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다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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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타 다이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3루수, 외야수, 1루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투수와 3루수로 활약하며 '다쓰노리 2세'라는 별칭을 얻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1순위 지명을 받아 요미우리에 입단하여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했다. 이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2017-2021)를 거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2022-2024)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20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24년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오타 다이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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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포지션외야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등번호0
출생일1990년 6월 9일
출생지일본,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188
몸무게96
타석
투구
데뷔 리그NPB
데뷔일2009년 6월 21일
데뷔팀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경력
고등학교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
프로 입단 연도2008년
드래프트 순위드래프트 1위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2009년–2016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17년–2021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22년–현재)
최종 출장일2023년 10월 4일
윈터리그 참가야키스 데 오브레곤 (2023년)
국가대표 일본
연봉1,000만 엔(2011년)
통계 (2023 시즌)
리그NPB
타율.259
안타718
홈런84
타점343
도루29
수상 내역
수상NPB 올스타 (2018년)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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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 입단 전

오타 다이시는 히로시마현 미요시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이자 투수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1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6학년부터는 연식 야구 클럽인 ‘마쓰나가 양키스’(松永ヤンキース일본어)에 소속되어 3루수 겸 투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시절 가을에 열린 현 대회에서 우승했고, 3학년 때 야구 교실에서 하라 다쓰노리에게 타격을 칭찬받아 도카이 대학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봄부터 3루수로 벤치에 들어갔고, 가을에는 4번 타자를 맡았다. 2학년 가을부터는 주장을 맡았다. 큰 스케일의 타격과 수비 능력, 리더십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어 ‘다쓰노리 2세’(タツノリ2世일본어), ‘가나가와의 지터’(神奈川のジーター일본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팀은 3년 연속 현 대회 결승에서 패배하여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제9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기타가나가와 대회 결승전에서는 대회 신기록인 5홈런을 기록했고, 중간 계투로 등판해 최고 속도 147km/h를 기록했다. 고교 시절 통산 65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미국과 일본의 스카우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만루 홈런(고교 통산 5개)을 날리는 등 만루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애초에는 도카이 대학 진학이 확실시되었지만, 히로시마 현에 상경했을 때 히로시마 도요 카프한신 타이거스의 경기를 관전한 것을 계기로 “화려한 프로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라고 느껴 프로 입단을 지원했다.

2.1. 유소년 시절

히로시마현 미요시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이자 투수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1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6학년부터는 연식 야구 클럽인 ‘마쓰나가 양키스’(松永ヤンキース일본어)에 소속되어 3루수 겸 투수로서 활약했다. 중학교 시절 가을에 열린 현 대회에서 우승했고, 3학년 때 야구 교실에 참가했을 당시 하라 다쓰노리에게서 강력한 타격 면을 칭찬받아, 하라 다쓰노리의 모교인 도카이 대학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봄부터 3루수로 벤치에 들어갔고, 1학년 가을에는 4번 타자, 2학년 가을부터 주장을 맡았다. 큰 스케일의 타격과 수비 능력, 리더십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어 ‘다쓰노리 2세’(タツノリ2世일본어), ‘가나가와의 지터’(神奈川のジーター일본어)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3년 연속 현대회 결승에서 패배해 고교 시절 동안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제9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기타가나가와 대회 결승전에서는 대회 신기록인 5홈런을 기록했고, 이후 중간 계투로 등판해 최고 속도 147km/h를 기록했다. 고교 시절 통산 65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미국과 일본의 스카우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만루 홈런(고교 통산 5개)을 날리는 등 만루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애초에는 도카이 대학 진학이 확실시되었지만, 히로시마 현에 상경했을 때 히로시마 도요 카프한신 타이거스의 경기를 관전한 것을 계기로 “화려한 프로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라고 느껴 마감일에 프로 입단을 지원했다. 이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요미우리가 교섭권을 획득해 계약금 100, 연봉 12(추정)으로 계약을 맺고 정식으로 입단했다. 마쓰이 히데키메이저 리그 진출 후 영구 결번이던 등번호 55번을 배정받았고, 기숙사에서는 마쓰이나 사카모토 하야토 등이 머물렀던 방에 입주했다.

