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장 지오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 지오노는 프랑스의 소설가로, 189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70년 사망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평화주의자가 되었으며, 자연과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언덕》, 《나무를 심은 사람》, 《지붕 위의 기병》 등이 있으며, 생태주의적 관점을 담은 작품도 다수 집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프랑스의 평화주의자 - 조르주 뒤아멜
    프랑스의 작가이자 의사인 조르주 뒤아멜은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휴머니즘을 옹호했으며, 연작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전체주의와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 인물이다.
  • 프랑스의 평화주의자 - 장 조레스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치인이자 역사가, 철학자인 장 조레스는 사회주의로 전향하여 프랑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드레퓌스 사건 옹호, 반전 운동을 펼치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암살당했다.
  • 프랑스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뤼시앵 페브르
    뤼시앵 페브르는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 학파를 창시하여 총체적 역사와 심성사를 개척하고 다양한 사료 활용 및 학문 간 협력을 강조하며 20세기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다.
  • 프랑스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샤를 드골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끌고 전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프랑스 해방과 재건에 기여했으나, 독단적인 성격과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 프랑스의 소설가 - 프랑수아 모리아크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보르도 지방의 풍물을 배경으로 개인, 가정, 신앙, 욕망 간의 갈등을 다룬 소설을 통해 심리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진 프랑스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평론가이며, 노벨 문학상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고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 및 사회,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 프랑스의 소설가 -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여성주의 운동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여성의 주체성과 자유를 강조했으며,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구절로 여성 억압의 근원을 분석했다.
장 지오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 지오노
이름장 지오노
출생일1895년 3월 30일
출생지마노스크, 프랑스
사망일1970년 10월 8일
사망지마노스크, 프랑스
국적프랑스
직업작가
활동 기간1913년 - 1970년
문학
사조대중 문화
대표 작품"언덕"
두 번째 수확
Un roi sans divertissement
지붕 위의 기병
기타
웹사이트장 지오노 센터

2. 생애

장 지오노는 1895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마노스크에서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16세부터 은행에서 일했으나, 성경,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을 탐독하며 스스로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그는 평생의 대부분을 고향 마노스크에서 보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5년간 전투에 참여했으며, 특히 베르됭 전투에서의 참혹한 경험은 그를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 전쟁 후 은행에 복직하여 일하다 1920년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꾸준한 습작 끝에 1929년, 34세의 나이로 첫 소설 ''언덕''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1930년 은행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3] 초기에는 판 삼부작(''언덕'', ''보뮈뉴의 한 사람'', ''재생'')으로 대표되는, 프로방스의 자연과 농민들의 삶을 범신론적 시각으로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4]

1930년대에는 평화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거대한 군대''(1931), ''복종 거부''(1937) 등의 작품과 강연 활동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파했다.[4]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이전의 평화 운동 때문에 나치 동조자로 오인받아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3] 전쟁과 해방을 거치며 두 차례 투옥되는 시련을 겪었으나, 기소되지는 않았다.[8]

전후 지오노의 작품 세계는 스탕달의 영향을 받아 변화를 맞이한다. 자연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특정 시대와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인간 심리와 역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8]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1947),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1951), ''미친 행복(Le Bonheur fou)''(1957), ''강한 영혼들(Les Ames fortes)''(1950) 등이 있다. 특히 황폐한 땅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꾼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나무를 심은 사람(The Man who Planted Trees)''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를 생태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했다.[10]

그는 1953년 모나코레니에 3세 문학상을 받았고, 1954년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8]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30편의 소설과 에세이, 시나리오를 남기며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12]

