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선비는 15세기 조선 시대에 학문과 덕행을 겸비한 유교적 인재를 지칭하는 용어로 시작되었다. 선비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엄격한 행동 강령을 따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식 습득과 인격 완성을 위해 평생 노력했다. 조선 시대에는 정치,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활동하며, 왕을 보좌하거나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선비는 의리와 품격을 중시하며, 충, 효, 의를 실천하고,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선비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선비로 존경받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어권 밖에서도 쓰이는 한국어 낱말 - 먹방
먹방은 방송 출연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산되며 인기를 얻었지만, 과식 조장, 섭식 장애 유발 등의 논란도 있는 문화 현상이다. - 한국어권 밖에서도 쓰이는 한국어 낱말 - PC방
PC방은 개인용 컴퓨터를 갖추고 네트워크 게임이나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 시설로, IMF 외환 위기 이후 확산되어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최근에는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e스포츠 문화 확산 및 청소년 사교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지만, 청소년 인터넷 중독, 불법 행위, 노동 착취 등의 문제점과 관련 법규 및 정책 준수 등의 과제도 안고 있다. - 조선의 문화 - 사직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중국의 명청시대까지 존재했으며, 현재는 한국의 사직단 터 일부와 중국 베이징의 사직단이 남아 각 지역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 조선의 문화 - 보부상
보부상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상인 집단으로, 부상과 보상으로 나뉘어 전국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국가적인 역할도 수행했으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며 관련 문화재가 남아있다. - 조선의 정치 - 대한제국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은 갑오개혁으로 설립되어 의회적 성격을 갖추었으나, 공화정 수립 루머로 황제의 견제를 받았으며, 독립협회 폐지 이후 자문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되다가 1907년 기능이 종식되었다. - 조선의 정치 - 아관파천
아관파천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1896년부터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사건으로,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러시아의 이권 침탈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으며, 조선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왔다.
선비 | |
---|---|
개요 | |
![]() | |
한글 | 선비 |
로마자 표기 | Seonbi |
매큔-라이샤워 표기 | Sŏnbi |
정의 | |
설명 | 조선 시대의 비정부 학자 학식은 높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하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던 사람 |
특징 | |
가치관 | 도덕 정의 절제 지혜 |
역할 | 학문 연구 후진 양성 사회 비판 정치 참여 |
상징 | 청렴결백 강직함 지조 |
현대적 의미 | |
설명 | 지식인 사회 운동가 시민 운동가 공익 변호사 |
참고 | |
관련 개념 | 청교도 |
2. 어휘 발생 배경
'선비'라는 어휘는 기록상으로 1447년(세종 29년)에 편찬된 《용비어천가》에 ‘션ᄇᆡ’ 형태로 처음 나타난다. 즉, 이 어휘는 세종 집권 시기(1418~1450)에 처음으로 기록상에 등장했다.
고구려 고국천왕 때 재상 을파소는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나와서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선비의 도리를 제시했다.[17]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태학이 세워져 유교 이념을 교육했다. 백제와 신라에서도 각각 태학과 국학을 설립했다. 당시 역사의 기록과 편찬은 선비들의 임무였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유교적 의례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을 유교 사회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학문과 덕행을 겸비한 인재를 원했고, '선비'라는 용어를 자신이 원하는 의미로 재정의하여 널리 알렸다.[18]
태종 때부터 시작된 정몽주 추모 사업과 사림파의 성장 역시 선비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정몽주는 선비의 전형적인 표본으로 여겨졌으며, 지방에서는 정몽주를 따르던 온건개혁파가 사림파를 형성하여 세력을 넓혔다. 세종은 조선을 유교화하면서 유교적 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했고, 이 과정에서 '선비'의 의미는 유교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용비어천가》를 통해 '선비'라는 어휘가 처음 등장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세종이 의도한 유교적 의미가 강하게 부여되었다.[18]
세종은 자신이 재정의한 선비를 조선 인재상의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이를 추구하도록 했다. 당시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으로 인해 문(文)을 갖춘 인재가 상대적으로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세종은 이러한 경향을 해소하고자 문(文)을 갖춘 인재를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선비'라는 어휘를 재정의하여 반포함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변화를 유도했다.[18]
3. 역사
고려 시대에는 국자감을 비롯해 지방의 12목에까지 박사를 두어 인재를 양성했고, 과거 제도가 정립돼 진사과(進士科)와 명경과(明經科)를 통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고려 말 충렬왕 때 안향 등에 의해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도학 이념이 정립되었고, 선비들의 자각도 깊어졌다.
조선 초, 유교가 통치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선비들은 정치,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조선 초 선비들은 정몽주를 추종하고 길재의 학통에서 선비 정신을 강화했다. 이들은 훈구파와 대립하며 절의를 존중하는 자신들을 ‘사림파’로 구분했다.
