴
  • 니콜라이 그린코: 다니일 초르니 역
  • Сергеев,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니콜라이 세르게예프|lt=니콜라이 세르게예프ru: 테오파네스 더 그릭 역
  • 니콜라이 불리야예프: 보리스카 역
  • 이르마 라우쉬: 도로치카 (성스러운 바보 소녀) 역
  • 유리 나자로프: 즈베니고로드 공작 유리/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1세
  • 유리 니쿨린: 파트리케(전령) 역
  • 롤란 비코프: 스코모로흐 역
  • 미하일 코노노프: 포마 역
  • Граббе, Николай Карлович|니콜라이 그라베|lt=니콜라이 그라베ru: 소트니크 스테판 역
  • Орловский, Дмитрий Дмитриевич|드미트리 오를로프스키|lt=드미트리 오를로프스키ru: 늙은 장인 (목소리: 이반 리조프)
  • 니콜라이 글라즈코프: 예핌 역
  • 넬리 스네기나: 마르파 역
  • 볼로트 베이세날리예프: 에디구, 칸 노가이 오르다 역
  • 이고르 돈스코이: 수난극의 예수
  • 이리나 미로시니첸코: 수난극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은 안드레이 루블료프 역에 아나톨리 솔로니친을 캐스팅했다. 당시 솔로니친은 스베르들로프스크의 한 극장에서 활동하던 무명 배우였다. 타르콥스키 감독은 역사적 인물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대한 관객들의 선입견을 우려하여 무명 배우를 캐스팅하는 방식을 선호했다.[12] 솔로니친은 영화 잡지 ''이스쿠스트보 키노''(Iskusstvo Kino)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루블료프 역에 매료되었으며, 타르콥스키 감독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까지 찾아가 자신이 이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설득했다.[12] 타르콥스키 감독 역시 솔로니친에게서 "악마적인 집념을 볼 수 있는 강력한 표현력을 가진 얼굴"을 발견하고 그를 캐스팅했다.[13]

2. 1. 주요 등장인물

아나톨리 솔로니친 - 안드레이 루블료프

이반 라피코프 - 키릴

니콜라이 그린코 - 다니일 초르니 역

Сергеев,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니콜라이 세르게예프|lt=니콜라이 세르게예프ru - 테오파네스 더 그릭 역

니콜라이 불리야예프 - 보리스카 역

이르마 라우쉬 - 도로치카 (성스러운 바보 소녀) 역

유리 나자로프 - 즈베니고로드 공작 유리/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1세

유리 니쿨린 - 파트리케(전령) 역

롤란 비코프 - 스코모로흐 역

미하일 코노노프 - 포마 역

Граббе, Николай Карлович|니콜라이 그라베|lt=니콜라이 그라베ru - 소트니크 스테판 역

Орловский, Дмитрий Дмитриевич|드미트리 오를로프스키|lt=드미트리 오를로프스키ru - 늙은 장인 (목소리: 이반 리조프)

니콜라이 글라즈코프 - 예핌 역

넬리 스네기나 - 마르파 역

볼로트 베이세날리예프 - 에디구, 칸 노가이 오르다 역

이고르 돈스코이 - 수난극의 예수

이리나 미로시니첸코 - 수난극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

안드레이, 다니일, 키릴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방랑 수도사이자 종교 화가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창작적 성격을 가진다. 안드레이는 인간의 선함을 찾고 영감을 주는 예술을 추구한다. 다니일은 내성적이고 자기 성찰에 집중한다. 키릴은 재능은 부족하지만 명성을 얻고자 하며 질투심이 많다.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을 떠나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스코모로흐에게 조롱을 당한다. 키릴은 테오파네스 더 그레크의 작업장에 도착하여 제안을 받지만, 안드레이가 선택되자 질투심에 세속으로 떠난다. 숲에서 안드레이는 쿠팔라의 밤 의식을 목격하고, 마르파라는 여인을 만나 인간 본성과 신념에 대해 생각한다. 블라디미르에서 교회 장식 작업을 맡지만,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주제를 그릴 수 없어 갈등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피하고자 무명 배우였던 아나톨리 솔로니친을 안드레이 루블료프 역에 캐스팅했다.[12] 솔로니친은 이 역할에 대한 열정과 타르코프스키의 신뢰를 바탕으로 복잡한 심리 과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13]

2. 1. 1. 안드레이 루블료프

아나톨리 솔로니친이 연기한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다. 그는 외부 세계에서 성화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키릴과 테오파네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1]

테오파네스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모스크바 수태고지 성당의 장식 작업에 제자로 초대하려 했으나, 키릴 대신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선택된다.[1]

안드레이는 쿠팔라의 밤을 기념하는 이교도들의 횃불 의식을 목격하고 그들의 신념 때문에 박해받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만난 마르파라는 여인은 안드레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1]

2. 1. 2. 키릴

키릴(Кириллru)은 루블료프의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이반 라피코프가 키릴 역을 맡았다.

