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전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전제(田齊)는 기원전 386년, 제나라의 대부였던 전화가 강씨 제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왕조이다. 진나라에서 제나라로 망명한 전씨 가문은 세력을 확장하여 제나라의 정권을 장악했고, 기원전 391년 마지막 군주 강공을 몰아내고 기원전 386년 전씨 제나라를 건국했다. 위왕, 선왕, 민왕 시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군사력과 국력을 강화했지만, 민왕 때 5국 연합군의 침공으로 쇠퇴했다. 이후 전단이 국력을 회복했지만, 결국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진나라 멸망 후, 전씨 일족이 제나라를 부흥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전횡은 한나라에 저항하다가 자결했다.
기원전 672년, 진나라에서 전완이 제나라로 망명하여 대부 가문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여러 가문으로 번성하였다. 제나라 재상 안영은 진나라의 양설힐과의 대화에서 규성 전씨 왕조가 제나라에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1]
[1]
서적
韓非子
2. 역사
기원전 386년, 제나라 간신족이었던 전화가 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었다. 위왕은 행정 개혁을 통해 국력을 증대시켰다.[22]
전씨(田氏)의 선조는 기원전 672년에 진(陳)에서 제(齊)로 망명해 온 진의 14대 군주 여공의 아들 공자 완이다. 제환공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여 경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여 공정(工正)을 삼았다. 완이 제나라에 정착하고부터는 진씨(陳氏) 성과 전씨(田氏) 성을 혼용하여 썼다. 완이 죽자 그에게 경중(敬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의 자손이 후에 강성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전씨의 제나라로 찬탈하게 된다.
기원전 4세기 중엽 ~ 기원전 3세기 중엽에는 위왕, 선왕, 민왕 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민왕 때 연의 종묘사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연의 명장 악의가 이끄는 5국 연합군의 침공으로 수도 임치가 함락되고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10] 양왕 즉위 후, 명장 전단의 활약으로 잃었던 70여 개 성을 되찾았으나, 국력은 크게 쇠퇴하였다.[14] 이후 제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해 가는 다른 나라들을 방관하는 정책을 취하여 순간의 평화를 얻었으나, 결국 진나라와 홀로 맞서게 되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파견한 장군 왕분에게 멸망당했다.[17]
진나라 말기인 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장초를 세우자, 제나라의 종실(宗室)인 전씨 일족이 진에 반기를 들고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1]
항우는 진을 멸하고 패권을 쥔 뒤, 제나라를 셋으로 나누었다.[1]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가진 전영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어 제나라 모든 지역을 병합했다.[1] 이후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횡은 갈 곳이 없어져 외딴 섬으로 은신하는데, 유방의 회유와 강압에 못이겨 끝내 자결하고, 그를 따르는 500여 명의 수하도 뒤따라 자결했다고 한다.[1] 한편, 한국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외연도와 녹도, 그리고 전라북도 군산시의 어청도 일대에는 전횡을 당신(堂神)으로 숭배하는 풍습과 함께 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1]
2. 1. 간신족 전씨의 제나라 왕위찬탈
기원전 672년, 진나라에서 전완이 제나라로 망명하여 대부 가문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여러 가문으로 번성하였다. 제나라 재상 안영은 진나라의 양설힐과의 대화에서 규성 전씨 왕조가 제나라에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1]
기원전 386년, 제나라 간신족이었던 전화가 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었다. 위왕은 행정 개혁을 통해 국력을 증대시켰다.[22]
전씨(田氏)의 선조는 기원전 672년에 진(陳)에서 제(齊)로 망명해 온 진의 14대 군주 여공의 아들 공자 완이다. 제환공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여 경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여 공정(工正)을 삼았다. 완이 제나라에 정착하고부터는 진씨(陳氏) 성과 전씨(田氏) 성을 혼용하여 썼다. 완이 죽자 그에게 경중(敬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완의 자손이 후에 강성의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전씨의 제나라로 찬탈하게 된다.
경공 때, 전희자 걸은 세금을 징수할 때 작은 되를 사용하고, 양식을 백성에게 배급할 때는 큰 되를 사용하여 백성의 민심을 샀다.
경공이 죽고 어린 아들 도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전걸과 포목은 지지 세력을 규합하여 어린 군주를 옹호하는 세력을 공격하여 제거하고, 노나라에 망명가 있는 공자 양생(陽生)을 불러 군주로 옹립하니, 이 군주가 도공이다.
