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다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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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시다 다다시는 일본의 작곡가로, 1921년 1월 20일에 태어나 1998년 6월 10일에 사망했다. 그는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작곡한 '이국의 언덕'을 비롯하여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 '언제나 꿈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일본 대중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60년과 1962년에 각각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음악저작권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8년에는 국민영예상을 추서받았고, 그의 생가가 있는 히타치시에는 요시다 다다시 음악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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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다다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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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이름 | 𠮷田 正 (요시다 다다시) |
출생 이름 | (개인 정보) |
별칭 | (개인 정보) |
혈액형 | (개인 정보) |
출신 학교 | 히타치 공업 전수학교 졸업 |
출생일 | 1921년 1월 20일 |
사망일 | 1998년 6월 10일 |
출생지 | ・이바라키현히타치시 |
활동 장르 | 가요곡 |
직업 | 작곡가 |
활동 기간 | 1948년 - 1998년 |
레이블 | (정보 없음) |
제작 | (정보 없음) |
관련 음악가 | (정보 없음) |
영향 | (정보 없음) |
웹사이트 | 요시다 다다시 음악 기념관 |
주요 악기 | (개인 정보) |
대표 작품 | |
365일 | (정보 없음) |
365일 | (정보 없음) |
이국 언덕 | ja |
언제나 꿈을 | ja |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 ja |
추운 아침 | ja |
거리의 샌드위치맨 | ja |
재회 | ja |
와카야마 블루스 | ja |
2. 생애
1921년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서 태어나, 1939년 히타치공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마스나리동력공업 주식회사에 입사했다. 1942년 일본제국육군에 입대하여 만주국으로 갔으나, 1944년 충수염으로 페리류 전투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1945년 종전 후 시베리아 억류를 당했고, 이 시기 작곡한 『대흥안령돌파연습의 노래』는 후에 『이국의 언덕』의 모티브가 되었다. 1948년 마이즈루항을 통해 귀국, 일본 빅터에 전속 작곡가로 입사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 1962년 『언제나 꿈을』로 일본 레코드 대상을 2회 수상하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1982년 자수포장, 1992년 훈삼등 욱일중수장을 수훈받았고, 일본음악저작권협회 회장, 일본작곡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 사망 후 국민영예상을 수상하고 히타치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음악 활동 (1921-1948)

- 1921년 1월 20일,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서 태어났다.
- 1939년 3월, 히타치공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마스나리동력공업 주식회사에 입사했다.
- 1942년 1월, 육군 미토보병제2연대에 입대하여 만주국으로 갔다.
- 1944년, 급성 충수염으로 페리류 전투에 참전하지 못하고 만주에 남았다.
- 1945년 10월, 종전 후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 억류를 당했다. 억류 중 작곡한 『대흥안령돌파연습의 노래』는 억류자들 사이에서 '어제도 오늘도'라는 가사가 붙여져 널리 불렸으며, 이는 후에 『이국의 언덕』의 모티브가 되었다.[1]
- 1948년 8월, NHK 라디오의 아마추어 노래자랑에서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나카무라 코조가 작자 미상의 '포로가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라디오 방송 직후 마이즈루항으로 귀환하여 반달간 요양 후, 화제가 된 것도 모르고 입대 전 회사로 복귀하였다.[1]
2. 2. 작곡가 데뷔와 전성기 (1948-1970)
1948년 8월, NHK 라디오의 아마추어 노래자랑에서 시베리아에서 귀환한 병사인 나카무라 코조가 '포로가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이국의 언덕을 불러 큰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8월, 마이즈루항을 통해 귀국하여 반달 동안 요양한 후, 입대 전의 회사로 복귀했다. 1948년 9월, 사에키 타카오가 가사를 보완한 『이국의 언덕』이 빅터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1949년 4월, 일본 빅터에 전속 작곡가로 입사하며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12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로 제2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 1962년 12월, 『언제나 꿈을』로 제4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 1968년 12월, 제10회 일본 레코드 대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1969년 4월에는 예술선장 문부대신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요시다 다다시는 츠루타 코지, 프랭크 나가이, 마츠오 카즈코, 하시 유키오, 요시나가 사유리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2. 3. 후기 활동 및 사망 (1970-1998)
- 1982년(쇼와 57년) 11월, 자수포장을 수훈받았다.
- 1989년 (헤이세이 원년), 일본음악저작권협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 1990년 (헤이세이 2년) 12월, 제32회 일본 레코드 대상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 1992년 (헤이세이 4년) 4월, 훈삼등 욱일중수장을 수훈받았다.
