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트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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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란트베어는 독일어권 국가에서 사용된 민병 또는 예비군 제도로, 프로이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스위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운영되었다. 프로이센에서는 1813년 창설되어 군제 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으며, 18세에서 45세 사이의 정규군 미복무자를 대상으로 했다.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징병제가 폐지되었으나, 나치 독일 시기 재무장을 통해 향토방위군으로 재설치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과 헝가리 왕립 향토방위군으로 나뉘어 운영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2선 부대 예비군으로 운영되다 1965년 폐지되었다. 이 외에도 발트 지역, 바이에른, 작센 등 기타 독일 국가에서도 란트베어와 유사한 형태의 부대가 존재했다.
프로이센 왕국의 란트베어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로이센 왕국의 군제 개혁을 이끈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의 구상에 따라 1813년 3월 17일 국왕 칙령으로 처음 창설되었다. 이 제도는 정규군에 복무하지 않는 18세에서 45세 사이의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남성을 왕국 방위를 위해 소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 프로이센
해방 전쟁 시기 란트베어 부대는 전시에 소집되어 정규 부대와 함께 싸웠으나, 초기에는 장비나 훈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1815년 파리 조약으로 평화가 찾아온 후, 란트베어는 프로이센 육군의 정식 구성 요소로 통합되었다. 각 육군 여단은 1개의 정규 연대와 1개의 란트베어 연대로 구성되는 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제는 란트베어 연대를 소집하는 데 시간이 걸려 여단 전체의 신속한 동원을 방해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는 1선 부대로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고, 결국 1859년 군제 개편 과정에서 란트베어 부대는 2선 부대로 그 역할이 조정되었다.[2] 이러한 란트베어의 지위 변화와 군제 개혁은 이후 프로이센 헌법 분쟁과 같은 정치적 갈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2. 1. 프로이센 란트베어의 조직과 특징
프로이센 왕국의 란트베어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의 구상(프로이센 왕국의 군제 개혁)에 따라 1813년 3월 17일 국왕 칙령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 칙령은 정규군에 복무하지 않고 무기를 들 수 있는 18세에서 45세 사이의 모든 남성을 왕국 방위를 위해 소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2] 샤른호르스트의 초기 구상에 따르면, 17세부터 40세까지의 병역 의무자 중 정규 부대에 징병되지 않았거나 의용병으로 근무했던 자가 참가 대상이었다. 각 지역에는 인구 밀도에 따라 병역 의무자 수가 할당되었으며,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제비뽑기를 통해 충원했다.
해방 전쟁 시기 란트베어 부대는 전시에만 소집되었지만 정규 부대와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창설 초기(1813년~1815년)에는 장비와 무기가 상당히 부족하여, 보병에게는 종종 파이크나 전투 도끼가 지급되었고, 많은 병사들이 신발 없이 싸워야 했다. 기병의 경우, 1816년까지는 원칙적으로 창만을 무기로 사용했다.
란트베어 부대는 출신지에 따라 연대 번호가 부여되었으며, 군복의 특징으로 소속 지역을 구분했다. 싱글 단추가 달린 Litewka|리테우카deu 형태의 군복에서 깃, 소매 색상과 군모의 표식색이 지방별로 달랐다.
지방 | 군복 표식색 |
---|---|
슐레지엔 | 노란색 |
포메라니아 | 흰색 |
서프로이센 | 검은색 |
동프로이센, 쿠르마르크, 노이마르크 | 몬로트 (양귀비 같은 빨간색) |
엘베 주/마그데부르크 | 하늘색 |
베스트팔렌 | 녹색 |
라인 주 (1815년 6월 이후) | 진홍색 |
란트베어는 상비군과 함께 활동하는 군종의 하나였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Landmiliz|란트밀리츠de" 또는 "Landsturm|란트슈투름de"이라는 유사한 역할도 존재했다.
또한, 보병 연대에서는 견장 색으로 소속 대대를 구분했으며(제1대대 흰색, 제2대대 빨간색, 제3대대 노란색), 종종 연대 번호가 함께 표시되었다.
1815년 파리 조약 이후 란트베어는 프로이센 육군과 통합되어, 각 육군 여단은 1개의 정규 연대와 1개의 란트베어 연대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란트베어 연대를 소집하는 데 시간이 걸려 여단의 신속한 동원을 저해했고, 이는 1선 부대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859년 군제 개편을 통해 란트베어 부대는 2선 부대로 격하되었다.[2]
1848년 혁명 전후로 좌익 공화주의자들은 란트베어에 기대를 걸고 그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란트베어는 1858년 군제 개혁 과정에서 약화되었고, 이는 프로이센 헌법 분쟁으로 이어지는 한 원인이 되었다.
