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지 (종교인)
1. 개요
정원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성인이다. 충청도 진잠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조화서 베드로의 집에 거주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1866년 12월 5일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으며,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교 신앙을 지켰다. 1866년 12월 13일 21세의 나이로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1968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이름 | 정원지 베드로 |
|---|---|
| 출생일 | 1846년 |
| 사망일 | 1866년 12월 13일 |
| 축일 | 9월 20일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 출생지 | 충청도 진잠 |
|---|---|
| 사망지 | 전라도 전주 |
| 직업 | 순교자 |
| 시복일 | 1968년 10월 6일 |
|---|---|
| 시복인 | 교황 바오로 6세 |
|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
|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 상징 | 해당사항 없음 |
|---|---|
| 수호 | 해당사항 없음 |
| 매장지 | 해당사항 없음 |
| 성당 | 해당사항 없음 |
| 기도 | 해당사항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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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출신 -
김수장 (법조인)
김수장은 1945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장까지 승진, 주요 검찰 요직을 역임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법무부 검찰인사위원장을 지냈으나 권인숙 성고문 사건 관련 논란이 있었다. -
대전광역시 출신 -
황인철 (1940년)
황인철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변호사, 사회운동가로서, 판사 출신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청학련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시국사건 변론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등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
1866년 사망 -
김정호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와 지리지를 제작하여 조선 시대 지리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95016 김정호가 명명되었다. -
1866년 사망 -
마리니콜라앙투안 다블뤼
프랑스 출신 로마 가톨릭 주교이자 조선교구 사도대목구장이었던 안토니 다블뤼는 1845년 한국에 입국하여 선교 및 문서 선교에 기여, 주교 서품 후 사도대목구장을 이어받았으나 병인박해 때 순교, 1984년 시성되었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참수된 사람 -
악비
남송 시대 장군 악비는 금나라에 맞선 애국 영웅으로, 진회의 모함으로 처형되었으나 사후 충절을 인정받아 무목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만강홍이라는 시와 함께 현대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최근 그의 군사 행위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있다. -
참수된 사람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2. 생애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 생활을 이어갔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전라도 전주로 이주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 투옥되었다. 감옥에서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으며, 결국 같은 해 12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2.1. 출생과 성장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의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라도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방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먼저 순교하였고, 이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었다. 1866년 21세에 결혼했는데, 그 해에 병인박해가 발발하였다.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전주의 성지동으로 이사했고, 조화서 베드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와 형,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살았다.
2.2. 신앙 활동과 체포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의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나, 전라도 전주 부근 수널마루를 거쳐 금구 지방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했을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난 고아였으며, 아버지는 먼저 순교하였다.
21세에 결혼한 해에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정원지는 집을 떠나 전주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조화서 베드로의 집에 셋방을 얻었다. 그곳에서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았다.
1866년 12월 5일,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성지동 마을을 급습하자, 정원지는 산으로 피신하여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마을 상황을 살피러 내려갔다가 조화서 베드로 일행을 체포해가던 포졸들에게 붙잡혀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체포 직후 정원지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했으나, 함께 잡힌 조화서 베드로의 격려를 받고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다. 이후 그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2.3. 투옥과 순교
1866년 12월 5일,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포졸들이 성지동 마을을 급습했을 때 정원지는 산으로 피신했다. 다음날 마을 상황을 살피러 내려왔다가, 이미 체포된 조화서 일행을 끌고 가던 포졸들에게 붙잡혀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했으나, 함께 체포된 조화서 베드로의 격려를 받고 곧 자신의 신앙을 명백히 밝혔다.
감옥에서 정원지는 홀로 남겨진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함께 수감된 다른 천주교 신자들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점차 용기를 되찾았다. 형리들은 그에게 천주교를 가르쳐 준 스승이 누구인지 대라며 고문했지만, 정원지는 순교한 자신의 아버지가 유일한 스승이라고 답했다. 형리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오히려 아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굳건히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정원지는 천국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신앙을 지킨다고 담담히 말했다.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그는 전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866년 12월 13일, 정원지는 순교를 앞두고 가족들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이후 그는 다른 천주교 신자 몇 명과 함께 전주 숲정이의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가는 길에 술에 취한 관리가 정원지를 조롱하며 천국을 모독하자, 정원지는 "참으로 어리석은 분이로군요! 그것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꾸짖었다.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정원지를 포함한 천주교 신자들은 매우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1866년 12월 13일, 정원지는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함께 체포되었던 5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