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가즈나리
1. 개요
오카야마 가즈나리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수비수 또는 공격수로 활동했다. 1997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데뷔하여 여러 일본 클럽과 포항 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009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K리그 리그컵과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7년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하며, '오카야마 극장'이라는 독특한 승리 세리머니로 유명하다.
| 본명: 강일성 | |
| 출생일 | 1978년 4월 24일 |
|---|---|
| 출생지 |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 미나미구 아카사카타이 |
| 신장 | 187cm |
| 포지션 | 수비수, 공격수 |
| 주발 | 오른발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94-1996 |
|---|---|
| 유소년 클럽 | 하쓰시바 하시모토 고등학교 |
| 클럽 연도 | 1997-2000 |
|---|---|
| 클럽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 출장 (골) | 30 (3) |
| 클럽 연도 | 1999 |
| 클럽 | 오미야 아르디자 (임대) |
| 출장 (골) | 6 (1) |
| 클럽 연도 | 2001 |
| 클럽 | 세레소 오사카 |
| 출장 (골) | 28 (3) |
| 클럽 연도 | 2002-2004 |
| 클럽 | 가와사키 프론탈레 |
| 출장 (골) | 73 (3) |
| 클럽 연도 | 2005 |
| 클럽 | 아비스파 후쿠오카 (임대) |
| 출장 (골) | 34 (0) |
| 클럽 연도 | 2006-2007 |
| 클럽 | 가시와 레이솔 |
| 출장 (골) | 46 (10) |
| 클럽 연도 | 2007-2008 |
| 클럽 | 베갈타 센다이 |
| 출장 (골) | 51 (6) |
| 클럽 연도 | 2009-2010 |
| 클럽 | 포항 스틸러스 |
| 출장 (골) | 17 (1) |
| 클럽 연도 | 2011-2012 |
| 클럽 | 콘사돌레 삿포로 |
| 출장 (골) | 10 (0) |
| 클럽 연도 | 2013-2017 |
| 클럽 | 나라 클럽 |
| 출장 (골) | 44 (1) |
| 통산 출장 (골) | 339 (28) |
| 감독 연도 | 2020-2021 |
|---|---|
| 감독 클럽 | VONDS 이치하라 |
| 메달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
| 준우승 | 2000 J1리그 |
| 메달 | 세레소 오사카 |
| 준우승 | 2001년 천황배 |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1978년 출생 -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 브라이언트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20시즌 동안 5회의 NBA 우승을 이룬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 농구 선수로, 고등학교 졸업 후 NBA에 직행하여 뛰어난 득점력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았으나 2020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 -
1978년 출생 -
은지원
은지원은 젝스키스 리더로 데뷔하여 솔로 가수와 예능인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고 젝스키스 재결합 후에도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방송인이다. -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
오선화
오선화는 대한민국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평론가이자 작가, 대학교수로, 호스티스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데뷔 후 한일 관계와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 -
마에다 아키라
마에다 아키라는 일본의 격투기 선수이자 프로레슬러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여 UWF, 링스를 거쳐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은퇴 시합을 갖고 K-1 슈퍼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오사카부 사카이시 미나미구 아카사카다이 출신으로, 형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시작했다. 하쓰시바하시모토 고등학교 시절 전국 대회 4강 진출 및 우수 선수 선정 등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고교 졸업 후 한국 사회인 팀 유학을 거쳐, 1997년 J1리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초 공격수로 3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주목받았으나, 이후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공격수와 수비수 포지션을 오갔다.
2000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복귀 후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2002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이적 후 주전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부터 경기 후 메가폰을 이용한 팬들과의 소통 퍼포먼스인 '오카야마 극장'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아비스파 후쿠오카, 가시와 레이솔, 베갈타 센다이, 콘사돌레 삿포로 등 여러 J리그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가와사키, 후쿠오카, 가시와, 삿포로 소속으로 총 네 차례 J1리그 승격을 경험하며 '승격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한국 무대를 경험했다. 포항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FIFA 클럽 월드컵 2009 3위 달성에 기여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지역 리그의 나라 클럽에 입단하여 팀의 일본 풋볼 리그(JFL) 승격을 도왔고, 2017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오카야마 가즈나리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과 한국의 여러 프로 축구 클럽에서 활동한 선수이다.
