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쿄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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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요쿄쿠는 따라 부르고 연주하기 쉬운 단순한 멜로디와 일상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일본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다. 1970년대 가라오케 붐과 함께 인기를 얻었으며, 상업적인 히트를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포괄한다. 1920년대에는 서양 클래식 음악을 지칭했으나, 이후 NHK 라디오를 통해 유행가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에는 무드 가요, 텔레비전 가요, 아이돌 가요 등 하위 장르가 등장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J-POP의 등장과 함께 쇼와 가요가 쇠퇴했다. 최근에는 1960~80년대 가요쿄쿠, 특히 시티팝이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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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쿄쿠 | |
---|---|
장르 | |
스타일적 기원 | 류코카 전통 팝 일본 전통 음악 블루스 유로팝 라틴 팝 재즈 로큰롤 |
문화적 기원 | 1920년대, 일본 |
파생 장르 | J팝 |
하위 장르 | 해당 없음 |
융합 장르 | 해당 없음 |
관련 항목 | |
관련 음악 | 민요 유행가 엔카 포크송 재즈 샹송 뉴 뮤직 J팝 |
기타 명칭 | |
일본어 | 歌謡曲 (かようきょく) |
로마자 표기 | Kayōkyoku |
의미 | "팝 튠" (Pop Tune) |
2. 특징
가요쿄쿠는 따라 부르고 연주하기 쉬운 단순한 멜로디와 일상적인 내용의 가사를 특징으로 한다.[8] 가수들은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며, 외모와 행동은 제작 회사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8] 감성적인 느낌을 지향하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억눌려 온 감정을 표현하며 청취자와의 연관성을 맺으려고 노력한다.[8]
가요쿄쿠의 범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포크송, 뉴 뮤직, 록 등이 가요쿄쿠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시대나 논자에 따라 다르다.[27][28][29][30] 나카니시 레이는 히트를 노리고 발매되는 상업적인 가요라면, 팝스, 엔카, 민요풍, 아이돌 가요, 포크 계열 등 어떤 장르의 곡이라도 가요쿄쿠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 요시다 타쿠로 등 싱어송라이터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가요쿄쿠를 명확히 구분하며, 가요쿄쿠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44][45]
2. 1. 가라오케 문화와의 연관성
1970년대 중반 가라오케 붐은 가요쿄쿠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8] 가라오케에서는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의 이미지와 가사에 드러나는 이미지를 모방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8] 가요쿄쿠의 단순한 리듬과 가사는 가라오케에서 부르기에 매우 적합했다.[8] 1982년 NHK 설문조사에 따르면 30세 이상 남성의 약 80%가 가라오케 기기를 통해 가요쿄쿠 노래를 불렀다.[8]3. 역사
1930년대, 관동 대지진의 부흥과 함께 도쿄가 근대화되면서 서양풍의 근대 시민층이 형성되었고, 모던한 도시 문화를 노래한 도시 찬미조의 가요곡이 유행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도쿄 행진곡", "긴자의 버드나무" 등이 있다.[63]。이와는 반대로,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고향 노래"의 시초가 되는, 여정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요곡 및 신 민요가 다수 발매되었는데, "하부의 항구", "차절절" 등이 있으며, 때로는 관광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세력이 해외로 뻗어 나감에 따라 "추장의 딸"이나 "상하이 릴"과 같이, 각 지역의 아가씨를 찬미하는, 이국적인 정서를 밝게 노래한 가요곡이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다.
9·18 사변 이후 일본이 전쟁에 몰두하고 군국주의가 대두되자, 유행가의 "건전화"가 추진되어 '국민 가요'가 등장했다. "가요곡"을 일본의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만든 것은 이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국민 가요'는 그전까지 유행가로 불리던 대중 가요를 방송할 때, "유행할지 안 할지 모르는 노래를 〈유행가〉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며 "가요곡"으로 방송했다.