2.2. 고등학교 시절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출신으로, 히로시마 현립 미요시 고등학교에서 투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캐치볼을 시작했고, 후쿠야마시립 가와구치 초등학교 1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5학년부터는 연식 야구 클럽 도모코조 클럽에서 활동했다.

후쿠야마 시립 조난 중학교 2학년 가을에 현 대회에서 우승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마쓰나가 양키스 클럽에서 우에모토 다카시와 함께 활동했는데, 2학년 때는 유격수를 맡았고, 3학년 때는 배터리를 이뤄 오타가 투수를 맡았다. 같은 해, 전 프로 야구 선수들이 지도하는 야구 교실에 참가하여 하라 다쓰노리에게 스윙을 칭찬받았고, 이를 계기로 하라의 모교인 도카이대 사가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도카이대 사가미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봄부터 3루수로 벤치에 들어갔다. 1학년 가을에는 4번 타자를 맡았고, 2학년 가을부터는 주장을 맡았다. 3학년 봄에는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3학년 여름 제9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북 가나가와 대회 결승에서는 대회 신기록인 5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고시엔 출전은 좌절되었지만, 고교 통산 홈런 65개(그 중 만루 홈런 5개), 추정 비거리 140미터의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 투수로서 최고 속도 147km/h의 강한 어깨, 데릭 지터를 연상시키는 대형 유격수라는 점 등에서 드래프트 상위 후보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기로는 스미 코타가 있고, 1학년 선배로는 스카노 도모유키, 다나카 고스케가 있다.

3. 프로 경력

오타 다이시는 프로 야구 선수로서 여러 팀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9-2016)
* 2009년 프로에 입단하여 하라 감독에게 타격 지도를 받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1군과 2군을 오가며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 2012년 아베 신노스케, 나가노 히사요시 등과 괌에서 자율 훈련을 하며 기량을 발전시켰고,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 2014년에는 부상 선수들의 공백을 틈타 1군에서 활약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기용되기도 했다.
* 2016년 오타니 쇼헤이에게서 첫 선두 타자 홈런을 쳤지만, 이후 부진으로 2군에 강등되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2017-2021)
* 2016년 요시카와 미츠오, 이시카와 신고와의 트레이드로 쿠몬 카츠히코와 함께 이적했다.
* 2017년 이적 후 첫 홈런과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팀에 빠르게 적응했다.
* 2018년 2018 NPB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주전 우익수로 활약하며 타율 0.274, 14홈런, 59타점을 기록했다.
* 2019년 개인 최다 경기 출전, 첫 20홈런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 2020년 안정적인 타격과 뛰어난 수비로 골든글러브상을 첫 수상했다.
* 2021년 부진으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시절 (2022-2024)
* 2021년 12월 계약금 50에 계약하며 이적했다.
* 2022년 이적 후 첫 홈런과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 2023년 전반기 부진을 겪었으나, 시즌 막판 주전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활약했다.
* 2024년 부상으로 개막 전에 이탈했고, 1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3.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9-2016)

2009년 캠프부터 주목을 받아, 신인임에도 하라 감독으로부터 타격 지도를 받았다. 이후 2군에서 뛰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6월 17일에 처음으로 1군에 승격했다. 6월 2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대타로 첫 타석에 들어섰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2010년 6월 12일과 6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8번·1루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6타수 무안타로 끝났다. 1군 출장은 이 2경기가 전부였다. 이스턴 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10월 23일부터 대만에서 개최된 제17회 IBAF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2011년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지만, 5월 16일 1군에 승격, 5월 18일 라쿠텐전에서 연장 10회 1사 만루 상황에 프로 첫 안타를 쳐 결승 2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와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1군에 정착하지는 못했다.