2. 1. 초기 생애

그는 1895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마노스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피에몬테 출신의 구두 수선공이었고, 어머니는 세탁부였다.[1] 그는 생애 대부분을 오트프로방스 알프스의 마노스크에서 보냈다. 가정 형편 때문에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성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아그리파 도비녜의 ''비극'' 등 고전 문학 작품들을 꾸준히 탐독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하여 복무했으며, 베르됭 전투에도 참전했다. 최전선에서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를 평생에 걸쳐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 1919년 전쟁이 끝난 후 은행으로 돌아왔고, 이듬해인 1920년에는 어린 시절 친구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독학으로 글쓰기를 익혔고, 1929년 첫 소설 ''언덕''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브렌타노 상을 수상하고 상금 1000USD를 받는 등 성공을 거두었으며,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2] 이 성공에 힘입어 그는 1930년 은행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3]

''언덕'' 이후 베르길리우스와 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은 소설 ''보뮈뉴의 한 사람'' (1929)과 ''재생'' (1930)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 세 작품은 자연 세계를 그리스 신 의 힘이 깃든 곳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판 삼부작"으로 불린다. 1930년대에 발표한 그의 다른 소설들도 대부분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농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자연에 대한 범신론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경향을 이어갔다.[4] 이 시기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마르셀 파뇰 감독은 페르난델 주연의 ''재생'', 라이뮈 주연의 ''앙젤''과 ''빵집 아내'' 등 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4]

1930년대 내내 지오노는 제1차 세계 대전 경험에서 비롯된 평화주의 신념을 작품과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거대한 군대'' (1931)를 비롯해 ''복종 거부'' (1937), ''가난과 평화를 위한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1938)와 같은 팸플릿을 출간했다.[4] 또한 뤼시앵 자크, 앙리 플뤼셰르 등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교류하며 매년 콩타두르의 작은 마을에 모여 평화주의적인 글을 모은 ''콩타두르의 공책''을 출판하기도 했다.[5] 1937년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시의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평화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6]

2. 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과 평화주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장 지오노는 군에 입대하여 5년간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특히 베르됭 전투에 참전했으며,[1] 최전선에서 겪은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열렬한 평화주의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3] 이러한 평화주의 신념은 그의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전쟁 후,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오노는 자신의 평화주의 사상을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소설 ''거대한 군대'' (1931)를 비롯하여, ''복종 거부'' (1937)와 ''가난과 평화를 위한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1938)와 같은 팸플릿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4]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뤼시앵 자크와 앙리 플뤼셰르 등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매년 콩타두르의 작은 마을에 모여 평화주의에 관한 글을 나누고 이를 ''콩타두르의 공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했다.[5] 그의 확고한 평화주의적 입장은 때때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1937년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시의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되묻기도 했다.[6]

2. 3. 작가 활동

장 지오노는 평생의 대부분을 마노스크, 오트프로방스 알프스에서 보냈다.[1]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은행에서 일했지만, 성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아그리파 도비녜의 ''비극'' 등 고전 문학 작품을 꾸준히 읽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은행원으로 일했으며, 베르됭 전투 참전 경험은 그를 평생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 1919년 은행에 복귀했고, 1920년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1929년 발표한 첫 소설 ''언덕''이 성공을 거두면서 (브렌타노 상 수상 및 1000USD 획득, 영어 번역 출간[2]), 지오노는 1930년 은행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3]

''언덕''에 이어 베르길리우스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은 소설 ''보뮈뉴의 한 사람'' (1929)과 ''재생'' (1930)을 출판했다. 이 세 작품은 자연 세계를 그리스 신 의 힘으로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하여 "판 삼부작"으로 불린다. 1930년대 지오노의 소설들은 주로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농민들의 삶을 다루며 자연에 대한 범신론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4] 이 시기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마르셀 파뇰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페르난델 주연, 오네게르 음악의 ''재생'', 배우 라이뮈 주연의 ''앙젤''과 ''빵집 아내''가 있다.[4]