선수 경력
* 1997년 8월 ~ 1999년 7월: 요코하마 마리노스/요코하마 F. 마리노스
* 1999년 8월 ~ 1999년 12월: 오미야 아르디자 (임대)
* 2000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2001년: 세레소 오사카
* 2002년 ~ 2005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5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임대)
* 2006년 ~ 2007년: 가시와 레이솔
2007년 8월 ~ 2007년 12월: 베갈타 센다이 (임대)
* 2008년: 베갈타 센다이
* 2009년 7월 ~ 2010년: 포항 스틸러스
* 2011년 6월 ~ 2012년: 콘사돌레 삿포로
* 2013년 8월 ~ 2017년: 나라 클럽
클럽별 통산 기록
(2015년 11월 15일 기준)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통산 | |||||
|---|---|---|---|---|---|---|---|---|---|---|---|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요코하마 마리노스 | 1997 | 8 | 3 | 2 | 1 | 0 | 0 | - | 10 | 4 | |
| 1998 | 5 | 0 | 0 | 0 | 4 | 2 | - | 9 | 2 | ||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1999 | 4 | 0 | - | 0 | 0 | - | 4 | 0 | ||
| 오미야 아르디자 | 1999 | 6 | 1 | 2 | 2 | 0 | 0 | - | 8 | 3 | |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2000 | 13 | 0 | 1 | 0 | 1 | 0 | - | 15 | 0 | |
| 세레소 오사카 | 2001 | 28 | 3 | 4 | 0 | 2 | 0 | - | 34 | 3 | |
| 가와사키 프론탈레 | 2002 | 37 | 1 | 5 | 1 | - | - | 42 | 2 | ||
| 2003 | 34 | 2 | 1 | 0 | - | - | 35 | 2 | |||
| 2004 | 2 | 0 | 0 | 0 | - | - | 2 | 0 | |||
| 아비스파 후쿠오카 | 2005 | 34 | 0 | 1 | 0 | - | - | 35 | 0 | ||
| 가시와 레이솔 | 2006 | 45 | 10 | 0 | 0 | - | - | 45 | 10 | ||
| 2007 | 1 | 0 | - | 3 | 0 | - | 4 | 0 | |||
| 베갈타 센다이 | 2007 | 18 | 2 | 0 | 0 | - | - | 18 | 2 | ||
| 2008 | 33 | 4 | 0 | 0 | - | - | 33 | 4 | |||
| 포항 스틸러스 | 2009 | 9 | 1 | - | 0 | 0 | 2 | 0 | 11 | 1 | |
| 2010 | 8 | 0 | 0 | 0 | 2 | 0 | 3 | 0 | 13 | 0 | |
| 콘사돌레 삿포로 | 2011 | 5 | 0 | 1 | 0 | - | - | 6 | 0 | ||
| 2012 | 5 | 0 | 1 | 0 | 2 | 0 | - | 8 | 0 | ||
| 나라 클럽 | 2013 | 3 | 0 | 2 | 1 | - | - | 5 | 1 | ||
| 2014 | 8 | 0 | 2 | 1 | - | - | 10 | 1 | |||
| 2015 | 15 | 0 | 0 | 0 | - | - | 15 | 0 | |||
| 2016 | - | - | |||||||||
| 통산 | 321 | 27 | 22 | 6 | 14 | 2 | 5 | 0 | 362 | 35 | |
2.1.1. J리그
오카야마는 1978년 4월 24일 사카이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7년 J1리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 (이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입단했다. 9월 6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공격수로 데뷔하여 골을 기록했다. 데뷔 후 3경기 연속 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으나, 1998년부터는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1999년 6월, J2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로 기간 임대되었다.
