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베르너 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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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스 베르너 헨체는 독일의 작곡가로, 1926년 괴터슬로에서 태어나 2012년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 12세에 작곡을 시작하여 하이델베르크 음악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기 전부터 오페라극장에서 반주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헨체는 12음 기법을 초기 작품에 사용했으나, 이탈리아 이주 후 전통적인 양식과 혁신적인 양식을 절충하여 고전적인 선율과 리듬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10곡의 교향곡과 다수의 오페라, 협주곡 등을 작곡했으며, 정치적인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0년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2011년 독일 음악 작가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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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베르너 헨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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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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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6년 7월 1일 |
출생지 | 기ュー터슬로, 독일 |
사망 | 2012년 10월 27일 (향년 86세) |
사망지 | 드레스덴, 독일 |
국적 | 독일 |
직업 | 클래식 음악 작곡가 |
학력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배우자 | 파우스토 모로니 (2007년 사망) |
웹사이트 | Hindemith, Hartmann and Henze |
경력 | |
소속 단체 | 헤센 주립 극장 비스바덴 칸티에레 국제 예술 축제 뮌헨 비엔날레 |
수상 | |
수상 내역 |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프레미움 임페리얼 독일 무용상 |
2. 생애와 작품 활동
한스 베르너 헨체는 1926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괴터슬로에서 태어났다.[15] 12세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며,[15] 하이델베르크 음악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기 전부터 오페라 극장에서 반주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교향곡 제1번으로 두각을 나타내 슈톡하우젠과 함께 독일에서 가장 재능 있는 젊은 작곡가로 인정받았다.
동성애자였던 헨체는 논노처럼 좌익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신좌파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쳐 정치적인 음악도 그의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1953년, 동성애에 대해 불관용적인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 중부 몬테풀차노로 이주했다.
초기에는 12음 기법을 사용한 작품도 있었지만, 이후 전통적인 양식과 혁신적인 양식을 절충하여 무조이면서도 고전적인 선율, 리듬, 오스티나토 등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 10곡의 교향곡 외에도 여러 오페라 작품을 작곡했다. 협주곡, 합창곡, 관악합주곡 등 대규모 편성의 작품이 많고, 소규모 편성의 실내악은 적다.
고령으로 오페라 창작은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의뢰는 계속되었다. 저작권 문제로 분쟁을 겪은 후에는 체스터 출판사에서 신작이 출판되었다. 1990년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2011년 독일 음악 작가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16] 2012년 10월 27일, 작센주 드레스덴의 병원에서 사망했다.[17][18]
2. 1. 초기 (1926-1953)
헨체는 귀터슬로에서 여섯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보수적인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도, 헨체는 1942년 브라운슈바이크 주립 음악학교에서 피아노, 타악기, 이론을 공부했다.[15]제2차 세계 대전 말 징병되어 학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종전 후 1945년 빌레펠트 시립극장의 반주자가 되었고, 194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볼프강 포르트너에게 배우며 공부를 계속했다.
1946년 다름슈타트에서 피아노, 플루트, 현악기를 위한 신바로크 작품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하여 쇼트의 주목을 받았다. 1947년 다름슈타트 현대음악 여름학교에서 음렬 기법으로 전환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십이음 기법을 사용했는데, 1947년의 교향곡 제1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 그 예이다. 1948년 콘스탄츠의 도이처 극장에서 음악 조교가 되었고,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번째 오페라 Das Wundertheater|기적의 극장de이 만들어졌다.
1950년 비스바덴의 헤세 주립극장에서 발레 지휘자가 되었고, 라디오를 위한 두 편의 오페라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그리고 전통적인 마농 레스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재즈풍 오페라 ''대로의 고독''과 같은 주목할 만한 첫 번째 무대 작품을 작곡했다.