아이카와 유미는 NHK가 전후 전시 중의 음악을 금기시하고, 『국민 가요』에서 『국민 합창』의 역사를 회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전후 가요곡 유행에서 NHK의 노래 계보가 경시되는 경향이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64]。
전후에는 라틴, 하와이안, 재즈 등 서양 음악적 요소를 도입하여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후랭크 나가이나 이시하라 유지로 등이 부르는 '''무드 가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 후반, 가요의 장르 다양화가 더욱 진행되었다. 더 피넛츠의 『귀여운 꽃』(1959년)이 다장르화의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65]。이 곡은 일본에서의 본격적인 팝 뮤직 곡으로 화제가 되었고, 일본의 가수가 부르는 팝스 곡은 "일본식 팝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매체가 바뀌었고, 텔레비전에서의 프로모션을 중시한 '''텔레비전 가요'''가 발전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는 킹톤스나 히로타 미에코 등에 의해 일본식 리듬 앤 블루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불리게 되면서 가요곡 장르의 다양화가 본격화되었다. 또한, 더 템프터스, 더 타이거스 등의 그룹 사운즈도 큰 붐을 일으켰다. 츠츠미 쿄헤이, 카와구치 마코토, 히라오 마사아키, 마카이노 코지, 미키 타카시 등의 뛰어난 작곡가와, 아쿠 유를 필두로 센케 카즈야, 나카니시 레이, 야마가미 미치오, 아리마 미에코, 야스이 카즈미 등의 작사가들이 히트곡을 연발하며 가요곡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포크의 오카바야시 노부야스, 타카이시 토모야, 요시다 타쿠로 등도 젊은층의 지지를 받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크 가수나 록 그룹 등,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도 등장했다.
3. 1. 1920년대 ~ 1940년대: 기원
"가요쿄쿠"라는 용어는 원래 일본의 서양 클래식 "리트"를 지칭했다.[9] 그러나 NHK 라디오는 1927년경부터 이 용어를 ''유행가''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쇼와 시대 20년대 후반(1935~1944)에 자리를 잡았다.[9] 그러나 이 시대에 유행했던 많은 노래들은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기억과 연관되어 잊혀졌다.[10]"가요쿄쿠"의 명명자는 NHK에서 일본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마치다 요시아키라는 설과, 다이쇼 11년(1922년)부터 다이쇼 14년(1925년)까지 존재했던 레코드 회사인 동아축음기라는 설이 있다.[62]
쇼와 2년(1927년), NHK의 『신 일본 음악』에서 신작 거문고 노래나 삼현 가요를 "가요쿄쿠"로 방송했다.[62] 같은 해 5월에 마쓰오 바쇼의 "고지야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등에 마치다 요시아키가 작곡하여 "신 가요쿄쿠"로 방송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사이조 야소의 가사에 마치다가 작곡한 "밤 깊어 노래한다"를 "가요쿄쿠"로 방송했다.[62]
1930년대, 관동 대지진의 부흥과 함께 도쿄의 근대화가 일시에 진행되면서 서양풍의 근대 시민층이 형성되자, 모던한 도시 문화를 노래한 도시 찬미조의 가요쿄쿠가 유행했다("도쿄 행진곡", "긴자의 버드나무" 등).[63]。이에 반해, 관광객 유치의 목적으로 "고향 노래"의 시초가 되는, 여정을 자극하는 가요쿄쿠·신 민요가 다수 발매되었고("하부의 항구", "차절절" 등), 때로는 관광 붐으로 이어졌다.
또한, 일본의 세력이 해외로 확대됨에 따라 "추장의 딸"이나 "상하이 릴"과 같이, 각각의 땅의 딸을 찬미하는, 이국 정서를 밝게 노래한 가요쿄쿠가 만들어져 히트했다.
