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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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이세이 시대는 1989년 1월 7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이어진 일본의 연호이자, 아키히토 천황 재위 기간을 일컫는다.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버블 경제 붕괴, 장기 불황, 저출산 고령화, 사회 문제 등 다양한 변화와 과제를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여러 차례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경제적으로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지위를 중국에 넘겨주기도 했다. 과학 기술,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2019년 4월 30일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와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로 레이와 시대로 전환되었다.

헤이세이 시대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일본어平成
로마자 표기Heisei
한국어헤이세이
주요 사건
주요 사건일본 자산 가격 거품
한신·아와지 대지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교토 의정서
아마미오 섬 해전
이라크 부흥 지원단
오션 실드 작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기간
시작1989년 1월 8일
종료2019년 4월 30일
정치
천황아키히토
주요 사건잃어버린 10년
이전 시대 및 다음 시대
이전 시대쇼와 시대
다음 시대레이와 시대
기타 정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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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과 연호 결정

平成일본어사기서경에서 유래한 연호로,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89년 1월 7일 쇼와 천황의 사망과 아키히토의 즉위로 새로운 연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 내각은 '헤이세이', '슈분', '세이카'를 최종 후보로 검토했으나, '슈분'과 '세이카'는 로마자 표기 시 S로 시작하는 쇼와와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로 '헤이세이'를 선택했다. 오부치 게이조 당시 내각관방장관은 임시 각료 회의와 기자 회견을 통해 헤이세이 연호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2.1. 어원

헤이세이(平成)는 《사기》 〈오제본기〉의 내평외성(內)과 《서경》 〈대우모〉의 지평천성(地)에서 따온 글자로서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이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989년 1월 7일 오후 2시 36분에 열린 기자 회견을 통해 헤이세이가 일본의 새 연호로 결정되었음을 발표했다.

오부치 게이조는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989년 1월 7일)
오부치 게이조는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989년 1월 7일)


오부치에 따르면, "헤이세이"라는 이름은 《사기》 및 《서경》 등 두 권의 중국 역사 및 철학 서적에서 따온 것이다. 《사기》에는 전설적인 중국 순임금의 현명한 통치를 기리는 부분에 "內平外成중국어"(內平かに外成る중국어, "내부는 평화롭고 외부는 번영하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서경》에는 "地平天成중국어"(地平かに天成る중국어,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완성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두 의미를 결합하여 헤이세이는 "온 세상의 평화"를 의미하도록 의도되었다.

2.2. 연호 결정 과정

1989년 1월 7일, 쇼와 천황이 사망하고 아키히토 황태자가 즉위하면서 새로운 연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 내각 내정 심의실은 '헤이세이'(平成), '슈분'(修文), '세이카'(正化)를 최종 연호 후보로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내각총리대신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일본 내각에서는 '슈분'과 '세이카'가 로마자 표기 시 S로 시작하는 쇼와와 혼동된다는 지적이 있었고, 로마자 H로 시작하는 '헤이세이'를 새 연호로 결정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날 열린 전체 각료 회의에서도 헤이세이를 새 연호로 결정하자는 일치된 의견이 나왔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989년 1월 7일 오후 2시 10분에 열린 임시 각료 회의를 통해 새 연호를 결정했고, 오후 2시 36분에 열린 기자 회견을 통해 헤이세이가 일본의 새 연호로 결정되었음을 발표했다.

오부치 게이조는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989년 1월 7일)
오부치 게이조는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989년 1월 7일)


최종 후보 3개 중 하나였던 "平成(헤이세이)"을 제안한 사람은 동양사학자 야마모토 타츠로(山本達郎)이다. 당시 내각내정심의실장이었던 마토바 준조(的場順三)에 따르면, 연호 최종 후보 3개는 비밀리에 위촉했던 야마모토, 메가타 마코토(目加田誠), 우노 세이이치(宇野精一) 3명의 제안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3. 정치

헤이세이 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자유민주당(자민당) 단독 정권, 비자민·비공산 연립 정권,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 정권(자사사 연립 정권),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권(자공 연립 정권), 민주당·사회민주당·국민신당 연립 정권(민사국 연립 정권) 등 다양한 형태의 정권이 등장했다.

1993년 자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이끄는 연립 정부에 의해 실각했다. 그러나 이 연립 정부는 자민당 타도라는 목적 외에는 거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통일된 입장이 없어 붕괴되었다. 자민당은 1994년 일본 사회당(후일 사회민주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총리로 선출하는 데 기여하면서 정부로 복귀했다.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DPJ)이 308석을 획득하여 50년간 자민당의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켰다. 아소 다로는 자민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고, 민주당 대표인 하토야마 유키오가 2009년 9월 16일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곧 정당 자금 스캔들에 휘말렸고, 간 나오토가 민주당의 차기 총리로 선출되었지만, 곧 2010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잃었다.

2011년 8월, 간 나오토가 사임하고 노다 요시히코가 총리가 되었다. 2012년, 노다 요시히코는 선거에서 패배하여 아베 신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15년 9월 18일, 국회는 일본 자위대가 동맹국의 전투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2015년 일본 안보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3.1. 내각 변천

헤이세이 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자유민주당(자민당) 단독 정권, 비자민·비공산 연립 정권,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 정권(자사사 연립 정권),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권(자공 연립 정권), 민주당·사회민주당·국민신당 연립 정권(민사국 연립 정권) 등 다양한 형태의 정권이 등장했다.