2000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복귀하여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2001년에는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여 다시 공격수로 뛰었지만, 시즌 종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002년, 이시자키 노부히로 감독의 권유로 J2리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다. 3백 수비의 오른쪽 수비수로 주전 자리를 확보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가와사키 시절부터 경기 후 메가폰을 이용한 퍼포먼스인 '오카야마 극장'을 선보이며 서포터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03년에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으나 선발 출전 비중은 줄었고, 2004년에는 거의 출전하지 못했지만 팀의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05년에는 당시 J2리그 소속이던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 이적했다. 주로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팀의 J1리그 승격을 도왔다.
2006년, 가와사키 시절 스승이었던 이시자키 노부히로 감독이 새로 부임한 J2리그의 가시와 레이솔로 다시 임대 이적했다. 센터백으로 뛰면서도 리그 10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팀의 J1리그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오카야마 개인에게 3시즌 연속 J1 승격 경험이었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에서 펼쳐진 '오카야마 극장'은 가시와에서도 명물이 되었고, J's GOAL에서 J2리그 베스트 퍼포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7년, 가시와 레이솔로 완전 이적했지만, 고가 마사히로 등 새로운 수비수 영입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다. 같은 해 8월, J2리그의 베갈타 센다이로 임대 이적했다. 센다이에서도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특유의 팬 서비스와 '오카야마 극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시즌 동안 활약 후 2008년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을 떠났다.
반 년간 소속팀 없이 지내다 2009년 7월, 대한민국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8월 22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8월 26일 피스컵 FC 서울전에서는 교체 투입되어 K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같은 해 FIFA 클럽 월드컵 2009에 출전하여 3위 결정전 아틀란테 FC와의 경기에서는 주장으로 선발 출전하며 팀의 3위 입상에 기여했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포항을 떠나 일본으로 복귀했다.
다시 반 년간 소속팀을 찾지 못하다가 2011년 6월, 이시자키 노부히로 감독이 이끄는 J2리그의 콘사돌레 삿포로에 입단했다. 출전 경기 수는 5경기에 그쳤지만, '오카야마 극장'으로 팀 분위기를 주도하며 팀의 J1리그 승격에 힘을 보탰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삿포로를 떠났다.
2013년 8월, 칸사이 축구 리그 1부의 나라 클럽에 아마추어 선수로 입단했다. 2014년 천황배 2회전에서 친정팀 센다이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자이언트 킬링을 이끌었고, 이 대회 'SURUGA I DERAM Award'를 수상했다. 나라 클럽은 2015년부터 일본 풋볼 리그(JFL)로 승격했으며, 오카야마는 2017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2. K리그
2008년 베갈타 센다이에서 방출된 후, 2009년 상반기에는 소속팀 없이 개인 훈련을 하며 J리그 복귀를 모색했다. 그러던 중, 한국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에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고, 같은 해 7월 14일 정식 계약을 체결하며 K리그 무대에 진출했다.
8월 22일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8월 26일 피스컵 코리아 FC 서울전에서는 교체 투입되어 수비수임에도 공격수로 출전하여 K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같은 해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으며, 12월에는 FIFA 클럽 월드컵 2009에 참가하여 2경기에 출전했다. 특히 3위 결정전인 아틀란테 FC와의 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여 팀의 3위 입상에 기여했다.
2010년에도 포항에서 활약했으나, 시즌 종료 후인 12월 1일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K리그 통산 기록은 17경기 출전 1골이다.
3. 지도자 경력
* 2018년 간토가쿠인 대학 체육부 연합회 축구부 어드바이저
* 2019년 스즈카 언리미티드 FC 코치 겸 피지컬 코치
* 2020년 - 2021년 본즈 이치하라 감독
* 2022년 - 2023년 오이타 트리니타 코치
* 2025년 - 더스파 구마 수석 코치
| 연도 | 소속 | 클럽 | 리그전 | 컵 대회 | ||||||
|---|---|---|---|---|---|---|---|---|---|---|
| 순위 | 경기 | 승점 | 승 | 무 | 패 | 나비스코컵/나데시코컵 | 천황배/황후배 | |||
| 2020 | 관동 1부 | VONDS 이치하라 | 4위 | 9 | 17 | 5 | 2 | 2 | - | 2회전 |
| 2021 | 3위 | 22 | 44 | 14 | 3 | 5 | - | 현 예선 |
4. 오카야마 극장
경기에 승리했을 때, 경기 후에 오카야마 가즈나리 주도로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칭 '오카야마 극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이던 2003년, 경기 후 한 서포터가 내민 우유 상자를 오카야마가 발판 삼아 메가폰으로 퍼포먼스를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조심스럽게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과감하고 화려해졌다. 서포터의 북을 빌려 자신의 응원 구호를 유도하거나, 그날 경기의 주인공이었던 다른 선수를 무대(?) 위로 불러 퍼포먼스를 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안토니오 이노키처럼 인터뷰 중 마이크를 빼앗아 "하나, 둘, 셋, 슛!!"을 외치는 등,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선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러한 '오카야마 극장'은 이후 가시와 레이솔, 베갈타 센다이, 콘사돌레 삿포로 등 그가 거쳐간 여러 팀에서 이어졌으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선수와 팬 사이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에서도 '오카야마 극장'은 이어졌다.