1930년대 내내 지오노는 제1차 세계 대전 경험에서 비롯된 평화주의 사상을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거대한 군대'' (1931)와 팸플릿 ''복종 거부'' (1937), ''가난과 평화를 위한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1938) 등이 대표적이다.[4] 그는 뤼시앵 자크, 앙리 플뤼셰르 등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교류하며 매년 콩타두르의 작은 마을에 모여 평화주의적인 글을 모아 ''콩타두르의 공책''을 출판하기도 했다.[5] 1937년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6]

2. 4. 제2차 세계 대전과 이후

1930년대 말, 지오노는 개인적인 위기를 맞았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 소위 "지오노식 글쓰기"(faire du Giono프랑스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7] 동시에 그의 평화주의 운동이 실패하고 또 다른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동료 평화주의자들과 연례 회합 중이었다. 이전의 평화 운동 때문에 그는 나치 동조자로 오인받아 잠시 투옥되었으나, 별다른 기소 없이 풀려났다.[3]

전쟁 이후,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지오노는 스탕달을 새로운 문학적 모델로 삼았다. 이는 고전 문학에 영향을 받았던 이전 시기와는 다른 변화였다. 그의 소설은 이제 특정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삼고, 등장인물들이 정치, 사회 문제, 역사적 사건 등 구체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이전 작품의 초월적인 성격과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내부 독백 기법을 도입하여 독자가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이전 작품에서 주로 사용했던 전지적 작가 시점과 다른 방식이었다.[8]

발자크의 방대한 연작 소설 ''인간 희극''에 영감을 받아, 지오노 역시 10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을 구상했다. 이 야심찬 계획은 농민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을 그리고, 100년의 시간 간격을 둔 같은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여러 단면을 비교하고 대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비록 이 계획 전체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기병(Hussard)" 연작으로 불리는 네 편의 소설 - ''안젤로''(1958), ''지붕 위의 기병''(1951), ''미친 행복''(1957), ''어떤 인물의 죽음''(1948) - 이 완성되었다.[9] 이 작품들은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과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현대 소설이라는 지오노 후기 작품 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역사에 대한 그의 깊어진 관심은 실제 역사서인 ''파비아의 참사''(1963) 집필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 지오노는 자연 세계보다는 인간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으며, 인간 심리와 동기를 이해하는 데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는 그가 말년에 인간 본성에 대해 다소 어두운 관점을 갖게 되는 배경이 되었고, 그는 이에 관한 논문 ''마키아벨리 씨, 또는 드러난 인간의 심장''(1951)을 쓰기도 했다.

1944년 프랑스 해방 이후, 지오노는 또다시 나치 협력 혐의를 받았다. 이번에도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5개월 동안 투옥되는 시련을 겪었다.[8] 이 사건으로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3년간 작품 출판이 금지되었다. 이 배척의 시기 동안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45년, 그는 자신의 새로운 문학적 접근 방식을 실험하고 다듬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로서 ''안젤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미완성 소설에는 이후 ''지붕 위의 기병''과 ''미친 행복''으로 완성될 안젤로 파르디 이야기의 초기 버전뿐 아니라, 그의 후기 작품들의 씨앗이 될 만한 내용과 새로운 서술 기법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이 지나치게 모방적이라고 판단하여 출판하지 않고, 여기서 파생된 다른 작업들로 나아갔다.[4]

2. 5. 말년

장 지오노의 두 번째 문학 시기에 출판된 첫 주요 소설은 1947년에 나온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이었다. 이 작품은 1963년 지오노가 직접 각본을 써서 성공적인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소설은 19세기 초 오트프로방스알프주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 형식을 띠고 있으며, 경찰관이 자신이 쫓는 살인자만큼이나 악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지오노의 새로운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문체적으로 뛰어나며, 사건에 영향을 받은 여러 인물의 설명을 병치하여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4]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1951)으로, 이는 지오노가 이전 작품 ''안젤로(Angelo)''에서 구상했던 주인공 안젤로 파르디 이야기의 완성된 첫 부분이다. 1995년 장 폴 라프노 감독이 줄리엣 비노쉬 주연으로 영화화했다. 주인공 안젤로는 스탕달의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La Chartreuse de Parme)의 파브리스 델 돈고처럼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사도적인 로맨티시스트이며, 소설 속 1832년 프로방스에서 발생한 콜레라 유행은 지오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된다. 구조적으로는 시골에 대한 인상적인 묘사가 가득한 피카레스크 형식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편인 ''미친 행복(Le Bonheur fou)''(1957)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던 1848년 혁명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안젤로의 여정을 다룬다.

