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칸
1. 개요
임란 칸은 파키스탄의 전 크리켓 선수이자 정치가이다.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며 파키스탄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1992년 크리켓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파키스탄 정의 운동(PTI)을 창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8년 파키스탄 총선에서 승리하여 제22대 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경제 개혁, 사회 정책, 코로나19 대응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2022년 불신임 투표로 실각했다. 이후 여러 차례 체포, 유죄 판결, 항소, 재체포를 겪으며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 이름 | 임란 아흐마드 칸 니아지 |
|---|---|
| 원어 이름 | عمران احمد خان نیازی우르두어 |
| 로마자 표기 | Imran Ahmad Khan Niazi |
| 별칭 | 캡틴 (Kaptaan) 죄수 번호 804 (Qaidi No. 804) |
| 출생일 | 1952년 10월 5일 |
| 출생지 | 라호르, 파키스탄 서펀자브 주(현재의 펀자브 주, 파키스탄) |
| 거주지 | 바니 갈라, 이슬라마바드, 수도권 자만 파크, 라호르, 펀자브 |
| 국적 | 파키스탄 |
| 정당 | 파키스탄 테흐리크-에-인사프 (1996년부터) |
| 배우자 | 제미마 골드스미스 (1995년 5월 16일 결혼, 2004년 6월 22일 이혼) 레함 칸 (2015년 1월 결혼, 2015년 10월 이혼) 부시라 비비 (2018년 2월 결혼) |
| 자녀 | 2명 |
| 친척 | 임란 칸 가족 참고 |
| 학력 | 케블 칼리지, 옥스퍼드 (문학사) |
| 수상 | 수상 목록 참고 |
| 서명 | {"image_file":"Imran_Khan_signature.svg"} |
| 제19대 파키스탄 총리 | 재임 시작: 2018년 8월 18일 재임 종료: 2022년 4월 10일 대통령: 맘눈 후세인 아리프 알비 전임: 나시르울 물크 (임시) 후임: 셰바즈 샤리프 |
|---|---|
| 파키스탄 테흐리크-에-인사프 의장 | 재임 시작: 1996년 4월 25일 재임 종료: 2023년 12월 2일 전임: 직책 신설 후임: 고하르 알리 칸 |
| 파키스탄 국회의원 | 재임 시작: 2018년 8월 13일 재임 종료: 2022년 10월 21일 전임: 오바이드울라 샤디켈 선거구: NA-95 미안왈리-I 다수 득표: 113,523표 (44.89%) |
| 재임 시작: 2013년 6월 19일 재임 종료: 2018년 5월 31일 전임: 하니프 압바시 후임: 셰이크 라시드 샤피크 선거구: NA-56 라왈핀디-VII 다수 득표: 13,268표 (8.28%) | |
| 재임 시작: 2002년 10월 10일 재임 종료: 2007년 11월 3일 전임: 선거구 신설 후임: 나와브자다 말리크 아마드 칸 선거구: NA-71 미안왈리-I 다수 득표: 6,204표 (4.49%) | |
| 브래드포드 대학교 총장 | 재임 시작: 2005년 12월 7일 재임 종료: 2014년 12월 8일 전임: 베티 록우드 후임: 케이트 스완 |
| 신장 | 6 피트 2 인치 |
|---|---|
| 타격 스타일 | 우타 |
| 투구 스타일 | 우완 속구 |
| 역할 | 올라운더 |
| 국제 경기 출전 여부 | 예 |
| 국제 경기 출전 기간 | 1971년 ~ 1992년 |
| 데뷔일 | 1971년 6월 3일 |
|---|---|
| 데뷔 상대 | 잉글랜드 |
| 마지막 경기일 | 1992년 1월 2일 |
| 마지막 경기 상대 | 스리랑카 |
| 경기 수 | 88 |
| 득점 | 3,807 |
| 타율 | 37.69 |
| 100점/50점 횟수 | 6/18 |
| 최고 득점 | 136 |
| 투구 수 | 19,458 |
| 위켓 수 | 362 |
| 투구 평균 | 22.81 |
| 5위켓 달성 횟수 | 23 |
| 10위켓 달성 횟수 | 6 |
| 최고 투구 기록 | 8/58 |
| 캐치/스텀핑 | 28/– |
| 데뷔일 | 1974년 8월 31일 |
|---|---|
| 데뷔 상대 | 잉글랜드 |
| 마지막 경기일 | 1992년 3월 25일 |
| 마지막 경기 상대 | 잉글랜드 |
| 경기 수 | 175 |
| 득점 | 3,709 |
| 타율 | 33.41 |
| 100점/50점 횟수 | 1/19 |
| 최고 득점 | 102* |
| 투구 수 | 7,461 |
| 위켓 수 | 182 |
| 투구 평균 | 26.61 |
| 5위켓 달성 횟수 | 1 |
| 10위켓 달성 횟수 | 0 |
| 최고 투구 기록 | 6/14 |
