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
1. 개요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의 아버지와 조선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조선인 3세로, 축구 선수이다. 그는 대한민국 여권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을 모두 소지하여 이중 국적 선수로 인정받았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으로 활동했다. 클럽 경력으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VfL 보훔, FC 쾰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미즈 에스펄스, 알비렉스 니가타, FC 마치다 젤비아 등에서 뛰었으며, 2022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팀으로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33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
| 이름 | 정대세 |
|---|---|
| 로마자 표기 | Jeong Dae-se |
| 일본어 표기 | チョン・テセ |
| 다른 표기 | Chong Tese |
| 출생일 | 1984년 3월 2일 |
| 출생지 |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
| 키 | 181cm |
| 포지션 | 공격수 |
| 닉네임 | 테세, ちょんちょん, 테세페로, 인민 루니, 텟짱, 형님, 북한의 영웅 |
| 국적 | 대한민국 (북한 여권 보유) |
| 1997-1999 | 도슌 조선 중급학교 |
|---|---|
| 1999-2002 | 아이치 조선 중고급학교 |
| 2002-2005 | 조선대학교 |
| 2006-2010 | 가와사키 프론탈레 (112경기, 46골) |
|---|---|
| 2010-2012 | VfL 보훔 (39경기, 14골) |
| 2012 | 1. FC 쾰른 (10경기, 0골) |
| 2013-2015 | 수원 삼성 블루윙즈 (72경기, 23골) |
| 2015-2020 | 시미즈 에스펄스 (106경기, 45골) |
| 2020 | →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 (26경기, 9골) |
| 2021-2022 | FC 마치다 젤비아 (67경기, 11골) |
| 총 출전 | 432 경기 |
| 총 골 | 148 골 |
| 2007-2011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3경기, 15골) |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201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201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밀레 예디나크
밀레 예디나크는 은퇴한 호주 축구 선수이자 토트넘 홋스퍼 FC의 수석 코치이며,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 출전 20골을 기록하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일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이명재 (축구 선수)
이명재는 대한민국의 레프트백 축구 선수로,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와 김천 상무 군 복무 후 복귀, K리그1 우승 2회 및 FA컵 우승 1회를 기록했으며 202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2023년 인종차별 논란으로 징계를 받았다.
2. 유년 시절 및 국적
정대세는 1984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대한민국 국적의 아버지와 조선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아버지의 호적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어머니는 정대세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가 운영하는 조선학교에 보냈고, 정대세는 그곳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조총련이 지원하는 도쿄도의 조선대학교 체육학부에 진학했다. 정대세는 자신과 가족이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조총련은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사관 역할을 하며 정대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을 발급해주었다. 이를 통해 정대세는 FIFA와 AFC 규정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에서 뛸 자격을 얻었고, 사실상 이중국적을 갖게 되었다.
정대세는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숙하며, 브라질 선수들에게서 배운 포르투갈어와 독일에서 활동하며 배운 독일어도 구사할 수 있다.
2.1. 대한민국 국적과 조선적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일본에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고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조부모가 대한민국 국적과 일제 강점기 해방 전 조선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대한민국 국적과 조선적을 선택하여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조선학교에 다니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계의 영향을 받은 정대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정대세는 국제축구연맹에 자필 청원서를 보내 허가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가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도 발급받았다.
아시아 축구 연맹을 비롯한 국제 축구계에서는 정대세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중국적 선수로 인정했다. 정대세는 자신의 국적에 대해 "어릴 때부터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내 나라가 어딘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배웠다. 꿈을 쓰면 '조선 축구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라고 설명하였다.
3. 클럽 경력
정대세는 2006년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VfL 보훔, FC 쾰른을 거쳐 201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류하며 K리그 무대를 밟았다. 2015년에는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여 J리그로 복귀했고, 2020년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를 거쳐 2021년 FC 마치다 젤비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2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정대세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J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으며, 독일에서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모두 경험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대한민국(국내) 선수로 등록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3.1.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6-2010)
2006년 도쿄도에 있는 조선학교인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다. 아시아대학에서 J리그로 직행한 첫 사례였다. 팀에서 등번호 9번을 달고 공격수로 뛰었고, 데뷔하던 해 7월 19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가시마)에서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입단 첫 해에는 교체 출전이 많았지만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2007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2007에 출전하여, 처음 방문한 한국의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가와사키의 조별 리그 통과에 기여했다. 같은 해 10월 28일 J1 30라운드 FC도쿄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7년 시즌 후반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아 득점을 양산하며 12골을 기록했다.
