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 열도 분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쿠릴 열도 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 영토)를 두고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발생하는 영토 분쟁이다. 1855년 러일 화친 조약 이후 이어진 영토 분쟁으로, 1945년 소련의 쿠릴 열도 점령,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1956년 일소 공동 선언 등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 있다. 일본은 4개 섬(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반환을 요구하고, 러시아는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2000년대 이후에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얄타 협정,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등 관련 국제법 해석의 차이, 미국의 개입,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 등이 분쟁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일본과 러시아의 입장 차이, 그리고 제3국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쿠릴 열도 분쟁
쿠릴 열도 분쟁
러시아어Проблема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южных Курильских островов
영어Northern Territories dispute, South Chishima Islands dispute
일본어ほっぽうりょうどもんだい
로마자 표기Hoppōryōdo mondai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歯舞群島
분쟁 지역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
배경
분쟁 원인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소련의 점령
일본의 영유권 주장
관련 정보
일본어 명칭北方領土 (홋포료도)
南千島 (미나미치시마)
러시아어 명칭Южные 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а (유즈니예 쿠릴스키예 오스트로바)
Малая Курильская гряда (말라야 쿠릴스카야 그랴다)
역사적 맥락
소련의 입장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서 합법적인 영토 획득
일본의 입장1855년 러시아와 체결한 시모다 조약에 따른 일본 고유의 영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른 영토 포기 대상이 아님
영유권 주장 현황
러시아의 입장러시아의 영토이며, 영유권 협상은 없음
일본의 입장4개 섬 전체의 반환 요구
하보마이 군도시코탄섬 반환 우선 주장 (1956년 소련-일본 공동 선언 내용 기반)
국제적 관점
국제 사회영토 분쟁으로 인식
양국 간 평화적 해결 촉구
일본의 노력러시아와의 지속적인 협상
국제 사회의 지지 확보 노력
러시아의 노력실효적 지배 강화
경제 개발 및 군사 활동 강화
현재 상황
협상 진전큰 진전 없음
경제 및 안보 영향양국 관계의 주요 쟁점
지역 안보에 영향
어업 등 경제 활동에 대한 제한
관련 문서
참고 자료러시아 외무부 러시아-일본 관계의 평화 조약 문제
제임스 D.J. 브라운, 일본, 러시아 그리고 영토 분쟁: 북방의 망상
일본 외무성, 북방 영토 문제
주러시아 일본 대사관, 일러 관계
로이터 통신, 러시아에 휘둘리는 어업 도시, 홋카이도 네무로에 다시 시련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러시아-일본 국경 - 동해
    동해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의 반폐쇄성 해역으로, 깊은 수심과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국가가 접하고 있지만, "일본해" 명칭 분쟁, 환경 문제, 영토 분쟁 등의 현안이 존재한다.
  • 러시아-일본 국경 -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은 1875년 일본과 러시아 제국 간에 체결되어 일본이 사할린 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쿠릴 열도 18개 섬을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았으며, 사할린과 쿠릴 열도의 국경을 확정하고 일본인 거주자 보상, 일본 어선의 오호츠크해 접근 허용 등을 규정했다.
  • 소련의 영토 분쟁 - 중소 국경 분쟁
    중소 국경 분쟁은 19세기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되어 1969년 군사적 충돌로 심화되었고, 1990년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경 문제를 해결했으며, 국제 관계 재편에 영향을 미쳤다.
  • 소련의 영토 분쟁 - 볼쇼이우수리스키섬
  • 러시아-일본 관계 - 포츠머스 조약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러일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체결된 조약으로, 러시아의 영토적 양보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우월권 인정, 배상금 면제 등을 포함하며 동아시아 국제 질서 재편에 기여했으나 한국에서는 국권 침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러시아-일본 관계 - 오쓰 사건
    오쓰 사건은 1891년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가 시가현 경찰에게 습격당해 부상을 입은 사건으로,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사법부 독립성 논란, 범행 동기, 러일 전쟁 영향 등 다양한 해석과 함께 여러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2. 배경

1939년 태평양 연안 지도. 표시된 날짜는 각 강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장악한 대략적인 시기를 나타낸다.
1939년 태평양 연안 지도. 표시된 날짜는 각 강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장악한 대략적인 시기를 나타낸다.