3. 2. 1950년대 ~ 1960년대: 무드 가요 시대
쇼와 30년대(1955년 ~ 1964년)에는 프랭크 나가이가 재즈에서 영감을 받은 "무드 가요"를 불렀다.[12]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 기간 동안 무드 가요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13] "무드 가요"는 라틴 아메리카 음악과 재즈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쇼와 30년대에는 현대 엔카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로큰롤은 사카모토 큐와 같은 일본 대중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12]1950년대에는 미소라 히바리, 에리 치에미, 유키무라 이즈미를 "산닌 무스메(세 소녀)"라고 불렀다. 카스가 하치로, 미하시 미치야, 무라타 히데오를 "쓰리 크로우즈"라고 불렀다. 1960년대 초에는 사카모토 큐와 더 피너츠가 유명해졌다. 1960년대 후반에는 그룹 사운드가 유명해졌다. 사이고 테루히코, 하시 유키오, 후나키 카즈오를 1960년대에 "고산케"라고 불렀다. 1969년, 일본의 아동 가수 미나가와 오사무는 "쿠로네코의 탱고"로 오리콘 싱글 차트 최연소 1위 기록을 세웠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많은 가요쿄쿠 그룹과 가수들이 일본 주둔 미군 기지에서 공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비슷한 시기에 야쿠자 매니저 타오카 카즈오는 공연자들을 전문적으로 대우하여 콘서트 투어 산업을 재편했다.[14]
이 시기의 가요쿄쿠는 중국인 이민 재즈 음악가들과, 당시 일본 점령을 하고 있던 미국 육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장악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을 때, 정부가 취한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대중 음악을 퇴폐적이라고 비난하고 중국 혁명 음악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15] 많은 상하이 음악가들이 영국 식민지인 홍콩으로 도망갔지만,[16] 몇몇 음악가들은 대신 일본에 정착하여 극동 방송망의 멤버가 되었고, 미국 육군과 협력하여 다양한 새로운 장르를 일본 대중에게 소개했다.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가요쿄쿠'' 음악가 중 일부는 작사가 에이 로쿠스케와 가수 사카모토 큐이다. 특히 그들의 1961년 노래 "스키야키"는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17]
3. 3. 1970년대 ~ 1980년대: 아이돌 가요 시대
1970년대에는 고 히로미(당시 쟈니스 사무소 소속), 사이조 히데키, 노구치 고로가 "신 고산케"로 불렸다. 미나미 사오리, 아마치 마리, 코야나기 루미코는 "신 삼인 무스메"(새로운 세 소녀)라고 불렸다. 야마구치 모모에, 사쿠라다 준코, 모리 마사코는 "하나노 츄산 트리오"(꽃 중학교 3학년 트리오)라고 불렸다. 아쿠 유는 가요의 가장 유명한 작사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핑거 5의 1973년 노래 "고진 쥬교"와 여성 듀오 핑크 레이디의 1976년 데뷔곡 "페퍼 경부"를 작사했다.1980년대에는 마츠다 세이코, 오카다 유키코, 나카모리 아키나와 같은 많은 여성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었다. 쟈니스의 남성 솔로 가수 콘도 마사히코도 인기를 얻었고, 그의 노래 "오로카모노"는 1987년 제29회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음악 장르 가요는 또 다른 장르인 "J-pop"의 기반으로 여겨진다.[7] 1980년대에는 일본 아이돌의 일부가 가요에서 독립하여 일본 록 뮤지션들과 연관되었다.[6]
3. 4. 1980년대 후반 ~ 현재: 쇼와 가요의 쇠퇴와 J-POP의 등장
1980년대에는 마츠다 세이코, 오카다 유키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 많은 여성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었다. 쟈니스의 남성 솔로 가수 콘도 마사히코도 인기를 얻었고, 그의 노래 "오로카모노"는 1987년 제29회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음악 장르 가요는 또 다른 장르인 J-pop의 기반으로 여겨진다.[7] 1980년대에는 일본 아이돌의 일부가 가요에서 독립하여 일본 록 뮤지션들과 연관되었다.[6] 80년대 후반의 인기 밴드 오냥코 클럽은 "가요"와 "J-pop" 사이의 경계 시대의 밴드였다.[18] 히카루 겐지와 드림스 컴 트루 이후의 일본 가요 스타일의 음악은 "J-pop"이라고 불렸지만, 몇몇 사람들은 "J-pop"이 가요 음악의 하위 장르라고 주장했다.[19]미소라 히바리가 1989년에 사망한 후, 가요라고 불리는 장르는 대부분 사라졌고, 여러 가요 가수들은 사운드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엔카 가수로 여겨졌다.[20] 그러나 모리 신이치와 마에카와 키요시는 자신들을 엔카 가수가 아닌 가요 가수라고 생각했다.[20]