4.1. 특징
2004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5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6년 가시와 레이솔에서 3년 연속으로 소속팀의 J1 승격에 기여하며 '승격 청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 베갈타 센다이 임대 시절에는 아쉽게 승격에 실패했으나, 2011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네 번째 J1 승격을 이끌었다.
경기 후 메가폰 등을 이용해 팬들에게 직접 열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오카야마 극장'으로 유명하다. 이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 시작되어 가시와 레이솔, 베갈타 센다이, 콘사돌레 삿포로 등 여러 팀에서 이어지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 가시와 레이솔 시절: 팬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에서 '오카야마 극장'은 명물로 자리 잡았다. 서포터들은 "오카야마, 가시와에, 집 사버려!!"라는 응원 구호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J's GOAL의 J2 베스트 퍼포머 상을 수상했다. 2006년 5월 27일 삿포로전 후에는 다음 홈 경기 상대인 도쿄 베르디전에 1만 2천 명의 관중 동원을 호소하며 "1만 명 안 오면 부끄럽지 않아요? 친구들을 불러서 1만 2천 명으로 만들죠! 그러면 절대 이길 겁니다!"라고 외쳤다. 비록 목표 관중 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오카야마 본인의 2골 활약에 힘입어 팀은 4-1 대승을 거두었다. 경기 후에는 "1만 2천 명까지… 이제 조금 남았네. 1만 2천 명 왔으면 내가 해트트릭 했을지도…"라고 말하며 아쉬움과 유머를 보여주었다.
* 베갈타 센다이 시절: 2007년 8월 30일 교토전 후, 히어로 인터뷰 중 아나운서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11000명밖에 와주지 않아서 섭섭하네요. 이 스타디움(유아텍 스타디움 센다이)은 19694명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 경기인 사가전, 만원으로 채워주실 건가요!!"라고 외치며 만원 관중을 호소했다. 이는 서포터들이 주도하는 '유아스타 라스트 스퍼트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오카야마 본인도 전단 배포 이벤트에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팬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고 서포터들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
* 센다이 임대 초기,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이 시기에 괴로운 것은 당연하다", "가을에 축하하기 위해 지금 괴로운 마음을 씁시다"라는 말로 서포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2008년 5월 18일 미치노쿠 더비(야마가타전)에서 자신의 실수로 전반에 2실점하자 하프타임에 선수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에 자극받은 팀은 후반 3득점으로 역전승했고, 오카야마는 승리 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센다이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후에도 2009년 1월 1일 천황배 결승전에 가시와 유니폼을 입고 응원석에 나타나 서포터들과 함께 응원하고, "무직인 오카야마입니다", "이시자키 감독을 남자답게 만들어줍시다!!" 등 자신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며 전 소속팀과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2009년 2월 8일에는 센다이 오피셜 숍에서 "센다이 서포터즈 여러분과 웃는 얼굴로 작별하고 싶다"며 '작별 사인회'를 열었다.
*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참가한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후에는 포항 서포터뿐만 아니라 과거 소속팀이었던 센다이, 가와사키 서포터들과 함께 각 팀의 챈트를 열창했다. (포항 챈트 원곡: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 2010년 7월 4일, 포항 소속으로 센다이와의 프리시즌 매치에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으며, 경기 후에는 양 팀 선수들과 서포터들이 함께 '오카야마 극장'을 펼쳤다.