주요 내각으로는 무라야마 내각, 하시모토 내각, 고이즈미 내각,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다로 내각,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간 나오토 내각, 노다 요시히코 내각,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등이 있다.

다음은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변천을 정리한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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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총리정당비고
1989년우노 소스케자민당
1989년 ~ 1990년가이후 도시키자민당
1991년미야자와 기이치자민당
1993년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신당비자민·비공산 연립 정권
1994년하타 쓰토무신생당비자민·비공산 연립 정권
1994년 ~ 1996년무라야마 도미이치사회당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 정권
1996년 ~ 1998년하시모토 류타로자민당
1998년 ~ 2000년오부치 게이조자민당
2000년 ~ 2001년모리 요시로자민당
2001년 ~ 2006년고이즈미 준이치로자민당
2006년 ~ 2007년아베 신조자민당
2007년 ~ 2008년후쿠다 야스오자민당
2008년 ~ 2009년아소 다로자민당
2009년 ~ 2010년하토야마 유키오민주당민주당·사회민주당·국민신당 연립 정권
2010년 ~ 2011년간 나오토민주당민주당·사회민주당·국민신당 연립 정권
2011년 ~ 2012년노다 요시히코민주당
2012년 ~ 2019년아베 신조자민당

3.2. 정당 정치

1993년 자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이끄는 연립 정부에 의해 실각했다. 그러나 이 연립 정부는 자민당을 타도하기 위해 모인 것일 뿐, 거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통일된 입장이 없어 붕괴되었다. 자민당은 1994년 일본 사회당(후일 사회민주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총리로 선출하는 데 기여하면서 정부로 복귀했다.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DPJ)이 308석을 획득하여 50년간 자민당의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켰다. 선거 결과, 아소 다로는 자민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고, 민주당 대표인 하토야마 유키오가 2009년 9월 16일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곧 정당 자금 스캔들에 휘말렸고, 간 나오토가 민주당의 차기 총리로 선출되었지만, 곧 2010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잃었다.

헤이세이 시대에 설립된 주요 지역 정당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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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명설립자/대표비고
오사카 이신노카이하시다 토루 오사카부지사
일본 제일 아이치노카이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
중경 이신노카이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
도민 퍼스트노카이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지역정당 이와테이이자와 타쿠마 이와테현 의회 의원
사이타마 카이엔타이시미즈 하야토 사이타마시 시장
미키 신당 8인의 사무라이와라본 요시히데 효고현 미키시 시장
감세 일본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 시장
대화로 잇자 시가노카이시미즈 테츠지 시가현 의회 의원대표
류마 프로젝트후쿠다 신센카이이시카와 마사토 전 오사카부 후쿠다시 의회 의원
신정 미에
마쓰야마 이신노카이에히메현 마쓰야마시 의회 의원들
에히메 이신노카이에히메현 의회 의원들
니시요 이신노카이에히메현 니시요시 의회 의원들
교토당무라야마 요시히데 교토시 의회 의원

3.3. 정치 개혁

헤이세이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정치 개혁이 이루어졌다.

* 중의원 선거 제도 개혁: 소선거구제 도입
* 정치 자금 규제법 개정
* 정당 보조금 제도 도입
* 지방 분권 개혁 추진
* 1993년, 자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이끄는 연립 정부에 의해 실각했으나, 이 연립 정부는 자민당 타도라는 목적 외에는 통일된 입장이 없어 곧 붕괴되었다.
* 1994년, 자민당은 일본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총리로 선출하는데 기여하며 정권에 복귀했다.
* 2009년, 일본 민주당(DPJ)은 중의원 선거에서 308석을 획득하여 50년간 자민당의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켰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총리가 되었으나, 정당 자금 스캔들에 휘말렸다.
* 간 나오토가 DPJ의 차기 총리로 선출되었지만, 곧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잃었다.
* 2011년 8월, 간 나오토가 사임하고 노다 요시히코가 총리가 되었다.
* 2012년, 노다 요시히코는 선거에서 패배하여 아베 신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 2015년 9월 18일, 국회는 일본 자위대가 동맹국의 전투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2015년 일본 안보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3.4. 주요 정치인

{{lang 당시 관방장관이 '헤이세이' 연호 발표 당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경제

IMF 추산에 따르면, 1994년 일본의 1인당 GDP는 39953USD로 세계 3위였으나,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해인 2019년에는 40548USD로 27위로 하락했다. 이는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의 영향이 컸다.

;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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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헤이세이 첫해 (1989년)헤이세이 마지막 해 (2019년)
1 NTT
163.8
마이크로소프트
940.8
2 일본흥업은행
71.5
애플(Apple Inc.)
895.6
3 스미토모은행
69.5
아마존닷컴
874.7
4 후지은행
67
알파벳(Alphabet Inc.)
818.1
5 다이이치강요은행
66
버크셔 해서웨이
493.7
6 IBM
64.6
페이스북
475.7
7 미쓰비시은행
59.2
알리바바 그룹
472.9
8 엑손모빌
54.9
텐센트
440.9
9 도쿄전력
54.4
존슨앤존슨
372.2
10 로열 더치 셸
54.3
엑손모빌
342.1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등했으나, 1990년대 초 버블 붕괴와 함께 장기 불황을 겪었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일본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2010년에는 중국 경제에 명목 GDP 세계 2위 자리를 내주었다.