2001년 라울 루이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강한 영혼들(Les Ames fortes)''(1950) 역시 이 시기의 걸작 중 하나이다.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처럼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탐욕, 이기심, 타인에 대한 착취 등 인간 내면의 심연을 탐구한다. 이 작품 또한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개입이나 해설 없이 주인공들의 말을 통해서만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그랜드 로드(Les Grands chemins)''(1951)는 비교적 덜 어두우며, 길의 본질, 도박, 거짓말, 우정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이 소설 역시 작가의 설명이나 해설 없이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8]

그의 ''이탈리아 여행(Voyage en Italie)''(1953)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는 단순한 여행 안내서나 기행문이 아니라, 지오노 자신의 경험과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탈리아 자체보다는 작가 지오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프랑스 외 지역에서 지오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The Man who Planted Trees)''과 이를 원작으로 한 1987년 애니메이션 영화일 것이다. 나무 심기를 통해 황폐한 계곡을 되살리는 한 남자에 대한 이 낙관적인 이야기는 지오노가 오랫동안 보여준 자연 세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반영하며, 이러한 면모는 그를 현대 생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한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어떤 저작권료도 받기를 거부했으며, 누구든 자유롭게 배포하거나 번역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10] 프랑스 국립산림청(ONF)은 2013년 그의 정신을 기려 "지오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인공 이동 실험의 일환으로, 프랑스 남부 유전자를 가진 너도밤나무 묘목을 제1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던 베르됭 지역에 소규모로 심는 것이었다. 2024년 현재, 이 너도밤나무 묘목들은 잘 자라고 있다.[11]

말년에 지오노는 여러 영예를 안았다. 1953년에는 그의 평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모나코레니에 3세가 수여하는 문학상을 받았고, 1954년에는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63년에는 모나코의 문학 위원회(Conseil Littéraire) 회원이 되었다.[8]

지오노는 197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12]

그의 사후, 니스에 있는 콜레주 장 지오노(Collège Jean Giono)를 비롯하여 칸과 프레쥐 등 여러 지역의 거리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3. 작품 세계

장 지오노의 작품 세계는 크게 초기, 중기(전환기),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프로방스 지방의 자연과 농민들의 삶을 범신론적인 시각으로 그린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대표적으로 판 삼부작(언덕, 보뮈뉴의 한 사람, 재생)이 있다.[4] 이 시기 작품들은 자연을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은 그를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만들었으며[3], 이는 1930년대 작품과 사회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평화주의 운동의 한계는 그의 작품 세계에 전환점을 가져왔다.[7][3]

전환기를 거치며 그는 스탕달의 영향을 받아 인간 심리와 역사적 상황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8] 발자크의 ''인간 희극''처럼 여러 편의 소설 연작을 구상하기도 했으며, 이 중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기병(Hussard)' 연작(지붕 위의 기병 등) 네 편을 완성했다.[9] 이 시기부터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후기 대표작으로는 재미없는 왕[4], 지붕 위의 기병[9], 강한 영혼들[8] 등이 있으며, 인간 심리의 심연과 도덕적 모호성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한편, 그의 오랜 자연 사랑과 생태주의적 관점은 말년에 발표된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현대 생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했다.[10]

3. 1. 초기 작품: 자연과의 조화

장 지오노의 첫 소설인 ''언덕''(1929)은 브렌타노 상을 수상하고 1000USD의 상금을 받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2] 이 성공에 힘입어 그는 1930년 은행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3]