1939년 이전 에토로후섬(이투룹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불교 사찰
1939년 이전 에토로후섬(이투룹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불교 사찰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

쿠릴 열도는 1945년부터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에토로후섬구나시리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지시마(남쿠릴 열도)’라고 부르며, 이들 2개의 도서 지역이 포기한 쿠릴 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지만,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에 반발하며 제의를 철회하였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제국나치 독일의 주요 동맹국이었는데, 소련은 처음에 소련과 이해관계를 맺었지만, 1941년 6월 22일부터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1939년 할힌골 전투가 일소 국경 전쟁을 종식시킨 후 그리고 소련이 1945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하기 전까지 소련과 일본 제국 사이에는 사실상 적대 행위가 없었다.

2.1. 러일 관계의 시작

1855년(일본 안세이 2년), 에도 막부러시아 제국[[러일 화친 조약]]을 맺어 이투루프섬우루프섬 사이를 국경선으로 정했다. 이 조약으로 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가 일본 영토로 확정되었다.

1875년 (메이지 8년),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체결하여 사할린섬 전체를 러시아 영토로 하는 대신, 쿠릴 열도 전체를 일본 영토로 정했다.

2.2. 러일 전쟁과 소련의 참전

1905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이 패배하면서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사할린섬 남부가 일본에 양도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소비에트 연방은 소일 중립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일(對日) 참전을 시작했다. 소련은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소일 전쟁을 시작했으며, 이후 며칠 동안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를 침공했다. 쿠릴 열도 침공은 8월 18일부터 9월 3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2년 후 추방되었다. 미국은 프로젝트 훌라를 통해 소련에 군함을 이전하는 등 소련의 침공 준비를 도왔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 직후, 미국과 소련은 "프로젝트 프라"라는 극비 작전을 시작했다. 미국은 소련에 함선을 제공하고 소련군을 훈련시켰으며, 훈련받은 소련군과 제공받은 함선은 사할린섬 남부와 쿠릴 열도 작전에 투입되었다. 8월 28일부터 시작된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4개 섬 점령 작전에는 미국의 제공 함선 10척을 포함한 17척이 참가했다. 소련군은 9월 5일까지 4개 섬 점령을 완료했다.

3. 현대의 분쟁

1855년 시모다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일본 간의 공식적인 관계가 처음 수립되었으며, 에토로후섬우루프섬 사이를 국경으로 정했다. 이 조약에 따라 에토로후섬 전체는 일본에 속하고, 우루프섬과 그 북쪽의 다른 쿠릴 열도는 러시아 소유가 되었다. 쿠나시리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는 조약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당시 분쟁이 없는 일본 영토로 간주되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일본이 사할린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가 쿠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일본에 양도하는 데 동의했다.

1904년~1905년 러일 전쟁은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로 끝났고, 포츠머스 조약으로 사할린 섬 남부가 일본에 할양되었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만주 침공과 함께 소일 전쟁이 시작되었고, 소련은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를 침공했다. 쿠릴 열도 침공은 8월 18일부터 9월 3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쿠릴 열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2년 후 추방되었다.

3.1. 얄타 협정과 포츠담 선언

1945년 2월, 소련, 미국, 영국 3국은 얄타 회담을 열어 소련의 대일 참전 계획과 연합국의 승리 후 세계 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 조건으로 소련이 "쿠릴 열도"를 영유하는 것을 정상들이 합의했다(얄타 협정).

얄타 협정은 미국, 영국, 소련이 서명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세 대국 지도자 (소련, 미국, 영국)는 독일 항복 및 유럽 전쟁 종결 후 2~3개월 안에 소련이 연합국 편에서 일본에 대해 참전하는 것에 합의했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 2. 1904년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침해당한 러시아의 이전 권리 회복.
>
(a) 사할린 남부와 인접 섬들을 소련에 반환.
> ** 3. 쿠릴 열도를 소련에 양도.