4.1. 버블 경제 붕괴와 장기 불황

1989년은 일본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성장 가운데 하나의 정점을 찍은 해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히 강세를 보인 에 힘입어 일본은행은 금리를 낮게 유지하여 투자 붐을 일으켰고, 이는 도쿄 부동산 가격을 그 해에만 60%나 상승시켰다. 새해 전날 직전, 도쿄 증시 지수인 닛케이 225는 사상 최고치인 38,957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2년에는 15,000까지 떨어져 일본의 "버블 경제"의 종말을 알렸다.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는데, 실제로는 10년 이상 지속된 가격 디플레이션과 거의 정체된 GDP로, 일본 은행들은 부실 채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부문의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대 일본은 기업의 설비 투자가 억제되었고, 고용 불안의 증가로 개인 소비는 저조했다. 버블 붕괴로 막대한 자본 손실이 발생했다. 산요증권의 경영 파탄으로 인해 콜 시장에서 디폴트가 발생하여 콜 시장에 대한 자금 공급은 축소되었다. 1997년 소비세 증세(3%에서 5% 증세)는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었고, 일본은 전례 없는 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 경제에 돌입하게 된다.

1997년에는 산이치 증권, 홋카이도 타쿠쇼쿠 은행이 폐업했다. 1998년에는 일본 장기 신용 은행이 파탄하여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이 급증했다.

2000년대는 수출 산업인 제조업이 호황을 누렸지만, 인력 부족은 파견직을 중심으로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로 메워졌다. 세계 동시 불황은 제조업 이외의 업종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헤이세이 시대 내내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 달러 선에서 정체되었다.
헤이세이 시대 내내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 달러 선에서 정체되었다.


일본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를 겪었으며, 이 기간 동안 실질 임금과 물가 모두 하락했다. IMF 추산에 따르면, 1994년 일본의 1인당 GDP는 39,953달러로 세계 3위였다.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해인 2019년에는 40,548달러로 27위로 하락했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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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헤이세이 첫해 (1989년)헤이세이 마지막 해 (2019년)
1 NTT 마이크로소프트
2 일본흥업은행 애플
3 스미토모은행 아마존닷컴
4 후지은행 알파벳
5 다이이치강요은행 버크셔 해서웨이
6 IBM 페이스북
7 미쓰비시은행 알리바바 그룹
8 엑손모빌 텐센트
9 도쿄전력 존슨앤존슨
10 로열 더치 셸 엑손모빌

4.2. 구조 개혁과 아베노믹스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이끄는 내각은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추진하며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민간인 주차 감시원 제도 도입, 정장제와 비타민제의 약국 외 판매 허가, 주식회사 설립 요건 완화 (자본금 1엔부터 가능) 등 규제 완화를 실시했다. 또한 '관(官)에서 민(民)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일본도로공단, 영단 지하철, 나리타 국제공항 등을 민영화했다. 금융청을 통해 금융 재생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은행 부실 채권 처리를 진행하고 금융 기관을 건전화했다. 일본은행은 제로 금리 정책에서 양적 금융 완화 정책으로 전환했고, 도시은행들은 3대 메가뱅크로 통합되었다. 폴 크루그먼이 제창한 인플레이션 목표 도입도 검토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롯폰기 힐즈족이라 불리는 부유층이 등장했지만, 비정규직과 워킹 푸어 문제도 심화되면서 '격차 사회'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아소 내각은 정액급여금 지급, 친환경차 지원 정책 등 긴급 경제 대책을 시행했지만,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는 이르지 못했다.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은 아베노믹스라는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와 건설 국채 매입을 통해 디플레이션 탈피를 목표로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했다. 아베노믹스는 엔저를 유도하여 무역 흑자를 늘리고 주가를 상승시켜 소비를 촉진하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목표로 했다. 또한,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국토강인화 계획을 수립하고, 방재 및 감재를 위한 사회 기반 시설 보수 및 개축을 추진했다.

2013년 태국, 말레이시아 관광객에 대한 비자 면제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 관광객 중 IC칩 내장 여권 소지자에 대한 비자 면제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2013년 방일 외국인 관광객 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고, 2014년에는 1,341만 명을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14년 방일 여행객의 소비액도 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일본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관민 펀드인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를 설립했다. 2013년 일본 방송 콘텐츠 해외 수출액은 약 13800으로, 2010년의 약 6250에서 두 배로 증가했다.

2014년에는 고급 인재로 인정된 외국인의 영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

2010년대에는 네코노믹스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고양이 사육이 증가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 1달러당 80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1달러당 120엔대까지 하락하며 주가가 일시적으로 회복되었지만, 2016년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헤이세이 시대 말기에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인터넷에 게시하는 '바이트 테러'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아베노믹스는 엔저와 주가 상승을 가져왔지만, 실질 임금 상승과 소비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4.3. 산업 구조 변화

産業構造変化일본어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산업 공동화가 진행되었다. IT 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성장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의료, 복지 분야의 수요가 증가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로 인해 버블 경기에 따른 토지 신화가 사라지고, 기준 지가와 공시 지가 등 지가가 매년 하락을 거듭했다. 2005년 이후 일부 우량 토지의 지가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휘발유 가격 급등에 따른 운수업 경영 압박과 휘발유세 감세 문제가 제기되었다. 2008년에 일본의 관광을 활성화하고 관광지에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여 관광입국을 목표로 국토교통성 외청으로 관광청이 발족했다. 도박 관련으로는, 숫자 선택식 전국 자치 복권의 넘버스, 미니로토, 로토6, 로토7, 스포츠 진흥 복권, 경마의 와이드가 도입되었다. 금융 관련으로는 페이오프가 실시되었고, 인터넷 증권, 인터넷 쇼핑, 투자신탁이 보급되었다. 광고 관련으로는 얼굴 광고와 절대 영역 광고 등 인간 광고가 보급되었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붙이는 광고의 애드센스가 보급되는 등 인터넷 비즈니스가 성장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연예인의 블로그에서 스텔스 마케팅이 문제가 되었다.

