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총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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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방총감부는 1945년 일본 제국 정부가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기존의 도도부현 체제를 8개의 군관구 체제로 통폐합하고 각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 조직이다. 지방총감은 막강한 권한을 가졌으나, 공습의 격화로 인해 중앙 정부와 각 도도부현 간의 연락 기관 역할에 머물렀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과 함께 폐지되었으며, 지방행정사무국으로 대체되었다. 짧은 존속 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는 도주제 논의와 관련하여 선구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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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총감부 | |
---|---|
지방 총감부 정보 | |
유형 | 국방부 직할 부대 |
약칭 | 지총부 |
창설일 | 1955년 10월 1일 |
해체일 | 1962년 3월 31일 |
관할 지역 | 대한민국 전 지역 |
주요 임무 | 방첩 수사 계엄 사령부 기능 수행 |
상위 기관 | 대한민국 국방부 |
폐지 사유 | 정치적 악용 소지 방첩부대 창설 |
후신 | 국군방첩부대 |
역대 총감 | |
초대 총감 | 김창룡 |
2대 총감 | 송요찬 |
3대 총감 | 박정희 |
2. 역사적 배경
1945년, 미·영 연합군이 도쿄 등 일본 대도시에 공습을 가하고 오키나와를 점령하자, 일본 제국 정부는 연합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전국을 8개 군관구 체제로 개편하였다. 이들은 홋카이, 도후, 도호쿠, 주부, 도카이, 주고쿠, 시코쿠, 세이후 였다. 그리고 각 군관구의 수장으로 지방총감을 임명했다.[1]
지방총감은 관내 도도부현 지사들의 지휘권을 가져 관내 단체장에게 명령이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관내에 지방총감부령을 공포할 수 있었으며, 비상시에는 해당 지방의 육군 및 해군 사령관에게 출병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1] 그러나 공습이 격화되면서 관내 도도부현 지사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소집할 수 없었고, 도쿄의 중앙 정부와 각 도도부현과의 연락기관으로서의 역할에만 머물렀다.[1]
각 지방의 총감은 기존의 도도부현의 단체장보다 더 상위에 위치한 별개의 행정조직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관내 도도부현지사들의 지휘권을 가져 관내 단체장에게 명령이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관내에 지방총감부령을 하달할 수 있는 공포권, 그리고 비상사태시 해당 지방의 육·해군 사령관에게 출병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 등이 있었다.[1] 그러나 공습이 점차 격화되면서 관내의 도도부현 지사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소집할 수 없었고, 도쿄의 중앙 정부와 각 도도부현과의 연락기관으로서의 역할에만 머물렀다.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으로 일본이 항복한 후, 9월 28일 내각회의에서 지방총감부 폐지가 결의되었고, 11월 6일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승인을 거쳐 칙령 제627호에 따라 폐지되었다.[1] 지방총감부를 대신하여 지방행정사무국이 7곳에 설치되었지만(쇼와 20년 11월 6일 칙령 제622호), 홋카이도에는 설치되지 않았고, 홋카이도청 장관이 가라후토 및 홋카이도에서 행정의 종합 연락 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같은 날 칙령 제624호).[1]
1945년,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도쿄 등 일본 주요 도시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고 오키나와를 점령하면서, 일본 제국은 본토 상륙이 임박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일본 제국 정부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기존의 도도부현 행정 구역 체제를 8개 군관구 체제로 통합하고, 각 지역의 수장으로 지방총감을 임명했다.
[1]
뉴스
内地九地区創設、広域行政を実現
朝日新聞
1943-06-29
각 지방총감은 관내 도도부현지사 지휘권, 지방총감부령 공포권, 비상시 육·해군 사령관 출병 요청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공습 격화로 인해 관내 도도부현 지사 회의 소집이 어려워, 중앙 정부와 도도부현 간 연락기관 역할에 머물렀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오쓰카 이세이 주고쿠 지방총감이 사망했다. 같은 해 8월 15일 일본 항복 후, 9월 28일 내각회의에서 지방총감부 폐지가 결의되었고, 11월 6일 연합군 최고사령부 승인을 얻어 칙령에 따라 폐지되었다. 지방총감부 대신 지방행정사무국(地方行政事務局|지방행정사무국일본어)이 설치되었다.
