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우시시르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우시시르섬은 쿠릴 열도의 화산섬으로, 북위 47도 31분, 동경 152도 48분에 위치하며, 계토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계토이 섬에서 북동쪽으로 약 14해리 떨어져 있다. 남북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약 5km²이다. 현재는 러시아 연방의 사할린주에 속해 있으나, 일본은 이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러시아의 칼데라 화산 - 케토이섬
    케토이섬은 쿠릴 열도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면적은 71.25km²이며, 케토이산과 팔라스산을 포함하고, 칼데라, 용암류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지며, 1843년부터 1960년까지 화산 폭발이 있었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 러시아의 칼데라 화산 - 초르니예브라티야섬
    초르니예브라티야섬은 러시아 사할린주에 속하며, 부분적으로 침수된 화산 칼데라의 잔해로 이루어진 치르포이섬과 브라트치르포예프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활화산이 존재하고 1982년에 분화한 기록이 있다.
  • 쿠릴 열도의 섬 - 케토이섬
    케토이섬은 쿠릴 열도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면적은 71.25km²이며, 케토이산과 팔라스산을 포함하고, 칼데라, 용암류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지며, 1843년부터 1960년까지 화산 폭발이 있었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 쿠릴 열도의 섬 - 라이코케섬
    라이코케섬은 쿠릴 열도 중부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라이코케 산을 이루며, 바다사자와 풀머 괭이갈매기의 주요 번식지이고, 현무암 성층 화산으로 여러 차례 분화했으며,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 지역이다.
  • 쿠릴 열도의 화산 - 케토이섬
    케토이섬은 쿠릴 열도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면적은 71.25km²이며, 케토이산과 팔라스산을 포함하고, 칼데라, 용암류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지며, 1843년부터 1960년까지 화산 폭발이 있었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 쿠릴 열도의 화산 - 라이코케섬
    라이코케섬은 쿠릴 열도 중부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라이코케 산을 이루며, 바다사자와 풀머 괭이갈매기의 주요 번식지이고, 현무암 성층 화산으로 여러 차례 분화했으며, 현재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 지역이다.
우시시르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우시시르 섬의 위성 사진, 위쪽이 북섬, 아래쪽이 남섬
우시시르 섬의 위성 사진 (위쪽: 북섬, 아래쪽: 남섬)
기본 정보
다른 이름우시실 섬
위치오호츠크해
군도쿠릴 열도
면적5km2
최고점미카사야마
최고점 높이401m
위치 좌표47° 31′ 12″ N, 152° 48′ 00″ E
행정 구역
국가러시아 (실효 지배)
사할린주
인구
인구0명
과거 거주민아이누족 (과거)

2. 지리

계토이 섬에서 '''계토이 해협'''을 사이에 둔 북동쪽 약 14해리 지점(북위 47도 31분 동경 152도 48분)에 위치한 화산섬이다.[1] 우시시르섬은 좁은 육지로 거의 연결된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면적은 약 5km2이다.[1] 이 섬들은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화산의 꼭대기 부분에 해당한다.

남북 두 섬 사이는 폭이 400m가 채 되지 않는 '''스즈키 해협'''으로, 간조 시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남쪽 섬은 '''Янкича|얀키차ru'''이며 정상부에 칼데라가 특징이고, 북쪽 섬은 '''o. Рыпонкича|리폰키차ru'''로 남섬보다 작고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섬 리폰키차의 이름은 아이누어 "레푼케 차(바다에 돌출된 곳에 있는 머리<머리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시시르섬은 활화산이며, 마지막으로 알려진 화산 폭발은 1884년에 있었다. 섬 주변 해역은 오호츠크 해와 태평양의 조류가 만나 항해에 매우 위험한 곳으로 여겨진다.

2. 1. 북섬 (리폰키차 섬)

북섬(o.Рыпонкича|리폰키차ru, Ryponkicha영어)는 남섬보다 작고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해안은 험하고 가파르며, 섬 남단에는 '이시야마'라고 불리는 해발 131m의 정상이 있다. 스즈키 해협에 면한 서쪽에는 약간의 자갈 해변이 있어 과거 상륙 지점으로 사용되었고, 양호번사가 있었다. 또한, 섬의 북동쪽에는 '스리테 바위'가 존재한다.