소매업에서는 다이에이 등 GMS(종합 슈퍼)의 호황이 종식을 맞이하고, 100엔 숍, 북오프, 일본 맥도날드, 요시노야 등의 상품 가격 인하 경쟁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가격 경쟁에서 뒤처진 소고 등 백화점이 축소되었다. 유니클로 등 저가격으로 대량 판매하는 체인점과, 2000년에 대규모 소매점포법이 폐지됨에 따라 대규모 점포의 건설과 출점이 자유화되면서 이온을 대표로 하는 교외형 슈퍼가 성장했다. 자유민주당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계층에서는 대형점포와 체인점 등이 교외로 진출함으로써 지역의 개성이 상실된다고 하여 패스트 풍토화가 비판받았다. 도시 교외에는 로드사이드 점포가 즐비하게 들어서고, 개인 상점으로 구성된 상점가를 가진 지방 도시의 중심 시가지를 황폐화시켰다(샤터 거리 문제).

지방에서는 의료 붕괴가 시작되는 가운데, 철도 지방 노선과 시내버스가 잇따라 폐지되어, 자가용을 운전할 수 없는 고령자의 쇼핑난민과 교통난민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반면,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부의 젊은이들은 생활 필수품이 아닌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차량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헤이세이 시대에 성장한 젊은이들은 불황에 적응하여, 2013년에는 사토리 세대, 2014년에는 마일드 양키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목을 받았다.

지방에서 큰 고용을 창출했던 건설업은 대규모 공공사업의 감소로 건설 회사가 감소하여 일부는 농업이나 복지 산업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제조업은 엔고로 인해 생산 축소와 해외 공장 이전이 계속되었다. 헤이세이 초기부터 2010년대까지 남성 중심의 건설업, 제조업 등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여성 중심의 복지·서비스업, 사무직 등의 일자리가 증가한 결과, 노동력의 중심이었던 남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남성 불황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자화폐가 다양한 업종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특히 일본 국내에서는 Edy(현·라쿠텐 Edy), Suica에서 채택된 FeliCa에 의한 비접촉식 IC 카드 방식의 전자화폐가 급속히 보급되어, 유통계, 교통계 각사가 다양한 전자화폐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자화폐의 보급으로, 2011년에는 1엔 동전이 한 개도 제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현금을 대체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헤이세이 말기에는 상대적으로 전자 결제 이용률이 적은 국가가 되었다. 인쇄물인 서적을 대신하여 전자책이 보급되었다.

2006년 5월 1일에 총회 야를 규제하는 회사법 제120조가 시행되었다. 2011년에 일본의 휴대전화와 PHS의 계약 대수가 일본의 총인구 1억 2805만 명을 넘는 1억 9805만 대가 되었고, 인구 대비 계약 수가 101.4%가 되었다. 일반 휴대전화 이외에 통신 기기 전용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회사 등의 업무용 휴대전화와 개인 휴대전화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2대 휴대"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도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0년대에 고이즈미 개혁에 따른 항공업계의 규제 완화를 계기로, 스카이마크, 홋카이도 국제항공(현·AIRDO) 등 신규 항공사의 진출이 잇따랐다. 또한,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비스를 간소화함으로써 저가 운임을 실현하는 저가 항공사(LCC)가 증가하고, 국제선과 국내선 모두 일본 시장 진출이 증가했다.

2012년 무렵부터 치어 부족으로 뱀장어 가격이 급등했다.

단카이 세대가 청년기였던 1970년대까지의 생산 연령 인구가 증가하는 인구 보너스에 따른 고도 경제 성장에서 단카이 세대가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된 2000년대에는 노인이 급증하고 젊은이 등 노동자가 감소하는 인구 오너스에 따른 디플레이션 경제로 이행했다. 고령자를 노리는 강매와 강매가 사회 문제가 된다.

버블 시대에는 부유층 사이에서 억션이 유행했고, 고이즈미 시대에는 롯폰기 힐즈에 사는 부유층, 일본의 부동산을 대량 구매하는 중국 부유층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 반면에 2000년대 이후에는 일반적인 민가(자가·차가), 아파트, 맨션 등이 아닌 셰어 하우스에서 공동 생활을 하는 젊은이(남녀)도 급증했다.

헤이세이 시대가 되면서 철도의 고속화에 따라, 심야 열차와 차내 판매를 폐지하는 철도 회사가 증가했다. 2010년대에 중화민족계(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서 일본으로의 관광객이 급증했다. 2010년대에 관광입국이 되었지만 교토시가마쿠라시에서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과다 관광 문제가 발생했다.

2015년 무렵부터 드론(무인 항공기)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30년 동안 일본 기업의 존재감은 크게 저하되었다. 1989년 세계 기업의 시가총액 순위에서 상위 50개 기업 중 32개가 일본 기업이었지만, 2018년에는 도요타 자동차만 남았다.

