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육군지휘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최상급육군지휘부(OHL)는 독일 제국 육군의 최고 지휘 기구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황제의 명의로 명령을 발행하는 프로이센 대장군참모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OHL은 몰트케, 팔켄하인, 힌덴부르크를 거치며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휘했으나, 1918년 11월 혁명 이후 해산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독일 육군 (독일 제국) - 독일 육군사관학교
독일 육군사관학교는 독일 제국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군사 교육 기관으로, 독일군의 핵심 장교를 양성하며 여러 시대를 거쳤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해체되었고, 현재는 사관후보생 제도를 통해 육군 장교를 선발 및 양성한다. - 독일 육군 (독일 제국) - 란트베어
란트베어는 '국토 방위'를 뜻하는 단어로, 시대와 국가에 따라 정의와 역할이 달랐던 군사 조직이며, 바이에른 왕국, 한자 동맹 도시, 특히 프로이센 왕국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운용되었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도 투입되었으나 이후 폐지되거나 재편되었다. -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제국 - U보트
U보트는 독일 해군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운용한 잠수함으로, 연합군의 군함과 상선에 큰 피해를 입혔으나 많은 손실을 보았으며, 현대 잠수함의 계보를 잇고 있다. -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제국 - 동맹국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을 주축으로 결성된 군사 동맹인 동맹국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 열강이라고도 불리며, 군사 및 경제적 협력을 통해 전쟁을 수행했다.
최상급육군지휘부 | |
---|---|
개요 | |
명칭 | 육군 최고 사령부 |
원어 명칭 | Oberste Heeresleitung (OHL) |
약칭 | OHL |
존속 기간 | 1871년 ~ 1919년 |
국가 | 독일 제국 |
역할 및 기능 | |
역할 | 독일 육군에 대한 최고 지휘권 행사 |
기능 | 전시 작전 계획 수립 및 실행, 군사 전략 결정 |
역사 | |
설립 | 1871년 보불전쟁 이후 |
주요 활동 | 제1차 세계 대전 지휘 동부 및 서부 전선 작전 지휘 |
해체 |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해체 |
조직 | |
최고 지휘관 | 독일 육군 참모총장 |
주요 구성 부서 | 참모 본부 작전 부서 정보 부서 보급 부서 |
예하 부대 | 독일 제국 육군 전체 |
인물 | |
주요 인물 | 헬무트 폰 몰트케 (소 몰트케) 에리히 폰 팔켄하인 파울 폰 힌덴부르크 에리히 루덴도르프 빌헬름 그뢰너 |
위치 | |
주요 활동 장소 | 동부 전선 서부 전선 |
기타 | |
관련 용어 | 참모본부 야전군 전쟁 경제 |
2. 설립 경위와 초기 직제
1871년 독일 제국 성립 당시, 프로이센 육군, 왕립 작센 육군, 뷔르템베르크 육군, 바이에른 육군은 각 제후국의 자치를 허용받아 평시에는 별도의 통수권 하에서 자치를 누렸다. 각 육군은 각자의 제후국에 별도의 장관급 전쟁부(Kriegsministerien)를 두었다.[3] 그러나 독일 제국 헌법에 따라 전시에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독일 황제가 총사령관인 최상급전쟁군주(Oberster Kriegsherrde)가 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총사령관 직위는 의전적인 것이었고, 실제 권위는 황제의 명의로 명령서를 발행하는 프로이센 대장군참모장에게 있었다. 1차 대전 발발 직전 대장군참모장은 소 몰트케였고, 최상급육군지휘부(OHL)는 장군참모장 몰트케가 이끄는 참모사령부였다.[3]
원래 대장군참모부는 산하 5개 과가 있었고, 1차 대전 중에 2개 과가 더 설치되었다.
부서명 | 설명 |
---|---|
중앙과(Zentral-Abteilung) | 장군참모부 내부 사안 행정관리 |
작전과(Operationsabteilung) | 참모부의 중핵. 작전기획 및 명령 담당. |
B작전과(Operationsabteilung B) | 1916년 8월 15일 작전과에서 독립. 마케도니아 전선 및 터키 전선 감독 담당. |
제2작전과(Operationsabteilung II) | 원래 작전과 중포병단이었으나 1916년 탄약부서와 합병해서 독립. 전시경제 담당. |
정보과(Nachrichtenabteilung) | 군사정보 분석 담당. |
제3과 b단 | 간첩 및 방첩 담당. |
정무과(Politische Abteilung) | 정치기관들과의 연락 및 법무 담당. |
1871년 독일 제국 수립 당시, 프로이센 육군, 작센 왕립 육군, 뷔르템베르크 육군, 바이에른 육군은 평시에는 각자의 전쟁부(Kriegsministerien)를 통해 자치를 유지했다. 독일 제국 헌법에 따라 전시에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독일 황제가 최고 사령관(Oberster Kriegsherr)이 되었지만, 실제 권한은 프로이센 대장군참모장에게 있었다.