과거 쇼호 국 그림 지도에는 "레훈차"라고 기록되었고, 츄프카 제도 지도에는 "레분케차"라고 적혀 있다. 이 이름은 아이누어의 "레푼케 차(바다에 돌출된 곳에 있는 머리<머리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2. 2. 남섬 (얀키차 섬)

남섬인 '''Янкича|얀키차ru'''는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화산의 꼭대기 부분으로, 정상 칼데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대 폭은 2.5km이다. 북부에는 선주민의 동굴 주거지가 있다.

섬 남부에는 지름 약 1.6km 크기의 칼데라인 '''구레타 만'''(бухта Кратерная|부흐타 크라테르나야ru, '분화구 만'이라는 뜻)이 있다. 이 만은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열려 있으며, 예로부터 절경으로 여겨졌다. 만 입구는 만조 시 폭이 20미터 정도 되어 소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지만, 간조 시에는 수심이 30cm 정도로 매우 얕아진다. 만의 추정 수심은 30m 정도이며[1], 만 수면에는 항상 작은 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수질이 변화되어 있는 등 지속적인 해저 화산 활동의 강력한 증거가 나타난다. 실제로 잠수하면 만 바닥 깊이 30m 정도 위치에 유황 분출공이 있으며,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박테리아 매트가 밀생하고 있다. 해저의 투명도는 보통 2m~3m 정도이며, 나쁠 때는 30cm도 되지 않는데, 이는 플랑크톤 때문으로 여겨진다.

만 안에는 두 개의 작은 용암 돔이 중앙 석호에 작은 섬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칼데라 남동쪽 해안선과 산기슭에는 수많은 푸마롤(분기공)과 온천이 있다. 이 분기공 때문에 섬에는 유황 냄새가 풍기며, 유황 성분이 강한 온천수가 만 안으로 흘러들어 모래밭을 파기만 해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이 섬에서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대기와 열수 증기 사이의 온도 차이 때문이다.

섬의 외곽은 험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 지점인 御笠山|미카사야마일본어는 높이가 401m이며 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1]

섬 서남쪽 해상 200m 정도 위치에는 '''하부 바위'''(Бабушка|바부슈카ru, '할머니'라는 뜻)라는 암초가 있다. 전체 길이는 500m 정도이며 주변 파도가 거세고 해조류 때문에 미끄러워 상륙하기 어렵다. 이곳에는 멸종 위기종인 바다오리와 같은 바닷새들이 서식하며, 높이 50m 정도의 정상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바닷새 둥지가 밀집해 있다.

2. 3. 해저 지형 및 화산 활동

우시시르섬은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화산의 꼭대기 부분에 해당하는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면적은 약 5km2이다.[1] 이 섬은 활화산으로, 마지막으로 알려진 화산 폭발은 1884년에 있었다. 섬 주변 해역은 오호츠크 해와 태평양의 조류가 만나 항해에 위험한 곳으로 여겨진다.

남쪽 섬인 '''얀키차'''(Янкичаru)는 최대 폭 2.5km의 칼데라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 칼데라는 지름이 1.6km이며 남쪽 부분이 바다로 트여 해수 칼데라 만을 형성하는데, 이 만은 '''구레타 만'''(бухта Кратерная|부흐타 크라테르나야ru, '분화구 만'이라는 뜻)이라고 불린다. 만의 입구는 만조 시 폭이 약 20미터 정도 되어 소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지만, 간조 시에는 수심이 30cm 정도로 매우 얕아진다.

구레타 만 내부에서는 지속적인 해저 화산 활동의 증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만의 추정 수심은 30m이며, 수면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기포가 올라오고 수질이 변화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실제로 만 바닥 약 30m 깊이에는 유황 분출공이 존재하며, 주변에는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박테리아 매트가 밀생하고 있다. 만 중앙부에는 두 개의 작은 용암 돔이 섬을 이루고 있으며, 칼데라 남동쪽 해안선과 만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다수의 푸마롤(분기공)과 온천이 분포한다. 이 분기공에서 나오는 유황 가스로 인해 섬 전체에 유황 냄새가 나며, 온천수가 만으로 흘러 들어와 모래밭을 파면 쉽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해저의 유황 분출과 플랑크톤의 영향으로 만 내부의 투명도는 2m~3m 정도로 낮으며, 심할 때는 30cm 미만이 되기도 한다. 섬에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대기와 열수 증기 사이의 온도 차이 때문이다. 얀키차섬의 최고 지점은 동쪽 해안에 위치한 '''미카사야마'''(御笠山일본어)로, 해발 401m이다.