4.4. 국제 경제 관계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일본 경제는 투자 붐과 자산 가격 급등을 경험했지만, 1990년대 초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장기 불황,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무역 마찰은 지속되었고,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일본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엔고가 진행되어 1달러당 100엔을 돌파하는 일이 잦아졌고, 2008년 이후에는 급격한 엔고로 1달러당 80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2013년부터 아베노믹스 시기에는 엔저 정책으로 1달러당 120엔대까지 엔저가 진행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유로화에 대한 엔화 가치도 변동을 겪었는데, 초기에는 1유로당 90엔에서 110엔 사이였으나, 이후 엔저로 1유로당 160엔대까지 상승했다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다시 엔고가 진행되어 1유로당 130엔 전후가 되었다. 그리스 채무 위기 등으로 엔고가 더욱 심화되어 1유로당 110엔대가 되기도 했다.

위안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헤이세이 초기 1위안당 30엔 정도였으나, 1990년대 전반에 걸쳐 급격한 엔고가 진행되어 1위안당 10엔 전후가 되었다. 이후 위안화는 고정환율제와 통화바스켓제에 의해 환율이 안정되어 1위안당 14엔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엔고와 엔저를 반복하며 변동했다. 1995년에는 150엔을 넘기도 했지만, 이후 엔저가 진행되어 100엔대로 하락했다. 2000년대 전후에는 다시 엔고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엔저로 80엔대까지 하락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급격한 엔고가 발생하여 100엔 전후까지 상승했다가 아베노믹스 시기의 엔저 정책으로 1달러당 100엔 전후의 환율로 안정되었다.

헤이세이 시대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 달러 선에서 정체되었다.
헤이세이 시대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 달러 선에서 정체되었다.


IMF 추산에 따르면, 1994년 일본의 1인당 GDP는 39,953달러로 세계 3위였으나,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해인 2019년에는 40,548달러로 27위로 하락했다.

2010년에는 중국 경제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일본은 명목 GDP 기준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간 나오토 내각과 노다 내각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제2차 아베 내각은 TPP 협상에 참여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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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헤이세이 첫해 (1989년)헤이세이 마지막 해 (2019년)
1 NTT
163.8
마이크로소프트
940.8
2 일본흥업은행
71.5
애플(Apple Inc.)
895.6
3 스미토모은행
69.5
아마존닷컴
874.7
4 후지은행
67
알파벳(Alphabet Inc.)
818.1
5 다이이치강요은행
66
버크셔 해서웨이
493.7
6 IBM
64.6
페이스북
475.7
7 미쓰비시은행
59.2
알리바바 그룹
472.9
8 엑손모빌
54.9
텐센트
440.9
9 도쿄전력
54.4
존슨앤존슨
372.2
10 로열 더치 셸
54.3
엑손모빌
342.1

5. 사회

헤이세이 시대 대표적인 건물인 롯폰기 힐스
헤이세이 시대 대표적인 건물인 롯폰기 힐스

헤이세이 시대에는 일본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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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주요 사건
원년(1989년)소비세 도입, 6·4 톈안먼 사건, 동유럽 민주화 혁명, 우노 소스케 및 가이후 토시키 내각 출범
2년(1990년)닌텐도 슈퍼 패미컴 출시
3년(1991년)운젠산 분화,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 출범
5년(1993년)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 출범, 자유민주당 38년 만에 야당 전락, 여름철 이상 기후로 쌀 수확량 급감
6년(1994년)오에 겐자부로 노벨 문학상 수상, 폭염, 옴진리교마쓰모토 사린 사건,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개최, 하타 쓰토무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출범
7년(1995년)한신 대지진, 옴진리교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8년(1996년)자유민주당 여당 복귀,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 출범
9년(1997년)포켓몬 쇼크 발생
10년(1998년)나가노 동계 올림픽 개최,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 출범, 오부치 게이조 내각 출범
11년(1999년)일장기·기미가요, 일본의 국기·국가로 제정
12년(2000년)모리 요시로 내각 출범
13년(2001년)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출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개장, 911 테러
14년(2002년)2002년 FIFA 월드컵(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15년(2003년)미군의 사담 후세인 구속, 겐카이나다 해난사고,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퇴임 및 노무현 대통령 취임
16년(2004년)니가타현 지진, SIGA 풋볼 매니저 첫 발매
17년(2005년)2005년 일본 국제 박람회, 일본 인구 감소 시작
18년(2006년)아베 신조 내각 출범
19년(2007년)후쿠다 야스오 내각 출범
20년(2008년)후쿠토신 선 개통, 대한민국 숭례문 방화사건,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 퇴임 및 이명박 대통령 취임,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 아소 다로 내각 출범, 베이징 하계 올림픽
21년(2009년)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자유민주당 패배,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출범
22년(2010년)간 나오토 내각 출범, 대한민국 천안함 피격사건 및 연평도 포격
23년(2011년)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노다 요시히코 내각 출범
24년(2012년)중ㆍ일 국교정상화 40주년, 자유민주당 여당 복귀, 아베 신조 내각 출범
25년(2013년)일본 도쿄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 퇴임 및 박근혜 대통령 취임
26년(2014년)대한민국 세월호 참사
27년(2015년)한ㆍ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28년(2016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대한민국 최순실 국정농단, 대한민국 국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
29년(2017년)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 취임, 북한의 6차 핵실험
30년(2018년)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평양 제3차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31년(2019년)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아키히토 천황 재위 30주년 기념식, 아키히토 천황 퇴위


1990년대 이후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심각해졌고, 학교 거부 현상과 함께 니트족히키코모리가 증가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격차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방사능 오염 문제가 발생했고, 전력 사용 제한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1986년(쇼와 61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었으나, 여성의 사회 진출과 비혼화, 젊은 남성의 경제적 빈곤화가 진행되면서 출산율은 1.5명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대에는 여성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 되었고, 2014년(헤이세이 26년)에는 도쿄도 의회에서 여성 의원에 대한 성희롱 야유가 사회 문제가 되었다.