''언덕''에 이어 베르길리우스호메로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소설 ''보뮈뉴의 한 사람''(1929)과 ''재생''(1930)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 세 작품은 지오노의 대표적인 "판 삼부작"으로 묶인다. 이는 작가가 자연 세계를 고대 그리스의 신 의 강렬한 힘이 깃든 곳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지오노의 초기 작품들은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삼아 그곳의 농민들의 삶과 자연을 범신론적인 시각으로 그려내는 경향을 보였다.[4] 그의 작품 속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이 시기 지오노의 작품들은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르셀 파뇰 감독은 지오노의 소설을 바탕으로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페르난델이 주연하고 오네게가 음악을 맡은 ''재생''과 배우 라이뮈가 출연한 ''앙젤'', ''빵집 아내'' 등이 있다.[4]

3. 2. 평화주의와 사회 참여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복무하게 되었고, 베르됭 전투에 참전했다. 최전선에서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를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만들었으며, 이는 평생에 걸쳐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3]

1930년대 내내, 지오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평화주의 사상을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거대한 군대'' (1931)를 비롯하여, ''복종 거부'' (1937)와 ''가난과 평화를 위한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1938)와 같은 팸플릿을 출판하며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4] 이러한 활동은 뤼시앵 자크와 앙리 플뤼셰르를 포함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이어졌고, 이들은 매년 콩타두르의 작은 마을에 모여 평화주의적인 글을 모아 ''콩타두르의 공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했다.[5]

1937년에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며 당시의 국제 정세 속에서도 자신의 평화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6]

3. 3. 전환기: 새로운 방향 모색

1930년대 말은 지오노에게 문학적, 개인적 위기의 시기였다. 그는 스스로 "지오노식 글쓰기"를 넘어서 작품에 새로운 방향을 부여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7] 동시에 그의 평화주의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고, 또 다른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1939년 9월 1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지오노는 이전의 평화주의 활동으로 인해 나치 동조 혐의로 잠시 투옥되었으나, 별다른 기소 없이 풀려났다.[3]

이 시기를 기점으로 지오노는 새로운 문학적 방향을 모색했다. 그는 독학으로 익힌 고전 문학에 더해 스탕달을 새로운 문학적 모델로 삼았다. 이에 따라 그의 소설은 특정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이나 사건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이전 작품의 초월적인 성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또한, 스탕달처럼 내부 독백 기법을 사용하여 독자가 주인공의 내면 경험에 몰입하도록 유도했는데, 이는 이전 소설에서 주로 사용했던 전지적 작가 기법과 대조된다.[8]

지오노는 발자크의 ''인간 희극''에 영감을 받아, 10편의 소설 연작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야심 찬 계획은 농민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을 그리고, 100년의 간격을 둔 같은 가족 구성원의 경험을 통해 역사의 여러 단면을 비교하고 대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비록 이 계획 전체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기병(Hussard)' 연작으로 불리는 네 편의 소설 – ''안젤로''(1958), ''지붕 위의 기병''(1951), ''미친 행복''(1957), ''어떤 인물의 죽음''(1948) – 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들은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과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현대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지오노의 전후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9] 역사에 대한 깊어진 관심은 실제 역사서인 ''파비아의 참사''(1963) 집필로 이어지기도 했다.

자연 세계보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지오노는 인간 심리와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작에 주목했다. 마키아벨리의 분석은 그가 말년에 인간 본성에 대해 더욱 어두운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마키아벨리 씨, 또는 드러난 인간의 심장''(1951)이라는 논문으로 나타났다.