2. 2. 이탈리아 이주와 창작 활동 (1953-1976)
헨체는 1953년 동성애 혐오와 당시 독일의 전반적인 정치적 분위기에 반발하여 독일을 떠났다. 그의 출판사인 쇼트(Schott's)는 작곡에 집중하도록 지휘직을 그만둘 조건으로 헨체에게 인세 선급금을 제공했다.[2] 이러한 재정적 지원 덕분에 헨체는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나폴리 만의 이스키아섬에 정착했는데, 같은 섬에는 작곡가 윌리엄 월턴과 그의 아내 수사나 월턴도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은 젊은 독일 작곡가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1955년 헨체의 관현악곡 《네 개의 시(Quattro poemi)》는 그가 다름슈타트 전위파의 원칙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1956년 1월 그는 이스키아를 떠나 본토인 나폴리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카를로 고치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사슴 왕(König Hirsch)》과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본(libretto)을 사용한 발레 《춤의 마라톤(Maratona di danza)》의 논란이 많은 초연으로 인해 더 큰 실망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시인 인게보르크 바흐만과 오랜 시간 동안 풍성한 창작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그는 바흐만과 함께 대본 작가로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훔볼트 왕자(Der Prinz von Homburg)》(1958)와 빌헬름 하우프를 바탕으로 한 《젊은 영주(Der junge Lord)》(1964), 그리고 《세레나데와 아리아》(1957)와 《합창 환상곡》(1964)을 작곡했다.그는 나폴리에 도착한 직후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를 위해 《나폴리 가곡 다섯 곡(Five Neapolitan Songs)》을 작곡했다. 이후 그리스에서의 체류는 벤저민 브리튼에게 헌정되었고 테너 피터 피어스, 기타리스트 줄리안 브림과 8명의 멤버로 구성된 실내악단에 의해 초연된 프리드리히 휠덜린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 《실내악 1958(Kammermusik 1958)》을 완성할 기회를 제공했다.[3][4]
헨체는 1961년 로마 남쪽 티베르강이 내려다보이는 마리노 언덕에 있는 외딴 별장 '라 레프라라(La Leprara)'로 이사했다. 이 시기는 목소리를 포함하는 음악에 대한 강한 기울기를 보여주는 시기이기도 했다.
1962년부터 1967년까지 헨체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작곡 마스터클래스를 가르쳤고, 1967년에는 뉴햄프셔주의 다트머스 대학교의 방문 교수가 되었다. 그의 가장 큰 성공 중 하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바카이데스(Die Bassariden)》의 초연이었다.
이후 그는 정치적 참여를 크게 강화했는데, 이는 그의 음악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함부르크에서 그의 오라토리오 《메두사의 뗏목(Das Floß der Medusa)》의 초연은 서베를린의 협력자들이 체 게바라의 초상화 아래서 공연을 거부하고 무대에 혁명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5] 그의 정치적 신념은 그의 교향곡 제6번(1969),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1971), 《목소리들(Voices)》(1973), 그리고 쿠바 작가 미구엘 바르넷의 책을 바탕으로 한 낭독과 실내악을 위한 그의 작품 《엘 시마론(El Cimarrón)》(탈출한 흑인 노예들에 대한 쿠바 식민 시대 이야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2. 3. 확고한 작곡가로서의 활동 (1976-2012)
헨체의 정치적 비판은 1976년 오페라 강으로 가는 길 (We Come to the River) 초연으로 정점에 달했다.[6]같은 해 헨체는 새로운 음악을 장려하기 위해 몬테풀차노에 칸티에레 인터나치오날레 달르테 (Cantiere Internazionale d'Arte)를 설립했으며, 1980년에는 그의 어린이 오페라 "폴리치노(Pollicino)"가 초연되었다.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쾰른 음악학교에서 작곡 수업을 이끌었다. 1981년에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에 묄르츠탈 워크숍을 설립했고, 1984년에는 같은 지역에 도이칠란트스베르크 청소년 음악 축제를 설립했다. 1988년에는 "국제 신음악극 축제"인 뮌헨 비엔날레를 설립하고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6]
그의 오페라들은 다시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변모했는데, 영국 고양이 (The English Cat)(1983)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고고의 영광(午後の栄光, Gogo no Eiko)"을 바탕으로 한 배신당한 바다 (Das verratene Meer)(1990) 등이 대표적이다.[6]