2012년 아베 신노스케, 나가노 히사요시 등과 에서 자율 훈련을 했고, 스프링 캠프부터 1군에 동행했다. 개막 1군 엔트리에 진입했지만, 컨디션 난조로 4월 10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9월 1일 재승격, 같은 날 DeNA전에 "7번·1루수"로 선발 출장해 선제 적시타 포함 3타점을 기록하며 맹타상을 받았다. 9월 2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도쿄 돔)에서 야마모토 테츠야에게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고, 리그 종반에는 중견수 등으로 17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최종 21경기에 출전했다.

2013년 2년 연속 개막 1군에 진입했지만, 5월 2일 등록 말소 후 거의 2군에서 시즌을 보냈다. 2년 연속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홈런은 없었다. 11월 26일 등번호가 "44"로 변경되었다.

2014년 개막은 2군에서 맞이하여 5월 9일 승격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고 5월 18일 등록 말소되었다. 이후 한동안 1군 승격이 없었지만, 8월 8일 다시 1군에 승격했다. 9월 1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시즌 1호 대타 역전 2점 홈런을 기록하며 선발 기용 기회가 늘었고, 리그 우승 다음 날인 9월 27일 "4번·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이 해 44경기에 출전, 타율 .246, 2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 4월 30일 주니치전에서 부상당한 사카모토를 대신해 4번 타자를 맡아 3안타를 기록하며 인터뷰에 참여했다. 5월 13일 히로시마전에서 오세라 다이치에게서 1호 홈런을 쳐내는 등 거의 1군에 정착하며 7년 만에 출전 기회가 증가했다. 60경기 출전, 138타석 36안타는 모두 개인 최다 기록이며 타율 .277을 기록했지만, 1홈런, 3타점에 그쳤다.

2016년 6월 3일 경기부터 "1번·중견수"로 선발 출장, 6월 5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서 첫 선두 타자 홈런을 쳤다. 그러나 이후 2타석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다른 타자들도 오타니를 공략하지 못하고 패했다. 62경기 출전, 타율 .202, 4홈런을 기록했다.
2016년 11월 2일, 요시카와 미츠오, 이시카와 신고와의 트레이드로 쿠몬 카츠히코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했다.

3.1.1. 2009-2013 시즌

スプリングキャンプ일본어에서 나카이 다이스케와 함께 하라 감독에게서 타격 폼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마쓰이 히데키의 타격 폼을 흉내 낸 폼을 스스로 고안하여 프리배팅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월 20일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아 3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 펜스를 때리는 적시 2루타를 치면서 2군 정규 경기 첫 타점을 기록했다. 4월 24일 쇼난 시렉스전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4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2회에 대럴 래스너에게서 백 스크린 우측에 동점 솔로 홈런(11호), 8회 2사 1루 상황에서 요시자키 마사루에게서 2점 홈런(12호)을 기록하며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2군에서는 타율 2할 3푼 8리, 17홈런, 56타점을 기록했다.

6월 17일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고, 6월 21일 도쿄 돔에서 열린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마쓰모토 데쓰야의 대타로 나섰으나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2군에서는 101경기에 출전, 타율 2할 6푼 5리와 21홈런, 70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리그 2위의 성적을 남겼지만, 1군에서는 2경기에만 출전했다. 10월 23일부터 타이완에서 개최된 제17회 IBAF 인터컨티넨탈 컵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5월 1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만루 상황에 결승 2점 적시타를 때려냈는데, 이 안타는 데뷔 후 첫 안타였다. 그러나 수비에서 약점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이후 2군에서는 중견수로 출전했다. 홈런은 6개로 크게 줄었지만, 도루는 2군에서 2위에 해당하는 28개를 기록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0년에는 6월 12일과 13일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8번·1루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총 6타수 무안타로 끝났다. 1군에서의 출장은 이 2경기로 끝났다. 한편, 이스턴 리그에서는 10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5, 홈런 21개, 타점 70개. 홈런과 타점에서 리그 2위를 기록했다.