* 2011년 3월 29일 일본 대표 대 J리그 선발전에서도 센다이 유니폼 차림으로 나가이 스타디움에 등장하여 센다이 챈트를 부르도록 유도하고, 후쿠오카 서포터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기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 소속팀이 없는 상태에서 친구와 함께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담은 DVD(수비수임에도 골 장면 위주로 편집)를 포항 스틸러스에 보내 연습생으로 합류했고, 이후 정식 계약을 맺었다. 8월 26일 FC 서울과의 피스컵 경기에서는 수비수임에도 공격수로 교체 투입되어 K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같은 해 FIFA 클럽 월드컵 2009에서는 3위 결정전 아틀란테 FC전에 게임 캡틴으로 선발 출전하여 팀의 3위 입상에 기여했다.
프로 입단 당시 183cm였던 키가 187cm까지 자랐다고 한다. 과거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시절 팀 동료였던 야스나가 사토시나 간페이 히로시와 외모가 닮아 팬들에게 오인받은 적이 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다.
2011년 12월, 일본 축구 협회의 사회 공헌 활동인 '꿈 선생님' 프로젝트에 가와구치 요시카쓰, 히라마 사토카즈, 야스나가 사토시 등 마리노스 시절 선배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4.2. 영향
* 승격 청부인
2004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5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6년 가시와 레이솔에서 3년 연속으로 소속팀의 J1 승격에 기여하며 '승격 청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에는 베갈타 센다이의 J1 승격을 목표로 했으나 달성하지 못했지만, 2011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네 번째 승격을 이끌며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보였다.
* 오카야마 극장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 시작된 경기 후 메가폰을 이용한 마이크 퍼포먼스, 이른바 '오카야마 극장'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이 퍼포먼스는 가시와 레이솔, 베갈타 센다이 등 그가 거쳐간 여러 팀에서 명물로 자리 잡았다.
* 가시와 레이솔 시절에는 팬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의 특성 덕분에 더욱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서포터들은 "오카야마, 가시와에, 집 사버려!!"라는 독특한 응원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J's GOAL의 J2 베스트 퍼포머 상을 수상했다.
* 베갈타 센다이 시절에는 히어로 인터뷰 도중 아나운서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선수단과 서포터 전체를 아우르며 샹젤리제 합창, 로페스 댄스, 량용기 콜 등을 이끌었다.
* 특히 2007년 8월 30일 경기 후, 11,000명의 관중에게 아쉬움을 표하며 다음 경기에 19,694석의 유아텍 스타디움 센다이를 가득 채워달라고 호소한 것은 서포터들이 주도한 '유아스타 라스트 스퍼트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되었다. 오카야마 본인도 전단 배포 이벤트에 직접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슷한 관중 동원 호소는 가시와 시절에도 있었다.
* 기타 일화 및 팬과의 관계
* 프로 입단 당시 183cm였던 키가 이후 187cm까지 자랐다고 한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시절 팀 동료였던 야스나가 사토시와 외모가 닮아 팬들에게 오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다。
* 2008년 미치노쿠 더비(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는 전반 자신의 실수로 2실점하자 하프타임에 선수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고, 이에 자극받은 팀 동료들이 후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경기 종료 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하기도 했다.
* 2009년 천황배 결승전에서는 당시 소속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소속팀 가시와 레이솔을 응원하기 위해 유니폼을 입고 응원석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무직 상태를 유머로 승화시키며 건배를 제의하고, 경기 내내 열정적으로 응원을 이끌었다.
* 센다이 퇴단 후에는 "센다이 서포터 여러분과 웃는 얼굴로 작별하고 싶다"며 오피셜 숍에서 작별 사인회를 열었다.
* 포항 스틸러스 시절 ACL 결승전 승리 후에는 포항 서포터뿐만 아니라 과거 몸담았던 센다이, 가와사키 서포터들과 함께 각 팀의 챈트를 열창했다. 포항 입단 과정에서는 친구와 함께 자신의 플레이(주로 헤딩 골 장면)를 담은 DVD를 직접 제작해 팀에 보내기도 했다.