2. 1. 3. 다닐 초르니

니콜라이 그린코는 영화에서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키릴의 동료인 다닐 초르니를 연기했다.[1] 다닐은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루블료프나 키릴과는 다른 유형의 예술가로 묘사된다.[1]

2. 1. 4. 테오파네스 더 그릭

Феофан Грек|테오파네스 더 그릭ru은 작중 인물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스승으로 언급된다. 영화에서는 안드레이와 다닐이 블라디미르의 한 교회를 장식하는 작업이 두 달째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안드레이가 다닐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드레이는 '최후의 심판'과 같은 주제를 그릴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싶지 않다는 점과, 예술가로서 작업에 필요한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는 점을 든다.[1] 이러한 안드레이의 고뇌는 테오파네스 더 그릭의 이콘 화풍과 대조를 이루며, 당시 러시아 이콘 예술의 변화를 보여준다.

2. 2. 기타 등장인물

보리스카와 도로치카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 '''이르마 라우쉬''' - 성스러운 바보 소녀 도로치카 역[1]
  • '''유리 나자로프''' - 즈베니고로드의 공작 유리/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1세[1]
  • '''유리 니쿨린''' - 파트리케 역[1]
  • '''롤란 비코프''' - 스코모로흐 역[1]
  • '''미하일 코노노프''' - 포마 역[1]
  • '''Граббе|니콜라이 그라베ru''' - 소트니크 스테판 역[1]
  • '''Орловский|드미트리 오를로프스키ru''' - 늙은 장인 역 (목소리: 이반 리조프)[1]
  • '''니콜라이 글라즈코프''' - 예핌 역[1]
  • '''넬리 스네기나''' - 마르파 역[1]
  • '''볼로트 베이세날리예프''' - 에디구, 칸 노가이 오르다 역[1]
  • '''이고르 돈스코이''' - 그리스도[1]
  • '''이리나 미로시니첸코''' - 막달라 마리아 역[1]


블라디미르 대공의 동생은 타타르족과 연합하여 도시를 습격하고, 도시는 엄청난 살육과 방화로 황폐화된다.[1] 포마는 혼란을 틈타 탈출하려 하지만, 강을 건너던 중 화살에 맞아 죽는다.[1] 주교의 전령 파트리케이는 타타르족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도시의 금이 있는 곳을 밝히지 않고, 결국 끓는 금속을 입에 붓는 고문으로 죽는다.[1]

수도원에서 피난민들은 고향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블라디미르에서 탈출한 한 남자는 키릴로 확인된다.[1] 그는 수도원에 돌아가길 청하고, 속죄로 성경을 15번 베껴 쓰는 조건으로 허락받는다.[1]

2. 2. 1. 보리스카

Бориска|보리스카ru는 종 제작자의 아들이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예술가의 창작 과정과 고뇌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다.[1] 니콜라이 불리야예프가 보리스카 역을 맡았다.[1]

2. 2. 2. 도로치카

타타르족이 블라디미르를 침략하면서 도시와 시민들이 피신한 교회마저 함락된다. 교회 안에서 러시아 병사가 성스러운 바보 소녀 도로치카를 강간하려 하자, 안드레이는 도끼로 병사를 죽여 도로치카를 구한다.[1] 그러나 결국 교회에는 안드레이와 넋이 나간 도로치카만이 살아남게 된다.[1]

시간이 흘러 종 제작이 완료된 후, 종이 울리는 순간에 도로치카는 말을 이끌고 아이로 보이는 아이를 앞세운 채 군중 속을 걸어간다. 종이 완벽하게 울리자,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1] 마지막 장면에서 안드레이는 멀리 진흙탕 길을 걸어가는 도로치카와 아이, 그리고 말을 본다.[1]

3. 줄거리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본편과 느슨하게 관련된 서론과 에필로그를 가지고 있으며, 본편은 15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성상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의 과도기적 순간들을 7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보여준다.

이야기는 1400년, 루블료프와 동료 수도사들이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스코모로흐(광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후 루블료프는 테오파네스 더 그레크의 제안을 받아 모스크바에서 함께 작업하게 되지만, 신앙과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등을 겪는다. 1408년, 루블료프는 블라디미르의 생신녀 수면 대성당 벽화 작업을 맡지만,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뇌로 어려움을 겪는다.

1408년,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블라디미르는 큰 피해를 입고, 루블료프는 자신의 작품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는다. 그는 도로치카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게 되고, 죄책감으로 인해 그림을 포기하고 침묵 서약을 한다. 1412년, 안드레이는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으로 돌아가 침묵 수행을 이어간다.