2011년에도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지만, 5월 16일에 1군에 승격했다. 5월 18일의 라쿠텐전에서 연장 10회 1사 만루 상황에서 프로 첫 안타를 쳐, 이것이 결승 2점 적시타가 되었다. 그러나, 수비면의 불안에 더해, 28타석 4안타 9삼진으로 타격에서도 결과를 내지 못해 1군 정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욱 타격에 전념하기 위해, 6월 이후에는 2군에서 외야수로 플레이했다. 1군에서는 12경기에 출전에 그쳤지만 이스턴 리그에서는 10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4, 홈런은 6개로 크게 줄었고, 삼진은 리그 최다인 109개. 한편 도루 수는 리그 2위인 28개를 기록했다 (도루사는 리그 최다인 15개). 가을 캠프에서 외야수로의 컨버트가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2012년에는 아베 신노스케, 나가노 히사요시 등과 함께 에서 자율 훈련을 했다. 스프링 캠프부터 1군에 합류했고, 오픈전에서 부진했지만, 외야 한 자리를 맡아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개막 후에도 컨디션 난조로 4월 10일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1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와 DeNA전에 7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 선제 적시타를 포함해 3타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9월 2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야마모토 테츠야에게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고, 9월 2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도 홈런을 쳤다. 리그 막판에는 중견수 등으로 17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최종 21경기에 출전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벤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11월부터 아시아 윈터 리그에 참가하여 3홈런, OPS .980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2년 연속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하시모토 도, 카메이 요시유키 등에 밀려 5월 2일 등록 말소된 이후에는 거의 2군에서 시즌을 보냈다. 2년 연속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홈런은 없었다. 10월 5일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쳐서 교육 리그 원정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2군에서 4년 연속 삼진왕을 기록했다. 11월 26일, 등번호가 44번으로 변경되었다.

3.1.2. 2014-2016 시즌

2014년에는 개막을 2군에서 맞이하여 5월 9일에 승격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고 5월 18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한동안 1군 승격이 없었지만, 레슬리 앤더슨, 마츠모토 테츠야, 카메이 요시유키가 차례로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8월 8일에 다시 1군에 승격했다. 주로 마츠모토를 대신하는 수비 요원이나 대주자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9월 1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시즌 1호 대타 역전 2점 홈런을 날리면서 선발 기용될 기회도 늘어났다. 리그 우승 다음 날인 9월 27일에는 "4번·중견수"로 선발 출장하여,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제81대이자, 헤이세이 시대 출생으로는 팀 사상 첫 4번 타자가 되었다. 이 해에는 4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6, 2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인 10월 21일에는 "일본 프로 야구 80주년 기념 경기"의 한신·요미우리 연합팀에 선출되었다.

2015년에는 4월 30일 주니치전에서 부상당한 사카모토를 대신하여 4번 타자를 맡아 3안타를 기록하며 인터뷰에 참여했다. 5월 13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오세라 다이치로부터 1호 홈런을 쳐내는 등, 거의 1군에 정착하여 7년 만에 출전 기회가 증가했다. 최종적으로 60경기 출전, 138타석에 36안타는 모두 자기 최다 기록이었으며, 타율 .277을 기록했지만, 1홈런, 3타점에 그쳤다.

2016년에는 6월 3일 경기부터 "1번·중견수"로 선발 출장하여, 6월 5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오타니 쇼헤이로부터 본인 첫 선두 타자 홈런을 쳤다. 그러나 그 후에는 2타석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다른 타자들도 오타니를 공략하지 못하고 패했다.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타격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2군으로 강등되었다. 62경기 출전에 타율 .202, 4홈런을 기록했다.

2016년 11월 2일, 요시카와 미츠오, 이시카와 신고와의 트레이드로 쿠몬 카츠히코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했다.