OHL에는 야전육군장군참모장 외에도 전시내각 각료, 보급 담당 장성, 각종 주특기(포병, 공병, 의무, 통신, 탄약, 철도)별 전문자문관, 4개 제후국 전쟁부 대표단, 동맹국 대표단도 참석했다. 한편 독일 황제는 독일 황립해군의 총사령관이기도 했고, 1918년 8월 해전지휘부(SKL)를 설치했다. 그러나 전쟁 초기에 OHL과 SKL의 공조능력은 형편없었다.[4]
3.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대장군참모장은 소 몰트케였고, OHL은 그가 이끄는 참모사령부였다. OHL은 처음에 5개 부서로 구성되었으며, 전쟁 중 2개 부서가 추가되었다.부서명 역할 중앙과(Zentral-Abteilung) 참모부 내부 행정 관리 작전과(Operationsabteilung) 작전 기획 및 명령 (참모부의 핵심) B작전과(Operationsabteilung B) 마케도니아 전선 및 터키 전선 감독 (1916년 8월 15일 작전과에서 독립) 제2작전과(Operationsabteilung II) 전시 경제 담당 (원래 작전과 중포병단이었으나 1916년 탄약부서와 합병) 정보과(Nachrichtenabteilung) 군사 정보 분석 제3과 b단 간첩 및 방첩 정무과(Politische Abteilung) 정치기관과의 연락 및 법무
OHL에는 야전육군장군참모장 외에도 전시내각 각료, 보급 담당 장성, 각종 주특기별 전문자문관, 4개 제후국 전쟁부 대표단, 동맹국 대표단도 참석했다. 한편, 독일 황제는 독일 제국 해군의 총사령관이기도 했으며, 1918년 8월 해전지휘부(SKL)를 설치했으나, 전쟁 초기 OHL과 SKL의 공조는 원활하지 않았다.
3. 1. 몰트케의 제1차 OHL (1914년 8월 ~ 1914년 9월)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헬무트 폰 몰트케 상급대장은 1906년부터 프로이센 대장군참모장을 역임했으며,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이 되었다.[3] 몰트케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부하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했는데, 특히 작전과장 게르하르트 타펜 대령과 정보과장 리하르트 헨트슈 중령을 신임했다. 이들은 최고사령부(OHL)를 대표해 하급부대로 파견되어 상황을 조사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독일 연합육군은 초기에 승리했지만, 제1차 마른강 전투에서 진격이 멈췄다. OHL과 최전선 사이의 통신이 두절되자 몰트케는 헨트슈를 제1군과 제2군에 파견하여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두 야전군이 약 40.23km나 떨어져 프랑스군에게 포위섬멸될 위기에 있음을 파악한 헨트슈는 엔강까지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몰트케는 9월 9일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다.
3. 2. 팔켄하인의 제2차 OHL (1914년 9월 ~ 1916년 8월)
에리히 폰 팔켄하인 중장은 소 몰트케의 뒤를 이어 참모총장 및 육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팔켄하인은 자신의 측근인 아돌프 빌트 폰 호엔보른과 후고 폰 프라이탁로링호펜 남작을 OHL에 등용했다. 호엔보른은 OHL에서 병참총감을 역임하다 1915년 1월 팔켄하인이 프로이센 전쟁장관 겸임을 그만두자 그 후임으로 프로이센 전쟁장관이 되었고, 이후 프라이탁로링호펜 남작이 후임 병참총감이 되었다. 팔켄하인은 의사결정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의도를 부하들에게 거의 설명하지 않아, 역사가들이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팔켄하인 시기 OHL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았다.
