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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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영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풍양 조씨 출신이며 신정왕후 조씨의 친척이다. 1863년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대교를 거쳐 신정왕후의 총애를 받아 대사성으로 특진했다. 노론에 속했으며, 흥선대원군과 신정왕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대원군 집권 하에 도승지, 이조 참판 등을 역임했고, 민씨 정권에서는 금위대장, 훈련대장 등을 지냈다. 1873년 호조판서로 흥선대원군 실각에 기여했으며, 고종 친정 이후 포도대장, 훈련대장 등을 거쳐 1880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사대당의 실력자로서 한미, 한영, 한독 수호 조약을 체결하고,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여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하는 데 기여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에게 피살되었다.

조영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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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조영하
한자趙寧夏
가타카나쵸・욘하
작가 정보
이름조영하
원어 이름趙寧夏
출생일1845년 6월
출생지조선 한성부
사망일1884년 12월 5일 (40세)
사망지조선 한성부
활동 기간1863년 ~ 1884년
장르한시
시조
별칭자(字)는 기삼(箕三)
아호 (雅號)혜인(惠人)
직업문신
무신
척신
정치인
시인
자녀조동윤(아들)
배우자이정숙
부모조병기(양부), 조병석(생부)
친척조인영(할아버지)
조만영(큰할아버지)
조성하(6촌 형)
조병구(5촌 숙부)
효명세자(5촌 종고모부)
신정황후 조씨(5촌 종고모)
조병준(7촌 숙부)
종교유교(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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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철종 때인 1863년 정시 문과에 병과 15등위로 급제하였다. 규장각 대교(待敎)를 지냈다. 조대비의 총애를 받아 1865년 대사성으로 특진하였다. 1873년 호조판서로 있을 때, 민승호민씨 일족과 최익현 등 일부 산림과도 결탁하여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여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궐내 대원군 세력의 추방에 앞장섰다.

이 해 고종의 친정(親政)이 선포되면서 대원군이 실각하자 포도대장·훈련대장 등을 지냈다. 1875년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되고, 훈련대장을 거쳐 1876년 지경연사,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880년 이조판서가 되고, 그 뒤 병조판서 등 요직을 지내면서 사대당(事大黨)의 실력자가 되었다.

1863년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1871년 종2품으로 승진, 대원군 집권 하에서 도승지,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민씨 정권 하에서는 금위 대장, 무위도통사, 훈련대장 등을 역임했다. 1876년 정2품, 1879년 종1품, 1883년 정1품으로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하여 예조, 이조, 호조의 각 판서, 의정부 유사당상을 역임하고, 개화 정책의 당사자로서 경리통리기무아문사, 독변(수석) 교섭통상사무, 독변(수석) 군국사무 등을 맡았다.

2.1. 초기 생애와 배경

풍양 조씨로 신정황후 조씨의 친정 5촌 조카이며 조성하는 동갑내기 6촌 형이다. 사대당의 중요 인물로, 6촌 형 조성하와 함께 철종 때 불우한 처지에 있던 흥선대원군을 만나 교분을 쌓았으며, 흥선대원군과 5촌 종고모 조대비를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붕당 정치에서는 노론에 속했다.

2.2. 관직 진출과 활동

풍양 조씨로 신정황후의 친정 5촌 조카이며 조성하는 동갑내기 6촌 형이다. 사대당의 주요 인물로, 6촌 형 조성하와 함께 철종 때 불우한 처지에 있던 흥선대원군을 만나 교분을 쌓았으며, 흥선대원군과 5촌 종고모 조대비를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철종 때인 1863년 정시 문과에 병과 15등위로 급제하였다. 규장각 대교(待敎)를 지냈다. 조대비의 총애를 받아 1865년 대사성으로 특진하였다.

1873년 호조판서로 있을 때, 민승호 등 민씨 일족과 최익현 등 일부 산림과도 결탁하여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여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궐내 대원군 세력의 추방에 앞장섰다. 이 해 고종의 친정(親政)이 선포되면서 대원군이 실각하자 포도대장·훈련대장 등을 지냈다. 1875년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되고, 훈련대장을 거쳐 1876년 지경연사,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880년 이조판서가 되고, 그 뒤 병조판서 등 요직을 지내면서 사대당(事大黨)의 실력자가 되었다.

1882년 전권대관으로 일본하나부사 요시모토를 접견하였으며, 전권대신이 되어 한미·한영·한독 수호 조약을 각각 체결하였다. 이 해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에 가서 병사를 요청함으로써 임오군란의 주동자를 색출하였으며, 또한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민씨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같은 해 다시 진주사로 청에 가서 외교 담당 고문으로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초빙, 입국하게 하였다.

1863년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1671년 종2품으로 승진, 대원군 집권 하에서 도승지,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민씨 정권 하에서는 금위 대장, 무위도통사, 훈련대장 등을 역임했다. 1876년 정2품, 1879년 종1품, 1883년 정1품으로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하여 예조, 이조, 호조의 각 판서, 의정부 유사당상을 역임하고, 개화 정책의 당사자로서 경리통리기무아문사, 독변(수석) 교섭통상사무, 독변(수석) 군국사무 등을 맡았다. 붕당 정치에서는 노론에 속했다.

2.3. 외교 활동과 개화 정책 추진

1882년 전권대관으로 일본하나부사 요시모토를 접견하였으며, 전권대신이 되어 한미·한영·한독 수호 조약을 각각 체결하였다. 이 해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에 가서 병사를 요청함으로써 임오군란의 주동자를 색출하였으며, 또한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민씨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같은 해 다시 진주사로 청에 가서 외교 담당 고문으로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초빙, 입국하게 하였다.

2.4. 갑신정변과 죽음

1883년 음력 3월 17일 홍문관 제학이 되었고, 판리통리아문사무(辦理統理衙門事務), 독판통상사무(督辦通商事務), 도통사(都統使) 등을 거쳐 예조판서에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갑신정변 때 살해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청나라에 진주사로 두 차례 파견되어 외교 조정을 맡았지만, 1884년 갑신정변에서 민태호 등과 함께 김옥균 등 독립파에 의해 살해되었다.

3. 정치적 성향 및 평가

1863년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1871년 종2품으로 승진, 대원군 집권 하에서 도승지,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민씨 정권 하에서는 금위 대장, 무위도통사, 훈련대장 등을 역임했다. 1876년 정2품, 1879년 종1품, 1883년 정1품으로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하여 예조, 이조, 호조의 각 판서, 의정부 유사당상을 역임하고, 개화 정책의 당사자로서 경리통리기무아문사, 독변(수석) 교섭통상사무, 독변(수석) 군국사무 등을 맡았다. 붕당 정치에서는 노론에 속했다.

1882년 임오군란에서는 진주사로 두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어 외교 조정을 맡았지만, 1884년 갑신정변에서 민태호 등과 함께 독립파 김옥균 등에 의해 살해되었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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