일본미국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얄타 협정이 북방 영토(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지리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이 섬들을 쿠릴 열도의 일부로 분류해 왔다.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카이로 선언을 계승하여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부근 작은 섬들에만 미치며,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는 제외된다."고 밝혔다. 포츠담 선언의 일본 영토 관련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8. 카이로 선언 조항 이행. 일본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및 우리가 결정하는 작은 섬들로 제한.

북방 영토를 구성하는 섬들은 이 목록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특히 샌프란시스코 조약 준비 과정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그러한 작은 섬들"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북방 영토를 일본에 이전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43년 카이로 선언은 쿠릴 열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다른 영토에서 추방될 것이다.

일본은 1855년 양국 간 외교 관계 수립 이후 러시아에 속한 적이 없거나 러시아가 주장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이 북방 영토에 적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섬들은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획득한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2.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했다. 그러나 일본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에토로후섬구나시리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지시마(남쿠릴 열도)’라고 부르며, 이들 2개의 도서 지역이 포기한 쿠릴 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지만,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에 반발하며 제의를 철회하였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1951년 9월 8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49개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 제2조 (c)항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쿠릴 열도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일본이 주권을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 및 그에 인접한 섬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


미국 국무부는 나중에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은 홋카이도의 일부이며 일본은 이들에 대한 주권을 가진다"고 명확히 했다. 영국과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에는 영토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고, 따라서 이 섬들은 공식적으로 소련 영토로 인정되지 않았다.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을 거부하고 쿠릴 열도 문제가 조약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의 당시에도 일본은 쿠나시리섬, 에토로후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가 기술적으로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조약 제2조 (c)항의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1952년 4월 28일 미 상원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비준 결의안은 소련이 쿠릴 열도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3.3. 1956년 소일 공동선언

1956년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련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양도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에 반발하며 이 제안을 철회했다. 이후 일본은 구나시리섬에토로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1855년 일본과 러시아는 [[러일 화친 조약]]을 맺고, 에토로후섬과 우루프섬 사이를 국경선으로 정했다. 이 조약에 따라 에토로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가 일본 영토로 규정되었다. 1956년 소련-일본 공동선언 협상 당시, 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이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다. 소련은 이를 거부했고, 러시아는 이후로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3.4. 21세기 이후의 상황

2001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 러시아는 하보마이 군도시코탄섬을 일본에 넘기는 입장이었고, 일본은 이 두 섬을 먼저 돌려받고 구나시리섬에토로후섬 반환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가 된 후 일본이 4개 섬 동시 반환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2007년 6월 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여 남쿠릴 열도 4개 섬 공동 개발을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는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까 우려하여 응하지 않았다.

2008년 5월, 일본과 러시아는 쿠릴 열도 분쟁 해결을 위해 비자 면제 방문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양국은 총 837명에 대해 29차례 비자 없이 상호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 11월 22일, 양국 정상은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나, 일본 언론들은 영토 협상 본격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2010년 11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의 지배권 강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이 방문을 "용납할 수 없는 무례"라고 비난하며 주러 일본 대사를 소환했다.

2011년 2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수산 업체가 쿠나시르섬에서 러시아와 공동으로 해삼 양식 사업을 할 예정이라는 보도에 일본은 반발했다. 러시아는 제3국 기업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었다.

2012년 2월 14일, 러시아는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군 주둔지 2곳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3월 22일, 중국 수산물기업 대표단은 쿠나시르섬에 50를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한국, 중국 정부와 기업에 신중한 자세를 요구했다. 8월 14일, 러시아 정부는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전투함 2척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3년 1월 9일,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는 이투루프섬을 포기하고 쿠나시르섬,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섬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4월 29일, 푸틴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하보마이 군도시코탄섬을 일본에 넘기고 쿠나시르섬은 양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018년 4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러시아군의 군사 훈련에 대해 러시아 정부에 항의했다. 10월, 러시아의 미사일 사격 훈련에 일본은 항의했다.