| 캐치/스텀핑 | 36/– |
| 경기 수 | 382 |
|---|---|
| 득점 | 17,771 |
| 타율 | 36.79 |
| 100점/50점 횟수 | 30/93 |
| 최고 득점 | 170 |
| 투구 수 | 65,224 |
| 위켓 수 | 1,287 |
| 투구 평균 | 22.32 |
| 5위켓 달성 횟수 | 70 |
| 10위켓 달성 횟수 | 13 |
| 최고 투구 기록 | 8/34 |
| 캐치/스텀핑 | 117/– |
| 경기 수 | 425 |
|---|---|
| 득점 | 10,100 |
| 타율 | 33.22 |
| 100점/50점 횟수 | 5/66 |
| 최고 득점 | 114* |
| 투구 수 | 19,122 |
| 위켓 수 | 507 |
| 투구 평균 | 22.31 |
| 5위켓 달성 횟수 | 6 |
| 10위켓 달성 횟수 | 0 |
| 최고 투구 기록 | 6/14 |
| 캐치/스텀핑 | 84/– |
| ICC 크리켓 월드컵 | 1992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우승 |
|---|---|
| 월드 챔피언십 오브 크리켓 | 1985 오스트레일리아: 준우승 |
| ACC 아시아 컵 | 1986 스리랑카: 준우승 |
| 오스트랄-아시아 컵 | 1986 아랍에미리트: 우승 1990 아랍에미리트: 우승 |
| 부의장 | 샤 마무드 쿠레시 |
|---|---|
| 명예 칭호 | HI PP FRCPE |
-
파키스탄의 크리켓 선수 -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의 정치인이자 사업가인 나와즈 샤리프는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N의 지도자로서 총리를 세 차례 역임하며 파키스탄 현대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경제 자유화와 핵무기 실험을 단행했으나 파나마 문서 사건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
파키스탄의 스포츠인 출신 정치인 -
자파룰라 칸 자말리
자파룰라 칸 자말리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파키스탄의 총리를 역임한 발루치스탄 출신 정치인으로, 파키스탄인민당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총리에 올랐으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사임 후 여러 정당에서 활동하다 2020년 사망했다. -
파키스탄의 평화주의자 -
압둘 사타르 에디
압둘 사타르 에디는 파키스탄의 저명한 인도주의자이자 사회 운동가, 자선가로서 에디 재단을 설립하여 파키스탄 복지 시스템 구축에 기여하고 라몬 막사이사이상, 레닌 평화상 등 다수의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
파키스탄의 평화주의자 -
칸 압둘 가파르 칸
칸 압둘 가파르 칸은 '변경의 간디'로 불리는 파슈툰족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평화주의 지도자로, 쿠다이 키드마트가르 운동을 통해 비폭력 저항을 이끌며 파슈툰족의 권익을 옹호하고 인도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2. 크리켓 경력
임란 칸은 16세의 나이로 라호르에서 크리켓 1종 경기에 데뷔했다. 1970년대 초, 라호르 A, 라호르 B, 라호르 그린, 라호르 등 홈팀에서 뛰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블루스 크리켓 팀의 일원이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우스터셔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서식스에서 잉글랜드 카운티 크리켓 경기를 했다.
투수로서 칸은 처음에는 중간 속도로 투구했으나, 이후 속구를 위해 동작을 개조하고 몸을 강화했다. 1970년대 후반, 역스윙 투구 기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1971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테스트 크리켓에 데뷔했고, 3년 후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경기에도 데뷔했다. 1976년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국가대표팀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서인도 제도를 순회하며 케리 패커의 월드 시리즈 크리켓에 영입되기도 했다. 1978년 퍼스에서 열린 속구 대회에서 139.7km/h로 3위를 차지하며 세계 정상급 투수로 인정받았다.