지방총감부는 5개월여의 짧은 존속 기간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주제 논의에서 "도주제의 선구적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3. 권한 및 조직
지방총감부의 조직은 다음과 같았다.[2][3]직책 설명 지방총감 지방부총감 홋카이도 지방총감부와 시코쿠 지방총감부에는 설치되지 않음 참사관 각 부장에 해당 비서관 부참사관 사무관 속(屬)
내부 부국은 다음과 같았다.부서 담당 총감관방 제1부 정보, 치안, 방공 등 제2부 식량, 임산 등 제3부 국민의용대, 근로봉사 등
4. 목록
명칭 소재지 관할 구역 北海地方総監府|홋카이 지방총감부일본어 삿포로 홋카이도, 가라후토 東北地方総監府|도호쿠 지방총감부일본어 센다이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아키타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야마가타현 関東信越地方総監府|간토·신에쓰 지방총감부일본어 도쿄 도쿄도, 사이타마현, 야마나시현, 가나가와현, 지바현, 도치기현, 이바라키현, 군마현, 나가노현, 니가타현 東海北陸地方総監府|도카이·호쿠리쿠 지방총감부일본어 나고야 아이치현, 기후현, 시즈오카현, 미에현, 이시가와현, 도야마현 近畿地方総監府|긴키 지방총감부일본어 오사카 오사카부, 교토부, 시가현, 후쿠이현, 나라현, 와카야마현, 효고현 中国地方総監府|주고쿠 지방총감부일본어 히로시마 히로시마현, 시마네현, 야마구치현, 돗토리현, 오카야마현 四国地方総監府|시코쿠 지방총감부일본어 다카마쓰 가가와현, 도쿠시마현, 고치현, 에히메현 九州地方総監府|규슈 지방총감부일본어 후쿠오카 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
5. 지방총감
1945년(쇼와 20년) 8월 6일, 당시 히로시마에 소재하고 있던 주고쿠 지방총감 오쓰카 이세이가 원자폭탄 투하로 목숨을 잃었다.
각 지방 총감은 친임관이었다. 또한 지방 총감부 자체는 각 도도부현과는 별개의 독립된 조직이지만, 총감에 임명된 것은 대부분 총감부 소재지의 도도부현 지사의 직에 있던 인물이었으며, 특히 간토신에츠 지방 총감(関東信越地方総監)은 도쿄도 장관을 겸임했다.
지방 총감 목록은 다음과 같다.지방총감부 총감 비고 북해도 지방총감부 구마가이 겐이치(熊谷憲一) 도호쿠 지방총감부 마루야마 쓰루키치(丸山鶴吉) 관동신에츠 지방총감부 니시오 스에조(西尾寿造) (~ 8월 23일) ⇒ 히로세 히사타다(広瀬久忠) 도카이호쿠리쿠 지방총감부 오바타 타다요시(小畑忠良) 긴키 지방총감부 야스이 에이지(安井英二) 주고쿠 지방총감부 오쓰카 고이(大塚惟精) (~ 8월 6일) ⇒ 고다마 구이치(児玉九一) (8월 23일 ~) 시코쿠 지방총감부 기무라 마사요시(木村正義) 규슈 지방총감부 도츠카 구이치로(戸塚九一郎)
6. 폐지 및 그 이후
지방총감부는 존속 기간이 매우 짧아 지방 행정 조직으로 충분히 기능하지 못했지만, 최근 도주제 논의에서 "도주제의 선구적 존재"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1]
7. 평가 및 영향
각 지방총감은 기존 도도부현 지사보다 상위의 권한을 가진 별도 행정조직의 수장이었다. 이들은 관내 도도부현 지사 지휘, 지방총감부령 공포, 비상시 육군 및 해군 사령관에게 출병 요청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공습이 격화되면서 지방총감부는 도도부현 지사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 수 없었고, 중앙 정부와 도도부현 간 연락 기관 역할에 그쳤다.[1]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주코쿠 지방총감 오쓰카 이세이가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했다. 같은 해 8월 15일 옥음방송으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고, 9월 28일 내각회의에서 지방총감부 체제 폐지가 결의되었다. 11월 6일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승인을 거쳐 칙령에 따라 지방총감부는 폐지되고 지방행정사무국이 설치되었다.
지방총감부는 5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존속했지만, 최근 일본에서 도주제로 행정 체제를 전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도주제의 선구적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참조
[2]
웹사이트
地方総監府官制・御署名原本・昭和二十年・勅令第三五〇号
https://www.digital.[...]
2023-06-18
[3]
웹사이트
地方総監府|アジ歴グロッサリー
https://www.jacar.go[...]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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