2022년 3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쿠릴 열도 남부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자 일본이 주권을 가지는 영토"라고 선언했다. 3월 8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4개 섬을 일본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묘사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응이었다. 3월 21일, 러시아는 일본의 제재 조치로 인해 일본과의 평화 조약 협상에서 철수하고, 쿠릴 열도 관련 합동 경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3월 25일, 러시아는 쿠릴 열도에서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3월 31일, 일본은 분쟁 중인 섬들을 "불법 점령" 상태로 재지정했다.

2022년 6월 7일, 러시아는 일본 어부들의 쿠릴 열도 남부 근해 조업을 허용하는 1998년 협정을 취소할 의사를 밝혔다. 9월 5일, 러시아는 일본 거주민들의 비자 면제 방문을 허용하는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2023년 2월 7일, 일본은 러시아가 4개 섬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소련이 불법 점령한 지 7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방영토가 돌아오지 않은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4. 각국의 입장

1939년 태평양 연안 지도. 표시된 날짜는 각 강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장악한 대략적인 시기를 나타낸다.
1939년 태평양 연안 지도. 표시된 날짜는 각 강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장악한 대략적인 시기를 나타낸다.

1939년 이전 에토로후섬(이투룹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불교 사찰
1939년 이전 에토로후섬(이투룹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불교 사찰


쿠릴 열도 분쟁은 일본, 러시아, 아이누족 사이의 복잡한 영토 분쟁이다. 13세기 이전 중세에는 홋카이도 북쪽 사할린과 동쪽 쿠릴 열도일본인이나 러시아인보다 훨씬 이전부터 아이누 등의 원주민이 거주했다. 근세 이후,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일본러시아는 경쟁적으로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각자의 입장은 역사적, 정치적, 민족적 배경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일본: 홋카이도에 부속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입장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이 섬들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 이후 철회했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 러시아: 쿠릴 열도 전체가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러시아의 합법적인 영토이며, 이는 전후 국제 경계 변경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지만, 1960년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자 거세게 반발하면서 양도 제의를 철회하였다.
* 아이누족: 19세기 일본과 러시아 정착민이 도착하기 전에 쿠릴 열도와 사할린에 거주했었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쿠릴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이누 사람들은 쿠릴 열도의 원주민이었다.
아이누 사람들은 쿠릴 열도의 원주민이었다.

4.1. 일본의 입장

일본은 북방 영토(쿠릴 열도 남부 4개 섬)가 홋카이도에 부속된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이 섬들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만을 홋카이도의 일부로,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북방 영토"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은 1904~1905년 이전에도 러시아에 속한 적이 없었던 분쟁 도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러시아는 1855년 일본과 외교 관계 수립 이후 분쟁 도서에 대해 주장한 적이 없으므로, 이들 도서는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획득한 영토로 간주될 수 없다.
* 얄타 회담은 전후 처리 원칙에 대한 당시 연합국 지도자들의 발표 이상의 의미가 없으며, 일본은 이 문서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구속되지 않는다.
* 1945년 소련의 대일 참전은 소일 중립 조약 위반이며, 도서 점령은 국제법 위반이다. 일본은 조약이 1946년 4월 25일까지 유효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약 제3조에는 파기 가능성이 명시되어 있다.
*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따라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지만, 일본 정부는 쿠나시르섬, 이투루프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 일본 정부는 사할린 남부와 우루프섬까지의 쿠릴 열도에 대한 주권을 포기했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명시하지 않았고, 소련은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조약 제25조에 따라 해당 지역이 국제법상 미정의 토지라고 주장한다.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北方영토)의 위성 사진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北方영토)의 위성 사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

북방영토(4개 섬: 에토로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는 일본 홋카이도 본섬의 네무로 반도와 노케 반도에서 동쪽 바다에 위치한다. 캄차카 반도 남서쪽에 있는 쿠릴 열도우루프섬에서 보면 서쪽 바다에 위치한다. 홋카이도 본섬에서 4개 섬까지의 거리는 가장 가까운 섬이 약 3.7 km, 가장 먼 섬이 144.4 km이다. 우루프섬으로부터는 가장 가까운 곳이 약 40 km, 가장 먼 곳이 약 370 km이다. 면적은 총 약 5,000 km2로, 아이치현이나 후쿠오카현의 면적과 거의 같다.