칸은 75경기 만에 올라운더 트리플(3000점과 300위켓)을 달성했는데, 이는 이안 보섬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타격 순서 6번에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타율 61.86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2년 스리랑카와의 마지막 테스트 경기를 치렀고, 1992 크리켓 월드컵 결승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테스트 크리켓에서 3807점, 362위켓, ODI에서 3709점, 182위켓을 기록했다.
2.1. 국가대표팀 주장 (1982-1992)
1982년, 칸은 30세의 나이로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그는 주장으로서 48번의 테스트 크리켓 경기에 출전하여 파키스탄의 14승 8패 26무를 이끌었다. 또한 139번의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경기에 출전하여 77승 57패 1무를 기록했다. 1987년 크리켓 월드컵 이후 은퇴했다가 1988년에 복귀하여, 1992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파키스탄의 사상 첫 우승을 이끌고 은퇴했다.
3. 은퇴 후 활동
1992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후, 임란 칸은 1996년 파키스탄 정의운동을 창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파키스탄 국민의회 하원 의원을 지냈으며, 크리켓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자선가로서 1996년 쇼카트 하눔 기념 병원 설립을 지원했고, 2008년에는 나말 대학교 설립에도 자금을 투자했다.
2021년 3월 18일, 칸은 중국산 시노팜 코로나19 백신(BBIBP-CorV) 1차 접종을 받았으나, 이틀 후인 3월 20일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3.1. 자선 사업
1990년대 동안 칸은 유니세프 스포츠 특별 대표로 활동하며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태국에서 건강과 예방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1991년 그의 어머니 샤우카트 카눔 여사의 이름을 딴 자선 단체인 샤우카트 카눔 메모리얼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이 신탁을 통해 칸은 전 세계에서 25가 넘는 기부와 기금을 모금하여 파키스탄 최초이자 유일한 암 병원을 건립했다. 2008년에는 나말 대학교 설립에도 자금을 투자했다.
3.2. 정치 활동
1996년 파키스탄 정의운동을 창당하고 당수에 취임했으며, 파키스탄 국민의회 하원 의원을 지냈다. 2018년 7월 25일 실시된 총선에서 창당 22년 만에 제1당으로 도약했다. 같은 해 7월 30일 소수 정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의 협력을 통해 차기 총리 취임이 확실시되었고, 8월 17일 국민의회 하원에서 총리로 선출되어 이듬날인 18일 취임 선서식을 거행했다.
2019년 9월 미국을 방문하여 9월 27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카슈미르 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인접국(인도)의 1/7 규모 국가의 선택지는 항복하거나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뿐이라며 핵무기 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총리 취임 후 외화 준비금 고갈과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비판이 고조되었고, 2022년 4월 야당이 하원에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여당 일부도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가결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친(親)칸 하원 의장이 표결 직전에 이를 부결시켰다. 칸은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4월 3일 의회는 해산되었지만, 야당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4월 7일 대법원은 의회 해산을 위헌으로 판결했고, 4월 10일 내각 불신임 결의안 표결이 실시되어 찬성 다수로 가결됨에 따라 칸은 즉시 실직했다. 칸은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중국에 대한 외교 정책적 입장을 이유로 야당이 미국과 결탁하여 자신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실직 후에도 TV 프로그램 출연 등 활동을 계속했지만, 규제 당국으로부터 혐오 발언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고 TV 생방송 프로그램 출연이 금지되었다. 2022년 8월 22일에는 집회 연설에서 경찰과 사법 당국을 위협하여 직무를 방해한 혐의로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10월 21일에는 총리 재직 시절 외국 요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5년간 공직 취임을 금지당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11월 3일에는 집회에서 발밑을 저격당해 부상을 입었다.
2023년 5월 9일, 총리 재임 중 영국이 압류한 파키스탄 부동산 재벌의 자산 반환에 편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칸의 아내가 설립하는 대학을 위해 토지 기부를 받은 뇌물 수수 혐의로 이슬라마바드 법원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달 11일 대법원은 체포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석방을 명령했다.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은 2주간의 석방을 허가했고, 칸은 12일 석방되었다. 또한 법원은 당국에 15일까지는 어떤 혐의로든 체포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8월 5일, 뇌물 수수 혐의로 이슬라마바드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총리 재임 중 해외 요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무단으로 매각하여 이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달 29일,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고 보석도 허가했다. 그러나 곧바로 총리 재임 중 외교 전문 내용을 공개한 의혹이 제기되어, 공직 비밀 유지법 위반 혐의 수사로 다시 체포되어 10월 23일 기소되었다.