1944년 프랑스 해방 이후, 지오노는 또다시 나치 협력 혐의로 기소되어 5개월간 투옥되었다. 이번에도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8], 이 사건으로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3년 동안 작품 출판이 금지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자신의 새로운 문학적 접근 방식을 실험하고 통합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로서 1945년 ''안젤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에는 이후 ''지붕 위의 기병''과 ''미친 행복''에서 완성된 안젤로 파르디 이야기의 초기 버전뿐 아니라, 그의 후기 작품들의 씨앗이 담겨 있으며 새로운 서술 기법들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지오노는 이 작품이 너무 모방적이라고 판단하여 출판하지 않고, 여기서 파생된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다.[4]

3. 4. 후기 작품: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

1930년대 말은 지오노의 삶에 위기를 가져왔다. 그는 '지오노식 글쓰기'faire du Giono|페르 뒤 지오노fra를 그만두고 작품에 새로운 방향을 부여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7]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하며 그의 평화주의 운동이 실패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1939년 전쟁 발발 후, 이전 평화 운동으로 인해 잠시 나치 부역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기소 없이 풀려났다.[3]

이 시기 지오노는 스탕달을 새로운 문학적 모델로 삼았다. 그의 소설은 특정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설정되었고, 등장인물들을 구체적인 정치, 문제, 사건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이전 작품의 초월성과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내부 독백을 통해 독자가 주인공의 경험에 몰입하게 하는 스탕달식 서술 기법을 채택했는데, 이는 이전 소설의 주된 기법이었던 전지적 작가 시점과 차이가 있다.[8]

발자크의 ''인간 희극''에 영감을 받아, 사회 각 계층의 인물을 묘사하고 100년 간격으로 같은 가족 구성원의 경험을 통해 역사의 여러 순간을 비교하는 10편의 소설 연작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계획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기병(Hussard)' 연작으로 불리는 ''안젤로''Angelo|앙젤로fra(1958),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르 위사르 쉬르 르 투아fra(1951), ''미친 행복''Le Bonheur fou|르 보뇌르 푸fra(1957), ''어떤 인물의 죽음''Mort d'un personnage|모르 됭 페르소나주fra(1948) 등 네 편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이는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과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현대 소설로 나뉘는 지오노 후기 작품의 특징을 보여준다.[9]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실제 역사서인 ''파비아의 참사''Le Désastre de Pavie|르 데자스트르 드 파비fra(1963) 집필로 이어지기도 했다.

자연 세계보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심리와 동기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분석은 그가 말년에 인간 본성에 대해 훨씬 더 어두운 관점을 표현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는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 씨, 또는 드러난 인간의 심장''Monsieur Machiavel, ou le Coeur humain dévoilé|므시외 마키아벨, 우 르 쾨르 위멩 데부알레fra(1951)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1944년 프랑스 해방 당시, 지오노는 다시 나치 부역 혐의로 기소되어 5개월간 투옥되었으나, 이번에도 기소되지는 않았다.[8] 이 일로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3년간 출판이 금지되었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자신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실험하기 위한 은유적 실험실로서 ''안젤로''Angelo|앙젤로fra를 집필하기 시작했다(1945년). 이 소설에는 이후 ''지붕 위의 기병''과 ''미친 행복''에서 완성될 안젤로 파르디 이야기의 초기 버전과 다른 후기 작품들의 핵심 요소, 그리고 새로운 서술 기법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이 너무 모방적이라고 판단하여 출판하지 않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다.[4]

지오노의 두 번째 시기에 출판된 첫 주요 소설은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앵 루아 상 디베르티스망fra(1947)이다. 이 작품은 1963년 지오노가 직접 각본을 쓴 동명의 영화로도 성공적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 초 오트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 형식의 이 소설은, 경찰관이 자신이 쫓는 살인자만큼이나 악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지오노의 새로운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다양한 인물들의 사건 설명을 병치하여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파악하게 하는 스타일이 특징이다.[4]

두 번째 시기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르 위사르 쉬르 르 투아fra(1951)으로, ''안젤로''에서 구체화된 안젤로 파르디 이야기의 첫 부분이다. 1995년 장 폴 라프노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안젤로는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에 등장하는 파브리스 델 돈고처럼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사도적 낭만주의자이며, 그가 1832년 프로방스에서 마주한 콜레라 유행은 지오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구조적으로는 시골에 대한 인상적인 묘사가 담긴 피카레스크 형식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속편인 ''미친 행복''Le Bonheur fou|르 보뇌르 푸fra(1957)은 1848년 혁명 당시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의 안젤로를 다룬다.