가와사키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최고의 선수이자 J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 되었다.
3.2. VfL 보훔 (2010-2012)
2010년 7월 정대세는 2.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2년 계약(1년 연장 옵션 포함)을 맺고 이적하였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였다.
2010-11 시즌, 홈 개막전 1860 뮌헨전에 선발 출전하여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으며, 프리드헬름 푼켈 감독으로부터 "나는 그에게 놀라워하고 있다. 저렇게 열린 마음을 가진 아시아인은 본 적이 없다. 그의 성장을 매일 기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훔에서 뛴 첫 시즌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지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패하며 승격에 실패하였고, 정대세는 1부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 리그전에서는 10득점을 기록하였다.
3.3. 1. FC 쾰른 (2012)
2012년 1월 겨울 이적 시장에서 루카스 포돌스키의 부상으로 인해 FC 쾰른으로 이적하며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주전 선수들에게 밀려 많은 출장을 하지 못했다. 팀은 분데스리가 17위를 기록하여 강등되었다.
3.4.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5)
2012년 시즌 중반 이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K리그 클래식 진출을 고려하던 중, 2013년 1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이적에 합의하였다. 2013년 1월 10일, 1. FC 쾰른으로부터 약 300000EUR의 이적료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류했다. K리그 1과 FIFA 당국의 심의를 거쳐,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대한민국(국내) 선수로 등록되었다.
2013년 4월 6일, 대구 FC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3-1 승리에 기여했다. 2주 후인 4월 20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2015년 7월 12일 부산과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떠나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다.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불가리아 출신 공격수 일리얀 미찬스키를 영입하였다.
3.5. 시미즈 에스펄스 (2015-2020)
2015년 7월 8일, 시즌 두 단계의 총점 계산 결과 강등권에 있던 시미즈 에스펄스가 정대세를 긴급 영입했다. 이적료는 400~500(약 40~50), 연봉 600(약 60)의 3년 반 계약이었다고 한다. J리그에서의 활약은 2010년 이후 5년 만이었다. 7월 25일, 2단계 4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3-2로 패했다. 시즌 중반에 합류했지만, 시미즈는 J2로 강등되었다.
J2 강등 후에도 시미즈에 남아, 2016년에는 오마에 모토키와 투톱을 이루어 J2 득점왕(26골)을 획득했다. 어시스트도 팀 최고인 10개였으며, 시미즈의 1년 만의 J1 복귀에 기여했다. 2017년에는 주장을 맡아 10골을 기록했다.
2018년부터는 벤치를 지키는 경기가 늘었고, 2020년에는 전반기 단 2경기 출전에 그쳤다.
3.6. 알비렉스 니가타 (2020)
2020년 8월 25일, 알비렉스 니가타로 임대 이적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10월 4일 FC마치다 젤비아전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하여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며, 시즌 중반에 합류하여 9득점을 기록했지만, 계약이 만료되었다.
3.7. FC 마치다 젤비아 (2021-2022)
2021 시즌을 앞두고 FC 마치다 젤비아에 입단했다. 신슈(新潟) 팀을 떠난 후 한때 현역 은퇴를 결심했으나, FC 마치다 젤비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2시즌 연속 30경기 이상 출전하는 등 베테랑다운 존재감을 발휘했고, 2022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과 일본의 외국인 등록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가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정대세의 주요 국제 경기 출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대회 |
|---|---|
| 2007 |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2008 |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2010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 2009 |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2010 | 2010년 FIFA 월드컵 |
| 2011 | 2011년 AFC 아시안컵,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4.1. 북한 대표팀 발탁 과정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일본에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었고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국가대표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아버지의 대한민국 국적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으로 등록되어 대한민국 여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의 영향을 받았고,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일본에 패하는 모습을 본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뛸 수 없었다. FIFA가 분단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로 인정할지가 불확실했다.
이후 재일조선인축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국제축구연맹(FIFA)에 자필 청원서를 보내 허가를 얻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여권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을 모두 발급받았다.
정대세는 2007년 동아시아컵 예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선발되었고,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서 일본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각각 1골을 기록했다.
4.2. 국제 경기 활약 (2007-2011)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과 일본의 외국인 등록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니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계의 영향을 받은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분단국가의 특수성과 자신의 가족사를 설명한 청원서를 보내 허가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가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도 발급받았다.