전걸이 죽고 아들인 간신 전성자 항이 뒤를 이었다. 포목이 도공을 살해하여 간공을 군위에 세우고, 전상은 감지와 함께 좌우상(左右相) 대신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대립하여 세력 다툼을 하게 된다. 감지의 음모를 안 전상이 선수를 취해, 감지에 이어 간공을 죽이고, 평공을 세웠다. 이때, 전상은 제나라 정치를 장악하여 제나라 안평의 동쪽을 송두리째 전씨의 봉지로 만들었다.
기원전 391년, 강씨(姜氏) 제나라(齊)의 마지막 군주인 강공은 전화에 의해 해안의 외딴섬으로 추방되었다. 식읍(食邑)으로 한 성(城)을 받고, 조상을 제사 지낼 것을 허락받았다.[2][3] 전화는 독립하여 군주가 되었고(태공(太公)), 기원전 386년, 전화는 주(周) 안왕으로부터 제후로 책봉되었다. 이로써 강씨 제나라에서 전씨(田氏) 제나라로 바뀌게 되었다. 전화는 공식적으로 제후가 되었고, 국호는 강씨 제나라 시대와 같이 '''제(齊)'''로 하였다. 이를 '''“전씨 제(田齊)”'''라고 한다. 이 사건을 '''“전씨가 제나라를 대신함(田氏代齊)”'''이라고 한다. 전씨 제나라는 “전국칠웅” 중 하나이다. 기원전 379년, 강공이 죽으면서 강씨 제나라는 멸망하였다.[4]
2. 2. 전성기
기원전 4세기 중엽 ~ 기원전 3세기 중엽, 위왕, 선왕, 민왕 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위왕은 독창적인 정책과 손빈 등용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직하 학문을 육성하였다. 기원전 341년에는 마릉 전투에서 위나라를 격파했다.[5] 기원전 334년, 위왕은 위나라 혜왕과 함께 왕호를 칭하였다.[5] 수도 임치의 직하에는 학자들이 모여들어 직하의 학이 학문의 중심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순우곤, 순자 등이 있다.
민왕 대에는 맹상군(전문)이 재상이 되어 국정을 이끌었다. 민왕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9] 진나라 소양왕과 함께 제(帝)를 자칭하기도 했다.[8] 기원전 288년 진의 소양왕은 서제(西帝), 민왕은 동제(東帝)를 칭하고 공동으로 조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주변 제후들의 반감을 사서 왕으로 칭호를 되돌렸다.
2. 3. 쇠퇴
민왕 때 연의 종묘사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연의 명장 악의가 이끄는 5국 연합군의 침공으로 수도 임치가 함락되고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10] 양왕 즉위 후, 명장 전단의 활약으로 잃었던 70여 개 성을 되찾았으나, 국력은 크게 쇠퇴하였다.[14] 이후 제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해 가는 다른 나라들을 방관하는 정책을 취하여 순간의 평화를 얻었으나, 결국 진나라와 홀로 맞서게 되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파견한 장군 왕분에게 멸망당했다.[17]
2. 4. 일시 부흥 [후제(後齊)]
진나라 말기인 기원전 209년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장초를 세우자, 제나라의 종실(宗室)인 전씨 일족 전담, 전영, 전횡 삼형제가 진에 반기를 들고 전담을 왕으로 하여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1] 전담은 제나라 땅을 평정하기 시작했으나 진나라 장군 장한의 공격을 받은 위나라를 구원하던 도중 역습을 받아 전투 중 죽고 만다.[1] 제나라 본국에서는 제왕 건의 동생 전가를 새 왕으로 세웠으나, 전영은 전가를 공격해 내쫓고 전담의 아들 전시를 왕으로 세웠다.[1] 한편 제왕 건의 손자 전안도 제북군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이룩했다.[1]
항우는 진을 멸하고 패권을 쥔 뒤, 제나라를 셋으로 나눠 전도를 제나라 왕, 전시를 교동나라 왕, 전안을 제북나라 왕에 봉했다.[1]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가진 전영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어 제나라 모든 지역을 병합했다.[1] 항우는 제나라를 토벌하러 쳐들어갔고, 이 싸움에서 전영은 패배하여 도망가다 죽었다.[1] 전가가 새 왕이 되었으나, 항우는 분이 풀리지 않아 제나라의 성곽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고, 그가 통과하는 지역의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1]