''강한 영혼들''Les Âmes fortes|레 잠 포르트fra(1950) 역시 이 시기의 걸작으로, 2001년 라울 루이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재미없는 왕''처럼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탐욕, 이기심, 타인 착취 등 인간 심연을 탐구한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개입 없이 등장인물의 말로만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랜드 로드''Les Grands chemins|레 그랑 슈맹fra(1951)는 상대적으로 덜 어두우며, 길, 도박, 거짓말, 우정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이 소설은 전적으로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8]

''이탈리아 여행''Voyage en Italie|부아야주 앙 이탈리fra(1953)도 언급할 만하다. 단순한 여행 안내서나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지오노의 경험과 만남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탈리아 자체보다는 작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프랑스 외부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롬 키 플랑테 데 자르브르fra과 이를 원작으로 한 1987년 애니메이션 영화일 것이다. 나무를 심어 황폐한 계곡을 되살리는 남자에 대한 이 낙관적인 이야기는 지오노가 오랫동안 보여 온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반영하며, 그를 현대 생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한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로열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배포와 번역을 허용했다.[10] 프랑스 국립산림청(ONF)은 2013년 '지오노'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인공 이동 실험의 일환으로 남부 지역 유전자를 가진 너도밤나무 묘목을 베르됭의 옛 제1차 세계 대전 전장에 심었다. 2024년 현재 이 묘목들은 잘 자라고 있다.[11]

말년에 지오노는 1953년 모나코레니에 3세 문학상을 받았고, 1954년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63년 모나코 문학 위원회Conseil Littéraire|콩세이 리테레르fra 위원이 되었다.[8] 그는 197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12]

3. 5. 생태주의적 관점

장 지오노는 자연 세계를 깊이 사랑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특히 그의 초기작인 "판 삼부작"(''언덕'', ''보뮈뉴의 한 사람'', ''재생'')에서는 자연을 고대 그리스 신 의 생명력 넘치는 힘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묘사하며, 범신론적인 관점을 드러낸다.[4]

그의 생태주의적 시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끈기 있는 노력으로 황무지가 울창한 숲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자연의 회복력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오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 보호와 생태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현대 생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배포하고 번역할 수 있도록 허락하며 그의 신념을 실천했다.[10]

지오노의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산림청(ONF)은 2013년 "지오노"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인공 이동 실험의 일환으로 베르됭의 옛 제1차 세계 대전 격전지에 남부 지역의 너도밤나무 묘목을 심었다. 2024년 현재 이 묘목들은 성공적으로 자라고 있어, 지오노가 작품을 통해 보여준 자연에 대한 신념과 희망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11]

4. 주요 작품

장 지오노의 두 번째 시기 첫 주요 소설은 1947년에 출판된 ''재미없는 왕''(Un roi sans divertissement프랑스어)이다. 이 작품은 1963년 지오노가 직접 각본을 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 초 오트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 형식을 빌려, 경찰관이 자신이 쫓는 살인자만큼이나 악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병치하여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스타일이 특징이다.[4]

1951년에 출판된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프랑스어)은 지오노의 두 번째 시기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로, 이전에 ''안젤로''(Angelo프랑스어)에서 다루었던 주인공 안젤로 파르디의 이야기를 완성한 첫 번째 부분이다. 1995년에는 장 폴 라프노 감독이 줄리엣 비노쉬 주연으로 영화화했다. 주인공 안젤로는 스탕달의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에 등장하는 파브리스 델 돈고처럼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사도적인 낭만주의자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32년 프로방스의 콜레라 유행은 지오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될 수 있다. 구조적으로는 시골 풍경에 대한 인상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피카레스크 형식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의 속편인 ''미친 행복''(Le Bonheur fou프랑스어, 1957)은 1848년 혁명 시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던 이탈리아에서의 안젤로의 행적을 다룬다.