5.1. 저출산 고령화

1989년(헤이세이 원년) 합계출산율이 1.57명이 되면서 1966년(쇼와 41년) 병오(丙午)의 1.58명보다 낮아져 "1.57 쇼크"로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헤이세이 시대에 출산율 저하가 계속되어 1992년(헤이세이 4년) 국민생활백서에서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면서 저출산고령화가 국민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95년(헤이세이 7년) 생산가능인구(15세-64세)가 최고치(8717만 명)를 기록하고, 1996년(헤이세이 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7년(헤이세이 9년)에는 저출산 사회가 되었다.

2003년(헤이세이 15년) 연간 출생아 수는 112만 명까지 감소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출생아 수는 106만 2530명,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과거 최저치를 기록하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6년(헤이세이 28년)에는 처음으로 출생아 수가 1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헤이세이 시대 동안 출산율이 증가한 적은 없었지만, 동일본대지진이 있었던 헤이세이 23년도부터 아베노믹스 초기의 보육시설대기아동 문제 시기인 2015년까지는 1.4명대로 회복되기도 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부터 2015년(헤이세이 27년)까지 국제결혼이 급증하면서 외국인 여성과 일본인 남성 부부의 출산 증가로 2015년(헤이세이 27년) 출산율이 1.46명으로 회복되었다.

골드플랜이 수립되어 장애인복지법 제정, 장기요양보험 제도 창설 등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요양 서비스가 확충되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연금 문제가 발생하여 2004년(헤이세이 16년) 제20회 참의원 통상선거 이후 논의가 이루어졌고, 연금은 삭감되었으며 1941년(쇼와 16년)생 이후 수급 연령이 연기되었다. 여성의 경우 전후 세대인 1946년(쇼와 21년)생 이후가 연기 대상이다.

2012년(헤이세이 24년) 9월 경로의 날을 맞아 총무성이 발표한 추계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의 고령화로 65세 이상 인구가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돌파하여 3074만 명(일본 총인구의 24.1%)을 기록했다. 2012년(헤이세이 24년) 기준 치매 고령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노노케어가 급증하여 2002년(헤이세이 14년) 149만 명이던 치매 고령자는 10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10%가 치매 환자인 셈이다.

5.2. 사회 문제

옴진리교는 1995년에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 테러 공격을 자행하여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종말론적 사이비 종교 문제는 비정부기구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심각해졌다. 학교 거부 현상도 나타났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니트족히키코모리가 증가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었다. 이는 격차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방사능 오염 문제가 발생했으며, 전력 사용 제한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5.3. 여성의 사회 진출

1986년(쇼와 61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과 비혼화, 젊은 남성의 경제적 빈곤화가 진행되면서 출산율은 1.5명 이하로 떨어졌다. 단카이 주니어 세대 이후는 전업주부 지향이 강해졌지만, 불경기 속에서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남성 또한 전업주부인 아내를 두는 것을 반기지 않아,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 되었다. 2014년(헤이세이 26년) 도쿄도 의회에서 시오무라 후미나(여성 의원)에 대한 성희롱 야유가 사회 문제가 되었다.

6. 문화

1990년대는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컨벤션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애니메이션 붐" 시대를 맞이했다. 포켓몬스터, 헬로 키티, 세일러문, 성투사 성시, 건담, 북두의 권, 드래곤볼, 유희왕, 에반게리온 등 여러 애니메이션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에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89년(헤이세이 원년) 이토엔의 오이오차 신하이쿠 대상, 1990년(헤이세이 2년) 스미토모생명의 창작 사자숙어, 1995년(헤이세이 7년) 재단법인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의 올해의 한자가 시작되었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인 1990년대 후반에는 오키나와현 출신의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이나 코무라 패밀리(小室ファミリー) 소속 여성 연예인들이 활약했다.

2010년대에는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의 아이돌 그룹인 AKB그룹이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도쿄도 치요다구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하는 AKB48, 아이치현 나고야시 사카에를 중심으로 하는 SKE48, 오사카부 오사카시 난바를 중심으로 하는 NMB48,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를 중심으로 하는 HKT48, 니가타현 니가타시를 중심으로 하는 NGT48, 세토우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STU48, 그리고 30세 전후의 여성 아이돌 SDN48이 결성되었다.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JKT48, 중국 상하이시를 중심으로 하는 SNH48, 타이완 타이베이시를 중심으로 하는 TPE48(명칭 변경), 태국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BNK48, 필리핀 마닐라를 중심으로 하는 MNL48, 베트남 사이공을 중심으로 하는 SGO48, 도쿄도 미나토구 노기자카를 중심으로 하는 노기자카46과 그 자매 그룹인 케야키자카46 등 다수의 여성 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아이돌 그룹이 활약하며, “아이돌 전국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이나 특촬 작품에서는 쇼와 시대부터 이어지는 시리즈 중 헤이세이 시대에 제작된 작품을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 "헤이세이 울트라맨 시리즈", "헤이세이 가면라이더 시리즈"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포켓몬스터는 추정 매출액 900를 기록하며 역사상 최고 매출을 올린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포켓몬스터는 2위 헬로 키티(800)와 5위 스타워즈(650)를 제쳤다.