* 2010년 포항 소속으로 센다이와 가진 프리시즌 매치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풀타임 출전했으며, 경기 후에는 양 팀 선수단과 함께 '오카야마 극장'을 선보였다.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에서는 센다이 유니폼 차림으로 등장해 센다이 챈트를 대표팀 응원가로 부르자고 제안했으며, 과거 마찰이 있었던 후쿠오카 서포터들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2011년 12월에는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함께 일본 축구 협회의 사회 공헌 활동인 '꿈 선생님'에 참여했으며, 마리노스 시절 선배였던 히라마 사토카즈, 야스나가 사토시도 지원 멤버로 함께했다。
5. 수상 경력
(내용 없음)
5.1. 클럽
| 시즌 | 클럽 | 리그 | 천황배 전일본 선수권 | J리그컵 | 합계 | |||||
|---|---|---|---|---|---|---|---|---|---|---|
| 디비전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1997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1 리그 | 8 | 3 | 2 | 1 | 0 | 0 | 10 | 4 |
| 1998 | 5 | 0 | 0 | 0 | 4 | 2 | 9 | 2 | ||
| 1999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1 리그 | 4 | 0 | 0 | 0 | 0 | 0 | 4 | 0 |
| 1999 | 오미야 아르디자 | J2 리그 | 6 | 1 | 2 | 2 | 0 | 0 | 8 | 3 |
| 2000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1 리그 | 13 | 0 | 1 | 0 | 1 | 0 | 15 | 0 |
| 2001 | 세레소 오사카 | J1 리그 | 28 | 3 | 4 | 0 | 2 | 0 | 34 | 3 |
| 2002 | 가와사키 프론탈레 | J2 리그 | 37 | 1 | 5 | 1 | - | 42 | 2 | |
| 2003 | 34 | 2 | 1 | 0 | - | 35 | 2 | |||
| 2004 | 2 | 0 | 0 | 0 | - | 2 | 0 | |||
| 2005 | 아비스파 후쿠오카 | J2 리그 | 34 | 0 | 1 | 0 | - | 35 | 0 | |
| 2006 | 가시와 레이솔 | J2 리그 | 45 | 10 | 0 | 0 | - | 45 | 10 | |
| 2007 | J1 리그 | 1 | 0 | 0 | 0 | 3 | 0 | 4 | 0 | |
| 2007 | 베갈타 센다이 | J2 리그 | 18 | 2 | 0 | 0 | - | 18 | 2 | |
| 2008 | 33 | 4 | 0 | 0 | - | 33 | 4 | |||
| 2011 | 콘사돌레 삿포로 | J2 리그 | 5 | 0 | 1 | 0 | - | 6 | 0 | |
| 2012 | J1 리그 | 5 | 0 | 1 | 0 | 2 | 0 | 8 | 0 | |
| 2013 | 나라 클럽 | 지역 리그 | 3 | 0 | 2 | 1 | - | 5 | 1 | |
| 2014 | 8 | 0 | 2 | 1 | - | 10 | 1 | |||
| 2015 | 풋볼 리그 | 15 | 0 | 0 | 0 | - | 15 | 0 | ||
| 2016 | 5 | 0 | 1 | 0 | - | 6 | 0 | |||
| 2017 | 13 | 1 | 1 | 0 | - | 14 | 1 | |||
| 일본 리그 합계 | |27||24||6||12||2||358||35 | |||||||||
포항 스틸러스
*리그컵: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2009
기타 공식전
* 2000년
** J리그 챔피언십 1경기 0득점
| 국제 대회 기록 | ||||
|---|---|---|---|---|
| 시즌 | 클럽 | 대회 | 출장 | 득점 |
| 2009 | 포항 스틸러스 | AFC 챔피언스 리그 | 4 | 0 |
| 통산 | 4 | 0 | ||
6. 기타
* 2004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5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6년 가시와 레이솔에서 3년 연속으로 J1 승격에 기여하여 '승격 청부인'으로 불렸다. 2007년에는 베갈타 센다이의 J1 승격을 기대받았으나 이루지 못했고, 이후 2011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네 번째 승격 성공에 기여했다.
