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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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르스 주는 터키 북동부에 위치한 주로,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의 일부였다. 928년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의 수도였으며, 이후 셀주크, 조지아, 몽골,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78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카르스 주가 설치되었으며,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영토였다가 카르스 조약으로 터키에 반환되었다. 현재 튀르크인과 쿠르드인이 다수를 이루며, 농업, 축산업, 임업이 주요 산업이다. 카르스 꿀, 카르스 카세리 치즈, 구운 거위가 유명하며, 아니 유적 등 다양한 문화 유적과 자연 생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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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고대 시대에 카르스(Կարսhy)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아라랏 주에 속해 있었으며, 주요 정착지이자 요새인 바난드(Վանանդ)의 추종자들이 최초로 알려진 주민이었다. 928년, 카르스는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되었으나, 968년 수도가 아니로 이전된 후에도 바난드의 봉건 영주국의 수도로 남았다.
셀주크는 카르스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곧 포기했고, 카르스는 바난드와 거의 일치하는 영토를 가진 작은 토후국이 되었다. 이 토후국은 에르주룸의 살투크 왕조의 봉신이었으며, 샤다드 토후국과 접경을 이루었다. 1207년, 다비드 소슬란과 이바네 므하르그르젤리, 자카리아 2세 므하르그르젤리가 이끄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연합군이 장기간의 포위 공격 끝에 카르스를 점령했다. 이후 카르스는 자카리안-므하르그르젤리가 통치하는 자카리아드 아르메니아의 영주국이 되었으며, 조지아 왕국의 봉신이었다. 게오르기 4세는 타마르의 아들로 카르스의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242년 몽골에 의해 정복되었고, 게오르기 5세(1314~1346) 통치 기간 동안 조지아 왕국에 의해 회복되었으며, 왕국이 붕괴될 때까지 왕국에 속해 있었다. 그 후에는 조지아 아타벡에 속한 자켈리 가문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카르스 요새는 황폐해졌으나, 국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방어 시설이 종종 재건되었다.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으로 발전했다.[7]
1877년부터 1878년까지의 러시아-튀르크 전쟁 결과, 카르스 주는 군사적으로 관리되는 카르스 주로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고 1918년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속한 더 많은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더욱 확장하려는 국경 지방으로 카르스를 여겼다.
1878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당국은 카르스 주에 아르메니아인, 카프카스 그리스인, 러시아인, 조지아인, 카프카스 독일인, 폴란드인, 에스토니아인, 리투아니아인 등 다양한 기독교 민족을 정착시켰다. 몰로칸과 두호보르와 같은 러시아 분파 공동체는 소수였다.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기독교 공동체(조지아인, 카프카스 그리스인, 그리고 소수의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제국군과 함께 싸우거나 협력하여 무슬림 오스만인으로부터 카르스 주를 점령했다. 그들은 러시아 제국의 기업을 통해 기독교 영토를 재탈환하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오스만 제국 영토:en:Kars Eyalet·:en:Eyalet of Childir(후에 일부가 :en:Erzurum Eyalet에 편입됨)였으나, 러시아-튀르키예 전쟁 후 체결된 산 스테파노 조약과 베를린 조약에 의해 1878년부터 1917년까지는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되어 가 설치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카르스는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였다.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간의 카르스 조약으로 터키 영토가 된다.
1990년대까지는 아르다한주, 이그디르주는 카르스주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후 분할되었다.
2. 1. 고대 ~ 중세
고대 시대에 카르스(Կարսhy)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아라랏 주에 속해 있었으며, 주요 정착지이자 요새인 바난드(Վանանդ)의 추종자들이 최초로 알려진 주민이었다.[7] 928년, 카르스는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되었으나, 968년 수도가 아니로 이전된 후에도 바난드의 봉건 영주국의 수도로 남았다.셀주크는 카르스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곧 포기했고, 카르스는 바난드와 거의 일치하는 영토를 가진 작은 토후국이 되었다. 이 토후국은 에르주룸의 살투크 왕조의 봉신이었으며, 샤다드 토후국과 접경을 이루었다. 1207년, 다비드 소슬란과 이바네 므하르그르젤리, 자카리아 2세 므하르그르젤리가 이끄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연합군이 장기간의 포위 공격 끝에 카르스를 점령했다. 이후 카르스는 자카리안-므하르그르젤리가 통치하는 자카리아드 아르메니아의 영주국이 되었으며, 조지아 왕국의 봉신이었다. 게오르기 4세는 타마르의 아들로 카르스의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242년 몽골에 의해 정복되었고, 게오르기 5세(1314~1346) 통치 기간 동안 조지아 왕국에 의해 회복되었으며, 왕국이 붕괴될 때까지 왕국에 속해 있었다. 그 후에는 조지아 아타벡에 속한 자켈리 가문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카르스 요새는 황폐해졌으나, 국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방어 시설이 종종 재건되었다.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으로 발전했다.[7]
2. 2. 러시아 제국 통치 시기 (1878-1917)
1877년부터 1878년까지의 러시아-튀르크 전쟁 결과, 카르스 주는 군사적으로 관리되는 카르스 주로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고 1918년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7]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속한 더 많은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더욱 확장하려는 국경 지방으로 카르스를 여겼다.[7]1878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당국은 카르스 주에 아르메니아인, 카프카스 그리스인, 러시아인, 조지아인, 카프카스 독일인, 폴란드인, 에스토니아인, 리투아니아인 등 다양한 기독교 민족을 정착시켰다. 몰로칸과 두호보르와 같은 러시아 분파 공동체는 소수였다.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기독교 공동체(조지아인, 카프카스 그리스인, 그리고 소수의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제국군과 함께 싸우거나 협력하여 무슬림 오스만인으로부터 카르스 주를 점령했다. 그들은 러시아 제국의 기업을 통해 기독교 영토를 재탈환하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보았다.[7]
2. 3. 터키 공화국 편입 이후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카르스는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바난드 주였다.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간의 카르스 조약으로 터키 영토가 되었다.1935년 9월, 세 번째 총감찰청(Umumi Müfettişlik, UM)이 설치되었다.[8] 총감찰청은 에르주룸주, 아르트빈주, 리제주, 트라브존주, 카르스주, 귈뤼샤네주, 에르진잔주, 아르드리주를 관할했으며,[8][10]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여 지역 주민들을 투르크화하려 했다.[9] 총감찰관은 에르주룸에 주재했다.[8][10] 총감찰청은 1952년 민주당 정부 시대에 해체되었다.[11]
1990년대까지 아르다한주, 이그디르주가 카르스주에 포함되었으나, 이후 분할되었다.
3. 지리
3. 1. 지형
카르스 주의 주요 산맥은 알라후엑베르 산맥, 소간르 산, 아라스 산맥이다.3. 2. 수계
카르스주의 주요 호수는 아이거 호, 칠디르 호(Lake Çıldır) 및 쿠유추크 호(Lake Kuyucuk)이다.4. 행정 구역

카르스주는 8개의 군(''ilçe'')으로 나뉘며, 각 군은 행정 중심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다.
- 아키야카
- 아르파차이
- 디고르
- 카으즈만
- '''카르스'''
- 사르이카므슈
- 셀림
- 수수즈
카르스 주에는 382개의 마을이 있다.
5. 인구 구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카르스 지역의 인구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12][13][14][15] 튀르크계 민족,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슬라브족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했다.[12][13][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