2020년대에 들어 "쇼와 가요 붐"(일본어: 昭和歌謡ブーム일본어)이 일고 있으며, 쇼와 시대의 가요쿄쿠 곡들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4. 하위 장르
나카니시 레이는 1970년대~1980년대를 "뉴 뮤직과 싱어송라이터의 시대", "가요곡의 황금 시대", "아이돌의 시대"라는 세 시대로 나누어 설명한다.[64] 1960년대부터 존재했던 아이돌 가요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아이돌 가요로 정의하며, 1980년 야마구치 모모에 은퇴 이후 하나의 장르로 성립되었다.[66]
가요곡 가수 (아이돌 가수)의 저연령화는 1970년대부터 두드러졌다.[67] 1980년대에는 뉴 뮤직, 팝 아티스트들이 가요곡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64] 라이 쇼타카오, 마츠토야 유미, 오오타키 에이이치, 호소노 하루오미 등 뉴 뮤직 아티스트들의 곡과 아이돌 가수의 재능이 결합하여 앨범 판매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가요곡과 비 가요곡의 경계가 점차 사라졌다.[68]
야마구치 모모에, 핑크 레이디, 캔디즈, 나카모리 아키나, 마츠다 세이코, 사와다 켄지, 고 히로미, 고이즈미 쿄코, 나카야마 미호, 쿠도 시즈카 등은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가요곡과 록, AOR이 융합된 음악도 유행했다. 크리스탈 킹의 『대도회』, 앤 루이스의 『롯폰기 심중』 등이 대표적이다.
1978년 핑크 레이디의 『사우스포』에 신시사이저가 사용되었고, 같은 해 YMO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테크노 팝이 일본에서 유행했다.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요곡을 '''테크노 가요'''라고도 부른다.[64] 중산층 지향, 퓨전, AOR 지향의 뉴 뮤직과 시티 팝은 가요계와는 다른 노선을 걸으며 팬을 확대해 나갔다.
4. 1. 무드 가요
(요약 또는 소스에 '무드 가요'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생략)4. 2. 텔레비전 가요
テレビ歌謡|테레비 가요일본어는 1960년대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발전한 장르로, 텔레비전에서의 프로모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원문에는 텔레비전 가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가요쿄쿠가 텔레비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했다는 맥락을 고려하여, 가요쿄쿠의 하위 분류로서 텔레비전 가요를 설명할 수 있다.4. 3. 아이돌 가요
1960년대부터 아이돌 가요는 존재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나카니시 레이는 1970년대~1980년대를 "뉴 뮤직과 싱어송라이터의 시대", "가요곡의 황금 시대", "아이돌의 시대"라는 세 시대로 나누어 설명한다.[64]4. 4. 가요 록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가요 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따라서 '가요 록' 섹션에 작성할 내용은 없다. 이전 답변과 동일하게 출력한다.4. 5. 테크노 가요
1978년 핑크 레이디의 『사우스포』에 신시사이저가 사용되었고, 같은 해 YMO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테크노 팝이 일본에서 유행했다.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요곡을 '''테크노 가요'''라고도 부른다.[64]5. 논란 및 비판
1980년대 말, 아이돌 붐이 쇠퇴하고 뉴 뮤직, 록, 팝스, 가요의 경계가 모호해졌다.[2] 음악 장르의 구분이 옅어지면서 스스로 록이라고 칭하면 록으로 유통되는 '총 록화 시대'가 도래했으며, 밴드 붐 또한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주었다.[3]
1989년 쇼와 시대가 끝나고 미소라 히바리가 사망했으며, 인기 가요 프로그램 "더 베스트텐"이 종료되는 등 가요 랭킹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프로그램이 잇따라 종영되었다.[4]
나카니시 레이는 디지털 보급으로 젊은이들이 음악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혼자 좋아하는 음악만 듣게 되면서 음악의 공유성이 사라졌고, CD의 대량 생산 체제에서는 신속성이 요구되어 제작자의 전문성이 약화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포괄하여 히트를 노리는 상업적 가요는 소멸하고, 세분화된 커뮤니티 내에서만 열광을 부르는 음악이 남았다고 말했다.[4]
5. 1. 왜색 논란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가요쿄쿠, 특히 쇼와 가요에 대한 반감이 존재했다. 왜색 가요로 규정되어 금지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 지속되었다.[1]6. 평가 및 영향
