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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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품실(Wunderkammer)은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희귀하고 특이한 물건들을 모아 전시하던 일종의 '경이의 방'이다. 자연사 표본, 예술 작품, 인공물 등을 한데 모아 소우주를 표현하고, 소장자의 권력과 지식을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8세기 이후에는 박물관의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현재는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현대 예술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암브라스 성의 호기심의 방이 있으며, 현대에는 휴스턴 자연과학 박물관, 쥬라기 기술 박물관 등에서 진품실의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호기심의 방은 16세기부터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18세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수집품 보관 장소를 넘어, 당시의 지식, 문화, 세계관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는 주로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자연사, 예술, 민족지학적 유물 등을 수집하고 전시했으며, 18세기 이후에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과학적인 분류와 체계적인 연구가 강조되면서 박물관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2. 역사
2. 1. 16세기 ~ 17세기
16세기와 17세기는 호기심의 방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 호기심의 방은 단순한 수집품 보관 장소를 넘어, 당대의 지식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페란테 임페라토의 ''Dell'Historia Naturale''(나폴리 1599)에 묘사된 자연사 캐비닛은 초기 호기심의 방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1587년, 가브리엘 칼테마르크트는 작센의 크리스티안 1세에게 "쿤스트캄머"(예술 컬렉션)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유형의 아이템을 조언했다. 첫째는 조각품과 그림, 둘째는 국내외의 기이한 품목, 셋째는 사슴뿔, 뿔, 발톱, 깃털 등 기이한 동물에 속하는 물건이었다.[5] 알브레히트 뒤러는 1521년 네덜란드 방문 시 미술 작품 외에도 다양한 동물의 뿔, 산호 조각, 물고기 지느러미, 동인도의 나무 무기 등을 뉘른베르크로 가져왔다.[6]
프란스 2세 프랑켄의 1636년 그림은 당시 호기심의 방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쿤스트캄머''는 흐라트차니에 있었으며, 알프스 북쪽에서는 비할 데 없는 규모였다. 이 방은 명상을 위한 공간이자, 외교관과 거물에게 제국의 웅장함과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11]
17세기의 대표적인 호기심의 방으로는 올레 웜과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컬렉션이 있다. -- 이들의 방에는 보존된 동물, 뿔, 상아, 해골, 광물뿐만 아니라 조각품, 시계 자동인형, 민족지학적 표본 등 다양한 인공물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웜의 수집품에는 스키타이 양이라고 생각했던 털이 많은 양치류가 있었지만, 그는 일각고래의 엄니가 유니콘이 아닌 고래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웜의 컬렉션을 인수하여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했으며, 표트르 대제는 17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쿤스트카메라를 설립했다. 합스부르크 제국 컬렉션에는 아즈텍 유물, 특히 몬테수마 2세의 깃털 머리 장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리프 하인호퍼는 17세기 초 복잡한 ''Kunstschränke''(예술 캐비닛)을 제작했다. 이 캐비닛은 가구의 의미에서 호화롭고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전체 코스모스를 축소된 규모로 반영하도록 의도된 내용과 장식적인 디테일로 채워졌다. 가장 잘 보존된 예는 1632년 아우크스부르크 시가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에게 준 것으로, 웁살라의 구스타비아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러한 호기심의 방들은 다양한 물건들을 병치하여 비교하고 유추하며, 정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역동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2. 2. 18세기 이후
17세기에 프랑스어와 영어에서 '캐비닛'은 예술 작품 컬렉션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virtù'의 물건이나 'virtuoso'가 지적으로 자극받을 수 있는 호기심의 모음도 포함될 수 있었다. 미하엘 베른하르트 발렌티니는 1714년에 초기 박물관학 저작인 《Museum Museorum》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는 그가 알고 있던 캐비닛에 대한 설명과 그 내용 목록이 담겨 있었다.[14]
18세기 후반, 벨사자 하케트 (c. 1735-1815)는 당시 카르니올라의 수도였던 류블랴나에서 자연사 캐비닛(Naturalienkabinetde)을 운영했다. 이곳은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았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 러시아 대공 파벨 1세, 교황 비오 6세를 비롯한 최고 귀족들과 Francesco Griseliniit, Franz Benedikt Hermannde과 같은 유명한 자연 과학자들이 방문했다. 이 캐비닛에는 이드리야 광산에서 채취한 수은 표본을 포함한 여러 광물, 4,000개 이상의 카르니올라 및 외국 식물 표본을 갖춘 ''herbarium vivum'', 소수의 동물 표본, 자연사 및 의학 도서관, 해부학 극장이 포함되었다.[14]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2003년 박물관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전 "왕실 도서관" 방에 설치되었다. 이 갤러리는 조개, 암석 표본, 식물 표본을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 작품 및 기타 인공물과 혼합하여 18세기 중반 박물관의 특징이었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5]
초기 보편적 컬렉션의 일부 갈래, 진품이든 가짜이든 기괴하거나 괴상한 생물학적 표본, 그리고 더 이국적인 역사적 물건들은 상업적인 괴물 쇼와 사이드 쇼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8세기 초, 진기하고 경이로운 표본들은 유럽의 자연철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연 내의 패턴과 시스템에 점차 더 큰 비중을 두면서, 변칙적인 현상과 희귀한 것들은 잠재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신성한 메시지이자 자연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던 진기한 것들은, 자연의 전반적인 통일성에 대한 저속한 예외로 간주되었다.[26]
2. 3. 영국
토마스 브라운을 방문한 궁정 신하 존 이블린은 그의 집과 정원을 희귀품으로 가득 찬 천국으로 묘사했다.[16] 브라운은 말년에 자신의 저서 Musaeum Clausum에서 수집 열풍을 풍자하기도 했다.
