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보
1. 개요
윤은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68년에 태어나 1544년에 사망했다. 1494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교를 시작으로 사관, 지평, 장령, 집의, 정언 등을 역임하며 언관으로 활동했다. 1506년에는 춘추관 편수관으로 《연산군일기》 편찬에 참여했으며, 이후 대마도 경차관, 경상도 암행어사 등을 거쳐 이조참판,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535년 우의정, 1537년 좌의정을 거쳐 1542년 영의정에 올랐고, 1543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사후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591년 광국원종공신 2등에 추서되었다.
| 원어명 | 尹隱輔 |
|---|
| 본관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
| 자 | 자고(子固) |
| 호 | 탄옹(炭翁) |
| 출생일 | 1667년 1월 25일 |
|---|---|
| 사망일 | 1741년 12월 24일 (향년 74세) |
| 아버지 | 윤순거 |
|---|---|
| 어머니 | 남양 홍씨 |
| 부인 | 정부인 여흥 민씨 계부인 파평 윤씨 |
| 주요 관직 | 이조판서 대사헌 지경연사 |
|---|---|
| 봉호 | 증 영의정 |
| 시호 | 충정(忠正) |
|---|---|
| 배향 사우 | 충렬사 숭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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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년 사망 -
윤휘
윤휘는 1577년에 태어나 1644년에 사망한 조선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전후 사관과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광해군 시대에 중립 외교를 지지했으며, 인조반정 이후 외교 활동을 담당하다 병자호란 때 강화 교섭을 이끌었고, 최종적으로 형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1544년 사망 -
마거릿 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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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년 출생 -
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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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년 출생 -
박용 (1468년)
박용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태종 때 권신 박은의 증손이며, 음직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돈녕부정에 올랐고, 사후 우의정과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송설체에 능통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일생
149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검교에 임명되었고 1497년, 사관으로 승진하였으나 신위판을 실수로 떨어트려 장을 맞고 유배되었다가 1498년, 다시 지평, 장령, 집의를 지내고 정언까지 지냈으며 1506년, 춘추관편수관으로 <<연산군일기>>의 편찬에 참가하고 1509년, 대마도 경차관으로 임명되고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했으며 1513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가서 경상도의 방수 문제를 점검하고 이어서 직제학, 부제학, 대사간을 역임하고 1519년, 이조참판으로 반정공신의 녹훈 개정을 주장했으며 1521년, 대사헌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하고 1521년, 공조판서로 강원도 양전순찰사로 파견되었으며 이어 예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529년, 지중추부사로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과 병조판서, 호조판서를 거쳐 우찬성, 좌찬성을 역임하고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 1543년, 기로소로 들어갔다.
1591년(선조 24) 광국원종공신 2등에 추서되었다.
2.1. 초기 생애
윤은보(尹殷輔)는 1468년(예종 원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윤훤(尹萱)이며, 어머니는 부안 김씨(扶安 金氏)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성리학적 소양을 쌓았다.
2.2. 관직 진출
윤은보는 1494년(성종 2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검교(承文院 檢校)에 임명되었다. 1497년(연산군 3년) 사관(史官)으로 승진하였으나, 신위판을 실수로 떨어뜨린 죄로 유배되었다. 1498년(연산군 4년) 복직되어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정언(正言) 등을 역임하며 언관(言官)으로 활동하였다.
2.3. 중종반정과 정치 활동
윤은보는 1494년(성종 2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검교에 임명되었고, 1497년(연산군 3년) 사관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신위판을 실수로 떨어트려 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1498년(연산군 4년) 다시 지평, 장령, 집의를 지내고 정언까지 지냈다. 1506년(중종 원년) 춘추관 편수관으로 <<연산군일기>>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9년(중종 4년) 대마도 경차관으로 임명되어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담당하였다.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13년(중종 8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생을 살피고, 방수 문제를 점검하였다. 이후 직제학, 부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하며 왕에게 직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2.4.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
윤은보는 1519년(중종 14년) 이조참판으로서 반정공신의 녹훈 개정을 주장하였다. 이는 훈구 세력의 반발을 샀으나, 왕의 신임을 얻어 추진되었다. 1521년(중종 16년)에는 대사헌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병조참판, 예조참판을 거쳐 같은 해 공조판서로 강원도 양전순찰사로 파견되었다.
2.5. 최고위 관직 역임
윤은보는 예조판서(禮曹判書), 대사헌(大司憲), 이조판서(吏曹判書), 평안도 관찰사(平安道 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529년(중종 24년)에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대사헌(大司憲), 병조판서(兵曹判書), 호조판서(戶曹判書)를 거쳐 우찬성(右贊成), 좌찬성(左贊成)에 올랐다. 1535년(중종 30년) 우의정(右議政)에 제수되었고, 1537년(중종 32년) 좌의정(左議政)으로 승진하였다. 1542년(중종 37년)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75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사를 돌보았다.
2.6. 은퇴와 죽음
1543년(중종 38년),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544년(중종 39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문정(文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591년(선조 24년), 광국원종공신 2등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