후기 작품들은 논란의 여지가 적었지만,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참여를 계속했다. 레퀴엠 (헨체) (Requiem)(1990-93)은 피아노, 트럼펫,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9개의 '성스러운 협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런던 신포니에타 예술 감독이었던 마이클 바이너 (Michael Vyner)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독일 반파시즘의 영웅과 순교자들"에게 헌정된 합창 교향곡 9번 (헨체) (Symphony No. 9)(1997)은 안나 제거스 (Anna Seghers)의 소설 일곱 번째 십자가 (The Seventh Cross)의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스-울리히 트라이헬 (Hans-Ulrich Treichel)이 쓴 대본에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헨체 자신이 젊은 시절 경험했던 나치즘에 대한 거부이다. 200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오페라 업푸파와 아들에 대한 사랑의 승리 (L'Upupa und der Triumph der Sohnesliebe)(영어: The Hoopoe and the Triumph of Filial Love)는 시리아 동화를 바탕으로 헨체가 직접 쓴 대본을 사용한 그의 마지막 성공작이다. 다른 후기 작품으로는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꿈속의 세바스찬 (Sebastian im Traum)(2004)과 오페라 페드라 (오페라) (Phaedra)(2007)이 있다.[6]
헨체는 1960년대 초부터 파트너인 파우스토 모로니와 함께 살았으며, 모로니는 라 레프라라 주변의 언덕 경사면 정원을 계획하고 조성했다. 모로니는 헨체가 심한 신경 쇠약을 겪어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음식을 먹도록 권유해야 할 정도였을 때 그를 돌보았다. 2007년, 헨체가 갑작스럽게 회복된 직후 모로니는 오랜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대형 오케스트라와 헨체 자신의 라틴어 텍스트를 부르는 합창을 위한 "엘로기움 무지쿰(Elogium Musicum)"(2008)은 40년 이상 함께한 파트너를 기리는 추모곡이다.[6]
1995년 헨체는 베스트팔렌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이 상은 2001년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발터 핑크 (Walter Fink)의 초청으로 2000년 라인가우 음악 축제 (Rheingau Musik Festival)의 연례 라인가우 음악 축제#살아있는 작곡가 초상 (Komponistenporträt)에서 소개된 10번째 작곡가였지만, 질병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레퀴엠도 포함되었다. 2004년 11월 7일, 뮌헨 국립 음대 (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München)(뮌헨 음악 및 공연 예술 대학교)에서 명예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런던의 왕립 음악원 (Royal Academy of Music) 명예 회원이 되었다.[6] 1998년에는 자서전 "보헤미안 5도(Bohemian Fifths)"의 영어판이 출판되었다.[7]
헨체가 사망하기 직전, 도널드 맥클리오드는 BBC 라디오 3 시리즈 한 주의 작곡가 (Composer of the Week)를 위해 그와 인터뷰를 했다(약 2010년 방송, 헨체 작품의 녹음 포함). 2023년 이 인터뷰의 발췌문은 프로그램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시리즈에서 재방송되었다.[8]
2012년 10월 27일 드레스덴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9]
3. 주요 작품
헨체의 음악은 신고전주의, 재즈, 12음 기법, 렬렬주의 등 다양한 스타일을 포함하며, 록이나 대중음악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그는 경력 초기에 무조음악을 공부했지만,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후 나폴리풍 스타일로 변화했다. 그의 오페라 ''사슴왕''(König Hirsch)은 풍부하고 화려한 질감을 담고 있으며, 1957년 프레더릭 애슈턴의 ''온딘''을 위해 작곡한 발레 음악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온딘''에는 멘델스존과 베버의 영향 외에도 재즈와 스트라빈스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뿐만 아니라 ''봄의 제전''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도 포함한다. 반면 ''마라토나 디 단자''는 무대 위 밴드를 포함하여 재즈 요소를 더 긴밀하게 통합했다. 헨체는 헤세 주립극장 바이스바덴의 발레 고문으로 일했던 초기 경험에서 발레 음악에 대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칸타타 ''실내악''(1958, 개정 1963)은 질감이 더 거칠다. 헨체는 ''반음악''에서 무조음악으로 돌아왔고, 이후 다른 스타일들이 다시 중요해졌다.