- 1993년 (헤이세이 5년) 3월, 일본방송협회 방송문화상을 수상하였다.
- 1993년, 일본작곡가협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 1997년 (헤이세이 9년), 일본작곡가협회 명예회장에 취임하였다.
- 1998년 (헤이세이 10년) 6월 10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같은 날 종사위에 추서되었다. 작곡가로서는 고가 마사오(1978년), 핫토리 료이치(1993년)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였다. 히타치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묘소는 히타치시 주오정의 홋푸시인이다.
3. 주요 작품
요시다 다다시는 가요쿄쿠와 엔카 분야에서 많은 명곡을 남겼다. 1960년 제2회 일본 레코드 대상(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과 1962년 제4회 일본 레코드 대상(언제나 꿈을)을 수상했다. 그의 공적을 기리는 '요시다 타다시 상'이 제정되기도 했다.[1]
3. 1. 대표곡
- 이국의 언덕(1948년):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 패전 후 일본인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1]
- 유라쿠초에서 만나요(1957년): 프랭크 나가이의 대표곡 중 하나로,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곡이다.
-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1959년): 마츠오 카즈코와 와다 히로시와 마히나스타즈가 불렀으며, 제2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
- 시오라이가사(1960년): 하시 유키오의 데뷔곡으로,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가 특징이다.
- 언제나 꿈을(1962년): 하시 유키오와 요시나가 사유리가 함께 불렀으며, 제4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다. 밝고 희망찬 멜로디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1]
- 추운 아침(1962년): 요시나가 사유리의 청순한 이미지를 잘 살린 곡으로 평가받는다.
- 그 아이와 나(1965년): 하시 유키오가 부른 곡으로, 스윙 재즈 풍의 편곡이 인상적이다.
4. 요시다 타다시 음악 기념관
2004년(헤이세이 16년) 요시다 다다시의 생가가 있는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의 카미네 공원에 '요시다 다다시 음악기념관'이 개관되었다. 기념관에는 그의 업적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5. 발차 멜로디
2005년 요시다 다다시의 출신지인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JR 조반선의 각 역에서 그의 대표곡을 발차 멜로디로 사용하고 있다. 상행선은 전 역 공통으로 '언제나 꿈을'이 사용되며, 하행선은 역마다 다른 곡이 사용된다.
역명 | 곡명 | 비고 |
---|---|---|
오가미역 | 사랑의 멕시칸 록 (하시 유키오) | |
히타치타가역 | 공원의 마술사 (프랭크 나가이) | |
히타치역 | 추운 아침 (요시나가 사유리) | |
오기츠역 | 내일은 피어나자 꽃 피어나자 (요시나가 사유리, 미타 아키라) | 오기츠역과 주오역은 상행선 음색이 다름 |
주오역 | 젊은 항구 (미타 아키라) | 오기츠역과 주오역은 상행선 음색이 다름 |
6. 평가 및 영향
요시다 다다시는 일본 대중음악사, 특히 쇼와 시대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음악은 전후 일본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서정적인 멜로디와 진솔한 가사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그는 기존의 엔카와는 차별화된 세련된 감각의 곡들을 선보이며, 엔카의 현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리메이크되거나 재해석되고 있다. 일본의 많은 대중음악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62년 제4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는 그를 기리는 '요시다 타다시 상'이 제정되기도 했다.[1]
그는 1960년 제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 1962년 제4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언제나 꿈을』로 대상을 수상했다. 1968년에는 제10회 일본 레코드 대상 특별상을, 1990년에는 제32회 일본 레코드 대상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1]
1998년 6월 10일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같은 날 종사위에 서위되었다. 사후에는 작곡가로서 고가 마사오(1978년), 핫토리 료이치(1993년)에 이어 세 번째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했고, 히타치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1]
2004년에는 그의 생가가 있는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의 카미네 공원에 『요시다 타다시 음악기념관』이 개관되었으며,[1] 2005년에는 히타치시내 조반선 역(오미카역-주오역)의 발차 멜로디에 그의 작곡 멜로디가 채택되었다.[1]
참조
[1]
웹사이트
NHKスペシャル いつでも夢を~作曲家・吉田正の“戦争”~
https://www2.nhk.or.[...]
[2]
서적
吉田正 誰よりも君を愛す
ミネルヴァ書房
2010-01-00
[3]
서적
ゴジラ365日
洋泉社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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