1950년에 발표된 ''강한 영혼들''(Les Ames fortes프랑스어) 역시 이 시기의 걸작으로 꼽히며, 2001년 라울 루이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재미없는 왕''처럼 인간의 탐욕, 이기심, 타인에 대한 착취 등 어두운 심연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개입이나 해설 없이 등장인물의 목소리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한다. 반면 1951년작 ''큰 길''(Les Grands chemins프랑스어)은 상대적으로 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길의 본질, 도박, 거짓말, 우정 등의 주제를 다루며, 전적으로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8]

1953년에 출간된 ''이탈리아 여행''(Voyage en Italie프랑스어)은 단순한 여행기나 안내서가 아니라, 지오노 자신의 경험과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이탈리아 자체보다는 작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프랑스 외 지역에서 지오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프랑스어, 1953)일 것이다. 황폐한 계곡에 꾸준히 나무를 심어 결국 풍요로운 땅으로 되살려낸 한 남자의 이야기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을 보여주며, 그를 현대 생태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지오노는 이 작품에 대한 저작권료를 일절 받지 않았으며, 누구든 자유롭게 배포하고 번역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10] 이 이야기는 1987년 프레데릭 백 감독에 의해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큰 감동을 주었다. 2013년 프랑스 국립산림청(ONF)은 "지오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인공 이동 실험의 일환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던 베르됭 지역에 남부 지역 유전자를 가진 너도밤나무 묘목을 심었다. 2024년 현재 이 묘목들은 잘 자라고 있다.[11]

다음은 장 지오노의 주요 작품 목록이다.


  • ''언덕'' (Colline, 1929)
  • ''세상의 노래'' (Le Chant du monde, 1934)
  • ''나의 기쁨은 영원하리라'' (Que ma joie demeure)
  • ''재미없는 왕'' (Un roi sans divertissement, 1947)
  • ''강한 영혼들'' (Les Ames fortes, 1950)
  • ''지붕 위의 기병'' (Le Hussard sur le toit, 1951)
  • ''큰 길'' (Les grands chemins, 1951)
  • ''나무를 심은 사람''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1953)
  • ''이탈리아 여행'' (Voyage en Italie, 1953)
  • ''미친 행복'' (Le Bonheur fou, 1957)
  • ''공간을 원했던 작은 소년'' (Le petit garcon qui avait envie d’espace)

참조

[1] 서적 Jean Giono, "Colline" https://books.google[...] Bréal 1999
[2] 학술지 Prix Brentano
[3] 웹사이트 Jean Giono (Biographie) http://www.alalettre[...] aLaLettre 2010-05-17
[4] 웹사이트 Jean Giono: bibliographie https://web.archive.[...] Pages.infinit.net 2010-05-17
[5] 문서 Bibliographie des ouvrages de Jean GIONO http://pagespro-oran[...]
[6] 서적 Case Red: The Collapse of France Osprey Publishing 2017-11-30
[7] 문서 Giono 1990
[8] 웹사이트 Jean Giono https://web.archive.[...] Republique-des-lettres.fr 2010-05-17
[9] 서적 Oeuvres romanesques complètes Gallimard 1971-1983
[10] 웹사이트 Jean Giono -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https://web.archive.[...] Home.infomaniak.ch 2010-05-17
[11] 뉴스 Beeches thrive in France's Verdun in flight from climate change https://phys.org/new[...] 2024-11-25
[12] 웹사이트 Jean Giono, le Voyageur immobile https://web.archive.[...] Pages.videotron.com 2010-05-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