2024년 1월 30일, 특별 법정은 국가 기밀을 유출한 죄로 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듬날 31일에는 외국 요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불법으로 매각한 죄로 징역 14년을 추가로 선고했다. 2월 3일,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정한 재혼 금지 기간을 위반하여 현 부인과 결혼한 죄로, 칸과 그의 부인에게 각각 징역 7년과 벌금 500000PKR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6월 3일, 고등법원은 국가 기밀 유출 혐의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7월 14일에는 재혼 금지 기간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4. 총리 재임 (2018-2022)
임란 칸은 2018년 8월 17일 취임 선서식 후 파키스탄 제22대 총리가 되었다. 그는 총리직 첫 100일 계획에서 지배 구조 개혁, 경제 개발, FATA와 카이버 푸크툰크와주의 통합, 국가 안보 강화에 초점을 맞춘 야심찬 계획을 제시했다.
칸은 총리 직원 수를 524명에서 2명으로 감축하고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을 유지하는 등 감축 정책을 발표했다. 그의 정부는 총리실에서 이전에 구입했던 방탄 차량 4대, 헬리콥터 4대, 물소 8마리를 경매에 부쳤다.
임란 칸 정부는 대규모 내각 개편을 단행했으며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2019년 10월 발표된 세계은행의 '2020년 사업 환경 평가(Ease of Doing Business 2020)'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6개의 개혁을 시행하여 순위가 136위에서 108위로 상승했다. 2020년까지 파키스탄의 국제수지가 개선되었고, 긴축 조치로 재정 적자가 GDP의 1%로 성공적으로 축소되었으며, 세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키스탄의 경상수지는 2020년 11월 4억 4,7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여 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9년 같은 기간 3억 2,600만 달러 적자와 대조적이다. 파키스탄은 칸 정부 집권 기간 동안 2021년 11월 기준 11.5%의 인플레이션, 세금 인상, 에너지 가격 상승, 파키스탄 루피 가치의 사상 최저치 기록 등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이는 정치적 비판으로 이어졌다.
2020-21 회계연도에 파키스탄의 정보기술(IT) 수출은 47.4% 급증하여 사상 처음으로 20억 달러를 돌파했다. 칸 정부가 실각한 지 몇 주 후, 새 정부는 칸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자산회수부(ARU)를 통해 4,260억 루피를 회수했다는 문서를 공개했다. 칸이 설립한 이 부서는 해외에서 도난당한 자금을 파키스탄으로 송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파키스탄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 중단을 발표하며 파키스탄이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에 임란 칸은 미국이 파키스탄에 제공한 원조는 "미미한" 200억 달러에 불과하며, 파키스탄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7만 5천 명의 사망자와 1,23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반박했다.
국제 무대에서 그는 이슬람혐오증에 대한 노력과 이슬람 협력 기구(OIC)에서의 리더십을 통해 이슬람 통합을 강조했다. 칸은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대리 전쟁 사이에서 중재를 모색한다고 밝혔다.
2019 풀와마 공격 이후,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을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다. 칸은 파키스탄이 이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인도의 보복 공격에 대비하여 군사적 대응을 승인했다. 인도 공군은 파키스탄 영공에 진입하여 2019 발라코트 공습을 감행했지만 목표물을 놓쳤다. 파키스탄 공군은 잠무 카슈미르에서 작전 스위프트 리토트라는 암호명으로 보복 공격을 가하여 인도 공군 MiG-21을 격추하고 조종사 아비난단 바르타만을 전쟁 포로로 사로잡았다. 칸은 평화 제스처와 협상 개시를 위한 조치로 아비난단을 3월 1일에 석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칸은 카슈미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으며, 2019년 8월 인도 정부가 잠무 카슈미르의 특별 지위 폐지를 단행한 후 자치권이 회복될 때까지 인도와의 회담을 거부했다.
