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76개의 주(Changwat)와 특별행정구역인 방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주지사가 통치하며, 주지사는 내무부 장관이 임명한다. 77개의 행정 구역은 지리적, 문화적 요인에 따라 4~6개의 지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태국의 행정 구역은 아유타야 왕국 시대부터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으며, 1932년 입헌 군주제 전환 이후 몬톤이 해체되고 주가 최상위 행정 구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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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주 - 방콕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차오프라야 강 하구에 위치하고, 1782년 라타나코신 왕국 건국 이후 태국 경제의 중심지로서 관광, 무역, 제조업 등이 발달했으며, 왕궁, 사찰 등 다양한 명소와 대중교통 및 항공 교통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태국의 주 - 라용주 라용 주는 태국 동부에 위치한 주로, 아유타야 왕국 시대부터 역사를 지니고 딱신 대왕의 해군 건설지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해안선과 국립공원 등의 자연경관, 그리고 동부경제회랑의 중심지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한 경제 중심지이다.
태국은 76개의 주(จังหวัดth)와 1개의 특별행정구역(방콕)으로 구성된다. 주는 태국의 1차 행정 구역이다.
각 주는 내무부 장관이 임명하는 주지사(ผู้ว่าราชการจังหวัดth)가 관리하며, 이는 주 정부 체계에 속한다. 다만, 특별행정구역인 방콕은 방콕 수도 행정청이라는 별도의 법인에서 관리하며, 방콕 시장(ผู้ว่าราชการ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th)은 방콕 시민이 직접 선출한다. 방콕은 지방 정부로 분류된다.
주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해당 지역의 주요 도시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나, 오늘날에는 주도(주의 행정 중심지)가 반드시 주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아니거나, 주의 이름과 다른 경우도 있다. 또한, 여러 주에서 행정 기관이 기존 도시 중심부에서 외곽의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태국의 행정 구역 체계는 크게 중앙 정부, 주 정부, 지방 정부로 나뉜다. 주는 주 정부의 핵심 단위이다. 방콕 특별시를 제외한 76개 주는 하위 행정 구역으로 암푀( อำเภอth, 군)와 킹암푸(กิ่งอำเภอth, 준군)를 둔다. 그 아래에는 땀본( ตำบลth, 면)이 있으며, 가장 작은 행정 단위는 무반( หมู่บ้านth, 촌)이다. 과거에는 몬톤( มณฑลth, 주 또는 도)이라는 상위 행정 조직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폐지되었다.
* 방콕과 주변 5개 주(나콘빠톰, 논타부리, 빠툼타니, 사뭇쁘라깐, 사뭇사콘)는 방콕 수도권으로 별도 분류되기도 한다.
=== 다른 분류 방식 ===
'''4개 지방 분류''': 북부, 동북부, 중부, 남부의 4개 지방으로 나눈다. 이 경우 서부와 동부 지방은 중부 지방에 통합된다.
'''5개 지방 분류''': 서부 지방 또는 동부 지방 중 하나를 중부 지방에 포함하여 5개 지방으로 나눈다.
태국 행정 지도
3. 방콕 특별행정구역
방콕은 태국의 76개 주(จังหวัด|짱왓th)와는 구분되는 특별행정구역이다.[1] 방콕을 제외한 76개 주는 하위 행정 구역으로 796개의 암푸(อำเภอ|암푸th, 군)와 80개의 킹암푸(กิ่งอำเภอ|낑암푸th, 분군)를 가진다.[1] 그 아래로는 땀본(ตำบล|땀본th, 면)이 있으며, 최하위 행정 구역으로 무반(หมู่บ้าน|무반th, 촌)이 존재한다.[1] 과거 태국의 행정 조직이었던 몬톤(มณฑล|몬톤th, 주 또는 도)은 현재 폐지되었다.[1]
4. 태국 행정 구역의 역사
주는 일반적으로 해당 주의 원래 중심 도시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해당 도시가 반드시 주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닐 수 있으며, 여러 주에서는 행정 중심지가 도시 외곽의 새로운 건물로 이전되기도 했다.
1932년 태국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면서, 이전의 상위 행정 구역이었던 몬톤(Monthon)이 해체되고 주(창왓)가 다시 최상위 행정 구역 단위가 되었다. 이 시기 이후에도 태국의 행정 구역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 참고)
1893년 시암(태국)의 주
4. 1. 1892년 이전
대부분의 주는 아유타야 왕국 시기 형성된 반독립적인 지역 공동체나 소왕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각 주는 중심 도시인 เมือง|므앙th을 기반으로 주변 마을과 위성 도시들을 포함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주의 관리는 국왕이 직접 임명한 총독이나, 해당 지역의 옛 왕족 후예로서 중앙 왕실로부터 통치권을 인정받은 지역 가문이 맡았다. 현실적으로 국왕은 지역 귀족이나 경제적 실력자 중에서 총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강력한 지역 세력의 협조 없이는 효과적인 통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총독은 국왕으로부터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았으며, 대신 자체적으로 세금을 걷어 자신과 행정 조직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했다. 모든 주는 매년 수도인 방콕에 공물을 바쳐야 했다.