1423년, 어린 보리스카가 종 제작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보리스카는 아버지에게서 종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며 작업에 착수하고, 안드레이는 보리스카를 통해 예술적 부활을 암시한다. 마침내 완성된 종이 울리고, 보리스카는 안드레이에게 아버지가 종 제작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안드레이는 오랜 침묵을 깨고 보리스카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에필로그는 루블료프가 그린 실제 성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3. 1. 프롤로그

열기구가 강 옆 성당 첨탑에 묶여 있고, 예핌이라는 남자가 멜빵에 매달린 채 공중에 떠 있다. 강에서 도착한 무지한 군중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열기구는 성공적으로 발사된다. 예핌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비행의 감각에 압도되어 기뻐하지만, 잠시 후 불시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는 희망이 쉽게 꺾이는 대담한 몽상가들을 대표하는 여러 창조적인 인물 중 첫 번째 인물이다. 추락 후, 한 마리의 이 연못가에서 거꾸로 구르는 모습이 보인다.[51]

3. 2. 제1부: 동란과 침묵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5세기 초 모스크바 대공국을 배경으로, 타타르의 침략과 루스 제후들의 내란이 이어지는 동란기를 겪는 러시아 최고의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고뇌와 모색을 그린 작품이다.[51] 루블료프의 생애를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에 얽힌 삽화와 중세 러시아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 삽화를 엮어 8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합쳐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남자 예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핌은 하늘을 나는 감각에 기뻐하지만 곧 추락하는데, 이는 희망이 쉽게 꺾이는 몽상가를 상징한다.

본편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8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은 연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최후의 심판 1408년 여름」까지가 제1부, 「습격 1408년」에서 「에필로그」까지가 제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개봉 당시 제1부에는 "동란 그리고 침묵"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제1부는 1400년부터 1408년까지의 이야기로, 루블료프가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을 떠나 모스크바로 향하는 과정, 테오파네스 더 그레크와의 만남, 생신녀 수면 대성당 벽화 작업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다.

3. 2. 1. 1400년: 떠돌이 광대

안드레이, 다닐, 키릴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방랑 수도사이자 종교 화가들이다. 이 셋은 서로 다른 창작적 성격을 나타낸다.

안드레이는 관찰자이며, 인간주의자로 사람들에게서 선을 찾고 그의 예술이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닌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 다니일은 내성적이고 체념적이며, 창의성보다는 자기 실현에 더 집중한다. 키릴은 화가로서의 재능이 부족하지만,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질투심이 많고, 독선적이며, 매우 지적이고 통찰력이 있다.

셋은 오랫동안 살았던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을 막 떠나 모스크바로 향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 그들은 한 헛간에서 비를 피하는데, 그곳에서는 어릿광대(스코모로흐)가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스코모로흐는 신랄하고 풍자적인 사회 비평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국가, 보야르, 그리고 교회의 적이다. 그는 들어오는 수도사들을 가볍게 조롱한다.

키릴은 스코모로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자리를 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이 들이닥쳐 스코모로흐를 체포하고, 의식을 잃게 만든 후 그의 악기를 부순다. 잠시 비가 멈춘 사이, 키릴이 돌아와 동료 수도사들에게 떠나라고 설득한다.

모스크바 안드로니코프 수도원

3. 2. 2. 1405년 ~ 1406년: 테오파네스 더 그릭

키릴은 거장 화가 테오파네스 더 그레크의 작업장을 방문한다. 테오파네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화를 작업하고 있었는데, 복잡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의 견해는 인본주의적이면서 신을 경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소적이고 환멸을 느껴 자신의 예술을 기술이자 일로 여긴다. 키릴은 테오파네스와 대화를 나누고, 테오파네스는 키릴의 이해력과 박식함에 감명을 받아 그를 모스크바 수태고지 성당의 장식 작업에 제자로 초대한다. 키릴은 이를 수락하는데,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모든 형제단과 안드레이 루블료프 앞에서 테오파네스가 직접 제안을 할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안드레이는 외부 세계에서 성화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고, 키릴과 테오파네스는 그를 존경했다.[1]

며칠 후 테오파네스의 사자가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 오지만, 사자는 루블료프에게 테오파네스가 조수로 와주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루블료프는 즉시 승낙한다. 이를 들은 키릴은 질투심과 깊은 분노에 휩싸여 수도원 생활을 버리고 환속한다.[1]

3. 2. 3. 1406년: 안드레이의 고뇌

테오파네스와 루블료프는 각자의 신앙과 이콘의 존재 방식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테오파네스는 러시아 인민의 무지가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며, 인민이 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신앙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루블료프는 인민은 확실히 무지하지만, 함부로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일깨우는 이콘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영상은 예수의 십자가형을 재현하는 장면으로 바뀌고, 루블료프의 읊조림이 겹쳐진다.[1]

3. 2. 4. 1408년: 축제

루블료프 일행이 탄 배가 강가에 닿는다. 그날 밤, 루블료프는 웃고, 소리 지르고, 아양을 떨며 색욕 의식을 치르는 전라의 이교도들과 마주친다. 수상한 광경에 마음을 빼앗긴 루블료프는 이교도 집단에 다가가지만, 이교도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묶인다. 그곳에 모피 한 장만 걸친 이교도 여인(넬리 스네기나)이 나타나 모피를 벗고, 묶인 루블료프와 입을 맞춘다. 다음 날 아침, 루블료프 일행이 배를 띄워 강을 따라 나아갈 때, 강가에서는 병사들이 이교도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의 여인은 강으로 도망쳐 루블료프 일행의 배 곁을 헤엄쳐 간다.

