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려군
1. 개요
창려군은 중국의 옛 행정 구역으로, 후한 시대 요동속국에서 기원하여 위진 시대,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나라 때 폐지되었다. 요동속국은 유주에 속했으며, 창려, 빈도 등 6개 현을 관할했다. 244년 요동속국이 창려군으로 개명되었고, 이후 평주, 영주, 남영주, 역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서진 시대에는 창려와 빈도 두 현을, 북위 시대에는 용성, 광흥, 정황 세 현을 관할했다. 모용선비의 초기 근거지 중 하나였으며, 전연 시기에는 수도가 위치하기도 했다. 수나라 때는 요서군에 통폐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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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의 군 -
현도군
현도군은 기원전 107년 한무제가 위만조선 멸망 후 예맥 땅에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로, 초기 함흥시 부근에 치소를 두었으나 예맥족 침입과 한나라 전략 변화로 요동군 내부로 이동,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를 맺다 319년 고구려에 정복되었으며, 위치에 대해서는 한반도 내 위치 여부 등 학계에서 논쟁이 있다. -
랴오닝성의 군 -
우북평군
우북평군은 연나라가 설치한 군으로, 허베이성 북부와 랴오닝성 서부를 관할했으며, 시대에 따라 북순군, 북평군으로 불리다가 어양군, 평주 등으로 통합, 변경되었다. -
오호 십육국 시대의 군 -
태산군
태산군은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진나라의 제북군을 전신으로 하여 전한 시대에 설치되어 예주에 속했으며, 후한, 서진, 남조 송, 북위 시대를 거치며 관할 현의 변화와 명칭 변경을 겪다가 북제 시대에 동평군으로 개칭되었다. -
오호 십육국 시대의 군 -
하남군
하남군은 전국 시대 한나라에서 처음 설치되어 진나라를 거쳐 전한 시대에는 삼하로 불렸으며, 후한 시대에는 하남윤으로 개칭되어 낙양을 관할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위진 시대까지 존속한 군이다. -
모용선비 -
모용부
모용부는 3세기부터 5세기 초 화북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족의 한 부족으로, 요서 지역에서 유목과 농경을 병행하며 세력을 키워 여러 국가를 건국하고 토욕혼을 건국하기도 했으나, 5세기 초 북위의 화북 통일 과정에서 쇠퇴하였다. -
모용선비 -
모용준
모용준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연의 2대 군주이자 초대 황제로, 아버지 모용황의 뒤를 이어 연왕에 즉위한 후 후조의 혼란을 틈타 중원 진출을 본격화하여 황제를 칭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전진, 동진과 대립했고 수도를 업으로 옮겼다.
2. 역사
후한의 요동속국을 전신으로 한다. 요동속국은 유주에 속했으며, 후한 말에 한때 폐지되었다가 244년 (삼국 위의 정시 5년)에 부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려군으로 개명되었고, 군 치소는 창려현에 설치되었다.
276년 (서진의 함녕 2년), 평주로 전속되었다. 서진의 창려군은 창려, 빈도 2개 현을 관할했다.
244년부터 342년까지는 모용선비의 초기 근거지 중 하나였으며, 모용외가 전욱의 고도라고 선언하고 수도를 두었던 극성이 이 지역에 있었다.
444년 (북위 태평진군 5년), 영주로 전속되었고, 533년 (영희 2년) 남영주로 전속되었다. 581년 (수의 개황 원년), 역주로 전속되었다가 583년 (개황 3년) 수가 군제를 폐지하자 폐지되어 역주에 편입되었다.
2.1. 전한 ~ 후한
후한 요동속국을 전신으로 한다. 요동속국은 유주에 속했으며, 창려, 빈도, 투허, 부리, 험독, 방의 6개 현을 관할했다. 요동속국은 후한 말에 한때 폐지되었다.
244년 (위의 정시 5년), 요동속국이 부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려군으로 개명되었다. 창려군은 유주에 속했으며, 군 치소는 창려현에 설치되었다.
2.2. 위진 시대
244년(위 소제 정시 5년), 요동속국도위의 관할지에서 군으로 분리되었다. 서진 건국 이후 276년(사마염 함녕 2년) 요동군,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과 함께 평주로 분리되었다. 조위 말엽 때부터 상기한 선비족의 침공으로 크게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요하 서쪽 대릉하 유역의 광활한 땅을 관할하고 있었으나 2현 900호만을 거느리는 작은 군이 되었다.