베르됭 전투의 실패와 1916년 8월 루마니아 왕국이 협상국에 가담하면서, 팔켄하인은 8월 29일 해임되고 힌덴부르크로 교체되었다.[3]
3. 3. 힌덴부르크의 제3차 OHL (1916년 8월 ~ 1919년 7월)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수가 세 번째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이 되었으나, 실권은 제1장군부관감 에리히 루덴도르프 보병대장이 장악했다.[3] 힌덴부르크는 거의 얼굴마담으로서 군부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했다.[3] 힌덴부르크-루덴도르프 이두체제는 독일의 전쟁 수행에 관련된 의사결정 전반을 장악해 나갔고, 황제 빌헬름 2세와 수상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를 거의 허수아비로 만들어 사실상의 군사독재 체제를 만들었다.
OHL은 힌덴부르크 프로그램으로 총력전 전략을 가동했다. 이는 결정적 승리를 거두거나 또는 나라가 아예 거덜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루덴도르프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재개를 명령했고, 이것은 치머만 전보와 함께 미국이 협상국의 편으로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OHL은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블라디미르 레닌과 그 당여들을 러시아로 수송해서 10월 혁명을 일으키게 했다. OHL은 레닌의 볼셰비키 정부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 동부전선을 종결하고, 동부전선의 잉여병력을 모조리 서부전선으로 돌려 1918년 춘계 공세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협상국이 100일 공세로 역습해오던 1918년 9월 말, 루덴도르프는 독일 정부의 “문민화(parliamentisation)”와 즉각적 휴전교섭을 주장했다. 10월이 되자 변심한 루덴도르프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으나, 해임되고 빌헬름 그뢰너 중장으로 제1장군부관감이 교체되었다. 힌덴부르크는 1919년 여름까지 직을 유지하다 사임했다.
4. 해산
1918년 독일 혁명이 일어나자 힌덴부르크와 그뢰너는 빌헬름 2세에게 퇴위를 권고했다. 그 후 그뢰너는 독일사회민주당 당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접촉해 사민당이 세울 공화국이 극좌파 진압에 동의하는 것을 대가로 군부는 신생 공화국에 충성하겠다는 에베르트-그뢰너 밀약을 맺었다.[6] 1918년 11월 제1차 세계 대전이 완전히 종전하자 OHL은 벨기에 스파에서 카셀의 빌헬름스회헤궁으로 옮겼고, 독일 연합육군이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것을 감독했다.[6] 1919년 2월, OHL은 힌터포메른의 콜베르크로 이전했다. 신생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 잠식 시도를 막기 위해서였다.[6]
1919년 6월 말 힌덴부르크가 사임한 뒤 마지막 며칠간 그뢰너가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을 대행했다. 1919년 7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 제국 최상급육군지휘부는 프로이센 대장군참모부와 함께 해산되었다. OHL이 해산되었기 때문에 1919년 9월 사임할 당시 그뢰너의 공식적인 보직은 콜베르크 사령소(Kommandostelle Kolberg) 사령소장이었다.[7]
5. 역대 지휘관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된 후, 프로이센 육군, 작센 왕립 육군, 뷔르템베르크 육군 및 바이에른 육군은 평시에는 자율성을 유지하며, 각 왕국은 별도의 전쟁 부와 참모본부를 두어 군대를 관리했다. 전쟁 발발 시, 독일 제국 헌법에 따라 독일 황제는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Oberster Kriegsherr'', "최고의 군주")이 되었다.
황제의 최고 사령관 역할은 주로 형식적이었으며, 권한은 황제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는 독일 참모본부의 참모총장에게 있었다.
대수 | 사진 | 이름 | 취임일 | 퇴임일 | 비고 |
---|---|---|---|---|---|
1 | ![]() | 헬무트 폰 몰트케 | 1906년 1월 1일 | 1914년 9월 14일 | |
2 | -- | 에리히 폰 팔켄하인 | 1914년 9월 14일 | 1916년 8월 29일 | |
3 | --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1916년 8월 29일 | 1919년 7월 3일 | |
3a | -- | 에리히 루덴도르프 | 1916년 8월 29일 | 1918년 10월 26일 | 참모총장 |
3b | -- | 빌헬름 그뢰너 | 1918년 10월 29일 | 1919년 7월 3일 | 참모총장 |
5. 1. 최고 육군 사령관
대수 | 사진 | 이름 | 취임일 | 퇴임일 |
---|---|---|---|---|
1 | 헬무트 폰 몰트케 | 1906년 1월 1일 | 1914년 9월 14일 | |
2 | -- | 에리히 폰 팔켄하인 | 1914년 9월 14일 | 1916년 8월 29일 |
3 | --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1916년 8월 29일 | 1919년 7월 3일 |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프로이센 대장군참모단이 OHL의 중핵을 구성했다. 1906년부터 프로이센 대장군참모장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 상급대장이 그대로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이 되었다.[3] 몰트케는 작전과장 게르하르트 타펜 대령, 정보과장 리하르트 헨트슈 중령 등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부하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했다.