주는 네 가지 등급으로 구분되었다. 첫째는 국경 지역의 주, 둘째는 과거 독립적인 왕족이 다스렸던 지역의 주, 셋째는 기존 주에서 분리되어 새로 만들어진 주, 넷째는 수도와 가까운 주였다. 이 외에도 란나 공국, 라오스의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의 케다와 같은 조공국들은 일반 주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며 국가의 일부를 구성했다. 이러한 관계는 만다라 시스템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이 체제 하에서는 반독립적인 국가가 때때로 둘 이상의 강대국에 동시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새로운 주가 설치되는 경우는 해당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 기존 행정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총독의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그 지역에 속했던 위성 도시를 독립된 주로 승격시켜 세력을 견제하기도 했는데, 마하사라캄 주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적 팽창 압력이 거세지자, 시암(태국의 옛 이름) 정부는 중앙 집권적인 행정 개혁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경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 정부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4. 2. 1892년 행정 개혁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시암(태국의 옛 이름)은 국가 체제 정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국경 지역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18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00년 시암 지도
본격적인 행정 개혁은 쭐랄롱꼰 국왕(라마 5세) 시대에 이루어졌다. 1892년, 국왕은 중앙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이전까지 책임과 권한이 중첩되어 있던 부처들을 서구식 행정 체계처럼 명확한 임무를 가진 조직으로 재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왕의 이복동생인 담롱 라차누팝 왕자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처음에는 북부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북부부(''마하타이'') 장관이었으나, 1894년 남부부(''칼라홈'')가 폐지되면서 신설된 내무부의 초대 장관이 되어 태국 전역의 지방 행정을 총괄하게 되었다.
담롱 왕자의 주도로 1893년부터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인 ''몬톤''(มณฑล|몬톤th, Monthon) 체제가 도입되었다. 이는 여러 개의 주(므앙)를 묶어 하나의 상위 행정 단위인 몬톤으로 만들고,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감독관(ข้าหลวงเทศาภิบาล|칼루앙 테사피반th)이 관할하는 방식이었다. 몬톤 제도는 국경 지대와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중앙 정부의 통제에 비협조적인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부 작은 주들은 하위 행정 구역인 ''암프''(อำเภอ|암프th, 군)나 ''탐본''(ตำบล|탐본th, 면)으로 격하되어 인근 주에 통합되기도 했다.
이러한 급격한 중앙 집권적 개혁은 기존에 자치권을 누리던 지역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902년 이산(ภาคอีสาน|이산th, 태국 북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성자 반란(กบฏผู้มีบุญ|끄봇 푸 미 분th)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띤 종교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새로운 행정 체제에 대한 불만이 결합되면서 정부 관료와 시설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반란군은 켐마랏(เขมราฐ|켐마랏th) 시를 점령하고 불태우기도 했으나, 결국 몇 달 만에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9]
행정 구역의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다. 1916년부터는 주를 가리키는 용어로 ''창왓''(จังหวัด|창왓th)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주의 행정 중심지인 ''เมือง|므앙th'' 또는 ''อำเภอเมือง|암프므앙th''과 구분하고, 새롭게 정비된 지방 행정 구조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0]
담롱 라차누팝 왕자가 내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1915년 당시, 태국은 수도 방콕 주변 지역을 포함하여 총 19개의 몬톤과 그 아래 72개의 창왓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와치라웃 국왕(라마 6세)은 1915년 12월, 여러 몬톤을 관할하는 더 큰 행정 단위인 ''팍''(ภาค|팍th, Phak)을 설치하고 부왕(''우파랏'', อุปราช|우파랏th)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1922년까지 4개의 팍이 실제로 설치되었으나, 행정 및 재정상의 문제로 1925년에 다시 폐지되었다. 동시에 행정 간소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몬톤이 통합되기도 했다.