2007년 동아시아컵 예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처음 출전했고, 2008년 본선에서는 일본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각각 1골을 기록했다.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3경기에서 2골을 넣어 박주영, 염기훈, 야마세 고지와 함께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북한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북한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특히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북한 국가가 연주될 때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지윤남의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팀은 1-2로 패했다. 영국 언론은 그에게 "인민의 루니"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그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디디에 드록바에 비유했다.
2008년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 본선에서는 일본전 1골(무승부), 한국전 1골, 중국전 1도움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FIFA 공식 웹사이트에 조선족 선수 최초로 장문의 인터뷰가 소개되기도 했다.
2009년 6월, 정대세는 북한 대표팀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데 큰 공을 세웠다. 2010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FIFA 랭킹 1위 브라질을 상대로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헤딩으로 북한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나, 경기는 1-2로 패했다.
정대세는 2011년 2011년 AFC 아시안컵과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도 출전했다.
정대세의 주요 국제 경기 출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대회 |
|---|---|
| 2007 |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2008 | 2010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
| 2009 |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2010 | 2010년 FIFA 월드컵 |
| 2011 | 2011년 AFC 아시안컵,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5. 개인사
정대세는 일본에 대한민국 국적으로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도 받았기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한 나라로 보는 두 국가의 헌법에 의해 양측 국내 리그에서는 자국 선수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클럽 대회에서 대한민국 구단 소속으로 출전할 때 대한민국 선수로 뛸 수 있는지는 문제가 되었다. 아시아 축구 연맹 등 국제 축구계에서는 정대세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중국적 선수로 인정했다.
5.1. 정체성에 대한 고민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일본에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고,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적, 어머니는 조선적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적으로 등록되어 대한민국 여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의 영향을 받았고,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북한이 일본에 지는 것을 본 후 북한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정대세는 북한 대표로 뛸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FIFA에서 이를 인정할지가 문제였다.
결국 재일조선인축구협회의 도움으로 국제축구연맹에 분단국가 상황과 가족사를 설명한 청원서를 보내 허가를 받아 북한 대표가 되었고, 대한민국 여권과 북한 여권을 모두 발급받았다.
정대세는 자신과 가족이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 내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하는 조총련은 그에게 북한 여권을 발급했다. FIFA와 AFC 규정에 따라 북한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생겼고, 사실상 이중 국적을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를 한 나라로 보기 때문에, 양측 국내 리그에서는 자국 선수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클럽 대회에서 대한민국 구단 소속으로 출전할 때 대한민국 선수로 뛸 수 있는지는 문제가 되었다. 아시아 축구 연맹 등 국제 축구계에서는 정대세를 대한민국과 북한의 이중국적 선수로 인정했다.
6. 수상 내역
*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득점왕: 2008
* J2리그 득점왕: 2016
* J리그 월간 MVP: 2회 (2016년 7월, 2016년 10월)
* J2리그 MVP: 1회 (2016년)
* A매치 데뷔전 데뷔골: 2007년 6월 19일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예선전 vs 몽골 (마카오 운동장)