2021년 카불 함락 직후, 칸은 탈레반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국에 의해 조만간 인정받아야 하며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23일, 임란 칸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파키스탄 총리가 되었다. 이 방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과 방문 시기가 일치하면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
칸 정부가 축출된 후, 그는 정치 집회에서 러시아 방문이 파키스탄을 위한 할인된 석유와 밀 확보에 대한 논의를 포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석유를 30% 할인, 밀을 2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파키스탄 대사 다닐라 가니치는 2022년 6월 13일 이 주장을 반박하며, 러시아와 파키스탄 사이에 할인된 석유와 밀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나 양해각서(MOU)는 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란 칸이 파키스탄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순위는 하락했다. 파키스탄은 2018년 117위에서 2021년 140위로 떨어졌다.
사회 정책 분야에서 그의 정부는 소수 종교 시설을 복원하고,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개혁했으며, 1억 명에게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Ehsaas Programme(에흐사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칸의 주력 사업이었던 Ehsaas(에흐사스)는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은행은 이를 다른 국가의 모범 사례로 선언했다.
파키스탄 식수 계획(Plant for Pakistan)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파키스탄 전역에 100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였다. 칸은 2018년 9월 2일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첫날 약 1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팬데믹 초기, 임란 칸은 전국적인 봉쇄를 거부했다. 그는 정부가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봉쇄 조치를 고려했지만, 그러한 조치는 하루벌이에 의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파키스탄의 어려운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칸은 전국적인 봉쇄 대신, 군사 기술을 사용하여 노출된 사람들을 추적하고 추적함으로써 COVID-19 발생 지역을 폐쇄하는 표적 조치를 시행했다. 칸의 전략은 효과적이었으며, 임시 격리 병동을 설립한 정부의 바이러스 대응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WHO)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심각한 사막 메뚜기 발생이 발생하여 동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및 인도 아대륙의 식량 안보를 위협했다. 2019년 6월, 메뚜기 떼가 이웃 이란에서 파키스탄으로 유입되어 남서부 지역의 광대한 농업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면화, 밀,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2020년 2월 1일, 파키스탄은 사막 메뚜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0년 이상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 습격"이라고 묘사했다.
4.1. 실각과 그 이후
2022년 4월, 야당은 임란 칸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출했고, 이는 가결되어 칸은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불신임 투표로 실각한 총리가 되었다. 칸은 자신의 실각이 미국과 야당의 공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각 후, 2022년 8월, 칸은 총리 재직 시절 외국 요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파키스탄 선거위원회(ECP)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토샤카나 사건이 제기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와지라바드에서 열린 집회 도중 총격을 받아 다리와 발에 부상을 입었다. 암살 시도의 배후로 칸은 현 정부, 특히 셰바즈 샤리프 총리, 라나 사나울라 내무장관, 그리고 군사 정보국(ISI)의 파이살 나세르 대테러 정보국장을 지목했다.
2023년 5월, 칸은 1억 9천만 파운드 사건과 관련한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칸의 재임 기간 동안 그의 행정부와 부동산 재벌 말릭 리아즈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로 인해 국고에 1억 9천만 파운드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체포는 대규모 시위를 야기했다. 이후 대법원은 체포가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칸의 석방을 명령했다. 같은 해 8월, 토샤카나 사건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24년 1월, 칸은 레터게이트로 알려진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칸은 미국이 파키스탄 군부와 공모하여 자신을 축출하려 했다는 증거가 담긴 외교 전문(사이퍼)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24년 6월, 이슬라마바드 고등 법원은 국가 기밀 유출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을 무죄로 뒤집었다.
5. 논란
아이샤 굴랄라이 와지르는 2017년 8월 1일에 임란 칸이 2013년 10월부터 자신에게 성희롱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임란 칸은 인터뷰에서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 나와즈파가 굴랄라이를 이용하여 자신을 모함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굴랄라이는 나중에 임란 칸이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란 칸의 정당은 굴랄라이에게 증거를 제시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한, 임란 칸의 정당 여성 대변인 시린 마자리는 굴랄라이가 자신을 의회 선거구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하자 이러한 비난을 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6월 25일, 임란 칸은 알카에다의 창시자이자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순교자'로 칭하여 국제 언론과 국내 야당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임란 칸은 이전 현지 TV 인터뷰에서 빈 라덴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었다.