한스 슬론 경은 의학을 공부하며 영국과 프랑스에서 식물을 수집했고, 자메이카에서 15개월 동안 토착 식물, 동물, 인공 희귀품을 수집하여 목록화했다. 그는 800점 이상의 식물 표본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17] 슬론은 헤르만 보어하브, 윌리엄 찰턴, 레너드 플루케넷, 메리 서머셋 보퍼트 공작부인 (1630–1715), 아담 버들, 엥겔베르트 켐퍼, 제임스 페티버, 마크 케이츠비, 필립 밀러 등으로부터 컬렉션을 받아 방대한 기록을 만들었다.[18] 그는 북미 인디언, 이누이트 등 다양한 지역의 인공 희귀품도 획득했다.[19] 1753년 사망한 슬론은 자신의 컬렉션을 영국에 기증했고, 이는 대영 박물관의 기초가 되었다.[19]
존 트래드스칸트 시니어와 존 트래드스칸트 주니어 부자는 식물, 동물학적 표본, 인공 희귀품 등을 수집하여 사우스 램베스에 전시했다. '트래드스칸트의 방주(Tradescant's Ark)'는 영국 최초의 주요 호기심의 방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20]
엘리아스 애시몰은 트래드스칸트의 이웃으로, 방주 컬렉션의 카탈로그 출판을 후원하고 컬렉션을 인수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하여 애시몰린 박물관의 기초를 마련했다.[20]
호기심의 방은 시민 의식을 길러주는 장소로 여겨졌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전의 독단주의와 열정에 대한 반발로 해석되기도 한다.[21] 호기심 전시는 일반 대중을 끌어들여 예의 바른 담론에 적합한 주제로 만들었다.[21] 존 이블린은 왕립 학회를 "학식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명예로운 신사들의 모임"으로 묘사했다.[21]
2. 4. 미국
토머스 덴트 머터는 미국의 초기 재건 성형 외과 선구자로, 구순구개열, 굽은 발 등 선천성 기형을 치료했다. 그는 의학적 희귀 물품, 종양, 해부학적 및 병리학적 표본, 왁스 모델 등을 수집했는데, 이는 젊은 의사들을 위한 교육 도구로 시작되었다. 1859년 머터는 미국 의사 칼리지에 1,344개의 물품과 30000USD의 기부금을 기증했다. 머터의 컬렉션은 아이작 패리시 박사가 수집한 92개의 병리학적 표본에 추가되었다. 머터 박물관은 벤자민 러시의 의학용품 상자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재봉 키트를 포함한 골동품 의료 장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874년 박물관은 요제프 히르틀의 인간 두개골 100개, "비누 부인"으로 불리는 19세기 시체, 샴 쌍둥이 창 앤 엥 벙커의 결합된 간과 사망 캐스트, 1893년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턱 종양을 획득했다. 머터 박물관은 19세기의 기괴한 의학적 호기심 캐비닛의 훌륭한 예이다.[1]
P. T. 바넘은 뉴욕에 5층 규모의 바넘의 아메리칸 박물관을 설립하여 1860년대까지 속기 쉬운, 종종 느리게 움직이는 군중들을 위한 기이함의 원더카머 전통을 영속시켰다. 바넘의 유명한 교활하지만 효과적인 군중 통제 방법은 출구 문에 '이곳으로 나가세요!'라는 표지판을 게시하는 것이었다.[2]
1908년, 뉴욕 사업가들은 "경이의 캐비닛"과 선택된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50명으로 제한된 다이닝 클럽인 취미 클럽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문학 표본과 요람기 인쇄본, 고대 갑옷과 같은 골동품, 귀중한 돌 및 지질학적 관심 품목이 포함되었다. 연례 정식 만찬은 클럽의 다른 회원들이 다양한 컬렉션을 검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데 사용되었다.[3]
3. 주요 특징
thumb의 스터디올로 (베키오 궁전, 피렌체)]]
진품실(珍品室, Cabinets of curiosities)은 16세기 중반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다양한 종류의 진귀한 물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방이다. 한국어로는 진품실, 진기품실, 호기심의 방, 경이의 방 등으로 번역된다.
진품실은 크게 자연사, 인공물, 예술품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진품실은 단순한 수집품 전시 공간을 넘어, 소유자의 지적 호기심과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쿤스트캄머''는 그의 제국적 웅장함과 권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11] 잉글랜드의 찰스 1세의 컬렉션에 대해 피터 토마스는 "''쿤스트카비네트'' 자체는 일종의 선전이었다"고 평가했다.[13]
17세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캐비닛'이라는 용어가 예술 작품 컬렉션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여기에는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호기심의 대상도 포함되었다. 18세기 후반, 벨사자 하케트는 류블랴나에서 자연사 캐비닛(Naturalienkabinetde)을 운영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광물, ''herbarium vivum'', 동물 표본, 자연사 및 의학 도서관, 해부학 극장이 포함되었다.[14]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18세기 중반 박물관의 특징이었던 다양성을 재현하고자 한다.[15] 일부 초기 컬렉션은 상업적인 괴물 쇼와 사이드 쇼로 이어지기도 했다. 토마스 브라운은 그의 저서 Musaeum Clausum에서 수집 열풍을 풍자하기도 했다.
한스 슬론 경은 대영 박물관의 설립 기반이 된 방대한 컬렉션을 수집했다. 존 트래드스칸트 시니어와 존 트래드스칸트 주니어 부자는 영국 최초의 주요 호기심의 방인 '트래드스칸트의 방주'를 운영했다. 엘리아스 애시몰은 애시몰린 박물관의 기초가 된 컬렉션을 기증했다.
3. 1. 구성 및 전시 방식
페란테 임페라토의 ''델리스토리아 나투랄레''(나폴리, 1599년)에 실린 판화는 자연사 수집품을 보여주는 초기 그림 기록이다. 이 판화에서 방 오른쪽에는 중세 시대 방식대로 눕혀 쌓거나 등 부분이 위로 향한 채 있는 책들이 꽂힌 책장이 보인다. 이 책들 중 일부는 표본집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치형 천장은 보존된 물고기, 박제된 포유류, 조개 등으로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박제된 악어가 매달려 있다. 책장에는 산호 표본도 놓여 있다. 방 왼쪽은 스터디올로처럼 꾸며져 있는데, 복잡하게 맞춰진 벌집 모양 틈새와 광물 표본으로 채워진 내장형 캐비닛이 있다.[4] 그 위에는 대리석과 재스퍼가 박힌 패널 또는 박제된 새들이 놓인 벌집 모양 칸막이가 있다. 아래에는 표본 상자와 덮인 단지가 있는 찬장이 있다.