근대 이전까지는 주로 아이누 등의 원주민이 거주했다. 1855년(일본 안세이 2년)부터 1945년(일본 쇼와 20년)까지는 일본 국민이 거주했으며, 1945년에는 약 1만 7300명이 거주했다. 그 이후로는 주로 슬라브계 러시아 국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는 약 1만 8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
쿠릴 열도 국경선 변천(1945년은 구 소련의 불법 점거선)
쿠릴 열도 국경선 변천(1945년은 구 소련의 불법 점거선)


일본 정부는 「4개의 섬(북방영토)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러시아가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56년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 체결 이후 철회했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2006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56년 소련-일본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평화 조약 체결 시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를 반환할 것을 제안했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영토 분쟁 해결 의지를 표명하는 서한을 받았다. 2009년 아소 다로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을 통해 분쟁 해결 노력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2022년 3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쿠릴 열도 남부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자 일본이 주권을 가지는 영토"라고 선언했으며,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4개 섬을 일본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묘사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응이었다.

2022년 3월 2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관련 일본의 제재 조치로 인해 일본과의 평화 조약 협상에서 철수하고, 분쟁 중인 쿠릴 열도와 관련된 합동 경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3월 25일, 러시아는 분쟁 중인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에서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2022년 3월 31일, 일본은 2022년 외교 청서 초안에서 분쟁 중인 섬들을 "불법 점령" 상태로 재지정했다.

4.1.1. 일본 내 여론

일본에서는 여러 민간 단체들이 지방 및 중앙 정부와 협력하여 일본 국민들이 쿠릴 열도의 반환을 촉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섬에서 쫓겨난 가족을 둔 스즈키 켄지로(鈴木賢二郎일본어)는 북방영토 거주자 연맹(千島歯舞諸島居住者連盟일본어)('지시마'는 쿠릴 열도의 일본식 명칭) 도카치 지부장을 맡고 있다. 2008년 당시 주요 단체의 예산은 약 1억 8700만 엔(1.7)이었다.

thumbnail
thumbnail


2018년, 일본 정부는 쿠릴 열도 분쟁뿐 아니라 독도(다케시마)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토 주장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영토권 문제에 대한 대중 인식을 높이기 위해 영토 및 주권 국립 박물관(국립 영토 주권 박물관)(현재 도쿄 지요다구 도라노몬 미츠이 빌딩에 위치)을 설립했다.

분쟁 지역 섬의 전 일본 거주자들과 그 후손들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1964년부터 인도주의적 이유로 일부는 가족 묘소를 참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랫동안 더 쉬운 접근과 쿠나시르 섬 이외의 섬에 상륙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해 왔다. 2018년 러시아는 새로운 시스템에 따라 해상에서 접근하는 관광선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군도의 작은 섬들에 대한 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4개 섬에 대한 입국 신청 처리 절차가 변경됨에 따라 여행 시간이 5시간에서 약 3시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4.2. 러시아의 입장

러시아는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섬들을 포함한 쿠릴 열도 전체가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러시아의 합법적인 영토이며, 이는 전후 국제 경계 변경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스크바는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한다.

* 얄타 회담의 명시적인 언어는 소련에 쿠릴 열도에 대한 권리를 부여했으며, 소련은 그 조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했다.
* 러시아는 국제법에 따라 전 소련의 후계 국가로서 섬에 대한 소유권을 상속받았다.
* 분쟁 중인 섬이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은 단순히 일본의 영토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전술일 뿐이며, 역사적 또는 지리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지만, 1960년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자 거세게 반발하면서 양도 제의를 철회하였다.

2006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부는 일본에 1956년 소련-일본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분쟁 지역의 약 6%)를 반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쿠나시르섬이투루프섬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2010년 9월 29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릴 열도를 방문할 계획을 밝히고, 11월 1일 쿠나시르 섬을 방문하자,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용납할 수 없는 무례"라고 비난하며, 이후 모스크바 주재 일본 대사를 소환했다.

2011년 2월 10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쿠릴 열도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첨단 무기를 배치하라고 명령했고, 이후 S-400 SAM 시스템, 미스트랄급 상륙 강습함, 스테레구시치급 코르벳 등을 배치할 계획이 발표되었다.