6.1. 대중문화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컨벤션의 인기 상승으로 "애니메이션 붐" 시대를 맞았다. 포켓몬스터, 헬로 키티, 세일러문, 성투사 성시, 건담, 북두의 권, 드래곤볼, 유희왕, 에반게리온 등 여러 애니메이션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에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89년(헤이세이 원년)에 시작된 이토엔의 오이오차 신하이쿠 대상, 1990년(헤이세이 2년)에 시작된 스미토모생명의 창작 사자숙어, 1995년(헤이세이 7년)에 재단법인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의 올해의 한자가 시작되었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인 1990년대 후반에는 오키나와현 출신의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이나 코무라 패밀리(小室ファミリー) 소속 여성 연예인들이 활약했다.

2010년대에는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의 아이돌로 AKB그룹이 있다. 국내에서는 도쿄도 치요다구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하는 AKB48, 아이치현 나고야시 사카에를 중심으로 하는 SKE48, 오사카부 오사카시 난바를 중심으로 하는 NMB48,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를 중심으로 하는 HKT48, 니가타현 니가타시를 중심으로 하는 NGT48, 세토우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STU48, 그리고 30세 전후의 여성 아이돌 SDN48이 결성되었다.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JKT48, 중국 상하이시를 중심으로 하는 SNH48, 타이완 타이베이시를 중심으로 하는 TPE48(명칭 변경), 태국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BNK48, 필리핀 마닐라를 중심으로 하는 MNL48, 베트남 사이공을 중심으로 하는 SGO48, 도쿄도 미나토구 노기자카를 중심으로 하는 노기자카46, 그리고 그 자매 그룹인 케야키자카46 등 다수의 여성 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아이돌 그룹이 활약하며, “아이돌 전국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이나 특촬 작품에서는 쇼와 시대부터 이어지는 시리즈 중 헤이세이 시대에 제작된 작품을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나 "헤이세이 울트라맨 시리즈", "헤이세이 가면라이더 시리즈"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포켓몬스터는 추정 매출액 900를 기록하며 역사상 최고 매출을 올린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포켓몬스터는 2위 헬로 키티(800)와 5위 스타워즈(650)를 제쳤다.

6.2. 스포츠

프로 야구에서는 나가시마 시게오의 감독 은퇴와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메이저 리그 진출, 월드컵에 의한 축구 인기의 과열, 퍼시픽 리그의 대두에 의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로의 인기 일극 집중 시대가 끝났다. 주력 선수들이 FA에 의해 메이저 리그로 잇달아 진출했다. 매스컴에서 마쓰자카 세대라고 명명된 1980년(쇼와 55년)생이 활약했다. 외국인 감독이 복수 탄생하여 일본인 선수가 MLB에서 활약하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2연패 포함 4대회 연속 베스트 4 이상을 기록하는 등 야구가 국제화되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FIFA 월드컵이자,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 이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대회였으며, 여러 국가가 공동 개최한 첫 번째 대회이기도 했다. 이 대회는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과 한국이 공동 개최했다.

1998년(헤이세이 10년)에 일본에서 두 번째 동계 올림픽인 나가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유도에서는 오가와 나오야·요시다 히데히코·코가 토시히코·타니 료코가 한 시대를 구축했다. 이노우에 야스오와 노무라 타다히로와 타니 료코의 전성기로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카하시 나오코가 시드니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2004년(헤이세이 16년)의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노구치 미즈키금메달을 획득하여 일본이 여자 마라톤에서 2대회 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

아라카와 시즈카·안도 미키·아사다 마오·다카하시 다이스케·하뉴 유즈루 등의 활약으로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가 상승했다.

6.3. 자연재해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년)은 긴키 지방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은 니가타현 호쿠리쿠 지방을 강타하여 52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를 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규모 9.0의 모멘트 규모로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 지진은 도호쿠 지방, 주부 지방, 관동 지방의 세 지역과 도쿄 지역을 포함한 혼슈 북동부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최대 10m 높이의 쓰나미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 내륙 지역까지 범람했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일으켜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가장 심각한 방사능 오염 사건으로 이어졌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2018년 서일본 호우는 히로시마오카야마에서 많은 사망자를 냈다. 또한 2018년 홋카이도 지진으로 41명이 사망하고 지역 전체에 정전이 발생했다.

2011년 도호쿠 지진 해일 이후 이와테현 미야코의 건물 파괴 모습.
2011년 도호쿠 지진 해일 이후 이와테현 미야코의 건물 파괴 모습.

7. 과학 기술

헤이세이 시대의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일본 연구자들의 주목할 만한 성과들이 있었다. 특히, 휴대 전화와 인터넷의 보급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1년(헤이세이 3년)에는 NEC의 이지마 스미오가 탄소나노튜브를 발견하여 나노기술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6년(헤이세이 18년)에는 교토대학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 연구팀이 인공다능성줄기세포(iPS 세포)를 개발하여 재생의학 분야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1995년 코믹마켓(Comiket) 49 동인지 행사.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국제적 인기가 급증했다.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는 고휘도, 저전력의 백색광원을 가능하게 한 청색 발광 다이오드(LED)를 발명하여 2014년(헤이세이 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일본 과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이 이어졌다.