3. 2. 5. 1408년 여름: 최후의 심판

루블료프와 다니일은 블라디미르의 우스펜스키 대성당(생신녀 수면 대성당)의 벽화를 제작하라는 대공(유리 나자로프)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루블료프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뇌로 작업에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함께 성당에서 일하던 조각가들은 대공의 측근 스테판(니콜라이 그라베)과 대립하여 대공의 동생(유리 나자로프, 대공과 1인 2역) 밑에서 일하겠다며 떠났지만, 스테판에게 습격당해 눈을 찔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성당에 유로지바야의 여인[1] (일마 라우쉬)이 들어오고, 루블료프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벽화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얻어 환희한다.

3. 3. 제2부: 시련과 부활

1408년부터 1424년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권력에 굶주린 대공의 동생은 타타르족과 동맹을 맺고 블라디미르를 습격하여 엄청난 살육과 방화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안드레이는 자신의 작품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도로치카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게 되고, 죄책감으로 인해 그림을 포기하고 침묵 서약을 한다.

이후, 어린 보리스카가 종 제작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보리스카는 아버지에게서 종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며 대공의 명을 받아 종 제작에 착수하고, 구경꾼들 틈에서 침묵 수행 중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발견한다. 종 제작 과정에서 안드레이는 과거 자신을 모함했던 ''스코모로흐''(광대)와 재회한다. 키릴이 나타나 안드레이를 변호하고, 자신의 질투심을 고백하며 안드레이에게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을 간청하지만, 안드레이는 침묵을 지킨다.

마침내 완성된 종이 울리고, 보리스카는 안드레이에게 아버지가 종 제작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안드레이는 오랜 침묵을 깨고 보리스카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며 예술적 부활을 암시한다.

3. 3. 1. 1408년: 타타르의 침략



대공이 리투아니아로 떠나자, 권력에 굶주린 그의 동생은 타타르족과 동맹을 맺고 블라디미르를 습격한다. 기병을 앞세운 연합군의 침략으로 도시에는 엄청난 살육과 방화가 발생한다. 한 장면에서는 말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포마는 도시의 혼란 속에서 탈출하여 근처 시골로 향하지만, 강을 건너던 중 화살에 맞아 죽는다. 타타르족은 안드레이의 그림으로 장식된, 시민들이 피신한 교회로 쳐들어간다. 타타르족은 자비 없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칠해진 나무 제단을 불태운다. 교회에 있던 안드레이는 한 러시아 병사가 도로치카를 강간하려 하자, 도끼로 그를 죽여 도로치카를 구한다. 주교의 전령 파트리케이는 고문을 받지만, 도시의 금이 있는 장소를 밝히기를 거부한다. 결국 타타르족은 녹은 십자가에서 나온 뜨거운 액체 금속을 그의 입에 부어 그를 죽인다.

결국 교회에는 안드레이와 도로치카만이 살아남는다. 안드레이는 죽은 테오파네스 더 그레크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작품의 상실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슬퍼하고, 도로치카는 넋이 나간 채 죽은 여자의 머리를 땋는다. 안드레이는 다른 사람을 죽인 죄를 뉘우치기 위해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침묵 서약을 한다.

3. 3. 2. 1412년: 침묵

1412년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블라디미르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도시 곳곳에서 살육과 방화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림으로 장식된 교회로 피신했지만, 타타르족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고 제단을 불태웠다.[1] 안드레이는 도로치카를 강간하려는 병사를 도끼로 죽여 그녀를 구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껴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침묵 서약을 했다.[1]

이후 안드레이는 광기 어린 여자 도로치카와 함께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으로 돌아가 몸을 의탁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지냈다.[2]

3. 3. 3. 1423년 ~ 1424년: 종

보리스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서 종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며 대공의 명을 받아 종 제작에 착수한다. 보리스카는 아버지의 옛 작업 팀원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지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종 제작을 이끌어간다. 이 과정에서 보리스카는 점차 자신감을 잃고, 구경꾼들 틈에서 침묵 수행 중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발견한다.

종 제작 과정에서 안드레이는 과거 자신을 모함했던 ''스코모로흐''(광대)와 재회한다. 키릴이 나타나 안드레이를 변호하고, 자신의 질투심을 고백하며 안드레이에게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을 간청하지만, 안드레이는 침묵을 지킨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유명한 성 삼위일체 (;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종 제작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보리스카는 불안과 불신에 휩싸이지만, 신에게 도움을 청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마침내 완성된 종은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공과 많은 군중 앞에서 울려 퍼지고, 도로치카가 아이와 함께 나타나 미소짓는다. 보리스카는 안드레이에게 아버지가 종 제작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안드레이는 침묵의 맹세를 깨고 보리스카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자네는 종을 만들고, 나는 성화를 그릴 거야."