2016년 3월 25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쿠나시르 섬에 발(Bal) 로켓 시스템, 이투루프 섬에 바스tion(Bastion), 그리고 그 해 안에 쿠릴 열도에 엘레론(Eleron)-3 무인항공기(UAV)가 배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8년 1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연례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배치된 미국의 방공 시스템에 우려를 표명하며, 이것이 모스크바와 도쿄 간의 평화 조약 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는 러시아가 영토 협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2020년에 도입된 러시아 연방 헌법의 새로운 버전은 우리나라의 영토는 양도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종결되었다."라고 말했다.

2022년 3월 2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관련 일본의 제재 조치로 인해 일본과의 평화 조약 협상에서 철수하고, 분쟁 중인 쿠릴 열도와 관련된 합동 경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4.2.1. 러시아 내 여론

러시아에서는 대다수 국민과 언론이 일본에 대한 영토 양보에 강력히 반대한다. 일반적인 견해는 소련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쿠릴 열도를 획득했으며, 분쟁 지역의 이전 역사와 관계없이 이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쿠릴 열도를 일본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의 희생과 동맹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한 데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믿는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 국민들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다.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VTsIOM)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쿠릴 열도 분쟁에서 일본에 대한 영토 양보에 반대하는 응답자 비율은 1994년 76%에서 2009년 89%로 증가했다. 2016년 5월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만이 일본에 쿠릴 열도를 양보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2018년 11월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17%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젬랴크 운동은 1990년대에 일본에 쿠릴 열도를 반환할 것을 주장했지만, 모스크바가 쿠릴 열도에 투자를 시작하면서 이 운동은 사라졌다.

4.3. 아이누족의 입장

아이누족은 19세기 일본과 러시아 정착민이 도착하기 전에 쿠릴 열도와 사할린에 거주했었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쿠릴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2004년, 캄차카 지방에 거주하는 소규모 아이누 공동체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편지를 써서 남쿠릴 열도를 일본에 넘기는 것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지에서 그들은 아이누족에 대한 살해와 동화와 같은 범죄에 대해 일본인, 차르 러시아인, 그리고 소비에트를 비난했으며, 푸틴에게 아이누족에 대한 일본의 대량학살을 인정해 줄 것을 촉구했지만, 푸틴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

아이누 사람들은 쿠릴 열도의 원주민이었다.
아이누 사람들은 쿠릴 열도의 원주민이었다.

5. 제3국의 입장

* 유럽 연합(EU)

유럽 의회는 2005년 7월 7일 "EU, 중국-대만 관계와 극동의 안보" 결의안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점령된" 남 쿠릴 열도를 반환할 것을 촉구했다.

* 미국

미국은 일본의 쿠릴 열도 영유권을 인정한다. 2018년부터 미국 정부는 영주권 신청자 중 분쟁 중인 4개 섬 출생자는 출생지를 일본으로 기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중국

1950년대 소련쿠릴 열도 주장을 지지했으나, 1960년대 소련-중국 분쟁 이후 일본의 영유권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이후 중국 발행 지도에는 쿠릴 열도가 "러시아 점령" 주석과 함께 일본 영토로 표기되었다. 2021년 7월 27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해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리 결과는 진지하게 존중하고 옹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믿음"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일본 패배 이후 쿠릴 열도 소유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파시즘에 대한 승리 전쟁의 결과"를 자주 언급하는데, 중국은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러시아 주장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3월 모스크바 회담에서 시진핑푸틴에게 영토 분쟁 관련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1964년 쿠릴 열도가 일본에 속한다고 말한 마오쩌둥과 비교했을 때 중립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5.1. 대한민국의 입장

대한민국은 러시아-일본 간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해 공식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6. 과제와 해결 방안 모색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

쿠릴 열도 분쟁은 13세기 이전부터 아이누 등 원주민이 거주하던 지역에 근세 이후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자세한 내용은 관계사 항목 참조)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으로 에토로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가 일본 영토로 규정되었고, 1875년 사할린-쿠릴 교환 조약으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역을 영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 조건으로 쿠릴 열도 영유가 합의되었고, 종전 후 소련은 이 섬들을 점령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북방영토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고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 체결 후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일본에 인도하기로 합의했으나,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6.1. 양측의 이해관계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홋카이도와 남쿠릴 열도의 위성 사진 (北方영토)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 시무시르 섬


쿠릴 열도 분쟁은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각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이다.