* 2002년(헤이세이 14년): 고시바 마사토시 - 우주 뉴트리노 검출 (노벨 물리학상)
* 2008년(헤이세이 20년):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 CP 대칭성 깨짐 (노벨 물리학상)
* 2008년(헤이세이 20년): 남부 요이치로 - 자발적 대칭성 깨짐 (노벨 물리학상)
* 2015년(헤이세이 27년): 카지타 타카아키 - 뉴트리노 진동 (노벨 물리학상)
* 2000년(헤이세이 12년): 시라카와 히데키 - 전도성 고분자 (노벨 화학상)
* 2001년(헤이세이 13년): 노요리 료지 - 키랄 촉매 (노벨 화학상)
* 2002년(헤이세이 14년): 타나카 고이치 - 생체 고분자 분석 (노벨 화학상)
* 2008년(헤이세이 20년): 시모무라 오사무 - 녹색 형광 단백질(GFP) (노벨 화학상)
* 2010년(헤이세이 22년): 스즈키 아키라, 네기시 에이치 - 크로스 커플링 (노벨 화학상)
* 2012년(헤이세이 24년): 야마나카 신야 - 리프로그래밍 (노벨 생리학·의학상)
* 2015년(헤이세이 27년): 오무라 사토시 - 선충 기생충 치료법 (노벨 생리학·의학상)
* 2016년(헤이세이 28년): 오스미 요시노리 - 오토파지 메커니즘 (노벨 생리학·의학상)
* 2018년(헤이세이 30년): 혼조 다스쿠 - 면역관문억제제 (노벨 생리학·의학상)

1990년(헤이세이 2년)에는 모리 시게후미가 필즈상을 수상했다.

슈퍼컴퓨터 분야에서는 경 등이 TOP500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0년(헤이세이 12년) 이후 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는 'PISA 쇼크'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이 발생하여 고고학 연구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8. 국제 관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이후에도 동북아시아는 북한 핵 문제, 한반도의 긴장,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과 중화민국(중국 국민당)의 대립 등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일본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에 참여했으며, 한반도 정세는 외교 면에서 큰 불씨였다.

일본에서는 일장기와 천황으로 대표되는 냉전 이전(1945년 이전)의 일본이라는 잔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77년 동안에 걸친 일본 제국의 역사를 둘러싼 역사 인식 문제가 재연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EU, 미국,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결의 등).

미국 형 정치 체제를 주장하는 정치가 활보하는 한편 "존왕양이", "메이지 체제(= 일본 제국)"적인 쇼비니즘도 강화되어 탈냉전 시대를 이끈 동유럽 민주화 혁명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96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만드는 모임) 결성, 1999년 일장기기미가요 법제화, 2000년 모리 요시로의 "신의 나라" 발언, 2005년 전후 60년을 기해 제정된 "쇼와의 날", 2007년 아베 신조의 "전후 체제 로부터의 탈피"가 있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씨 왕조"(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대 세습 체제) 숭배를 강화하면서 선군정치 노선으로 가게 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센카쿠 제도에서 운요호 사건과 같은 "일부러 추돌하고 달아나는" 외교를 수행하는 등 이들 국가가 "메이지 체제"를 모방하고 있는 것도 헤이세이 시대만의 특징이다.

1989년 쇼와 천황이 서거하고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일어났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미소 간의 몰타 회담이 열려 냉전이 종식되었다. 1991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어 미국 일극 체제가 형성되었고, 구 동구권 국가들이 서구 경제에 통합되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는 "아메리카니제이션",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 불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휘말렸다. 그러나 2001년 미국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중국, 북한,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이 미국 일극 체제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 국제연합 창설 60주년을 맞아 적국 조항 삭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을 목표로 G4(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를 결성하였으나, 중국, 한국, 미국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2011년에는 아랍의 봄으로 튀니지이집트에서 민주화가 일어났고, 주변국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다.

8.1. 한국과의 관계

일본과 대한민국은 헤이세이 시대 동안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역사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다. 특히, 1992년에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한일 정상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8번이나 사과하고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경제 협력

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치/외교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대신이 한일 정상 회담에서 8번이나 사과하고, 대한민국에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2005년에는 국제 연합 창설 60주년을 맞아 G4(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를 결성하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을 시도했으나, 한국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8.2. 미국과의 관계

미일 안보 조약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였다.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미국을 지원하였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있다.

8.3. 중국과의 관계

1989년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된 후,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적인 면에서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더욱 긴밀해졌다. 많은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증가했다. 양국 간의 무역 규모는 크게 확대되었으며, 중국은 일본의 주요 무역 파트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관계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외교적인 갈등은 지속되었다. 특히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은 양국 관계의 긴장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2010년에는 센카쿠 열도 인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일본 제국의 역사를 둘러싼 역사 인식 문제 또한 양국 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은 중국 내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양국 간의 외교적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일본의 경제적 지위에 상대적인 하락을 가져왔다. 2010년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양국 간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고, 외교 관계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8.4. 북한과의 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의 관계는 북한 핵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인해 긴장 관계가 지속되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여 북일 평양 선언을 발표했으나, 이후 관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9. 연호 변경

1989년 1월 7일, 히로히토 천황이 서거하고 아키히토가 즉위하면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시 내각관방장관이었던 오부치 게이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했다. '헤이세이'는 사기(史記)의 "내평외성(内平外成)"과 서경(書経)의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유래한 것으로, "온 세상의 평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1989년 1월 7일)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1989년 1월 7일)


2016년 8월, 아키히토 천황은 고령으로 인해 공식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퇴위 의사를 밝혔다. 2017년 6월, 일본 국회는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와 나루히토 황태자의 왕위 계승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9년 4월 30일,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하고, 다음 날인 5월 1일 나루히토 황태자가 즉위하면서 레이와 시대로 연호가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