프란스 2세 프랑켄의 1636년 그림은 벽에 걸린 다양한 그림들과 보존된 열대 해양 어류, 조각된 구슬 끈(아마도 호박) 등을 보여준다. 고전 및 현대 조각, 세속 및 종교 조각이 표현되어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이국적인 조개, 초상화 미니어처, 보석, 명암법 목판화, 정물화, 동전과 메달, 로마 테라코타 오일 램프, 중국 스타일의 황동 자물쇠, 명나라 도자기 그릇 등이 놓여 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1576-1612년 통치)의 ''쿤스트캄머''는 프라하의 흐라트차니에 있었으며, 명상과 휴식의 장소이자 제국의 웅장함과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11] 루돌프 2세의 삼촌인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컬렉션은 암브라스 성의 예술과 호기심의 방에 보관되어 있으며, 기형을 가진 사람들의 그림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12]
3. 2. 소장품
페란테 임페라토의 ''델리스토리아 나투랄레''(나폴리, 1599년) 판화는 자연사 수집품에 대한 초기 그림 기록을 보여준다. 이 판화에서 책의 저자는 자신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책장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중세 시대 방식대로 눕혀져 쌓인 책들이 있다. 책들 중 일부는 그의 표본집을 나타낸다. 천장은 보존된 물고기, 박제된 포유류, 조개 등으로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박제된 악어가 매달려 있다. 책장에는 산호 표본이 놓여 있다. 방의 왼쪽은 ''스터디올로''처럼 꾸며져 있으며, 광물 표본으로 채워진 캐비닛이 있다.[4] 위에는 대리석과 재스퍼가 박힌 패널과 박제된 새들이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표본 상자와 덮인 단지가 있는 찬장이 있다.
1587년 가브리엘 칼테마르크트는 작센의 크리스티안 1세에게 "쿤스트캄머"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유형의 아이템을 조언했다. 첫째는 조각품과 그림, 둘째는 국내외의 기이한 품목, 셋째는 동물 관련 물건이었다.[5] 알브레히트 뒤러는 1521년 네덜란드 방문 시 미술 작품 외에도 다양한 동물의 뿔, 산호 조각, 물고기 지느러미, 동인도의 나무 무기를 뉘른베르크로 보냈다.[6]
프란스 2세 프랑켄의 1636년 그림은 다양한 종류의 그림, 보존된 열대 해양 어류, 조각된 구슬 끈, 고전 및 현대 조각, 이국적인 조개, 초상화 미니어처, 보석, 명암법 목판화, 정물화, 동전과 메달, 로마 테라코타 오일 램프, 중국 스타일의 황동 자물쇠, 파란색과 흰색 명나라 도자기 그릇 등을 보여준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 (1576-1612년 통치)의 ''쿤스트캄머''는 프라하의 흐라트차니에 있었으며, 그의 제국의 웅장함과 권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11] 루돌프의 삼촌인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암브라스 성에 컬렉션을 보관했는데, 특히 기형을 가진 사람들의 그림에 중점을 두었다.[12] 잉글랜드의 찰스 1세의 컬렉션에 대해 피터 토마스는 "''쿤스트카비네트'' 자체는 일종의 선전이었다"고 말했다.[13]
17세기 호기심의 방에는 보존된 동물, 뿔, 상아, 해골, 광물뿐만 아니라 조각품, 시계 자동인형, 민족지학적 표본 등 다양한 인공물들이 있었다. 종종 사실과 허구가 섞여 신화 속 생물을 포함하기도 했다. 올레 웜의 수집품에는 스키타이 양이라고 생각했던 털이 많은 양치류가 있었지만, 일각고래의 엄니가 유니콘이 아닌 고래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호기심의 방은 그것을 만들고 유지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었다. 많은 군주들이 대규모 컬렉션을 개발했다.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웜의 컬렉션을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했다. 표트르 대제는 17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쿤스트카메라를 설립했다. 합스부르크 제국 컬렉션에는 아즈텍 유물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비엔나 민족학 박물관에 있는 몬테수마 2세의 깃털 머리 장식이 있었다.
필리프 하인호퍼는 17세기 초 복잡한 ''Kunstschränke''를 제작했다. 이것은 전체 코스모스를 축소된 규모로 반영하도록 의도된 캐비닛이었다. 가장 잘 보존된 예는 웁살라의 구스타비아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호르스트 브레데캄프에 따르면, 이러한 이질적인 물건들의 병치는 비교를 장려하고, 유추와 유사점을 찾고, 정적인 세계관에서 역동적인 관점으로의 문화적 변화를 선호했다.
18세기 후반, 벨사자 하케트는 류블랴나에서 자연사 캐비닛(Naturalienkabinetde)을 운영했다. 여기에는 여러 광물, ''herbarium vivum'', 동물 표본, 자연사 및 의학 도서관, 해부학 극장이 포함되었다.[14]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18세기 중반 박물관의 특징이었던 다양성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5] 초기 컬렉션의 일부는 상업적인 괴물 쇼와 사이드 쇼에서 자리를 잡았다.
토마스 브라운은 자신의 저서 Musaeum Clausum에서 수집 열풍을 풍자했다.