* 프로 입단 초기 183cm였던 키가 187cm까지 자랐다고 한다.
* 과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팀 동료였던 야스나가 사토시, 간페이 히로시와 외모가 닮았다. 마리노스 재적 시절 팬들에게 야스나가로 오인받은 경험이 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다。
* 경기 후 마이크 퍼포먼스인 '오카야마 극장'으로 유명하다.
* 센다이 시절인 2007년 8월 30일 교토전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11,000명밖에 오지 않아 아쉽다. 이 스타디움(유아텍 스타디움 센다이)은 19,694명 들어갈 수 있다. 다음 경기인 사가전, 만원으로 채워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공식 모바일 사이트를 통해 "J2에서 그 정도 관중도 대단하지만, 만원 유아스타에서 경기를 하고 싶어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 만원 대작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퍼포먼스는 서포터, 자원봉사자, 시민 후원회, 클럽, 선수 등이 모두 참여하는 '유아스타 라스트 스퍼트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카야마 본인도 10월 14일 전단 배포 이벤트에 빨간 자전거를 타고 등장해 시민들에게 경기장 방문을 호소했다.
* 가시와 레이솔 시절인 2006년 5월 27일 삿포로전 후에도 비슷한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 다음 홈 경기 상대였던 도쿄 베르디전을 언급하며 "1만 명 안 오면 부끄럽지 않나? 친구들을 불러서 1만 2천 명으로 만들자! 그러면 절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도쿄 베르디전 관중은 1만 2천 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오카야마의 2골 활약에 힘입어 팀은 4-1로 승리했다. 경기 후 퍼포먼스에서는 "1만 2천 명까지 조금 모자랐다. 1만 2천 명 왔으면 내가 해트트릭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2008년 5월 18일 미치노쿠 더비(야마가타전)에서 자신의 실수로 전반에 2실점하자 하프타임에 선수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에 자극받은 팀은 후반 3득점으로 역전승했고, 오카야마는 승리 후 눈물을 흘렸다.
* 센다이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은 후인 2009년 1월 1일 천황배 결승전(감바 오사카 대 가시와)에 가시와 유니폼을 입고 응원석에 나타났다. 경기 전 서포터 행사에서 신년 건배를 제의하며 "무직인 오카야마입니다", "가시와 걱정보다 제 걱정부터 하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등 자신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했으며, "이시자키 감독을 남자답게 만들어줍시다!!"라고 외치며 이시자키 노부히로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경기 중에는 응원단장 옆에서 열띤 응원을 보냈다.
* 2009년 2월 8일, 베갈타 센다이 오피셜 숍에서 "작별 사인회"를 열고 "센다이 서포터 여러분과 웃는 얼굴로 작별하고 싶다"고 말했다.
*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참가한 2009년 ACL 결승 후, 포항 응원석에서 포항, 센다이, 가와사키 서포터들과 함께 각 팀의 챈트를 열창했다. 포항 챈트의 원곡은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중 '지옥의 갤럽'이다.
* 포항 입단 당시, 친구와 함께 자신의 플레이를 담은 DVD를 구단에 보냈다. 수비수임에도 골 장면 위주로 편집되었는데, 헤딩의 임팩트를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제출했다고 한다.
* 2010년 7월 4일, 포항 소속으로 센다이와의 프리시즌 매치에 주장 완장을 차고 풀타임 출전했다. 경기 후에는 양 팀 선수 및 서포터와 함께 '오카야마 극장'을 선보였다.
* 2011년 3월 29일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힘내라 일본!)에 센다이 유니폼을 입고 참가하여 센다이 챈트를 일본 대표팀 응원가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아비스파 후쿠오카 서포터들과 화해하며 팬들 간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2011년 12월, 마리노스 시절 선배인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함께 일본 축구 협회의 사회 공헌 활동 '꿈 선생님'에 참가했다. 당시 마리노스 선배였던 히라마 사토카즈와 야스나가 사토시도 함께 참여했고, 활동 후 4명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