북쪽의 작은 섬인 '''리폰키차'''(o. Рыпонкичаru)는 얀키차섬보다 작고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섬은 화산체의 측면 일부로, 해안은 대부분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31m에 달한다. 남단에는 '''이시야마'''라고 불리는 해발 131m의 봉우리가 있다. 섬의 북동쪽에는 '''스리테 바위'''가 존재한다.

두 섬 사이는 '''스즈키 해협'''이라 불리며, 폭은 400m가 채 되지 않아 간조 시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리폰키차섬의 서쪽, 스즈키 해협에 면한 곳에는 작은 자갈 해변이 있어 과거 상륙 지점으로 이용되었다.

얀키차섬의 서남쪽 해상 약 200m 지점에는 '''하부 바위'''(Бабушка|바부슈카ru, '할머니'라는 뜻)라는 암초가 있다. 길이는 약 500m 정도이며, 파도가 심하고 해조류 때문에 미끄러워 상륙하기 어렵다. 이곳은 멸종위기종바다오리를 비롯한 여러 바닷새들의 중요한 서식지이며, 약 50m 높이의 정상부는 발 디딜 틈 없이 새들의 둥지로 가득 차 있다.

3. 지질

우시시르섬은 좁은 육지로 거의 연결된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5km2이다.[1]

이 작은 섬들은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화산의 꼭대기 부분이다. 남쪽 섬인 '''Янкича|얀키차rus'''는 정상 칼데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대 폭은 2.5km이다. 칼데라는 지름이 1.6km이며, 남쪽으로 뚫려 있어 해수 칼데라 만을 형성한다. 이 만의 추정 수심은 30m이며, 빈번한 기포, 변화된 수질, 그리고 박테리아 매트의 존재로 보아 지속적인 해저화산 활동의 강력한 증거가 있다. 두 개의 작은 용암 돔이 중앙 석호에 작은 섬을 형성하고 있으며, 수많은 푸마롤과 온천이 칼데라 남동쪽 해안선을 따라 있다. 이 섬의 최고 지점인 御笠山|미카사야마jpn는 높이가 401m이며, 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

북쪽의 작은 섬 '''Рыпонкича|리폰키차rus'''는 두 섬 중 더 작으며, 화산 측면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다에서 131m 높이로 가파른 절벽이 솟아 있다.

우시시르섬은 활화산이며, 마지막으로 알려진 화산 폭발은 1884년이었다.

4. 생태계

봄과 여름에 쿠릴 열도에서 가장 큰 큰바다오리 및 흰수염바다오리 집단이 이 섬에서 발견되며, 쇠바다오리도 이곳에서 둥지를 튼다.[2]

본 섬 내부는 북방계 식물이 많이 존재한다. 또한, 일본령 시대인 1916년에는 농림성에 의한 양여우 사업으로 5쌍의 청여우가 도입되었지만, 거의 방목 상태였다. 현재는 그 후손들이 자연 번식하고 있다. 또한, 북섬에는 그 오두막이 남아 있다.

해안 절벽이나 동굴에는, 번식기가 되면 바다새가 날아와 집단 서식지를 형성한다.

덧붙여, 앞서 언급한 쿠레다 만(크라테르나야 만, 열수 근처에도)에는 황을 기반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세균이 서식하고 있어,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5. 역사

유럽인과의 접촉 이전에는 영구 거주지가 없었으나, 아이누족이 여름에 방문하여 신성한 땅으로 여겼다. 1700년 마쓰마에 번의 기록에 '우시시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이후 러시아 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으로 러시아령이 되었다가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 일본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일본 통치 시기에는 홋카이도 네무로 지청 산하 신치 군에 속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소련군이 점령하였고, 전쟁 후 소련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952년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에서 일본은 치시마 열도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으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를 계승하여 현재 사할린 주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우시시르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의 귀속이 미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쿠릴 열도 분쟁의 대상 지역 중 하나이다.

5. 1. 아이누 시대

유럽인과의 접촉 이전, 우시시르 섬에는 영구적인 거주지가 없었다. 아이누족은 여름철에 라스슈아 섬에서 이곳을 방문했으며, 섬을 뇌신(ain)의 고향이자 신성한 땅으로 여겼다. 얀키차 섬의 분화구 만 북쪽 경사면에서는 아이누족의 오두막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1700년 (겐로쿠 13년), 마쓰마에 번이 막부에 제출한 겐로쿠 국에즈의 부속 문서인 마쓰마에 섬 향장에는 "우시시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1769년에는 이 지역을 탐험하던 러시아인 이반 초르니가 섬에서 치시마 아이누가 행하는 독특한 종교 의식을 목격하고 기록을 남겼다.