4. 3. 1932년 이후
1932년 태국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면서 몬톤(monthon) 제도가 해체되었고, 주(จังหวัด|짱왓th)가 다시 최상위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작은 주들이 폐지되거나 인근의 큰 주에 병합되었다. 예를 들어, 칼라신 주는 1932년에 해체되어 마하사라캄 주에 통합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독립된 주로 복원되었다. 또한, 현재의 수코타이 주는 원래 사왕카록(Sawangkalok)으로 불렸으나, 1939년에 수코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방콕 주변의 여러 주가 일시적으로 병합 운영되기도 했으나, 전쟁이 끝난 후 1946년에 대부분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또한, 태국은 전쟁 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여 프라 타봉, 피분송크람, 나콘 짬파삭, 란 창이라는 4개의 새로운 주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이 지역들은 전쟁 후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1972년에는 수도 방콕의 행정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기존의 프라 나콘 주와 톤부리 주가 합병되어 방콕이라는 특별 행정 구역(Krung Thep Maha Nakhon)이 탄생했다. 이 새로운 행정 구역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주지사를 두며, 일반적인 주의 행정 기능과 지방 자치 단체의 기능을 통합하여 수행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인구 증가와 행정 편의를 위해 기존의 큰 주에서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새로운 주를 만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1975년: 야소톤 주가 우본랏차타니 주에서 분리되었다.
1977년: 파야오 주가 치앙라이 주의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신설되었다.
1982년: 묵다한 주가 나콘파놈 주에서 분리되었다.
1993년: 사깨오 주 (쁘라찐부리 주에서 분리), 농부아람푸 주 (우돈타니 주에서 분리), 암낫짜른 주 (우본랏차타니 주에서 분리) 등 3개의 주가 동시에 신설되었다.
2011년: 가장 최근인 2011년 3월 23일에는 농카이 주에서 분리된 븡깐 주가 새로운 주로 탄생했다.
1932년 태국이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행정 구역인 몬톤이 해체되고, 주(짱왓)가 다시 최상위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작은 주들이 폐지되기도 했다.
현재의 수코타이 주는 원래 사왕카록이라는 이름이었으나, 1939년에 수코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칼라신 주는 1932년에 해체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방콕 주변의 여러 주가 잠시 병합되었으나 전쟁 후 원래대로 돌아갔다. 또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점령한 지역에 프라 타봉, 피분송크람, 나콘 짬파삭, 란 창 등 4개의 주를 일시적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1972년에는 수도권의 프라 나콘 주와 톤부리 주가 합쳐져 특별 행정 구역인 방콕이 되었다. 방콕은 선출직 주지사를 두는 등 일반 주와 지방 자치 단체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기존의 큰 주에서 새로운 주들이 분리되어 나왔다. 1975년 야소톤 주(우본 랏차타니 주에서 분할), 1977년 파야오 주(치앙라이 주에서 분할), 1982년 묵다한 주(나콘 파놈 주에서 분할)가 신설되었다. 1993년에는 사 깨오 주(쁘라친부리 주에서 분할), 농 부아 람푸 주(우돈 타니 주에서 분할), 암낫 찰런 주(우본 랏차타니 주에서 분할) 등 세 개의 주가 동시에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인 2011년 3월 23일에는 농카이 주에서 부엥깐 주가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5. 1. 다른 주로 병합된 주
주
주도
병합
운명
카빈 부리
카빈부리
1926[12]
쁘라친부리 주로 병합
수코타이 (1932년 이전)
수코타이 타니
1932[13]
사왕칼록 주로 병합. 그러나, 1938년에 주의 이름과 주도가 다시 수코타이로 변경되었다.
1932년 태국이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행정 구역인 몬톤(monthon)이 해체되고, 주(짱왓)가 다시 최상위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작은 주들이 폐지되거나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방콕 주변의 여러 주가 일시적으로 병합되었으나, 전쟁 후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또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부터 획득한 영토에 프라 타봉, 피분송크람, 나콘 짬파삭, 란 창 등 4개 주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전쟁 후 해당 영토는 반환되었다.
현재의 수코타이 주는 원래 사왕카록(Sawang khalok)으로 불렸으나 1939년 수코타이로 개칭되었다. 칼라신 주는 1932년에 해체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1972년에는 프라 나콘 주와 톤부리 주가 합병되어 특별 행정 구역인 방콕이 탄생했다. 방콕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주지사가 있으며, 일반적인 주의 행정 기능과 지방 자치 단체의 기능을 통합하여 운영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인구 증가와 행정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기존의 큰 주에서 새로운 주가 분리되어 나왔다.
1975년: 야소톤 (우본 랏차타니 주에서 분리)
1977년: 파야오 주 (치앙라이 주에서 분리)
1982년: 묵다한 (나콘 파놈 주에서 분리)
1993년: 사 깨오 (쁘라친부리 주에서 분리), 농 부아 람푸 주 (우돈 타니 주에서 분리), 암낫 찰런 (우본 랏차타니 주에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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