한스 슬론 경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식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687년, 자메이카에서 토착 식물, 동물, 인공적인 희귀품을 수집하고 목록화했다. 이것은 그의 저서 ''자메이카의 자연사''의 기초가 되었다. 슬론은 1689년 800점 이상의 식물 표본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또한 살아있는 동물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모두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17]
슬론은 자신의 컬렉션에 있는 대부분의 표본과 물건에 대해 세심하게 기록했다. 그는 또한 선물이나 구매를 통해 다른 컬렉션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헤르만 보어하브, 윌리엄 찰턴, 레너드 플루케넷, 메리 서머셋 보퍼트 공작부인 (1630–1715), 아담 버들, 엥겔베르트 켐퍼, 제임스 페티버, 마크 케이츠비, 필립 밀러 등으로부터 컬렉션을 받거나 구입했다.[18] 슬론은 북미 인디언, 이누이트, 남아메리카, 라플란드, 시베리아, 동인도 제도, 서인도 제도에서 약 350개의 인공 희귀품을 획득했다.[19] 1753년 사망한 슬론은 방대한 컬렉션을 영국에 기증했다. 1759년, 조지 2세의 왕립 도서관이 슬론의 컬렉션에 추가되어 대영 박물관의 기초를 형성했다.
존 트래드스칸트 시니어는 정원사, 박물학자, 식물학자였다. 그는 여러 지역에서 식물, 구근, 꽃 등을 수집했다. 그의 아들 존 트래드스칸트 주니어는 버지니아를 여행하여 꽃, 식물, 조개, 인디언 사슴 가죽 망토 등을 수집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식물 표본 외에도 동물학적 표본, 인공 희귀품, 희귀품 등을 수집했다. 1630년대에 트래드스칸트는 사우스 램베스에 있는 그들의 거주지에서 이국적인 컬렉션을 전시했다. 트래드스칸트의 방주(Tradescant's Ark)로 알려지게 된 이 방주는 영국 최초의 주요 호기심의 방이었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20]
엘리아스 애시몰은 변호사, 화학자, 골동품 수집가, 프리메이슨, 점성술, 연금술, 식물학에 관심을 가진 왕립 학회 회원이었다. 애시몰은 1656년 방주 컬렉션의 카탈로그인 ''Musaeum Tradescantianum''의 출판을 후원했다. 애시몰은 1659년에 트래드스칸트 방주를 인수하여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했다. 1675년, 그는 자신의 도서관과 컬렉션, 그리고 트래드스칸트 컬렉션을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했다. 애시몰의 기증은 옥스퍼드의 애시몰린 박물관의 기초를 형성했다.[20]
자연 지식을 장려하는 전시 장소와 새로운 학회는 완벽한 시민 의식이라는 아이디어를 길러주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잉글랜드 내전과 인터레굼[sic]의 독단주의와 열정에 대한 반발"이라고 제안한다.[21]" 호기심의 전시회는 더 광범위한 청중을 끌어들였다.[21] 전시된 호기심과 함께 너무 많은 다른 자료 증거가 동반되면 예의 바른 담론에 덜 적합한 주제로 간주되었다. 퀸틴 스키너는 초기 왕립 학회를 "신사 클럽과 매우 흡사한 존재"[21]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존 이블린이 왕립 학회를 "많은 명예로운 신사들의 모임"으로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21]
호기심의 방은 현재 스노우실 매너와 월링턴 홀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애시몰린 박물관은 애시몰과 트래드스칸트의 서로 다른 창립 컬렉션에서 가져온 항목을 전시하고 있다.
토머스 덴트 머터는 미국의 초기 재건 성형 외과 선구자였다. 그는 의학적 희귀 물품, 종양, 해부학적 및 병리학적 표본 등을 수집했다. 이 컬렉션은 젊은 의사들을 위한 교육 도구로 시작되었다. 1859년 머터가 사망하기 직전, 그는 미국 의사 칼리지에 1,344개의 물품과 기부금을 기증했다. 머터 박물관은 1871년에 골동품 의료 장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874년 박물관은 요제프 히르틀의 인간 두개골 100개, "비누 부인", 창 앤 엥 벙커의 결합된 간과 사망 캐스트,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턱 종양을 획득했다. 머터 박물관은 19세기의 기괴한 의학적 호기심 캐비닛의 훌륭한 예이다.
P. T. 바넘은 뉴욕에 바넘의 아메리칸 박물관을 설립하여 "1860년대까지 속기 쉬운 군중들을 위한 기이함의 원더카머 전통을 영속시켰다."
1908년, 뉴욕 사업가들은 취미 클럽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문학 표본과 요람기 인쇄본, 고대 갑옷, 귀중한 돌 및 지질학적 관심 품목이 포함되었다. 연례 정식 만찬은 클럽의 다른 회원들이 다양한 컬렉션을 검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데 사용되었다.
4. 현대적 의의 및 영향
호기심의 방은 근대 박물관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중반,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조개, 암석, 식물 표본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과 인공물을 혼합하여 당시 박물관의 풍요로움을 재현하고자 했다.[15] 초기 컬렉션 중 일부는 상업적인 괴물 쇼나 사이드 쇼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토머스 덴트 머터는 의학적 희귀 물품, 종양, 해부학적 및 병리학적 표본 등을 수집했고, 이는 머터 박물관의 기반이 되었다. 머터 박물관은 19세기의 기괴한 의학적 호기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P. T. 바넘은 바넘의 아메리칸 박물관을 통해 기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원더카머 전통을 이어갔다. 1908년 뉴욕에서는 취미 클럽이 결성되어 문학, 골동품, 귀중품 등을 전시했다.
18세기 초, 진기하고 경이로운 표본들은 유럽의 자연철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줄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연 내의 패턴과 시스템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변칙적인 현상과 희귀한 것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는 신성한 메시지이자 자연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던 진기한 것들은, 자연의 전반적인 통일성에 대한 예외로 간주되었다.[26]
현대에 들어서도 호기심의 방은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휴스턴 자연과학 박물관은 직접 체험형 진품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쥬라기 기술 박물관은 과거의 경이로움을 재현하고자 한다.[27] 바위 위의 집과 무제 파타메카니크는 자동인형 등을 통해 현대적인 진품실을 구현하고 있다.