창려군이 분리되기 이전, 사마의를 따라 공손연 토벌에 가담했던 막호발이 솔의왕(率義王)으로 책봉된 이래 본군 내에 있던 극성에 정착하면서 모용선비의 초기 근거지 중 하나가 되었다. 281년(사마염 태강 2년), 서진을 배신한 모용섭귀가 본군을 공격했으나 1년 뒤 안북장군 엄순의 반격으로 패배했고 요동군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모용선비는 창려군을 떠났다. 하지만 294년(사마충 원강 4년), 모용외가 전욱의 고도라고 선언하고 극성에 수도를 두고 체제를 정비하면서 재건되었고 342년(동진 함강 8년), 전연을 건국한 모용황이 지금의 차오양 시 일대에 있던 용성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모용선비의 수도가 되었다.
2.3. 남북조 시대 ~ 수나라
447년(북위 태무제 태평진군 8년), 기양군과 함께 영주의 속현이 되었다. 201호 918명을 거느렸다. 수나라 때는 요서군에 통폐합되었다.
| 현명 | 한자 | 대략적 위치 | 비고 |
|---|---|---|---|
| 용성현 | 龍城縣 | 차오양 시 | 전연의 중기 수도였으며, 447년 극성현과 창려현을 통폐합했다. 요임금을 모신 사당, 유돈성(榆頓城), 낭수(狼水)가 있었다. |
| 광흥현 | 廣興縣 | 진저우 시 | 447년 도하현, 영락현, 연창현을 통폐합했다. 계명산(鷄鳴山), 석성(石城), 대유성(大柳城)이 있었다. |
| 정황현 | 定荒縣 | 미상 | 녹두산(鹿頭山)과 송산(松山)이 있었다. |
444년 (북위 태평진군 5년), 창려군은 영주로 전속되었다. 533년 (영희 2년), 남영주로 전속되었다. 북위의 창려군은 용성, 광흥, 정황의 3개 현을 관할했다.
581년 (수의 개황 원년), 창려군은 역주로 전속되었다. 583년 (개황 3년), 수가 군제를 폐지하자 창려군은 폐지되어 역주에 편입되었다.
3. 행정 구역
후한의 요동속국을 전신으로 한다. 요동속국은 유주에 속했으며, 창려, 빈도, 투허, 부리, 험독, 방의 6개 현을 관할했다. 요동속국은 후한 말에 한때 폐지되었다.
244년 (삼국 위 정시 5년), 요동속국이 부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동속국은 창려군으로 개명되었다. 창려군은 유주에 속했으며, 군 치소는 창려현에 설치되었다. 276년 (서진 함녕 2년), 창려군은 평주로 전속되었다.
444년 (북위 태평진군 5년), 창려군은 영주로 전속되었고, 533년 (영희 2년) 남영주로 전속되었다.
581년 (수나라 개황 원년), 창려군은 역주로 전속되었다. 583년 (개황 3년), 수가 군제를 폐지하자 창려군은 폐지되어 역주에 편입되었다.
3.1. 위진 시대
244년(위 소제 정시 5년), 요동속국도위의 관할지에서 군으로 분리되었다. 서진 건국 이후 276년(사마염 함녕 2년) 요동군,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과 함께 평주로 분리되었다. 조위 말엽 때부터 상기한 선비족의 침공으로 크게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요하 서쪽 대릉하 유역의 광활한 땅을 관할하고 있었으나 2현 900호만을 거느리는 작은 군이 되었다.
후한의 요동속국을 전신으로 한다. 요동속국은 유주에 속했으며, 창려, 빈도, 투허, 부리, 험독, 방의 6개 현을 관할했다. 요동속국은 후한 말에 한때 폐지되었다.
244년 (위나라 정시 5년), 요동속국이 부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동속국은 창려군으로 개명되었다. 창려군은 유주에 속했으며, 군 치소는 창려현에 설치되었다.
276년 (서진 함녕 2년), 창려군은 평주로 전속되었다. 서진의 창려군은 창려, 빈도의 2개 현을 관할했다.
3.2. 북위 시대
447년(북위 태무제 태평진군 8년), 기양군과 함께 영주의 속현이 되었다. 당시 201호 918명을 거느렸다. 수나라 때는 요서군에 통폐합되었다.
| 현명 | 한자 | 대략적 위치 | 비고 |
|---|---|---|---|
| 용성현 | 龍城縣 | 차오양 시 | 전연의 중기 수도였으며, 447년 극성현과 창려현을 통폐합했다. 요임금을 모신 사당, 유돈성(榆頓城), 낭수(狼水)가 있었다. |
| 광흥현 | 廣興縣 | 진저우 시 | 447년 도하현, 영락현, 연창현을 통폐합했다. 계명산(鷄鳴山), 석성(石城), 대유성(大柳城)이 있었다. |
| 정황현 | 定荒縣 | 미상 | 녹두산(鹿頭山)과 송산(松山)이 있었다. |
444년(북위 태평진군 5년), 창려군은 영주로 전속되었다. 533년(영희 2년), 남영주로 전속되었다. 북위의 창려군은 용성, 광흥, 정황의 3개 현을 관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