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구 (1928년)
1. 개요
윤영구는 1928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미군 군목의 통역관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신설을 추진했다. 또한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 연구, 한국인 위안부 문제 공론화, 결혼 이주 여성 인권 개선 운동 등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2011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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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인류학자 -
권헌익
권헌익은 대한민국의 인류학자이며, 서울대학교 철학과 중퇴 후 미국과 영국에서 학위를 받고, 맨체스터 대학교와 에든버러 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며, 저서 《학살, 그 이후》, 《또 하나의 냉전》, 《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등을 저술하고,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로 아시아 학회 카힌상을 수상했다. -
대한민국의 인류학자 -
최길성 (인류학자)
최길성은 대한민국의 인류학자이며, 한국 무속, 식민지 문화, 재일 조선인, 위안부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다. -
여성학 -
여성주의
여성주의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 비판을 토대로 여성의 권리 및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 평등을 추구하는 이론이자 사회 운동이다. -
여성학 -
백래시 (사회학)
백래시는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 현상으로, 역사적으로 짐 크로 법, 평등권 수정 헌법안 반대, 젠더 백래시 운동 등이 있었으며, 현대에는 미투 운동, 성소수자 권리,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자전거 이용 확대 등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 사회적 갈등 심화, 논쟁, 소송 등을 야기한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1928년 7월 10일 경성부에서 태어난 윤영구는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군목 통역관으로 참전했다. 전쟁 후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1955년 최희창과 결혼했다. 1959년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62년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하와이대학교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과 한국인 위안부 문제를 연구했다. 2011년 5월 9일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1928년 ~ 1950년)
1928년 7월 10일 경성부 장충동 감리 교회에서 병리학자 겸 해부학자인 윤일선과 그의 부인 조마구례(다른 이름은 조영숙)의 딸로 태어났다. 집은 서울시 서대문구 냉천동에 있었다. 형제로는 윤석구, 윤탁구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제2대 서울시장과 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은 아버지 윤일선의 사촌 동생이었다.
1942년 경기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5년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 1950년 2월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였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항공사에 취직했다가 1950년 6월 6.25 전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한국에 파견되자 그는 미국 공군 군종장교 군목의 통역관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2.2. 미국 유학과 6.25 전쟁 참전 (1950년 ~ 1952년)
1950년 2월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항공사에 취직했다. 6.25 전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한국에 파견되자, 그는 미국 공군 군종장교 군목의 통역관으로 한국에 들어와 1952년 휴전 때까지 활동했으며, 미 공군 군목의 한국 전쟁 고아 구호사업을 지원하였다.
2.3. 다시 미국 유학과 귀국 (1952년 ~ 1963년)
1952년 1월 윌리엄 쇼(William Show) 박사의 추천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하고, 1953년 같은 웨슬리언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였다. 1955년 웨슬리언 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서대문구 출신이자 성결교회 목사의 아들이었던 최희창을 만나 서울에서 결혼하였고, 1957년 웨슬리언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남편 최희창이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의 인류학 강사로 채용되어 1963년까지 강의하였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같은 웨슬리언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전공하여 196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이름은 앨리스 윤이었으며,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앨리스 최로 이름을 바꾸었다.
2.4. 하와이 정착과 여성학 연구 (1963년 ~ 2011년)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마노아에 정착하였다.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강사로 임명되어 하와이대 동서 문화 센터(East West Center)와 여성학 프로그램을 맡아보았다. 1975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교수가 되었다. 하와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결혼제도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한편, 하와이대학교에 처음으로 여성학과 신설을 추진하여 성사시켰다. 강의 활동 외에도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을 연구하였으며, 미국 내에 한국인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켰고, 미국으로 오는 한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처우 개선 문제 해결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불법체류로 낙인찍히는 미국 내 아시아계 결혼이주여성의 권익 보호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하와이 결혼이주여성옹호회 자문역으로도 위촉되었다. 그 밖의 활동으로는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교회의 권사로 활동하였다.
2011년 5월 9일 하와이주 Manoa Cottage care home 양로원에서 사망하였다. 장례 예배는 5월 11일 오전 10시~11시,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성 키아모쿠 거리 1639번지에 있는 크리스트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에서 거행되었다.
2.5. 사망
앨리스 최(Alice Choe영어)는 2011년 5월 9일 하와이주 Manoa Cottage care home 양로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장례 예배는 5월 11일 오전 10시~11시,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성 키아모쿠 거리 1639번지에 있는 크리스트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에서 거행되었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증조부 | 윤영렬 | 1854년 ~ 1939년 |
| 조부 | 윤치오 | 1869년 ~ 1950년 |
| 조모 | 이숙경(李淑卿) | 1869년 ~ 1906년, 이경숙(李敬淑)으로도 불림 |
| 고모 | 윤시선 | |
| 삼촌 | 윤승선 | 1904년 ~ 1966년 |
| 계조모 | 윤고려 | 1891년 ~ 1913년, 윤고라로도 불림 |
| 계조모 | 현송자 | 1899년 ~ 1978년, 현영운과 배정자의 딸, 윤치오와 이혼 |
| 이복 삼촌 | 윤영선 | 1922년 ~ ? |
| 부 | 윤일선 | 1896년 ~ 1987년 |
| 모 | 조마구례(趙瑪玖禮) | 1901년 ~ 2003년, 조영숙(趙榮淑) 또는 Margaret Young Sook Cho로도 불림 |
| 동생 | 윤석구 | 1929년 -, 미국 사지노 대학 물리학과 교수 |
| 동생 | 윤탁구 | 1932년 -, 의사, 원자력 병원장 역임 |
| 동생 | 윤종구 | 1933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교수 |
| 동생 | 윤용구 | 1937년 - |
| 여동생 | 윤용구 | 1929년 - |
| 남편 | 최희창(崔熙暢) | Hichang Chai, 공학박사, 연세대학교 교수, 하와이 대학교 교수, 2001년 사망 |
| 아들 | 최문기(崔文基) | 1960년 -, 변호사 |
| 며느리 | 메리 루(Mary Loo) | |
| 손자 | 최선일 | 영문명 리키(Ricky) |
| 손녀 | 최선윤 | 영문명 줄리에(Julie) |
| 아들 | 최승기(崔勝基) | 1961년 -, 사회학자, 아리조나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 며느리 | 이혜련 | |
| 손자 | 최선영 | 영문명 알렉산더(Alexander) |
| 손녀 | 최선우 | 영문명 마들레네(Madeleine) |
| 딸 | 최윤기(崔潤基) | 1966년 - |
| 사위 | 코지 타니야마 | |
| 외손자 | 레오나르도 신이치(Leonardo Shinichi) | |
| 시아버지 | 최성모(崔聖模) |
4. 기타
그의 계조모 윤고려는 본래 성이 김씨였는데, 서양식대로 남편을 따라 윤씨로 성을 바꾸었다. 윤영구는 그의 8촌 오빠가 되며,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교육자 윤치호는 재종조부가 된다.
5. 학문적 업적 및 사회 활동
(결과물이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