잡지 ''캐비닛''은 문화적 유물과 현상을 병치하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탈리아 문화 협회인 Wunderkamern은 역사적인 진품실의 테마를 현대 예술 담론에 적용한다.[28] 리즈 대학교는 2008년 "Wunder Kammer" 전시회를 개최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29]
빅토르 윈드 호기심 박물관, 미술 및 자연사 박물관과 랭커셔주 로튼스톨의 더 휘태커 박물관 & 미술관[31]은 진품실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이다.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와 같은 비디오 사이트도 현대판 분더캄머(wunderkammern)로 볼 수 있다.[32]
4. 1. 근대 박물관의 전신
페란테 임페라토의 ''델리스토리아 나투랄레''(나폴리 1599)에 실린 판화는 자연사 수집품을 보여주는 초기 그림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책장을 보여주는데, 중세 시대 방식대로 책들이 눕혀져 쌓여 있거나 등 부분이 위로 향해 있다. 책들 중 일부는 표본집을 나타낸다. 천장은 보존된 물고기, 박제된 포유류, 조개 등으로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박제된 악어가 매달려 있다. 산호는 책장에 놓여 있다.[4] 왼쪽에는 ''스터디올로''처럼 꾸며진 방이 있는데, 광물 표본으로 채워진 캐비닛이 있다.[4] 그 위에는 광택 석재 표본, 박제된 새들이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표본 상자와 단지가 있는 찬장이 있다.
1587년 가브리엘 칼테마르크트는 작센의 크리스티안 1세에게 "쿤스트캄머"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유형의 아이템을 조언했다. 첫째는 조각품과 그림, 둘째는 "국내 또는 해외에서 온 기이한 품목", 셋째는 "사슴뿔, 뿔, 발톱, 깃털 및 기이하고 신기한 동물에 속하는 기타 물건"이었다.[5] 알브레히트 뒤러는 1521년 네덜란드 방문 시 미술 작품 외에도 다양한 동물의 뿔, 산호 조각, 물고기 지느러미, 동인도의 나무 무기를 뉘른베르크로 보냈다.[6]
프란스 2세 프랑켄의 1636년 그림은 풍경화, 인물화, 종교화(''마법사들의 경배'') 등 다양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보존된 열대 해양 어류, 조각된 구슬 끈, 고전적 조각과 세속적 조각(희생하는 ''리베라''),[7] 현대적이고 종교적인 조각(''기둥에 있는 그리스도'')[8]도 표현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이국적인 조개, 초상화 미니어처, 보석, 명암법 목판화 또는 드로잉, 작은 정물화,[9] 동전과 메달, 로마 테라코타 오일 램프, 중국 스타일의 황동 자물쇠, 기이한 플라스크, 명나라 도자기 그릇 등이 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 (1576-1612년 통치)의 ''쿤스트캄머''는 프라하의 흐라트차니에 있었으며, 알프스 북쪽에서는 비할 데가 없었다. 이 방은 명상을 위한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고, 방문하는 외교관과 거물에게 그의 제국의 웅장함과 권력을 보여주는 역할도 했다.[11]
루돌프의 삼촌인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도 재무관인 레오폴트 헤이페르거가 조직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기형을 가진 사람들의 그림에 중점을 두었으며, 오스트리아 암브라스 성의 예술과 호기심의 방으로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쿤스트캄머는 소우주 또는 세계의 극장, 기억의 극장으로 간주되었다. 쿤스트캄머는 실내의 미세한 복제를 통해 후원자의 세계 통제를 상징적으로 전달했다."[12] 잉글랜드의 찰스 1세의 컬렉션에 대해 피터 토마스는 "''쿤스트카비네트'' 자체는 일종의 선전이었다"고 말한다.[13]
17세기 유명한 호기심의 방으로는 올레 웜과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방이 있었다. 이 방에는 보존된 동물, 뿔, 상아, 해골, 광물뿐만 아니라 조각품, 시계 자동인형, 민족지학적 표본 등 다양한 인공물들이 있었다. 종종 사실과 허구를 섞어 신화 속 생물을 포함하기도 했다. 웜의 수집품에는 스키타이 양이라고 생각했던 털이 많은 양치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각고래의 엄니가 유니콘이 아닌 고래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냈다. 전시된 표본은 탐험 원정과 무역 항해 중에 수집되는 경우가 많았다.
호기심의 방은 그 내용의 이미지가 출판될 때 종종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Museum Wormianum''(1655)으로 출판된 웜의 컬렉션 목록은 웜이 철학, 과학, 자연사 등에 대한 추론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호기심의 방은 그것을 만들고 유지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었다. 특히 많은 군주들이 대규모 컬렉션을 개발했다. 프란체스코 1세의 스튜디오는 예술 분야에서 더 강력한 예시였다.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웜 사후 웜의 컬렉션을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했다. 표트르 대제가 17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설립한 쿤스트카메라도 그러한 예시이다. 많은 품목은 알베르투스 세바와 프레데리크 루이스로부터 암스테르담에서 구입했다. 합스부르크 제국 컬렉션에는 아즈텍 유물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현재 비엔나 민족학 박물관에 있는 몬테수마 2세의 깃털 머리 장식 또는 왕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리프 하인호퍼가 제작한 ''Kunstschränke''는 복잡한 캐비닛으로, 전체 코스모스를 축소된 규모로 반영하도록 의도되었다. 가장 잘 보존된 예는 1632년 아우크스부르크 시가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에게 준 것으로, 웁살라의 구스타비아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대의 단일 가구인 호기심의 방은 더 웅장한 역사적 예의 변형이다.
호르스트 브레데캄프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이질적인 물건들의 병치는 비교를 장려하고, 유추와 유사점을 찾고, 정적인 세계관에서 역동적인 관점으로의 문화적 변화를 선호했다. 이는 17세기에 현실에 대한 과학적 관점의 씨앗으로 이어졌다.
17세기에 '캐비닛'은 예술 작품 컬렉션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virtù'의 물건이나 'virtuoso'가 지적으로 자극받을 수 있는 호기심의 모음이 포함될 수 있었다. 1714년, 미하엘 베른하르트 발렌티니는 초기 박물관학 저작인 《Museum Museorum》을 출판했는데, 이는 그가 알고 있는 캐비닛에 대한 설명과 그 내용의 목록을 담고 있었다.