임란 칸 정부는 정치인의 후원으로 이득을 본 정치인이나 친인척에 대한 사면(파키스탄 정치적 용어로 NRO 또는 민족화해조례)을 전제로 한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임란 칸의 정적들을 목표로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란 칸 지지자들은 자한기르 칸 타린, 알레임 칸 등 임란 칸 자신의 집권당 고위 인사들이 조사나 기소에 직면하고, 임란 칸이 타린 지지자들의 "사법위원회" 구성 요구를 거부하는 등 선거운동이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임란 칸이 파키스탄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국제 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하락했다. 파키스탄은 2018년 117위에서 2021년 140위로 떨어졌다. 비평가들은 임란 칸의 반부패 정책의 효과와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019년, 휴먼 라이츠 워치는 정부가 "국가 안보라는 구실로 비정부기구와 언론의 반대 목소리를 계속 억압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 매체들은 정부 기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여러 문제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도록 당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2021년 12월, 국제언론연구소는 "정부가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불관용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기자 납치, 폭행 및 고문 사례가 일상화되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언론 재단의 보고서는 임란 칸 총리가 여러 차례 증거 없이 기자들을 공개적으로 "마피아"와 "협박범"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지적했다.
2021년, 임란 칸은 여성의 복장이 성폭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강간 문제에 대한 질문에 임란 칸은 "여성이 옷을 적게 입으면, 그들이 로봇이 아니라면 남성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식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널리 비난을 받았다. 파키스탄인권위원회를 포함한 여성 인권 단체들은 그의 발언이 유해한 고정관념을 영속화한다고 주장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6. 사생활
칸은 바니 갈라에 있는 농가에 거주한다. 2009년 11월, 칸은 라호르 샤우카트 칸움 암 병원에서 소장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응급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사유지에 살고 있는 애완견 5마리를 키운다. 2021년 3월 20일, 칸은 COVID-19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틀 전에 BBIBP-CorV COVID-19 백신을 첫 투약했다. 보건복지부는 백신을 2회 접종한 지 불과 이틀 만에 투병했기 때문에 그가 COVID-19 예방접종을 "완전 접종"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7. 저술
임란 칸은 패트릭 머피와 공동 집필한 자서전을 포함하여 6권의 논픽션 작품을 출판했다. 2014년에는 우르두어와 힌디어로 출판된 Main Aur Mera Pakistan에서 파키스탄의 현대사에 대해 서술했다. 이 책에는 1965년과 1971년의 인도와의 전쟁, 1979년 이란 혁명의 영향, 그리고 2011년 압바타바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2008년 칸의 두 번째 책인 Indus Journey: A Personal View of Pakistan이 출판사의 많은 편집을 거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판사 제러미 루이스는 회고록에서 칸에게 출판할 글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몇몇 메모와 자서전적인 단편이 들어 있는 가죽으로 된 공책이나 일기를 건넸습니다. 그것을 읽는 데 최대 5분이 걸렸고, 곧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부였다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칸의 자서전은 2011년에 출판되었으며, 크리켓 선수에서 정치인으로의 전환과 자선 활동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칸은 여러 주요 파키스탄과 영국 신문에 크리켓과 파키스탄 정치에 대한 사설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CNN을 포함한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칼럼에서 대화와 손상된 자연 생태계의 복원을 옹호했다.
2024년 6월, 이므란이 수감 중 지난 몇 달 동안 책을 쓰고 있으며 이미 300페이지 이상을 완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은 임란 칸의 저서 목록이다.
| 제목 | 출판 연도 | 출판사 | ISBN |
|---|---|---|---|
| West and East | 1975 | 맥밀런 출판사(Macmillan Publishers) | |
| Imran: The Autobiography of Imran Khan | 1983 | Pelham Books | |
| Imran Khan's Cricket Skills | 1989 | Golden Press in association with Hamlyn | |
| Indus Journey: A Personal View of Pakistan | 1991 | Chatto & Windus | |
| All Round View | 1992 | Mandarin | |
| Warrior Race: A Journey Through the Land of the Tribal Pathans | 1993 | Chatto & Windus | |
| Pakistan: A Personal History | 2011 | Bantam Press | |
| Main Aur Mera Pakistan | 2014 | 오리엔트 페이퍼백(Orient Paperba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