란트베어에는 뤼초 의용군이나 러시아-독일 의용군과 같이 1813년 이후 독일 낭만주의의 저명한 시인들이 복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테오도어 쾨르너,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빌헬름 스메츠 등이 있다.
3. 독일
1813년 이후 프로이센 왕국, 하노버 왕국, 헤센 선제후령 등 일부 독일 국가에서는 란트베어 도입이 최초의 징병제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영방에서는 란트베어 설립이 란트슈투름, 의용군, 지원 엽병, 민병 등 의용병 모집과 유사한 성격을 띠기도 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상비군 병력을 10만 명 이하로 제한당했고 징병제는 폐지되었다. 이후 나치 독일 시기 재무장 과정에서 란트베어는 1935년 5월 21일 다시 설치되었으며, 35세 이상 45세 미만의 병역 의무자가 소집 대상이 되었다. 나치 독일 시기의 란트베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나치 독일 시기 란트베어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상비군 병력을 10만 명 이하로 제한당했고 징병제는 폐지되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선 후 독일 재무장 과정에서 란트베어는 1935년 5월 21일 국방법에 따라 다시 설치되었다. 새로운 법에 따라 35세 이상 45세 미만(1894년생부터 1904년생까지)의 병역 의무가 있는 모든 독일인이 소집 대상이 되었다.
1936년 계획에 따르면 1938년까지 21개의 란트베어 사단을 창설할 예정이었다. 이 부대는 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예비역(1900년 이전 출생자)과, 국방군 강화 과정에서 해체된 독일국 동부 국경경비대 출신 인원들로 구성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39년 동원 시 실제로 편성된 란트베어 사단은 제14향토방위사단 하나뿐이었다. 이 사단은 1939년 12월에 제205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다. 편성 예정이었던 다른 부대들은 제3편성(Aufstellungswelle)의 사단으로 소집되었다. 나머지 란트베어 병력은 보병사단의 제3선을 충원하거나, 점령지 경비 및 주둔 임무를 맡는 '란데스쉬첸'(Landesschützende) 대대를 형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란트베어 부대들은 전력 부족, 특히 장비 부족 문제로 인해 주로 후방 지역이나 점령지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되었다. 제복, 신발, 취사 도구, 헬멧 등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전쟁 초기에는 많은 병사들이 사복 차림에 완장을 두르고 근무해야 할 정도였다.
4. 오스트리아-헝가리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상군은 크게 세 가지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제국 전체를 담당하는 공동군(Gemeinsame Armeede)과 각 지역 방위를 책임지는 두 개의 향토방위군, 즉 황왕립 향토방위군(kaiserlich-königliche Landwehrde)과 왕립 헝가리 향토방위군(Magyar Királyi Honvédséghu, königlich ungarische Landwehrde)이었다.
공동군은 제국 공동 국방부의 지휘를 받았으며,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빈의 국방부, 헝가리 향토방위군은 부다페스트의 국방부 소속으로 운영되었다. 이 세 조직은 모두 상비군 체제였으며, 여기에 제국 및 왕립 해군을 더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전체 군사력을 구성했다. 이러한 구조는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4. 1.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
황왕립 향토방위군(kaiserlich-königliche Landwehrde), 통칭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1868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의 세 가지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였다. 이 군대는 제국의 시슐라이타니엔 지역에서 징집된 병력으로 이루어졌다.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왕립 헝가리 향토방위군과 함께 국내 방위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며, 1868년 12월 5일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헝가리의 향토방위군이 부다페스트 의회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아 발전한 반면,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빈 의회의 소극적인 지원으로 인해 1870년대에는 겉모습만 유지될 뿐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에 놓였다. 1887년, 알베르트 대공은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이 훈련이나 교리 면에서 준비가 부족하여 전쟁 발발 초기에는 제대로 운용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880년대에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고위 지휘부는 합동육군의 병력 증원에 어려움을 겪자,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의 규모를 늘려 전체 병력을 확충하고자 했다. 또한, 헝가리 향토방위군의 발전에 대한 정치적 견제 심리도 작용하여 오스트리아 의회는 향토방위군 병력을 135,000명으로 증강하는 데 동의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점진적으로 질적, 양적으로 강화되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시점에는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이 훈련 수준이나 장비 면에서 합동육군 부대와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특히, 티롤과 케른텐 공국에 주둔한 3개 향토방위군 부대는 산악전에 대비한 특수 훈련을 받고 전문 장비를 지급받는 등 특화된 역량을 갖추었다.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의 다른 구성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상비군 체제로 운영되었다.