18세기 후반, 벨사자 하케트는 류블랴나에서 자연사 캐비닛(Naturalienkabinetde)을 운영했다. 여기에는 이드리야 광산의 수은 표본을 포함한 광물, ''herbarium vivum'', 동물 표본, 자연사 및 의학 도서관, 해부학 극장이 포함되었다.[14]
자연 재료와 인공물의 병치의 후기 예는 아우구스투스 2세가 드레스덴에 만든 "그리네 게뵐베"에서 제공된다.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18세기 중반 박물관의 특징이었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5]
초기 보편적 컬렉션의 일부 갈래, 진품이든 가짜이든 기괴하거나 괴상한 생물학적 표본, 그리고 더 이국적인 역사적 물건들은 상업적인 괴물 쇼와 사이드 쇼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671년, 존 이블린은 토마스 브라운의 집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브라운은 말년에 자신의 저서 Musaeum Clausum에서 수집 열풍을 풍자했다.
한스 슬론 경은 의학을 공부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 식물을 수집했다. 1687년, 올버마르 공작은 슬론에게 자메이카의 서인도 함대 개인 주치의 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15개월 동안 자메이카의 토착 식물, 동물, 인공적인 희귀품을 수집하고 목록화했다. 이것은 그의 2권짜리 저서 ''자메이카의 자연사''의 기초가 되었다. 슬론은 1689년 800점 이상의 식물 표본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또한 살아있는 동물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모두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17]

슬론은 자신의 컬렉션에 있는 대부분의 표본과 물건에 대해 세심하게 기록하고 방대한 기록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선물이나 구매를 통해 다른 컬렉션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헤르만 보어하브는 그에게 4권의 식물 표본을 주었다. 윌리엄 찰턴은 유증으로 슬론에게 잡다한 박물관을 주었다. 슬론은 1710년에 레너드 플루케넷의 컬렉션을 구입했다. 메리 서머셋 보퍼트 공작부인 (1630–1715)은 1714년 사망하면서 12권의 표본집을 그에게 남겼다. 아담 버들 목사는 슬론에게 13권의 영국 식물 표본을 주었다. 1716년, 슬론은 엥겔베르트 켐퍼의 일본 식물 책과 제임스 페티버의 식물 약 100권으로 구성된 가상 박물관을 구입했다. 마크 케이츠비는 북미와 서인도 제도에서 가져온 식물을 그에게 주었다. 필립 밀러는 첼시 약용 정원에서 재배한 12권의 식물을 그에게 주었다.[18]
슬론은 북미 인디언, 이누이트, 남아메리카, 라플란드, 시베리아, 동인도 제도, 서인도 제도에서 약 350개의 인공 희귀품을 획득했으며, 자메이카에서 가져온 9개의 품목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민족지학적 유물은 제임스 쿡 선장의 오세아니아와 호주 탐험과 대영 제국의 급속한 확장을 통해 크게 증가할 대영 박물관 수집 분야를 확립했기 때문에 중요했다."[19]
1753년 사망한 슬론은 337권의 방대한 컬렉션을 영국에 20000GBP에 기증했다. 1759년, 조지 2세의 왕립 도서관이 슬론의 컬렉션에 추가되어 대영 박물관의 기초를 형성했다.
존 트래드스칸트 시니어는 정원사, 박물학자, 식물학자였다. 그는 러시아, 레반트, 알제, 프랑스, 버뮤다, 카리브해, 동인도 제도에서 식물, 구근, 꽃 등을 수집했다. 그의 아들 존 트래드스칸트 주니어는 1637년 버지니아를 여행하여 꽃, 식물, 조개, 포카혼타스의 아버지인 포우하탄이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디언 사슴 가죽 망토를 수집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식물 표본 외에도 동물학적 표본, 인공 희귀품 및 희귀품을 수집했다. 1630년대에 트래드스칸트는 사우스 램베스에 있는 그들의 거주지에서 이국적인 컬렉션을 전시했다. 트래드스칸트의 방주(Tradescant's Ark)로 알려지게 된 이 방주는 영국 최초의 주요 호기심의 방이었고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20]
엘리아스 애시몰은 변호사, 화학자, 골동품 수집가, 프리메이슨, 점성술, 연금술, 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왕립 학회 회원이었다. 애시몰은 또한 램베스에서 트래드스칸트의 이웃이기도 했다. 그는 1656년 방주 컬렉션의 카탈로그인 ''Musaeum Tradescantianum''의 출판을 후원했다. 애시몰은 자신의 수집가로서 1659년에 트래드스칸트 방주를 인수하여 점성술, 의학, 역사 원고 컬렉션에 추가했다. 1675년, 그는 자신의 도서관과 컬렉션, 그리고 트래드스칸트 컬렉션을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했으며, 컬렉션을 보관할 적절한 건물을 제공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애시몰의 기증은 옥스퍼드의 애시몰린 박물관의 기초를 형성했다.[20]
자연 지식을 장려하는 전시 장소와 새로운 학회는 완벽한 시민 의식이라는 아이디어를 길러주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잉글랜드 내전과 인터레굼[sic]의 독단주의와 열정에 대한 반발"이라고 제안한다.[21]" 이러한 예의 바름으로의 전환은 사회적 행동 및 상호 작용 방식에 제한을 가하여, 예의 바른 사람과 사회의 평범하거나 더 저속한 구성원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 호기심의 전시회는 더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청중을 끌어들였으며, 이는 "그들을 학회에서 예의 바른 담론에 더 적합한 주제로 만들었다."[21]
전시된 호기심과 함께 너무 많은 다른 자료 증거가 동반되면 예의 바른 담론에 덜 적합한 주제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전시된 호기심에 대한 추측과 아이디어 탐구를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시물은 현상에 대한 간결한 설명만 포함하고 현상에 대한 설명을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퀸틴 스키너는 초기 왕립 학회를 "신사 클럽과 매우 흡사한 존재"[21]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존 이블린이 왕립 학회를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21]
호기심의 방은 현재 스노우실 매너와 월링턴 홀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애시몰린 박물관은 애시몰과 트래드스칸트의 서로 다른 창립 컬렉션에서 가져온 항목을 전시하고 있다.
