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익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용익은 1960년대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미술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단색화 작품을 주로 제작한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그는 한국 현대 추상 회화를 이끌었으며, 단색화 작품에서 색을 비우고 지우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조선일보 현대 미술가 협회 심사위원, 현대 미술가 협회 회장, 파리 비엔날레 대한민국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조용익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조용익 화백
원어 이름趙容翊
인물 정보
분야미술
직업화가
학력
학력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경력
소속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사상 및 스타일
사조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주요 작품
대표작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수상 내역
수상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영향 관계
영향 받음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영향 줌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개인 정보
배우자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자녀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부모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형제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친척알 수 없음 (제공된 정보에 없음)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1934년 출생 - 한승헌
  • 1934년 출생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작품 특징

조용익은 한국 현대 추상회화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시기별로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인 1960년대에는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작업을 선보였고, 1970년대 초반에는 , 한복, 장구 등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반구상 작품을 시도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는 그의 대표적인 양식인 단색화 작업에 몰두했다. 조용익의 단색화는 단순히 단일색을 칠하고 덮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나아가, 색을 비우고 지우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여러 번 밑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손가락이나 도구를 이용해 긁어내거나 지우는 방식으로 화면에 균일하면서도 깊이 있는 질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한국 전통 옹기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단색화의 한국적 정신세계를 구현했다고 평가했으며, 에드워드 멀랭 갤러리의 로레인 멀랭 대표는 비우기와 지우기 작업을 통해 동양적 정신세계를 근본적으로 다루며 한국 단색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했다고 언급했다.

2.1. 초기 (1960년대)

1960년대에는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작업을 선보였다.

2.2. 과도기 (1970년대 초반)

1960년대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작업을 이어가던 조용익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이 시기에는 , 한복, 장구 등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반구상적인 형태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되는 단색화 작업으로 나아가기 전의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2.3. 단색화 시기 (1970년대 중반 ~ )

1960년대에는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 작업을 했고, 1970년대 들어서는 갓, 한복, 장구 등을 소재로 한 반 구상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단색화의 길로 들어섰다. 조용익은 한국 현대 추상회화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특히 단색화 작품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그의 단색화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단순히 화폭에 단일색을 칠하고 덮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색을 비우고 지우는 기법을 함께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7~8번 이상 밑칠을 한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손가락, 나이프, 붓 등을 이용해 밑색을 긁어내거나 지우고,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으로 균일하면서도 독특한 질감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조용익 화백의 작품은 한국 전통 옹기 문양인 지도문에서 영감을 받아 단색화의 한국적 정신세계를 잘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에드워드 멀랭 갤러리의 로레인 멀랭 대표는 "조용익은 한국 단색화 장르에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는 작가이며, 그의 비우기와 지우기 작업은 동양적 정신 세계를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언급했다.

3. 주요 활동 및 경력


조용익은 현대 미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현대 미술가 협회 회장, 파리 비엔날레 대한민국 대표 등을 역임하며 미술 단체 활동에 참여했고,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및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또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 추천 및 초대 작가로 참여하는 등 작가로서의 활동도 이어갔다. 그의 주요 직책, 교육 경력, 국전 관련 활동 등 상세한 내용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 주요 직책

👆
좌우로 밀어서 보기
기간직책
1958–1961년현대 미술가 협회 회장
1960년조선일보 현대 미술가 협회 심사위원
1962년악튀엘 위원회 위원장
1965–1968년젊은 미술상 심사위원
1965–1981년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초빙교수
1967년I.S.P.A.A.(국제 조형 및 시청각 미술 협회) 회장
1967–1969년제5-6회 파리 비엔날레 대한민국 대표
1973–1979년서울 '70 대표
1974–1992년추계예술대학교 교수
1974–1981년대한민국 국전(제23-30회) 추천 및 초대 작가
1977–1983년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3.2. 교육 경력

1965년부터 1981년까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초빙교수로,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3.3. 대한민국 국전 관련

1974년부터 1981년까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제23회부터 제30회까지 추천 작가 및 초대 작가로 활동하였다.

4. 전시 경력

(내용 없음)

4.1. 개인전

* 1974년 신세계 갤러리, 서울
* 1984년 신세계 갤러리, 서울
* 1990년 아르코미술관, 서울
* 2001년 종로 갤러리, 서울
* 2008년 한 갤러리, 서울
* 2008년 거홍 갤러리, 구리
* 2016년 성곡미술관, 서울
* 2016년 에두아르 말링그 갤러리, 홍콩

4.2. 그룹전 (일부)

* 1958 르뽕 3인전, 중앙공보관 (서울)
* 1961 제 2회 파리 비엔날레 (파리, 프랑스)
* 1967 제 9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상파울루, 브라질)
* 1974 제 3회 인도 트리엔날레 (인도)
* 1978 한국 현대미술 20년의 동향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1980 아시아현대미술전, 도쿄미술관 (도쿄, 일본)
* 1986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1990 한국미술 - 오늘의 상황전 개관기념전, 예술의 전당 (서울)
* 2000 한국과 서구의 전후 추상미술: 격정과 표현전, 호암갤러리 (용인)
* 2015 Fermented Soul - 광복 70주년 그룹전, 케이트 신 갤러리 (뉴욕)

5.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광주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워커힐 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