치시마 아이누는 자신들이 뇌신 칸나카무이의 자손이며, 우시시르 섬이 그들의 발상지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칸나카무이는 아이누의 여러 신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아이누족은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반 초르니의 기록에 따르면, 아이누족은 유황이 분출되는 구멍 위에 제단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뜨거운 가스와 열기를 견디며 사흘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는 시련을 거쳤다. 이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사람만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아이누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1875년 가라후토-치시마 교환 조약을 통해 섬이 일본령이 될 무렵에는 이미 섬에 정착해 사는 아이누는 없었다. 하지만 라슈아 섬에 거주하던 치시마 아이누들이 독수리오리 등을 사냥하기 위해 섬을 방문하여 겨울을 보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5. 2. 러시아 통치 시대

1769년 러시아 탐험가 이반 초르니는 우시시르 섬을 방문하여 당시 섬을 성지로 여기던 아이누족의 종교 의식을 기록했다.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에 따라 우시시르 섬은 공식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일본 제국이 사할린 섬 남부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쿠릴 열도 전체를 넘겨받으면서 우시시르 섬도 일본령이 되었다. 당시 섬에는 정주민이 없었으나, 라슈아 섬의 아이누족이 사냥을 위해 건너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소련군이 섬에 상륙하여 점령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 GHQ는 일반 명령 제1호를 통해 우시시르 섬을 소련 점령지로 지정했다. 1946년 GHQ 지령으로 일본의 통치권이 공식 정지되었고, 소련은 곧바로 섬의 영유를 선언했다.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지만,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연방이 섬에 대한 실효 지배를 이어받아 현재 사할린 주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우시시르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의 귀속 문제가 미해결 상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5. 3. 일본 통치 시대

1875년 가라후토-치시마 교환 조약에 따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일본 제국으로 할양되었다. 이 무렵 섬에는 정주자가 없었지만, 인근 라슈아 섬에 살던 아이누족이 독수리오리 사냥을 위해 건너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일본 통치 하에서 우시시르 섬은 홋카이도 네무로 지청 (현 네무로 진흥국) 관할의 시무시로 군에 속했으며, 나중에는 신치 군으로 편입되어 관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소련군이 섬에 상륙하여 점령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9월 2일 이후 발령된 GHQ의 일반 명령 제1호에 따라 소련 점령지로 지정되었고, 1946년에는 GHQ 지령에 의해 일본의 통치권이 공식적으로 정지되었다. 직후 소련은 우시시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선언했다.

1952년 체결된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소련 불참)에서 일본은 치시마 열도 전체에 대한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했다. 이후 소련 및 이를 계승한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정부는 치시마 열도의 귀속은 미확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5.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소련붉은 군대가 우시시르 섬에 상륙하여 점령하였다. 같은 해 9월 2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발령된 GHQ의 일반 명령 제1호에 따라 우시시르 섬은 쿠릴 열도의 다른 섬들과 함께 소련의 점령지로 지정되었다. 1946년에는 GHQ 지령에 의해 일본의 통치권이 공식적으로 정지되었고, 직후 소련은 우시시르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 전체의 영유를 선언하며 자국 영토로 편입하였다.

1952년 체결된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우시시르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일본 측 명칭: 치시마 열도)의 귀속은 미확정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우시시르 섬에 대한 실효 지배는 러시아 연방이 계승하여 현재 사할린 주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우시시르 섬은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귀속 미정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쿠릴 열도 분쟁 참조)

5. 5.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우시시르 섬은 소련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섬에 상륙하여 점령했으며, 일본이 항복한 9월 2일에 발령된 일반 명령 제1호에 따라 소련 점령지로 지정되었다. 1946년에는 GHQ의 지령으로 일본의 통치권이 공식적으로 정지되었고, 직후 소련이 영유를 선언했다.

1952년 체결된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치시마 열도(쿠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치시마 열도의 귀속 문제가 미해결 상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 연방이 우시시르 섬에 대한 실효 지배를 계승하여 현재 사할린 주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과거 일본 통치 시기에는 홋카이도 네무로 진흥국 관내의 신치 군에 속해 있었다.

현재 러시아 연방이 우시시르 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귀속 미정지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쿠릴 열도 분쟁의 일부로 남아있다.

참조

[1] 웹사이트 International Kuril Island Project(IKIP) http://www.washingto[...] University of Washington Fish Collection or the respective authors
[2] 논문 The breeding seabirds of the Russian Far East http://publications.[...] 200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