가요쿄쿠는 일본 대중음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J-POP이 만들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27][28][29][30]
일제강점기 가요쿄쿠는 한국 대중음악, 특히 트로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한국 대중음악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1]
6. 1. 일본 대중음악에 대한 영향
가요쿄쿠는 일본 대중음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J-POP이 만들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27][28][29][30] 1980년대에 나온 쇼가쿠칸의 일본 대백과 사전 닛포니카에서는 J-POP을 "가요쿄쿠, 뉴 뮤직, 팝스, 록과 같이, 지금까지의 장르 구분이 없어진 후의 1990년대 이후 일본 팝 음악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엔카나 동요, 재즈나 클래식을 제외하고, 영미 팝스의 형식적 특징을 가진 것이 그 장르의 중심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책에서 가요쿄쿠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 엔카는 J-POP에서는 제외된다.1970년대부터 요시다 타쿠로 등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나타났다.[42][43] 이들은 자신들의 포크나 록, 뉴 뮤직 계열의 음악을 "이쪽"이라 부르고,[44][45] 레코드 회사에 소속된 작사가, 작곡가, 가수가 분업하여 만든 가요쿄쿠를 "저쪽"이라 부르며 가요쿄쿠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44][45] 저작권 관련 "권리 비즈니스"를 알게 된 이들은, 지금까지 "저쪽"에게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으려 했다.[52] 1970년대 중반 일본 음악 업계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는데, 그 상징적인 사건이 1975년 포 라이프 레코드의 설립이었다.[44][51][52][57][59][60]
스즈키 스지는 "70년대부터 시작된 '가요쿄쿠와 뉴 뮤직의 대립'은, '가요쿄쿠와 뉴 뮤직의 융합'으로 바뀌었다. '뉴 뮤직'은 '시티 팝' 시대를 거쳐 'J-POP'으로 발전해 간다"라고 말하며, 가요쿄쿠와 뉴 뮤직, 시티팝, J-POP이 가까운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일본 팝 음악은 예전부터 외국에서 유행하는 장르를 받아들이며 발전해 왔기 때문에,[25][26] 일본의 각 팝 음악 장르 사이의 경계는 모두 애매하다는 특징이 있다.[25][30]
6. 2.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대한 영향
일제강점기 가요쿄쿠는 한국 대중음악, 특히 트로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한국 대중음악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1]7. 대표적인 아티스트
가요쿄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관련 서적은 다음과 같다.
저자 | 서적명 | 출판사 | 출판일 | ISBN |
---|---|---|---|---|
기쿠치 키요마로 | 『일본 유행가 변천사 - 가요곡의 탄생부터 J-POP 시대까지』 | 론소샤 | 2008년 4월 1일 | ISBN 978-4-8460-0464-4[1] |
키시 토시히코 | 『동아시아 유행가 아워 - 국경을 넘는 소리, 교차하는 음악인』 (이와나미 겐다이 전서 15) | 이와나미 쇼텐 | 2013년 10월 19일 | ISBN 978-4-00-029115-6[2] |
타카 모루 | 『가요곡 - 시대를 물들인 노래들』 | 이와나미 신서 | 2011년 2월 19일 | ISBN 978-4-00-43129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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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部・演歌巡礼<2>前川清 べたつかぬ距離感で歌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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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年代ヒット曲がうけるワケ NHKBS「歌える!J-POP」長尾賢治プロデューサーが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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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田拓郎が音楽シーンに残した功績とは? みのミュージックとフォーライフミュージック・後藤豊が語り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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