3. 1. 오페라
헨체는 경력 초기에 무조음악을 공부했지만,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후 그의 음악은 나폴리풍 스타일로 변했다. 그의 오페라 ''사슴왕(König Hirsch)''에는 풍부하고 화려한 질감이 담겨 있다.다음은 헨체의 오페라 목록이다.
제목 | 원제 | 작곡 연도 | 초연 연도 | 비고 |
---|---|---|---|---|
기적의 극장 | Das Wundertheater | 1948년 | 1949년 | |
고독한 거리 | Boulevard Solitude | 1951년 | 1952년 | |
시골 의사 | Ein Landarzt | 1951/94년 | 1965년 | 라디오 오페라(1951/94), 무대 버전(1964년 작곡) |
세상의 종말 | Das Ende einer Welt | 1953/93년 | 1965년 | 라디오 오페라(1953/93), 무대 버전(1964년 작곡) |
사슴왕 | König Hirsch | 1952-55년 | 1956년 | 1962년 개정하여 『사슴 왕 또는 진실의 방황』(Il re cervo oder Die Irrfahrten der Wahrheit)으로 1963년 초연 |
호엔브르크 공작 | Der Prinz von Homburg | 1958년 | 1960년 | 1991년 재관현악 |
젊은 연인들을 위한 엘레지 | Elegie für junge Liebende | 1959-61년 | 1961년 | 1987년 개작 |
바카스의 여사제들 | The Bassarids - Die Bassariden | 1964-65년 | 1966년 | |
젊은 귀족 | Der junge Lord | 1964년 | 1965년 | |
도덕극 | Moralities | 1967년 | 1968년 | 1970년 개작 |
나타샤 웅게호이어의 집으로 가는 험난한 길 | Der langwierige Weg in die Wohnung der Natascha Ungeheuer | 1971년 | ||
쿠바나, 또는 예술을 위한 삶 | La Cubana, oder Ein Leben für die Kunst | 1973년 | 1974년 | 실내악 버전 『작은 쿠바나』(La piccola Cubana) 1990-91 |
우리는 강에 이른다 | We Come to the River (Wir erreichen den Fluss) | 1974-76년 | 1976년 | |
엄지공주 | Pollicino | 1979-80년 | 1980년 | |
故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 Il ritorno d'Ulisse in patria | 1981년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작품(H.W.헨체의 자유로운 재구성) | |
영국의 고양이 | The English Cat (Die englische Katze) | 1980-83년 | 1983년 | 1990년 개작 |
배신당한 바다 | Das verratene Meer | 1986-89년 | 1990년 | 미시마 유키오 「오후의 견인」 원작, 한스-울리히 트라이헬 대본, 2차 개작(2003년 초연), 3차 개작(2005년, 2006년 초연) |
베네치아의 테오도로 왕 | Il re Teodoro in Venezia | 1991-92년 | 1992년 | 조반니 파이지엘로 작품에 기반, 데이비드 그레이엄과 공동 작업 |
비너스와 아도니스 | Venus und Adonis | 1993-95년 | 1997년 | 한스-울리히 트라이헬 대본 |
후투티와 아들의 사랑의 승리 | L'Upupa und der Triumph der Sohnesliebe | 2000-03년 | 2003년 |
3. 2. 교향곡
헨체의 음악에는 신고전주의, 재즈, 12음 기법, 렬렬주의를 비롯하여 일부 록 또는 대중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경력 초기에 무조음악을 공부했지만,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후 그의 음악은 나폴리풍 스타일로 상당히 변했다. 그의 오페라 ''사슴왕''("König Hirsch")에는 풍부하고 화려한 질감이 담겨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57년에 완성된 영국의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의 ''온딘''을 위해 작곡한 화려한 발레 음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멘델스존과 베버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온딘''의 음악에는 일부 재즈가 포함되어 있으며 스트라빈스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뿐만 아니라 ''봄의 제전''의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도 마찬가지다. 반면 그의 ''마라토나 디 단자''는 무대 위 밴드를 포함하여 재즈 요소를 훨씬 더 긴밀하게 통합해야 했는데, 이는 보다 낭만적인 ''온딘''과는 매우 달랐다. 헨체는 헤세 주립극장 바이스바덴의 발레 고문으로 일했던 초기 경험에서 발레 음악에 대한 많은 자극을 받았다.칸타타 ''실내악''(1958, 개정 1963)의 질감은 훨씬 더 거칠다. 헨체는 ''반음악''에서 무조음악으로 돌아왔고, 나중에 위에서 언급한 다른 스타일들이 그의 음악에서 다시 중요해졌다.