이때부터 훈구파와 사림파의 분쟁인 ‘사화(士禍)’가 시작되었고,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결국 사림정치 시대를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 선비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도층이었다.[19]
3. 1. 조선 시대 붕당과 선비
조선 시대, 사림(士林)은 성리학의 정치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었다. 사림은 성리학적 덕화교민(德化敎民)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강조하고, 의(義)와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했다.[13]
사림의 정치 이념은 국내외의 도전에 맞서 국가의 자긍심과 안보를 수호하는 청렴 정신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식은 성리학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외침에 대해 적극적인 정벌을 주장하며 충(忠)의 지침을 강조했다.[13]
선비들은 엄격한 규범에 따라 생활하며, 관료가 되면 왕을 도와 정치를 하고, 관직에서 물러나면 은거 생활을 하면서 유교적 도덕 규범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 대중을 교화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졌다. 선비의 핵심 가치는 의리와 품격이었다. 선비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지식을 널리 섭렵하며, 애국심을 갖춰야 했다. 또한, 사회 발전을 위해 비판을 주저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춰야 했다.
선비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면 왕을 섬기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 이들은 경연관, 언관, 사관 등의 직책을 맡았다. 선비는 왕과 의리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왕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미련 없이 사직하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참전하여 끝까지 싸우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전장에 섰다는 기록은 없다.
은퇴한 선비들은 서원이나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향음주례 등을 즐겼다. 또한,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저술 활동을 통해 후세에 알리는 임무를 가졌다. 관료가 되지 않고 산속 등에 유거하여 후학 양성과 연구에 힘쓴 사람들은 '처사'(處士)라고 불렸다.
4. 철학
선비는 엄격한 행동 강령을 따르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6] 효, 충, 의 등의 유교 덕목을 중시하고, 권력, 부, 사리사욕을 경멸했다. 정몽주, 사육신, 조광조 등은 선비 정신의 귀감으로 여겨졌다. (단, 조광조에 대해서는 오늘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선비는 지식뿐만 아니라 올바른 길을 따름으로써 인격 완성을 달성하기 위해 겸손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아야 했다. 사회 정의 실현을 목표로,[3]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계몽").[3] 서원에서 모여 학문을 연구했다.[7]
선비의 남성성은 육체적 능력보다는 정신적 성취를 의미하며, 이는 여전히 많은 한국인에게 가치 있게 여겨진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 남성성의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한다.[8]
5. 생활
선비는 평생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인격 수양과 도덕적 실천을 위해 노력했다. 학문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일의 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인격적 성취를 목표로 했다.[20] 《대학》에서는 자신의 내면에 주어진 ‘밝은 덕을 밝히는 일’과 ‘백성과 친애하는 일’의 사회적 과제를 가르쳤다.[20]
관직에 나아간 선비는 홍문관, 예문관, 성균관, 사헌부, 사간원 등 학문을 전문으로 하거나, 왕에게 간언하는 언로를 맡는 직책을 주로 담당했다.[20] 이들은 왕을 섬기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며, 왕에게 간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왕과의 관계는 의리에 기반했으며, 왕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물러날 수 있어야 했다.[20]
은퇴 후에는 서원이나 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저술 활동을 통해 학문을 전파했다.[20]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쓴 선비는 '처사(處士)'라고 불리며 존경받았다.[20] 이들은 향음주례 등 선비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기도 했다.[20]
6. 무예
조선 시대 선비들은 사군자 중 하나인 활쏘기를 익혔다.[10] 곽재우, 고경명, 조헌 등 많은 선비들이 의병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다.[10][11] 의병은 주로 선비들에 의해 조직되고 이끌어졌으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군대로 인식되었다.[12] 일반 마을에서도 양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선비들은 지역 지도자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10]
7. 현대적 묘사
대중 매체에서 선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8. 유명한 선비
참조
[1]
서적
Encyclopedia of Asian Philosophy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7-02-04
[2]
웹사이트
Yeongju where the spirit of the seonbi lives on
http://www.korea.net[...]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2017-02-04
[3]
서적
The Traditional Education of Korea
https://books.google[...]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2017-02-04
[4]
웹사이트
선비 – 다음 어학사전
https://alldic.daum.[...]
2019-03-30
[5]
웹사이트
진지함은 벌레(蟲)가 되고, 의문은 반지성에 묻히다
https://www.pressian[...]
2023-04-12
[6]
서적
The Traditional Education of Korea
https://books.google[...]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2017-02-05
[7]
웹사이트
Seowon – Korean Confucius Academy
http://www.antiqueal[...]
2017-02-04
[8]
서적
Korean Masculinities and Transcultural Consumption: Yonsama, Rain, Oldboy, K-Pop Idols
https://books.google[...]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17-02-04
[9]
웹사이트
하회별신굿탈놀이
http://www.hahoe.or.[...]
2017-02-05
[10]
웹사이트
righteous army 의병-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
[11]
웹사이트
문화재청-흐트러진 마음을 가담고 각궁으로 활을 쏘다
https://www.cha.go.k[...]
[12]
웹사이트
righteous army 의병-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
[13]
웹사이트
righteous army 의병-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
[14]
웹사이트
朝鮮染織・装身具II 朝鮮王朝時代の文人の生活
https://www.tnm.jp/m[...]
2021-09-26
[15]
서적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푸른숲
[16]
문서
[17]
서적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푸른숲
[18]
서적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푸른숲
[19]
서적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푸른숲
[20]
서적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푸른숲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