4. 2. 헝가리 왕립 향토방위군
왕립 헝가리 향토방위군(Magyar Királyi Honvédséghu, königlich ungarische Landwehrde)은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했던 헝가리 왕국의 상비군이었다. 통칭 '헝베드'라고도 불렸다. 이 군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네 개 군대 중 하나였으며, 다른 군대는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 합동육군, 그리고 제국 및 왕립 해군이었다.1848년 헝가리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분리주의 세력 간의 전투 이후 약 20년간 불안정한 공존 시기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헝가리 출신 병사들은 오스트리아 병사들과 혼성 부대로 편성되거나 헝가리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오스트리아 향토방위군, 헝가리 향토방위군, 공동군으로 구성된 새로운 3중 육군 체제가 만들어졌다. 헝가리 왕립 향토방위군은 이 체제 아래 창설되어,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헝가리 왕립 향토방위군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후계 조직인 왕립 헝가리 육군과는 다른 군대이다. 두 조직은 헝가리어 명칭(Magyar Királyi Honvédséghu)이 같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우나, 활동 시기와 성격이 다르다.
5. 스위스
스위스에서, ''란트베어''는 모든 시민이 12년 동안 복무해야 했던 제2선 병력이었다. 1965년 군 개혁 이후 폐지되었다. 이러한 과거를 참고하여, 많은 스위스 취주악단이 단체명에 "''란트베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스위스군에서는 1995년까지 아우스츠크(Auszug, 소장병역 의무자)와 란트슈투름과 더불어 모든 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연령 구분으로 '란트베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연령 구분에 해당하는 자는 32세부터 40세까지의 병역 의무자였다. 순수하게 해당 연령대의 병역 의무자만으로 편성된 란트베어 부대 외에도, 전령 등 아우스츠크와 란트베어, 그리고 란트슈투름의 병역 의무자가 혼성된 부대도 존재했다.
6. 발트
발트 란데스베어는 발트 귀족들이 수립한 라트비아 괴뢰 정부의 군대였다.[4]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결과로 발트 3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이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계 발트 귀족들은 독일과의 합병을 목표로 발트 란데스베어를 운용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발트 란데스베어는 1919년 에스토니아 독립 전쟁 중에 해체되었다.[4][3]
7. 기타 독일 국가
란트베어는 상비군과 함께 하는 군종이었다. 여러 국가에서는 시대에 따라 '란트밀리츠'(Landmilizdeu) 또는 란트슈투름이라는 역할도 존재했다.
1813년 이후 프로이센 왕국, 하노버 왕국, 헤센 선제후령 등 기타 독일 여러 국가에서는 란트베어의 도입이 최초의 징병 제도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영방에서는 란트베어의 설립이 의용병(란트슈투름이나 의용군, 지원 엽병)과 민병의 모집과 동일한 것이었다.
7. 1. 바이에른 왕국
바이에른 군(Bavarian Army)에서는 예비역의 일부를 "란트베어"라고 불렀다. 이미 1809년부터 바이에른 정규군과 함께 동원군(Mobile Legionen|모빌레 레기오넨de)이 존재했다. 1814년에는 "일반 국가 무장대(allgemeine Landesbewaffnung|알게마이네 란데스베바프눙de)"라는 이름으로 제3급 시민군(Bürgermilitär III. Klasse|뷔르거밀리테어 드라이테 클라세de)의 동원이 이루어졌다.7. 2. 뤼베크와 기타 한자 도시
뤼베크의 란트베어는 다른 지역의 관례와 달리 "란트슈투름"이라고 불렸으며, 도시 주변 지역에서 뤼베크 시민군의 부대로서 기능했다. 다른 한자 도시에서도 1813년 이후 영국제나 러시아제 장비를 이용하여 비정규 부대를 창설했다. 예를 들어 함부르크 시민군(1815년 이후 Hamburger Bürgermilitärdeu), 한자 시민군(Hanseatische Bürgergardedeu, 1813년 메클렌부르크에서 창설되어 영국군의 샤코 모자를 장비함), 그리고 한자 의용군(1813년 10월 설립) 등이 있었다.7. 3. 작센 왕국
작센군에서는 1814년부터 1815년에 걸쳐 자원 작센군 기단(Banner der freiwilligen Sachsen|de)이 창설되었다. 이 부대는 헤센이나 안할트의 란트베어처럼 란트베어 십자장을 착용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의용 부대 중 하나였다. 이와는 별개로 프로이센군의 제도를 본떠 란트베어를 창설하기도 했다.같은 시기(1814년-1815년)에는 '작센 왕국 임시 보병 여단'(Königlich sächsische provisorische Infanterie-Brigade|de)도 존재했다. 이들은 라인 동맹 시절부터 사용하던, 노란색 접어 젖히는 옷깃(Rabatte|라바테de)이 달린 흰색 군복을 착용했으며, 프로이센군의 지휘를 받았다. 또한 "작센 란트베어"(sächsische Landwehr|de)라는 명칭의 조직도 존재했다.
