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유
1. 개요
염유는 후한 말, 위나라 초기의 인물로, 어린 시절 이민족에게 납치되었으나 그들과 친분을 쌓았다. 공손찬 사후 유우의 세력에 의해 오환사마로 추대되어 한족과 이민족 군대를 이끌고 공손찬을 멸망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조조에게 귀순하여 호오환교위,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조조 사후에는 조비에게 중용되어 도료장군과 현후의 작위를 받았다. 조조와 조비에게 아들, 형제와 같은 총애를 받았으며, 조비의 신하들이 선양을 권하는 과정에서 공신들보다 높은 서열에 이름을 올렸다. 염유의 동생 염지는 상곡태수를 지냈다.
| 이름 | 염유 |
|---|---|
| 원어 이름 | 閻柔 |
| 로마자 표기 | Yan Rou |
| 출생지 | 중국 베이징 |
| 직업 | 장군 |
| 관직 | 도료장군 (기원후 220년경 임명) |
|---|---|
| 통치자 | 조비 |
| 관직 | 호오환교위 (200년 임명) |
| 통치자 | 헌제 |
| 작위 | 관내후 |
| 형제 | 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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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조위의 장군 -
하후돈
하후돈은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조조의 사촌이자 그의 거병 때부터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연주 전투에서 왼쪽 눈을 잃어 "애꾸눈 하후"라는 별명을 얻었고, 군사적 능력과 청렴한 성품으로 조조의 신임을 받아 사후 조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
조위의 장군 -
두예
두예는 서진 시대의 장군이자 학자로, 촉한 정벌에 참여하고 오나라 정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춘추좌씨전》 연구에 깊이 있는 학자였다. -
조조 휘하의 장군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
조조 휘하의 장군 -
사마의
후한 말기부터 삼국 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가였던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3대에 걸쳐 중용되며 위나라의 권력을 장악했으나, 고평릉의 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2. 생애
염유는 어릴 적 북방 민족에게 납치되었으나,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했다. 초평 4년(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살해하자, 선우보 등은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여 공손찬에게 대항했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 민족을 규합하여 공손찬 휘하의 추단을 죽이고,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 세력을 멸망시켰다. 이후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을 담당했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가 조조와 대치하자 염유는 조조에게 복종 의사를 전달,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에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건안 10년(205년), 조조가 남피(南皮)에서 원담을 격파한 후에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조조에게 명마를 헌상하여 교위(校尉)로 임명되었다. 이후 답돈 토벌(207년)에 종군하고 영성에서 이민족 교섭을 계속했다. 건안 연간에는 가비능이 염유를 통해 공물을 바쳤다.
조조 사후, 조비 또한 염유를 중용하여 도료장군(度遼將軍)에 임명하고 현후(縣侯)로 봉했다. 조조와 조비는 염유를 가족처럼 대우하며 총애했다.
2.1. 초기 생애와 이민족과의 관계
염유는 광양군 출신으로, 어릴 때 오환과 선비족에게 납치되어 그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염유는 그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훗날 염유는 오환도위(烏丸都尉) 형거(邢舉) 등을 죽이고 그 작위를 빼앗았다.
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살해하자, 유우의 종사(從事)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하여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 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곧이어 공손찬 휘하의 어양태수(漁陽太守) 추단을 죽였다. 이후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켰다. 공손찬 멸망 후,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하여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하였다.
2.2. 오환사마 추대와 공손찬과의 전쟁
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죽이자, 유우의 종사(從事)였던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해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공손찬 휘하의 어양태수(漁陽太守) 추단을 죽였다. 이후 원소와 연합하여 199년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켰다.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하여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하였다.
2.3. 원소와의 협력
193년, 공손찬이 대사마 유우를 죽이자, 유우의 종사였던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해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공손찬 휘하의 어양태수 추단을 죽였다. 이후 하북을 점거하고 있던 기주목 원소와 연합하여 199년에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켰다. 공손찬 멸망 후,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하여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하였다.
2.4. 조조에게 귀순
초평 4년(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살해하자, 유우의 종사였던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해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 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어양태수 추단을 죽였다. 이후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 세력을 멸망시켰다.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담당했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때 원소가 조조와 교전하자 염유는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복종의 뜻을 전하였다. 조조는 염유를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에 임명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하였다.
건안 10년(205년), 조조가 남피(南皮)에서 원담을 무찌르고 그를 죽이자 염유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조조에게 명마를 헌상하니, 조조는 곧 염유를 교위(校尉)로 삼았다. 그 후, 염유는 답돈 토벌에 종군하였고(207년) 이후에도 계속 영성에서 이민족과의 교섭에 나섰다. 건안 연간에는 선비의 대인(大人) 가비능이 염유를 통하여 공물을 바쳤다.
2.5. 조조 휘하에서의 활동
초평 4년(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죽이자, 유우의 종사였던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해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공손찬 휘하의 어양태수 추단을 죽였다. 이후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켰다. 공손찬 멸망 후,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하였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가 조조와 교전하자 염유는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복종의 뜻을 전하였다. 조조는 염유를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에 임명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하였다.
건안 10년(205년), 조조가 남피(南皮)에서 원담을 격파하고 그를 죽이자, 염유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조조에게 명마를 헌상하였다. 조조는 염유를 교위(校尉)로 삼았다. 그 후, 염유는 답돈 토벌에 종군하였고(207년) 이후에도 계속 영성에서 이민족과의 교섭에 나섰다. 건안 연간에는 선비의 대인(大人) 가비능이 염유를 통하여 공물을 바쳤다.
206년, 염유는 조조와 함께 유주에서 오환족을 상대로 한 원정에 동행하여 그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조조는 이듬해 백랑산 전투에서 오환족과 군벌 원상, 원희를 격파했다. 승리 후, 염유는 유주와 병주의 모든 오환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한나라의 통치에 복종하게 했다. 선비 족장 불돌근과 가비능 또한 아들들을 염유에게 인질로 보내 그들의 충성을 확신시켰다. 하간군에서 전은(田銀)이 반란을 일으키자 가비능은 3,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염유를 도와 반란을 진압했다.
평소 조조와 조비는 염유를 식구를 대하듯이 총애하였다고 한다.
2.6. 조위에서의 활동
초평 4년(193년), 공손찬이 유우를 죽이자, 유우의 종사였던 선우보 등은 원수를 갚기 위해 염유를 오환사마(烏丸司馬)로 추대하였다. 염유는 한족과 북방 민족들을 규합하여 수만 명의 군세를 모았고, 공손찬 휘하의 어양태수 추단을 죽였다. 이후 원소와 연합하여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켰다. 염유는 상곡(上谷)의 영성(寧城)을 거점으로 원소를 위해 이민족과의 교섭 등을 담당하였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가 조조와 대치하자 염유는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복종의 뜻을 전하였다. 조조는 염유를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에 임명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하였다.
건안 10년(205년), 조조가 남피(南皮)에서 원담을 격파하자 염유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조조에게 명마를 헌상하였다. 이후 염유는 답돈 토벌에 종군하였고(207년), 계속 영성에 주둔하며 이민족과의 교섭을 담당하였다. 건안 연간에는 선비의 대인(大人) 가비능이 염유를 통해 공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조조 사후, 그의 아들 조비 역시 염유를 중용하였다. 염유는 도료장군(度遼將軍)에 임명되었고, 현후(縣侯)로 봉해졌다. 조조와 조비는 염유를 가족처럼 총애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