제목 | 연도 |
---|---|
교향곡 제1번 | 1947 |
교향곡 제2번 | 1949 |
교향곡 제3번 | 1950 |
교향곡 제4번 | 1955 |
교향곡 제5번 | 1962 |
교향곡 제6번 | 1971 |
교향곡 제7번 | 1984 |
교향곡 제8번 | 1993 |
교향곡 제9번 | 1997 |
교향곡 제10번 | 2000 |
3. 3. 그 외 작품
헨체의 음악은 신고전주의, 재즈, 12음 기법, 렬렬주의를 포함하며, 일부 록 또는 대중음악적 요소도 보인다. 그는 경력 초기에 무조음악을 공부했지만,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후 나폴리풍 스타일로 변화했다. 오페라 ''사슴왕''(König Hirsch)은 풍부하고 화려한 질감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1957년 프레더릭 애슈턴의 ''온딘''을 위해 작곡한 발레 음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온딘''에는 멘델스존과 베버의 영향 외에도 재즈와 스트라빈스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이는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뿐만 아니라 ''봄의 제전'' 작곡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도 포함한다. 반면 ''마라토나 디 단자''는 무대 위 밴드를 포함하여 재즈 요소를 더 긴밀하게 통합했다. 헨체는 헤세 주립극장 바이스바덴의 발레 고문으로 일했던 초기 경험에서 발레 음악에 대한 많은 자극을 받았다.칸타타 ''실내악''(1958, 개정 1963)은 질감이 더 거칠다. 헨체는 ''반음악''에서 무조음악으로 돌아왔고, 이후 다른 스타일들이 다시 중요해졌다.
- 원래는 금관악기 합주를 위한 곡이었으나, 제자인 마르셀 벵글러(Marcel Wengler)가 관악합주를 위해 편곡했다.
4. 수상 경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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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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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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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piegel.d[...]
Piper-Ver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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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am.ac.uk[...]
Royal Academy of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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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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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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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Famed German composer Hans Werner Henze dies
https://www.bbc.co.u[...]
2012-10-27
[10]
웹사이트
Siemens kehrt als Sponsor zu musikalischer Vergangenheit und Deutscher Grammophon zurück
https://www.swr.de/s[...]
2023-12-3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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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zeichnung: "Praemium Imperiale" für Hans Werner Henze
https://www.spiegel.[...]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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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r Tanzpreis an Hans Werner Henze
https://www.tanznetz[...]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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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k: Komponist Hans Werner Henze gestorben
https://www.zeit.de/[...]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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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ze, Hans Werner
https://www.wiesbade[...]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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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ドイツを代表する作曲家、ハンス・ヴェルナー・ヘンツェ氏死去 世界文化賞受賞
https://web.archive.[...]
産業経済新聞社
20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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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r Musikautorenpreis
https://www.musikaut[...]
2022-08-18
[17]
뉴스
Famed German composer Hans Werner Henze dies
http://www.bbc.co.uk[...]
BBC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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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島小説のオペラ化も…独作曲家ヘンツェ氏死去
http://www.yomiuri.c[...]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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