3.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2017-2021)

2016년 11월 2일, 오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함께 뛰던 구몬 가쓰히코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닛폰햄의 투수 요시카와 미쓰오이시카와 신고가 요미우리로 가는 조건이었다. 닛폰햄은 요 다이칸이 떠난 외야를 보강하기 위해 오타의 활약을 기대했다. 2018년에는 2018 NPB 올스타전에 선발되기도 했다. 2021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2.1. 2017-2021 시즌

2016년 11월 2일, 오타는 팀 동료 구몬 가쓰히코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투수 요시카와 미쓰오이시카와 신고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닛폰햄 시대(2017년, 삿포로 돔에서)
닛폰햄 시대(2017년, 삿포로 돔에서)


2017년은 부상으로 인해 개막전에 늦게 합류했지만, 4월 23일에 1군에 승격되었다. 4월 29일 라쿠텐전에서 미마 마나부를 상대로 이적 후 첫 홈런, 5월 3일 롯데전에서는 마스다 나오야를 상대로 프로 첫 끝내기 적시타를 기록했다. 5월 12일 롯데전에서는 와쿠이 히데아키를 상대로 이적 후 첫 1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연간 좌익수의 레귤러로 기용되어, 10월 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프로 9년 만에 첫 규정 타석을 채웠다. 좌익수 레귤러로 11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58, 15홈런, 46타점, 출루율 0.302를 기록했다.

2018년은, 개막을 "7번·좌익수"로 맞이했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콘도 켄스케가 좌익수를 맡는 경우도 있어, 우익수 레귤러로 출전했다. 4월 24일 오릭스전부터 "2번·우익수"로 출전하여, 카네코 치히로를 상대로 2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7월 8일 롯데전에서 타나카 야스히로에게 사구를 맞아 왼손 다섯 번째 중수골 골절, 9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 8월 25일에 출전 등록되어 복귀했다. 부상으로 인한 이탈도 있어, 출전 경기 수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104경기에 출전, 타율 0.274, 14홈런, 59타점, 출루율 0.350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12월 26일에 등번호를 "5"로 변경했다.

2019년도 전년에 이어 우익수 레귤러로 정착했다. 자신의 생일인 6월 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역대 35번째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했다. 또한, 이는 통산 홈런 49개째였으며, 50홈런 미만으로 달성한 것은 2015년 오히키 케이지에 이어 두 번째였다. 자기 최다인 1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9, 개인 첫 20홈런, 77타점, 출루율 0.325로 많은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한편, 병살타 22개는 리그 최악이었다. 시즌 종료 후 계약 갱신에서 3500만 엔 인상된 1억 엔에 사인하며, 프로 11년 만에 억대 연봉 선수가 되었다.

2020년도 우익수 레귤러로 120경기 중 115경기에 출전했다. 타격 성적은 타율 0.275, 14홈런, 68타점, 출루율 0.314로,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수비에서도 리그 2위인 보살 7회를 기록하는 등 활약하여, 골든글러브상을 첫 수상했다.

2021년도 우익수로 개막 선발 출장을 했지만, 59경기 출전, 타율 0.212, 3홈런, 17타점으로 타격 부진에 시달렸고, 6월 25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8월 13일 후반기 개막과 함께 1군에 등록되었지만, 재승격 후에도 부진이 이어져, 9월 6일에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그리고 11월 16일에 구단으로부터 보류 절차를 하지 않기로 발표되었고, 12월 2일에 니시카와 하루키, 아키요시 료와 함께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시절 (2022-2024)

오타 다이시는 2021년 12월 20일 일본 프로 야구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 계약했다. 추정 연봉은 5,000만 엔이었으며, 등번호는 나카이 다이스케가 전년까지 사용했던 '0'을 물려받았다.

