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베타 파르네세
1. 개요
엘리사베타 파르네세는 1692년 파르마에서 태어난 인물로,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의 왕비이다. 그녀는 파르마 공국의 후계자가 될 운명이었으나, 1714년 펠리페 5세와 결혼하여 스페인 왕비가 되었다. 엘리사베타는 빼앗긴 스페인 영토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알베로니 추기경 등과 함께 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펠리페 5세 사후 그녀의 장남 카를로스가 스페인 국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 펠리페는 파르마 공작이 되었다. 그녀는 펠리페 5세와의 사이에서 카를로스 3세, 펠리페,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등 여러 자녀를 두었다.
| 이름 | 엘리사베타 파르네세 |
|---|---|
| 원어 이름 | Elisabetta Farnese principessa di Parma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왕가 | 파르네세 가문 부르봉 왕가 |
|---|---|
| 출생일 | 1692년 10월 22일 |
| 출생지 | 파르마 공국 |
| 사망일 | 1766년 7월 11일 |
| 사망지 | 스페인 왕국 아랑후에스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 스페인 왕비 (첫 번째) | 1714년 12월 24일 ~ 1724년 1월 14일 |
|---|---|
| 스페인 왕비 (두 번째) | 1724년 9월 6일 ~ 1746년 7월 9일 |
| 배우자 | 펠리페 5세 |
| 자녀 | 카를로스 프란시스코 마리안나 빅토리아 펠리페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루이스 안토니오 마리아 안토니에타 |
| 아버지 | 오도아르도 디 파르마 공세자 |
| 어머니 | 노이부르크의 도로테아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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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네세가 -
카를로스 3세 (스페인)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국왕으로, 파르마 공작과 나폴리-시칠리아 왕을 거쳐 스페인 왕위를 계승한 계몽 군주였으나, 예수회 추방, 빵 폭동, 식민지 반란 등의 어려움도 겪으며 스페인 제국의 절정기와 사회적 혼란을 동시에 경험했다. -
파르네세가 -
오타비오 파르네세
오타비오 파르네세는 파르마와 피아첸차 공국의 공작으로서, 파르네세 가문의 권력 유지 및 확장, 도시 계획, 경제 개혁, 문화 예술 후원에 기여했으며, 공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
18세기 여자 통치자 -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2세는 1762년부터 1796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통치한 여제로, 계몽주의 정책 추진, 영토 확장, 문화 예술 장려를 통해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18세기 여자 통치자 -
앤 (영국)
앤은 1665년에 태어나 1702년부터 1714년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여왕으로 재위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통합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관여했고, 양당 정치 발전과 예술, 문화 번영을 이끌었다. -
1692년 출생 -
효성헌황후
청나라 옹정제의 희귀비이자 건륭제의 생모인 효성헌황후는 옹정제 시대에 희비에서 황태후로 책봉되어 숭경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고, 건륭제 즉위 후 효심으로 인해 존호가 계속 추가되었으며 사후 효성헌황후로 추봉되었고, 낮은 신분에서 황후가 된 삶은 여러 작품으로 재해석되었다. -
1692년 출생 -
주세페 타르티니
주세페 타르티니는 바로크 시대 후기의 이탈리아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음악 이론가로, 기교적인 연주와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인 《악마의 트릴》 외에도 다양한 기악곡을 작곡했고, 차음 발견 및 화성론 연구에 기여했다.
2. 생애
파르마 공국의 공녀로 1692년 10월 22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도아르도 디 파르마 공세자, 어머니는 팔츠 선제후의 딸 도로테아 소피아이다. 숙부들에게 자식이 없을 경우 파르마 공국의 후계자가 될 운명이었다.
1714년 12월 24일, 첫 부인과 사별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와 결혼하여 스페인 왕비가 되었으며, 스페인식 이름인 이사벨 데 파르네시오(Isabel de Farnesio스페인어)로 불렸다. 결혼 후 자신을 왕비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우르시노스 부인을 궁정에서 몰아내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엘리사베타는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이 상실했던 이탈리아 영토를 되찾으려는 강한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알베로니 추기경 등과 협력하여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를 점령했으나,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결성한 사국 동맹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1724년 남편 펠리페 5세가 건강 문제로 잠시 퇴위했다가 장남 루이스 1세가 천연두로 요절하자 다시 복위했는데, 이후 스페인의 실질적인 권력은 엘리사베타가 장악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영지를 확보해주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숙부인 안토니오 공작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장남 카를로스가 파르마 공작위를 계승하게 했으며,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카를로스가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국왕이 되도록 만들었다.
1746년 펠리페 5세가 사망하고 의붓아들 페르난도 6세가 즉위했으나, 그 역시 후계자 없이 1759년 사망했다. 마침내 엘리사베타는 자신의 장남 카를로스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로 즉위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둘째 아들 펠리페는 파르마 공작이 되어 부르봉파르마 가문을 창설했다. 엘리사베타는 자신의 자녀들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부르봉 왕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1. 파르마 공국 시절
1692년 10월 22일 오도아르도 디 파르마 공세자와 팔츠 선제후의 딸 도로테아 소피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르마 공작 라누치오 2세와 팔츠 선제후 필립 빌헬름이 각각 그녀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이다. 아버지 오도아르도 2세가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숙부들에게 자식이 없을 경우 그녀는 파르마 공국의 후계자가 될 운명이었다.
2.2. 스페인 왕비
1714년 12월 24일, 전처 마리아 루이사와 사별한 펠리페 5세는 당시 스페인 궁정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던 알베로니 추기경과 우르시노스 부인 등의 주선으로 엘리사베타와 결혼했다. 엘리사베타는 스페인식 이름인 이사벨 데 파르네시오(Isabel de Farnesio스페인어)로 불리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왕비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우르시노스 부인과 권력 다툼을 벌여 결국 그녀를 스페인 궁정에서 추방했다.
엘리사베타는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스페인이 상실했던 이탈리아 영토들을 되찾으려는 강한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알베로니 추기경 등과 협력하여, 과거 스페인령이었으나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를 점령했다. 이에 오스트리아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사국 동맹을 결성하여 스페인에 반격을 가했다. 엘리사베타는 이 사국 동맹 전쟁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도 했으나, 스페인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 패배의 결과로 알베로니 추기경은 실각하여 스페인에서 추방되었다.
1724년 펠리페 5세는 건강 문제와 우울증을 이유로 장남 루이스에게 왕위를 넘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루이스 1세는 즉위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에 펠리페 5세는 다시 스페인 국왕으로 복귀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엘리사베타가 장악하게 되었다.
엘리사베타의 숙부이자 파르마 공작이었던 안토니오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파르마 공작 지위는 엘리사베타의 아들 카를로스에게 돌아갔다. 이후 1733년부터 1738년까지 이어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파르마의 통치권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6세의 사위인 프란츠 1세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카를로스는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국왕이 되는 더 큰 이익을 얻었다.
1746년 펠리페 5세가 사망하자 왕위는 그의 전처 소생 아들인 페르난도 6세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페르난도 6세는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1759년 사망했다. 엘리사베타는 마침내 오랜 염원대로 자신의 장남 카를로스를 카를로스 3세로서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녀의 둘째 아들 펠리페는 파르마 공작이 되어 부르봉파르마 가문을 창설했다. 펠리페의 딸 마리아 루이사는 카를로스 3세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촌인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여, 엘리사베타는 스페인과 파르마의 두 부르봉 가문이 다시 한번 결합하는 것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