3. 4. 에필로그

영화의 유일한 컬러 장면으로,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실제 성상들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상들은 ''왕좌의 그리스도'', ''열두 사도'', ''수태고지'', ''예루살렘 입성'', ''그리스도의 탄생'', ''예수 변용'', ''나사로의 부활'', ''삼위일체'', ''대천사 미카엘'', ''사도 바울'', ''구세주'' 순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장면은 성상들에서 교차 페이드되며 천둥과 비 속에서 강가에 서 있는 네 마리의 말을 보여준다.

4. 역사적 배경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배경은 15세기 러시아로, 타타르족의 침략과 루스 제후들 간의 내분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이다.

5. 제작 과정



1961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모스필름안드레이 루블료프에 관한 영화를 제안했고, 1962년에 각본 집필 계약을 맺었다. 타르코프스키와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는 중세 역사와 예술을 연구하며 각본을 썼고, 1964년 4월에 각본이 승인되었다.[5] 이 영화는 루블료프의 전기나 역사 영화가 아니라, 예술가의 성숙 과정을 그리려는 의도였다.[11]

주연 배우 아나톨리 솔로니친은 타르코프스키가 생각하는 루블료프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웠기에 캐스팅되었다. 모스필름은 솔로니친의 기용을 반대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고미술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어 그의 기용을 결정했다.[56]

촬영은 1965년 4월 14일에 수즈달에서 시작되어,[57] 넬를리 강, 블라디미르, 프스코프 등지의 사적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다.[59] 최초 예산은 160만 루블이었으나, 여러 차례 삭감되어 90만 루블까지 줄었다. 이로 인해 쿨리코보 전투 장면 등 각본의 일부 장면이 삭제되었다.[57]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의 주요 부분을 흑백 영화로, 루블료프의 성상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는 컬러로 촬영했다. 그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과 예술의 상호 의존성을 나타내고자 이러한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19]

영화는 여러 편집 버전을 거쳤다. 초기 편집본은 195분 이상이었으나, 고스키노의 요구로 길이가 줄어들고, 부정적인 내용, 폭력, 노출 장면 등이 삭제되었다.[3][21]

5. 1. 각본 집필

1961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첫 장편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을 작업하던 중 모스필름에 러시아 최고의 성상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을 그린 영화를 제안했다. 1962년에 계약이 체결되었고, 타르코프스키와 공동 시나리오 작가 안드레이 콘찰롭스키는 2년 이상 중세 저술, 연대기, 중세 역사와 예술에 관한 책을 연구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1964년 4월에 시나리오가 승인되었다.[5]

타르코프스키에 따르면,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원래 아이디어는 배우 바실리 리바노프에게서 나왔다. 리바노프는 모스크바 외곽의 숲을 산책하던 중 타르코프스키, 콘찰롭스키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자고 제안했다.[10]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대한 역사적이거나 전기적인 영화가 되기를 의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창의적인 인물의 개성과 그가 살아가는 시대 사이의 연결을 보여주는 것에 동기 부여를 받았다. 그는 러시아 문화사에서 그의 중요성 때문에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선택했다.[11]

5. 2. 캐스팅



타르코프스키는 안드레이 루블료프 역에 아나톨리 솔로니친을 캐스팅했다. 당시 솔로니친은 스베르들로프스크의 한 극장에서 무명 배우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역사적 인물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대해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배역을 연상시키지 않을 무명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선호했다. 솔로니친은 영화 잡지 ''이스쿠스트보 키노''(Iskusstvo Kino)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그 역할에 매우 열정적이었으며, 타르코프스키를 만나기 위해 자비로 모스크바까지 가서 그보다 더 잘 이 역할을 할 사람은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12] 타르코프스키도 같은 생각을 하며, "솔로니친과 함께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안드레이 루블료프 역을 위해 "악마적인 집념을 볼 수 있는 강력한 표현력을 가진 얼굴"을 요구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솔로니친은 적절한 외모와 복잡한 심리 과정을 보여주는 재능을 제공했다.[13] 솔로니친은 이후에도 타르코프스키와 함께하며, ''솔라리스'', ''거울'', ''스토커''에 출연했으며, 타르코프스키가 1976년 모스크바 렌콤 극장에서 연출한 ''햄릿'' 무대 작품의 타이틀 롤을 맡기도 했다.