3.3.1. 2022-2024 시즌

에는 치열한 외야수 경쟁 속에서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선발 출장 시 주로 2번 타자를 맡아 타격 능력을 발휘했고, 4월 17일 야쿠르트전에서 다카하시 게이지를 상대로 이적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8일 히로시마전 수비 도중 오른쪽 허벅지 뒤 근육 파열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6월 3일 1군에 복귀하여 상황을 보며 출전을 이어갔지만, 다리의 뻐근함과 컨디션을 고려하여 7월 8일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8월 5일 다시 1군에 합류했고, 8월 9일 한신전에서 동점인 9회 2사 상황에서 가지야 렌을 상대로 이적 후 첫 끝내기 적시타를 쳤다. 8월 11일 발열과 두통 증세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이탈했다. 8월 28일 1군에 복귀했고, 8월 30일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 개인 통산 두 번째 1경기 5안타를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최종적으로 62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지만, 타율 0.278, 5홈런, 18타점, OPS 0.774를 기록하며 전년도의 부진에서 벗어났고, 성적 이상으로 인상적인 활약과 벤치에서 팀을 격려하는 등 분위기 메이커 역할로 3년 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2022년 3월 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2022년 3월 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에는 전반기에 타율 0.127로 타격 부진에 시달렸고, 7월 10일에 2군 조정을 위해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7월 22일 다시 1군에 합류했고, 같은 날 야쿠르트전에서 3개월 만에 적시타를 쳤다. 9월 17일 한신전에서는 0 대 0으로 맞이한 9회 초에 대타로 기용되어, 콜튼 브루워의 초구를 받아쳐, 구단 사상 첫 대타 홈런으로 1 대 0 승리를 결정지었다. 0 대 0인 9회에 대타 솔로 홈런으로 경기를 결정지은 것은, NPB에서는 74년 만이며 2 리그제로 전환된 이후 처음 있는 기록이었다. 시즌 막바지에 사노 게이타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사노를 대신하여 3번 타자로 나섰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1st 스테이지 히로시마전에서도 '3번 우익수'를 맡았다. 전반기 부진의 영향으로, 7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17, 4홈런, 15타점을 기록했지만, 오프 시즌에는 멕시코 윈터 리그의 야키스 데 오브레곤으로 파견되어,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무사 수행을 했다. 10월 말부터 7경기에 출전했지만,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하고 11월 28일에 귀국했다.

에는 3월 10일 세이부와의 오픈전에서 주루 도중 다리를 다쳐 교체되었다. 왼쪽 햄스트링 근육 파열로 진단받아 개막 전에 이탈했다. 2군 경기 7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4, 1홈런, 15타점의 성적에 그쳤고, 1군 출전 기회 없이, 10월 1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그 후 10월 5일에 개최된 팜 일본 선수권에는 '4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여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50m 달리기를 6초대에 주파할 정도로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가진 높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타격에서는 호쾌한 풀스윙과 뛰어난 장타력을 자랑한다. 외야수로 전향 후에는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투수로서 최고 구속 147km/h를 기록했다. 2018년에는 양 리그 우익수 중 2위인 UZR 13.3을 기록했다. 빠른 발도 장점이며, 고등학교 시절 50m 달리기 기록은 6초 1이었다.

닛폰햄 시절인 2018년부터 3년간 팀의 2번 타자로 활약하며, "공격"하는 2번 타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구리야마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2번 타자니까 번트나 우타를 쳐야 한다는 고정 관념은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5. 개인 기록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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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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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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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311100000000000010.000.000.000.000
266000000000000010.000.000.000.000
1228264410053001100090.154.148.192.340
2170639164122873200700153.254.329.444.773
2138313500052102141090.161.250.161.411
447465141660228124200811202.246.338.431.769
6013813013367014633200701390.277.319.354.673
62119114122361443130001400453.202.227.377.604
닛폰햄118457427411102111517846520228008814.258.302.417.719
1044293835610522414177593401380710311.274.350.462.812
1325945577916128120251776205274511122.289.325.451.776
1154814555712516114185683300251110511.275.314.407.721
7620619111395235720110114305010.204.257.298.556
DeNA621531441740101567180111601334.278.309.465.774
751861751838120462150000902492.217.263.354.618
통산:15년90729802768334718138128411323432919413177101867882.259.307.409.716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6. 수상

* 골든 글러브상 : 1회 (2020년 외야수 부문)

7.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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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등번호
2009년 ~ 2013년55
2014년 ~ 2016년44
2017년 ~ 2018년33
2019년 ~ 2021년5
2022년 ~0


2016년 11월 23일 닛폰햄 팬 페스티벌에서 등번호가 '33'으로 결정되었다고 발표되었다. 2018년 12월 26일에는 등번호를 "5"로 변경했다. 2021년 12월 14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 계약하면서 등번호는 요미우리 시절 선배인 나카이 다이스케가 전년까지 사용했던 '0'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