7. 4.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에서도 1814년에 의용 엽병 부대와 란트슈투름의 보병 및 기병 부대가 창설되었다. 의용 엽병 부대는 검은색 제복에 금색 표지색을 사용했고, 금색 란트베어 십자장이 달린 군모를 착용했다. 란트슈투름 부대는 암록색의 리테우카와 붉은색 표지색을 사용했다.7. 5. 뷔르템베르크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에서는 초기에 "란트베어", "란트밀리츠", "란트슈투름", "란데스아우스슈스"라는 호칭이 동시에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해당 부대는 다양한 시대에 평시에만 소집되었지만, 그중에는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팔츠 계승 전쟁, 프랑스 혁명 전쟁 중 1792년부터 1795년,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및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과 같은 전시 상황에 창설된 것도 있었다. 1871년부터 1918년까지는 독일 제국의 관련 법규가 적용되었다.(Württembergische Armee|뷔르템베르크군de도 참조할 것.)
7. 6. 하노버 왕국
빈 회의를 거쳐 성립된 하노버 왕국의 새로 창설된 군대에서는 전열 보병 7개 야전 대대와 1개 엽병 군단과 더불어 수많은 란트베어 보병 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영국군의 제복을 착용했으며, 하노버 왕국 정규 보병 연대와 함께 카트르 브라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들 란트베어는 대대 단위로 편성되었고, 출신지의 지명을 따서 대대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지명을 딴 대대들이 있었다: 브레머페르데, 첼레, 하멜른, 힐데스하임, 호야, 기프호른(Gifhorndeu), 고슬라(Goslardeu), 뤼네부르크, 니엔부르크, 오스나브뤼크, 오스테로데(Osterode am Harzdeu), 파이네(Peinedeu), 잘츠기터, 펠덴.7. 7. 헤센-카셀 선제후국
1814년, 새롭게 성립된 헤센-카셀 선제후국에서는 같은 해 의용 엽병 부대 및 2개 란트베어 보병 연대를 창설했다. 이들 란트베어 보병 연대는 더블 버튼의 파란색 리테우카를 착용했으며, 제1대대의 표식 색상은 노란색, 제2대대는 빨간색 또는 검은색이었다. 또한 덮개를 씌우고 흰색 란트베어 십자가를 수놓은 라인 동맹 시기부터 사용된 샤코 모자를 채용했다.7. 8.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1814년에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에서도 란트베어 보병 부대가 창설되었다. 이 부대의 제복은 왼쪽 팔 윗부분에 붉은 십자가를 꿰맨 싱글 버튼의 파란색 리테우카였으며, 프로이센 양식의 란트베어용 샤코 모자를 착용했다.7. 9. 안할트의 각 공국과 튀링겐의 여러 국가
1813년 이후 다양한 의용군이 창설되었다. 예를 들어 안할트-쾨텐 공국에서는 칼라에 흰색 란트베어 십자가를 장식한 녹색 리테우카를 착용했다. 또한 프로이센군 란트베어 연대와 예비 보병 부대에서도 채택된, 큰 "A" 문자가 장식된 영국의 "스토브파이프"형 샤코 모자를 사용했다.참조
[1]
서적
Napoleon and Berlin: The Franco-Prussian War in North Germany, 1813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2]
간행물
A Military Revolution? Prussian Military Reforms before the Wars of German Unification
https://fhs.brage.un[...]
Norwegian Institute for Defence Studies
2001-02
[3]
간행물
The Baltic States from 1914 to 1923: The First World War and the Wars of Independence
http://www.bdcol.ee/[...]
[4]
저널
The Baltic States from 1914 to 1923: The First World War and the Wars of Independence
http://www.bdcol.ee/[...]
200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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