5. 3. 촬영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의 주요 부분을 흑백 영화로, 루블료프의 성상 몇 점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는 컬러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으로 색을 인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선택을 정당화했다.[19] 따라서 루블료프의 삶은 흑백으로, 그의 예술은 컬러로 표현하여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과 예술의 상호 의존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1969년 인터뷰에서 타르코프스키는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날아가는 남자에 대해 "창조는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바치는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대담함의 상징이다. 날고 싶거나, 방법을 배우지 않고 종을 주조하거나, 성상을 그리는 것 등, 이 모든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를 위해 죽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녹아들고, 자신을 완전히 바쳐야 한다고 요구한다."라고 말했다.[20]

루블료프의 성상을 보여주는 컬러 시퀀스는 처음에는 몇 가지 세부 사항만 보여주다가 루블료프의 가장 유명한 성상인 ''성 삼위일체''를 보여주며 절정에 이른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러한 컬러 피날레를 통해 관객에게 휴식을 주고 루블료프의 삶에서 벗어나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했다. 영화는 비가 내리는 강가에 있는 말의 이미지로 끝을 맺는데, 타르코프스키에게 말은 삶을 상징하며, 마지막 장면(그리고 영화의 다른 많은 장면)에 말을 등장시킨 것은 삶이 루블료프의 모든 예술의 근원임을 의미했다.[12]

촬영은 각본 승인 1년 후인 1965년 4월 14일, 수즈달에서 시작되었다.[57] 수즈달의 포크로프스키 성당에서 "종 1423년" 장면을 촬영했고,[58] 이후 넬를리 강, 블라디미르, 프스코프, 이즈보르스크, 페초르ィ의 사적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59] 초기 촬영 예산은 160만 루블이었으나, 여러 차례 삭감되어 90만 루블까지 줄었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쿨리코보 전투 장면, 대공의 동생이 백조를 사냥하는 장면, 타타르 병사와 광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산을 농민들이 돕는 장면 등 각본의 일부 장면이 삭제되었다.[57] 제작은 1965년 11월부터 1966년 4월까지 폭설로 인해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촬영 시작 약 1년 만에 작품이 완성되었다.[58]

5. 4. 편집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여러 편집 버전을 거쳤다. 초기 편집본은 ''안드레이 수난곡''(Страсти по Андрею)으로 불렸으며, 195분 이상이었다.[3] 1966년 7월에 완성된 이 버전은 고스키노의 요구로 길이가 줄어들고, 부정적인 내용, 폭력, 노출 장면 등이 삭제되었다.[3][21]

타르코프스키는 고스키노 위원장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결국 186분 버전으로 영화를 편집해야 했다.[22] 로버트 버드의 분석에 따르면, 초기 버전과 비교했을 때 석공들의 눈을 뚫는 장면, 불타는 소, 창에 찔린 말 등의 장면이 삭제되었고, 여러 회상 장면도 삭제되었다.[23]

1990년대 중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205분 버전의 첫 번째 편집본을 레이저디스크DVD로 출시했다.[29] 타르코프스키는 186분 버전을 선호했지만, 크라이테리온은 205분 버전을 "감독판"으로 홍보했다.[29] 타르코프스키의 여동생에 따르면, 편집자 중 한 명이었던 류드밀라 페이기노바가 205분 버전의 프린트를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29] 2018년에는 크라이테리온에서 두 버전 모두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31]

이 외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1973년 북아메리카 개봉판은 165분 버전이었고,[60] 영국에서는 145분 버전,[65] 일본에서는 182분 버전이 공개되었다.[64] 1973년 소련 텔레비전 방영판은 101분 버전이었으며, 에필로그는 흑백으로 방영되었다.[66] 영화 시작 부분에 루블료프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문이 추가된 버전도 있다.[66]

6. 검열과 논란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소련 당국의 검열과 종교적, 폭력적 묘사로 인해 많은 논란을 겪었다. 1966년 모스크바 돔 키노에서 단독 상영되었을 때 관객들은 열광했지만, 소련 당국은 영화의 이념적 오류와 반역사성을 이유로 개봉을 승인하지 않았다.[24]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영화가 대도시의 발전과 몽골과의 투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24]

1967년, 칸 영화제10월 혁명 50주년 기념 회고전의 일환으로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초청했지만, 소련 당국은 영화가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1969년 칸 영화제에 재초청되었을 때, 소련 당국은 경쟁 부문이 아닌 특별 상영을 조건으로 허용했고, 영화는 마지막 날 새벽 4시에 단 한 번 상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FIPRESCI 상을 수상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21]

소련 내에서도 영화감독 그리고리 코진체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등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영화 개봉을 지지했다.[16] 타르콥스키 감독과 그의 부인 라리사 타르코프스카야는 여러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지지를 호소했고, 알렉세이 코시긴 당시 소련 수상에게 직접 영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타르콥스키가 추가 삭제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971년 12월 24일, 1966년 버전인 186분 길이로 소련에서 개봉되었다.[25] 277개 극장에서 개봉되어 298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으며, 타르콥스키는 일기에 모든 극장이 매진되었다고 기록했다.[26]