토머스 덴트 머터는 미국의 초기 재건 성형 외과 선구자였다. 그의 전문 분야는 선천성 기형, 구순구개열, 굽은 발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의학적 희귀 물품, 종양, 해부학적 및 병리학적 표본 등을 수집했다. 이 컬렉션은 젊은 의사들을 위한 교육 도구로 시작되었다. 1859년 머터가 사망하기 직전,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의사 칼리지에 1,344개의 물품과 박물관 유지 및 확장을 위한 30000USD의 기부금을 기증했다. 머터의 컬렉션은 1849년에서 1852년 사이에 아이작 패리시 박사가 수집한 92개의 병리학적 표본에 추가되었다. 머터 박물관은 1871년에 벤자민 러시의 의학용품 상자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재봉 키트를 포함한 골동품 의료 장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874년 박물관은 요제프 히르틀의 인간 두개골 100개, "비누 부인"으로 불리는 19세기 시체, 샴 쌍둥이 창 앤 엥 벙커의 결합된 간과 사망 캐스트, 1893년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턱 종양을 획득했다. 머터 박물관은 19세기의 기괴한 의학적 호기심 캐비닛의 훌륭한 예이다.
P. T. 바넘은 뉴욕에 5층 규모의 바넘의 아메리칸 박물관을 설립하여 "1860년대까지 속기 쉬운, 종종 느리게 움직이는 군중들을 위한 기이함의 원더카머 전통을 영속시켰다. 바넘의 유명한 교활하지만 효과적인 군중 통제 방법은 출구 문에 '이곳으로 나가세요!'라는 표지판을 게시하는 것이었다."
1908년, 뉴욕 사업가들은 "경이의 캐비닛"과 선택된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50명으로 제한된 다이닝 클럽인 취미 클럽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문학 표본과 요람기 인쇄본, 고대 갑옷과 같은 골동품, 귀중한 돌 및 지질학적 관심 품목이 포함되었다. 연례 정식 만찬은 클럽의 다른 회원들이 다양한 컬렉션을 검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데 사용되었다.
18세기 초, 진기하고 경이로운 표본들은 유럽의 자연철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연 내의 패턴과 시스템에 점차 더 큰 비중을 두면서, 변칙적인 현상과 희귀한 것들은 잠재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신성한 메시지이자 자연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던 진기한 것들은, 자연의 전반적인 통일성에 대한 저속한 예외로 간주되었다.[26]
4. 2. 현대의 재해석
18세기 중반, 대영 박물관의 "계몽 갤러리"는 조개, 암석, 식물 표본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과 인공물을 혼합하여 18세기 박물관의 풍요로움을 재현하고자 했다.[15]초기 컬렉션 중 일부는 상업적인 괴물 쇼나 사이드 쇼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토머스 덴트 머터는 의학적 희귀 물품, 종양, 해부학적 및 병리학적 표본 등을 수집했고, 이는 머터 박물관의 기반이 되었다. 머터 박물관은 19세기의 기괴한 의학적 호기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14]
P. T. 바넘은 바넘의 아메리칸 박물관을 통해 기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원더카머 전통을 이어갔다.[14] 1908년 뉴욕에서는 취미 클럽이 결성되어 문학, 골동품, 귀중품 등을 전시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호기심의 방은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휴스턴 자연과학 박물관은 직접 체험형 진품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쥬라기 기술 박물관은 과거의 경이로움을 재현하고자 한다.[27] 바위 위의 집과 무제 파타메카니크는 자동인형 등을 통해 현대적인 진품실을 구현하고 있다.
잡지 ''캐비닛''은 문화적 유물과 현상을 병치하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탈리아 문화 협회인 Wunderkamern은 역사적인 진품실의 테마를 현대 예술 담론에 적용한다.[28] 리즈 대학교는 2008년 "Wunder Kammer" 전시회를 개최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29]
빅토르 윈드 호기심 박물관, 미술 및 자연사 박물관과 랭커셔주 로튼스톨의 더 휘태커 박물관 & 미술관[31]은 진품실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이다.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와 같은 비디오 사이트도 현대판 분더캄머(wunderkammern)로 볼 수 있다.[32]
5. 현존하는 호기심의 방
6. 재현 전시실
올레 웜의 '경이의 방'을 충실히 재현한 전시가 사진작가 로자먼드 W. 퍼셀에 의해 제작되어, 산타모니카 미술관에 설치되었고, 2011년 이후에는 코펜하겐 시의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7. 주요 소장처
- 애슈몰린 박물관 (옥스퍼드) - 엘라이어스 애슈몰과 존 트라데스칸트 더 영거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20]
- 보어하브 박물관 (레이던)
- 대영 박물관 (런던) - 한스 슬론 경을 비롯한 여러 수집가들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 암브라스 성의 예술 및 진기품의 방 -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데롤 (파리)
- 칼베 재단 (아비뇽)
- 그뤼네스 게뵐베 (드레스덴)
- 쿤스트카메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 피트 리버스 박물관 (옥스퍼드, 잉글랜드) - 전 애슈몰린 박물관의 도도새가 전시되어 있다.
- 테일러스 박물관 (하를렘)
- 폴디 페촐리 박물관 (밀라노)
- 월드 박물관 (리버풀) - 제13대 더비 백작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The Origins of Museums: The Cabinet of Curiosities in Sixteenth- and Seventeenth-Century Europe
Oxford University Press
[2]
웹사이트
Singular and the Making of Knowledge at the Royal Society of London in the Eighteenth Century
http://site.ebrary.c[...]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14-12-09
[3]
문서
"Studiolo'': the small retreats in the palaces of Urbino and Gubbio were inlaid with [[intarsia]] that figured just such fitted cabinets with feigned lattice doors and shelves filled with scientific instruments, books and small sculptures in ''trompe-l'oeil'' perspective. The Gubbio ''studiolo'' has been reassembled at the [[Metropolitan Museum]]; the Urbino ''studiolo'' remains in situ."