이에 전횡이 들고 일어나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세우고 전가를 쫓아낸 뒤 항우의 군대를 공격했다.[1] 항우는 다수의 제나라 포로들을 생매장해 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나라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1] 당시 한왕 유방이 봉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관중과 서초의 서울 팽성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항우는 제나라를 넘어뜨리지 못하고 회군하여 한나라의 군과 싸우게 되었다.[1] 전횡은 쉽게 제나라 성들을 회복했다.[1]
전횡은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삼고 자신은 재상이 되어 국정을 이끌었다.[1] 3년 후, 유방의 부하 한신에 의한 제나라 정벌이 시작되었지만, 유방의 부하 역이기가 제나라와의 동맹을 맺기 위해 사자로 방문하여 유방과 제나라는 동맹을 맺게 된다.[1] 그러나 한신은 그것을 무시하고 제나라를 공격해 왔고, 이에 전광과 전횡은 화를 내며 역이기를 솥에 넣고 삶아 죽인 뒤 한신군과 싸우게 되지만, 계속 패배했다.[1]
항우는 원군으로 용저를 장군으로 20만 대군을 보냈지만, 한신의 “낭사의 계”(수계)에 의해 용저는 전사하고 20만 대군도 괴멸했다.[1] 전광은 패하여 도망가다 잡혀서 한신에 의해 처형되었다.[1]
뒤를 이어 전횡이 왕위에 오르나 한나라 장군 관영의 공격을 받아 위나라 팽월에게 귀순한다.[1] 이후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횡은 갈 곳이 없어져, 결국 수하 500여 명만을 이끌고 외딴 섬으로 은신하는데, 유방의 회유와 강압에 못이겨 끝내 자결하고, 그를 따르는 500여 명의 수하도 뒤따라 자결했다고 한다.[1] 지금의 중국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青島)의 전횡도(田橫島)에 숨어 살았다고 하는데, 칭다오의 전횡도관광레저단지(田横島旅游度假區)에 전횡오백사(田橫五百士)의 묘지가 있다.[1]
한편, 한국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외연도와 녹도, 그리고 전라북도 군산시의 어청도 일대에는 전횡을 당신(堂神)으로 숭배하는 풍습과 함께 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1] 이 지역에서 전횡은 풍어와 해상의 안전을 지켜주는 당신으로 숭배되는데, 음력 4월과 동지에 당제(堂祭)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다.[1]
전횡이 죽었을 때 시신을 운반하던 빈객이 그를 애도하며 해로가(薤露歌)와 호리가(蒿里曲)이라는 상가(喪歌)를 지었으며, 이것이 상엿소리인 만가(輓歌)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1]
3. 역대 군주
대수 시호 휘 재위 비고 경중(敬仲) 완(完) 맹이(孟夷) 치(穉) 맹장(孟莊) 민(湣) 문자(文子) 수무(須無) 환자(桓子) 무우(無宇) 희자(釐子) 걸(乞) 성자(成子) 항(恒) 양자(襄子) 반(般) 장자(莊子) 백(白) 도자(悼子)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보이며, 휘는 알려져 있지 않다. 1 태공(太公) 화(和) 기원전 386년 ~ 기원전 385년 기원전 386년, 전제의 군주로 등극하였다. 2 섬(剡) 기원전 384년 ~ 기원전 375년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보이며, 환공에게 시해된 뒤 폐위되어 시호가 없다. 3 환공(桓公) 오(午) 기원전 374년 ~ 기원전 357년 4 위왕(威王) 인제(因齊) 기원전 356년 ~ 기원전 320년 5 선왕(宣王) 벽강(辟彊) 기원전 319년 ~ 기원전 301년 6 민왕(湣王) 지(地) 기원전 300년 ~ 기원전 284년 7 양왕(襄王) 법장(法章) 기원전 283년 ~ 기원전 265년 8 건(建) 기원전 264년 ~ 기원전 221년 진(秦)에게 멸망하여 시호가 없다. 담(儋) 기원전 209년 ~ 기원전 208년 가(假) 기원전 208년 제왕 건의 동생 시(市) 기원전 208년 ~ 기원전 206년 전담의 아들 도(都) 기원전 206년기원전 205년 영(榮)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5년 전담의 동생 광(廣) 기원전 204년 전영의 아들 횡(橫) 전담, 전영의 동생
참조
[2]
서적
史記
[3]
서적
史記
[4]
서적
史記
[5]
서적
史記
[6]
서적
史記
[7]
서적
孟子
[8]
서적
資治通鑑
[9]
서적
資治通鑑
[10]
서적
新序
[11]
서적
史記
[12]
서적
史記
[13]
서적
戰國策
[14]
서적
新序
[15]
서적
史記
[16]
서적
戰國策
[17]
서적
史記
[18]
서적
資治通鑑
[19]
서적
戰國策
[20]
문서
代 (전국 시대)와 조 (전국 시대)와 진 (전국 시대)
[21]
문서
사마천과 사기(史記) 세가(世家) 중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22]
서적
사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