6. 1. 소련 당국의 검열

영화의 첫 번째 편집본은 ''안드레이 수난곡''(Страсти по Андрею, "안드레이에 따른 수난곡")으로 알려졌지만, 이 제목은 영화 개봉 버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1966년 7월에 완성된 첫 번째 편집본은 195분 이상이었다. 고스키노는 영화의 길이, 부정적인 내용, 폭력 및 누드 장면을 이유로 삭감을 요구했다.[3][21] 타르콥스키가 이 첫 번째 버전을 완성한 후, 영화가 소련에서 널리 개봉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정부의 삭감 요구로 처음에는 190분 버전이 나왔다. 타르콥스키는 고스키노 위원장 알렉세이 로마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추가 삭감을 요구했고 타르콥스키는 길이를 186분으로 줄였다.[22]

로버트 버드는 편집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삭감은 석공들의 뚫린 눈, 불타는 소, 그리고 창에 찔린 말(그 끔찍한 낙하는 남았지만)의 가장 생생한 장면이었다. 플래시백이나 환상의 네 장면도 완전히 삭제되었다. 2화에서 포마의 비행 환상, 4화에서 비에 젖은 참나무 아래 세 명의 수도승을 회상하는 안드레이, 5화에서 어린 왕자가 대공을 굴욕시키는 환상, 그리고 7화에서 보리스카가 종 주조를 회상하는 장면."[23]

1966년 모스크바의 돔 키노에서 영화가 단독 상영으로 초연되었다. 관객 반응은 영화의 폭력 묘사가 자연주의적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이었다.[5] 그러나 이 영화는 소련 검열관의 개봉 승인을 받지 못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검토에서 "영화의 이념적 오류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썼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주인공의 삶의 배경, 즉 대도시의 급속한 발전과 몽골과의 투쟁을 묘사하지 못해 "반역사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24]

본 작품의 제1판은 1966년 7월에 완성되었다. 이 당시의 제목은 『안드레이의 수난』(''Страсти по Андрею''ru)이었고, 상영 시간은 205분이었다. 그러나 중앙 행정 기관 고스키노의 검열에서 역사적 해석이 비판받았고, 상영 시간 단축과 폭력적 묘사, 누드 장면 삭제가 요구되어 즉시 일반 상영이 허가되지 않았다. 비판받은 구체적인 내용은 「습격 1408년」에서 민중이 타타르군에게 유린 및 학살되어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러시아 인민은 좀 더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타타르와 계속 싸웠다는 역사적 해석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또한 폭력적 묘사는 「최후의 심판 1408년 여름」에서 조각가들의 눈을 찌르는 장면 등, 누드 장면은 「축일 1408년」의 이교도 의식 장면 등이 논란이 되었다.

6. 2. 폭력성과 종교적 묘사 논란

영화의 첫 번째 편집본은 '안드레이 수난곡'으로 알려졌지만, 개봉 버전에는 이 제목이 사용되지 않았다. 고스키노는 영화의 길이, 부정적인 내용, 폭력 및 노출을 이유로 삭감을 요구했다.[3][21]

영화 속 여러 장면은 폭력, 고문,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묘사하고 있어 개봉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블라디미르 습격 장면에서는 수도사의 실명과 고문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 장면은 대부분 연출되었지만, 타타르족의 블라디미르 습격 중 소에게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 소는 석면 코트를 입어 실제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계단에서 떨어져 창에 찔리는 장면은 실제로 말을 죽여 촬영한 장면이었다.[23]

1967년 잡지 '문학 평론'과의 인터뷰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속 잔혹함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어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매우 섬세하게 처리했으며, 우리 영화보다 훨씬 더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들도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잔혹함을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23]

본 작품의 제1판은 1966년 7월에 완성되었다. 이 당시의 제목은 『안드레이의 수난』이었고, 상영 시간은 205분이었다. 그러나 중앙 행정 기관 고스키노의 검열에서 역사적 해석이 비판받았고, 상영 시간 단축과 폭력적 묘사, 누드 장면 삭제가 요구되어 즉시 일반 상영이 허가되지 않았다. 비판받은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습격 1408년」의 장에서 민중이 타타르군에게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묘사는 러시아 인민이 좀 더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타타르와 계속 싸웠다는 역사적 해석에 어긋난다는 점, 「최후의 심판 1408년 여름」의 장에서 조각가들의 눈을 찌르는 장면 등의 폭력적 묘사, 「축일 1408년」의 장의 이교도들의 의식 장면 등 누드 장면이 지적되었다.[60][61]

7. 평가 및 영향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후대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9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경쟁 부문 밖에서만 상영되어 황금종려상이나 그랑프리를 받을 자격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IPRESCI 상을 수상했다.[50] 1971년 프랑스 영화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74] 1973년에는 최우수 외국 영화 부문 유시상을 수상했다.[75]