[4]
문서
Sixteenth-century cabinet-makers serving the luxury trades of [[Florence]] and [[Antwerp]] were beginning to produce moveable cabinets with similar architectural interior fittings, which could be set upon a carpet-covered table or on a purpose-built stand.
[5]
문서
B. Gutfleish and J. Menzhausen, "How a Kunstkammer Should Be Formed", ''Journal of the History of Collections'', 1989 Vol I: p. 11.
[6]
문서
A Hyatt Mayor, ''Prints and People'', Metropolitan Museum of Art/Princeton, 1971, nos 48.
[7]
문서
Her base is inscribed LIBER[A]
[8]
문서
It appears to represent a reduction of a well-known sculpture by [[Alessandro Algardi]].
[9]
문서
Still life was considered a [[hierarchy of genres|lesser genre]] than even portraits or landscapes.
[10]
문서
This is the secretive aspect emphasised by R. J. W. Evans, ''Rudolf II and His World: A Study in Intellectual History'' (Oxford) 1973.
[11]
문서
Thomas DaCosta Kaufmann, "Remarks on the Collections of Rudolf II: The Kunstkammer as a Form of ''Representatio''", ''Art Journal'' '''38'''.1 (Autumn 1978:22–28).
[12]
문서
Francesaco Fiorani, reviewing Bredecamp 1995 in ''Renaissance Quarterly'' '''51'''.1 (Spring 1998:268-270) p 268.
[13]
문서
Thomas, "Charles I of England: The tragedy of Absolutism", A.G. Dickens, ed. ''The Courts of Europe'' (London) 1977:201.
[14]
간행물
Ljubljanske "knjige sveta" od Auerspergov do Hacqueta
http://www.dlib.si/d[...]
2015-05-27
[15]
웹사이트
Enlightenment Gallery at the British Museum
https://www.britishm[...]
Britishmuseum.org
2011-12-22
[16]
문서
''Diary of John Evelyn'', entry dated 17th October 167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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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Edward P. ''Museum Masters: Their Museums and Their Influence'', (Walnut Creek, London, New Delhi: AltaMira Press, 1995), 20–42; Clark, Jack A. " Sir Hans Sloane and Abbé Jean Paul Bignon: Notes on Collection Building in the Eighteenth Century," in ''The Library Quarterly'', Vol. 50, No. 4 (October 1980), 475–482; de Beer, G. R. "Sir Hans Sloane, F.R.S 1660–1753," i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Vol. 10, No. 2 (April 1953), 81–84; and [[Kay Dian Kriz|Kriz, Kay Dian]]. "Curiosities, Commodities, and Transplanted Bodies in Hans Sloane's "Natural History of Jamaica", in ''The William and Mary Quarterly'', Third Series, Vol. 57, No. 1 (January 2000), 35–78.
[18]
문서
Alexander, Edward P. ''Museum Masters: Their Museums and Their Influence'', (Walnut Creek, London, New Delhi: AltaMira Press, 1995), 20–42; de Beer, G. R. "Sir Hans Sloane, F.R.S 1660–1753," i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Vol. 10, No. 2 (April 1953), 81–84; Gray, Basil. "Sloane and the Kaempfer Collection," in ''[[British Museum Quarterly|The British Museum Quarterly]]'', Vol. 18, No. 1, Sir Hans Sloane (March 1953), 20–23; and "The Sloane Collection of Manuscripts" in ''[[British Museum Quarterly|The British Museum Quarterly]]'', Vol. 18, No. 1, Sir Hans Sloane (March 1953), 6–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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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Edward P. ''Museum Masters: Their Museums and Their Influence'', (Walnut Creek, London, New Delhi: AltaMira Press, 1995), 31.
[20]
문서
Ivins, Jr., William M. "The Tradescant Collection",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ulletin'', Vol. 20, No. 8 (August 1925), 194–197; Josten, C.H. ''Elias Ashmole (1617–1692): His Autobiographical and Historical Notes, His Correspondence, and Other Contemporary Sources Relating to His Life and Work: Texts, 1661–1672'', (Oxford: Clarendon, 1967); Leith-Ross, Prudence. ''The John Tradescants: Gardeners to the Rose and Lily Queen'', (London: Peter Owen, 2006); MacGregor, Arthur. ''Tradescant's Rarities: Essays on the Foundation of the Ashmolean Museum 1683; with a Catalogue of the Surviving Early Collec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Potter, Jennifer. ''Strange Blooms: The Curious Lives and Adventures of the John Tradescants'', (London: Atlantic, 2006)
[21]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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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e.ebrary.c[...]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14-12-0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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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ollphyph[...]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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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dieart[...]
MundieArt.com
2013-03-17
[24]
웹사이트
Catalog of Curiosities
https://www.wsj.com/[...]
Wall Street Journal
2013-01-01
[25]
문서
According to its constitution, "This Club shall be called THE HOBBY CLUB. The object of the Club shall be to encourage the collection of literary, artistic and scientific works; to aid in the development of literary, artistic and scientific matters; to promote social and literary intercourse among its members, and the discussion and consideration of various literary and economic subjects."
http://hdl.handle.ne[...]
[26]
서적
Wonders and the Order of Nature
Zone Books
[27]
문서
The American writer Lawrence Weschler, wrote an entire book about the museum: ''Mr. Wilson's Cabinet Of Wonder: Pronged Ants, Horned Humans, Mice on Toast, and Other Marvels of Jurassic Technology'' (1996)
[28]
웹사이트
http://www.wunderkam[...]
[29]
웹사이트
wunder-kamer.com
https://archive.toda[...]
[30]
뉴스
A two-headed lamb and ancient dildos: the UK's strangest new museum
https://www.theguard[...]
2014-10-28
[31]
웹사이트
The community that wouldn't let its museum die
https://artsindustry[...]
arts industry.co.uk
2021-07-23
[32]
간행물
Youtube As Archive: Who Will Curate This Digital Wunderkammer?
[33]
웹사이트
Ole Worm Returns: An Iconic 17th Century Curiosity Cabinet is Obsessively Recreated
https://www.atlasobs[...]
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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