* 일본: 4개 섬(북방영토: 에토로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은 일본 홋카이도 본섬의 네무로 반도와 노케 반도에서 동쪽 바다에 위치한다.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으로 4개 섬을 일본 영토로 규정했고, 1875년 사할린-쿠릴 교환 조약으로 쿠릴 열도 전역을 영유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러시아: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쿠릴 열도 전체가 러시아의 합법적인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쿠릴 열도에 대한 권리가 부여되었고, 러시아는 전후 국제 경계 변경에 따라 섬에 대한 소유권을 상속받았다고 주장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에 군사적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 조약 체결을 어렵게 한다고 언급했다. 2022년 3월,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러시아가 영토 협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2020년 러시아 연방 헌법에 따라 영토 양도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본의 온라인 자료에 따르면 쿠릴 열도에 건설되고 있는 군사 기반 시설은 북극의 카라 해와 태평양을 잇는 해상 항로인 "북해 항로"의 미래 계획의 일부로 여겨진다. 이 자료는 지난 수십 년간 태평양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러시아가 이 항로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더욱이, 쿠릴 열도를 일본에 이양하는 것은 러시아가 다른 국가들과 갖고 있는 영토 분쟁을 악화시킬 것이다.

6.2. 해결 방안 모색

1956년 소일 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반환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분쟁 해결을 시도했다. 일본은 초기 협상 단계에서 이투루프섬쿠나시르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약점을 인지하고, 평화 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두 섬의 반환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은 영토 조항 해석을 둘러싼 이견으로 인해 분쟁의 완전한 해결로 이어지지 못했다. 소련은 선언이 분쟁을 해결했으며, 추가적인 영토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일본은 평화 조약 협상이 더 큰 두 섬에 대한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 미국의 개입과 미국의 오키나와 유지 경고등의 요인과 함께,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교착 상태는 지속되었고,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2006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56년 공동선언에 의거, 평화 조약 체결 시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분쟁 지역의 약 6%)를 반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본은 쿠릴 열도 반환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제안했으나, 2007년 무렵부터 쿠릴 열도 주민들의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으로 인해 이러한 제안에 대한 관심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영토 분쟁 해결 의지를 담은 서한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2009년 아소 다로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을 통해 분쟁 해결 노력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일본에 무비자 여행 허용, 일본 어부의 러시아 영해 조업 허가 등 양보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의 무비자 프로그램 폐지 요구, 일본 어부 피격 사건 등 갈등도 발생했다. 2006년에는 러시아 순찰대의 총격으로 일본 어부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은 쿠릴 열도 남부에 대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쿠릴 열도 남부를 "일본 고유의 영토이자 일본이 주권을 가지는 영토"라고 선언했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4개 섬을 일본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묘사했다. 러시아는 일본의 제재 조치에 대응하여 평화 조약 협상 철수, 합동 경제 프로젝트 중단을 발표했다.

2022년 3월, 러시아는 쿠릴 열도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일본은 분쟁 중인 섬들을 "불법 점령" 상태로 재지정했다. 2022년 6월, 러시아는 일본 어부의 조업 허용 협정 취소 의사를 밝혔고, 9월에는 비자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2023년, 일본은 러시아의 4개 섬 불법 점거 입장을 재확인했고, 러시아는 파라무시르에 해안 방어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했다. 러시아 검찰총장은 치시마·하보마이 섬 주민 연맹을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로 지정하여 전 주민들의 분쟁 섬 방문이 금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쿠릴 열도 분쟁은 양국의 입장 차이, 국제 정세 변화 등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해결 방안 모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 결론

쿠릴 열도 분쟁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 역사적 갈등, 그리고 소수 민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난제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국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 그리고 국제 사회의 건설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국익을 지키면서 지역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