7. 1. 비평가들의 평가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리뷰 애그리게이터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43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95%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평균 평점은 8.9/10이다. 웹사이트의 비평적 합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예술, 신념,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감동적인 논문을 형성하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웅장한 스케일로 여과해내는 지적인 서사시이다"라고 밝히고 있다.[32]

J. 호버먼은 《빌리지 보이스》의 영화 평론가로서, 영화의 초기 반응을 크리테리온 DVD판에 포함된 영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2년 후(1973년), 《루블료프》는 뉴욕 영화제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미국 배급사인 컬럼비아 픽처스에 의해 20분이 더 잘렸다. 《타임》은 이 영화를 《닥터 지바고》와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다른 뉴욕 평론가들은 루블료프의 명백한 단축을 이유로 해설을 거부했다."[17]

영화 평론가 로스티슬라프 유레네프는 이 작품을 "영화의 구성은 복잡하고 때로는 장황하게 느껴진다. 모든 인간상을 배우가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개성과 재능이 넘치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특이하고 시적인 영화의 매우 높은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고 평했다.[69] 구성의 복잡함과 장황함에 대해 영화감독이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국립 영화 대학교 시절 스승인 미하일 롬도 "전체적으로는 통일성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타르코프스키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유사성에 대한 비평도 많이 이루어졌다. 영화 평론가 사토 타다오는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단지 중세의 압제와 비참함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살아온 현대 소비에트의 압제를 그것에 겹쳐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압제를 지켜본 눈이 루블료프의 이콘과 같은 자애로운 예술 작품을 낳는 힘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다만, 영화 평론가 장-미셸 프로동은 "주인공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20세기 소련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유사점을 그리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70]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연도
1969칸 영화제 FIPRESCI 상[50]
1971프랑스 영화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74]
1973최우수 외국 영화 부문 유시상[75]


7. 2. 영화사적 의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리뷰 애그리게이터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43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95%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평균 평점은 8.9/10이다. 웹사이트의 비평적 합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예술, 신념,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감동적인 논문을 형성하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웅장한 스케일로 여과해내는 지적인 서사시이다"라고 밝히고 있다.[32]

J. 호버먼은 《빌리지 보이스》의 영화 평론가로서, 영화의 초기 반응을 크리테리온 DVD판에 포함된 영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73년, 《루블료프》는 뉴욕 영화제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미국 배급사인 컬럼비아 픽처스에 의해 20분이 더 잘렸다. 《타임》은 이 영화를 《닥터 지바고》와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다른 뉴욕 평론가들은 루블료프의 명백한 단축을 이유로 해설을 거부했다."[17]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1969년,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소련 관리들의 압력으로 인해, 이 영화는 경쟁 부문 밖에서만 상영될 수 있었고, 따라서 황금종려상이나 그랑프리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FIPRESCI 상을 수상했다. 1971년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프랑스 영화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에는 최우수 외국 영화 부문 유시상을 수상했다.

7. 3. 후대 영화에 미친 영향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969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경쟁 부문 밖에서만 상영되어 황금종려상이나 그랑프리 수상 자격은 없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FIPRESCI 상을 수상했다.[17] 1971년에는 프랑스 영화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을, 1973년에는 최우수 외국 영화 부문 유시상을 수상했다.[17]

8. 한국적 관점에서의 해석

이전 답변에서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한국적 관점에서의 해석' 섹션을 작성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전히 원본 소스가 없는 상황이므로, 해당 섹션에 대한 내용을 생성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지침에 따라 위키텍스트를 작성하거나 수정하겠습니다.

참조

[1] 웹사이트 "''ANDREI RUBLEV'' (15)" http://www.bbfc.co.u[...] 2016-02-22
[2]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Russian and Soviet Cinema Rowman & Littlefield
[3] 웹사이트 Andrei Rublev: An Icon Emerges https://www.criterio[...] The Criterion Collection 2019-04-18
[4] 서적 Sculpting in Time The Bodley Head Ltd 1986
[5] 서적 Tarkovsky: Cinema as Poetry Faber and Faber
[6] 웹사이트 Festival de Cannes: Andrei Rublev http://www.festival-[...] 2009-04-10
[7] 웹사이트 Andrei Rublev (1966) https://explore.bfi.[...] British Film Institute 2015-03-02
[8] 웹사이트 Critics' top 100 http://explore.bfi.o[...] 2016-03-13
[9] 웹사이트 Directors' top 100 http://explore.bfi.o[...] 2016-03-13
[10] 간행물 Interview Andrzej Tarkowski — o filmie "Rublow" https://www.ucalgary[...] 2007-12-09
[11] 간행물 Begegnung mit Andrej Tarkowskij https://www.ucalgary[...] 2007-12-09
[12] 간행물 Interview L'artiste dans l'ancienne Russe et dans l'URSS nouvelle (Entretien avec Andrei Tarkovsky) http://www.acs.ucalg[...] 1969-10
[13] 간행물 Hüsség a vállalt eszméhez http://www.acs.ucalg[...] 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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