6.1. 클럽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컵 | 리그컵 | 국제대회 | 총계 |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가와사키 프론탈레 | 2006 | J1리그 | 16 | 1 | 2 | 2 | 4 | 0 | — | 22 | 3 | |
| 2007 | 24 | 12 | 4 | 3 | 5 | 2 | 7 | 2 | 40 | 19 | ||
| 2008 | 33 | 14 | 2 | 0 | 4 | 1 | — | 39 | 15 | |||
| 2009 | 29 | 14 | 4 | 3 | 5 | 2 | 9 | 2 | 47 | 21 | ||
| 2010 | 10 | 5 | — | — | 3 | 1 | 13 | 6 | ||||
| 총계 | 112 | 46 | 12 | 8 | 18 | 5 | 19 | 5 | 161 | 64 | ||
| VfL 보훔 | 2010–11 | 2. 분데스리가 | 25 | 10 | 1 | 0 | 0 | 0 | — | 26 | 10 | |
| 2011–12 | 14 | 4 | 2 | 1 | 0 | 0 | — | 16 | 5 | |||
| 총계 | 39 | 14 | 3 | 1 | 0 | 0 | |0 | 42 | 15 | |||
| 1. FC 쾰른 | 2011–12 | 분데스리가 | 5 | 0 | 0 | 0 | 0 | 0 | — | 5 | 0 | |
| 2012–13 | 2. 분데스리가 | 5 | 0 | 1 | 0 | 0 | 0 | — | 6 | 0 | ||
| 총계 | 10 | 0 | 1 | 0 | 0 | 0 | |0 | 11 | 0 |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13 | K리그1 | 23 | 10 | 0 | 0 | — | — | 23 | 10 | ||
| 2014 | 28 | 7 | 0 | 0 | — | — | 28 | 7 | ||||
| 2015 | 21 | 6 | 0 | 0 | — | — | 21 | 6 | ||||
| 총계 | 72 | 23 | 0 | 0 | 0 | 0 | |0 | 72 | 23 | |||
| 시미즈 에스펄스 | 2015 | J1리그 | 13 | 4 | 0 | 0 | — | — | 13 | 4 | ||
| 2016 | J2리그 | 37 | 26 | 1 | 1 | — | — | 38 | 27 | |||
| 2017 | J1리그 | 23 | 10 | 1 | 0 | 2 | 0 | — | 26 | 10 | ||
| 2018 | 18 | 3 | 2 | 0 | 6 | 3 | — | 26 | 6 | |||
| 2019 | 13 | 2 | 1 | 0 | 5 | 0 | — | 19 | 2 | |||
| 2020 | 2 | 0 | 2 | 0 | 0 | 0 | — | 4 | 0 | |||
| 총계 | 106 | 45 | 7 | 1 | 13 | 3 | |0 | 126 | 49 | |||
| 알비렉스 니가타 | 2020 | J2리그 | 26 | 9 | 0 | 0 | — | — | 26 | 9 | ||
| 마치다 젤비아 | 2021 | J2리그 | 0 | 0 | 0 | 0 | — | — | 0 | 0 | ||
| 통산 총계 | 365 | 137 | 23 | 10 | 31 | 8 | |5 | 438 | 160 | |||
* 2006년 - 2010년 7월 가와사키 프론탈레
* 2010년 7월 - 2012년 1월 VfL 보훔
* 2012년 1월 - 2012년 12월 1. FC 쾰른
* 2013년 - 2015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15년 7월 - 2020년 시미즈 에스펄스
* 2020년 8월 - 2020년 12월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 이적)
* 2021년 - 2022년 FC 마치다 젤비아
6.2. 개인
*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득점왕 : 2008
* J2리그 득점왕 : 2016
* J리그 월간 MVP: 2회 (2016년 7월, 2016년 10월)
* J2리그 MVP: 1회 (2016년)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경기 수 | 득점 수 |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007 | 3 | 8 |
| 2008 | 10 | 3 | |
| 2009 | 7 | 1 | |
| 2010 | 5 | 3 | |
| 2011 | 8 | 0 | |
| 합계 | 33 | 15 | |
정대세한국어의 득점 결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득점을 먼저 표시하며, 점수 열은 정대세의 각 득점 이후 점수를 나타낸다.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7년 6월 19일 | 마카오 스타디움, 마카오 | MGL영어 | 2–0 | 7–0 |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2 | 3–0 | |||||
| 3 | 4–0 | |||||
| 4 | 6–0 | |||||
| 5 | 2007년 6월 21일 | 마카오 스타디움, 마카오 | MAC중국어 | 2–0 | 7–1 | |
| 6 | 3–0 | |||||
| 7 | 5–0 | |||||
| 8 | 6–1 | |||||
| 9 | 2008년 2월 17일 | 올림픽 스포츠 센터, 충칭 | JPN일본어 | 1–0 | 1–1 | 2008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
| 10 | 2008년 2월 20일 | 올림픽 스포츠 센터, 충칭, 중국 | KOR한국어 | 1–1 | 1–1 | |
| 11 | 2008년 10월 15일 |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이란 | IRI페르시아어 | 1–2 | 1–2 |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
| 12 | 2009년 8월 27일 | 월드 게임 스타디움, 가오슝, 대만 | TPE중국어 | 1–0 | 2–1 |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
| 13 | 2010년 5월 25일 | 캐시포인트 아레나, 알타흐, 오스트리아 | GRE그리스어 | 1–1 | 2–2 | 친선 경기 |
| 14 | 2–2 | |||||
| 15 | 2010년 6월 6일 | 마훌롱 스타디움, 템비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 NGA영어 | 1–2 |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