독일 연합육군은 초기에는 승전했으나, 제1차 마른강 전투에서 돈좌되었다. OHL과 최전선 사이의 통신이 두절되자 몰트케는 헨트슈를 제1군과 제2군에 파견했다. 헨트슈는 두 야전군이 25 마일이나 떨어져 프랑스군에게 포위섬멸당할 위기에 있음을 파악하고 엔강까지 후퇴를 명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몰트케는 9월 9일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다.
몰트케의 후임은 프로이센의 전쟁장관이던 에리히 폰 팔켄하인 중장이었다. 팔켄하인은 9월에 이미 실질적으로, 10월 25일에 공식적으로 몰트케를 교체했다.[3] 팔켄하인은 아돌프 빌트 폰 호엔보른과 후고 폰 프라이탁로링호펜 남작을 OHL에 데려왔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이 되었다. 1916년 8월 31일에는 그의 이름을 건 전시경제체제인 힌덴부르크 프로그램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힌덴부르크는 군부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는 얼굴마담이었고, OHL의 실제 실권은 힌덴부르크의 제1장군부관감(Erster Generalquartiermeister) 에리히 루덴도르프 보병대장이 장악했다.[3] 힌덴부르크-루덴도르프 이두체제는 독일의 전쟁 수행에 관련된 의사결정 전반을 장악해 사실상의 군사독재 체제를 만들었다.
5. 2. 참모총장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야전육군장군참모장이 되면서, OHL의 실권은 힌덴부르크의 제1장군부관감(Erster Generalquartiermeister) 에리히 루덴도르프 보병대장이 장악했다.[3] 힌덴부르크-루덴도르프 이두체제는 독일의 전쟁수행에 관련된 의사결정 전반을 장악해나갔고, 황제 빌헬름 2세와 수상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를 거의 허수아비로 만들어 사실상의 군사독재 체제를 만들었다.[3]1918년 9월 말, 루덴도르프는 독일 정부의 “문민화(parliamentisation)”와 즉각적 휴전교섭을 주장했다. 10월이 되자 변심한 루덴도르프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으나, 빌헬름 그뢰너 중장으로 제1장군부관감이 교체되었다.[5]
순서 | 이름 | 계급 | 임기 시작 | 임기 종료 | 비고 |
---|---|---|---|---|---|
3a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보병대장 | 1916년 8월 29일 | 1918년 10월 26일 | 참모총장 |
3b | 빌헬름 그뢰너 | 중장 | 1918년 10월 29일 | 1919년 7월 3일 | 참모총장 |
6. 본부 위치
기간 | 위치 |
---|---|
1914년 8월 2일 ~ 1914년 8월 16일 | 독일 제국 베를린 |
1914년 8월 17일 ~ 1914년 8월 30일 | 독일 제국 코블렌츠 |
1914년 8월 30일 ~ 1914년 9월 25일 | 룩셈부르크 대공국 룩셈부르크 시 |
1914년 9월 25일 ~ 1916년 9월 19일 | 프랑스 제3공화국 샤를빌메지에르 |
1916년 9월 20일 ~ 1917년 2월 10일 | 독일 제국 플레스성 |
1917년 2월 17일 ~ 1918년 3월 7일 | 독일 제국 바트크로이츠나흐 |
1918년 3월 8일 ~ 1918년 11월 13일 | 벨기에 왕국 스파 |
1918년 11월 14일 ~ 1919년 2월 10일 | 독일 제국 빌헬름스회헤성 |
참조
[1]
웹사이트
Biografie Wilhelm Groener
http://www.deutsche-[...]
Bayerische Staatsbibliothek
2013-06-26
[2]
웹사이트
Biografie Wilhelm Groener (German)
http://www.dhm.de/le[...]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2013-05-22
[3]
서적
Die Büchse der Pandora: Geschichte des Ersten Weltkriegs
C. H. Beck
[4]
서적
The Myth and Reality of German Warfare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5]
서적
Die deutsche Revolution 1918/19
Kindler
[6]
웹인용
Biografie Wilhelm Groener
http://www.deutsche-[...]
Bayerische Staatsbibliothek
2013-06-26
[7]
웹인용
Biografie Wilhelm Groener (German)
http://www.dhm.de/le[...]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2013-05-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